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기억이고, 다독임이고, 저항이다 2023 구례 기록 활동을 마치며 글 / 문홍현경 뭉치면 뭉개고, 흩어지면 뭉개진다 지난 한 해 기록활동가로서 남긴 기록을 돌아봤다. 개별 기록 활동만 10편이었다. 보통 원고지 50매로 A4용지에 얹히면 대여섯 장 정도였다. 한 달에 한 번만 쓰는 글이니 좀 더 깊이 전하고 싶은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썼다가 이렇게 길면 안 읽겠지, 하는 마음에 다시 줄여서 맞춘 분량이었다. 사이사이 사진도 넣고, 작은 제목도 달아서 읽는 이들이 끝까지 글을 벗어나지 않게 하려고 했다. 이렇게라도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읽어 주기를 바랐다. 지금 구례, 넓게 보면 지리산 자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눈감지 말아 달라는 호소였다. 23년 구례 기록실 글 묶음에는 [뭉치고 뭉개기]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구례에서 일어날 아름다운 작은 변화를 위해서는 뭉치고, 구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더러운 일들은 뭉갤 거거든요.”라며 이런 꼬리표를 단 까닭을 4월호에 밝혀 두었는데, 지난 글을 돌아보니 구례 사람들은 잘 뭉치고 잘 뭉개 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마음 무겁고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지만, 다음 세대가 갈 길을 닦는 일이 어떻게 쉽겠나 하고 생각하면 그리 슬픈 일만은 아니다. 23년 구례를 달군 돌덩이는? 지난해 구례 기록 가운데 가장 큰 줄기는 ‘숲 지키기’였다. 23년이 시작할 무렵 터진 지리산골프장 논란과 소만에서 망종 사이 터진 양수댐발전소 논란이 구례를 가장 뜨겁게 달군 두 사건이었으니, 생명의 편에 서고 싶은 사람들은 숲을 지키려는 행동에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4월호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골프채는 두고 오세요 : 골프장 개발 위협에 시달리는 지리산 기슭을 다녀와서”와 9월호 “내 돈 내서 에너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 기후위기 시대, 양수댐 발전소 계획에 대응하는 구례 시민들 이야기”로 지리산골프장과 양수댐발전소 관련 활동을 굵직하게 전했다. 또 6월호 “억울하고 화났다가 슬프고 안타까운 활동가를 위해 : 터전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 돌보기”와 12월호 “용서하는 절기 동지에 팥죽은 드셨나이까 : 지리산사람들 동지 모임에 다녀와서 쓰는 글”에서는 막개발에 맞서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중심으로 두 사건을 다시 들춰냈다. 이와 맞닿은 결로 7월호 “언제까지 흙 파서 장사하나요?”에서는 토건형 지역개발론을 벗어나 대안으로 눈을 돌리자는 이야기를 담았다. 장터, 텃밭, 길거리에서 부는 변화 숲을 발가벗겨 ‘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꼬집는 기록과 더불어 함께 전하고자 했던 건 대안으로 삼을 만한 구례 시민 사회 활동들이었다. 5월호 “만족할 줄 아는 당신이 바로 아나키스트”에서는 지역민이 만들어 가는 직거래 장터를 통해, 8월호 “지리산 귀촌 청년들이 ‘자리’ 찾아 나눈 이야기”에서는 시골에 내려와 살려는 청년들의 생명 감수성을 통해서, 10월호 “생태 텃밭 교육을 가꾸는 사람들”에서는 두 해 동안 이루어진 구례 생태 텃밭 교육을 통해, 그리고 11월호 “드디어, 구례에 자원 순환 공간이 생겼다!”에서는 되살리고 나누는 자원 순환 문화를 통해 막개발에 맞선 대안과 희망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윤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시민들의 작은 활동이 대안 경제, 대안 문화가 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답게 살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골프장과 양수댐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게 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세 해째 이어온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 기후행동’은 3월호 첫 기사로 실어 보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기획부터 실행까지 함께해 온 활동이다 보니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과 작지만 분명히 보이는 변화가 인상 깊었기에 이 이야기로 구례 기록실 물꼬를 트게 됐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본 아이들은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하소연부터 담배 안 피울 거라는 예상치 못한 금연 의지까지 들려줬고, 내 작은 실천이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람을 나누었다. 지역 장터에서, 텃밭에서, 거리에서 만들어진 이 변화들이 구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거라고 믿는다. 마음을 나누다 보면 변화가 오겠지 “성격도 다 다르고, 생김새도 다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종도 다른 이들이 모여 펼치는 장. 뽐낼 일도 없고 치장할 일도 없다. 제 색깔대로 와서 쉬다가, 먹다가, 놀다가, 팔다가 안녕 다음에 또 만나 하고 가면 된다. 싸고, 크고, 윤기 나는 것만 찾기보다 얼굴 아는 생산자들의 수고에 고마워하며 제대로 값을 내면 된다. 