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남원][곧이곧대로 기록하기] 남원 청년들의 지금 여기 “NOWWON"

2023-12-31

 

 

 남원 청년들의 지금 여기 “NOWWON"

 

 

글 / 김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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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킹스페이스 출입문에 붙어 있는 서울의 봄 포스터

 

 

 

 2023년 성탄절이 되기 바로 전에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넘었다고 야단이다. 그 천만 관객 속에 내가 없다. 안 보고자 한 건 절대 아니다. 극장이 우리 집에서 매우 멀기도 하고 무척 바쁘기도 하고, 언젠간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천만이 넘어버린 것이다. 연말을 맞아 집에 내려온 20대 직장인 첫째 딸, 

 

 

“엄마 한국사 자격증있어?”

“아니.”

“왜 없어?”

 

 

역사 관련 일을 오랫동안 해왔고 역사동화를 쓰는 엄마라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우리 때는 그런 거 필요 없었어. 왜?”

“나 따려고.”

 

 

뜬금없어서 목소리 톤을 높여 다시 물었다.

 

 

“왜?”

“‘서울의 봄’이랑 ‘노량’ 보니까 역사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둘 다 개봉하자마자 봤거든.”

 

 

20-30대가 ‘서울의 봄’을 많이 봤다더니 그 핵심에 우리 딸도 있었구나. ‘서울의 봄’ 여파가 ‘노량’과 한국사 자격증으로까지 이어지니 신기하기도 하고 역사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기뻤다. 역시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영화를 보러 나섰다. 어디로? 오늘 기사의 포인트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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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부채전시관이었던 곳에 생긴 도킹스페이스

 

 

 

생각해 보니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남원 시내에 영화관이 있다. 아주 작은 초미니 영화관! 이름은 도킹스페이스.

생긴 지 2년이 다 되었는데 딱 한번 실내 구경만 하고 영화를 본 적은 없었다. 주로 독립 영화,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고 영화 상영을 날마다 여러 번 하는 게 아니라서 시간 맞춰 보기 힘들어 접근이 어려웠다. 내가 독립영화까지 찾아 볼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하다. 그런데 우연히 지나다보니 ‘서울의 봄’ 포스터가 붙어 있던 게 생각나서 거기서 보기로 정했다. 

 

 

도킹스페이스는 남원 구도심의 중심인 예가람길로 향하는 한 골목에 있다. 지난 11월에 쓴 ‘쓰레기없는 예가람 시민 장터’ 기사에 나오는 그 예가람길의 한 길목이다. 남원 사람들은 흔히 ‘진고개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은 진고개길이라는 말을 알지도 못하고 설사 알아도 쓰지 않는다. ‘진고개 식당’이 있긴 하지만 전혀 ‘고개’같은 언덕이 아니고 완전 평지 골목이기 때문이다. 남원의 인구가 12만 명일 때만 해도 이 길은 활기가 넘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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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원에 모여 있는 청년들의 사업장

 

 

 

그런데 이 골목에는 영화관 말고도 특별한 구역이 있다. 남원 청년들의 사업장이 모여 있는 구역이다. 지리산 작은 변화 기록 활동가로서 마지막 기록을 무엇으로 할까 매우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청년들의 활동을 담아 보는 것이 가장 의미있을 것 같아 영화도 볼 겸 이 구역을 취재하기로 했다.  

 

 

남원시 전체 인구가 8만 명도 안 되는 지금, 시내권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골목의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상가 안 쪽의 작은 기와집들은 하나둘 쓰러져 가니 결국 도시재생 사업이 손을 뻗쳤다. 남원시가 진고갯길의 폐가를 사서 허물어 주차장을 만들고 몇몇 건물은 리모델링을 해서 청년들에게 무료로 대여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영화관 도킹스페이스다. 그리고 넓은 새 주차장 안쪽에 작은 한옥 건물들을 아기자기하게 리모델링해 청년들에게 무료로 빌려주었다. 카페 ‘고샅’과 남원 캐릭터 상품을 파는 ‘추냔이네’가 그렇게 탄생한 가게다. ‘레드브릭스’라는 영상 촬영팀도 입주해 있어서 모두 네 팀이라고 한다. 이렇게 네 팀의 청년들이 들어와 사업을 하고 있는 이 구역을 “NOWWON"이라 이름지었다. 지금(NOW)과 남원(NAMWON)의 합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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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냔이네’ 앞에 선 나우원 대표 김민화씨

