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은하수 ‘요천’에서 놀며 배운 15년 글 / 김양오 전라북도 남원,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가 지상에 내려와서 성춘향과 이몽룡 의 사랑 이야기로 재탄생된 곳. 견우와 직녀가 만나던 하늘의 은하수와 오작교가 남원에도 있다. 남원 고을을 따라 길게 흐르는 요천을 옛사람들은 은하수라고 생각했고 이 물을 끌어 들여 광한루(광한루의 본래 이름은 ‘광한청허부’인데 이것은 달나라 궁궐의 이름이다.) 앞에 긴 연못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연못 위에 돌로 오작교를 만들어 천상의 이야기를 지상에 완성시켰다.
너럭 바위가 많고 물이 깨끗한 요천 풍경 남원에 이사 오기 전, 시댁이 있는 곡성을 가다가 보게 된 요천에 나는 홀딱 반해 버렸다. 물만 유유히 흐르고 있었으면 다른 지역의 하천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깊은 계곡에서나 볼법한 크고 넓은 바위들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아파트가 많은 도심지 옆을 지나는 하천에 엄청나게 크고 깨끗한 바위들이라니! 평생 큰 물 근처에서 살아 보지 못한 터라 나는 요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뒤 자전거 타고 요천을 달리는 꿈을 10년 동안 꾸다가 (진짜 자면서 그런 꿈을 꾼 것도 여러 번임.) 결국 남원에 이사를 왔고 벌써 15년이나 살았다. 15년 동안 나는 정말 요천에서 많이 놀았고 활동했다. 이번 글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요천에서 활동하며 깨달은 것을 쓰고자 한다.
다시 돌아 온 여뀌꽃 요천의 ‘요’는 ‘여뀌꽃 요(蓼)’자다. 그러나 오랫동안 요천에서는 여뀌꽃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좁쌀같이 작은 꽃송이가 다닥다닥 붙어 벼이삭처럼 고개 숙인 그 흔한 여뀌꽃. 요천에 여뀌꽃이 얼마나 많았길래 여뀌꽃 요자를 붙였던 걸까? 여뀌꽃은 요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하천, 논둑과 낮은 산에도 흔한 풀이다. 그러나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요천 상류부터 하류까지 1시간을 다니며 찾아 봐도 여뀌꽃은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2020년 요천과 섬진강이 넘칠 정도로 엄청난 비가 지나간 이후 요천이 많이 바뀌면서 여뀌꽃도 다시 나타났다. 수 십년 동안 모래를 팔아버려서 모래사장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드넓은 모래사장이 생기고 자전거 도로 옆에 드디어 여뀌꽃들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태풍이 바다를 정화시킨다더니 물난리가 요천을 다시 자연 하천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그러자 새도 많아졌다.
남원생협 하천 탐사대 내가 요천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건 15년 전 남원에 이사 오자마자다. 2월 말에 이사를 와서 세 아이 전학 시키고 새 학년이 시작된 3월 첫 주였다. 아직 이웃도 한 명 안 사귄 상태였는데 당시 남원생협 이사장 부부가 나를 데리러 우리 집 앞까지 왔다. 이분들이 나를 태우고 간 곳은 요천의 지류인 남원천이었다. 그 활동 모임의 이름은 ‘남원 하천 생태 탐사대’, 대장은 생태 전문가 김귀옥 선생님이었다. 조합이 생긴 지 얼마 안 돼 조합원도 100여명 정도였고 조합원 활동도 이제 시작하는 단계였는데 운 좋게 내가 바로 낀 것이다. 열 명 정도의 남원생협 조합원들이 남원여고 교문 앞에 모였다. 요천에 반해서 이사 온 내가 오자마자 하천 탐사대에 들어가게 되다니! 이런 것이 바로 운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천 탐사대 활동 모습 3,4,5월에는 나무와 풀과 곤충들을 관찰하고 6월부터는 물에 들어가 수서곤충과 물고기를 관찰했다. 그 때마다 김귀옥 선생님이 생명의 신비와 인생철학을 담아 해설을 해 주셔서 탐사는 늘 감동이었다. 평생 처음 허벅지까지 오는 노란 장화를 신어 보고 족대를 잡아 보니 조합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식들을 학교에 보낸 엄마들이 아니라 그냥 다시 초등학생들이 된 것 같았다. 그 때서야 말만 들었던 피라미를 처음 보고 피라미 친구 갈겨니도 알게 되었고 모래랑 비슷한 모래무지도 잡아 보았다. 동사리, 돌고기, 미꾸라지도 잡고 돌에 붙어 살거나 모래에 섞여 있는 수서 곤충들도 만났다. 1급수와 2급수 3급수에 사는 물고기와 곤충들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요천은 겨울을 지나면서 수량이 적어져 장마 전까지 2급수, 3급수까지 떨어지기도 하지만 큰 물이 지나고 나면 다시 1급수, 2급수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그러니 한여름에 아이들이 맘 놓고 물놀이를 해도 되는 곳이다.
