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회담 〔산청+그림+일기〕여덟 글과 그림 / 효림 ※ 공동체회담을 기획과 운영, 기록까지 하다보니 손과 머리가 바빴습니다. 이번에는 그림 말고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지난해 집을 지으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로 우정이 이사 왔습니다. 새로운 모임에서는 수네를 알게 되었지요. 타라는 집을 지어준 목수의 짝꿍으로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수네의 집도 타라의 짝꿍이 지어주었다죠? 캐나다에서 온 은주는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하다며 두 달간 별채에서 지냈습니다. 은주는 우정의 이모입니다. 얽히고설킨 관계가 마냥 신기함을 넘어 이제는 익숙하고 당연합니다. 어쩌면 관계란 게 다 이런 거 아닐까요?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맛있는 게 있으면 기꺼이 나눠 먹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일까요? 어느 화창한 가을, ‘회담’이라 쓰고 ‘수다’라 부르는 <제1회 산청 비공식 공동체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처음은 무조건 거창해야 하니 해외파 멤버들을 모셨습니다. 유수의 멤버들을 선정하다 보니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인도대표 타라, 유럽대표 우정, 캐나다대표 은주, 한국대표 수네입니다. 일본대표 정인은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왼쪽부터 타라, 수네, 우정, 은주 효림_ 자기소개를 해 볼까요? 어디에서 살았는지, 왜 가게 됐는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개가 될 것 같아요. 타라_ 저부터 할까요? 한국 이름은 박경애고요. 오로빌1) 주민으로 되고 나서 지은 이름이 타라입니다. 인도 고대 언어로는 별, 행성이라는 뜻이고요, 티베트어에서는 여신이라는 뜻이 있어요.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효림_ 지난 6월, 수네가 기획한 오로빌 강연이 있었어요.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조금 아쉬웠다고 해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랐는데, 오로빌이 크고 소개할 게 많아서 3시간이 훌쩍 가버린 거죠, 너무 생소하니까. 다 같이 얘기할 시간이 없었어요. 질문하고 답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거든요. 타라_ 오로빌 공동체는 남인도 첸나이에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에요. 60개국에 주민(오로빌리언)만 4천명 넘는 사람이 거주하는 공동체고요. 구심점은 하나에요, 영성. 내면의 뭔가를 찾아 성장하고 싶거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만들었어요. 물질세계는 오감으로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생각, 마음은 눈에 안 보이잖아요. 외적으로는 종교, 문화, 민족, 언어 등이 하나가 되는 것을 추구하고요, 내적으로는 우주와 자기 내면을 일체화시키려고 해요. 제가 98년도에 갔는데요, 그때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공동체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곳이 지구상에 정말 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효림_ 기대했던 게 잘 구현되었다고 느끼셨나요? 타라_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생각했어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고, 우선 ‘00주의’가 없고, 돈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요. 시스템적으로 월급을 평준화시켜 놓았거든요. 선생님이든, 타이어를 고치든 월급은 똑같아요. 지금 사회에서는 돈이 많고, 돈이 많은 게 권력이 되고, 보이진 않지만, 계급사회가 이루어져 있잖아요. 그게 일단 표면적으로는 없어요. 은주_ 진짜 이상 세계네요. 얼마나 계신 거예요? 타라_ 98년도에는 1년 넘게 있다가 한국에 돌아왔고요, 다시 14년도에 가서 7~8년 있었어요. 결혼하기 전에 가서 남편도 거기서 만났어요. 효림_ 여건이 되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싶으세요? 타라_ 그럴 생각도 있어요. 제가 추구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잖아요. 관심 없는 사람한테 영적인 것을 얘기하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오로빌은 기본적으로 영성공동체이기 때문에 60~70% 이상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에요. 나를 표현하거나 뭔가 많이 설명할 필요가 없죠. 일단 에너지가 좀 달라요.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일상에서 변화를 주고 싶은 거잖아요. 그 변화는 환경도 있지만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가는 거죠. 효림_ 가면 좀 편안하신가요? 타라_ 네, 편안해요. 좋아하는 것에도 집중할 수 있고요. 효림_ (모두에게) 자꾸 들으니 궁금하시죠? (웃음) 그때도 이랬어요. 은주_ 언어는 어떻게 하나요? 가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어요? 타라_ 영어를 써야 해요. 60개국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라. 공통 언어가 영어에요. 능력이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바로 할 수 있어요. 수네_ 예술가들이 엄청 많아요. 예술가들의 마을이에요. 효림_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요? 수네_ 수네라고 해요. 저는 성향 상 안전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에요. 