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하동] 이 해가 다 지나가버리기전에 꼭 물어야겠다. 당신의 안부.

2024-01-11

 

 

이 해가 다 지나가버리기전에 꼭 물어야겠다. 당신의 안부.

 

글 / 양지영

 

 

 

 

왜 사람들은 한 해의 끝에 잊고 지냈던 사람들이 떠오르는걸까. 언제든 전화 한통이면 반가운 인사를 전할 수 있었는데. 꼭 연말을 핑계삼아 멋쩍은 웃음 지으며 ‘산다고 바빠서 연락도 못드렸네요’ 라는 말에 숨어 슬며시 안부를 묻는걸까. 그래도 이 해가 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꼭 물어야겠다. 당신의 안부. 

 

 

낯선 곳에서 평생을 살기로 다짐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다가도 쓸쓸해지고마는 어느날에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그로써 하동에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따뜻한 하동 사람들. 그래도 가끔은 굳은 마음도 길을 잃는 법이다. 내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물어보았다. 당신에게. 

 

 

‘차 한 잔 마시러 가도 될까요?’ 

오늘 나는 당신의 안부를 묻고, 요즘 사는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라는 하동 사람들만의 비밀 시그널. 그 말로 당신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 따뜻한 차와 마음을 나누었다. 

 

 

 

 

# ‘상중대마을로, 나의 삼수어머니를 만나러’

 

 

‘어머니, 오랜만에 집에 놀러갈라는데 복지관 하루만 땡땡이 치시면 안될까요?’

나의 전화에 전날부터 ‘아이고 누구 하나 데리고 올란갑다’ 하고 아버지와 기대에 찬 밤을 보내셨다는 나의 삼수어머니. 혼자 등장한 나를 보고 ‘왜 혼자오노!’ 하고 등짝을 시원하게 때리신다. 아, 여기가 아닌가보다 돌아갈까 잠깐 고민했다. 잔소리소굴에 제발로 들어왔다니. 

 

 

그녀는 당신의 나이듦이 보석처럼 빛나서 ‘나 여자로 태어나길 잘했다’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었다. 나도 언젠가 저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서. 77세의 연세에 고된 시집살이 어디에 있었을까 싶었을 만큼 해맑은 미소, 세상에 내놓아질 수 없었던 당신의 반짝반짝 하는 재능들. 그리고 그녀의 세월만큼 한없이 깊고 넓고 따뜻한 품까지. 

 

 

 

사진1.jpg

재능넘치는 그녀의 미술작품

 

 

 

사진2.jpg

그녀가 뛰어나오기 3초전

 

 

 

“어떻게 지내셨어요”

“요즘은 뭐 복지관에 자주 나가지. 밭일도 쪼깸씩하고 그래. 동네 다님시롱 국악도 하러 댕기고. 복지관에 가서 아버지랑 탁구도 치고 나는 또 미술도 하고 일주일에 한번썩. 논다고 참 바빴다”

 

 

“얼굴이 좋네, 아픈덴 없지요? 아버지도?”

“아픈데 없어~ 인제 일도 쪼깸만 하고 놀러댕깅께네 아플 일이 없제~ 아버지도 아픈데는 없는디 술을 쪼깸씩 잡솨. 것도 자석들이 아버지 자꾸 술 자시면 일찍 세상 베링께 잔소리를 해싸서 마이 안자시~”

 

 

 

 

사진3.jpg

사위가 보내준 귀한 거 다 나온다.

 

 

 

나의 안부도 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질문으로 시작해도 모든 답이 ‘시집을 언제 갈끼고’로 끝나는 이상한 오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져 와 식혜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어머니, 시집안가고도 잘 살라면 어떻게 해야되냐니깐뇨~”

“그건 방법이 없제. 니 어매가 말은 못해도 올매나 속이 상하겄노. 누구하나 옆에 두고 마음 팍 놓게 해드리는게 잘 사는기제”

 

 

옆에서 아버지가 거드신다.

 

 

“둘이 자몬 이래 날이 차바도 춥지도 않당께네. 불도 안때도 된다.”

“나 이제 시집 안가고는 다시 어머니 아버지 보러 이 집에 놀러 못오겠네. 다음에 아무나 데리고 다시 놀러올께요.” 

