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기록이 될 때 〔지/작/변 식구들에게 전하는 편지〕
글, 그림 / 효림 산청의 ‘기록활동가’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한창 짐을 싸고 있었어요. 그릇이었는지 CD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두꺼운 옷을 입히는 중이었죠. 이사가 코앞이었거든요. 이것을 싼 다음 바로 저것을 싸야지, 이런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덜컥 기록을 맡겠다 했을 때도 사실 별생각 없었어요. 우선 답은 하고 나중에 생각하자, 평소 미루는 습관이 그대로 튀어나온 거죠. 겨우 날짜에 맞춰 두 번의 기록을 마쳤을 때 메일 하나를 받았어요. <지리산쌀롱> 초대장이었죠. 지리산권 안팎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 가지 주제로 대화하는 자리라 했어요. 저는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에 신청했습니다. 궁금했거든요, 기록이 무언가의 변화에 씨앗이 될 수 있을지요. 제가 글을 쓰면 누군가가 정말 읽을지를요. 어린이집으로 이사하고 살림살이 짐만 풀고 겨우 적응한 지 두 달, 환기도 필요했어요. 들썩 옆에 어여쁜 민박집이 있다는 소식도 푸른에게 전해 들은 터였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콧바람 쐬러 남원 갔다가 근처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서울에서 희영이도 만나야지, 룰루랄라 계획을 세웠어요. 오랜만에 짝꿍 없이 오롯이 보낼 저녁을 상상하니 절로 콧노래가 나오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좀 설렜습니다. 설레는 마음이 앞서서였을까, 시작보다 한 시간 일찍 남원 산내에 도착했어요. 푸르른 오월 혼자 밥집에 덩그러니 앉고 보니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어요. 갑자기 집을 팔고, 새로운 거처를 알아보고, 이사를 앞두고 계약이 깨지고, 당장 쓸 짐과 보관할 짐을 분류하고, 그림책 출판을 계약하고, 기록 활동을 시작하고, 집터에 토목공사를 하고, 동네 활동가들과 공사 현장 사람들 등 결이 다른 사람들을 한꺼번에 알게 되고... 이제 다섯 달이 흘렀는데 오 년은 훌쩍 가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어찌어찌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다독이던 순간, 지/작/변 쭈이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효림, 산청에서 아직 출발 안 했죠?” 지리산쌀롱 취소 소식이었어요. 전날 들썩에 있던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려서 공간을 폐쇄해야 한다나요. 그렇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어요. 겨우 2년 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혹(?)한 때였지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민박집도 예약했고, 다음 날 서울에도 가야 했는걸요. 우선 밥은 먹고 나중에 생각하자, 미루는 습관 그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감꽃홍시’라 불리는 민박집은 한옥을 개조해 만들었어요. 책방도 있었고요. 마당엔 텃밭 작물과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들꽃이 마구마구 피어있었어요. 삐뚤빼뚤 정겨운 풍경이 외갓집에 온 것 같았죠. 긴장이 탁 풀어져 버렸어요.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바삐 살다 갑자기 외딴 데로 똑 떨어진 기분이었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냥 거기 있었어요. 길어진 낮에 할 일도 없었기에 책방에 앉아 이리저리 뒤척이다 세 권의 책을 골랐습니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쓴 책이에요. TV와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그는 지금은 주로 픽션을 만들고 있죠. 어쩌다 보니 저는 그의 영화를 거의 다 보았습니다. 일부러 손꼽은 건 아니에요. 시간이 어설프게 남았는데 영화나 볼까, 한 적도 있고, 희영이가 같이 보자고 한 적도 있지요. 이 영화 퍽 재밌어, 누가 추천하길래 보았더니 어라, 이것도 고레에다가 만든 거잖아, 하기도 했습니다. 감독(의 영화)과는 저도 모르게 연이 깊어진 것이지요. 그러니 그의 책을 고른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의 영화에는 과연 ‘연출된’ 장면일까, 신비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는 여전히 TV와 다큐멘터리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큐멘터리’란 (취재) 대상과의 관계 지속과 그 변화를 동시 진행으로 기록해나가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애초 의도했던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결론에 이르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재미이며, 어려움이며, 자유로움이며, 다큐멘터리가 지닌 ‘위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유로운 ‘정신’은 극영화를 만들 때도 잊지 않고 싶습니다.”1) 뭐, 그렇다네요. 