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구례에 자원 순환 공간이 생겼다! 글 / 문홍현경 “아, 쓰레기!” 사람한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이 많아서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얼마 전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에 대한 사용 규제 계획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지요. 이 규제 정책이 시작되면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량이라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그나마 기대하였는데. 환경부는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들고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아, 글 시작부터 제가 열을 올렸네요. 쓰레기가 많다고 한숨이 나오는 까닭은 단지 일회용품 소비 때문만은 아닙니다. 너무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여러 번 쓸 수 있는, 심지어 평생 쓸 수 있는 물품들도 마치 일회용품처럼 금방 쓰레기가 되니 말이지요.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아니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자원이 순환되지 못하는 이 소비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우리 지역에 다품종 소량 생산 먹을거리 자급 공동체가 생기고, 지역 생산물을 지역에서 사고파는 구조가 정착되며, 나아가 소유가 아닌 나눔과 공유로 자원을 순환하는 관계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품어 왔지요. 다행스럽게도 구례에서는 지산지소 농민 직거래장터를 열기 위한 움직임으로 ‘두루다살림장’이 한 달에 두 번씩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또 반가운 소식이 왔습니다. “두루다살림 순환 공간 함께 준비하실 분을 모십니다!” 순환 공간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 “일회성 아나바다장터가 아닌 상시적인 순환공간이 필요하셨나요? 아름다운 가게 비슷한 것도 왜 구례에는 없냐 하고 답답함을 느끼셨나요? 죄책감 없이 나를 패션피플로 만들어 줄 마법의 공유 옷장, 소품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 공유 재봉틀로 내 손으로 수선하고 새활용할 수 있는 곳! 우리의 꿈을 펼칠 순환 공간, 함께 만들어요~”
두루다살림장 단체 톡방에 주리 님이 올린 글이었습니다. 구례기후위기행동 대표이면서 올해 토지초 학부모회장인 주리 님은 안 그래도 바쁠 텐데 엄청난 일을 벌였어요. 2023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개별활동으로 ‘구례 자원 순환 공간 만들기’를 시작한 거예요. 브라보!
순환 공간 <선물>을 안내하는 간판이 <느긋한쌀빵> 옆에 세워져 있다. <느긋한쌀빵> 옆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아림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탄생한 <선물>의 간판. 주리 님이 꽂은 깃발 곁에 들, 아림, 은경, 정인, 정훈, 화영 여섯 명이 모였어요. 구례 <느긋한쌀빵>이 2층 공간을 내어 준 덕에 공간 문제를 해결한 이들은 어느 틈에 유휴 공간을 자원 순환 공간으로 변화시켜 갔지요. 가끔 톡방에는 이런 글들이 올라왔어요. “쓰지 않는 행거, 옷걸이, 선반(진열대) 있는 분 계신가요? (아잉)” “혹시 안 쓰는 대형 폐비닐 혹은 방수 천막 갖고 계신 분 있나요? ” “자원 순환 공간에 필요한 칠판페인트 기증받아요.” 공간에 필요한 물건들을 할 수 있으면 사지 않고 기증받으려는 노력이었어요.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걸까요? 은경 님은 <선물>을 함께 만들게 된 덕에, 쓰레기 시대를 살아가느라 생겼던 마음의 빚을 조금 줄이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은경 : “모두가 너무 많이 가지고 살아요. 사실 꼭 필요한 건 많지 않은데. 지금은 물건을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맘이 불편한 시대예요. 