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민 단체들의 특별한 장날 이야기 남원 쓰레기 없는 시민장터 글 / 김양오 사진 / 김영기 “부웅~~~” 긴 나발 소리가 예가람길을 훑으며 새파란 가을 하늘로 날아 올랐다. 뒤이어 가슴팍을 째고 들어오는 강렬한 태평소 소리. 그리고, “갠지갠지갠지갠지” 상쇠가 두드리는 꽹과리에 맞춰 장고, 북, 징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장마당 속으로 파고든다. 알록달록 풍물 복색을 갖춰 입은 정식 풍물패가 아닌 즉석에서 모인 일반 시민들이다.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 사러온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도 멈춰서 손뼉을 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예가람길에 처음으로 장마당이 펼쳐졌다.
긴 나발로 장터 시작을 알리고 있다 한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남원의 큰 번화가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적막한 길. 일본 제국주의가 없애버린 남원성의 한 복판 그것도 남원도호부 동헌의 정문 앞길이라 그야말로 남원의 핵심 거리였던 예가람길. 쉽게 말하자면 춘향이를 사랑했던 남원 사또의 아들 이몽룡이 놀던 길이다. 그 거리에 다시 숨을 불어넣자고 몇몇 시민들과 상인들이 ‘예가람 문화 사랑방’이라는 프로젝트를 세 달 동안 진행해 왔고 마지막 시간으로 문화장터를 마련한 것이다.
하늘에서 본 예가람길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운이 좋게도 장터를 함께 할 큰 ‘세력’을 만나 판이 매우 커졌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올 해 쌈지돈을 지원 받은 9개 단체들이다. 9개 단체가 한 해 동안 각자 활동을 하고 마지막에 ‘함께 사업’을 하기로 했는데 논의 끝에 ‘문화사랑방’과 함께 예가람길에서 장터를 열기로 한 것. 그게 다가 아니다. 좋은 뜻이 있는 곳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법. 이런 좋은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리산 산내면에서 수년 째 ‘살래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네다섯 팀이 온다더니 자그마치 열 팀이 훨씬 넘는 판매자와 유명한 놀이패 ‘산내 놀이단’도 합세했다. 풍물을 치며 길놀이를 주도한 것도 산내 놀이단이다.
10개 단체가 함께 해서 북적이는 예가람장터 모습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자동차도 거의 없어 그저 적막하기만 하던 큰 골목이 아침부터 시끄럽다. 장터 운영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4시, 탁자 펴고 무대 음향 준비하고 있으니 11시부터 판매자들이 한 명 두 명 짐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다. 친환경 생활 용품을 파는 ‘비니루 없는 점빵’부터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지고 온 사람,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싸들고 오는 사람, 천연 효모 빵과 마들렌을 만들어 가지고 온 사람, 나무를 깎아 솟대를 만들어 파시는 어르신, 고무신과 돌에 그림을 그려서 파시는 분까지 수십 명의 판매자들이 탁자에 물건을 펼쳐 놓았다.
비니루없는 점빵
솟대를 깎아서 파는 어르신
예쁜 수공예품을 팔고 사는 사람들
천연 효모 빵과 마들렌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뿐 아니다. 자전거와 우산, 작은 가전제품을 고쳐주시는 분, 양말이나 간단한 옷을 수선해 주시는 분도 오셨다. 어느 곳은 우유곽과 폐건전지를 가지고 오면 이 장터에서만 쓸 수 있는 ‘장터 머니’를 나눠 주기도 했다. 그 활동은 어른도 아닌 어린이들이 준비해 왔는데 어린이들이 알림글을 쓴 종이판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홍보도 했다.
뭐든지 고쳐주는 인기 만점 맥가이버
우유곽과 폐건전지를 받는 어린이들
구멍 난 양말과 단추 구멍을 수선하는 부스 참여자 무엇보다 이번 장터의 제목이 남다르다. “쓰레기 없는 예가람 시민 장터” 보통 시장의 기본은 비닐봉지고 행사장의 기본은 일회용품인데 그것을 안 쓰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물건이야 각자 장바구니를 가져오라고 홍보하거나 종이봉지에 담아주면 될 것이지만 먹을 것은 어디다 담아 먹으라고 하지?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 끝에 다회용 그릇을 빌려서 각자 설거지를 하도록 준비했다. 지리산 ‘살래장’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니 결정하기가 쉬웠다. 설거지할 장소를 물색해서 한 상점 마당에 설거지 시스템을 잘 갖춰놨다. 일반 세제를 쓰는 게 아니라 톱밥과 EM효소, 밀가루 섞은 물을 준비해 몇 단계에 걸쳐 씻을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불편한 일을 사람들이 하려고 할까? 한 편에서 걱정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자 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을 믿고 추진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렇게 했다.