좋아하는 감독이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대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죠. ‘잘 찍는’ 것을 넘어서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을 남기는 사람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니까요. 매체의 차이일 뿐, 다큐멘터리와 기록 활동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확신도 생겼습니다. ‘상대의 언어로 말하려는 것’, ‘상대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 거기서부터 자신의 문체를 형성해나가는, 일견 멀리 돌아가는 듯한 행위 속에서 다큐멘터리는 반짝임을 발견합니다.2)
지리산쌀롱을 신청할 때만 하더라도 저는 글쓰기에 다소 자신감이 없었어요. 두 번의 기록은 어쩌다 나온 글이라 여겼지요. 주변에서 잘 읽었다, 감상평을 해도 막 자전거를 배운 아이에게 격려하는 말 정도로 생각했어요. 마음은 저 멀리 철인3종경기 출전을 앞두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도 깨달음은 오는구나. 이 책을 읽기 위해 오늘 여기에 왔구나. 경청하는 것, 이것만은 자신 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저는 어떤 게 ‘잘 듣는’ 건 지 오래전부터 꽤 깊이 이해하고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듣는 것만으로도 누구든지 홀릴 수 있지요(마음먹기가 쉽지 않을 뿐이죠). 경청이란 이런 거예요. 상대가 말할 때, 마치 리트머스지가 된 것처럼 그대로 흡수하는 겁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고양이를 본다든가 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니 곧 비가 오겠군, 혹은 커피 주문할 때 쿠키도 같이 시킬걸,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요. 휴대폰 만지작거리는 건 최악이고요.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어느새 주변 공기도 조금씩 변합니다. 상대와 나만이 알 수 있는 공기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리고 그의 단어와 나의 단어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연필’에 대해 말해보죠. 당신은 뒤에 조그마한 지우개가 달린 노란색 스테들러 HB 연필을 얘기해요. 고전적이고 아름다워 ‘연필다운’ 연필이라면서요. 손에 쥘 때 가볍게 감기는 느낌에 대해 말하겠죠. 나무의 질감, 필통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어설픈 손놀림으로 깎다 베인 상처 등등. 그러나 저에게 노란색 스테들러 HB 연필의 핵심은 지우개예요. 시커먼 자국이 남아 지우개 역할도 제대로 못 하더라고. 하지만 쓸데없이 뒤꽁무니에 붙어있는 모습이 모자 쓴 것 마냥 귀여웠노라고. 발그스름한 소시지 빛깔에 이끌렸다가 항상 지우고 후회했노라고. 우리는 눈이 마주치겠지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할 거고요. 그러나 점점 생각이 같지 않다는 걸 발견할 거예요.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몸’이에요. 당신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당신의 동작을 읽어요. 경청하는 저의 태도에 당신은 마음을 열어요. 인터뷰가 뭔지, 글을 쓰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언어를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고 풀어쓰는 것, 그것이 ‘기록’이라면 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세상 모든 이름을 알고 싶어. 이 둥근 별 내 곁에 있는 젖먹이 동물, 파충류와 곤충, 새와 물고기 그리고 벌레까지 다 알고 싶어. 모두를 하나하나 다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따뜻하게 맞아주고 싶어. 3)
당신을 알고 싶다, 는 마음으로 1년을 보냈어요. 기록이 쌓이며 ‘잘’ 쓰고 싶어졌고요. 해가 바뀌고 지/작/변의 사업 방향이 결정되면서 저의 기록도 인터뷰 형식에서 그림일기로 탈바꿈했지요. 올해 첫 글을 어떻게 쓸까 고심하던 중 산내 책방에서 고른 《태도가 작품이 될 때》가 떠올랐어요. 서문은 반달가슴곰 KM-53으로 시작해요. “분열증형 인간은 도박, 주변, 소수, 야성, 잡종의 성질에 가깝다. (…중략) 이들의 작업 방식은 분열증적 삶의 형태에 가까우며, 여기가 아닌 저기에 있는 산을 향해 내달리는 KM-53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과 미술을 비껴보는 태도가 이 작가들 작품의 큰 중심이다. 태도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한다.” 4)