정말 못 쓰는 물건이 아니라면 고쳐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쓰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겠다,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선물처럼 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활동을 시작했어요. 순환 공간 <선물>이 만들어져서 마음의 부채감을 조금은 덜어 낼 수 있었어요. 수선 도구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수선 활동도 하면서 공간에 활기가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인 님은 <선물>을 만드는 일이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좋은 일이라고 했어요. 정인 : “과잉소비, 과잉생산으로 인한 불필요한 자원이 쓰레기로 넘쳐 지구의 피로도가 한계에 도달했어요. 지구가 아프니까 나도 아프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습관을 확산시켜 있는 그대로 자원을 순환해 나가는 활동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나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뎠어요.” 모두가 선물을 주고받는 사회를 꿈꾸며 사실 저는 자원 순환 공간의 역할과 중요성에 무척 공감하여 주리의 깃발 아래 모여 일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쥐고 있던 다른 일들로 여력이 없었어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순환 공간 꾸리기 모임에 두 번밖에 나가지 못하고는 작별 인사를 날려야 했습니다. 함께할 손이 부족할까 봐 모임에 나갔던 거였는데, 믿을 수 있는 일곱 사람이 있어서 저는 안심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먼저 끄러 가기로 했지요. 아무 도움도 못 되고 나오기가 미안했어요. 그때 마침 주리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선물>에 대나무 공예 수업이 열린 날 모습. 공간 입구에 붙은 <선물> 안내문을 읽어 보시면 이 순환 공간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우리 공간에 대한 설명문을 하나만 써 주세요.” 그리하여 저는 순환 공간 준비팀 회의에서 주고받은 생각과 각자 철학을 모아 간략하게 설명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글이 바로 다음 글입니다. 천천히 함께 읽고 싶어서 공유해 봅니다. 순환 공간 <선물>은 ― 넘쳐나는 쓰레기로 몸살 앓는 지구의 편에 서서 과도한 소비를 줄이고 필요를 공유로 해결하려는 자원 순환 공간입니다. ― 아울러 ‘지금 충분함’의 정서를 퍼뜨려 물건도 사람도 그 어떤 생명도 착취되지 않게 나눔과 되살림을 기본값으로 바꿔 놓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지역민이 에너지에 덜 의존하여 재사용, 재활용, 기부, 아나바다 같은 실천에 함께하도록 돕겠습니다. ― <선물>은 내게 정든 물건을 누군가에게 보내 더 알맞게 쓰이도록 물품을 기부받습니다. 물품의 새 벗이 되고픈 이는 꼬리표에 적힌 값을 내고 물품을 가져갈 수 있는데, 이는 물품값이라기보다는 정든 물품을 내어 준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자, <선물>이 굴러가도록 돕는 종잣돈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 <선물>에서 나온 수익금과 기부금은 잘 모아서 생태전환과 자원순환을 위해 필요한 곳에 나눕니다. 또 우리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 조직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할 곳에 버팀목으로 쓰입니다. 대가보다는 변화를 바라는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물품을 기부(선물)하는 방법 ― <선물>에서 마련한 ‘기부 품목 기준’을 보고 기부할 수 있는 물품인지 확인해 주세요. ― 기부할 물건을 <선물>에 들고 와 꼬리표를 써 달아 주세요. ― 꼬리표에는 ‘선물하는 이 이름’(기부자 이름이나 별칭), ‘선물하는 물건 소개’(장점, 나와 함께한 사연, 새 벗에게 바라는 점 등)을 써 주세요. (예문이 있으니 보시고 편하게 남겨 주시면 돼요. 부담 갖지 마세요.) ― 가격은 <선물>의 기준에 따라 매겨집니다.
기부된 물품의 새 벗이 되는 방법 ― 내게 꼭 필요한 물품을 만났다면 꼬리표를 잘 읽어 주세요. ― 꼬리표 뒷면에 ‘새 벗의 이름’(기부받는 이 이름이나 별칭), ‘기부자에게 남기고픈 말’을 써서 <선물> 꼬리표 병에 담아 주세요. (예문이 있으니 보시고 편하게 남겨 주시면 돼요. 부담 갖지 마세요.) ― 꼬리표에 쓰여 있는 값을 내고 물품을 데려가세요.