서울에서 살다 왜 여기에 왔을까 생각해 보면 시골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산청에 오기 전에 귀농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귀농해야 하는 이유 10가지를 적은 적 있어요. 그중 하나가 생태마을을 이루거나 거기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거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쓴 거예요. 생태마을이나 공동체가 뭔지도 모르고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만 가지고 저의 이상향이라 생각했던 거죠.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분이 ‘생태는 이웃하고 잘 지내는 것이다’라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이해가 안 갔어요. 효림_ 언제 산청에 오셨죠? 수네_ 2005년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산청에 오게 됐어요. 마침 제가 온 마을이 생태마을이더라고요. 친환경 자재를 써야 하므로 콘크리트는 안 되고, 수세식도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생태마을을 꿈꾸던 사람이니까 다 수긍이 됐죠. 근데 들어오기도 전에 뭔가 사건이 생기고 분란이 있었어요. 뭔가 방망이로 한 대 딱 맞았어요. (웃음) 그때는 정신없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살면서 계속 두들겨 맞았어요. (웃음) 효림_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수네_ 네. 그런 일이 몇 번 생기면서 김종철 선생님이 한 얘기가 떠오르더라고요. 이웃하고 잘 지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깨닫게 됐죠. ‘공동체’가 가능한 걸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견고한 테두리 안의 그것보다는 느슨한 공동체가 더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겠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공동체가 작게는 가족부터 마을, 지역, 나라, 지구까지 가잖아요.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 가족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넓게 공동체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50 넘게 살고 있고 앞으로 몇 년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안전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공동체를 그리고 있어요. 1인 가구도 많아지고, 시골에는 노인도 많다 보니 안전한 공간이 뭘까, 자꾸 생각하게 돼요. 6월 강연도 오로빌을 빌어 사람들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기획했던 거죠.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공동체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오로빌에서는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_타라
이웃하고 잘 사는 게 생태라는 말을 깨닫게 되면서 지금은 ‘느슨한 공동체’를 꿈꿔요. _수네
수네_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산청군에서 ‘인구활력 아이디어 공모’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참여했었거든요. 누구나 와서 거주할 수 있는 타운하우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게 있으면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온 분들도 단기로 살 수 있잖아요, 좀 더 안전하게. 저는 인구 유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안했는데 떨어졌어요. (웃음) 효림_ 한 달 살기, 1년 살기를 군에서 지원해 주면 좋겠다, 이런 거군요. 은주_ 좋을 것 같은데요? 누구나 처음 오는 곳은 잘 모르잖아요. 그런 게 있다고 알려지면 일단은 와서 보고 살면서 경험할 수 있잖아요. 수네_ 관에서 제안서 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조율해 보면 좋을 텐데, 그냥 탈락시키더라고요. 그때 아이디어 공모 낸 것 중 채택된 게 하나도 없대요. 타라_ 수네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의 집을 무료로 제공하자는 거죠? 수네_ 집 하나가 아니라 타운인 거죠, 분양하든지, 임대하든지. 도시나 해외에 있던 분들이 훌쩍 오기에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타운하우스가 있으면 안정감이 들 것 같아요. 혼자 뚝 떨어져 사는 게 아니니까. 은주_ 단기간 있을 곳을 구할 수가 없잖아요. 하동에는 그런 게 있다던데요? 캐나다에서 온 제 지인이 자기도 한 달 살기로 신청해볼까 하더라고요. 여기에도 있으면 당연히 구해보고 싶을 것 같아요. 수네_ 각자의 공간이면서 공유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사람도 만날 수도 있는 거죠. 효림_ ‘귀촌’이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으니까 그 사람들끼리는 통하겠네요. 우정_ 수네가 상상하는 것을 저도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구나, 깨달아요. 이상을 갖고 있진 않아요.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고 내가 거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제 소개로 가네요. 저는 20대 때 환경단체에서 활동했어요. 단체는 마포에 있는 성미산에 있었고요. 본의 아니게 저도 마을의 구성원으로 그 지역에 10년을 지내게 됐어요. 잠만 집에 가서 자고, 거의 생활은 그곳에서 했고, 저랑 같이 일하는 분들 반 이상은 성미산 공동체 주민들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미산 안에 제가 있다 느껴졌어요. 공동체라는 게 소속감이잖아요. 주소지, 거주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존재와 가치를 함께 나누는 거잖아요. 저는 거기에서 일원이라고 느꼈어요. 그 지역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성미산을 지킨 일들이 직장으로만 다닌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공동체가 저한테는 멀게 느껴지지 않아요. 성미산에서 얻은 재산이라면 ‘공동체는 다양해야 한다’예요. 아이를 위한, 노인만을 위한, 한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라 구성원이 다양하고 그것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거죠. _우정