반달가슴곰 KM-53은 이제 유명하죠(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름만이 남았네요). 이런저런 매체에 많이 소개됐고, 몇 달 전 구례에서 책도 나왔다 해요. 얌전히 주어진 곳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야성을 두르고 낯선 곳을 향해 가는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창의력은 서로 다른 분야의 것을 연결하는 데에서 나온다던가요. KM-53으로 화두를 던진 이보다 더 근사한 글을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어요. 오삼이로 시작해 태도가 작품이 되는 글로 맺어지는 흐름을 보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올해 기록은 위 책에 전적으로 영향받았어요(완성도는 별개입니다만). 결과적으로 지리산쌀롱 없는 지리산에서도 쌀롱은 열렸습니다. 기대한 바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요. 그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세 권의 책과 어마어마한 보물을 가지고요. 어찌어찌 집은 짓고, 천사와 손님이 번갈아 오가고, 집을 지어준 사람, 기록을 통해 알게 된 사람, 다른 동네 활동가까지 모두모두 친구가 되었어요. 몰아치던 파도는 잔잔해지고 상냥한 구름 몇 점이 떠 있네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해요.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레에다 감독은 말했어요, ‘영화가 변하는 게 아니라 제가 변합니다’ 5) 나의 글을 누군가가 읽을까, 그것이 삶에 영향을 미칠까, 더 이상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 글은 부족해, 더 잘 쓰고 싶어, 이런 생각도요.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하고자 단어를 찾고 문장을 고쳐나가는 것이 즐겁다면 읽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때로는 괜한 책임감과 의무감에 짓눌린 적도 있지만 메일을 보내고 며칠이 지나면 뿌듯함이 고개를 들었어요. 기록을 통해 제가 변합니다. 2년의 기록은 이제 끝을 맺습니다. 이곳은 거의 정해진 것이 없는, 공터나 마찬가지인 곳이었어요. 덕분에 여러 실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왠지 이 실험이 자양분이 되어 제 몸 구석구석 오랫동안 자리 잡을 거란 느낌이 들어요. 적당할 때 잘 꺼내쓰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언젠가 다른 형태로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때까지 모쪼록 건강하세요. 1)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p.44,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바다출판사, 2021. 2)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p.89 3) 《이름을 알고 싶어》 중에서, M.B.고프스타인 지음, 이수지 옮김, 창비, 2020. 4) 《태도가 작품이 될 때》 p.6-7, 박보나 지음, 바다출판사, 2019. 5)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p.152 |
태도가 기록이 될 때
〔지/작/변 식구들에게 전하는 편지〕
글, 그림 / 효림
산청의 ‘기록활동가’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한창 짐을 싸고 있었어요. 그릇이었는지 CD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두꺼운 옷을 입히는 중이었죠. 이사가 코앞이었거든요. 이것을 싼 다음 바로 저것을 싸야지, 이런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덜컥 기록을 맡겠다 했을 때도 사실 별생각 없었어요. 우선 답은 하고 나중에 생각하자, 평소 미루는 습관이 그대로 튀어나온 거죠.
겨우 날짜에 맞춰 두 번의 기록을 마쳤을 때 메일 하나를 받았어요. <지리산쌀롱> 초대장이었죠. 지리산권 안팎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 가지 주제로 대화하는 자리라 했어요. 저는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에 신청했습니다. 궁금했거든요, 기록이 무언가의 변화에 씨앗이 될 수 있을지요. 제가 글을 쓰면 누군가가 정말 읽을지를요.
어린이집으로 이사하고 살림살이 짐만 풀고 겨우 적응한 지 두 달, 환기도 필요했어요. 들썩 옆에 어여쁜 민박집이 있다는 소식도 푸른에게 전해 들은 터였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콧바람 쐬러 남원 갔다가 근처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서울에서 희영이도 만나야지, 룰루랄라 계획을 세웠어요. 오랜만에 짝꿍 없이 오롯이 보낼 저녁을 상상하니 절로 콧노래가 나오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좀 설렜습니다.
