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남원][곧이곧대로 기록하기] 귀정사 사회연대 쉼터 후원의 날 - 연잎밥 도시락으로 연대하기

2023-09-26

 

 

귀정사 사회연대 쉼터 후원의 날

- 연잎밥 도시락으로 연대하기 -

 

글 / 김양오
 

 

 

 

“연잎밥 도시락을 300개나 만든다고?” 

“비용이 한 푼도 없다고?” 

“헐~ 너무 한 거 아니야?”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좀 있었지만 나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2019년부터 이미 여러 차례 오로지 뜻있는 사람들의 정성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일을 만들어 왔던 경험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근거있는 자신감이다. 연잎밥 도시락 300개가 필요한 곳은 남원시 산동면 만행산 골짜기에 있는 아주 작은 ‘귀정사’라는 절이다. 그 작은 절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많은 도시락이 필요했던 걸까? 사연은 이러하다. 

 

 

귀정사에서는 먹물옷 입은 스님을 보기 힘들다. 대신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맑고 차가운 골짝물이 흐르는 깊은 산속에 부처님을 모신 아담한 법당을 중심으로 띄엄띄엄 작은 오두막집들이 지어져 있다. 그 곳에 그들이 산다. 스님들처럼 예불을 드리거나 수행을 하지 않고 오로지, 오롯이 각자 천천히 쉬고 놀기만 한다. 쉬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한 사람이 그렇게 귀정사에 머물다 나갔다. 땡전 한 푼 없이 다친 다리, 다친 마음을 무겁게 이끌고 들어왔다가 자기도 모르게 건강해져서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그 뒤에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가고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그렇게 10년 동안 꽤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고 나갔다. 오두막은 그들이 한 채 두 채 지은 것이다. 이제 아예 ‘사회 연대 쉼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런데 그들이 먹고 자는 모든 비용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다들 빈손으로 들어와서 1년이든 2년이든 살고 싶은 만큼 살다 가는데 그 비용은 어디서 나는 걸까? 어떤 손 큰 스님이 뒤를 봐주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다. 서로 돕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끼리 조금씩 조금씩 힘을 보태서 지금까지 살아왔단다. 

 

 

 

귀정사 사진1.jpg

사회연대 후원의 날 음악회 포스터

 

 

 

귀정사 쉼터의 첫 손님은 송경동 시인이었다. 노동 현장에서 아주 유명한 시인이다. 송경동 시인과는 이미 오래 전 남원생협에서 함께 토크쇼(그는 이야기 손님, 나는 진행자)를 한 적도 있고 귀정사 행사장에서 만난 적도 있다. 그래도 오래 전에 보고 말았으니 서로 얼굴이 가물가물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둘 사이에 큰 연결고리가 있었다. 내가 아는 친한 언니가 그에게는 친한 누나였던 것이다. 굵은 비가 자주 오던 지난 여름 우린 그 여인 덕분에 우연히, 아니 운명처럼 다시 만났고 결국 나에게 300인분의 저녁 식사가 맡겨졌다. 사회연대 쉼터 10주년 기념 후원 콘서트를 하는데 그 날 참가자들을 위한 식사다. 정태춘님이 무료 공연을 해 주신다고 한다. 이미 SNS로 널리 퍼지고 있는 행사였고 결국 나도 이렇게 힘을 보태게 된 것이다.

 

 

 

귀정사2.jpg

후원 음악회 행사장 모습

 

 

음식 만드는 일이 주어지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자연요리연구가 김혜정님(이 분 역시 아주 친한 동네 언니다)이었다. 그 분은 나랑 그동안 음식 연대 활동을 여러 차례 해 온 경험이 있다. 나는 돈을 모으고 일할 사람을 모으고 그 분은 총 지휘를 해서 음식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번엔 예전처럼 기꺼이 응답하지 않았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서 대량은 힘들어.”라는 소리와 함께였다. 세월은 그 누구의 앞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우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일을 꾸리기 시작했다. 

