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2018-2023 활동백서 기고문] 돌아보니,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가 있어 든든했다 / 윤주옥

2025-02-23
돌아보니,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가 있어 든든했다 

윤주옥 / 구례 지리산사람들 공동대표 



지리산의 가치는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첫 번째 국립공원이 되었다. 지리산자락 사람들에게 지리산이 품은 생태·문화·역사적 가치는 국립공원 이상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리산 때문에 내려왔다고, 지리산에 고맙다고, 지리산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리산은 이곳 사람들 삶의 중심이며 자부심이다.


‘지리산을 사랑하고 지리산이 지금 모습 그대로 지켜지길 바라는 사람들’(우리)은 지리산이 가지는 가치만큼 지리산은 보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리산의 가치를 활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토건개발업자)은 지리산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려 한다. 실상, 이 ‘돈’은 실재하기보다는 ‘가능성’으로 주장될 뿐이다. 토건개발업자들은 지리산을 ‘개발 유보지’-지리산국립공원은 뭇 생명의 마지막 피난처가 아니라 개발을 위해 남겨놓은 놓은 땅이다-라고 말한다.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해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속삭인다.

 

1988년 국가의 이름으로 토건개발업자들은 지리산국립공원을 동서로 단절하는 성삼재, 정령치도로를 건설하였다. 국가는 지리산은 국립‘공원’이니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거미줄처럼 많은 탐방로를 만들었다. 국가는 우리나라 국립공원 특성에 맞는 제도와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주민 민원 해소라는 명분으로 국립공원 경계를 이리저리 변경시키고 있다. 국가는 정책과 제도, 인식 등 모든 측면에서 안전하지 못한 지리산이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에 가장 적당한 곳이라고 했다. 2004년 시작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으로 지리산은 반달가슴곰 90여 마리가 사는 땅이 되었다.



지리산 개발 반대 운동은 한계에 봉착했다


지리산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포유류이며 천연기념물이고 환경부 지정 멸종야생생물 1급인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시작되자, 우리 중 일부는 지리산 개발사업은 이제 멈추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국립공원도, 백두대간도, 반달가슴곰도, 그 어떤 제도와 존재도 개발사업을 멈추게 하진 못한다는 게 매일매일 증명되고 있다. 우리는 개발사업의 뿌리는 토건개발업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내재한 욕망이며 자본주의적 축적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멈추지 않는 개발 욕망은 2024년 현재 지리산에 케이블카 3개, 산악열차 1개, 골프장 1개, 관통 도로 1개 등을 추진하도록 만들었다. 지리산만이 아니라 지리산이 위치한 5개 시군에서도 많은 개발사업이 계획되고, 실행되며, 모든 건강한 의제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개발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며 거론되는 ‘1조 4천억’, ‘3천억’, ‘약 1천억’은 주민들과 무관하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 결국 주민에게 쓰일 교육·복지예산이 개발사업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개발사업이 나까지는 아니어도 지역에는 이익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토건개발업자들은 이 ‘선한’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지리산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니라 주민들에게 돌아갈 ‘돈’이 토건개발업자와 일부 정치인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에 분노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모두가 저항할 거라 생각했다. 나는 2008년 지리산자락 구례로 내려왔고, 2010년부터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를 위한 현장 활동에 참여했고, 우리의 뜻은 완전무결하니 모두가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열성적으로, 헌신적으로 활동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의 활동은 확장되지 않았고, 점점 더 고립되는 느낌이다.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함께했던 시민사회단체조차 우리를 멀리서 쳐다본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좀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싶었으나 우리 앞에 떨어진 일을 허덕이며 쫓기면서 하루를 소비하고 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등장은 신선하고 낯설었다


그러한 때에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가 다른 언어-예를 들면 작은변화, 협력파트너 등-로 모습을 드러냈다. 독특하고 부드러웠으나 낯설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좀 별다른 단체가 하나 생겼나 보다. 우리와의 접점은 없을 거야’ 지리산자락에는 많은 단체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이벤트처럼 잠시 빛났으나 입에서만 회자되기를 반복하니 센터도 그런 단체이지 않겠냐는 마음이었나 보다. 


