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고 푸르도다, 산청의 어린이들 도산초등학교 6학년 재이, 4학년 유이와 다인 글과 그림 / 효림 * 산과 물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입니다. 옛 어른들은 인심이 후한 동네가 명당이라 했다지요. ‘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을 소개합니다.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또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_ 책 《어린이라는 세계》 중에서
어린이를 만나는 것은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톡 건드리고 싶다가도 섣부른 어른의 실수에 툭 터져 버릴까 봐 움츠리게 된다. 이럴 때 필요한 책이 바로 《어린이라는 세계》다. 인터뷰 전, 도서관에 들러 책을 펼쳤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불필요한 걱정이 말랑해진다. 손님을 맞을 때 집안을 정돈하듯, 어린이를 만날 때에도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1년 전, 5학년이었던 재이, 3학년이었던 유이, 다인이와 한 달 동안 그림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각자의 집을 돌면서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냈던 우리는 못 본 새 달라진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유이_ 저는 아주아주 행복하게 지냈어요. 공부가 더 싫어졌고요, 노는 건 더 좋아졌어요. 그리고 잠이 많아졌어요. 조금 뚱뚱해졌고요, 키도 더 컸어요. 재이_ 미술 수업을 한 다음에 관심이 많아져서 도구를 많이 샀어요. 오일 파스텔이랑 수채화 물감이랑 아크릴 물감이랑. 컬러링 책 사서 칠하기도 하고요. 유이_ 미술 수업한 후에 그림 그리는 게 더 재밌어졌어요. 근데 눈 그릴 때 실제처럼 안 그리고 만화같이 그려요. 손 그릴 때는 손가락 그리기 싫어서 이렇게(뒷짐 지는 자세) 해서 그려요. 아니면 여기까지만(상반신만) 그려요. 다인_ 저는 진주에 있는 미술학원도 다녔어요. 근데 아직 코는 1자로 그리고, 손도 구체적으로 그리진 못해요. 작년 수업에서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렸던 적이 있다. 앞모습을 그리는 건 사실 어른들도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우리는 누군가를 그릴 때 닮았는지 아닌지를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데, 사람의 얼굴은 미묘하게 다르기만 해도 그 변화를 눈치채기 쉽다. 아이들은 다이아몬드를 여러 개 박고, 속눈썹을 길게 빼 만화처럼 눈을 그린다. 잘 그리고 싶은데, 예쁘게 그리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 그리면 뭔가 허전하고 어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정말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손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쫙 편 다섯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을 쥐거나 연필을 잡고 있는 손을 그리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관념을 물리치고, 눈앞의 것을 관찰해야 한다. 만나자마자 재잘재잘 그림 얘기부터 하는 것을 보니, 어려워도 꽤 강렬한 기억이었나 보다. 형식적으로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수줍은 재이가 첫 번째는 싫다고 한다. 냉큼 유이가 먼저 하겠다고 하자 다인이는 두 번째로 하겠단다. 유이_ 저는 ‘남유이’예요. 그림 그리는 거랑 노는 걸 좋아해요. 저의 꿈은 화가예요. 정말정말 싫어하는 음식은 가지랑 버섯이에요. 다인_ 저는 ‘이다인’이고요, 제가 싫어하는 것도 유이랑 똑같아요. 가지랑 버섯, 파프리카. 만들기랑 포장하는 걸 좋아해요. 재이_ 저는 도산초등학교 6학년 ‘남재이’예요. 미술이랑 빵 만드는 걸 좋아해요. 재이와 유이는 자매지간이다. 유이와 다인이는 올해로 벌써 8년째 단짝이다. 셋은 도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선생님의 직업이 기자인 줄 알았다고 한다. 1년 동안 산청에 사는 사람들을 취재한다고 답하자, 어디에서 볼 수 있냐고 묻는다. 신문에 기사를 쓰거나 TV에 나오는 기자도 있지만 선생님은 ‘인터넷 기자’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기록 활동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것도 기자의 몫이다. 