함께 사는 동식물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런 마음들이 사그라지지 않게 지역 장터는 계속 열려야 한다. 고르게 풍요로운 사회를 향해.” 5월호를 마무리하며 쓴 글이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골프장과 양수댐이 지역을 살릴 거라고 믿고, 누군가는 숲과 강을 그대로 두어야 결국 다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믿음이 옳고 어떤 믿음이 그르다고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지난 한 해 구례를 기록하며 전하고 싶었던 건, 살리고 싶은 대상을 좀 더 넓혀 보자는 마음이었다. 지키고 싶은 대상을 나와 내 가족에서 옆집, 옆 마을, 옆 사람, 곁 숲과 강, 그리고 앞으로 이 터전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들로 넓혀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당장 내 주머니를 채우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욕심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그대로 두어야 할 것들까지 갈아엎으면서 주머니를 채우는 일은 그만하면 좋겠다. 지역 장터에서, 텃밭에서, 거리에서 구례 사람들이 만들어 온 변화는 이런 마음이다. 내 주머니 사정을 위해 남의 집을 부수지는 말아야 한다는 양심, 누군가의 터전을 부수면 결국 나도 살지 못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 크든 작든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 이런 마음들이 결국 지난 한 해 ‘숲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모였다. 이런 마음들이 사그라지지 않게 남기고 전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저항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지작변 기록 활동 덕분에 지난 한 해 동안 만난 사람이 여럿이다. 처음 만난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숲이나 장터, 텃밭 등지에서 오다가다 만난 아는 얼굴들이다. 구례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도록 품을 들여 온 이들을 기록에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기록은 관계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이와 이런 시간에 함께했었지, 하며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2023년 구례 기록실에 내가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조금이라도 기록해 둔 이야기들이 있어 또 다행이다. 우리가 변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해 온 시간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 우리는 이 시간을 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빛이 바랠지라도, 영영 잊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
기록은 기억이고, 다독임이고, 저항이다
2023 구례 기록 활동을 마치며
글 / 문홍현경
뭉치면 뭉개고, 흩어지면 뭉개진다
지난 한 해 기록활동가로서 남긴 기록을 돌아봤다. 개별 기록 활동만 10편이었다. 보통 원고지 50매로 A4용지에 얹히면 대여섯 장 정도였다. 한 달에 한 번만 쓰는 글이니 좀 더 깊이 전하고 싶은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썼다가 이렇게 길면 안 읽겠지, 하는 마음에 다시 줄여서 맞춘 분량이었다. 사이사이 사진도 넣고, 작은 제목도 달아서 읽는 이들이 끝까지 글을 벗어나지 않게 하려고 했다. 이렇게라도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읽어 주기를 바랐다. 지금 구례, 넓게 보면 지리산 자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눈감지 말아 달라는 호소였다.
23년 구례 기록실 글 묶음에는 [뭉치고 뭉개기]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구례에서 일어날 아름다운 작은 변화를 위해서는 뭉치고, 구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더러운 일들은 뭉갤 거거든요.”라며 이런 꼬리표를 단 까닭을 4월호에 밝혀 두었는데, 지난 글을 돌아보니 구례 사람들은 잘 뭉치고 잘 뭉개 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마음 무겁고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지만, 다음 세대가 갈 길을 닦는 일이 어떻게 쉽겠나 하고 생각하면 그리 슬픈 일만은 아니다.
23년 구례를 달군 돌덩이는?
지난해 구례 기록 가운데 가장 큰 줄기는 ‘숲 지키기’였다. 23년이 시작할 무렵 터진 지리산골프장 논란과 소만에서 망종 사이 터진 양수댐발전소 논란이 구례를 가장 뜨겁게 달군 두 사건이었으니, 생명의 편에 서고 싶은 사람들은 숲을 지키려는 행동에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4월호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골프채는 두고 오세요 : 골프장 개발 위협에 시달리는 지리산 기슭을 다녀와서”와 9월호 “내 돈 내서 에너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 기후위기 시대, 양수댐 발전소 계획에 대응하는 구례 시민들 이야기”로 지리산골프장과 양수댐발전소 관련 활동을 굵직하게 전했다.
