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산청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산청+그림+일기〕열 글 / 안군 그림 / 효림 12월엔 한숨만 푹푹 내쉽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추위가 매섭습니다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몰라보게 주량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잔고가 바닥이 났습니다 -오은 「1년」 中
파란이네 부모님이 이사 왔습니다. 그것도 저랑 짝꿍이랑 결혼했던 날 말이죠. 아! 이번 글은 작년처럼 같이 살아야 할 운명인 제가 효림 대신 쓰기로 했습니다. 시월 마지막 날 오후 동네 단톡방에 파란이가 엘리베이터 없는 3층에 부모님이 이사 오신다고, 지나는 길에 짐 하나씩만 올려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푸훗’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니 다들 일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누가 가서 짐을 날라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제 짝꿍 효림이 지나는 길에 날라줬습니다. 우리동네사람 동인이랑 딸기왕 정엽씨도 지나는 길에 짐을 날라서 파란이네 아버님을 감동 시켰다는군요. 그것도 파란이가 글을 남긴 지 한 시간 안쪽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동네청년 영재가 만취했습니다. 영재는 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영재는 십 년 전부터 마을살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동네친구들과 아이를 함께 키우는 상상을 하면서요. 영재는 목화장터 운영진으로 오래전부터 참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영재를 제외하면 운영진은 모두 부모님뻘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아는 독박 비스무리했습니다. 엊그제 목화장터 운영진 송년회를 했습니다. 모두 8명이 모였고 그 중 다섯은 영재 또래의 동네청년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입니까. 영재는 만취했습니다. 이날 효림도 신나게 마셨습니다. 집 가는 길에 운전은 제가 하기로 했거든요. 슬프게도 저만 온전한 정신으로 자정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영재도 집에 데려다 주었지요. 친절한 안군씨. 어서 빨리 술자리에 누구나 대취해 안전하게 집에 갈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갖춰지길 기도해 봅니다. 올해 산청은 경남도청에서 진행하는 청년 공동체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우리끼리 서로 배우며 이런저런 작당모의를 했습니다. 이 사업은 11월에 종료가 됐습니다만 우리의 작당모의는 사업종료가 무색하게 판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음악회를 하자, 이런 얘기가 나오더니 얼렁뚱땅 아티스트들이 섭외가 됐습니다. 신안초등학교에 다니는 은지랑 도산초에 다는 다예가족이랑 찬혁이 아저씨랑 그냥 동네사람들이 준비하는 찐 로컬 뮤직 페스티벌이 됐습니다. 1969년 우드스탁처럼 말이죠. 이미 관객석도 조기에 마감됐습니다. 이것도 이거고 새로이 관계 만들기 소모임, 몰래산타 등등. 왜 우리는 사업이 종료됐는데 헤어질 결심을 못하고 일을 벌이는 걸까요. 동인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신나 보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동인의 짝꿍은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기후위기와 전쟁, 그리고 야만의 시대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가 발현한 것이죠. 동인의 짝꿍 얘기를 듣자니 멀리 뉴스로만 접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우리 마을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빼앗기고 자신들의 문화가 짓밟힌 사람들의 삶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동인의 짝꿍의 아버지가 팔레스타인계라고 알려줬거든요. 액정 속 뉴스가 눈앞에 현현해 있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어머니가 유럽계라서 두 분 모두 유럽에 머물고 계신다고 합니다. 참 싱거운 일들입니다. 누군가의 짐을 날라주거나 대취해서 행복하거나 동네 사람들의 작은 음악회나 누군가의 연애만큼 일상적이고 싱거운 일들이 있을까요. 서른 살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의 사람들을 모은 일이 기적이라면 올해 파란이에게, 영재에게 일어난 일도 기적입니다. 산내 들썩에서 열린 2023년 마지막 지리산 활동가 모임에 효림을 내려주고 저는 뒷산에 올랐습니다. 바래봉에 오르고 내려오는 길 바위 뒤편에서 큰 동물의 울음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습니다. 국립공원에서 걸어놓은 반달가슴곰과 마주쳤을 때 해야 하는 행동요령에 따라 빠르고 또 조용하게 산길을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괜히 동물한테 몸이 받혀버리면 약속 시간에 효림을 데리러 가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1985년 철학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인 발 플럼우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습지를 홀로 탐험하다 악어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악어는 플럼우드의 다리를 물고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건 구사일생으로 발 플럼우드가 목숨을 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나 돼지나 닭을 먹거리로 여기지만 어떤 야생동물과 눈을 마주친 순간 우리도 먹잇감이 됩니다. 에두아르도 콘이 쓴 『숲은 생각한다』에 루나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존에 사는 루나족이 재규어를 마주쳤을 때 재규어가 사람을 자신과 같은 재규어로 바라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먹이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물까치와 나비를 그리고 고라니와 도마뱀을 나와 같이 생각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소식을 벌들이 온갖 만물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러니까 예수에게 제일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율사의 질문에 둘째로는 1) “네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는 가르침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이 싱거운 일로만 가득할 것입니다. 모쪼록 12월입니다. 체력이 떨어져 운동하면 몸만 축납니다. 술 먹는 일은 즐거운 일에서 고역이 되고 있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12월에 남겨두고 1월로 갑시다. 우리 마을은 팔레스타인입니다. 우크라이나입니다. 1) 28 그런데 율사 하나가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잘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는 다가와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가는 계명은 이렇습니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네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31 둘째가는 계명은 이렇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 계명들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
