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요? 우린 스스로 만들어 즐깁니다” 슬렁슬렁 동네 산책 ② 글 / 자야 시선 가닿는 모든 자리가 황홀한 계절이다. 근사한 풍경을 찾아 굳이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충분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고만 싶은 이때. 지난 5월의 어느 날처럼 배낭에 노트와 펜을 챙겨 들고 동네 속으로,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슬렁슬렁 동네 산책 ‘봄 편’에 이어 다섯 달 만에 떠나는 ‘가을 편’에서는 삶에 풍미와 윤기를 더하는 다양한 문화 활동에 나선 이들을 만나본다. 동아리를 만들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카페순례를 통해 관계를 깊이 쌓아가는 사람,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라며 틈틈이 공동체상영을 시도하는 모임, 그리고 학교와 학원 말고는 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 문화체험이 가능한 공간을 열어준 사람까지. 뭐든 돈으로 ‘소비’하는 시대에 문화의 ‘자급자족’을 꾀하는 이들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하나같이 풍성하게 익어 가는 가을 들녘을 닮아 있었다. 지역 내 ‘시네마천국’을 꿈꾸는 사람들 – 영화상영모임 <함달극장> 대표 이재영 
<함달극장>이 처음으로 상영한 영화 ‘아치의 노래’를 보기 위해 함양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 모인 사람들. 함양엔 영화관이 없다. 도심에 흔한 복합상영관은커녕 웬만한 군에 하나씩 있는 작은영화관도 없다.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때때로 대형상영관의 영화들을 올리긴 하지만, 볼 수 있는 작품이나 시간대 등 모든 게 제한적이다. 컴퓨터로 다운받아 보면 되지 않느냐고? 모든 게 ‘손안에서’ 해결되는 세상에 뭐하러 귀찮게 나가서 영화를 보려 하느냐고?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텐데, 그럼에도 ‘극장’에서 ‘함께’ 영화 보기를 고집하는 <함달극장>은 그 명맥을 일 년 넘게 꿋꿋이 이어가는 중이다. “정태춘 씨 다큐인 ‘아치의 노래’가 작년에 나왔잖아요. 그즈음에 남자들 대여섯 명이 모여 술 마시는 자리가 있었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 영화 보고 싶은데 하는 데가 없다고. 그래? 그럼 우리가 한번 해볼까? 이렇게 된 겁니다.(웃음)” 그날의 술자리 이후 누구는 필름 대여를 알아보고 누구는 장소를 섭외하고 또 누구는 필요한 돈을 끌어오는 등 동분서주한 끝에, 그들은 마침내 작년 7월 21일 함양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 서 ‘아치의 노래’를 상영하는 데 성공한다. 함양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관람객이 찾아와 극장 안은 꽤 북적거렸다. 이에 고무된 주최자들은 두 번째 영화 ‘교실 안의 야크’ 상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함달극장이란 이름을 짓고 대표도 선출하고 각자의 역할을 정하는 등 나름의 체계를 갖추었다. “달마다 한 번씩 보자고 해서 이름을 함달극장이라 지었는데 예산이나 인력 면에서 그건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분기별로 한 번씩 하는 정도죠. 그래도 올해는 함양예총에서 주관하는 지역문화동호회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여유가 좀 생겼어요. 돈 받으니까 왠지 좀더 잘해야 할 것 같아서(웃음) 영화선정위원회도 새로 만들었고요.” 