왼쪽부터 재이, 유이, 다인 북적였던 카페가 한산해지자 프레드릭 사장님이 다가와 음료 주문을 받는다. 아이들에겐 물어볼 것도 없이 미리 만들어 놓은 초콜릿 음료를 주겠단다. 동동 떠 있는 얼음 아래 진한 초콜릿이 자리 잡고 있다. 휘휘 젓자 얼음이 청량한 소리를 낸다. 쪽쪽, 잘 섞인 초콜릿을 빨대로 빨아들이자, 나란히 앉은 세 친구의 표정이 한결 말쑥해진다. 곧 있을 여름방학처럼. 유이_ 7월 26일에 시작해요. 제 생일이기도 하고요. 다인_ 학교에 얘기하면 받고 싶은 선물을 줘요. 유이_ 저는 정했어요. 아이브 포토카드요. 스티커예요. 요새 제일 인기 많아요. 다인_ 저는 지금 후회해요. 4월에 생일이었거든요. 지금이라면 다른 걸 골랐을 거예요. 유이_ 방학 때는 돌봄 교실에 가요. 안 가는 날에는 놀고 먹고 자고 싸고 그림 그릴 거예요. 다인_ 저는 한 번도 시간표대로 지킨 적이 없어요. 자유시간만 지켜요. 공부하는 시간은 안 지켜요. 재이_ 저는 전에 사 놓았던 수학 문제집 풀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프로그램도 신청했어요. 진주에서 하는 작곡 수업, 그것도 신청해 놓았어요. 지금은 아직 대기 중이지만요. 그리고 책도 좀 많이 읽을 거예요. 6학년과 4학년의 차이일까, 타고난 성향이 다른 걸까. 척척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재이와 절대 계획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유이와 다인이의 굳은 결심이 상반돼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요즘 제일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데 답한다. 유이_ 그림 그리기랑 만들기요. 포토카드 포장하는 거요. 다인_ 얼마 전에 목화장터에서는 제가 만든 걸 팔아서 2천 원을 벌었어요. 재이_ 저도 컬러링 북 색칠하는 거요. 마스킹 테이프랑 스티커도 모아요. 연예인에도 좀 관심이 가요. 틱톡도 보고요. 아이브랑 블랙핑크랑 에스파 좋아해요. 다인_ 저는 여자 아이돌보다 남자 아이돌이 더 좋아요. 유이_ 다인이는 남자 춤을 더 잘 춰요. 2학기 때 학교에서 뮤직 콘테스트가 열려요. 재이_ 모둠을 정해서 발표해요. 전교생이 다 하는 거예요. 노래하기도 하고, 춤추기도 하고. 재이가 초콜릿을 한 모금 마시자 빵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최근에도 만든 것이 있을까. 재이_ 수플레 팬케이크요. 계란 흰자랑 노른자랑 분리해서 거품기로 푹신푹신하게 만들어요. 오늘은 구름빵 만들었어요. 제 꿈은 파티셰예요. 다인_ 저도 요리 좋아해요. 직업은 요리에 관련된 걸 할 거라서 지금 연습하고 있어요. 유이_ 저는 쓰레기 담당이예요. 그리고 언니가 만든 걸 제가 더 많이 먹을 때도 있어요.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_ 책 《완벽한 날들》 중에서
‘산청의 어린이들’로 한데 묶어 인터뷰하고 있지만, 재이와 유이, 다인이는 각기 다른 우주를 가진 존재들이다. 어른들이 그렇듯이. 대화를 나눌수록 각자의 우주가 더욱 또렷해진다. 10년 넘게 살아온 나날 중 손꼽을 만큼 행복한 순간과 슬펐던 때를 물었다. 유이_ 태국이랑 싱가포르 갔을 때 좋았어요. 비행기 타는 거랑 자리에 달린 화면 보는 것도 좋고, 물놀이가 진짜 재밌었어요. 해외여행 간 건 다 좋았어요. 재이_ 12월에서 1월 사이에 한 달간 여행 갔었어요. 엄마는 휴가 내고 아빠도 카페 쉬고. 그때가 또 제 생일이에요. 저도 유이처럼 해외여행 갔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다인_ 예전에 엄마 손을 다쳐서 오랫동안 집에 없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한 번도 못 보고 영상통화만 했어요.