친환경 설거지 시스템을 갖춰 놓다 구경거리도 많고 살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았다. 거기다 아이들과 놀거리, 볼거리까지 더해졌다. 종이비행기 접어서 날리기 시합, 물병 던져 세우기, 플라스틱 병뚜껑을 갈아서 새로운 물건으로 만드는 체험,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며 그저 쉬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리고 가을에 딱 어울리는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남원에서 노래 잘한다고 소문 난 통기타 그룹들이 총출동! 오카리나 연주와 판소리, 시민들의 합창까지.
노래 소리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
물병 세우기 시합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120년이 넘은 남원 우체국 근처 예가람길에는 ‘노란 은행잎’대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120년 전 11월에도 20년 전 11월에도 아니 작년 11월에도 이렇게 뜨겁지 않았다. 가을 한복판에 섭씨 24도라니! 자잘한 풀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과꽃, 벚꽃, 복숭아꽃에 수국까지 이모작 하듯이 마른 꽃잎 위에 또다시 꽃들이 피어났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 것만 지구 온난화의 현상이 아니다. 2023년 10월 말에 전라북도 남원에서 수많은 꽃들이 다시 피어나는 것도 ‘지구 온난화’ ‘기후 위기’ 현상이다.
가을에 딱 어울리는 노래를 불러주는 손기문 가수님 판소리와 남원 아리랑을 신나게 부르는 박현광 가수님 이번 시장의 핵심은 예가람길에 숨을 불어 넣는 것과 함께 기후 위기 시대에 지구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춘향제, 흥부제, 철쭉제, 고로쇠 축제, 최근에는 드론축제까지. 남원에만도 수많은 큰 축제가 있고 동네마다 면민의 날, 학교 운동회, 단체마다 하는 바자회까지 정말 수도 없이 많은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시 그 때마다 남겨진 쓰레기는 아주 오래오래 우리를 괴롭힌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그런 축제 현장의 쓰레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개인의 생활 습관, 단체나 지자체의 관행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 이 막막한 현실 속에서 “쓰레기 없는 시민 장터”가 그 대안을 제시했다. 일회용품 없이도 먹을 것을 팔 수 있다! 비닐봉지 안 써도 물건을 팔 수 있다! 쓰레기 하나 없는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우유곽을 모으는 어린이들
다회용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아이들 그런데 “쓰레기 없는 예가람 시민 장터”에 또 한 가지 얹은 무거운 주제가 있다. ‘예가람 문화 사랑방’팀에서 준비한 전쟁 난민을 돕기 위한 책 판매다. 지난 여름 남원 시내 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했는데 거기서 나온 폐기 도서를 받아놨다가 이번에 판 것이다. 한 권에 딱 천 원. 거의 천여 권의 책들을 탁자와 장터 바닥에 펼쳐 놓았다. 이미 8월에 고물상으로 넘어가 수명이 다했을 책들이 다시 독자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안겨 수명이 연장된 것이다. 그렇게 150여 권이 팔렸고 나중에는 무료 책 나눔도 해서 250여 권의 책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여기에 내가 쓴 역사동화책 20권을 20프로 할인가로 팔아 책 판매 수익금과 소액 기부금을 합쳐 50만원을 ‘피스윈즈코리아’에 보냈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면서.
전쟁 난민을 위해 헌 책 판매하는 모습
전쟁 난민 돕기 작가 싸인본 동화책 판매 아무리 좋은 뜻이고 아무리 장사꾼이 많아도 손님이 적으면 그 시장은 잘 된 게 아니다. 이번 예가람 장터는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10개 단체가 함께 기획하고 함께 추진하며 각자 홍보도 열심히 해서 엄청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예가람길에서 관 주도나 상인들 주도로 여러 행사를 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적이 없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을까? 즐거움과 의미를 주는 기발한 아이템들, 참여 단체들이 모든 것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번 예가람 장터의 성공은 남원 시민 사회 단체들에게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한 사람 한 단체만 앞장서지 않고 옆을 보며 함께 어깨 높이를 맞춘 것, 시민들이 어떤 것에서 반응하는 지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매우 큰 수확이다. 꽤 긴 시간 변변한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던 남원 시민 단체들이 이번 성공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약하길 바라본다.
사람들로 꽉 찬 예가람길
전쟁 난민을 돕기 위해 수익금을 기부했다. |
작은 시민 단체들의 특별한 장날 이야기
남원 쓰레기 없는 시민장터
글 / 김양오
사진 / 김영기
“부웅~~~”
긴 나발 소리가 예가람길을 훑으며 새파란 가을 하늘로 날아 올랐다.