어린이 생태 탐사대 활동 다음 해, 김귀옥 선생님께 잘 배운 조합원들은 자녀들과 하천 탐사를 계속 진행했다. 요천을 중심으로 ‘주촌천’, ‘광치천’, 운봉의 ‘람천’도 찾아다니며 수달 발자국, 수달 똥도 찾아냈다. 요천 옆에 있는 금암봉에도 올라가 여러 가지 생태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을 즐기게 했다. 늘 눈앞에 보이는 ‘요천’, ‘교룡산’, ‘금암봉’ 이런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니 어른들도 꽤 있었다. 외지에서 이사 온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궁금해 하지 않으며 그냥 살았던 사람들이다.
2020년 홍수 나기 전까지 빨래터와 징검다리가 있던 주촌천
빨래터와 징검다리도 사라지고 한 발자국도 못 들어가게 만든 주촌천 2017년 내가 우리동네 마을 활동가가 되면서 ‘두근두근 마을 탐사대’를 만들었다. 생협에서처럼 역시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과 함께 마을 탐사하고 요천을 탐사했다. 마을에 흐르는 요천의 지류인 주촌천에서 다슬기와 물우렁이도 잡고 물놀이도 했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징검다리에는 늘 다슬기와 물우렁이가 잔뜩 붙어 있었다. 물 속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며 지나가는 어른들이 걸음을 멈추고 흐믓하게 쳐다보았다. 어릴 적에 그렇게 놀던 기억이 나셨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시냇물, 아주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마디씩 추임새를 넣어주고 가기도 하셨다. 이끼 낀 바위에서 미끄러져 다리가 긁히고 까지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씽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흉내까지 내면서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멍들 권리가 있다’라는 말이 나는 참 좋았다. 그러나 2020년 물난리 이후 주촌천은 완전히 달라져야 했다. 하천이 좁아서 물이넘쳤다고 판단했는지 예전보다 두 배로 하천을 넓히고 징검다리와 빨래터도 없애버렸다. 천변의 배롱나무 가로수도 다 없애고 이제는 아무도 물가에 내려갈 수 없게 담벼락을 높이 세워버렸다.