설레는 마음이 앞서서였을까, 시작보다 한 시간 일찍 남원 산내에 도착했어요. 푸르른 오월 혼자 밥집에 덩그러니 앉고 보니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어요. 갑자기 집을 팔고, 새로운 거처를 알아보고, 이사를 앞두고 계약이 깨지고, 당장 쓸 짐과 보관할 짐을 분류하고, 그림책 출판을 계약하고, 기록 활동을 시작하고, 집터에 토목공사를 하고, 동네 활동가들과 공사 현장 사람들 등 결이 다른 사람들을 한꺼번에 알게 되고... 이제 다섯 달이 흘렀는데 오 년은 훌쩍 가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어찌어찌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다독이던 순간, 지/작/변 쭈이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효림, 산청에서 아직 출발 안 했죠?”
지리산쌀롱 취소 소식이었어요. 전날 들썩에 있던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려서 공간을 폐쇄해야 한다나요. 그렇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어요. 겨우 2년 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혹(?)한 때였지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민박집도 예약했고, 다음 날 서울에도 가야 했는걸요. 우선 밥은 먹고 나중에 생각하자, 미루는 습관 그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감꽃홍시’라 불리는 민박집은 한옥을 개조해 만들었어요. 책방도 있었고요. 마당엔 텃밭 작물과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들꽃이 마구마구 피어있었어요. 삐뚤빼뚤 정겨운 풍경이 외갓집에 온 것 같았죠. 긴장이 탁 풀어져 버렸어요.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바삐 살다 갑자기 외딴 데로 똑 떨어진 기분이었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냥 거기 있었어요. 길어진 낮에 할 일도 없었기에 책방에 앉아 이리저리 뒤척이다 세 권의 책을 골랐습니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쓴 책이에요. TV와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그는 지금은 주로 픽션을 만들고 있죠. 어쩌다 보니 저는 그의 영화를 거의 다 보았습니다. 일부러 손꼽은 건 아니에요. 시간이 어설프게 남았는데 영화나 볼까, 한 적도 있고, 희영이가 같이 보자고 한 적도 있지요. 이 영화 퍽 재밌어, 누가 추천하길래 보았더니 어라, 이것도 고레에다가 만든 거잖아, 하기도 했습니다. 감독(의 영화)과는 저도 모르게 연이 깊어진 것이지요. 그러니 그의 책을 고른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의 영화에는 과연 ‘연출된’ 장면일까, 신비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는 여전히 TV와 다큐멘터리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큐멘터리’란 (취재) 대상과의 관계 지속과 그 변화를 동시 진행으로 기록해나가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애초 의도했던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결론에 이르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재미이며, 어려움이며, 자유로움이며, 다큐멘터리가 지닌 ‘위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유로운 ‘정신’은 극영화를 만들 때도 잊지 않고 싶습니다.”1) 뭐, 그렇다네요.
좋아하는 감독이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대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죠. ‘잘 찍는’ 것을 넘어서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을 남기는 사람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니까요. 매체의 차이일 뿐, 다큐멘터리와 기록 활동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확신도 생겼습니다.
지리산쌀롱을 신청할 때만 하더라도 저는 글쓰기에 다소 자신감이 없었어요. 두 번의 기록은 어쩌다 나온 글이라 여겼지요. 주변에서 잘 읽었다, 감상평을 해도 막 자전거를 배운 아이에게 격려하는 말 정도로 생각했어요. 마음은 저 멀리 철인3종경기 출전을 앞두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도 깨달음은 오는구나. 이 책을 읽기 위해 오늘 여기에 왔구나.