‘필요해요’ 게시판. 필요한 물건이 <선물>에 없을 때 게시판에 써 둘 수 있다. (사진 이화영) 공간 이름을 <선물>이라고 지은 것처럼, 기증자는 대가 없이 선물하듯 물품을 기증해요. <선물>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물건을 다른 이에게 선물할 기회를 주는 공간이지요. 필요한 물건이 있는 사람은 마트에서 새로 사기보다는 <선물>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찾는 물건이 없다면 ‘필요해요’ 게시판에 받고 싶은 선물을 써 둘 수도 있지요. 그러면 지나가던 이가 게시판 글을 보고 나에겐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을 <선물>에 기증할 수 있어요. 누구나 옷을 주고받고, 고쳐 입는 모습이 일상이 되면 ‘옷이 사고 싶다’는 필요는 덜 생기게 될 거예요. 아는 사람이 입은 옷이 맘에 들면 내가 가진 예쁜 옷과 바꿔 입을 수도 있고, <선물>에 와서 나눔 옷을 살 수 있겠지요. 그러면 누가 더 멋지게 입었는지 잘나게 보이는지 생각할 필요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우리 둘레에 물건을 잘 고치는 사람, 옷을 잘 수선해 입는 사람, 뜨개질을 잘하는 사람, 필요한 걸 뚝딱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덜 생기게 될 거예요. 필요한 건 <선물>에서 찾거나, <선물>에 와서 고쳐 쓰거나, 함께 만들어 보자고 손을 내밀 수 있어요. 어쩌면 <선물>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이 ‘필요성’ 자체를 상실하는 마법을 경험할지도 몰라요. <선물>을 이용하고 싶다면 <선물>은 공간에서 계속 자원을 순환시키고 활동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부받는 날을 정하고 그 외 날엔 운영자 없이 무인 판매대를 두어 운영해요. 또 기부 품목 기준에 맞는 물품만 기부받아요.
<선물>에 물건을 기부할 때와 살 때 쓰는 ‘꼬리표’. (사진 이화영) 선물에서 물건을 사고 싶은 분은 언제든 와서 물품을 살 수 있어요. 다만 위 안내 글에 나와 있듯 ‘꼬리표’를 써서 내야 해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마트와 달리 <선물>에서는 물품을 기부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또 기부된 물건을 정성스럽게 쓰겠다는 마음을 새길 수 있답니다. <선물>에 물품을 기부하고픈 사람은 달마다 첫째 셋째 토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선물>로 오세요. 기부받는 날이 정해져 있다 보니 주리 님은 혹시라도 누군가가 헛걸음을 하게 될까 봐 걱정했어요. “공간에 두고 가신다는 분도 계신데 공간이 작아 다 받아 둘 수는 없거든요. 헛걸음하시지 않게 기부받는 날을 반복해서 알려드리고 있어요.”
그러니 기부하고픈 분은 꼭 날짜를 확인하고 와 주세요. 12월부터 <선물>에선 수선하는 날도 열린다고 해요.
공예, 수선, 수리 수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순환 공간 <선물>. 주리 : “서로 알고 있는 수선법을 공유하고 상의하면서 편안하게 수선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선물에 드나들면서 우리의 일상에 공유, 수리, 수선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랍니다.” 화영 : “<선물>은 소비를 줄이고 순환하거나 수선해서 사용하는 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여 만들었는데, 만들기까지는 많은 분의 수고로 어렵지 않았어요. 어떻게 유지할지는 걱정이 됩니다. 쓰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 가면 어쩌지, 물품을 받고 판매를 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을까 등 고민이 되어요. 우선은 모여서 뜨개질도 하고 옷이나 물품 수선도 같이하면서 방향을 차츰 잡아 가면 어떨까 해요.” 화영 님의 고민처럼,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순환 공간’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수리하고 수선해 나가는 날이 늘고, <선물>에 온기가 채워지는 사이 십시일반 손이 더해지면서 그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쓰레기 없는 삶, 더없이 충분한 삶, 고쳐 쓰고 나눠 쓰며 비교하지 않는 삶’도 가까워져 있겠지요. (끝으로, <선물>을 준비하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드디어, 구례에 자원 순환 공간이 생겼다!
글 / 문홍현경
“아, 쓰레기!”
사람한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이 많아서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얼마 전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에 대한 사용 규제 계획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지요. 이 규제 정책이 시작되면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량이라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그나마 기대하였는데. 환경부는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들고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아, 글 시작부터 제가 열을 올렸네요. 쓰레기가 많다고 한숨이 나오는 까닭은 단지 일회용품 소비 때문만은 아닙니다. 너무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여러 번 쓸 수 있는, 심지어 평생 쓸 수 있는 물품들도 마치 일회용품처럼 금방 쓰레기가 되니 말이지요.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아니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자원이 순환되지 못하는 이 소비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우리 지역에 다품종 소량 생산 먹을거리 자급 공동체가 생기고, 지역 생산물을 지역에서 사고파는 구조가 정착되며, 나아가 소유가 아닌 나눔과 공유로 자원을 순환하는 관계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품어 왔지요.