뒤이어 가슴팍을 째고 들어오는 강렬한 태평소 소리. 그리고,
“갠지갠지갠지갠지”
상쇠가 두드리는 꽹과리에 맞춰 장고, 북, 징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장마당 속으로 파고든다. 알록달록 풍물 복색을 갖춰 입은 정식 풍물패가 아닌 즉석에서 모인 일반 시민들이다.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 사러온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도 멈춰서 손뼉을 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예가람길에 처음으로 장마당이 펼쳐졌다.
긴 나발로 장터 시작을 알리고 있다
한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남원의 큰 번화가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적막한 길. 일본 제국주의가 없애버린 남원성의 한 복판 그것도 남원도호부 동헌의 정문 앞길이라 그야말로 남원의 핵심 거리였던 예가람길. 쉽게 말하자면 춘향이를 사랑했던 남원 사또의 아들 이몽룡이 놀던 길이다. 그 거리에 다시 숨을 불어넣자고 몇몇 시민들과 상인들이 ‘예가람 문화 사랑방’이라는 프로젝트를 세 달 동안 진행해 왔고 마지막 시간으로 문화장터를 마련한 것이다.
하늘에서 본 예가람길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운이 좋게도 장터를 함께 할 큰 ‘세력’을 만나 판이 매우 커졌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올 해 쌈지돈을 지원 받은 9개 단체들이다. 9개 단체가 한 해 동안 각자 활동을 하고 마지막에 ‘함께 사업’을 하기로 했는데 논의 끝에 ‘문화사랑방’과 함께 예가람길에서 장터를 열기로 한 것. 그게 다가 아니다. 좋은 뜻이 있는 곳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법. 이런 좋은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리산 산내면에서 수년 째 ‘살래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네다섯 팀이 온다더니 자그마치 열 팀이 훨씬 넘는 판매자와 유명한 놀이패 ‘산내 놀이단’도 합세했다. 풍물을 치며 길놀이를 주도한 것도 산내 놀이단이다.
10개 단체가 함께 해서 북적이는 예가람장터 모습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자동차도 거의 없어 그저 적막하기만 하던 큰 골목이 아침부터 시끄럽다.
장터 운영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4시, 탁자 펴고 무대 음향 준비하고 있으니 11시부터 판매자들이 한 명 두 명 짐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다. 친환경 생활 용품을 파는 ‘비니루 없는 점빵’부터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지고 온 사람,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싸들고 오는 사람, 천연 효모 빵과 마들렌을 만들어 가지고 온 사람, 나무를 깎아 솟대를 만들어 파시는 어르신, 고무신과 돌에 그림을 그려서 파시는 분까지 수십 명의 판매자들이 탁자에 물건을 펼쳐 놓았다.
비니루없는 점빵
솟대를 깎아서 파는 어르신
예쁜 수공예품을 팔고 사는 사람들
천연 효모 빵과 마들렌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뿐 아니다. 자전거와 우산, 작은 가전제품을 고쳐주시는 분, 양말이나 간단한 옷을 수선해 주시는 분도 오셨다. 어느 곳은 우유곽과 폐건전지를 가지고 오면 이 장터에서만 쓸 수 있는 ‘장터 머니’를 나눠 주기도 했다. 그 활동은 어른도 아닌 어린이들이 준비해 왔는데 어린이들이 알림글을 쓴 종이판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홍보도 했다.
뭐든지 고쳐주는 인기 만점 맥가이버
우유곽과 폐건전지를 받는 어린이들
구멍 난 양말과 단추 구멍을 수선하는 부스 참여자
무엇보다 이번 장터의 제목이 남다르다.
“쓰레기 없는 예가람 시민 장터”
보통 시장의 기본은 비닐봉지고 행사장의 기본은 일회용품인데 그것을 안 쓰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물건이야 각자 장바구니를 가져오라고 홍보하거나 종이봉지에 담아주면 될 것이지만 먹을 것은 어디다 담아 먹으라고 하지?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 끝에 다회용 그릇을 빌려서 각자 설거지를 하도록 준비했다. 지리산 ‘살래장’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니 결정하기가 쉬웠다. 설거지할 장소를 물색해서 한 상점 마당에 설거지 시스템을 잘 갖춰놨다. 일반 세제를 쓰는 게 아니라 톱밥과 EM효소, 밀가루 섞은 물을 준비해 몇 단계에 걸쳐 씻을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불편한 일을 사람들이 하려고 할까? 한 편에서 걱정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자 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을 믿고 추진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렇게 했다.
