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놀이 X 목화장터 〔산청+그림+일기〕아홉 글과 그림 / 효림 그곳에 ‘살아야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돌았을 때 컹컹 짖는 담 너머 개나 산 위로 볼록 솟은 달이 가장 사랑스러워 보이는 뷰포인트 같은 곳이요. 저에게는 그곳이 원지 강변입니다. 양천강과 경호강, 두 물길이 만나는 강변은 남강으로 이어지며 삼각지를 형성합니다. 삼거리는 언제나 다채롭기 마련이죠. 장마가 끝난 여름날 강변에 서서 엄혜산을 보고 있자면 흡사 ‘아마존’을 방불케 합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단성 쪽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데, 저는 ‘세렝게티’라 부릅니다. 숲과 초원만이 아닙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모텔촌의 네온사인이 켜지며 불야성을 이룹니다. 순진하고 고즈넉한 강변은 일순간 ‘라스베가스’같은 환락가로 변모하죠. 이 기이한 풍경에 저는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지 소공원에서 열리던 목화장터가 이번에는 강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지원한 산청의 ‘함께활동’으로 기존 장터를 활성화해 보자, 했었죠. 어린이·청소년의 참여도를 높이고, 먹거리·볼거리·놀거리가 충분하여 머무르고 싶은 장터를 만들어보자고요. 산청의 활동가들은 지난 3월부터 만나서 차곡차곡 대화를 쌓았습니다. 지난 5월 말랑장을 성황리에 마치고 한층 열의가 올라와 있었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날 ‘단풍놀이X목화장터’라 이름 짓고, 10월 22일로 날짜를 정했습니다. 모든 준비는 분명 완벽할 테니 날씨만이 도와주길 바라면서요. 2015년 처음 장터를 만든 이들은 지역의 농산물과 좋은 먹거리가 풍성해지길 바랐다지요. 그들의 바람대로 지역 농산물은 이제 장터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 또한 제일 먼저 찾는 코너니까요. 언제나처럼 장터를 지키는 이들을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자 우리는 새삼 반가웠습니다. 이번에는 기존의 장터보다 한층 크기를 키웠습니다. 전용 웹포스터를 만들어 홍보하고 청소년 밴드도 미리 섭외했지요. 천막과 파라솔, 캠핑 의자도 준비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판매자들에 가끔 들르던 사람들까지 합세해 분위기는 시끌벅적했습니다. 농민회에서는 무료로 칼갈이를 진행했습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눈길을 끌기 마련이죠. 쓸모가 없을수록 아름답기 마련이고요. 먹거리·입을거리가 충분해지면 사람은 자연스레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쏟는다 하지요. 무려 캐나다에서 왔다는 앤틱 소품들은 장터에 활기를 더했습니 다. 파라솔과 캠핑 의자를 준비한 것에 더불어 아예 ‘차 마시며 대화하는 부스’를 연 이들도 있습니다. 어쩜 저희의 마음을 딱 알아챘을까요? 장터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들이 고요히 미소 지으며 차를 따르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소모임 ‘민들레’에서는 ‘어린이부스’를 차렸습니다. 어릴 때 입은 옷이나 장난감, 책을 파는 아이도, 올해 처음 농사지은 아빠의 쌀을 파는 아이도, 말그림 스티커를 파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야무진 손으로 만든 쿠바샌드위치는 초반부터 예약받을 만큼 인기 있더니 일찌감치 마감했습니다. 체험부스도 다양했지요. ‘함께평화’에서는 어린이들과 소녀상을 만들었고, ‘공간산아’에서는 생존팔찌를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는 책 읽어주는 텐트를 마련했고, ‘달맞이’는 면생리대를 만들었습니다. 삼거리 풍경만큼이나 다채로운 장터였습니다. 한번 돌고 두 번 돌아도 새로워 보였습니다. 장터가 한층 무르익자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산청 곳곳의 청소년 밴드와 진주에서 온 이들까지 노래하고 연주했지요. 때마침 옅게 깔려있던 구름이 걷혔습니다. ‘매직아워’라 불리는 드라마틱한 오후 햇살 아래 젊은이들의 노래가 퍼지자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춤을 추는 이들도 보였고요. 흥겨움을 온몸으로 미친 듯이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노는 애들이 산청에도 있었던가요? 세렝게티 널따란 초원에서 어린이들은 마음껏 놀았습니다. 제기차기와 연날리기하는 아이들도 보였고요. 쉴 틈 없이 움직여야 ‘어린이’가 아니던가요? 나무 놀이터 한쪽에 앉아 무조건 재미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자 제 마음도 시원해졌습니다. 저렇게 뛰노는 애들 중 몇 명은 기타를 손에 잡겠지요. 드럼을 치겠다며 보이는 것마다 두드리고 다니는 애도 있을 거고요. 그리고 몇 년 후 밴드를 만들어 진지하게 공연을 열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목화장터도 열리고 있을까요? 큰 행사에 참여해보니 생각보다 신경 쓸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것을 묵묵히 해 온 이들이 있었고요. 도대체 이들은 왜 장터를 만들었을까요? 굳이 힘들이고 애써가며 장터를 이어올까요? 온라인 밴드에서는 자꾸만 뭔가를 나누겠다는 소식이 들려올까요? 나만 잘 살면 될 일인데 자꾸만 이상하고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까요? 들썩이는 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모르는 이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장터에서 마지막까지 머물며 차광막을 함께 치워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모르는 이와 나눈 웃음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요.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요. 누군가는 지리산을 지키고, 누군가는 글을 쓰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 투쟁입니다. 장터를 열고, 축제를 벌이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장을 마련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투쟁입니다. |
단풍놀이 X 목화장터
〔산청+그림+일기〕아홉
글과 그림 / 효림
그곳에 ‘살아야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돌았을 때 컹컹 짖는 담 너머 개나 산 위로 볼록 솟은 달이 가장 사랑스러워 보이는 뷰포인트 같은 곳이요. 저에게는 그곳이 원지 강변입니다. 양천강과 경호강, 두 물길이 만나는 강변은 남강으로 이어지며 삼각지를 형성합니다.