올해 5월에 상영한 ‘다음소희’ 홍보 플래카드. <함달극장>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좋은 영화를 극장에 모여 함께 보고자 만들어진 모임이다. 영화 좀 안다는 내외부인으로 영화선정위원회를 꾸려 상영한 첫 영화가 지난 7월에 올린 ‘문라이트’다. 흑인에 퀴어인 소수자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평단의 환호를 받았으나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만한 오락영화는 아니다. 이재영 대표 또한 “나에게도 굉장히 낯설고 어색한 영화”였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선정위원회가 이 영화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 역시 그 낯섦과 어색함 때문이었다고.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통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작품은 좋은데 쉽게 보기 어려운 영화, 특정 성향의 종교나 정치에 치우치지 않는 영화,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양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영화. 이런 게 우리 선정위원회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에요. 그렇다고 너무 지루하기만 해서는 또 안 되죠.(웃음)” 시골에 오고 나서는 영화를 웬만하면 집에서 보는 쪽으로 바뀌었으나 그래도 커다란 옛날식 극장에 앉아 조조영화를 볼 때의 설렘까지 잊은 건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말없이 교감하던 시간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함달극장을 탄생시킨 사람들의 마음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사라져가는 문화에 대한 향수, 혹은 공동체성을 향한 염원이 이 지역에 작은 시네마천국을 형성하려는 시도로 이어진 건 아닐까. 덕분에 함양 주민들은 가끔이나마 양질의 영화를, 그것도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중년들의 술자리에서 만들어진 함달극장이 뜨겁게 응원받는 이유다. ‘함께’여서 더 좋은 문화 ‘소모임’ (1) 오늘부터 우쿨렐레! (우쿨조이·우쿨피스 / 리더 서지연) 서지연 씨가 우쿨렐레를 처음 품에 안은 건 함양여중 학부모 동아리에서였다. “집에 하나씩은 뒹굴고 있는” 우쿨렐레를 들고 몇 명이 모인 게 시작이었다. 하다 보니 재밌어서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우쿨렐레 초급반을 이수했다. 거기서 만난 ‘언니들’과 꾸린 동아리가 바로 <우쿨조이>다. “복지관 수업은 12월에 끝나서 이듬해 봄에 다시 시작되거든요. 언니들이 몇 달 쉬는 동안 우리끼리라도 연습을 하면 좋겠다고 해서 우쿨조이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정말 몇 달만 하려고 했죠. 그런데 언니들이 복지관에서는 다른 수업 듣고 우쿨렐레는 저랑 계속하면 안 되겠냐고 해서.(웃음)” 우쿨조이 회원 5명 중 지연 씨를 빼면 전부 60대 이상이다. 음악 이론이나 악기 연주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다 보니 ‘진도’가 팍팍 나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매주 한 번씩 <마을활력공간 빈둥>에 모여 우쿨렐레를 친 지 어느덧 10개월이 되어간다. 그 동력은 무엇일까. “같이 모여서 수다 떨고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고 하는 게 좋으신가 봐요. 또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실력도 조금씩 늘고 있으니 거기서 얻는 성취감도 있지 않을까요?” 
우쿨피스 회원들이 연습을 위해 하나둘 <빈둥>에 모이고 있다. (오른쪽이 서지연 씨.) 지연 씨가 이끄는 또 하나의 우쿨렐레 동아리 <우쿨피스>는 ‘동생들’과 꾸린 모임이다. 여기에는 지역 내 교육 활동을 하며 얼굴을 익힌 마을학교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소문을 듣고 알음알음 찾아온 3명의 회원이 지연 씨의 리드 아래 격주로 모이다가 최근엔 10월 말에 있을 문화놀이장날 공연을 위해 주 1회의 연습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동아리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안 되었는데도 무대에 서는 걸 보면 다들 실력파인 모양이다. “젊어서 그런지 코드를 빨리 외우더라고요.(웃음) 문놀장 공연은 큰 부담 없이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고 재밌자고 하는 거니까요. 또 목표가 있어야 실력도 늘고요.” 지연 씨가 꼽는 우쿨렐레의 매력은 손안에 쏙 들어와 다루기 쉽다는 것, 다른 악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크다는 것, 그리고 소리가 맑다는 것이다. 이 특별한 악기와 사랑에 빠지면서 “내 인생에 요런 즐거움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그는, 자기처럼 우쿨렐레를 알아본 ‘귀 밝은’ 이들과 만나는 것이 마냥 반갑고 기쁘다. 무엇보다 나의 경험을 전수하고 타인과 합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크다. “혼자 즐거운 것보다 여럿이 같이 즐거운 게 더 좋다”는 그이 덕분에, 어쩌면 함양에서는 ‘오늘부터 우쿨렐레!’를 외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2) ‘흥’은 더하고 ‘밥’은 나누고 (풍물모임/ 이끄는이 채화석) 이 동아리엔 이름이 없다. 회장도 총무도 없다. 그런데도 매주 금요일 저녁만 되면 열세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함양공설운동장 뒤 체육회관에 꾸역꾸역 모여든다. 거기서 요란하게 장구를 치고, 그런 다음 각자 싸 온 음식 보따리를 끌러 밥을 나눈다. 부산 무형문화재 구덕망깨소리 전수자(상쇠 조교)로 동아리에서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채화석 씨는 “솔직히 밥 먹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고백한다. 밥 먹으러 간 김에 장구 치는 격이랄까. “처음 몇 달 동안은 곰실마을 꼭대기 빈집 테라스에서 모임을 했어요. 마을하고 좀 떨어진 데라서 장구 치고 놀기에 딱이었지. 연습 끝나면 라면 끓여 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요. 밤하늘의 별은 또 어찌나 빛나던지!(웃음) 지금은 실내에서 하다 보니까 음식을 싸 와서 먹는데, 그건 그것대로 아기자기하고 좋더라고요.” 
