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결혼식을 치르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하동의 홍반장을 꿈꾸는 준형 씨와 씩씩하고 싹싹한 명희 씨의 우당탕탕 결혼식 글 / 양지영 하동군 고전면 죽전마을. 소를 키우고 벼농사를 짓는 작은 시골집에 경사가 있었다. 딸부잣집 둘째 딸 시집보내는 날이었다는데. 키우던 깨를 급히 털어 밭을 갈아 엎고 소밥으로 발효 중이었던 곤포를 풀어 볏짚을 깔고, 하우스 뼈대에 농사용 하얀 부직포 레이스를 달아 예식장을 만들었다는 ‘21세기 좌충우돌 우당탕탕 시골 결혼식’ 현장에 다녀왔다. 하동의 홍반장을 꿈꾸는 준형 씨와 씩씩하고 싹싹한 명희 씨가 함께하는 새로운 매일을 다짐하던, 평범하지 않은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한다. 사실 이들의 결혼식이 시골 마을에서 치러지기까지 현실적인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결혼식장에서 결혼하기를 원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으며, 이제는 흔한 이야기인 ‘스몰웨딩이 훨씬 일이 많다’는 이야기도 사실로 검증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소박한 결혼식이면서도 오실 하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신경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는데. 그래도 특별한 결혼식이어서 재미있었던 일들이 훨씬 많았단다. 첫 번째로 결혼식의 돈 먹는 하마인 ‘스드메’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고작 36만 6천 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온통 아름다운 곳 투성이인 하동에서 스튜디오 촬영 따위는 필요 없었다. 신랑의 오랜 친구가 하동 곳곳을 함께 누비며 웨딩촬영을 해주었고, 드레스에는 명희 씨가 온라인쇼핑(?)으로 총 6만 3천 원을 지불했다. 미니드레스 3만 원, 피로연에 입을 가디건 3만 원, 면사포 3천 원! 이 중 가장 지출이 컸던 건 신랑의 예복 30만 원이었다. 메이크업과 헤어는 신부의 친구들이 해주었는데, 친구들의 허접한 솜씨에도 개의치 않는 신부 명희 씨의 쿨함이 돋보였다. 결혼식 전체에 든 비용은 케이터링 200만 원, 주류 40만 원, 테이블과 의자 대여 27만 원, 천막 등 구매에 50만 원, 부모님께서 준비한 음식값 70만 원, 식장을 꾸미기 위해 다이소에서 구매한 재료 10만 원가량 총 400만 원이 좀 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2017년에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평균 결혼식 비용은 4,590만 원이었으니 10분의 1의 파격적인 비용이 아닐 수 없다. 하객용 의자는 시골 야외 결혼식의 분위기를 위해서 캠핑 의자를 준비했는데, 정말 하동, 구례, 남원 곳곳으로 신랑 신부가 부지런히 공수하러 다녔다. 가장 많은 의자를 빌려주었던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그러한 연유로 신랑신부는 이 글 작성에 동의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하). 그리고 하동군 적량면 서당마을. 펜션 하는 구례 친구집네 의자, 카페 하는 악양 친구집네 의자. 전시에 전쟁용 차량으로 SUV를 징발하듯 온 동네 캠핑 의자란 캠핑 의자는 다 모았다. 두 번째는 초보 농사꾼인 준형 씨와 명희 씨가 처음으로 수확한 농산물로 손수 답례품을 만들어 하객들에게 드린 일이다. 준형 씨가 수확하고 담은 ‘사위 매실청’, 명희 씨가 꺾고 삶아 말린 ‘딸 고사리’, 신부 아버지께서 농사지은 ‘아빠햅쌀’까지. 우리 이렇게 앞으로도 정성스럽게 잘 살아갈게요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세 번째로 어벤져스 같았던 친구 군단. 우선 사진을 찍어주었던 사진 전공의 신랑 친구 ‘대웅’씨. 웨딩 촬영부터 결혼식 현장 사진까지. 신랑을 빨리 장가보내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과 두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담겨서인지, 웨딩촬영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것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사진들이 나왔다. 그리고 축하 메시지 아트월을 그려주고 결혼식 곳곳의 안내 문구를 써주었던 ‘무려’ 그림책 작가의 등판. 또 각종 행사기획 및 운영에 능한 전직 행사 전문가 친구들이 신랑 신부와 함께 식장이 될 신부집 이곳저곳을 꾸며 주었고, 결혼식 영상도 만들어 주었다. 또 신부의 큰아버지와 동네 삼촌들. 바닥에 볏짚을 깔고 비닐하우스 대에 농사용 부직포를 감싸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애들’의 일도 기꺼이 함께 해주셨다. 큰어머니와 동네 이모들은 하객들의 음식을 손수 마련해주셨다. 화룡점정은 준형씨와 명희씨의 대부라 일컬어지는 ‘서훈기’님과 사모님의 화훼장식. 사모님께서는 심지어 화훼장식기능사를 보유한 악양의 숨은 고수다. 결혼식 전날 양재꽃시장까지 가서 꽃을 직접 공수해 오셨다고 한다. 하동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장식이 아니었을까 한다. 