오들 도서관 아이들의 요천 활동 - 2020년 문집 2020년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던 그 해 여름, 폭우 덕분에 깨끗해지고 모래사장이 여기저기 드넓게 생긴 요천은 글쓰기 수업하기에도 안성맞춤이 되었다. 목요일마다 만나던 요천 상류 쪽에 있는 작은 도서관 아이들과 야외 수업을 자주 나갔다. 학교와 도서관에서는 마스크를 꼭 써야 하지만 밖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되니 아이들도 좋아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아이들이 마스크를 쉽게 벗은 게 아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이 요천에 쉽게 들어간 게 아니다. 여러 아이들이 발목 위로 올라오는 풀을 밟지 못했고 울퉁불퉁한 자갈돌을 밟지 못했다. 울상을 지으며 자전거 도로에 오랫동안 서 있던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금방 적응했고 종합장과 연필 지우개를 가지고 바위에 올라가서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얌전히 글만 쓰고 그림만 그렸겠는가? “선생님 물에 들어가도 돼요?" “안 돼. 옷도 없잖아.” “발만 담글게요.” “진짜 발만 담가야 한다!” 그러나 발부터 시작해 무릎, 허벅지 그러다가 넘어져 엉덩이 다 젖고 다 젖었으니 헤엄까지 쳐버리는 아이들. 집이 가까우니 젖은 옷으로 그냥 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요천에 들어가서 놀았다. 늘 보기만 하던 곳이 놀이터가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 깨끗한 것 같은 바위 틈과 물가, 모래밭에 의외로 쓰레기가 많았다. 아예 다음 주에 쓰레기 봉지를 가지고 나가 제대로 줍기로 했다. 작정하고 주워 보니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았다. 비에 쓸려 내려온 농약병, 소주병도 있었고 나무에 걸려 있는 고철 덩어리도 있었다. 키가 가장 큰 남자 아이가 고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무에서 떼어내더니 낑낑거리고 아파트 단지까지 들고 가서 버렸다. 그렇게 아이들과 요천에서 놀며 쓴 글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글’이 되었다.
두근두근 요천 사랑 탐험대 작년에 나는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활동하는 <두근두근 요천 탐험대>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지리산생명연대 활동가와 함께 남원시 공동체 지원센터 공모 사업에 신청, 선정이 됐고 정식으로 탐험대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지원금이 있으니 나 혼자가 아니라 각 분야 생태 전문가를 모시고 한 달에 한번 탐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나무 전문가, 새 박사, 그리고 15년 전 처음 나를 요천으로 이끌어 주셨던 김귀옥 선생님도 모실 수 있었다. 남원 토박이로 요천에서 헤엄도 자주 치고 물에 빠진 중학생도 구한 경험이 있는 어른도 모시고 옛날 이야기도 듣고 물수제비 뜨기도 배웠다. 모래사장과 자갈밭이 탐험대의 활동장이 되었다. 가족 대항 멋진 돌탑 쌓기 대회도 하고 모래밭에서 달리기 시합도 했다. 요천의 하류부터 최상류인 지리산 구룡 계곡과 송력동 계곡까지 탐사하면서 요천 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르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온몸으로 배웠다. 드넓은 요천 갈대 숲 속에서 너구리 똥 무더기도 찾고, 고라니 똥, 삵 똥, 족제비 굴, 수달 똥도 찾았다. 요천에 그렇게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나는 수달을 세 번이나 봤다. 요천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였다. 요천에 이끌려 내려온 남원, 이렇게 돌아보니 15년 동안 요천에서 참 많이 놀았고 많은 일을 겪었다. 우리 세 아이들만 데리고 놀다가 동네 아이들, 생협 조합원 아이들, 학교 아이들, 도서관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니며 놀았으니 참 오지게 잘 놀았다. 지금은 반려견 ‘둥지’와 자주 산책 겸 탐사를 한다. 아이들은 잘 갖춰진 수영장도 좋아하지만 사실은 자연 상태의 냇물에서 노는 걸 훨씬 좋아한다. 자꾸자꾸 대형화되는 거대한 수영장에서 엄마아빠는 한쪽에 앉아 각자 핸드폰을 보고 아이들끼리 지치도록 놀게 하는 것보다 자연 하천에서 부모와 함께 물장구 친 것, 물고기 잡은 것, 돌탑 쌓은 것들이 아이들 마음에 무늬처럼 새겨진다. 모래도 없고 풀도 없고 물고기도 없고 개구리도 없고 곤충도 없는 물놀이장이 아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자연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준다. 그 중에 내가 요즘 꽂힌 말이 ‘기백’이다. ‘호연지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어떤 비싸고 큰 물놀이장에서도 얻을 수 없는 장엄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자연이다.