매주 금요일이면 체육회관에 모여 장구를 치며 ‘노는’ 풍물모임 회원들. (가운데 선 이가 채화석 씨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부산에서 함양으로 온 한 귀촌자가 화석 씨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한 번 같이 신나게 놀아보자”고 한 게 이 풍물동아리의 시작이었다. 화석 씨가 연락을 받고 첫 모임에 갔더니 십여 명이 앉아 있었다. 그중엔 북채 한 번 안 쥐어본 이도, 어디서 좀 두드려봤다는 이도 있었다. 출신지도 실력도 전부 달랐지만 어쨌거나 이들의 공통분모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 들어왔다는 것,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흥’을 사랑하고 ‘밥’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장구만 해도 기본 가락을 내 걸로 만드는 건 쉽지 않아요. 하루에 열 시간씩 하면야 일 년이면 되겠지만 동아리 사람들은 겨우 일주일에 한 시간 반 정도 하는 거니까.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서서히 실력이 늘죠. 그렇게 배우는 게 좋고 또 사람들과 노는 게 재밌으니까 일 년이 넘도록 이 모임을 계속하는 거 아닐까요?” 처음보다 실력과 자신감이 붙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슬슬 공연 얘기가 나오곤 한다. 공연하자고 나서서 주장하는 이는 없어도 어디서 불러만 준다면야 못할 건 없다는 분위기. 화석 씨 역시 공연이 연습을 독려하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데 한몫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자칫 준비 과정에서 즐거움을 잃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모여서 놀고 밥 먹고 하는 것만도 좋아요. 그런데 맨 이것만 할 수는 없으니까 공연이든 뭐든 새로운 것도 해봐야죠.” 
연습이 끝나면 항상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나누며 ‘정’을 쌓는다. 체육회관 안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밤하늘의 별은 볼 수 없는 대신 공간을 가득 채운 서로의 땀 냄새에 취할 수 있다. 고기는 못 구워 먹어도 바닥에 20첩 반상을 차려놓고 어느 집 손맛이 좋은지 덕담을 나눌 수 있다. 풍물동아리 회원들에게 매주 금요일 밤은 이렇게 흘러간다. 그들의 삶이 점점 더 유쾌하고 다정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토록 시골스러운 ‘불금’ 덕분이리라. (3) 인생의 ‘사금’을 캐는 시간 (사금산책 / 매니저 이영숙) 그는 카페를 좋아한다. 인적 드문 카페에 홀로 단정히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서넛이 모여 조금쯤 흐트러진 자세로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한다. 새로 개발된 음료를 맛보거나 주인장의 취향이 은근히 반영된 소품들을 구경하는 건 또 얼마나 흥미로운지. 가끔 눈을 들어 창밖을 보았을 때 거기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면 금상첨화다. 이영숙 씨가 작년 봄에 <사금산책>이라는 모임을 꾸린 건 이와 같은 ‘좋음’을 누군가와 함께 누리기 위해서였다. “사금산책은 달마다 한 번씩 모여 카페 탐방을 하는 동아리예요. 매달 넷째 주 금요일에 하자고 해서 이름을 그렇게 정했는데 요즘은 그때그때 되는 날짜에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름을 바꾸기는 싫어서 우리끼리 말을 갖다 붙였죠. 이건 인생의 ‘사금’을 캐는 산책이라고.(웃음)” 
지난 6월 광주시립미술관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금산책> 회원들. 사금산책은 지역 내 문화예술단체인 <쉬미수미>에 속한 동아리다. 그렇다고 쉬미수미 회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원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만 일 년 넘게 유지되다 보니 모임 특유의 색채랄까 결이 생겨났고, 이제는 그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사람들만 남는 것 같다고 영숙 씨는 말한다. “이렇게 모였는데 잡담만 하고 끝내긴 아까워서 저희는 소소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낱말카드를 활용해서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고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누가 힘들어하면 같이 울어주고 축하할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주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나누고요.”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카페지만, 결국 마음이 머무는 곳은 사람이다. 영숙 씨 표현에 따르면 “어디여서가 아니라 우리여서 좋다”고 할까. 이런 대화, 이런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하고는 어딜 가든 상관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모임을 만들고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 만큼 그는 최대한 그날 함께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카페를 선정하려 애쓴다. 그가 세운 나름의 기준은 새로우면서도 편안하여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다들 책과 자연을 사랑하니 가까이에 숲이나 강이나 바다가 있는 북카페면 가산점이 붙는다. “주변에서 좋은 정보를 워낙 많이 제공해주어서 장소 정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장소에서 어떻게 마음을 열고 관계하느냐인데 그 점에서 제가 많이 배우죠. 꾸준히 나오는 회원들 대부분이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거든요. 그분들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늙는 게 덜 두려워졌어요. 나도 저분들처럼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2022년 9월에 방문한 화암사에서. <사금산책> 회원들은 말로만 아닌 그림으로, 시로, 사진으로 소통하기를 즐긴다. 이제 곧 시월의 사금산책을 떠날 시간이다. 영숙 씨와 그의 벗들은 이번에 또 어떤 인생의 금싸라기를 호주머니에 가득 채워 돌아올까. 외롭고 쓸쓸해서 혹은 공허해서 가슴을 반짝이는 뭔가로 가득 채우고 싶은 이라면, 언제고 한 번 이들의 카페 순례길에 동행해봐도 좋겠다. ‘금기’ 대신 ‘회복’이 있는 곳 – 병곡면 축동마을 <문화사랑방 마중물> 대표 황미선 책이 많은 걸 보면 도서관 같다. 그런데 한편에는 찻주전자와 찜솥에서 향기로운 김이 오르는 부엌이 있다. 안으로 걸음을 좀더 옮기니 손을 꼬물거려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작은 공방도 나온다. 자, 그럼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볼까? 낮은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들과 오래된 나무 책상과 의자, 그 앞 창문으로 푸짐하게 들어오는 햇살까지. 늘어지게 누워 책이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막 들 즈음, 한쪽 구석에 놓인 텐트가 마법처럼 눈에 띈다. 읍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병곡면 축동마을. 그곳에 황미선 씨가 운영하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겉모습은 여느 시골 마을에 하나씩 있는 창고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아이들이 책 읽다가 심심하면 놀이도 하고 배고프면 먹고 나서 한숨 잘 수도 있는, 한마디로 뭘 해도 괜찮은 복합공간이다. 

