#농촌 #기록 #소셜(혹은 공동체)
충북 옥천에서 ‘월간 옥이네’라는 잡지를 만들며 이런저런 문화기획 일을 겸하고 있는 박누리라고 합니다. 기사/지면을 통한 이슈파이팅을 넘어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운동을 문화기획 활동을 통해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외의 제 소개는, 지난해 지리산이음의 ‘산책클럽’ 소개글 중 일부로 우선 갈음하겠습니다!
‘왜 모두 지역을 떠나려고 할까?’라는 막연한 질문, ‘세상을 바꾸는 기자'라는 허황된(!) 꿈을 품고 어린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질문과 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충북 옥천이라는 지역을 만나 2010년부터 현재까지 옥천에 살고 있습니다. 옥천신문사에서 취재기자, 편집부장으로 9년간 일했고 현재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에서 ‘월간 옥이네’라는 잡지를 만듭니다.
기자와 문화기획자 사이를 오가며 지면 안팎으로 ‘지역에 사는 즐거움'을 찾고 만드는 게 제가 하는 일의 본령이라 생각합니다. ‘지면의 이슈 파이팅이 지역사회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이 지금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면을 통해 지역에 살면서/취재를 하면서 만난 문제/이야기를 풀어내는 한편 지면 밖에서 해결방법을 고민/탐색하는 활동을 좋아합니다. 여성영화제, 인문학/페미니즘 강연, 여성주의 독서모임과 청년 네트워크, 길고양이 보호 캠페인, 생태공동체 활동(비건, 제로웨이스트, 동물권 등),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 등의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해왔습니다.

도이 인타논 트레킹 중
1. 이번 워케이션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오셨나요?
'쉼…! 일단 쉬자…!'는 마음으로 왔어요. 대학 마지막 학기 때 옥천신문 취재기자가 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후로 15년 가까이 제대로 쉰 적 없이 계속 일해왔더라고요. 애초에 제 일상 자체가 ‘일/직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스스로를 돌본 경험도 없고, 그 방법도 모르겠어서 너무 막막하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꽤 자주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지리산이음에서 치앙마이 워케이션을 제안해주셨고요. ‘일’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도, 스스로 이런 시간을 만들지도 못하는 저에게는 신이 주신 기회나 다름 없었죠 ㅋㅋㅋ 아신님의 전화를 받자마자 “꼭 가겠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지리산이음의 기획과 제안이라는 점에서 ‘아묻따(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았고요. 그만큼 여러 활동 경험이 많은 선배님들과 동료분들을 많이 만나고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저처럼(외지에서 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비혼여성) 살면서 일하는 (같은 분야의, 비슷한 고민을 가진) 선배나 동료가 거의 없어서… 최근 2~3년 사이엔 외지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며 힘을 많이 얻기도 했거든요. 이번 워케이션에서도 비슷한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삶으로나, 활동으로나 저보다 더 많은 경험이 있으신 분들과의 만남 자체가 큰 배움이 되리라 생각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워케이션 동안 2024년을 회고하고 2025년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독감 후유증(+짧은 원고 마감과 그 외 자잘한 회사 일)으로 전체 일정의 절반 정도를 그냥 골골대며 보내기만 했습니다😂 그치만 기존의 일터/삶터와 잠시 멀어져 있는 경험 자체가 무척 색다르고 뜻깊었어요.
2. 열흘 간의 치앙마이 워케이션을 경험해보시니 어떤가요?
넘모 재밌었어요…🥹개인적으로도 꼭 치앙마이에 다시 와봐야지,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 지역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연스레 동남아 지역 여행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주변에서 태국, 베트남 등지로 여행을 많이 떠날 때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남아는, 그저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일 뿐이야…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 워케이션에서 치앙마이, 그리고 동남아 지역의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한 분들이 좋아서 이런 발견도 가능했던 거 같아요😆 같은 소모임이었던 명왕성 김한범 선생님, 시민의 김승순 선생님과 교류한 것도 너무 좋았고요! 두 번째 소모임으로 만난 이호 선생님(샤먼호쌤…🥹👍), 정선미 선생님과 함께한 님만해민 방문도 즐거웠습니다! 화덕피자 먹으며 나눈 여러 진지한(?) 이야기들도요! 그리고 돌아오는 날 비행기 기다리며 공항에서 진행한 (일방적인ㅋㅋㅋ) 사람책으로 더 자세히 알게 된 김찬두 선생님께도 문화기획자로서, 그리고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동행분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만난 박소영 선생님, 황경희 선생님, 여진 선생님, 박정환 선생님, 권지현 선생님 그리고 임현택 이사장님 모두 즐겁게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모두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실 건너건너 성함만 알고 언젠가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생각했던 분들을 치앙마이에서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맛난 것도 먹고 골목도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짧은 만남에서도 일이나 운동, 삶에 대한 태도에 영감을 주시는 선생님들을 만나며, ‘일가를 이룬다는 건 이런 건가’ 하는 성찰과 반성 그리고 ‘나도 저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나름의 욕망(?), 꿈(!)도 갖게 됐습니다. 비록 더 많은 분과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번에 이렇게 한솥밥(?)을 먹었으니 다음에 만나면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죠? 😆ㅋㅋㅋ
워케이션 중 진행된 허춘중 목사님과의 만남도 무척 감동이었어요. 그동안 특별히 생각하지 못했던 ‘아시아인으로서의 관점’이란 질문이 인상적이었고요. 앞으로 차차 공부하고 알아가며 스스로 계속 답을 찾고 새로운 질문을 던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문화가 타국에서 우민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연결해 태도를 다잡고 늘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골목에 들어서면 자주 보이던 세탁 서비스 간판과 빨래들
3. 치앙마이에 오는 비영리 활동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나 활동이 있다면?