'요천댁 궁둥이 바위'에서
물가 모래밭에서 맨발 걷기 하는 사람들 올 여름부터 요천 모래밭에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국에 맨발 걷기 열풍이 불면서 남원에도 덕음산을 시작으로 맨발족들이 생기더니 요천까지 번진 것이다. 그동안 나와 아이들, 탐사대원들만 들어가던 모래밭과 바위에 일반 시민들이 들어가 즐기는 모습이 퍽 반갑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의 요천을 즐기기 시작하자 천변에 파크골프장을 만들겠다던 남원시의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나는 올 가을 친구들과 너럭바위 한 곳에 자주 갔다. ‘요천댁 궁둥이 바위’라고 이름도 지어주고 밥을 싸가지고 가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
요천의 노을
아이들의 기백을 살리기 위해 자연을 그대로 15년 동안 나는 이렇게 요천을 즐기면서 살았다. 혼자였으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함께 여서 더 자주 더 많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을 알았다. 자연은 자연 속에서 온전히 즐겨본 사람들이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시냇물에 들어가서 멱도 감아보고 강물에서 족대질도 해 본 사람만이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이 자연을 지켜야 한다고 먼저 마음을 먹는다는 것을. 어릴 때 못 해봤어도 커서라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활동을 해 본 사람만이 난개발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맨발걷기도 좋고 낚시도 좋고 물놀이도 좋고 캠핑도 좋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요천에 들어가 놀기 바란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요천댁 궁둥이 바위’에서 노을을 바라보기 바란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요천과 전국의 하천을 사랑하기 바란다. 그것이 지키는 일의 첫 걸음이다. |
지상의 은하수 ‘요천’에서 놀며 배운 15년
글 / 김양오
전라북도 남원,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가 지상에 내려와서 성춘향과 이몽룡 의 사랑 이야기로 재탄생된 곳. 견우와 직녀가 만나던 하늘의 은하수와 오작교가 남원에도 있다. 남원 고을을 따라 길게 흐르는 요천을 옛사람들은 은하수라고 생각했고 이 물을 끌어 들여 광한루(광한루의 본래 이름은 ‘광한청허부’인데 이것은 달나라 궁궐의 이름이다.) 앞에 긴 연못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연못 위에 돌로 오작교를 만들어 천상의 이야기를 지상에 완성시켰다.
너럭 바위가 많고 물이 깨끗한 요천 풍경
남원에 이사 오기 전, 시댁이 있는 곡성을 가다가 보게 된 요천에 나는 홀딱 반해 버렸다. 물만 유유히 흐르고 있었으면 다른 지역의 하천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깊은 계곡에서나 볼법한 크고 넓은 바위들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아파트가 많은 도심지 옆을 지나는 하천에 엄청나게 크고 깨끗한 바위들이라니! 평생 큰 물 근처에서 살아 보지 못한 터라 나는 요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뒤 자전거 타고 요천을 달리는 꿈을 10년 동안 꾸다가 (진짜 자면서 그런 꿈을 꾼 것도 여러 번임.) 결국 남원에 이사를 왔고 벌써 15년이나 살았다. 15년 동안 나는 정말 요천에서 많이 놀았고 활동했다. 이번 글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요천에서 활동하며 깨달은 것을 쓰고자 한다.