또 6월호 “억울하고 화났다가 슬프고 안타까운 활동가를 위해 : 터전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 돌보기”와 12월호 “용서하는 절기 동지에 팥죽은 드셨나이까 : 지리산사람들 동지 모임에 다녀와서 쓰는 글”에서는 막개발에 맞서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중심으로 두 사건을 다시 들춰냈다. 이와 맞닿은 결로 7월호 “언제까지 흙 파서 장사하나요?”에서는 토건형 지역개발론을 벗어나 대안으로 눈을 돌리자는 이야기를 담았다.
장터, 텃밭, 길거리에서 부는 변화
숲을 발가벗겨 ‘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꼬집는 기록과 더불어 함께 전하고자 했던 건 대안으로 삼을 만한 구례 시민 사회 활동들이었다. 5월호 “만족할 줄 아는 당신이 바로 아나키스트”에서는 지역민이 만들어 가는 직거래 장터를 통해, 8월호 “지리산 귀촌 청년들이 ‘자리’ 찾아 나눈 이야기”에서는 시골에 내려와 살려는 청년들의 생명 감수성을 통해서, 10월호 “생태 텃밭 교육을 가꾸는 사람들”에서는 두 해 동안 이루어진 구례 생태 텃밭 교육을 통해, 그리고 11월호 “드디어, 구례에 자원 순환 공간이 생겼다!”에서는 되살리고 나누는 자원 순환 문화를 통해 막개발에 맞선 대안과 희망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윤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시민들의 작은 활동이 대안 경제, 대안 문화가 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답게 살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골프장과 양수댐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게 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세 해째 이어온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 기후행동’은 3월호 첫 기사로 실어 보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기획부터 실행까지 함께해 온 활동이다 보니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과 작지만 분명히 보이는 변화가 인상 깊었기에 이 이야기로 구례 기록실 물꼬를 트게 됐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본 아이들은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하소연부터 담배 안 피울 거라는 예상치 못한 금연 의지까지 들려줬고, 내 작은 실천이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람을 나누었다.
지역 장터에서, 텃밭에서, 거리에서 만들어진 이 변화들이 구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거라고 믿는다.
마음을 나누다 보면 변화가 오겠지
“성격도 다 다르고, 생김새도 다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종도 다른 이들이 모여 펼치는 장. 뽐낼 일도 없고 치장할 일도 없다. 제 색깔대로 와서 쉬다가, 먹다가, 놀다가, 팔다가 안녕 다음에 또 만나 하고 가면 된다. 싸고, 크고, 윤기 나는 것만 찾기보다 얼굴 아는 생산자들의 수고에 고마워하며 제대로 값을 내면 된다. 함께 사는 동식물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런 마음들이 사그라지지 않게 지역 장터는 계속 열려야 한다. 고르게 풍요로운 사회를 향해.”
5월호를 마무리하며 쓴 글이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골프장과 양수댐이 지역을 살릴 거라고 믿고, 누군가는 숲과 강을 그대로 두어야 결국 다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믿음이 옳고 어떤 믿음이 그르다고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지난 한 해 구례를 기록하며 전하고 싶었던 건, 살리고 싶은 대상을 좀 더 넓혀 보자는 마음이었다. 지키고 싶은 대상을 나와 내 가족에서 옆집, 옆 마을, 옆 사람, 곁 숲과 강, 그리고 앞으로 이 터전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들로 넓혀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당장 내 주머니를 채우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욕심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그대로 두어야 할 것들까지 갈아엎으면서 주머니를 채우는 일은 그만하면 좋겠다. 지역 장터에서, 텃밭에서, 거리에서 구례 사람들이 만들어 온 변화는 이런 마음이다. 내 주머니 사정을 위해 남의 집을 부수지는 말아야 한다는 양심, 누군가의 터전을 부수면 결국 나도 살지 못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 크든 작든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 이런 마음들이 결국 지난 한 해 ‘숲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모였다. 이런 마음들이 사그라지지 않게 남기고 전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저항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지작변 기록 활동 덕분에 지난 한 해 동안 만난 사람이 여럿이다. 처음 만난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숲이나 장터, 텃밭 등지에서 오다가다 만난 아는 얼굴들이다. 구례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도록 품을 들여 온 이들을 기록에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기록은 관계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이와 이런 시간에 함께했었지, 하며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2023년 구례 기록실에 내가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조금이라도 기록해 둔 이야기들이 있어 또 다행이다. 우리가 변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해 온 시간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 우리는 이 시간을 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빛이 바랠지라도, 영영 잊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글 쓴 사람. 문홍현경
명랑해지고 싶은 기후활동가, <벗자편지> 함께지은이, 독립출판 니은기역 이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