치앙마이의 골목을 걸어다니는 일!
저는 여행을 가면 ‘대중교통’과 ‘도보’ 이용을 꼭 해보는 편인데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혹은 거리를 직접 걸을 때 그 지역만의 정취를 더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짧은 여행은 유명 관광지나 명소 중심으로 일정을 짤 수밖에 없긴 한데, 그 틈에서 조금이라도 지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대중교통과 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워케이션에서는 이틀 정도 올드시티와 그 인근 골목을 혼자서 조금 걸어보았는데요. 번화한 거리, 관광객이 많은 상업지역이 아닌 골목 풍경을 단 이틀이라도 누릴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페트병을 주우며 콧노래를 흥얼 거리는 아저씨, 종이 신문을 펼쳐보고 있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 반려견 목욕을 시키는 주민, 꼬치구이 장사 준비 중인 노부부 등 치앙마이 사람들을 멀리서나마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올드시티 골목 곳곳에 세탁소가 참 많은데, 빨래하는 장면이나 세탁물을 옷걸이에 걸어 말리는 장면 등도 재미있었어요. 걷다 보니 폐교도 발견하고, 올드시티나 그 바깥 지역이나 인도 정비가 너무 안 돼있어서 치앙마이도 보행권이 참 보장되지 않는 나라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일년 내내 따뜻한(더운) 나라여서 그런지 눈길 닿는 곳마다 보이는 커다란 나무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잘 꾸며진, 번듯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모습/지역 풍경을 보는 게 참 즐겁고 좋더라고요!
(그치만 해가 진 이후에 골목을 혼자 걷는 건 절대 금지라는 정선미 선생님의 다정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참고하세요🤣)
그런 면에서 도이인타논 트레킹도 즐거웠어요. 역시나 어마어마하게 키가 큰 나무들, 처음 듣는 새 소리에 집중하며 2시간의 짧은 트레킹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트레킹 후 찾아갔던 카렌족 마을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마을에서는 모든 식량을 자급자족한다”던 가이드분(쏨!)의 설명과 마을의 계단식 밭을 보고 나니, 그제서야 치앙마이/치앙라이 지역 카렌족들이 정부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농지를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가기 전에 공부를 좀 하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만약 다시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카렌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이야기를 좀 찾아보고 가야겠다 싶었어요.
이 외에도 좋은 곳이 많지만… 하나만 더 꼽자면 숙소(슬립마이) 근처에 있던 화이트 오키드 마사지…🤣🤣🤣 다음에 간다면 여기 근처에 숙소를 잡고 체류하는 내내 매일 마사지를 받으러 갈 겁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어요…(리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타이마사지 잘하는 곳들이 꽤 있다고 하니, 마사지 관심 있으신 분들은 미리 알아보시고 가면 좋을 거 같아요!)

치앙마이 게이트 마켓. 자유가 데려가준 아침산책 중
4. 지금까지 해외, 국내 여행 경험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왜인가요?
2019년 5월 옥천신문사를 퇴사하고 한 달 남짓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는데, 이 기억이 저에겐 가장 좋은 여행 경험이었습니다.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를 걷는 그 시간이 저에겐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았거든요. 처음 순례길을 시작할 때 교차하던 설렘과 두려움(앞으로 또 얼마나 어려운 코스가 있을까,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등등), 초반엔 무얼 봐도 재밌고 신나고 즐겁다가 중반을 넘어서면 조금 지겹고, 언제 끝나나- 싶은 마음이 들고… 그러다 후반에 접어들면 매일매일 걷는 길을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게 꼭 우리네 인생 같다고 느꼈어요. 마지막 100km를 남겨두고는 거의 매일 울면서 걸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아, 나는 죽을 때가 되면 이렇게 아쉬움으로 울게 될 인간이구나- 하고요. 그래도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했을 땐 너무너무 기쁘기도 했습니다 ㅋㅋㅋ
그리고 그때,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배우기도 했어요. 어디든 좋은 사람만 있을 수 없고, 또 나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요. ‘내일은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그만큼 나는 성장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저는 크리스천인데, 걷는 도중 신의 위로를 경험하는 시간이 있기도 했습니다.
순례길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곧장 지금 회사로 출근했는데, 돌이켜보면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던 새 일과 낯선 일터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이 기억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10년 후에 꼭 다시 가자고 다짐했는데, 과연 가능할지… 그래도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국내 여행 중에선, 사실 친구들이랑 갔던 곳은 어디든 다 좋았던 거 같긴 한데(ㅋㅋㅋ) 아주 인상적으로 남은 장소는 우포늪이에요. 스물한 살인가, 여튼 그 무렵에 환경운동연합 습지탐사단 활동에 아주 잠깐 발을 들였다가 우포늪에 가게 됐는데요. 우포늪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경,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아침 공기, 새벽 산책에서 알게 된 으악새의 정체(왜가리가 으악새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어요. 진짜 ‘으악’ 하고 울더라고요🤣) 등등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랜드마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때 처음 알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국내…는 아니지만 국내라고 우기고 싶은 백두산. 천지가 열리던 순간이 매우 극적이었는데, 제가 너무 구구절절 쓰고 있어서 더는 길게 쓰면 안 될 거 같고요…🤣10년 전 쯤 취재 때문에 연변에 갔다가 백두산에 올랐는데, 그때 두 번째로 ‘통일이 돼야한다’고 느꼈습니다(첫 번째는 2000년 이산가족 상봉 행사 생중계 방송 보면서).