 

 

아직은 결혼 계획이 없는 나는 아무 건장한 남자나 옆에 달고 가지 않는 한 다시 우리 삼수어머니를 뵈러 가는 일이 쉽지 않겠다. 그날까지 모쪼록 건강하시고 늘 따뜻하시기를. 

 

 

 

 

#매계마을로, 연지쌤을 만나러 

 

 

그녀를 떠올리면 허수경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시인의 시처럼 담백하고 따스한 사람. 허수경 시인의 시선집을 한 권 골라 작년에 새롭게 이사하셨다는 선생님의 공방으로 향했다. 언제든, 누구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차실. 바닥은 차가워도 나누는 차 한잔에 몸과 마음이 금새 데워진다. 그녀와 대화하면 나 자신에게 가혹해져 나를 비난하던 못된 마음들도 어디론가 싹 도망가버린다. 그녀는 나에게 칭찬만 하기 때문이다. 아 – 오늘은 어떤 따뜻한 칭찬폭격이 이어질까. 

 

 

 

사진4.jpg

수수한 선생님의 공간은 언제나 편안함을 준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요즘은 마을협력가 활동에 바빠서 눈코 뜰새 없었지. 마을일도 같이 하고 있으니 더 바빴어. 요즘은 수도 통 못놨어.”

 

 

“올해 마을에서 했던 체력없는 체육대회 너무 재밌었잖아요.”

“그래. 너네 참 잘했지. 어르신들이랑 청년들이랑 다같이 노는 모습이 진짜 좋았잖아. 어르신들이랑 잘 놀아드리는게 최고인 것 같아. 올해 마을에 어르신들이 다섯분이 돌아가셨거든. 이게 진짜 자리가 팍팍팍 비어간다는 실감이 들더라고 올해는. 이거 진짜 마을공동화 현상이 생길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기는거야. 마을회관에 늘 나오시는 어르신들도 내년이면 3분의 1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에 어르신들이랑 잘 놀아드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함께 놀아드리는 우리도 그게 즐거워야해. 그래야 오래도록할 수 있는거지. 누구하나만 즐거워선 안된다고 생각해.”

 

 

”체육대회도 그렇고 요즘에 다른파도 친구들이 마을에서 애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어르신들이야 즐겁고 마을에도 그런 일들이 생겨서 재밌는데, 이걸 운영하는 아이들은 정말 즐거울까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거든. 얼마전에 우리 수요밥상(매계마을 주민들은 매주 수요일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에 아이들이 와서 밥했잖아. 우린 너무 고맙고 맛있게 잘 먹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힘들지 않냐 물었더니 해볼만한데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마을 어르신들도 그날 스파게티니 샐러드니 익숙하지 않은 음식인데도 고맙다, 맛있다 아이들에게 인사해주는 걸 보니 우리 마을도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 느꼈어. 우리 세대가 마을을 책임질 수 없거든. 다음 세대가 따라와줘야 하는데, 그래서 청년뿐 아니라 우리 세대도 청년들과 어떻게 함께 할지 고민을 많이 해야해.“ 

 

 

 

사진5.jpg

아 따뜻하다 몸도 마음도

 

 

 

”올해 마을협력가 일하시면서는 어떠세요? 살고 계시는 매계마을로 배정받으신거죠?“

”우리 마을에서 원래 활동을 하고 있어서 마을에서 활동을 계속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 마을에서만 계속 활동을 하니까 이번에 마을협력가 배정받을 때, 다른 마을로 배정받았다면 다른 마을에서 배울점 또 다른 자극들을 받아서 우리 마을에서 더 잘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계기도 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어. 당연히 우리마을에서 활동해야지 했던 것도 어떻게보면 좀 갇힌 생각일 수 있었다는 깨달음도 얻었지.“ 

 

 

”매계마을보다 더 잘하는 마을이 있어요?“(매계마을은 살짝 사기캐릭터다. 아무런 사업 없어도 마을에서 그냥 으쌰으쌰하면서 지내고, 재밌는 일이 늘 있다.) 