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왔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지금 엄마가 해외에 갔는데 보고 싶어요. 유이_ 저희 엄마도 3주 동안 없었던 적 있는데 그때 진짜 슬펐어요. 하지만 울진 않았어요. 재이_ 제가 어렸을 때 필리핀에서 바나나 나무 쓰러진 거에 걸려 넘어졌었거든요. 피가 많이 났는데 엄청 아팠어요. 그때 울었어요. 재이와 유이의 아빠는 카페 프레드릭을 운영한다. 엄마는 간디마을학교의 선생님이다. 3주 동안 없었던 이유는 학교 이동학습 때문이리라. 마을학교 선생님인 다인이의 엄마도 그 프로그램 때문에 지금 필리핀에 있다. 마지막으로 어른이 되고 싶은 순간이 있는지 물었다. 다인_ 엄청나게 되고 싶어요! 나중에 유이랑 결혼할 거예요. 지금은 아니고요. 유이_ 지금은 단짝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재이_ 저는 딱히 되고 싶지도 않고, 싫지도 않아요. 유이_ 어른 되면 공부를 하나도 안 할 거예요. 지금은 배워놔야 해요. 뒤처지고 싶진 않아요. 재이_ 저는 중학교 선택하는 것 때문에 엄청나게 고민 중이에요. 예전에는 교복 예쁜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단성중학교랑 간디마을학교 중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프레드릭에서 보는 바깥 풍경 다인이가 좋아하는 색깔을 물어본다. 초록색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다인이도 녹차 아이스크림 색깔을 좋아한단다. 프레드릭은 최근 외벽을 진한 숲의 색으로, 내벽을 맑은 물의 색으로 단장했다. 창밖은 연둣빛부터 올리브색까지 갖가지 초록들의 향연이다. 재이, 유이, 다인이는 어떤 색일까? ‘산청’이라는 이름처럼, 푸르른 여름처럼 오늘도 어린이는 쑥쑥 자란다. |
푸르고 푸르도다, 산청의 어린이들
도산초등학교 6학년 재이, 4학년 유이와 다인
글과 그림 / 효림
* 산과 물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입니다. 옛 어른들은 인심이 후한 동네가 명당이라 했다지요. ‘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을 소개합니다.
어린이를 만나는 것은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톡 건드리고 싶다가도 섣부른 어른의 실수에 툭 터져 버릴까 봐 움츠리게 된다. 이럴 때 필요한 책이 바로 《어린이라는 세계》다. 인터뷰 전, 도서관에 들러 책을 펼쳤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불필요한 걱정이 말랑해진다. 손님을 맞을 때 집안을 정돈하듯, 어린이를 만날 때에도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1년 전, 5학년이었던 재이, 3학년이었던 유이, 다인이와 한 달 동안 그림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각자의 집을 돌면서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냈던 우리는 못 본 새 달라진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유이_ 저는 아주아주 행복하게 지냈어요. 공부가 더 싫어졌고요, 노는 건 더 좋아졌어요. 그리고 잠이 많아졌어요. 조금 뚱뚱해졌고요, 키도 더 컸어요.
재이_ 미술 수업을 한 다음에 관심이 많아져서 도구를 많이 샀어요. 오일 파스텔이랑 수채화 물감이랑 아크릴 물감이랑. 컬러링 책 사서 칠하기도 하고요.
유이_ 미술 수업한 후에 그림 그리는 게 더 재밌어졌어요. 근데 눈 그릴 때 실제처럼 안 그리고 만화같이 그려요. 손 그릴 때는 손가락 그리기 싫어서 이렇게(뒷짐 지는 자세) 해서 그려요. 아니면 여기까지만(상반신만) 그려요.
다인_ 저는 진주에 있는 미술학원도 다녔어요. 근데 아직 코는 1자로 그리고, 손도 구체적으로 그리진 못해요.