5. 오늘날 여행자에게 필요한 윤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판단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곳의 삶/조건에 대해 불평불만하지 않는 것. 사치와 지나친 유흥에 빠지지 않는 것.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윤리’라고 이름 붙이긴 너무 거창한데, 일단 제가 개인적으로 여행자로서 가지려는 태도 - ‘관광지가 아닌 그곳의 삶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10년 전쯤 체코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일주일 정도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매일 까를교에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토요일로 기억하는데) 처음으로 그 까를교 위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봤어요. 아주 허름한 차림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화려하게 치장한 관광객들 틈에 서있는 모습이 저한텐 아주 충격적인 장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전까지는 그곳에서 걸인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내 시야가 정말 좁았구나, 여긴 유명 관광지라도 분명 이 지역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하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기도 하고… 생활세계와 괴리된 관광지에 일조하는 관광객으로서 약간의 부채감 같은 것을 느꼈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20대 때 교회 청년회 필리핀 선교여행에서 쓰레기 매립장 안에 있는 마을을 봤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은 얼마나 넓은지, 그 세계의 고통이 나와 전혀 무관한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여행지에서도 그런 태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치앙마이 길고양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치앙마이 동물들. 이 나라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
6.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어떤 동기와 계기로 시작했나요?
제일 앞 자기소개에서 약간 언급하긴 했는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비수도권 지역 청소년/청년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압박 중 하나가 ‘잘 되려면 서울 가야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경북 구미에서 나고 자란 저 역시 이 말을 청소년기에 아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마치 학교도, 직장도, 생활도 서울을 배경으로 해야 ‘성공’한 것처럼 여기는, 서울 못가면 대구라도 가야한다는 분위기는 어린 저에게 묘한 반감을 심어줬어요(반감만 심어줌🤣). 저 역시 대구 동성로에서 놀던 청소년이긴 했으나, 마음 한편엔 ‘모두가 다 떠나면 구미는 어떻게 되는 거지?’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모두 다 저마다 성실히, 행복을 쫓아 살고 있는데 이들이 사는 지역이 서울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가?’하는 질문도 있었고요. ‘지역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하는 질문도 자연히 따라왔습니다. 그러면서 막연하게, ‘지역을 떠나야 한다고만 말하는 게 아니라 지역도 살만하다고 말하려면, 누구든 지역에 살며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무렵 ‘기자’라는 꿈도 갖고 있었는데요. 세상을 바꾸려면 떼돈을 벌거나, 언론인이 되어 사회를 비추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엔 떼돈을 버는 일을 찾으려 했어요(...ㅋㅋㅋ…). 다행히(?) 그런 일은 없다는 걸 일찍 알아챘고, 있다 하더라도 성미에 맞는 일은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자연스레 대학도 ‘언론정보학’ 전공으로 진학하게 됐지요. 전필 시간에 교수님께서 지나가는 얘기로 ‘충북 옥천에 옥천신문이라는 건강한 풀뿌리 언론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꽤 뇌리에 남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옥천신문은 기자 채용을 3~4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했기 때문에,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다가 4학년 2학기 때 옥천신문 취재기자 채용 공고가 뜬 거예요! 휴학을 꽤 오래 했는데, 마침 복학했던 학기였습니다. 당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서울 언론사 채용 절차를 진행 중이었는데요, 옥천신문 채용 공고를 보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자’ 싶어 곧바로 지원했고 한 달 간의 합숙면접(이게 최종 면접이었어요… 후후후…)을 거쳐 취재기자로 옥천에 입성(!)하게 됐습니다.
옥천에서 기자로 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깨지고 성장했어요. 그만큼 고민도 많았는데, 예전 같지 않은 구독율과 지면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슈파이팅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사를 쓰고 신문을 만드는 건데, 아무도 여기 반응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소용이지? 하는 생각이 커져갔어요. 무언가 다른 형태의 활동이 비판저널리즘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무엇일지 여러 방면에서 고민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나름대로는 ‘아카이빙’을 통해 지역을 새롭게 보는 장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 관련 활동을 기획하고 만들기도 했었고… 그렇지만 역시 신문사에 소속된 상태로 이런 일을 하는 건 내외부적으로 여러 눈초리를 받게 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조직 차원에서 이런 활동에 대한 고민이나 실제 실행이 활발히 이뤄지던 때도 아니었던 터라 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러다 신문사는 내부 인력 부족으로 제가 상당히 많은 일을 떠안아야 했던 시기가 왔고, 이 시기를 지나며 크게 번아웃이 오기도 한 데다 앞서의 고민들도 여전했기에… 일단 여기를 나가서 다른 일을 모색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그리고 딱 그때,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고래실/월간 옥이네)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주셔서 자리를 옮기게 됐죠. 여기서는 지면의 이야기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문화기획으로 다양하게 풀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고, 이직 후 실제로 그런 일을 활발하게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7. 이 일을 하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 보람을 얻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지향하는 가치의/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자 즐거움인데요. 최근 들어서 느끼는 건, 역시 서로를 지지해주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일을 하면서 즐거울 때는, 내가 한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봐주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 기운을 북돋워주는 동료/이웃/지역 사람들을 만날 때인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것이 차곡차곡 쌓여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그것이 엄청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 안의 동력을 만들어 낼 때 보람을 느끼게 되고요.