우정_ 요즘 아이 키우면서 더 느끼는 건, 애들만 키울 순 없다, 애들이 애들끼리만 크는 게 아니다, 지역 사회가 키우고, 구성원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도시에서 나온 가장 큰 이유도 그거예요. 그래서 지역에 내려왔고, 여기에서 어르신도 만나다 보니 제 관점이 좀 더 커져요. 수네_ 저도 세대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정_ ‘요양원이든 주간보호센터든 이런 것들이 유치원하고 같이 있으면 안 돼?’ 물으면 엄마들이 ‘누가 좋아할까?’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사실은 아이랑 노인이랑 똑같잖아요. 나이가 들면 점점 못 걷게 되고, 누워 있게 되고. 애들 이유식 먹듯이 어른들도 부드러운 음식 먹어야 하고. 우리가 똑같은 길을 걷는 건데, 지금은 너무 극단으로 가는 것 같고, 그래서 수네의 이야기가 반가워요. 수네_ 젊은 사람들이 노인에 대한 혐오가 있잖아요. 우정_ 그것을 바꾸는 게 제 몫이 아닐까요? 저도 언젠가 젊은 층에서 빠지겠죠. 젊은 친구들끼리 청년이, 청년끼리만, 이러지 않고 같이 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고민해요. 도시가 아니라 지역에서는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성미산에서 지내면서 거주 문제, 입는 거, 먹는 거 이런 것들이 자본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어디에서 오고 나는지 궁금했어요.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 8개월간 유럽에 우프2)를 갔는데, 핵심은 삶의 기술, 방법을 찾는 거였어요. 여러 군데 간 곳 중 공동체는 두 곳이었는데 하나는 라마스라고, 영국에 있는, 자신의 집을 직접 짓는 공동체예요. 타라_ 비자는 어떻게 해결해요? 외국인이 가서 땅을 얻고 집을 짓는 게 가능한가요? 우정_ 거의 불가능해요. 거의 영국 사람이고요, 자국민도 쉽지 않아요. 근데 자기 집을 짓는 워크숍이다 보니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배우고, 나누는 자리가 오픈되어 있었고요. 하물며 자기 집을 지으려면 그 나무도 자기가 구해야 해요. 그리고 썼으면 그만큼을 심어야 해요. 그러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죠. 제가 같이 참여한 사람은 집을 짓겠단 승인을 받는 데만 8년이 걸렸고요, 거기에 나무 심고, 유리 구하고… 효림_ 평생 짓는 집이네요. 우정_ 평생은 아니지만 몇 십 년이죠. 근데 그 집이 예술이에요. 생태건축으로 지으니까 외부에서 따로 업을 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살아요. 서로 집을 지을 때 도와주고. 그래서 거기 호스트가 말하길, 자기 집은 세 번째에 지어야 한대요. 개집부터 시작해서 엑스프렌드의 집, 그다음에 내 집을 지어야 한다는 거죠.
나눔은 언제나 경이롭다. 장소제공만 했을 뿐인데 더 많은 선물이 들어왔다. 우정_ 벨기에에 공동체를 꿈꾸는 청년들이 700년 된 수녀원을 매입해서 2~30명 같이 사는 곳에도 갔었어요. 그곳에서 얻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을 나눌 거고, 무엇을 같이 할 것인가’였어요. 그곳은 ‘건물’을 공유해요. 아까 얘기한 타운하우스 느낌이랄까? 수녀원이니까 방이 있잖아요, 연령도 3살부터 70대까지 한 칸씩 거기 살더라고요. 타라_ 아무나 들어갈 수 있어요? 우정_공동체가 결정해요. 그때마다의 구성원이 이 공간을 나누고 살아가는데 당신은 무엇을 기여할 것이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물어봐요. 누군가는 엔지니어고, 누군가는 요리사죠. 무슨 역할을 할 건지에 따라 자유롭게 오고 나가는 곳이었어요. 같이 밥을 먹는 공동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은 주말에만 레스토랑을 운영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환갑, 돌잔치 등의 행사를 하는 거죠. 수익 사업인데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과 쓰는 음식 모두 자급해요. 농장도 있고, 정원도 있고. 수네_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을 찾아야 하는 거네요. 우정_ 근데 들어가기 전에 같이 얘기하죠. 저희는 게스트로 갔는데, 매뉴얼 파일을 딱 줘요. 여기에서 지내면서 지켜야 하는 약속들이랑 밥을 어떻게 해 먹는지 등등. 아침에는 신나는 음악이 나와요. 더 자고 싶으면 자도 되는데 8시쯤 홀에 모여서 춤도 추고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나누는 시간을 가져요. 회의가 있으면 불편할 것 같은데 좀 자유롭고 느슨하게 살더라고요. 은주_ 듣다 보니 저는 여기 왜 왔나 싶은데요? (웃음) 효림_ 캐나다에 한인사회가 있잖아요. 거기도 일종의 공동체 아닌가요? 처음 산청에 오셨을 때 스르륵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당연히 그런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은주_ 개인 성격 아닐까요. (웃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다 이민 온 사람들이잖아요. 이민 생활을 해본 사람은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무것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 뚝 떨어져 가게 된 거잖아요. 애들은 어리고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부딪히고 살길 20년 한 거죠. 여기 오니까 너무 수월해요. 이민사회가 나랑 똑같은 사람이 결코 오는 곳이 아니에요. 공동체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이민사회는 이민의 방법도 다르고, 이유도 달라요. 