”왜 없겠어. 다 모르잖아. 그래서 더 경험이 중요한거지.“ 

 

 

한참 마을의 세대교체 이야기, 오래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선생님,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지금처럼 살면 돼~ 지금 잘 살고 있는데.“

 

 

사실은 이 대답을 원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그렇다. 2023년 한해의 끝에 연지쌤의 말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전한다. 내년에도 지금처럼만 잘 살면 될거에요! 

 

 

 

 

#탑리마을로, 친구가 되어 기쁜 유경을 만나러

 

 

하동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 청년이 무작정 서울 생활을 접고 하동으로 귀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집만 구해서 여행와 좋았던하동으로 내려오겠다 결정을 했다고 했다. 도시에서의 숨가쁜 삶에 아무래도 숨이 많이 찼던 것 같다. 마침 나는 살던 월셋집을 빼고 이사계획이 있어 내가 살던 월셋집을 소개했다. 남은 이삿짐을 빼며 너에게 말그대로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하는 나의 옛집을 정성스레 청소했다. 2.5톤 차에 짐을 싣고 너는 그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됐다. 무려 동갑내기! 이제는 네가 이곳 하동에서 너의 속도대로 천천히 호흡하며 살길 바란다. 하동으로 내려온지 두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너의 안부를 물으러 너의 집으로 갔다.

 

 

 

사진6.jpg

아기자기 귀여운 너같은 너의 공간

 

 

 

하동에 온 지 두달 됐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어?

 

 

하동에 온 이후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이 계속해서 내가 지역에서 쓰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여기서 잡초만 뽑아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뭘해야 효과적일까 생각을 하고 있어. 내 모양을 찾아야할 것 같아. 그래서 나다운게 좀 절실해졌어. 예전엔 잘하는게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속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도 들고 말야. 

 

 

그런데, 하동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어떻게 여기로 결정했어?

 

 

집세를 감당하느라 일을 길게 하지 않아도 되고, 자연을 바라보면서 마음도 쉬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로컬로 내려가고 싶었어. 굳이 하동이었던건,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곳이여서 뭔가 갇혀있지 않고 흐르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달까. 여기에서 나다움이랑 내 속도를 찾고 싶어. 

 

 

두달 동안 하동에서 지내면서 너에게 일어난 변화 같은게 있었어? 

 

 

삶의 속도가 확 변했잖아. 또 좋은 이웃들도 만났고. 그래서 생각에 틈이 많이 생긴 것 같아. 그동안 치여서 묶어뒀던,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했어. 잃어버린 집중력도 찾아가고 있고. 서울에서 가득 채웠던 조급함과 욕심이 비워지면서 내 리듬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이 리듬은 어떤 연주가 되어 내 삶에 다가올까 궁금해져. 

 

 

정말 잘왔어. 여기의 삶이 너의 말대로 모두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런데 여기에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계속 되더라구. 그래서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질문 말야.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건 없는 것 같아. 살아오는 동안 여러 방법으로 사는 것을 시도해보고 있는데, 나는 항상 인생을 한 장의 그림이나 음악으로 보는 상상을 하곤 하거든. 그랬을 때 내 인생은 다양한 색채나 변주가 있었으면 해. 

 

 

 

 

사진7.jpg

너는 하동에 와 강아지 친구도 생겼지!

 

 

 

너는 너 자신을 잃어버려 이곳 하동으로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너와 대화를 나눈 후 내 생각은 너는 너 자신을 꽤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거였다. 아파야할 때 아팠고 나아야할 때 나을 수 있는 곳으로 용감히 떠나온, 너만의 트랙에서 너의 속도를 찾아가며 잘 달려가고 있는 너. 하동의 바람이, 사람이, 섬진강이, 지리산이 아니 하동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너에게 위로와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기를. 

 

 

더 많은 하동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곧 연말 핑계의 안부인사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2024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자주 안부를 묻고, 차 얻어마시고, 부둥켜 안아야지 생각한다. 

 

 

 

 

 

글쓴 사람. 지읒이응

네 살 된 바둑이라는 강아지를 같이 키우고 있는 양지영과 정진이가 함께, 번갈아 씁니다. 때때로 루미큐브를 목숨을 걸고 합니다. 각자 어쩌다 흘러들어온 하동에서 이제는 함께 어떻게 잘 살아볼까 궁리하며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