주로 외부에 활동을 소개할 때는,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이나 길고양이 보호 캠페인, 생태공동체 활동, 무료생리대함 운영 같은 것을 꼽게 되는데요. 물론 이것도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습니다. 조례나 제도를 새로이 만드는 데 제가 기획한 활동이 기반이 된다는 건 아마 평생의 자랑거리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뿐 아니라 이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을 만들 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게 돼요.
일례로, 지난해 9월 7일 옥천에서 기후정의행진을 열었는데 그때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만든 에너지 같은 것들이 큰 보람입니다. 참여하셨던 분들이 “내년엔 500명 목표로 진행해보자, 우리 조직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씀해주시거나 “이번 활동 통해서 옥천의 다른 귀한 분들을 많이 알게 돼서 힘이 된다”는 반응을 전해주셨는데 그게 정말 크게 뿌듯했습니다.
월간 옥이네 독자 중 한 분이 “옥이네를 보면서 세상, 사람을 보는 관점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피드백을 주신 적이 있는데, 이 피드백 자체가 제 보람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히고, 사람을 이해하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 가는 것 말이지요.
그리고 ‘현장’에 있을 때. 사람들을 만날 때. 공동체를 함께 고민할 때. 하나 더 꼽자면, 취재 중 찍은 사진을 사무실에 돌아와 볼 때, 사진 속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는 게 정말 기쁩니다.
어려운 건 사실 늘…ㅠㅠㅋㅋㅋ 이 일이 돈을 버는 일은 아니다 보니 조직 차원에서 늘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힘에 부칩니다. 지역을 ‘거쳐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도 진이 빠지는 일이고요… 그런 가운데에서도 계속 지역/공동체에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의 저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소진된 상태라 이게 쉽지 않은 것도 힘듭니다.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처럼 연고 없는 곳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이렇게 오래 사는 사람이 지역엔 잘 없다는 것, 업이나 고민의 결이 비슷한 선배/동료가 없다는 것이 어려움이기도 해요. 이 때문에 저도 지역을 떠나야 하나-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래도 나라도 있어야 뒤에 올 여성들이 덜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티자고 다짐하기도 했는데… 쉽지 않습니다요😭
그래도 일을 하면서 멀리서도 제 지향을 알아봐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을 만나고 있어 이런 힘든 과정도 버틸 수 있는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저랑 계속 동료해주시고 친구해주세요…🥹

도이인타논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치앙마이 타이거빈인데, 우리나라 토종씨앗 호랑이콩과는 유전적으로 얼마나 유사할지 궁금했다.
8. 이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돈… 체력… 건강한 정신… 😂
9. 최근 나의 가장 큰 이슈나 화두,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자기돌봄! 밥은 늘 밖에서 대충 때우고, 집은 언제나 엉망이고, 주말에도 휴식 보다는 일에 집중하는 삶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지내왔는데… 이것도 다 제 체력이 받쳐줄 때에나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난 10여년 간 박누리는 꽤 건강한 사람이었던 거죠, 그렇게 살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근데 이제 정말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지난 날의 저는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
지난해 하반기에는 동네 헬스장에 일주일에 3번 이상 출석한다는 제 나름의 규칙도 만들어서 실행하고 있고요(근데 올해 1월엔 전혀 지키지 못함… 흑흑… 이제 다음 주부터는 다시 열심히 나갈 겁니다). 엉망이던 집 청소도 조금씩 하고 있어요. 매우 뿌듯하게 새해를 시작하고 있지요!
또 하나는, 내려놓는 마음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안 되는 것 되게 하려 하지 말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렇게요🤣 운동도, 삶도 그런 건데 이걸 지금에야 깨닫고… 흑흑흑… 잘 안 되지만 잘 내려놓으려고요.
그리고 이건 좀 물질적(?)인 것인데… 제가 집도 절도 없이 살고 있는 터라 요즘 이게 조금 고민입니다. 빚을 내서 집을 사야 하는 걸까? 근데 그럼 빚은 어떻게 갚지? 그냥 계속 임차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아냐, 그래도 주거가 안정되면 나도 좀 더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이를 수시로 오가며… 🤣🤣🤣

직조틀의 실처럼 쫙쫙 뻗은 전선과 발코니 난간을 장식한 화분들
10. 개인적으로 2025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한 가지 알려 주세요.
2025년도 무탈히, 즐겁게, 또 무언가를 배우면서 사는 것!
(+희망제작소 SIR대회에서 2025년에 하고 싶은 일로 *여성 청소년 월경권 공론장 만들기 *농촌 지역 활동가 아카이빙을 이야기 했었는데, 이것도 꼭 하려고 합니다!)
11. 나의 좋은 점, 혹은 자신 있는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좀 웃깁니다. 지금은 사는 데 지쳐 개그 욕심이나 개그 감각이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 제 안에 개그 불씨는 살아있다…!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게 기분 좋고 즐거워요. 순발력이 좋은 편인데 이게 저의 개그력에 일조하는 거 같아요(후후). 합이 맞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진짜 배 땡기게 웃겨줄 수 있음.
12.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 정말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제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 지향을 녹일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는 것.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에 일조하는 것.