살면서 이렇게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생각했어요. 한인 사회를 공동체라고 할 수 없어요. 다들 ‘자기만의 성’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효림_커뮤니티라 부를 만한 게 없나요? 수네_ 주로 종교로 만나려나? 은주_ 딱 그거밖에 없어요. 타라_ 산청은 어떻게 오시게 된 거예요? 이사는 오신 거예요? 은주_ 저는 지금 혼자 왔어요. 이민생활을 오래 했으니까 어디 가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조카가 있어서 여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드니까 한국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 캐나다에 있는 친구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해요. 거기 입원한 사람들도 다들 여러 나라에서 왔을 거 아니에요. 한국 사람조차 다 다른 지역에서 왔으니까요. 심지어 거기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어릴 때부터 살던 사람도 많아요.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서 왔는데 모국어만 하더래요. 영어가 안 되는 거죠. 그게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저도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고, 예민해지고, 기억력도 없게 되면 한국말도 안 나올 것 같은 거죠. 산청이 멀다고 하던 친구들이 막상 오면 왔던 곳 같다고 해요. 여기에 와서 저는 감사한 게 많아요. _은주
은주_ 처음엔 제주에 갔었어요. 밴쿠버하고 기후가 비슷하다고 해서. 근데 섬이다 보니 나오기가 불편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우정이 여기가 어떻겠냐고 해서 무작정 오게 된 거죠. 지금은 좋아요. 오히려 밴쿠버 사람들이 들어올 판이에요. (웃음) 서울에 사는 친구들에게 놀러 오라고 하면 거기 너무 멀다, 이랬어요. 막상 오면 왔던 곳 같고, 또 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효림_ 결국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수네_ 집을 구할 때 ‘이웃프리미엄’이라는 게 있대요. (웃음) 우정_ 오면서 그런 생각 했어요. 나는 지금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가.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건 나만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거잖아요. 제 삶에 같이 걸을 사람이 있고 나눌 사람이 있고... 그렇게 봤을 때 저는 공동체 안에 있다고 느껴요. 우리가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결국 같이 잘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게 종교가 됐든 뭐가 됐든... 오늘은 제가 잘 지내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20대 때 환경운동 할 땐 내가 나서서 피켓 들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았거든요.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가고 있는 거더라고요. 각자의 몫과 역할이 있고 뭐 하나 소홀히 볼 수 있는 게 없어요. 나 역시도 항상 이렇게 돌아보면서 살아가야겠다, 내가 이 자리에서 잘 사는 게 건강한 공동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수네_그동안 공동체에 대해 생각만 하다 이렇게 나눈 게 처음이에요. 제가 머릿속에 그리고 상상했던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어요. 타라_ 저도 이 자리에 올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공동체회담>은 두 시간 남짓의 깊은 대화로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한참을 더 얘기했습니다. 지면을 빌어 고백하자면, 멤버 선정을 잘 한 건지,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처음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우연히 곁으로 왔으니, 이분들과 TV 프로그램의 방식을 차용해 얘기해 보자는 알량한 속셈이었지요. ‘공동체’라는 공을 툭 던졌을 뿐인데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공놀이를 했습니다. 심지어 새로운 공놀이를 만들기도 하더군요. ‘무엇을 해야 모른다는 것은 곧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기회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다 아는 상태에서 쓰는 음악은 흥미롭기 어렵다’고 한 음악가3)의 말대로 된 셈입니다. 참석하지 못한 일본대표 정인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공놀이도 궁금해집니다. 이런 자리가 언제가 또 마련되겠지요? 1) 오로빌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퐁디셰리 인근에 있는, 25㎢ 넓이의 생태공동체이다. 계획된 마을로서, 1968년 2월28일 124개국과 인도의 모든 주를 대표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창립식을 열었다. 전세계의 남녀가 종교와 정치, 국적을 초월하여 평화와 진보의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는 국제도시를 만들고자 했다.(김학준 기자, 50년 동안 실험과 도전 거듭하는 경제공동체, 인도 오르빌, 한겨레신문, 2017.03.08.) 2)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WWOOF) 우정의 우프 맛보기는 다섯 번째 〔산청+그림+일기〕에 있다.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유럽, 여행 말고 우프!》를 읽어보시라. 3) 《음악 없는 말》 p.204, 필립 글래스 지음, 이석호 옮김, Franz, 2017. |
공동체회담
〔산청+그림+일기〕여덟
글과 그림 / 효림
※ 공동체회담을 기획과 운영, 기록까지 하다보니 손과 머리가 바빴습니다.