다시 돌아 온 여뀌꽃
요천의 ‘요’는 ‘여뀌꽃 요(蓼)’자다. 그러나 오랫동안 요천에서는 여뀌꽃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좁쌀같이 작은 꽃송이가 다닥다닥 붙어 벼이삭처럼 고개 숙인 그 흔한 여뀌꽃. 요천에 여뀌꽃이 얼마나 많았길래 여뀌꽃 요자를 붙였던 걸까? 여뀌꽃은 요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하천, 논둑과 낮은 산에도 흔한 풀이다. 그러나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요천 상류부터 하류까지 1시간을 다니며 찾아 봐도 여뀌꽃은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2020년 요천과 섬진강이 넘칠 정도로 엄청난 비가 지나간 이후 요천이 많이 바뀌면서 여뀌꽃도 다시 나타났다. 수 십년 동안 모래를 팔아버려서 모래사장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드넓은 모래사장이 생기고 자전거 도로 옆에 드디어 여뀌꽃들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태풍이 바다를 정화시킨다더니 물난리가 요천을 다시 자연 하천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그러자 새도 많아졌다.
남원생협 하천 탐사대
내가 요천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건 15년 전 남원에 이사 오자마자다. 2월 말에 이사를 와서 세 아이 전학 시키고 새 학년이 시작된 3월 첫 주였다. 아직 이웃도 한 명 안 사귄 상태였는데 당시 남원생협 이사장 부부가 나를 데리러 우리 집 앞까지 왔다. 이분들이 나를 태우고 간 곳은 요천의 지류인 남원천이었다. 그 활동 모임의 이름은 ‘남원 하천 생태 탐사대’, 대장은 생태 전문가 김귀옥 선생님이었다. 조합이 생긴 지 얼마 안 돼 조합원도 100여명 정도였고 조합원 활동도 이제 시작하는 단계였는데 운 좋게 내가 바로 낀 것이다. 열 명 정도의 남원생협 조합원들이 남원여고 교문 앞에 모였다. 요천에 반해서 이사 온 내가 오자마자 하천 탐사대에 들어가게 되다니! 이런 것이 바로 운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천 탐사대 활동 모습
3,4,5월에는 나무와 풀과 곤충들을 관찰하고 6월부터는 물에 들어가 수서곤충과 물고기를 관찰했다. 그 때마다 김귀옥 선생님이 생명의 신비와 인생철학을 담아 해설을 해 주셔서 탐사는 늘 감동이었다. 평생 처음 허벅지까지 오는 노란 장화를 신어 보고 족대를 잡아 보니 조합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식들을 학교에 보낸 엄마들이 아니라 그냥 다시 초등학생들이 된 것 같았다. 그 때서야 말만 들었던 피라미를 처음 보고 피라미 친구 갈겨니도 알게 되었고 모래랑 비슷한 모래무지도 잡아 보았다. 동사리, 돌고기, 미꾸라지도 잡고 돌에 붙어 살거나 모래에 섞여 있는 수서 곤충들도 만났다. 1급수와 2급수 3급수에 사는 물고기와 곤충들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요천은 겨울을 지나면서 수량이 적어져 장마 전까지 2급수, 3급수까지 떨어지기도 하지만 큰 물이 지나고 나면 다시 1급수, 2급수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그러니 한여름에 아이들이 맘 놓고 물놀이를 해도 되는 곳이다.
어린이 생태 탐사대 활동
다음 해, 김귀옥 선생님께 잘 배운 조합원들은 자녀들과 하천 탐사를 계속 진행했다. 요천을 중심으로 ‘주촌천’, ‘광치천’, 운봉의 ‘람천’도 찾아다니며 수달 발자국, 수달 똥도 찾아냈다. 요천 옆에 있는 금암봉에도 올라가 여러 가지 생태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을 즐기게 했다. 늘 눈앞에 보이는 ‘요천’, ‘교룡산’, ‘금암봉’ 이런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니 어른들도 꽤 있었다. 외지에서 이사 온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궁금해 하지 않으며 그냥 살았던 사람들이다.