#농촌 #기록 #소셜(혹은 공동체)
충북 옥천에서 ‘월간 옥이네’라는 잡지를 만들며 이런저런 문화기획 일을 겸하고 있는 박누리라고 합니다. 기사/지면을 통한 이슈파이팅을 넘어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운동을 문화기획 활동을 통해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외의 제 소개는, 지난해 지리산이음의 ‘산책클럽’ 소개글 중 일부로 우선 갈음하겠습니다!
‘왜 모두 지역을 떠나려고 할까?’라는 막연한 질문, ‘세상을 바꾸는 기자'라는 허황된(!) 꿈을 품고 어린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질문과 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충북 옥천이라는 지역을 만나 2010년부터 현재까지 옥천에 살고 있습니다. 옥천신문사에서 취재기자, 편집부장으로 9년간 일했고 현재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에서 ‘월간 옥이네’라는 잡지를 만듭니다.
기자와 문화기획자 사이를 오가며 지면 안팎으로 ‘지역에 사는 즐거움'을 찾고 만드는 게 제가 하는 일의 본령이라 생각합니다. ‘지면의 이슈 파이팅이 지역사회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이 지금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면을 통해 지역에 살면서/취재를 하면서 만난 문제/이야기를 풀어내는 한편 지면 밖에서 해결방법을 고민/탐색하는 활동을 좋아합니다. 여성영화제, 인문학/페미니즘 강연, 여성주의 독서모임과 청년 네트워크, 길고양이 보호 캠페인, 생태공동체 활동(비건, 제로웨이스트, 동물권 등),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 등의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해왔습니다.
도이 인타논 트레킹 중
1. 이번 워케이션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오셨나요?
'쉼…! 일단 쉬자…!'는 마음으로 왔어요. 대학 마지막 학기 때 옥천신문 취재기자가 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후로 15년 가까이 제대로 쉰 적 없이 계속 일해왔더라고요. 애초에 제 일상 자체가 ‘일/직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스스로를 돌본 경험도 없고, 그 방법도 모르겠어서 너무 막막하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꽤 자주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지리산이음에서 치앙마이 워케이션을 제안해주셨고요. ‘일’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도, 스스로 이런 시간을 만들지도 못하는 저에게는 신이 주신 기회나 다름 없었죠 ㅋㅋㅋ 아신님의 전화를 받자마자 “꼭 가겠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지리산이음의 기획과 제안이라는 점에서 ‘아묻따(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았고요. 그만큼 여러 활동 경험이 많은 선배님들과 동료분들을 많이 만나고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저처럼(외지에서 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비혼여성) 살면서 일하는 (같은 분야의, 비슷한 고민을 가진) 선배나 동료가 거의 없어서… 최근 2~3년 사이엔 외지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며 힘을 많이 얻기도 했거든요. 이번 워케이션에서도 비슷한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삶으로나, 활동으로나 저보다 더 많은 경험이 있으신 분들과의 만남 자체가 큰 배움이 되리라 생각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워케이션 동안 2024년을 회고하고 2025년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독감 후유증(+짧은 원고 마감과 그 외 자잘한 회사 일)으로 전체 일정의 절반 정도를 그냥 골골대며 보내기만 했습니다😂 그치만 기존의 일터/삶터와 잠시 멀어져 있는 경험 자체가 무척 색다르고 뜻깊었어요.
2. 열흘 간의 치앙마이 워케이션을 경험해보시니 어떤가요?
넘모 재밌었어요…🥹개인적으로도 꼭 치앙마이에 다시 와봐야지,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 지역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연스레 동남아 지역 여행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주변에서 태국, 베트남 등지로 여행을 많이 떠날 때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남아는, 그저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일 뿐이야…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 워케이션에서 치앙마이, 그리고 동남아 지역의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한 분들이 좋아서 이런 발견도 가능했던 거 같아요😆 같은 소모임이었던 명왕성 김한범 선생님, 시민의 김승순 선생님과 교류한 것도 너무 좋았고요! 두 번째 소모임으로 만난 이호 선생님(샤먼호쌤…🥹👍), 정선미 선생님과 함께한 님만해민 방문도 즐거웠습니다! 화덕피자 먹으며 나눈 여러 진지한(?) 이야기들도요! 그리고 돌아오는 날 비행기 기다리며 공항에서 진행한 (일방적인ㅋㅋㅋ) 사람책으로 더 자세히 알게 된 김찬두 선생님께도 문화기획자로서, 그리고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동행분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만난 박소영 선생님, 황경희 선생님, 여진 선생님, 박정환 선생님, 권지현 선생님 그리고 임현택 이사장님 모두 즐겁게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모두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실 건너건너 성함만 알고 언젠가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생각했던 분들을 치앙마이에서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맛난 것도 먹고 골목도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짧은 만남에서도 일이나 운동, 삶에 대한 태도에 영감을 주시는 선생님들을 만나며, ‘일가를 이룬다는 건 이런 건가’ 하는 성찰과 반성 그리고 ‘나도 저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나름의 욕망(?), 꿈(!)도 갖게 됐습니다. 비록 더 많은 분과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번에 이렇게 한솥밥(?)을 먹었으니 다음에 만나면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죠? 😆ㅋㅋㅋ
워케이션 중 진행된 허춘중 목사님과의 만남도 무척 감동이었어요. 그동안 특별히 생각하지 못했던 ‘아시아인으로서의 관점’이란 질문이 인상적이었고요. 앞으로 차차 공부하고 알아가며 스스로 계속 답을 찾고 새로운 질문을 던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문화가 타국에서 우민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연결해 태도를 다잡고 늘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골목에 들어서면 자주 보이던 세탁 서비스 간판과 빨래들
3. 치앙마이에 오는 비영리 활동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나 활동이 있다면?