 

 

 

 NOWWON 대표 김민화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김민화씨는 남원 굿즈 상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추냔이네’ 대표다. 남원뿐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캐릭터 춘향이를 기본으로 했지만 김민화씨가 개발한 춘향이는 이쁜 춘향이가 아니라 못생긴 추녀 ‘추냔이’다. 세상에는 예쁜 사람보다 안 예쁜 사람이 많으니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고 정감이 가는 캐릭터다. 박색 춘향전도 있으니 캐릭터의 근거도 충분하다. 추냔이네는 굿즈 상품뿐 아니라 다른 분들의 수공예품도 위탁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청년 사업가들이 어떻게 해서 이 곳에 모이게 됐나요?”

“남원시 도시재생 사업으로 실시한 교육과정과 빌드업 프로젝트를 수료한 사람들로 2년동안 임대료 없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어요. 앞으로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유료로 전환될 예정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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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원 활동사진

 

 

 

“2년동안 여기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이 구역을 알리기 위한 행사를 많이 했어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많이 오게 하려고 분기별로 나우원 페스티벌을 했어요. 포트락 파티, 할로윈 파티를 했고 지난 가을에는 청년 영화제도 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답니다.”

 

 

솔직히 활동을 꽤 활발히 하는 나한테도 남원 청년들의 활동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청년들이 너무 적고 우리와는 다른 장소에서 활동을 하고 노니 특별한 일 아니면 만날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나우원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꾸준히 해왔다는 게 반가웠다. 사진으로 보니 참가자도 꽤 많았다. 행사를 할 때 주차 문제나 여러 문제 때문에 주변 상인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좋아해 주셨다니 안도하면서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지금 여기 들어와 있는 네 팀을 기본으로 해서 사회적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희는 이 골목을 활성화시키는 게 목적이에요. 예가람 장터와도 연계해서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하는 행사를 만들어 이 골목이 북적북적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어요.”

 

 

‘예가람 문화사랑방’과 ‘쓰레기 없는 예가람 시민 장터’를 기획하고 추진했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니 갑자기 동지의식이 발동해서 갑자기 내가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막 쏟아냈다. 그러다 인터뷰하러 간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내 모습을 자각하고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고 도킹스페이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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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킹스페이스 로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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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내부 모습

 

 

 

열 좌석이 전부인 초미니 영화관. 그것도 다 차지 않아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나 포함 단 네 명뿐이다. 영화비는 8천원. 팝콘과 음료수, 라면까지 먹을 수 있는 극장이다. 극장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다니! 나는 팝콘을 거부하고 라면 체험을 꼭 하고 싶어서 짜장 라면을 시켰다. 끓여서 갖다 준다고 한다. 로비에는 영화화 된 다양한 컨텐츠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구매도 가능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이것저것 매우 알차게 갖춰져 있었다. 계산대에서 영화표를 발권해 주고 팝콘과 음료수, 라면을 준비해 주는 김형준씨와 이보람씨가 공동 대표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김형준 대표에게 진심으로 걱정돼서 영화관이 유지가 되느냐고 물었다. 시설은 좋은데 관람료도 너무 싸고 관객은 최대가 열 명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유지가 될 리 없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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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킹스페이스 공동대표 김형준, 이보람 부부가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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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의 라면이 준비되어 있는 도킹스페이스

 

 

 

“시에서 무료로 임대해 줘서 월세 걱정은 없지만 극장을 운영하는데 최소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가서 수익은 커녕 적자가 크죠. 그 적자는 제가 밖에서 벌어서 메꾸고 있습니다.” 

 

 

밖에서 벌어온다고? 다른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것. 명함을 보니 영화제작사 대표이기도 했다. 영화 제작사는 돈이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닌가? 이 청년이 제작사 대표라고? 쉽게 받아 들여 지지가 않아서 계속 캐물었다. 결론은 영화 제작 현장의 꼭 필요한 고급 인력이라는 것과 그렇게 번 돈으로 제작에 참여하고 이런 영화관까지 운영한다는 것이다. 전주에서도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고 순창에서 하고 있는 섬진강 영화제(조직위원장 백학기)에도 영화를 제공했다니 적어도 전라북도 영화계에서는 큰 손임이 분명하다. 