그런데 2018년 시작된 이 낯선 시도에, ‘어느 순간’ 우리도 참여하고 있었다. 센터는 다양한 네트워크와 지원, 워크숍 등으로 우리는 초대했다. 2020년 나에게도 초대장이 왔다. 지리산시민과학자가 무엇을 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발표해달라고 했다. 시위와 집회 현장에서 보던 얼굴이 아닌, 노란 머리에 빛나는 눈빛을 가진 청년이 앉아 있던 그날의 풍경은 여전히 선명하다. 이 낯선 사람들에게 나는 지리산시민과학자가 구상나무에 주목하는 이유,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구상나무 모니터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그날 다른 발표를 들으며, 이런 일들이 지리산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체 이 사업들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일까 어리둥절했다. 그날 구례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왔다. ‘구상나무 모니터링이 궁금하다고, 참여할 수 있냐고.’ 세상에나, 그렇게 간절했던 연결이 발표 한 번으로 이뤄지다니! 센터는 늘 연결하려 노력했고, 그 연결망 안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신경 썼다. 



확장 가능성이 실험되고 있다


센터의 협력파트너들은 대화하면서 일을 만들어간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일상 속 각자의 꿈을 소중히 생각했다. 해야 할 무엇을 말하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일을 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누구와 함께했을 때 효과가 있는지를 들으려고 했다. 구구절절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센터가 주관한 워크숍, 포럼, 활동가대회 등에 참여하면 모르는 사람이 50% 이상이며, 해보고 싶었던 어떤 일들이 실천되어 공유되니 신기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소개했고, 서로의 활동에 고개를 끄덕였고, 늘 활력이 넘쳤다. 


센터는 우리-구태여 지목하자면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지리산사람들 등-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자상함을 보여줬다. 발표하도록 해줬고, 센터의 작은변화 활동가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활력 넘치는 사람들은 지리산의 아픈 이야기, 개발사업의 문제점 등을 들으며 눈빛을 반짝였고, 눈시울을 붉혔다. 머리 속에만 존재했던 서로에 대한 지지가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센터와 지리산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의 지리산운동 <다시 지리산>을 시작하였다. <다시 지리산>은 개발반대 운동을 넘어서 삶 속의 활동, 물질문명에 저항하는 돌봄과 협력, 연대에 기반한 활동이다. 현장운동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목표로 지리산운동의 담론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그 안에 길이 있을 거라 확신하며, 꾸준히 가려고 한다. 그 길에 함께 한 센터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지리산권 시민사회 생태계가 풍성해지길 기대한다


센터 활동백서를 보면서, 나는 센터 활동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는 걸 알았다. 나의 의제에만 빠져있었기에 센터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쉬운 일이다. 지난 6년간 지리산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 센터와 관계 맺었던 분들의 노력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센터 활동의 가장 큰 성과물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지리산권 5개 시군에서 우리와 각자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 활동가들은 지리산의 큰 자산이 되었다. 이들 활동가들과 함께 지역마다 만들어진 공간은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마운 공간이다. 이들 활동가들이 관심 갖고 시작한 일들은 연기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니 이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 꾸준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한 아름다운재단은 대단한 곳이며, 감사에 감사를 더하게 된다.


그러면서 센터의 지난 6년이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주고, 각각의 나무에 이름표를 달고, 열매가 맺도록 정성을 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센터의 작은 나무들이 튼튼하고 풍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싶다. 


한편 6년이 지난 오늘, 센터는 ‘지리산권 스스로가 나서서 지리산 활동가를 지원하는 기금’(지리산활동가기금)을 만드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센터가 지리산 활동가들을 지지하고 후원했던 방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에, 그 방식의 연장선에서 ‘지리산활동가기금’을 조성하는 일에 나서려고 한다. 센터가 뿌린 큰 씨앗이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2018-2023 활동백서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만드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이하 지리산센터)는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경남 산청군, 경남 하동군, 경남 함양군의 시민사회와 함께 지역에 필요한 작은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해왔습니다. 2023년을 끝으로 아름다운재단의 지리산센터 지원이 종료됨에 따라 지난 6년간 지리산센터가 진행해 온 다양한 활동을 돌아보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백서를 제작했습니다.


본 활동백서를 통해 지난 6년간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를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민설민영 지원조직인 지리산센터의 활동 경험이 지리산권 및 전국 시민사회 생태계 전반에 의미있는 사례가 되길 바랍니다.



🚩활동백서 PDF 내려받기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