치앙마이의 골목을 걸어다니는 일!
저는 여행을 가면 ‘대중교통’과 ‘도보’ 이용을 꼭 해보는 편인데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혹은 거리를 직접 걸을 때 그 지역만의 정취를 더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짧은 여행은 유명 관광지나 명소 중심으로 일정을 짤 수밖에 없긴 한데, 그 틈에서 조금이라도 지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대중교통과 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워케이션에서는 이틀 정도 올드시티와 그 인근 골목을 혼자서 조금 걸어보았는데요. 번화한 거리, 관광객이 많은 상업지역이 아닌 골목 풍경을 단 이틀이라도 누릴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페트병을 주우며 콧노래를 흥얼 거리는 아저씨, 종이 신문을 펼쳐보고 있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 반려견 목욕을 시키는 주민, 꼬치구이 장사 준비 중인 노부부 등 치앙마이 사람들을 멀리서나마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올드시티 골목 곳곳에 세탁소가 참 많은데, 빨래하는 장면이나 세탁물을 옷걸이에 걸어 말리는 장면 등도 재미있었어요. 걷다 보니 폐교도 발견하고, 올드시티나 그 바깥 지역이나 인도 정비가 너무 안 돼있어서 치앙마이도 보행권이 참 보장되지 않는 나라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일년 내내 따뜻한(더운) 나라여서 그런지 눈길 닿는 곳마다 보이는 커다란 나무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잘 꾸며진, 번듯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모습/지역 풍경을 보는 게 참 즐겁고 좋더라고요!
(그치만 해가 진 이후에 골목을 혼자 걷는 건 절대 금지라는 정선미 선생님의 다정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참고하세요🤣)
그런 면에서 도이인타논 트레킹도 즐거웠어요. 역시나 어마어마하게 키가 큰 나무들, 처음 듣는 새 소리에 집중하며 2시간의 짧은 트레킹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트레킹 후 찾아갔던 카렌족 마을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마을에서는 모든 식량을 자급자족한다”던 가이드분(쏨!)의 설명과 마을의 계단식 밭을 보고 나니, 그제서야 치앙마이/치앙라이 지역 카렌족들이 정부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농지를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가기 전에 공부를 좀 하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만약 다시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카렌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이야기를 좀 찾아보고 가야겠다 싶었어요.
이 외에도 좋은 곳이 많지만… 하나만 더 꼽자면 숙소(슬립마이) 근처에 있던 화이트 오키드 마사지…🤣🤣🤣 다음에 간다면 여기 근처에 숙소를 잡고 체류하는 내내 매일 마사지를 받으러 갈 겁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어요…(리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타이마사지 잘하는 곳들이 꽤 있다고 하니, 마사지 관심 있으신 분들은 미리 알아보시고 가면 좋을 거 같아요!)
치앙마이 게이트 마켓. 자유가 데려가준 아침산책 중
4. 지금까지 해외, 국내 여행 경험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왜인가요?
2019년 5월 옥천신문사를 퇴사하고 한 달 남짓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는데, 이 기억이 저에겐 가장 좋은 여행 경험이었습니다.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를 걷는 그 시간이 저에겐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았거든요. 처음 순례길을 시작할 때 교차하던 설렘과 두려움(앞으로 또 얼마나 어려운 코스가 있을까,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등등), 초반엔 무얼 봐도 재밌고 신나고 즐겁다가 중반을 넘어서면 조금 지겹고, 언제 끝나나- 싶은 마음이 들고… 그러다 후반에 접어들면 매일매일 걷는 길을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게 꼭 우리네 인생 같다고 느꼈어요. 마지막 100km를 남겨두고는 거의 매일 울면서 걸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아, 나는 죽을 때가 되면 이렇게 아쉬움으로 울게 될 인간이구나- 하고요. 그래도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했을 땐 너무너무 기쁘기도 했습니다 ㅋㅋㅋ
그리고 그때,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배우기도 했어요. 어디든 좋은 사람만 있을 수 없고, 또 나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요. ‘내일은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그만큼 나는 성장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저는 크리스천인데, 걷는 도중 신의 위로를 경험하는 시간이 있기도 했습니다.
순례길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곧장 지금 회사로 출근했는데, 돌이켜보면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던 새 일과 낯선 일터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이 기억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10년 후에 꼭 다시 가자고 다짐했는데, 과연 가능할지… 그래도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국내 여행 중에선, 사실 친구들이랑 갔던 곳은 어디든 다 좋았던 거 같긴 한데(ㅋㅋㅋ) 아주 인상적으로 남은 장소는 우포늪이에요. 스물한 살인가, 여튼 그 무렵에 환경운동연합 습지탐사단 활동에 아주 잠깐 발을 들였다가 우포늪에 가게 됐는데요. 우포늪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경,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아침 공기, 새벽 산책에서 알게 된 으악새의 정체(왜가리가 으악새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어요. 진짜 ‘으악’ 하고 울더라고요🤣) 등등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랜드마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때 처음 알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국내…는 아니지만 국내라고 우기고 싶은 백두산. 천지가 열리던 순간이 매우 극적이었는데, 제가 너무 구구절절 쓰고 있어서 더는 길게 쓰면 안 될 거 같고요…🤣10년 전 쯤 취재 때문에 연변에 갔다가 백두산에 올랐는데, 그때 두 번째로 ‘통일이 돼야한다’고 느꼈습니다(첫 번째는 2000년 이산가족 상봉 행사 생중계 방송 보면서).