<문화사랑방 마중물>은 1, 2층 너른 공간을 채운 책들 속에서 읽고, 놀고, 먹고, 잘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축동마을은 시어른들이 사시던 곳이에요. 남편이 먼저 들어오고 저는 도시에서 하던 일 정리하느라 왔다 갔다 하다가 4년 전쯤 내려왔어요. 처음엔 읍에서 공부방을 조그맣게 하다가 이 공간을 준비해 2년 전에 문을 열었지요. 원래는 도서관을 생각했었는데 이 건물의 용도가 그것과는 맞지 않는다고 허가가 안 나서 일단은 <문화사랑방 마중물>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그가 아직 도시에 살던 때, 인근에 개인이 운영하는 <느티나무 도서관>이라는 데가 있었다. 다른 도서관과 달리 아이들이 맘껏 떠들고 장난치고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서 큰 영감을 얻은 미선 씨는 “나도 언젠가 이런 곳을 운영해보리라” 마음먹었고, 귀촌 후 자신의 오래된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에 ‘놀고 있던’ 창고의 반을 빌려 현재와 같이 개조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행정절차나 동네 주민과의 관계 등 모든 게 조심스럽고 어려웠다고.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협의한 끝에 어찌어찌 문을 열고 간판도 내걸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이곳을 찾아주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그는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제가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독서논술 수업을 했거든요. 그때 만난 아이들과 이제는 여기서 독서논술과 창의미술 수업을 하고 책놀이도 해요. 봄가을로는 북스테이라고 해서 손모내기와 고구마 캐기, 벼 베기 등의 체험활동도 하고요. 지금은 초등학생 아이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좀더 체계가 잡히고 안정이 되면 부모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하고 싶어요. 아이의 감성이 바르고 풍성해지려면 먼저 부모의 감성이 온전해야 하니까요.”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공간에서는 책놀이, 창의미술, 북스테이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귀촌 전 약 20여 년 동안 황미선 씨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을 하며 살았다. 시골에 내려오면서 방향을 전환한 이유는 한 사람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고 올곧게 서는 데는 어린 시절의 교육과 돌봄이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역할을 학교와 가정에만 맡겨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와 가정 바깥에도 아이들이 배우고 기댈 곳은 필요하다는 것. 실제로 그가 만나는 아이들은 늘 ‘말’이 고프다. 여럿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학교 선생님도, 생계를 위해 맞벌이에 나선 부모님도 아이의 말 상대가 되어주기에는 너무나 바쁜 탓이다. 마중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조잘댐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안쓰러우면, 미선 씨는 때로 수업을 뒤로 미루고 아이들이 제 속을 다 게워낼 때까지 기다려주곤 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좋은 순간보다는 힘든 순간이 많고 그로 인해 상처받으며 살아가거든요. 그런데 상처를 그냥 외면하고 지나가느냐 아니면 하나하나 잘 회복시켜서 매듭을 풀고 지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양새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과 감수성을 키워주고 싶어요.” 