 

 

“남원에서 영화관을 운영하는 자체가 수익을 기대하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왜 하는 거죠?”

“좋아서 하는 겁니다. 좋은 영화를 사람들과 같이 보고 알리고 싶은 거죠.”

 

 

좋아서 하는 일! 그것만한 정답도 없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나이와 상관 없이 그런 열정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을 ‘청년’이라고 불러야 한다. 적자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문을 닫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뿌려놓은 씨앗은 어딘가에서 발아하기 마련이다. 이런 청년들이 주저앉지 않게 계속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게 많은 것을 누린 장년 세대가,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지자체가 할 일이다. 남원시가 못하는 일을 청년들이 하고 있다. 임대비만이라도 평생 걱정 없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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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먹는 짜장라면

 

 

 

영화는 처음부터 흥미진진했다.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문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쟁반을 든 대표님이 들어왔다. 나의 짜장 라면이다! 은박그릇에 잘 끓여진 짜장라면이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내 자리로 왔다. 음~~ 좋아!! 

 

 

그러나 두 젓가락 먹고 눈치가 보여서 맨 뒷자리로 살그머니 일어나 옮겼다. 소리도 소리지만 냄새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괜히 시켰나 후회하며 조용조용 도둑고양이처럼 먹으며 곁눈질로 영화를 봤다. 탐욕스런 전두광이를 보며 꼬불꼬불한 면을 대충 씹어 넘겼다. 정말이지 꼭 먹고 싶어서 먹은 건 아니다. 새로운 경험 차원으로 먹은 것이다! 경험해 보니 극장 안에서 라면류를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딸의 말을 들으니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는데 다른 사람도 함께 먹는다면 모를까 이렇게 좁은 극장에서는 민폐가 아닐 수 없다. 국물이 있는 라면은 더 먹기 힘들 것 같다. 

 

 

2023년 해가 저문다. 이제 딱 하루 남았다.

 

 

남원 인구는 현재 얼마나 될까? 인구 절벽이 가장 심각한 지방 도시. 이런 곳에 들어와서 카페를 하고 영화관을 하고 영상물을 만들고 기념품가게를 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다. 초,중,고 12년을 정규 학교 다니고 대학을 졸업했어도 역사 공부에 관심이 없던 딸 아이가 ‘서울의 봄’과 ‘노량’ 영화를 보고 한국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다짐하는 시대. 이제 문화는 교육보다 힘이 세다. 청년들이 돌아와야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자명한 일. 청년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집도 중요하고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 놀 거리가 있어야 한다. 돈만 벌 수 있다고 지방에 내려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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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청년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고샅 카페

 

 

 

이런 세상에 청년 문화 황무지라고 할 수 있는 남원에 내려와 작게나마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청년들을 꼭 붙들고 싶다. 그들 중에 남원이 고향인 사람은 거의 없다. 얼마나 고마운가? 그렇게 한 명 한 명 자리 잡게 하면 도시에서 터덕거리며 힘겹게 사는 청년들이 “나도 내려갈래!”하며 내려오지 않을까? 그렇게 해야 지역의 인구 소멸은 막아지고 국토의 균형 개발은 이루어질 것이다!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지만 나는 이게 정답이라고 본다. 돈만 뿌려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남원이 도시재생 사업으로 많은 일을 했지만  NOWWON을 만든 것이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NOWON이 계속 확장되고 문화 역량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예가람길 전체가 들썩들썩해지길 기대해 본다. 

 

 

아, 고샅 카페에서 만삭인 김민화 대표와 인터뷰를 하는데 배가 불룩한 임신부 부부가 들어왔다. 임산부를 만나기 힘든 지방 소도시에서 한꺼번에 두 명이나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그밖에도 내 주위 여기저기서 아는 청년들이 애기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태어날 아이들을 생각하니 묵은 해가 빨리 가고 새로운 해가 빨리 떴으면 좋겠다. 

 

 

 

 

글 쓴 사람. 김양오

아이 셋을 다 키운 중년 아줌마. 젊었을 적 글쓰기와 아동문학을 배워 평생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쉰 살부터 역사동화를 쓰기 시작해 책 세 권을 냈다. 아름답게 흐르는 요천이 너무 좋아 남원으로 이사해 15년째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서 가슴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