5. 오늘날 여행자에게 필요한 윤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판단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곳의 삶/조건에 대해 불평불만하지 않는 것. 사치와 지나친 유흥에 빠지지 않는 것.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윤리’라고 이름 붙이긴 너무 거창한데, 일단 제가 개인적으로 여행자로서 가지려는 태도 - ‘관광지가 아닌 그곳의 삶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10년 전쯤 체코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일주일 정도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매일 까를교에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토요일로 기억하는데) 처음으로 그 까를교 위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봤어요. 아주 허름한 차림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화려하게 치장한 관광객들 틈에 서있는 모습이 저한텐 아주 충격적인 장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전까지는 그곳에서 걸인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내 시야가 정말 좁았구나, 여긴 유명 관광지라도 분명 이 지역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하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기도 하고… 생활세계와 괴리된 관광지에 일조하는 관광객으로서 약간의 부채감 같은 것을 느꼈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20대 때 교회 청년회 필리핀 선교여행에서 쓰레기 매립장 안에 있는 마을을 봤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은 얼마나 넓은지, 그 세계의 고통이 나와 전혀 무관한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여행지에서도 그런 태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치앙마이 길고양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치앙마이 동물들. 이 나라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
6.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어떤 동기와 계기로 시작했나요?
제일 앞 자기소개에서 약간 언급하긴 했는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비수도권 지역 청소년/청년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압박 중 하나가 ‘잘 되려면 서울 가야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경북 구미에서 나고 자란 저 역시 이 말을 청소년기에 아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마치 학교도, 직장도, 생활도 서울을 배경으로 해야 ‘성공’한 것처럼 여기는, 서울 못가면 대구라도 가야한다는 분위기는 어린 저에게 묘한 반감을 심어줬어요(반감만 심어줌🤣). 저 역시 대구 동성로에서 놀던 청소년이긴 했으나, 마음 한편엔 ‘모두가 다 떠나면 구미는 어떻게 되는 거지?’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모두 다 저마다 성실히, 행복을 쫓아 살고 있는데 이들이 사는 지역이 서울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가?’하는 질문도 있었고요. ‘지역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하는 질문도 자연히 따라왔습니다. 그러면서 막연하게, ‘지역을 떠나야 한다고만 말하는 게 아니라 지역도 살만하다고 말하려면, 누구든 지역에 살며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무렵 ‘기자’라는 꿈도 갖고 있었는데요. 세상을 바꾸려면 떼돈을 벌거나, 언론인이 되어 사회를 비추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엔 떼돈을 버는 일을 찾으려 했어요(...ㅋㅋㅋ…). 다행히(?) 그런 일은 없다는 걸 일찍 알아챘고, 있다 하더라도 성미에 맞는 일은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자연스레 대학도 ‘언론정보학’ 전공으로 진학하게 됐지요. 전필 시간에 교수님께서 지나가는 얘기로 ‘충북 옥천에 옥천신문이라는 건강한 풀뿌리 언론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꽤 뇌리에 남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옥천신문은 기자 채용을 3~4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했기 때문에,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다가 4학년 2학기 때 옥천신문 취재기자 채용 공고가 뜬 거예요! 휴학을 꽤 오래 했는데, 마침 복학했던 학기였습니다. 당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서울 언론사 채용 절차를 진행 중이었는데요, 옥천신문 채용 공고를 보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자’ 싶어 곧바로 지원했고 한 달 간의 합숙면접(이게 최종 면접이었어요… 후후후…)을 거쳐 취재기자로 옥천에 입성(!)하게 됐습니다.
옥천에서 기자로 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깨지고 성장했어요. 그만큼 고민도 많았는데, 예전 같지 않은 구독율과 지면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슈파이팅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사를 쓰고 신문을 만드는 건데, 아무도 여기 반응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소용이지? 하는 생각이 커져갔어요. 무언가 다른 형태의 활동이 비판저널리즘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무엇일지 여러 방면에서 고민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나름대로는 ‘아카이빙’을 통해 지역을 새롭게 보는 장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 관련 활동을 기획하고 만들기도 했었고… 그렇지만 역시 신문사에 소속된 상태로 이런 일을 하는 건 내외부적으로 여러 눈초리를 받게 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조직 차원에서 이런 활동에 대한 고민이나 실제 실행이 활발히 이뤄지던 때도 아니었던 터라 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러다 신문사는 내부 인력 부족으로 제가 상당히 많은 일을 떠안아야 했던 시기가 왔고, 이 시기를 지나며 크게 번아웃이 오기도 한 데다 앞서의 고민들도 여전했기에… 일단 여기를 나가서 다른 일을 모색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그리고 딱 그때,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고래실/월간 옥이네)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주셔서 자리를 옮기게 됐죠. 여기서는 지면의 이야기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문화기획으로 다양하게 풀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고, 이직 후 실제로 그런 일을 활발하게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7. 이 일을 하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 보람을 얻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지향하는 가치의/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자 즐거움인데요. 최근 들어서 느끼는 건, 역시 서로를 지지해주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일을 하면서 즐거울 때는, 내가 한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봐주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 기운을 북돋워주는 동료/이웃/지역 사람들을 만날 때인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것이 차곡차곡 쌓여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그것이 엄청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 안의 동력을 만들어 낼 때 보람을 느끼게 되고요.