볕이 잘 드는 2층 창가에 앉은 황미선 대표. 문화사랑방 마중물에는 별다른 이용규칙도, 하지 말아야 할 금기도 없다. 대신 무슨 말이든 있는 그대로 다 들어주는 귀가, 단단히 뭉쳐진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눈빛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가장 밑바탕에는 “여기 발을 디디는 아이들이 화와 서러움과 슬픔을 덜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좀더 회복되기를” 바라는 황미선 씨의 마음이 있다. 그러니 그가 포기하지 않고 이 공간을 지켜가기를 바랄 수밖에. 더 많은 이들의 삶에 따스한 봄날이 깃들 수 있도록. |
“문화요? 우린 스스로 만들어 즐깁니다”
슬렁슬렁 동네 산책 ②
글 / 자야
시선 가닿는 모든 자리가 황홀한 계절이다. 근사한 풍경을 찾아 굳이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충분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고만 싶은 이때. 지난 5월의 어느 날처럼 배낭에 노트와 펜을 챙겨 들고 동네 속으로,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슬렁슬렁 동네 산책 ‘봄 편’에 이어 다섯 달 만에 떠나는 ‘가을 편’에서는 삶에 풍미와 윤기를 더하는 다양한 문화 활동에 나선 이들을 만나본다. 동아리를 만들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카페순례를 통해 관계를 깊이 쌓아가는 사람,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라며 틈틈이 공동체상영을 시도하는 모임, 그리고 학교와 학원 말고는 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 문화체험이 가능한 공간을 열어준 사람까지. 뭐든 돈으로 ‘소비’하는 시대에 문화의 ‘자급자족’을 꾀하는 이들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하나같이 풍성하게 익어 가는 가을 들녘을 닮아 있었다.
지역 내 ‘시네마천국’을 꿈꾸는 사람들
– 영화상영모임 <함달극장> 대표 이재영
<함달극장>이 처음으로 상영한 영화 ‘아치의 노래’를 보기 위해 함양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 모인 사람들.
함양엔 영화관이 없다. 도심에 흔한 복합상영관은커녕 웬만한 군에 하나씩 있는 작은영화관도 없다.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때때로 대형상영관의 영화들을 올리긴 하지만, 볼 수 있는 작품이나 시간대 등 모든 게 제한적이다. 컴퓨터로 다운받아 보면 되지 않느냐고? 모든 게 ‘손안에서’ 해결되는 세상에 뭐하러 귀찮게 나가서 영화를 보려 하느냐고?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텐데, 그럼에도 ‘극장’에서 ‘함께’ 영화 보기를 고집하는 <함달극장>은 그 명맥을 일 년 넘게 꿋꿋이 이어가는 중이다.
“정태춘 씨 다큐인 ‘아치의 노래’가 작년에 나왔잖아요. 그즈음에 남자들 대여섯 명이 모여 술 마시는 자리가 있었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 영화 보고 싶은데 하는 데가 없다고. 그래? 그럼 우리가 한번 해볼까? 이렇게 된 겁니다.(웃음)”
그날의 술자리 이후 누구는 필름 대여를 알아보고 누구는 장소를 섭외하고 또 누구는 필요한 돈을 끌어오는 등 동분서주한 끝에, 그들은 마침내 작년 7월 21일 함양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 서 ‘아치의 노래’를 상영하는 데 성공한다. 함양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관람객이 찾아와 극장 안은 꽤 북적거렸다. 이에 고무된 주최자들은 두 번째 영화 ‘교실 안의 야크’ 상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함달극장이란 이름을 짓고 대표도 선출하고 각자의 역할을 정하는 등 나름의 체계를 갖추었다.
“달마다 한 번씩 보자고 해서 이름을 함달극장이라 지었는데 예산이나 인력 면에서 그건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분기별로 한 번씩 하는 정도죠. 그래도 올해는 함양예총에서 주관하는 지역문화동호회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여유가 좀 생겼어요. 돈 받으니까 왠지 좀더 잘해야 할 것 같아서(웃음) 영화선정위원회도 새로 만들었고요.”
올해 5월에 상영한 ‘다음소희’ 홍보 플래카드.
<함달극장>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좋은 영화를 극장에 모여 함께 보고자 만들어진 모임이다.
영화 좀 안다는 내외부인으로 영화선정위원회를 꾸려 상영한 첫 영화가 지난 7월에 올린 ‘문라이트’다. 흑인에 퀴어인 소수자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평단의 환호를 받았으나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만한 오락영화는 아니다. 이재영 대표 또한 “나에게도 굉장히 낯설고 어색한 영화”였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선정위원회가 이 영화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 역시 그 낯섦과 어색함 때문이었다고.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통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작품은 좋은데 쉽게 보기 어려운 영화, 특정 성향의 종교나 정치에 치우치지 않는 영화,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양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영화. 이런 게 우리 선정위원회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에요. 그렇다고 너무 지루하기만 해서는 또 안 되죠.(웃음)”
시골에 오고 나서는 영화를 웬만하면 집에서 보는 쪽으로 바뀌었으나 그래도 커다란 옛날식 극장에 앉아 조조영화를 볼 때의 설렘까지 잊은 건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말없이 교감하던 시간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함달극장을 탄생시킨 사람들의 마음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사라져가는 문화에 대한 향수, 혹은 공동체성을 향한 염원이 이 지역에 작은 시네마천국을 형성하려는 시도로 이어진 건 아닐까. 덕분에 함양 주민들은 가끔이나마 양질의 영화를, 그것도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중년들의 술자리에서 만들어진 함달극장이 뜨겁게 응원받는 이유다.