작년 수업에서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렸던 적이 있다. 앞모습을 그리는 건 사실 어른들도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우리는 누군가를 그릴 때 닮았는지 아닌지를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데, 사람의 얼굴은 미묘하게 다르기만 해도 그 변화를 눈치채기 쉽다. 아이들은 다이아몬드를 여러 개 박고, 속눈썹을 길게 빼 만화처럼 눈을 그린다. 잘 그리고 싶은데, 예쁘게 그리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 그리면 뭔가 허전하고 어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정말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손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쫙 편 다섯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을 쥐거나 연필을 잡고 있는 손을 그리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관념을 물리치고, 눈앞의 것을 관찰해야 한다. 만나자마자 재잘재잘 그림 얘기부터 하는 것을 보니, 어려워도 꽤 강렬한 기억이었나 보다. 형식적으로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수줍은 재이가 첫 번째는 싫다고 한다. 냉큼 유이가 먼저 하겠다고 하자 다인이는 두 번째로 하겠단다.
유이_ 저는 ‘남유이’예요. 그림 그리는 거랑 노는 걸 좋아해요. 저의 꿈은 화가예요. 정말정말 싫어하는 음식은 가지랑 버섯이에요.
다인_ 저는 ‘이다인’이고요, 제가 싫어하는 것도 유이랑 똑같아요. 가지랑 버섯, 파프리카. 만들기랑 포장하는 걸 좋아해요.
재이_ 저는 도산초등학교 6학년 ‘남재이’예요. 미술이랑 빵 만드는 걸 좋아해요.
재이와 유이는 자매지간이다. 유이와 다인이는 올해로 벌써 8년째 단짝이다. 셋은 도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선생님의 직업이 기자인 줄 알았다고 한다. 1년 동안 산청에 사는 사람들을 취재한다고 답하자, 어디에서 볼 수 있냐고 묻는다. 신문에 기사를 쓰거나 TV에 나오는 기자도 있지만 선생님은 ‘인터넷 기자’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기록 활동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것도 기자의 몫이다.
왼쪽부터 재이, 유이, 다인
북적였던 카페가 한산해지자 프레드릭 사장님이 다가와 음료 주문을 받는다. 아이들에겐 물어볼 것도 없이 미리 만들어 놓은 초콜릿 음료를 주겠단다. 동동 떠 있는 얼음 아래 진한 초콜릿이 자리 잡고 있다. 휘휘 젓자 얼음이 청량한 소리를 낸다. 쪽쪽, 잘 섞인 초콜릿을 빨대로 빨아들이자, 나란히 앉은 세 친구의 표정이 한결 말쑥해진다. 곧 있을 여름방학처럼.
유이_ 7월 26일에 시작해요. 제 생일이기도 하고요.
다인_ 학교에 얘기하면 받고 싶은 선물을 줘요.
유이_ 저는 정했어요. 아이브 포토카드요. 스티커예요. 요새 제일 인기 많아요.
다인_ 저는 지금 후회해요. 4월에 생일이었거든요. 지금이라면 다른 걸 골랐을 거예요.
유이_ 방학 때는 돌봄 교실에 가요. 안 가는 날에는 놀고 먹고 자고 싸고 그림 그릴 거예요.
다인_ 저는 한 번도 시간표대로 지킨 적이 없어요. 자유시간만 지켜요. 공부하는 시간은 안 지켜요.
재이_ 저는 전에 사 놓았던 수학 문제집 풀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프로그램도 신청했어요. 진주에서 하는 작곡 수업, 그것도 신청해 놓았어요. 지금은 아직 대기 중이지만요. 그리고 책도 좀 많이 읽을 거예요.
6학년과 4학년의 차이일까, 타고난 성향이 다른 걸까. 척척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재이와 절대 계획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유이와 다인이의 굳은 결심이 상반돼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요즘 제일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데 답한다.
유이_ 그림 그리기랑 만들기요. 포토카드 포장하는 거요.
다인_ 얼마 전에 목화장터에서는 제가 만든 걸 팔아서 2천 원을 벌었어요.