경청하는 것, 이것만은 자신 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저는 어떤 게 ‘잘 듣는’ 건 지 오래전부터 꽤 깊이 이해하고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듣는 것만으로도 누구든지 홀릴 수 있지요(마음먹기가 쉽지 않을 뿐이죠). 경청이란 이런 거예요. 상대가 말할 때, 마치 리트머스지가 된 것처럼 그대로 흡수하는 겁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고양이를 본다든가 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니 곧 비가 오겠군, 혹은 커피 주문할 때 쿠키도 같이 시킬걸,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요. 휴대폰 만지작거리는 건 최악이고요.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어느새 주변 공기도 조금씩 변합니다. 상대와 나만이 알 수 있는 공기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리고 그의 단어와 나의 단어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연필’에 대해 말해보죠. 당신은 뒤에 조그마한 지우개가 달린 노란색 스테들러 HB 연필을 얘기해요. 고전적이고 아름다워 ‘연필다운’ 연필이라면서요. 손에 쥘 때 가볍게 감기는 느낌에 대해 말하겠죠. 나무의 질감, 필통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어설픈 손놀림으로 깎다 베인 상처 등등. 그러나 저에게 노란색 스테들러 HB 연필의 핵심은 지우개예요. 시커먼 자국이 남아 지우개 역할도 제대로 못 하더라고. 하지만 쓸데없이 뒤꽁무니에 붙어있는 모습이 모자 쓴 것 마냥 귀여웠노라고. 발그스름한 소시지 빛깔에 이끌렸다가 항상 지우고 후회했노라고.
우리는 눈이 마주치겠지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할 거고요. 그러나 점점 생각이 같지 않다는 걸 발견할 거예요.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몸’이에요. 당신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당신의 동작을 읽어요. 경청하는 저의 태도에 당신은 마음을 열어요. 인터뷰가 뭔지, 글을 쓰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언어를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고 풀어쓰는 것, 그것이 ‘기록’이라면 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을 알고 싶다, 는 마음으로 1년을 보냈어요. 기록이 쌓이며 ‘잘’ 쓰고 싶어졌고요. 해가 바뀌고 지/작/변의 사업 방향이 결정되면서 저의 기록도 인터뷰 형식에서 그림일기로 탈바꿈했지요. 올해 첫 글을 어떻게 쓸까 고심하던 중 산내 책방에서 고른 《태도가 작품이 될 때》가 떠올랐어요. 서문은 반달가슴곰 KM-53으로 시작해요.
반달가슴곰 KM-53은 이제 유명하죠(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름만이 남았네요). 이런저런 매체에 많이 소개됐고, 몇 달 전 구례에서 책도 나왔다 해요. 얌전히 주어진 곳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야성을 두르고 낯선 곳을 향해 가는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창의력은 서로 다른 분야의 것을 연결하는 데에서 나온다던가요. KM-53으로 화두를 던진 이보다 더 근사한 글을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어요. 오삼이로 시작해 태도가 작품이 되는 글로 맺어지는 흐름을 보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올해 기록은 위 책에 전적으로 영향받았어요(완성도는 별개입니다만).
결과적으로 지리산쌀롱 없는 지리산에서도 쌀롱은 열렸습니다. 기대한 바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요. 그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세 권의 책과 어마어마한 보물을 가지고요. 어찌어찌 집은 짓고, 천사와 손님이 번갈아 오가고, 집을 지어준 사람, 기록을 통해 알게 된 사람, 다른 동네 활동가까지 모두모두 친구가 되었어요. 몰아치던 파도는 잔잔해지고 상냥한 구름 몇 점이 떠 있네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해요.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레에다 감독은 말했어요, ‘영화가 변하는 게 아니라 제가 변합니다’ 5) 나의 글을 누군가가 읽을까, 그것이 삶에 영향을 미칠까, 더 이상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 글은 부족해, 더 잘 쓰고 싶어, 이런 생각도요.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하고자 단어를 찾고 문장을 고쳐나가는 것이 즐겁다면 읽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때로는 괜한 책임감과 의무감에 짓눌린 적도 있지만 메일을 보내고 며칠이 지나면 뿌듯함이 고개를 들었어요. 기록을 통해 제가 변합니다.
2년의 기록은 이제 끝을 맺습니다. 이곳은 거의 정해진 것이 없는, 공터나 마찬가지인 곳이었어요. 덕분에 여러 실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왠지 이 실험이 자양분이 되어 제 몸 구석구석 오랫동안 자리 잡을 거란 느낌이 들어요. 적당할 때 잘 꺼내쓰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언젠가 다른 형태로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때까지 모쪼록 건강하세요.
1)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p.44,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바다출판사, 2021.
2)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p.89
3) 《이름을 알고 싶어》 중에서, M.B.고프스타인 지음, 이수지 옮김, 창비, 2020.
4) 《태도가 작품이 될 때》 p.6-7, 박보나 지음, 바다출판사, 2019.
5)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p.152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