다행스럽게도 구례에서는 지산지소 농민 직거래장터를 열기 위한 움직임으로 ‘두루다살림장’이 한 달에 두 번씩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또 반가운 소식이 왔습니다.
“두루다살림 순환 공간 함께 준비하실 분을 모십니다!”
순환 공간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
두루다살림장 단체 톡방에 주리 님이 올린 글이었습니다. 구례기후위기행동 대표이면서 올해 토지초 학부모회장인 주리 님은 안 그래도 바쁠 텐데 엄청난 일을 벌였어요. 2023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개별활동으로 ‘구례 자원 순환 공간 만들기’를 시작한 거예요. 브라보!
순환 공간 <선물>을 안내하는 간판이 <느긋한쌀빵> 옆에 세워져 있다. <느긋한쌀빵> 옆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아림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탄생한 <선물>의 간판.
주리 님이 꽂은 깃발 곁에 들, 아림, 은경, 정인, 정훈, 화영 여섯 명이 모였어요. 구례 <느긋한쌀빵>이 2층 공간을 내어 준 덕에 공간 문제를 해결한 이들은 어느 틈에 유휴 공간을 자원 순환 공간으로 변화시켜 갔지요. 가끔 톡방에는 이런 글들이 올라왔어요.
“쓰지 않는 행거, 옷걸이, 선반(진열대) 있는 분 계신가요? (아잉)”
“혹시 안 쓰는 대형 폐비닐 혹은 방수 천막 갖고 계신 분 있나요? ”
“자원 순환 공간에 필요한 칠판페인트 기증받아요.”
공간에 필요한 물건들을 할 수 있으면 사지 않고 기증받으려는 노력이었어요.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걸까요?
은경 님은 <선물>을 함께 만들게 된 덕에, 쓰레기 시대를 살아가느라 생겼던 마음의 빚을 조금 줄이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은경 : “모두가 너무 많이 가지고 살아요. 사실 꼭 필요한 건 많지 않은데. 지금은 물건을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맘이 불편한 시대예요. 정말 못 쓰는 물건이 아니라면 고쳐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쓰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겠다,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선물처럼 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활동을 시작했어요. 순환 공간 <선물>이 만들어져서 마음의 부채감을 조금은 덜어 낼 수 있었어요. 수선 도구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수선 활동도 하면서 공간에 활기가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인 님은 <선물>을 만드는 일이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좋은 일이라고 했어요.
정인 : “과잉소비, 과잉생산으로 인한 불필요한 자원이 쓰레기로 넘쳐 지구의 피로도가 한계에 도달했어요. 지구가 아프니까 나도 아프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습관을 확산시켜 있는 그대로 자원을 순환해 나가는 활동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나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뎠어요.”
모두가 선물을 주고받는 사회를 꿈꾸며
사실 저는 자원 순환 공간의 역할과 중요성에 무척 공감하여 주리의 깃발 아래 모여 일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쥐고 있던 다른 일들로 여력이 없었어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순환 공간 꾸리기 모임에 두 번밖에 나가지 못하고는 작별 인사를 날려야 했습니다.
함께할 손이 부족할까 봐 모임에 나갔던 거였는데, 믿을 수 있는 일곱 사람이 있어서 저는 안심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먼저 끄러 가기로 했지요. 아무 도움도 못 되고 나오기가 미안했어요. 그때 마침 주리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선물>에 대나무 공예 수업이 열린 날 모습. 공간 입구에 붙은 <선물> 안내문을 읽어 보시면 이 순환 공간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우리 공간에 대한 설명문을 하나만 써 주세요.”
그리하여 저는 순환 공간 준비팀 회의에서 주고받은 생각과 각자 철학을 모아 간략하게 설명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글이 바로 다음 글입니다. 천천히 함께 읽고 싶어서 공유해 봅니다.