이번에는 그림 말고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지난해 집을 지으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로 우정이 이사 왔습니다. 새로운 모임에서는 수네를 알게 되었지요. 타라는 집을 지어준 목수의 짝꿍으로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수네의 집도 타라의 짝꿍이 지어주었다죠? 캐나다에서 온 은주는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하다며 두 달간 별채에서 지냈습니다. 은주는 우정의 이모입니다. 얽히고설킨 관계가 마냥 신기함을 넘어 이제는 익숙하고 당연합니다. 어쩌면 관계란 게 다 이런 거 아닐까요?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맛있는 게 있으면 기꺼이 나눠 먹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일까요?
어느 화창한 가을, ‘회담’이라 쓰고 ‘수다’라 부르는 <제1회 산청 비공식 공동체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처음은 무조건 거창해야 하니 해외파 멤버들을 모셨습니다. 유수의 멤버들을 선정하다 보니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인도대표 타라, 유럽대표 우정, 캐나다대표 은주, 한국대표 수네입니다. 일본대표 정인은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왼쪽부터 타라, 수네, 우정, 은주
효림_ 자기소개를 해 볼까요? 어디에서 살았는지, 왜 가게 됐는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개가 될 것 같아요.
타라_ 저부터 할까요? 한국 이름은 박경애고요. 오로빌1) 주민으로 되고 나서 지은 이름이 타라입니다. 인도 고대 언어로는 별, 행성이라는 뜻이고요, 티베트어에서는 여신이라는 뜻이 있어요.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효림_ 지난 6월, 수네가 기획한 오로빌 강연이 있었어요.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조금 아쉬웠다고 해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랐는데, 오로빌이 크고 소개할 게 많아서 3시간이 훌쩍 가버린 거죠, 너무 생소하니까. 다 같이 얘기할 시간이 없었어요. 질문하고 답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거든요.
타라_ 오로빌 공동체는 남인도 첸나이에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에요. 60개국에 주민(오로빌리언)만 4천명 넘는 사람이 거주하는 공동체고요. 구심점은 하나에요, 영성. 내면의 뭔가를 찾아 성장하고 싶거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만들었어요. 물질세계는 오감으로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생각, 마음은 눈에 안 보이잖아요. 외적으로는 종교, 문화, 민족, 언어 등이 하나가 되는 것을 추구하고요, 내적으로는 우주와 자기 내면을 일체화시키려고 해요. 제가 98년도에 갔는데요, 그때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공동체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곳이 지구상에 정말 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효림_ 기대했던 게 잘 구현되었다고 느끼셨나요?
타라_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생각했어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고, 우선 ‘00주의’가 없고, 돈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요. 시스템적으로 월급을 평준화시켜 놓았거든요. 선생님이든, 타이어를 고치든 월급은 똑같아요. 지금 사회에서는 돈이 많고, 돈이 많은 게 권력이 되고, 보이진 않지만, 계급사회가 이루어져 있잖아요. 그게 일단 표면적으로는 없어요.
은주_ 진짜 이상 세계네요. 얼마나 계신 거예요?
타라_ 98년도에는 1년 넘게 있다가 한국에 돌아왔고요, 다시 14년도에 가서 7~8년 있었어요. 결혼하기 전에 가서 남편도 거기서 만났어요.
효림_ 여건이 되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싶으세요?
타라_ 그럴 생각도 있어요. 제가 추구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잖아요. 관심 없는 사람한테 영적인 것을 얘기하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오로빌은 기본적으로 영성공동체이기 때문에 60~70% 이상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에요. 나를 표현하거나 뭔가 많이 설명할 필요가 없죠. 일단 에너지가 좀 달라요.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일상에서 변화를 주고 싶은 거잖아요. 그 변화는 환경도 있지만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가는 거죠.
효림_ 가면 좀 편안하신가요?
타라_ 네, 편안해요. 좋아하는 것에도 집중할 수 있고요.
효림_ (모두에게) 자꾸 들으니 궁금하시죠? (웃음) 그때도 이랬어요.
은주_ 언어는 어떻게 하나요? 가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어요?
타라_ 영어를 써야 해요. 60개국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라. 공통 언어가 영어에요. 능력이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바로 할 수 있어요.
수네_ 예술가들이 엄청 많아요. 예술가들의 마을이에요.