그동안 산청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산청+그림+일기〕열
글 / 안군
그림 / 효림
파란이네 부모님이 이사 왔습니다. 그것도 저랑 짝꿍이랑 결혼했던 날 말이죠. 아! 이번 글은 작년처럼 같이 살아야 할 운명인 제가 효림 대신 쓰기로 했습니다. 시월 마지막 날 오후 동네 단톡방에 파란이가 엘리베이터 없는 3층에 부모님이 이사 오신다고, 지나는 길에 짐 하나씩만 올려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푸훗’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니 다들 일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누가 가서 짐을 날라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제 짝꿍 효림이 지나는 길에 날라줬습니다. 우리동네사람 동인이랑 딸기왕 정엽씨도 지나는 길에 짐을 날라서 파란이네 아버님을 감동 시켰다는군요. 그것도 파란이가 글을 남긴 지 한 시간 안쪽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동네청년 영재가 만취했습니다. 영재는 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영재는 십 년 전부터 마을살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동네친구들과 아이를 함께 키우는 상상을 하면서요. 영재는 목화장터 운영진으로 오래전부터 참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영재를 제외하면 운영진은 모두 부모님뻘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아는 독박 비스무리했습니다. 엊그제 목화장터 운영진 송년회를 했습니다. 모두 8명이 모였고 그 중 다섯은 영재 또래의 동네청년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입니까. 영재는 만취했습니다. 이날 효림도 신나게 마셨습니다. 집 가는 길에 운전은 제가 하기로 했거든요. 슬프게도 저만 온전한 정신으로 자정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영재도 집에 데려다 주었지요. 친절한 안군씨. 어서 빨리 술자리에 누구나 대취해 안전하게 집에 갈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갖춰지길 기도해 봅니다.
올해 산청은 경남도청에서 진행하는 청년 공동체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우리끼리 서로 배우며 이런저런 작당모의를 했습니다. 이 사업은 11월에 종료가 됐습니다만 우리의 작당모의는 사업종료가 무색하게 판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음악회를 하자, 이런 얘기가 나오더니 얼렁뚱땅 아티스트들이 섭외가 됐습니다. 신안초등학교에 다니는 은지랑 도산초에 다는 다예가족이랑 찬혁이 아저씨랑 그냥 동네사람들이 준비하는 찐 로컬 뮤직 페스티벌이 됐습니다. 1969년 우드스탁처럼 말이죠. 이미 관객석도 조기에 마감됐습니다. 이것도 이거고 새로이 관계 만들기 소모임, 몰래산타 등등. 왜 우리는 사업이 종료됐는데 헤어질 결심을 못하고 일을 벌이는 걸까요.
동인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신나 보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동인의 짝꿍은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기후위기와 전쟁, 그리고 야만의 시대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가 발현한 것이죠. 동인의 짝꿍 얘기를 듣자니 멀리 뉴스로만 접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우리 마을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빼앗기고 자신들의 문화가 짓밟힌 사람들의 삶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동인의 짝꿍의 아버지가 팔레스타인계라고 알려줬거든요. 액정 속 뉴스가 눈앞에 현현해 있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어머니가 유럽계라서 두 분 모두 유럽에 머물고 계신다고 합니다.
참 싱거운 일들입니다. 누군가의 짐을 날라주거나 대취해서 행복하거나 동네 사람들의 작은 음악회나 누군가의 연애만큼 일상적이고 싱거운 일들이 있을까요. 서른 살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의 사람들을 모은 일이 기적이라면 올해 파란이에게, 영재에게 일어난 일도 기적입니다.
산내 들썩에서 열린 2023년 마지막 지리산 활동가 모임에 효림을 내려주고 저는 뒷산에 올랐습니다. 바래봉에 오르고 내려오는 길 바위 뒤편에서 큰 동물의 울음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습니다. 국립공원에서 걸어놓은 반달가슴곰과 마주쳤을 때 해야 하는 행동요령에 따라 빠르고 또 조용하게 산길을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괜히 동물한테 몸이 받혀버리면 약속 시간에 효림을 데리러 가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1985년 철학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인 발 플럼우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습지를 홀로 탐험하다 악어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악어는 플럼우드의 다리를 물고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건 구사일생으로 발 플럼우드가 목숨을 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나 돼지나 닭을 먹거리로 여기지만 어떤 야생동물과 눈을 마주친 순간 우리도 먹잇감이 됩니다. 에두아르도 콘이 쓴 『숲은 생각한다』에 루나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존에 사는 루나족이 재규어를 마주쳤을 때 재규어가 사람을 자신과 같은 재규어로 바라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먹이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물까치와 나비를 그리고 고라니와 도마뱀을 나와 같이 생각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소식을 벌들이 온갖 만물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러니까 예수에게 제일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율사의 질문에 둘째로는 1) “네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는 가르침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이 싱거운 일로만 가득할 것입니다. 모쪼록 12월입니다. 체력이 떨어져 운동하면 몸만 축납니다. 술 먹는 일은 즐거운 일에서 고역이 되고 있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12월에 남겨두고 1월로 갑시다. 우리 마을은 팔레스타인입니다. 우크라이나입니다.
1) 28 그런데 율사 하나가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잘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는 다가와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가는 계명은 이렇습니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네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31 둘째가는 계명은 이렇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 계명들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오늘은 안군)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