서훈기님은 신랑 신부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함께 수많은 산을 올라주었는데, 이 둘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일등 공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을 좋아하는 명희 씨가 하동에 내려와서 하동 제일 산꾼 서훈기님을 따라 함께 산을 다녔고, 명희 씨에게 사심(?)이 있던 준형 씨는 부지런히 동행했다. 그렇게 그 둘은 사랑에 빠졌고, 함께 농사지으며 살기로 약속했다. 초보 농사꾼인 이 둘에게 농사 스승이기도 하시다. 또 이들을 아끼는 화개양조장 ‘이근왕’ 사장님께서 조준형 김명희 결혼식 특별에디션 축하주까지 손수 빚어주셨다고 한다. 이 친구도 빼놓을 수 없다. 도무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결혼식의 사회를 봐준 전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지호’ 씨. 아니나 다를까 미리 준비한 스피커의 음량은 넓디넓은 식장에서 작은 속삭임으로 들렸고, 식장 곳곳에 퍼져 나름대로 결혼식을 즐기고 계시던 하객들에게 전혀 전달이 되지 않았는데, 결국 사회자는 앰프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회를 봐야 했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신랑 입장! 신부 입장!을 하객들에게 모두 함께 외치자는 기지를 발휘해 한층 재밌는 결혼식을 만들어 주었다. 네 번째, 정말 명희 씨 다운 등장이었다. 신부 입장. 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랙터의 바구니에 실려 왔는데, 좋은 날 아버지께서 약주를 많이 하신 터라 바구니를 거는 일은 신부의 삼촌이 대신해 주셔야 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신부를 싣고 가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헤아려 보다가 조금 슬퍼졌는데 그러다 결국 웃음이 터졌다. 아버지는 딸을 트랙터에 태워 시집 보내실 것을 상상이나 해보셨을까 하고 말이다. 결혼식 마지막에는 신랑 신부에게 건네는 가족, 친구들의 덕담과 축사가 있었다. 결혼식장의 계약된 시간 때문에 짧게 하고 마는 축사와 달리 준형 씨와 명희 씨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을 축복하는 예쁘고 고운 말을 많이 건넬 수 있었던 따뜻한 시간이었다. 준형 씨와 명희 씨도 이 시간만큼은 긴장을 풀고 앉아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그 응원들에 화답했다. 이날 결혼식 1부가 끝나자마자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후드득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비가 오면 어쩌죠?’라는 물음에 명희 씨는 ‘없던 일로 해요!’라 대답했었는데, 1부가 끝났고 이미 성혼 선언도 한 터라 그럴 수는 없었다. 거짓말처럼 2부가 곧 시작된다는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는 그쳤고 2부 순서인 가족, 친구들의 덕담과 축사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준형 씨와 명희 씨는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는데, 준형 씨는 이런 날이 올 수 있었던 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신 덕이라는 말을 하며 목이 메어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준형 씨와 명희 씨의 특별한 결혼식을 기록하며 느낀 나의 생각도 같았다. 두 사람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축복이 이렇게나 따뜻한 날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걸 보면 이 두 사람 ‘이 곳 하동에서 참 잘 살아왔구나’ 그리고 또 ‘잘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신부의 아버지는 이렇게 바빴던 가을걷이는 없으셨을 것 같다. 추수할 일도 큰일인데 둘째 딸내미가 결혼식을 집에서 한다고 하니 말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늘 누추하기만 한 ‘우리 집‘을 결혼식장으로 선뜻 내어주신 어머니의 마음도 사랑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준형 씨와 명희 씨는 전국 일주 신혼여행 중이다. 원래는 한 달을 계획했었다는데,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3일 만에 이들의 밭에 단감 딸 때가 되었다는 소식에 급히 돌아와 단감을 따고, 일주일 전 다시 떠났다. 그리고 이제, 이들의 밭은 지금 대봉감 딸 때가 되었다. 아무래도 한 달은 어렵겠다. |
한 번의 결혼식을 치르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하동의 홍반장을 꿈꾸는 준형 씨와 씩씩하고 싹싹한 명희 씨의 우당탕탕 결혼식
글 / 양지영
하동군 고전면 죽전마을. 소를 키우고 벼농사를 짓는 작은 시골집에 경사가 있었다. 딸부잣집 둘째 딸 시집보내는 날이었다는데. 키우던 깨를 급히 털어 밭을 갈아 엎고 소밥으로 발효 중이었던 곤포를 풀어 볏짚을 깔고, 하우스 뼈대에 농사용 하얀 부직포 레이스를 달아 예식장을 만들었다는 ‘21세기 좌충우돌 우당탕탕 시골 결혼식’ 현장에 다녀왔다.