효림_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요?
수네_ 수네라고 해요. 저는 성향 상 안전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에요. 서울에서 살다 왜 여기에 왔을까 생각해 보면 시골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산청에 오기 전에 귀농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귀농해야 하는 이유 10가지를 적은 적 있어요. 그중 하나가 생태마을을 이루거나 거기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거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쓴 거예요. 생태마을이나 공동체가 뭔지도 모르고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만 가지고 저의 이상향이라 생각했던 거죠.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분이 ‘생태는 이웃하고 잘 지내는 것이다’라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이해가 안 갔어요.
효림_ 언제 산청에 오셨죠?
수네_ 2005년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산청에 오게 됐어요. 마침 제가 온 마을이 생태마을이더라고요. 친환경 자재를 써야 하므로 콘크리트는 안 되고, 수세식도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생태마을을 꿈꾸던 사람이니까 다 수긍이 됐죠. 근데 들어오기도 전에 뭔가 사건이 생기고 분란이 있었어요. 뭔가 방망이로 한 대 딱 맞았어요. (웃음) 그때는 정신없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살면서 계속 두들겨 맞았어요. (웃음)
효림_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수네_ 네. 그런 일이 몇 번 생기면서 김종철 선생님이 한 얘기가 떠오르더라고요. 이웃하고 잘 지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깨닫게 됐죠. ‘공동체’가 가능한 걸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견고한 테두리 안의 그것보다는 느슨한 공동체가 더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겠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공동체가 작게는 가족부터 마을, 지역, 나라, 지구까지 가잖아요.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 가족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넓게 공동체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50 넘게 살고 있고 앞으로 몇 년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안전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공동체를 그리고 있어요. 1인 가구도 많아지고, 시골에는 노인도 많다 보니 안전한 공간이 뭘까, 자꾸 생각하게 돼요. 6월 강연도 오로빌을 빌어 사람들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기획했던 거죠.
수네_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산청군에서 ‘인구활력 아이디어 공모’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참여했었거든요. 누구나 와서 거주할 수 있는 타운하우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게 있으면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온 분들도 단기로 살 수 있잖아요, 좀 더 안전하게. 저는 인구 유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안했는데 떨어졌어요. (웃음)
효림_ 한 달 살기, 1년 살기를 군에서 지원해 주면 좋겠다, 이런 거군요.
은주_ 좋을 것 같은데요? 누구나 처음 오는 곳은 잘 모르잖아요. 그런 게 있다고 알려지면 일단은 와서 보고 살면서 경험할 수 있잖아요.
수네_ 관에서 제안서 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조율해 보면 좋을 텐데, 그냥 탈락시키더라고요. 그때 아이디어 공모 낸 것 중 채택된 게 하나도 없대요.
타라_ 수네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의 집을 무료로 제공하자는 거죠?
수네_ 집 하나가 아니라 타운인 거죠, 분양하든지, 임대하든지. 도시나 해외에 있던 분들이 훌쩍 오기에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타운하우스가 있으면 안정감이 들 것 같아요. 혼자 뚝 떨어져 사는 게 아니니까.
은주_ 단기간 있을 곳을 구할 수가 없잖아요. 하동에는 그런 게 있다던데요? 캐나다에서 온 제 지인이 자기도 한 달 살기로 신청해볼까 하더라고요. 여기에도 있으면 당연히 구해보고 싶을 것 같아요.
수네_ 각자의 공간이면서 공유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사람도 만날 수도 있는 거죠.
효림_ ‘귀촌’이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으니까 그 사람들끼리는 통하겠네요.
우정_ 수네가 상상하는 것을 저도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구나, 깨달아요. 이상을 갖고 있진 않아요.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고 내가 거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제 소개로 가네요. 저는 20대 때 환경단체에서 활동했어요. 단체는 마포에 있는 성미산에 있었고요. 본의 아니게 저도 마을의 구성원으로 그 지역에 10년을 지내게 됐어요. 잠만 집에 가서 자고, 거의 생활은 그곳에서 했고, 저랑 같이 일하는 분들 반 이상은 성미산 공동체 주민들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미산 안에 제가 있다 느껴졌어요. 공동체라는 게 소속감이잖아요. 주소지, 거주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존재와 가치를 함께 나누는 거잖아요. 저는 거기에서 일원이라고 느꼈어요. 그 지역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성미산을 지킨 일들이 직장으로만 다닌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공동체가 저한테는 멀게 느껴지지 않아요.
우정_ 요즘 아이 키우면서 더 느끼는 건, 애들만 키울 순 없다, 애들이 애들끼리만 크는 게 아니다, 지역 사회가 키우고, 구성원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도시에서 나온 가장 큰 이유도 그거예요. 그래서 지역에 내려왔고, 여기에서 어르신도 만나다 보니 제 관점이 좀 더 커져요.