재이_ 저도 컬러링 북 색칠하는 거요. 마스킹 테이프랑 스티커도 모아요. 연예인에도 좀 관심이 가요. 틱톡도 보고요. 아이브랑 블랙핑크랑 에스파 좋아해요.
다인_ 저는 여자 아이돌보다 남자 아이돌이 더 좋아요.
유이_ 다인이는 남자 춤을 더 잘 춰요. 2학기 때 학교에서 뮤직 콘테스트가 열려요.
재이_ 모둠을 정해서 발표해요. 전교생이 다 하는 거예요. 노래하기도 하고, 춤추기도 하고.
재이가 초콜릿을 한 모금 마시자 빵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최근에도 만든 것이 있을까.
재이_ 수플레 팬케이크요. 계란 흰자랑 노른자랑 분리해서 거품기로 푹신푹신하게 만들어요. 오늘은 구름빵 만들었어요. 제 꿈은 파티셰예요.
다인_ 저도 요리 좋아해요. 직업은 요리에 관련된 걸 할 거라서 지금 연습하고 있어요.
유이_ 저는 쓰레기 담당이예요. 그리고 언니가 만든 걸 제가 더 많이 먹을 때도 있어요.
‘산청의 어린이들’로 한데 묶어 인터뷰하고 있지만, 재이와 유이, 다인이는 각기 다른 우주를 가진 존재들이다. 어른들이 그렇듯이. 대화를 나눌수록 각자의 우주가 더욱 또렷해진다. 10년 넘게 살아온 나날 중 손꼽을 만큼 행복한 순간과 슬펐던 때를 물었다.
유이_ 태국이랑 싱가포르 갔을 때 좋았어요. 비행기 타는 거랑 자리에 달린 화면 보는 것도 좋고, 물놀이가 진짜 재밌었어요. 해외여행 간 건 다 좋았어요.
재이_ 12월에서 1월 사이에 한 달간 여행 갔었어요. 엄마는 휴가 내고 아빠도 카페 쉬고. 그때가 또 제 생일이에요. 저도 유이처럼 해외여행 갔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다인_ 예전에 엄마 손을 다쳐서 오랫동안 집에 없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한 번도 못 보고 영상통화만 했어요.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왔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지금 엄마가 해외에 갔는데 보고 싶어요.
유이_ 저희 엄마도 3주 동안 없었던 적 있는데 그때 진짜 슬펐어요. 하지만 울진 않았어요.
재이_ 제가 어렸을 때 필리핀에서 바나나 나무 쓰러진 거에 걸려 넘어졌었거든요. 피가 많이 났는데 엄청 아팠어요. 그때 울었어요.
재이와 유이의 아빠는 카페 프레드릭을 운영한다. 엄마는 간디마을학교의 선생님이다. 3주 동안 없었던 이유는 학교 이동학습 때문이리라. 마을학교 선생님인 다인이의 엄마도 그 프로그램 때문에 지금 필리핀에 있다. 마지막으로 어른이 되고 싶은 순간이 있는지 물었다.
다인_ 엄청나게 되고 싶어요! 나중에 유이랑 결혼할 거예요. 지금은 아니고요.
유이_ 지금은 단짝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재이_ 저는 딱히 되고 싶지도 않고, 싫지도 않아요.
유이_ 어른 되면 공부를 하나도 안 할 거예요. 지금은 배워놔야 해요. 뒤처지고 싶진 않아요.
재이_ 저는 중학교 선택하는 것 때문에 엄청나게 고민 중이에요. 예전에는 교복 예쁜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단성중학교랑 간디마을학교 중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프레드릭에서 보는 바깥 풍경
다인이가 좋아하는 색깔을 물어본다. 초록색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다인이도 녹차 아이스크림 색깔을 좋아한단다. 프레드릭은 최근 외벽을 진한 숲의 색으로, 내벽을 맑은 물의 색으로 단장했다. 창밖은 연둣빛부터 올리브색까지 갖가지 초록들의 향연이다. 재이, 유이, 다인이는 어떤 색일까? ‘산청’이라는 이름처럼, 푸르른 여름처럼 오늘도 어린이는 쑥쑥 자란다.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