‘함께’여서 더 좋은 문화 ‘소모임’
(1) 오늘부터 우쿨렐레! (우쿨조이·우쿨피스 / 리더 서지연)
서지연 씨가 우쿨렐레를 처음 품에 안은 건 함양여중 학부모 동아리에서였다. “집에 하나씩은 뒹굴고 있는” 우쿨렐레를 들고 몇 명이 모인 게 시작이었다. 하다 보니 재밌어서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우쿨렐레 초급반을 이수했다. 거기서 만난 ‘언니들’과 꾸린 동아리가 바로 <우쿨조이>다.
“복지관 수업은 12월에 끝나서 이듬해 봄에 다시 시작되거든요. 언니들이 몇 달 쉬는 동안 우리끼리라도 연습을 하면 좋겠다고 해서 우쿨조이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정말 몇 달만 하려고 했죠. 그런데 언니들이 복지관에서는 다른 수업 듣고 우쿨렐레는 저랑 계속하면 안 되겠냐고 해서.(웃음)”
우쿨조이 회원 5명 중 지연 씨를 빼면 전부 60대 이상이다. 음악 이론이나 악기 연주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다 보니 ‘진도’가 팍팍 나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매주 한 번씩 <마을활력공간 빈둥>에 모여 우쿨렐레를 친 지 어느덧 10개월이 되어간다. 그 동력은 무엇일까.
“같이 모여서 수다 떨고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고 하는 게 좋으신가 봐요. 또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실력도 조금씩 늘고 있으니 거기서 얻는 성취감도 있지 않을까요?”
우쿨피스 회원들이 연습을 위해 하나둘 <빈둥>에 모이고 있다. (오른쪽이 서지연 씨.)
지연 씨가 이끄는 또 하나의 우쿨렐레 동아리 <우쿨피스>는 ‘동생들’과 꾸린 모임이다. 여기에는 지역 내 교육 활동을 하며 얼굴을 익힌 마을학교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소문을 듣고 알음알음 찾아온 3명의 회원이 지연 씨의 리드 아래 격주로 모이다가 최근엔 10월 말에 있을 문화놀이장날 공연을 위해 주 1회의 연습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동아리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안 되었는데도 무대에 서는 걸 보면 다들 실력파인 모양이다.
“젊어서 그런지 코드를 빨리 외우더라고요.(웃음) 문놀장 공연은 큰 부담 없이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고 재밌자고 하는 거니까요. 또 목표가 있어야 실력도 늘고요.”
지연 씨가 꼽는 우쿨렐레의 매력은 손안에 쏙 들어와 다루기 쉽다는 것, 다른 악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크다는 것, 그리고 소리가 맑다는 것이다. 이 특별한 악기와 사랑에 빠지면서 “내 인생에 요런 즐거움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그는, 자기처럼 우쿨렐레를 알아본 ‘귀 밝은’ 이들과 만나는 것이 마냥 반갑고 기쁘다. 무엇보다 나의 경험을 전수하고 타인과 합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크다. “혼자 즐거운 것보다 여럿이 같이 즐거운 게 더 좋다”는 그이 덕분에, 어쩌면 함양에서는 ‘오늘부터 우쿨렐레!’를 외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2) ‘흥’은 더하고 ‘밥’은 나누고 (풍물모임/ 이끄는이 채화석)
이 동아리엔 이름이 없다. 회장도 총무도 없다. 그런데도 매주 금요일 저녁만 되면 열세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함양공설운동장 뒤 체육회관에 꾸역꾸역 모여든다. 거기서 요란하게 장구를 치고, 그런 다음 각자 싸 온 음식 보따리를 끌러 밥을 나눈다. 부산 무형문화재 구덕망깨소리 전수자(상쇠 조교)로 동아리에서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채화석 씨는 “솔직히 밥 먹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고백한다. 밥 먹으러 간 김에 장구 치는 격이랄까.
“처음 몇 달 동안은 곰실마을 꼭대기 빈집 테라스에서 모임을 했어요. 마을하고 좀 떨어진 데라서 장구 치고 놀기에 딱이었지. 연습 끝나면 라면 끓여 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요. 밤하늘의 별은 또 어찌나 빛나던지!(웃음) 지금은 실내에서 하다 보니까 음식을 싸 와서 먹는데, 그건 그것대로 아기자기하고 좋더라고요.”