2020년 홍수 나기 전까지 빨래터와 징검다리가 있던 주촌천
빨래터와 징검다리도 사라지고 한 발자국도 못 들어가게 만든 주촌천
2017년 내가 우리동네 마을 활동가가 되면서 ‘두근두근 마을 탐사대’를 만들었다. 생협에서처럼 역시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과 함께 마을 탐사하고 요천을 탐사했다. 마을에 흐르는 요천의 지류인 주촌천에서 다슬기와 물우렁이도 잡고 물놀이도 했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징검다리에는 늘 다슬기와 물우렁이가 잔뜩 붙어 있었다. 물 속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며 지나가는 어른들이 걸음을 멈추고 흐믓하게 쳐다보았다. 어릴 적에 그렇게 놀던 기억이 나셨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시냇물, 아주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마디씩 추임새를 넣어주고 가기도 하셨다. 이끼 낀 바위에서 미끄러져 다리가 긁히고 까지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씽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흉내까지 내면서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멍들 권리가 있다’라는 말이 나는 참 좋았다.
그러나 2020년 물난리 이후 주촌천은 완전히 달라져야 했다. 하천이 좁아서 물이넘쳤다고 판단했는지 예전보다 두 배로 하천을 넓히고 징검다리와 빨래터도 없애버렸다. 천변의 배롱나무 가로수도 다 없애고 이제는 아무도 물가에 내려갈 수 없게 담벼락을 높이 세워버렸다.
오들 도서관 아이들의 요천 활동 - 2020년 문집
2020년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던 그 해 여름, 폭우 덕분에 깨끗해지고 모래사장이 여기저기 드넓게 생긴 요천은 글쓰기 수업하기에도 안성맞춤이 되었다. 목요일마다 만나던 요천 상류 쪽에 있는 작은 도서관 아이들과 야외 수업을 자주 나갔다. 학교와 도서관에서는 마스크를 꼭 써야 하지만 밖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되니 아이들도 좋아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아이들이 마스크를 쉽게 벗은 게 아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이 요천에 쉽게 들어간 게 아니다. 여러 아이들이 발목 위로 올라오는 풀을 밟지 못했고 울퉁불퉁한 자갈돌을 밟지 못했다. 울상을 지으며 자전거 도로에 오랫동안 서 있던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금방 적응했고 종합장과 연필 지우개를 가지고 바위에 올라가서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얌전히 글만 쓰고 그림만 그렸겠는가?
“선생님 물에 들어가도 돼요?"
“안 돼. 옷도 없잖아.”
“발만 담글게요.”
“진짜 발만 담가야 한다!”
그러나 발부터 시작해 무릎, 허벅지 그러다가 넘어져 엉덩이 다 젖고 다 젖었으니 헤엄까지 쳐버리는 아이들. 집이 가까우니 젖은 옷으로 그냥 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요천에 들어가서 놀았다. 늘 보기만 하던 곳이 놀이터가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 깨끗한 것 같은 바위 틈과 물가, 모래밭에 의외로 쓰레기가 많았다. 아예 다음 주에 쓰레기 봉지를 가지고 나가 제대로 줍기로 했다. 작정하고 주워 보니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았다. 비에 쓸려 내려온 농약병, 소주병도 있었고 나무에 걸려 있는 고철 덩어리도 있었다. 키가 가장 큰 남자 아이가 고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무에서 떼어내더니 낑낑거리고 아파트 단지까지 들고 가서 버렸다. 그렇게 아이들과 요천에서 놀며 쓴 글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글’이 되었다.
두근두근 요천 사랑 탐험대
작년에 나는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활동하는 <두근두근 요천 탐험대>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지리산생명연대 활동가와 함께 남원시 공동체 지원센터 공모 사업에 신청, 선정이 됐고 정식으로 탐험대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지원금이 있으니 나 혼자가 아니라 각 분야 생태 전문가를 모시고 한 달에 한번 탐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나무 전문가, 새 박사, 그리고 15년 전 처음 나를 요천으로 이끌어 주셨던 김귀옥 선생님도 모실 수 있었다. 남원 토박이로 요천에서 헤엄도 자주 치고 물에 빠진 중학생도 구한 경험이 있는 어른도 모시고 옛날 이야기도 듣고 물수제비 뜨기도 배웠다. 모래사장과 자갈밭이 탐험대의 활동장이 되었다. 가족 대항 멋진 돌탑 쌓기 대회도 하고 모래밭에서 달리기 시합도 했다. 요천의 하류부터 최상류인 지리산 구룡 계곡과 송력동 계곡까지 탐사하면서 요천 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르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온몸으로 배웠다. 드넓은 요천 갈대 숲 속에서 너구리 똥 무더기도 찾고, 고라니 똥, 삵 똥, 족제비 굴, 수달 똥도 찾았다. 요천에 그렇게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나는 수달을 세 번이나 봤다. 요천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였다.