하동의 홍반장을 꿈꾸는 준형 씨와 씩씩하고 싹싹한 명희 씨가 함께하는 새로운 매일을 다짐하던, 평범하지 않은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한다.
사실 이들의 결혼식이 시골 마을에서 치러지기까지 현실적인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결혼식장에서 결혼하기를 원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으며, 이제는 흔한 이야기인 ‘스몰웨딩이 훨씬 일이 많다’는 이야기도 사실로 검증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소박한 결혼식이면서도 오실 하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신경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는데.
그래도 특별한 결혼식이어서 재미있었던 일들이 훨씬 많았단다. 첫 번째로 결혼식의 돈 먹는 하마인 ‘스드메’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고작 36만 6천 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온통 아름다운 곳 투성이인 하동에서 스튜디오 촬영 따위는 필요 없었다. 신랑의 오랜 친구가 하동 곳곳을 함께 누비며 웨딩촬영을 해주었고, 드레스에는 명희 씨가 온라인쇼핑(?)으로 총 6만 3천 원을 지불했다.
미니드레스 3만 원, 피로연에 입을 가디건 3만 원, 면사포 3천 원! 이 중 가장 지출이 컸던 건 신랑의 예복 30만 원이었다. 메이크업과 헤어는 신부의 친구들이 해주었는데, 친구들의 허접한 솜씨에도 개의치 않는 신부 명희 씨의 쿨함이 돋보였다.
결혼식 전체에 든 비용은 케이터링 200만 원, 주류 40만 원, 테이블과 의자 대여 27만 원, 천막 등 구매에 50만 원, 부모님께서 준비한 음식값 70만 원, 식장을 꾸미기 위해 다이소에서 구매한 재료 10만 원가량 총 400만 원이 좀 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2017년에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평균 결혼식 비용은 4,590만 원이었으니 10분의 1의 파격적인 비용이 아닐 수 없다.
하객용 의자는 시골 야외 결혼식의 분위기를 위해서 캠핑 의자를 준비했는데, 정말 하동, 구례, 남원 곳곳으로 신랑 신부가 부지런히 공수하러 다녔다. 가장 많은 의자를 빌려주었던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그러한 연유로 신랑신부는 이 글 작성에 동의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하). 그리고 하동군 적량면 서당마을. 펜션 하는 구례 친구집네 의자, 카페 하는 악양 친구집네 의자. 전시에 전쟁용 차량으로 SUV를 징발하듯 온 동네 캠핑 의자란 캠핑 의자는 다 모았다.
두 번째는 초보 농사꾼인 준형 씨와 명희 씨가 처음으로 수확한 농산물로 손수 답례품을 만들어 하객들에게 드린 일이다. 준형 씨가 수확하고 담은 ‘사위 매실청’, 명희 씨가 꺾고 삶아 말린 ‘딸 고사리’, 신부 아버지께서 농사지은 ‘아빠햅쌀’까지. 우리 이렇게 앞으로도 정성스럽게 잘 살아갈게요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세 번째로 어벤져스 같았던 친구 군단. 우선 사진을 찍어주었던 사진 전공의 신랑 친구 ‘대웅’씨. 웨딩 촬영부터 결혼식 현장 사진까지. 신랑을 빨리 장가보내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과 두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담겨서인지, 웨딩촬영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것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사진들이 나왔다.
그리고 축하 메시지 아트월을 그려주고 결혼식 곳곳의 안내 문구를 써주었던 ‘무려’ 그림책 작가의 등판. 또 각종 행사기획 및 운영에 능한 전직 행사 전문가 친구들이 신랑 신부와 함께 식장이 될 신부집 이곳저곳을 꾸며 주었고, 결혼식 영상도 만들어 주었다.
또 신부의 큰아버지와 동네 삼촌들. 바닥에 볏짚을 깔고 비닐하우스 대에 농사용 부직포를 감싸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애들’의 일도 기꺼이 함께 해주셨다. 큰어머니와 동네 이모들은 하객들의 음식을 손수 마련해주셨다.