매주 금요일이면 체육회관에 모여 장구를 치며 ‘노는’ 풍물모임 회원들. (가운데 선 이가 채화석 씨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부산에서 함양으로 온 한 귀촌자가 화석 씨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한 번 같이 신나게 놀아보자”고 한 게 이 풍물동아리의 시작이었다. 화석 씨가 연락을 받고 첫 모임에 갔더니 십여 명이 앉아 있었다. 그중엔 북채 한 번 안 쥐어본 이도, 어디서 좀 두드려봤다는 이도 있었다. 출신지도 실력도 전부 달랐지만 어쨌거나 이들의 공통분모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 들어왔다는 것,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흥’을 사랑하고 ‘밥’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장구만 해도 기본 가락을 내 걸로 만드는 건 쉽지 않아요. 하루에 열 시간씩 하면야 일 년이면 되겠지만 동아리 사람들은 겨우 일주일에 한 시간 반 정도 하는 거니까.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서서히 실력이 늘죠. 그렇게 배우는 게 좋고 또 사람들과 노는 게 재밌으니까 일 년이 넘도록 이 모임을 계속하는 거 아닐까요?”
처음보다 실력과 자신감이 붙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슬슬 공연 얘기가 나오곤 한다. 공연하자고 나서서 주장하는 이는 없어도 어디서 불러만 준다면야 못할 건 없다는 분위기. 화석 씨 역시 공연이 연습을 독려하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데 한몫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자칫 준비 과정에서 즐거움을 잃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모여서 놀고 밥 먹고 하는 것만도 좋아요. 그런데 맨 이것만 할 수는 없으니까 공연이든 뭐든 새로운 것도 해봐야죠.”
연습이 끝나면 항상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나누며 ‘정’을 쌓는다.
체육회관 안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밤하늘의 별은 볼 수 없는 대신 공간을 가득 채운 서로의 땀 냄새에 취할 수 있다. 고기는 못 구워 먹어도 바닥에 20첩 반상을 차려놓고 어느 집 손맛이 좋은지 덕담을 나눌 수 있다. 풍물동아리 회원들에게 매주 금요일 밤은 이렇게 흘러간다. 그들의 삶이 점점 더 유쾌하고 다정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토록 시골스러운 ‘불금’ 덕분이리라.
(3) 인생의 ‘사금’을 캐는 시간 (사금산책 / 매니저 이영숙)
그는 카페를 좋아한다. 인적 드문 카페에 홀로 단정히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서넛이 모여 조금쯤 흐트러진 자세로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한다. 새로 개발된 음료를 맛보거나 주인장의 취향이 은근히 반영된 소품들을 구경하는 건 또 얼마나 흥미로운지. 가끔 눈을 들어 창밖을 보았을 때 거기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면 금상첨화다. 이영숙 씨가 작년 봄에 <사금산책>이라는 모임을 꾸린 건 이와 같은 ‘좋음’을 누군가와 함께 누리기 위해서였다.
“사금산책은 달마다 한 번씩 모여 카페 탐방을 하는 동아리예요. 매달 넷째 주 금요일에 하자고 해서 이름을 그렇게 정했는데 요즘은 그때그때 되는 날짜에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름을 바꾸기는 싫어서 우리끼리 말을 갖다 붙였죠. 이건 인생의 ‘사금’을 캐는 산책이라고.(웃음)”
지난 6월 광주시립미술관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금산책> 회원들.
사금산책은 지역 내 문화예술단체인 <쉬미수미>에 속한 동아리다. 그렇다고 쉬미수미 회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원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만 일 년 넘게 유지되다 보니 모임 특유의 색채랄까 결이 생겨났고, 이제는 그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사람들만 남는 것 같다고 영숙 씨는 말한다.
“이렇게 모였는데 잡담만 하고 끝내긴 아까워서 저희는 소소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낱말카드를 활용해서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고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누가 힘들어하면 같이 울어주고 축하할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주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나누고요.”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카페지만, 결국 마음이 머무는 곳은 사람이다. 영숙 씨 표현에 따르면 “어디여서가 아니라 우리여서 좋다”고 할까. 이런 대화, 이런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하고는 어딜 가든 상관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모임을 만들고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 만큼 그는 최대한 그날 함께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카페를 선정하려 애쓴다. 그가 세운 나름의 기준은 새로우면서도 편안하여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다들 책과 자연을 사랑하니 가까이에 숲이나 강이나 바다가 있는 북카페면 가산점이 붙는다.
“주변에서 좋은 정보를 워낙 많이 제공해주어서 장소 정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장소에서 어떻게 마음을 열고 관계하느냐인데 그 점에서 제가 많이 배우죠. 꾸준히 나오는 회원들 대부분이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거든요. 그분들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늙는 게 덜 두려워졌어요. 나도 저분들처럼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2022년 9월에 방문한 화암사에서. <사금산책> 회원들은 말로만 아닌 그림으로, 시로, 사진으로 소통하기를 즐긴다.
이제 곧 시월의 사금산책을 떠날 시간이다. 영숙 씨와 그의 벗들은 이번에 또 어떤 인생의 금싸라기를 호주머니에 가득 채워 돌아올까. 외롭고 쓸쓸해서 혹은 공허해서 가슴을 반짝이는 뭔가로 가득 채우고 싶은 이라면, 언제고 한 번 이들의 카페 순례길에 동행해봐도 좋겠다.