주로 외부에 활동을 소개할 때는,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이나 길고양이 보호 캠페인, 생태공동체 활동, 무료생리대함 운영 같은 것을 꼽게 되는데요. 물론 이것도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습니다. 조례나 제도를 새로이 만드는 데 제가 기획한 활동이 기반이 된다는 건 아마 평생의 자랑거리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뿐 아니라 이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을 만들 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게 돼요.
일례로, 지난해 9월 7일 옥천에서 기후정의행진을 열었는데 그때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만든 에너지 같은 것들이 큰 보람입니다. 참여하셨던 분들이 “내년엔 500명 목표로 진행해보자, 우리 조직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씀해주시거나 “이번 활동 통해서 옥천의 다른 귀한 분들을 많이 알게 돼서 힘이 된다”는 반응을 전해주셨는데 그게 정말 크게 뿌듯했습니다.
월간 옥이네 독자 중 한 분이 “옥이네를 보면서 세상, 사람을 보는 관점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피드백을 주신 적이 있는데, 이 피드백 자체가 제 보람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히고, 사람을 이해하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 가는 것 말이지요.
그리고 ‘현장’에 있을 때. 사람들을 만날 때. 공동체를 함께 고민할 때. 하나 더 꼽자면, 취재 중 찍은 사진을 사무실에 돌아와 볼 때, 사진 속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는 게 정말 기쁩니다.
어려운 건 사실 늘…ㅠㅠㅋㅋㅋ 이 일이 돈을 버는 일은 아니다 보니 조직 차원에서 늘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힘에 부칩니다. 지역을 ‘거쳐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도 진이 빠지는 일이고요… 그런 가운데에서도 계속 지역/공동체에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의 저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소진된 상태라 이게 쉽지 않은 것도 힘듭니다.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처럼 연고 없는 곳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이렇게 오래 사는 사람이 지역엔 잘 없다는 것, 업이나 고민의 결이 비슷한 선배/동료가 없다는 것이 어려움이기도 해요. 이 때문에 저도 지역을 떠나야 하나-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래도 나라도 있어야 뒤에 올 여성들이 덜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티자고 다짐하기도 했는데… 쉽지 않습니다요😭
그래도 일을 하면서 멀리서도 제 지향을 알아봐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을 만나고 있어 이런 힘든 과정도 버틸 수 있는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저랑 계속 동료해주시고 친구해주세요…🥹
도이인타논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치앙마이 타이거빈인데, 우리나라 토종씨앗 호랑이콩과는 유전적으로 얼마나 유사할지 궁금했다.
8. 이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돈… 체력… 건강한 정신… 😂
9. 최근 나의 가장 큰 이슈나 화두,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자기돌봄! 밥은 늘 밖에서 대충 때우고, 집은 언제나 엉망이고, 주말에도 휴식 보다는 일에 집중하는 삶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지내왔는데… 이것도 다 제 체력이 받쳐줄 때에나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난 10여년 간 박누리는 꽤 건강한 사람이었던 거죠, 그렇게 살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근데 이제 정말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지난 날의 저는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
지난해 하반기에는 동네 헬스장에 일주일에 3번 이상 출석한다는 제 나름의 규칙도 만들어서 실행하고 있고요(근데 올해 1월엔 전혀 지키지 못함… 흑흑… 이제 다음 주부터는 다시 열심히 나갈 겁니다). 엉망이던 집 청소도 조금씩 하고 있어요. 매우 뿌듯하게 새해를 시작하고 있지요!
또 하나는, 내려놓는 마음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안 되는 것 되게 하려 하지 말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렇게요🤣 운동도, 삶도 그런 건데 이걸 지금에야 깨닫고… 흑흑흑… 잘 안 되지만 잘 내려놓으려고요.
그리고 이건 좀 물질적(?)인 것인데… 제가 집도 절도 없이 살고 있는 터라 요즘 이게 조금 고민입니다. 빚을 내서 집을 사야 하는 걸까? 근데 그럼 빚은 어떻게 갚지? 그냥 계속 임차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아냐, 그래도 주거가 안정되면 나도 좀 더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이를 수시로 오가며… 🤣🤣🤣
직조틀의 실처럼 쫙쫙 뻗은 전선과 발코니 난간을 장식한 화분들
10. 개인적으로 2025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한 가지 알려 주세요.
2025년도 무탈히, 즐겁게, 또 무언가를 배우면서 사는 것!
(+희망제작소 SIR대회에서 2025년에 하고 싶은 일로 *여성 청소년 월경권 공론장 만들기 *농촌 지역 활동가 아카이빙을 이야기 했었는데, 이것도 꼭 하려고 합니다!)
11. 나의 좋은 점, 혹은 자신 있는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좀 웃깁니다. 지금은 사는 데 지쳐 개그 욕심이나 개그 감각이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 제 안에 개그 불씨는 살아있다…!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게 기분 좋고 즐거워요. 순발력이 좋은 편인데 이게 저의 개그력에 일조하는 거 같아요(후후). 합이 맞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진짜 배 땡기게 웃겨줄 수 있음.
12.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 정말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제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 지향을 녹일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는 것.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에 일조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