요천에 이끌려 내려온 남원, 이렇게 돌아보니 15년 동안 요천에서 참 많이 놀았고 많은 일을 겪었다. 우리 세 아이들만 데리고 놀다가 동네 아이들, 생협 조합원 아이들, 학교 아이들, 도서관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니며 놀았으니 참 오지게 잘 놀았다. 지금은 반려견 ‘둥지’와 자주 산책 겸 탐사를 한다.
아이들은 잘 갖춰진 수영장도 좋아하지만 사실은 자연 상태의 냇물에서 노는 걸 훨씬 좋아한다. 자꾸자꾸 대형화되는 거대한 수영장에서 엄마아빠는 한쪽에 앉아 각자 핸드폰을 보고 아이들끼리 지치도록 놀게 하는 것보다 자연 하천에서 부모와 함께 물장구 친 것, 물고기 잡은 것, 돌탑 쌓은 것들이 아이들 마음에 무늬처럼 새겨진다. 모래도 없고 풀도 없고 물고기도 없고 개구리도 없고 곤충도 없는 물놀이장이 아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자연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준다. 그 중에 내가 요즘 꽂힌 말이 ‘기백’이다. ‘호연지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어떤 비싸고 큰 물놀이장에서도 얻을 수 없는 장엄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자연이다.
'요천댁 궁둥이 바위'에서
물가 모래밭에서 맨발 걷기 하는 사람들
올 여름부터 요천 모래밭에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국에 맨발 걷기 열풍이 불면서 남원에도 덕음산을 시작으로 맨발족들이 생기더니 요천까지 번진 것이다. 그동안 나와 아이들, 탐사대원들만 들어가던 모래밭과 바위에 일반 시민들이 들어가 즐기는 모습이 퍽 반갑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의 요천을 즐기기 시작하자 천변에 파크골프장을 만들겠다던 남원시의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나는 올 가을 친구들과 너럭바위 한 곳에 자주 갔다. ‘요천댁 궁둥이 바위’라고 이름도 지어주고 밥을 싸가지고 가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
요천의 노을
아이들의 기백을 살리기 위해 자연을 그대로
15년 동안 나는 이렇게 요천을 즐기면서 살았다. 혼자였으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함께 여서 더 자주 더 많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을 알았다. 자연은 자연 속에서 온전히 즐겨본 사람들이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시냇물에 들어가서 멱도 감아보고 강물에서 족대질도 해 본 사람만이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이 자연을 지켜야 한다고 먼저 마음을 먹는다는 것을. 어릴 때 못 해봤어도 커서라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활동을 해 본 사람만이 난개발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맨발걷기도 좋고 낚시도 좋고 물놀이도 좋고 캠핑도 좋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요천에 들어가 놀기 바란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요천댁 궁둥이 바위’에서 노을을 바라보기 바란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요천과 전국의 하천을 사랑하기 바란다. 그것이 지키는 일의 첫 걸음이다.
글 쓴 사람. 김양오
아이 셋을 다 키운 중년 아줌마. 젊었을 적 글쓰기와 아동문학을 배워 평생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쉰 살부터 역사동화를 쓰기 시작해 책 세 권을 냈다. 아름답게 흐르는 요천이 너무 좋아 남원으로 이사해 15년째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서 가슴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