‘금기’ 대신 ‘회복’이 있는 곳
– 병곡면 축동마을 <문화사랑방 마중물> 대표 황미선
책이 많은 걸 보면 도서관 같다. 그런데 한편에는 찻주전자와 찜솥에서 향기로운 김이 오르는 부엌이 있다. 안으로 걸음을 좀더 옮기니 손을 꼬물거려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작은 공방도 나온다. 자, 그럼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볼까? 낮은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들과 오래된 나무 책상과 의자, 그 앞 창문으로 푸짐하게 들어오는 햇살까지. 늘어지게 누워 책이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막 들 즈음, 한쪽 구석에 놓인 텐트가 마법처럼 눈에 띈다.
읍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병곡면 축동마을. 그곳에 황미선 씨가 운영하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겉모습은 여느 시골 마을에 하나씩 있는 창고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아이들이 책 읽다가 심심하면 놀이도 하고 배고프면 먹고 나서 한숨 잘 수도 있는, 한마디로 뭘 해도 괜찮은 복합공간이다.
<문화사랑방 마중물>은 1, 2층 너른 공간을 채운 책들 속에서 읽고, 놀고, 먹고, 잘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축동마을은 시어른들이 사시던 곳이에요. 남편이 먼저 들어오고 저는 도시에서 하던 일 정리하느라 왔다 갔다 하다가 4년 전쯤 내려왔어요. 처음엔 읍에서 공부방을 조그맣게 하다가 이 공간을 준비해 2년 전에 문을 열었지요. 원래는 도서관을 생각했었는데 이 건물의 용도가 그것과는 맞지 않는다고 허가가 안 나서 일단은 <문화사랑방 마중물>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그가 아직 도시에 살던 때, 인근에 개인이 운영하는 <느티나무 도서관>이라는 데가 있었다. 다른 도서관과 달리 아이들이 맘껏 떠들고 장난치고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서 큰 영감을 얻은 미선 씨는 “나도 언젠가 이런 곳을 운영해보리라” 마음먹었고, 귀촌 후 자신의 오래된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에 ‘놀고 있던’ 창고의 반을 빌려 현재와 같이 개조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행정절차나 동네 주민과의 관계 등 모든 게 조심스럽고 어려웠다고.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협의한 끝에 어찌어찌 문을 열고 간판도 내걸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이곳을 찾아주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그는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제가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독서논술 수업을 했거든요. 그때 만난 아이들과 이제는 여기서 독서논술과 창의미술 수업을 하고 책놀이도 해요. 봄가을로는 북스테이라고 해서 손모내기와 고구마 캐기, 벼 베기 등의 체험활동도 하고요. 지금은 초등학생 아이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좀더 체계가 잡히고 안정이 되면 부모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하고 싶어요. 아이의 감성이 바르고 풍성해지려면 먼저 부모의 감성이 온전해야 하니까요.”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공간에서는 책놀이, 창의미술, 북스테이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귀촌 전 약 20여 년 동안 황미선 씨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을 하며 살았다. 시골에 내려오면서 방향을 전환한 이유는 한 사람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고 올곧게 서는 데는 어린 시절의 교육과 돌봄이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역할을 학교와 가정에만 맡겨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와 가정 바깥에도 아이들이 배우고 기댈 곳은 필요하다는 것.
실제로 그가 만나는 아이들은 늘 ‘말’이 고프다. 여럿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학교 선생님도, 생계를 위해 맞벌이에 나선 부모님도 아이의 말 상대가 되어주기에는 너무나 바쁜 탓이다. 마중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조잘댐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안쓰러우면, 미선 씨는 때로 수업을 뒤로 미루고 아이들이 제 속을 다 게워낼 때까지 기다려주곤 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좋은 순간보다는 힘든 순간이 많고 그로 인해 상처받으며 살아가거든요. 그런데 상처를 그냥 외면하고 지나가느냐 아니면 하나하나 잘 회복시켜서 매듭을 풀고 지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양새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과 감수성을 키워주고 싶어요.”
볕이 잘 드는 2층 창가에 앉은 황미선 대표.
문화사랑방 마중물에는 별다른 이용규칙도, 하지 말아야 할 금기도 없다. 대신 무슨 말이든 있는 그대로 다 들어주는 귀가, 단단히 뭉쳐진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눈빛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가장 밑바탕에는 “여기 발을 디디는 아이들이 화와 서러움과 슬픔을 덜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좀더 회복되기를” 바라는 황미선 씨의 마음이 있다. 그러니 그가 포기하지 않고 이 공간을 지켜가기를 바랄 수밖에. 더 많은 이들의 삶에 따스한 봄날이 깃들 수 있도록.
글 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