수네_ 저도 세대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정_ ‘요양원이든 주간보호센터든 이런 것들이 유치원하고 같이 있으면 안 돼?’ 물으면 엄마들이 ‘누가 좋아할까?’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사실은 아이랑 노인이랑 똑같잖아요. 나이가 들면 점점 못 걷게 되고, 누워 있게 되고. 애들 이유식 먹듯이 어른들도 부드러운 음식 먹어야 하고. 우리가 똑같은 길을 걷는 건데, 지금은 너무 극단으로 가는 것 같고, 그래서 수네의 이야기가 반가워요.
수네_ 젊은 사람들이 노인에 대한 혐오가 있잖아요.
우정_ 그것을 바꾸는 게 제 몫이 아닐까요? 저도 언젠가 젊은 층에서 빠지겠죠. 젊은 친구들끼리 청년이, 청년끼리만, 이러지 않고 같이 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고민해요. 도시가 아니라 지역에서는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성미산에서 지내면서 거주 문제, 입는 거, 먹는 거 이런 것들이 자본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어디에서 오고 나는지 궁금했어요.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 8개월간 유럽에 우프2)를 갔는데, 핵심은 삶의 기술, 방법을 찾는 거였어요. 여러 군데 간 곳 중 공동체는 두 곳이었는데 하나는 라마스라고, 영국에 있는, 자신의 집을 직접 짓는 공동체예요.
타라_ 비자는 어떻게 해결해요? 외국인이 가서 땅을 얻고 집을 짓는 게 가능한가요?
우정_ 거의 불가능해요. 거의 영국 사람이고요, 자국민도 쉽지 않아요. 근데 자기 집을 짓는 워크숍이다 보니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배우고, 나누는 자리가 오픈되어 있었고요. 하물며 자기 집을 지으려면 그 나무도 자기가 구해야 해요. 그리고 썼으면 그만큼을 심어야 해요. 그러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죠. 제가 같이 참여한 사람은 집을 짓겠단 승인을 받는 데만 8년이 걸렸고요, 거기에 나무 심고, 유리 구하고…
효림_ 평생 짓는 집이네요.
우정_ 평생은 아니지만 몇 십 년이죠. 근데 그 집이 예술이에요. 생태건축으로 지으니까 외부에서 따로 업을 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살아요. 서로 집을 지을 때 도와주고. 그래서 거기 호스트가 말하길, 자기 집은 세 번째에 지어야 한대요. 개집부터 시작해서 엑스프렌드의 집, 그다음에 내 집을 지어야 한다는 거죠.
나눔은 언제나 경이롭다. 장소제공만 했을 뿐인데 더 많은 선물이 들어왔다.
우정_ 벨기에에 공동체를 꿈꾸는 청년들이 700년 된 수녀원을 매입해서 2~30명 같이 사는 곳에도 갔었어요. 그곳에서 얻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을 나눌 거고, 무엇을 같이 할 것인가’였어요. 그곳은 ‘건물’을 공유해요. 아까 얘기한 타운하우스 느낌이랄까? 수녀원이니까 방이 있잖아요, 연령도 3살부터 70대까지 한 칸씩 거기 살더라고요.
타라_ 아무나 들어갈 수 있어요?
우정_공동체가 결정해요. 그때마다의 구성원이 이 공간을 나누고 살아가는데 당신은 무엇을 기여할 것이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물어봐요. 누군가는 엔지니어고, 누군가는 요리사죠. 무슨 역할을 할 건지에 따라 자유롭게 오고 나가는 곳이었어요. 같이 밥을 먹는 공동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은 주말에만 레스토랑을 운영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환갑, 돌잔치 등의 행사를 하는 거죠. 수익 사업인데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과 쓰는 음식 모두 자급해요. 농장도 있고, 정원도 있고.
수네_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을 찾아야 하는 거네요.
우정_ 근데 들어가기 전에 같이 얘기하죠. 저희는 게스트로 갔는데, 매뉴얼 파일을 딱 줘요. 여기에서 지내면서 지켜야 하는 약속들이랑 밥을 어떻게 해 먹는지 등등. 아침에는 신나는 음악이 나와요. 더 자고 싶으면 자도 되는데 8시쯤 홀에 모여서 춤도 추고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나누는 시간을 가져요. 회의가 있으면 불편할 것 같은데 좀 자유롭고 느슨하게 살더라고요.