삼거리는 언제나 다채롭기 마련이죠. 장마가 끝난 여름날 강변에 서서 엄혜산을 보고 있자면 흡사 ‘아마존’을 방불케 합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단성 쪽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데, 저는 ‘세렝게티’라 부릅니다. 숲과 초원만이 아닙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모텔촌의 네온사인이 켜지며 불야성을 이룹니다. 순진하고 고즈넉한 강변은 일순간 ‘라스베가스’같은 환락가로 변모하죠. 이 기이한 풍경에 저는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지 소공원에서 열리던 목화장터가 이번에는 강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지원한 산청의 ‘함께활동’으로 기존 장터를 활성화해 보자, 했었죠. 어린이·청소년의 참여도를 높이고, 먹거리·볼거리·놀거리가 충분하여 머무르고 싶은 장터를 만들어보자고요. 산청의 활동가들은 지난 3월부터 만나서 차곡차곡 대화를 쌓았습니다. 지난 5월 말랑장을 성황리에 마치고 한층 열의가 올라와 있었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날 ‘단풍놀이X목화장터’라 이름 짓고, 10월 22일로 날짜를 정했습니다. 모든 준비는 분명 완벽할 테니 날씨만이 도와주길 바라면서요.
2015년 처음 장터를 만든 이들은 지역의 농산물과 좋은 먹거리가 풍성해지길 바랐다지요. 그들의 바람대로 지역 농산물은 이제 장터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 또한 제일 먼저 찾는 코너니까요. 언제나처럼 장터를 지키는 이들을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자 우리는 새삼 반가웠습니다.
이번에는 기존의 장터보다 한층 크기를 키웠습니다. 전용 웹포스터를 만들어 홍보하고 청소년 밴드도 미리 섭외했지요. 천막과 파라솔, 캠핑 의자도 준비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판매자들에 가끔 들르던 사람들까지 합세해 분위기는 시끌벅적했습니다. 농민회에서는 무료로 칼갈이를 진행했습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눈길을 끌기 마련이죠. 쓸모가 없을수록 아름답기 마련이고요. 먹거리·입을거리가 충분해지면 사람은 자연스레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쏟는다 하지요. 무려 캐나다에서 왔다는 앤틱 소품들은 장터에 활기를 더했습니
다.
파라솔과 캠핑 의자를 준비한 것에 더불어 아예 ‘차 마시며 대화하는 부스’를 연 이들도 있습니다. 어쩜 저희의 마음을 딱 알아챘을까요? 장터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들이 고요히 미소 지으며 차를 따르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소모임 ‘민들레’에서는 ‘어린이부스’를 차렸습니다. 어릴 때 입은 옷이나 장난감, 책을 파는 아이도, 올해 처음 농사지은 아빠의 쌀을 파는 아이도, 말그림 스티커를 파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야무진 손으로 만든 쿠바샌드위치는 초반부터 예약받을 만큼 인기 있더니 일찌감치 마감했습니다.
체험부스도 다양했지요. ‘함께평화’에서는 어린이들과 소녀상을 만들었고, ‘공간산아’에서는 생존팔찌를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는 책 읽어주는 텐트를 마련했고, ‘달맞이’는 면생리대를 만들었습니다. 삼거리 풍경만큼이나 다채로운 장터였습니다. 한번 돌고 두 번 돌아도 새로워 보였습니다.
장터가 한층 무르익자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산청 곳곳의 청소년 밴드와 진주에서 온 이들까지 노래하고 연주했지요. 때마침 옅게 깔려있던 구름이 걷혔습니다. ‘매직아워’라 불리는 드라마틱한 오후 햇살 아래 젊은이들의 노래가 퍼지자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춤을 추는 이들도 보였고요.
흥겨움을 온몸으로 미친 듯이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노는 애들이 산청에도 있었던가요?
세렝게티 널따란 초원에서 어린이들은 마음껏 놀았습니다. 제기차기와 연날리기하는 아이들도 보였고요. 쉴 틈 없이 움직여야 ‘어린이’가 아니던가요? 나무 놀이터 한쪽에 앉아 무조건 재미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자 제 마음도 시원해졌습니다. 저렇게 뛰노는 애들 중 몇 명은 기타를 손에 잡겠지요. 드럼을 치겠다며 보이는 것마다 두드리고 다니는 애도 있을 거고요. 그리고 몇 년 후 밴드를 만들어 진지하게 공연을 열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목화장터도 열리고 있을까요?
큰 행사에 참여해보니 생각보다 신경 쓸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것을 묵묵히 해 온 이들이 있었고요. 도대체 이들은 왜 장터를 만들었을까요? 굳이 힘들이고 애써가며 장터를 이어올까요? 온라인 밴드에서는 자꾸만 뭔가를 나누겠다는 소식이 들려올까요? 나만 잘 살면 될 일인데 자꾸만 이상하고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까요?
들썩이는 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모르는 이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장터에서 마지막까지 머물며 차광막을 함께 치워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모르는 이와 나눈 웃음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요.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요. 누군가는 지리산을 지키고, 누군가는 글을 쓰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 투쟁입니다. 장터를 열고, 축제를 벌이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장을 마련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투쟁입니다.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