화룡점정은 준형씨와 명희씨의 대부라 일컬어지는 ‘서훈기’님과 사모님의 화훼장식. 사모님께서는 심지어 화훼장식기능사를 보유한 악양의 숨은 고수다. 결혼식 전날 양재꽃시장까지 가서 꽃을 직접 공수해 오셨다고 한다. 하동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장식이 아니었을까 한다.
서훈기님은 신랑 신부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함께 수많은 산을 올라주었는데, 이 둘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일등 공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을 좋아하는 명희 씨가 하동에 내려와서 하동 제일 산꾼 서훈기님을 따라 함께 산을 다녔고, 명희 씨에게 사심(?)이 있던 준형 씨는 부지런히 동행했다. 그렇게 그 둘은 사랑에 빠졌고, 함께 농사지으며 살기로 약속했다. 초보 농사꾼인 이 둘에게 농사 스승이기도 하시다.
또 이들을 아끼는 화개양조장 ‘이근왕’ 사장님께서 조준형 김명희 결혼식 특별에디션 축하주까지 손수 빚어주셨다고 한다.
이 친구도 빼놓을 수 없다. 도무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결혼식의 사회를 봐준 전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지호’ 씨. 아니나 다를까 미리 준비한 스피커의 음량은 넓디넓은 식장에서 작은 속삭임으로 들렸고, 식장 곳곳에 퍼져 나름대로 결혼식을 즐기고 계시던 하객들에게 전혀 전달이 되지 않았는데, 결국 사회자는 앰프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회를 봐야 했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신랑 입장! 신부 입장!을 하객들에게 모두 함께 외치자는 기지를 발휘해 한층 재밌는 결혼식을 만들어 주었다.
네 번째, 정말 명희 씨 다운 등장이었다. 신부 입장. 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랙터의 바구니에 실려 왔는데, 좋은 날 아버지께서 약주를 많이 하신 터라 바구니를 거는 일은 신부의 삼촌이 대신해 주셔야 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신부를 싣고 가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헤아려 보다가 조금 슬퍼졌는데 그러다 결국 웃음이 터졌다. 아버지는 딸을 트랙터에 태워 시집 보내실 것을 상상이나 해보셨을까 하고 말이다.
결혼식 마지막에는 신랑 신부에게 건네는 가족, 친구들의 덕담과 축사가 있었다. 결혼식장의 계약된 시간 때문에 짧게 하고 마는 축사와 달리 준형 씨와 명희 씨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을 축복하는 예쁘고 고운 말을 많이 건넬 수 있었던 따뜻한 시간이었다. 준형 씨와 명희 씨도 이 시간만큼은 긴장을 풀고 앉아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그 응원들에 화답했다.
이날 결혼식 1부가 끝나자마자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후드득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비가 오면 어쩌죠?’라는 물음에 명희 씨는 ‘없던 일로 해요!’라 대답했었는데, 1부가 끝났고 이미 성혼 선언도 한 터라 그럴 수는 없었다. 거짓말처럼 2부가 곧 시작된다는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는 그쳤고 2부 순서인 가족, 친구들의 덕담과 축사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준형 씨와 명희 씨는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는데, 준형 씨는 이런 날이 올 수 있었던 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신 덕이라는 말을 하며 목이 메어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준형 씨와 명희 씨의 특별한 결혼식을 기록하며 느낀 나의 생각도 같았다. 두 사람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축복이 이렇게나 따뜻한 날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걸 보면 이 두 사람 ‘이 곳 하동에서 참 잘 살아왔구나’ 그리고 또 ‘잘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신부의 아버지는 이렇게 바빴던 가을걷이는 없으셨을 것 같다. 추수할 일도 큰일인데 둘째 딸내미가 결혼식을 집에서 한다고 하니 말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늘 누추하기만 한 ‘우리 집‘을 결혼식장으로 선뜻 내어주신 어머니의 마음도 사랑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준형 씨와 명희 씨는 전국 일주 신혼여행 중이다. 원래는 한 달을 계획했었다는데,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3일 만에 이들의 밭에 단감 딸 때가 되었다는 소식에 급히 돌아와 단감을 따고, 일주일 전 다시 떠났다. 그리고 이제, 이들의 밭은 지금 대봉감 딸 때가 되었다. 아무래도 한 달은 어렵겠다.
글쓴 사람. 지읒이응
네 살 된 바둑이라는 강아지를 같이 키우고 있는 양지영과 정진이가 함께, 번갈아 씁니다. 때때로 루미큐브를 목숨을 걸고 합니다. 각자 어쩌다 흘러들어온 하동에서 이제는 함께 어떻게 잘 살아볼까 궁리하며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