은주_ 듣다 보니 저는 여기 왜 왔나 싶은데요? (웃음)
효림_ 캐나다에 한인사회가 있잖아요. 거기도 일종의 공동체 아닌가요? 처음 산청에 오셨을 때 스르륵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당연히 그런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은주_ 개인 성격 아닐까요. (웃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다 이민 온 사람들이잖아요. 이민 생활을 해본 사람은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무것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 뚝 떨어져 가게 된 거잖아요. 애들은 어리고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부딪히고 살길 20년 한 거죠. 여기 오니까 너무 수월해요. 이민사회가 나랑 똑같은 사람이 결코 오는 곳이 아니에요. 공동체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이민사회는 이민의 방법도 다르고, 이유도 달라요. 살면서 이렇게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생각했어요. 한인 사회를 공동체라고 할 수 없어요. 다들 ‘자기만의 성’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효림_커뮤니티라 부를 만한 게 없나요?
수네_ 주로 종교로 만나려나?
은주_ 딱 그거밖에 없어요.
타라_ 산청은 어떻게 오시게 된 거예요? 이사는 오신 거예요?
은주_ 저는 지금 혼자 왔어요. 이민생활을 오래 했으니까 어디 가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조카가 있어서 여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드니까 한국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 캐나다에 있는 친구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해요. 거기 입원한 사람들도 다들 여러 나라에서 왔을 거 아니에요. 한국 사람조차 다 다른 지역에서 왔으니까요. 심지어 거기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어릴 때부터 살던 사람도 많아요.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서 왔는데 모국어만 하더래요. 영어가 안 되는 거죠. 그게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저도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고, 예민해지고, 기억력도 없게 되면 한국말도 안 나올 것 같은 거죠.
은주_ 처음엔 제주에 갔었어요. 밴쿠버하고 기후가 비슷하다고 해서. 근데 섬이다 보니 나오기가 불편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우정이 여기가 어떻겠냐고 해서 무작정 오게 된 거죠. 지금은 좋아요. 오히려 밴쿠버 사람들이 들어올 판이에요. (웃음) 서울에 사는 친구들에게 놀러 오라고 하면 거기 너무 멀다, 이랬어요. 막상 오면 왔던 곳 같고, 또 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효림_ 결국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수네_ 집을 구할 때 ‘이웃프리미엄’이라는 게 있대요. (웃음)
우정_ 오면서 그런 생각 했어요. 나는 지금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가.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건 나만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거잖아요. 제 삶에 같이 걸을 사람이 있고 나눌 사람이 있고... 그렇게 봤을 때 저는 공동체 안에 있다고 느껴요. 우리가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결국 같이 잘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게 종교가 됐든 뭐가 됐든... 오늘은 제가 잘 지내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20대 때 환경운동 할 땐 내가 나서서 피켓 들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았거든요.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가고 있는 거더라고요. 각자의 몫과 역할이 있고 뭐 하나 소홀히 볼 수 있는 게 없어요. 나 역시도 항상 이렇게 돌아보면서 살아가야겠다, 내가 이 자리에서 잘 사는 게 건강한 공동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수네_그동안 공동체에 대해 생각만 하다 이렇게 나눈 게 처음이에요. 제가 머릿속에 그리고 상상했던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어요.
타라_ 저도 이 자리에 올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공동체회담>은 두 시간 남짓의 깊은 대화로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한참을 더 얘기했습니다. 지면을 빌어 고백하자면, 멤버 선정을 잘 한 건지,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처음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우연히 곁으로 왔으니, 이분들과 TV 프로그램의 방식을 차용해 얘기해 보자는 알량한 속셈이었지요. ‘공동체’라는 공을 툭 던졌을 뿐인데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공놀이를 했습니다. 심지어 새로운 공놀이를 만들기도 하더군요. ‘무엇을 해야 모른다는 것은 곧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기회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다 아는 상태에서 쓰는 음악은 흥미롭기 어렵다’고 한 음악가3)의 말대로 된 셈입니다. 참석하지 못한 일본대표 정인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공놀이도 궁금해집니다. 이런 자리가 언제가 또 마련되겠지요?
1) 오로빌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퐁디셰리 인근에 있는, 25㎢ 넓이의 생태공동체이다. 계획된 마을로서, 1968년 2월28일 124개국과 인도의 모든 주를 대표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창립식을 열었다. 전세계의 남녀가 종교와 정치, 국적을 초월하여 평화와 진보의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는 국제도시를 만들고자 했다.(김학준 기자, 50년 동안 실험과 도전 거듭하는 경제공동체, 인도 오르빌, 한겨레신문, 2017.03.08.)
2)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WWOOF) 우정의 우프 맛보기는 다섯 번째 〔산청+그림+일기〕에 있다.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유럽, 여행 말고 우프!》를 읽어보시라.
3) 《음악 없는 말》 p.204, 필립 글래스 지음, 이석호 옮김, Franz, 2017.
글 쓴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