친환경 설거지 시스템을 갖춰 놓다
구경거리도 많고 살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았다. 거기다 아이들과 놀거리, 볼거리까지 더해졌다. 종이비행기 접어서 날리기 시합, 물병 던져 세우기, 플라스틱 병뚜껑을 갈아서 새로운 물건으로 만드는 체험,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며 그저 쉬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리고 가을에 딱 어울리는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남원에서 노래 잘한다고 소문 난 통기타 그룹들이 총출동! 오카리나 연주와 판소리, 시민들의 합창까지.
노래 소리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
물병 세우기 시합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120년이 넘은 남원 우체국 근처 예가람길에는 ‘노란 은행잎’대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120년 전 11월에도 20년 전 11월에도 아니 작년 11월에도 이렇게 뜨겁지 않았다. 가을 한복판에 섭씨 24도라니! 자잘한 풀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과꽃, 벚꽃, 복숭아꽃에 수국까지 이모작 하듯이 마른 꽃잎 위에 또다시 꽃들이 피어났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 것만 지구 온난화의 현상이 아니다. 2023년 10월 말에 전라북도 남원에서 수많은 꽃들이 다시 피어나는 것도 ‘지구 온난화’ ‘기후 위기’ 현상이다.
가을에 딱 어울리는 노래를 불러주는 손기문 가수님
판소리와 남원 아리랑을 신나게 부르는 박현광 가수님
이번 시장의 핵심은 예가람길에 숨을 불어 넣는 것과 함께 기후 위기 시대에 지구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춘향제, 흥부제, 철쭉제, 고로쇠 축제, 최근에는 드론축제까지. 남원에만도 수많은 큰 축제가 있고 동네마다 면민의 날, 학교 운동회, 단체마다 하는 바자회까지 정말 수도 없이 많은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시 그 때마다 남겨진 쓰레기는 아주 오래오래 우리를 괴롭힌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그런 축제 현장의 쓰레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개인의 생활 습관, 단체나 지자체의 관행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 이 막막한 현실 속에서 “쓰레기 없는 시민 장터”가 그 대안을 제시했다.
일회용품 없이도 먹을 것을 팔 수 있다! 비닐봉지 안 써도 물건을 팔 수 있다! 쓰레기 하나 없는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우유곽을 모으는 어린이들
다회용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아이들
그런데 “쓰레기 없는 예가람 시민 장터”에 또 한 가지 얹은 무거운 주제가 있다. ‘예가람 문화 사랑방’팀에서 준비한 전쟁 난민을 돕기 위한 책 판매다. 지난 여름 남원 시내 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했는데 거기서 나온 폐기 도서를 받아놨다가 이번에 판 것이다. 한 권에 딱 천 원. 거의 천여 권의 책들을 탁자와 장터 바닥에 펼쳐 놓았다. 이미 8월에 고물상으로 넘어가 수명이 다했을 책들이 다시 독자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안겨 수명이 연장된 것이다. 그렇게 150여 권이 팔렸고 나중에는 무료 책 나눔도 해서 250여 권의 책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여기에 내가 쓴 역사동화책 20권을 20프로 할인가로 팔아 책 판매 수익금과 소액 기부금을 합쳐 50만원을 ‘피스윈즈코리아’에 보냈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면서.
전쟁 난민을 위해 헌 책 판매하는 모습
전쟁 난민 돕기 작가 싸인본 동화책 판매
아무리 좋은 뜻이고 아무리 장사꾼이 많아도 손님이 적으면 그 시장은 잘 된 게 아니다. 이번 예가람 장터는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10개 단체가 함께 기획하고 함께 추진하며 각자 홍보도 열심히 해서 엄청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예가람길에서 관 주도나 상인들 주도로 여러 행사를 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적이 없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을까? 즐거움과 의미를 주는 기발한 아이템들, 참여 단체들이 모든 것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번 예가람 장터의 성공은 남원 시민 사회 단체들에게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한 사람 한 단체만 앞장서지 않고 옆을 보며 함께 어깨 높이를 맞춘 것, 시민들이 어떤 것에서 반응하는 지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매우 큰 수확이다. 꽤 긴 시간 변변한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던 남원 시민 단체들이 이번 성공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약하길 바라본다.
사람들로 꽉 찬 예가람길
전쟁 난민을 돕기 위해 수익금을 기부했다.
글 쓴 사람. 김양오
아이 셋을 다 키운 중년 아줌마. 젊었을 적 글쓰기와 아동문학을 배워 평생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쉰 살부터 역사동화를 쓰기 시작해 책 세 권을 냈다. 아름답게 흐르는 요천이 너무 좋아 남원으로 이사해 15년째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서 가슴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