‘필요해요’ 게시판. 필요한 물건이 <선물>에 없을 때 게시판에 써 둘 수 있다. (사진 이화영)
공간 이름을 <선물>이라고 지은 것처럼, 기증자는 대가 없이 선물하듯 물품을 기증해요. <선물>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물건을 다른 이에게 선물할 기회를 주는 공간이지요.
필요한 물건이 있는 사람은 마트에서 새로 사기보다는 <선물>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찾는 물건이 없다면 ‘필요해요’ 게시판에 받고 싶은 선물을 써 둘 수도 있지요. 그러면 지나가던 이가 게시판 글을 보고 나에겐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을 <선물>에 기증할 수 있어요.
누구나 옷을 주고받고, 고쳐 입는 모습이 일상이 되면 ‘옷이 사고 싶다’는 필요는 덜 생기게 될 거예요. 아는 사람이 입은 옷이 맘에 들면 내가 가진 예쁜 옷과 바꿔 입을 수도 있고, <선물>에 와서 나눔 옷을 살 수 있겠지요. 그러면 누가 더 멋지게 입었는지 잘나게 보이는지 생각할 필요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우리 둘레에 물건을 잘 고치는 사람, 옷을 잘 수선해 입는 사람, 뜨개질을 잘하는 사람, 필요한 걸 뚝딱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덜 생기게 될 거예요. 필요한 건 <선물>에서 찾거나, <선물>에 와서 고쳐 쓰거나, 함께 만들어 보자고 손을 내밀 수 있어요. 어쩌면 <선물>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이 ‘필요성’ 자체를 상실하는 마법을 경험할지도 몰라요.
<선물>을 이용하고 싶다면
<선물>은 공간에서 계속 자원을 순환시키고 활동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부받는 날을 정하고 그 외 날엔 운영자 없이 무인 판매대를 두어 운영해요. 또 기부 품목 기준에 맞는 물품만 기부받아요.
<선물>에 물건을 기부할 때와 살 때 쓰는 ‘꼬리표’. (사진 이화영)
선물에서 물건을 사고 싶은 분은 언제든 와서 물품을 살 수 있어요. 다만 위 안내 글에 나와 있듯 ‘꼬리표’를 써서 내야 해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마트와 달리 <선물>에서는 물품을 기부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또 기부된 물건을 정성스럽게 쓰겠다는 마음을 새길 수 있답니다.
<선물>에 물품을 기부하고픈 사람은 달마다 첫째 셋째 토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선물>로 오세요. 기부받는 날이 정해져 있다 보니 주리 님은 혹시라도 누군가가 헛걸음을 하게 될까 봐 걱정했어요.
그러니 기부하고픈 분은 꼭 날짜를 확인하고 와 주세요.
12월부터 <선물>에선 수선하는 날도 열린다고 해요.
공예, 수선, 수리 수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순환 공간 <선물>.
주리 : “서로 알고 있는 수선법을 공유하고 상의하면서 편안하게 수선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선물에 드나들면서 우리의 일상에 공유, 수리, 수선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랍니다.”
화영 : “<선물>은 소비를 줄이고 순환하거나 수선해서 사용하는 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여 만들었는데, 만들기까지는 많은 분의 수고로 어렵지 않았어요. 어떻게 유지할지는 걱정이 됩니다. 쓰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 가면 어쩌지, 물품을 받고 판매를 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을까 등 고민이 되어요. 우선은 모여서 뜨개질도 하고 옷이나 물품 수선도 같이하면서 방향을 차츰 잡아 가면 어떨까 해요.”
화영 님의 고민처럼,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순환 공간’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수리하고 수선해 나가는 날이 늘고, <선물>에 온기가 채워지는 사이 십시일반 손이 더해지면서 그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쓰레기 없는 삶, 더없이 충분한 삶, 고쳐 쓰고 나눠 쓰며 비교하지 않는 삶’도 가까워져 있겠지요. (끝으로, <선물>을 준비하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글 쓴 사람. 문홍현경
명랑해지고 싶은 기후활동가, <벗자편지> 함께지은이, 독립출판 니은기역 이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