 

 

비빔밥을 할까 하다가 준비도 덜 번잡하고 먹고 치우기도 간단하며 귀정사라는 장소하고도 어울리는 음식, 연잎밥으로 하기로 했다. 연잎밥은 김혜정님의 장기이기도 하다. 연잎밥만 하나 달랑 먹게 할 수 없으니 반찬 세 개가 들어가는 연잎밥 도시락으로 확정했다. 필요한 경비를 뽑아보니 100만원은 들겠다. 찹쌀과 까만쌀은 남원 농민회에서 제공해 주기로 해서 큰 비용이 바로 절약되었지만 어쨌든 100만원은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늘 이런 일에 기꺼이 주머니를 털고 지갑을 열어주는 ‘깨어있는 남원 시민들’에게 사연을 알렸다. 알리자마자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5만원, 3만원, 10만원… 돈은 금세 50만원이 훌쩍 넘어버리고 결국 100만원이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장수 ‘민중의 집’과 함께 하기로 해서 각각 50만원씩만 모으면 됐다. 결국 장수의 50만원은 쉼터에 바로 후원하기로 했다.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주저 없이 돈을 내는 사람들이 있어 이런 일은 늘 즐겁고 벅차다. 그러나 자주 하면 이것도 민폐니 눈치를 잘 봐가며 해야 한다.

 

 

 

귀정사 3-1.jpg

 

귀정사 3-2.jpg

 

귀정사 3-3.jpg

 

귀정사 3-4.jpg

 

 

 

그런데 그 많은 연잎밥은 누가 싸누? 그 정도 인력을 모으는 것도 걱정 없다. 총대장 김혜정님이 운영하는 ‘하정동 부엌’이라는 작은 반찬 가게에 오고가는 단골 손님 중에 몇 명만 모아도 된다. 또한 이런 일에 손 보태는 것을 낙으로 삼는 시민들을 몇 명 모으기만 하면 된다. 아니나 달라. 오히려 손이 남아 돌았다. 

 

“할 일 없수?”

 

문 열고 얼굴 들이민 남자 분에게는 

 

“우리 먹을 김밥이나 사다줘요.”

 

했더니 맛난 김밥을 바로 사온다. 

 

 

첫날은 연잎을 자르고 손질하고, 밑반찬 꺼리들을 준비했다. 쌀은 방앗간에 쪄달라고 맡겼다. 둘째날은 연잎밥 308개를 쌌다. 상자에 담아 방앗간에 가지고 가 쪘다. 꽈리고추 볶음, 묵은지 볶음, 마늘쫑 무장아찌 무침을 했다. 셋째날(행사날) 오전에는 연잎밥과 반찬 3종, 조미김 한봉지씩을 한 세트로 도시락 308개를 만들었다. 김혜정님은 정태춘 박은옥 밴드(10명)가 드실 특식을 장만했다. 동그랑땡과 달걀말이, 갓 담근 김치까지. 그 유명한 가수들이 무료로 공연을 해 준다는 데에 큰 감동을 받아 최대한 정성껏 푸짐하게. 오후에는 도시락 308개와 특식 세트, 지리산 마리공방에서 직접 담근 전통 식혜 40개를 기증받아 차량 세 대에 나눠 싣고 귀정사로 달렸다. 남원 시내에서 40분 거리다. 우리도 함께 타고 갔다,

 

 

 

귀정사4.jpg

연잎밥 도시락을 차량에 옮겨 담는 모습

 

 

 

귀정사가 있는 마을이 저만치 보인다. 그런데 마을의 저 아래 들머리부터 길가에 주차된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져 있다. 아마 귀정사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날이 아니겠냐며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템플 스테이를 위해 새로 지은 큰 건물이 있는 곳 앞에 특별히 제작한 계단식 객석과 계곡 위에 만들어 올린 특설 무대가 눈에 띄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좁은 마당에 어떻게 다 들어갈까 걱정했는데 완벽하게 준비해 둔 것이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것도 다 귀정사에 쉬러 온 사람들이 직접 다 만든 것이다. 그 어느 해보다 더웠던 지난 여름 내내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 이 분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있다. 일복을 타고 나신 분들!  

 

 

 

귀정사5.jpg

쉼터 사람들이 직접 제작한 객석과 무대

 

 

 

저녁 식사 장소는 절 마당에 준비되어 있었고 자원봉사자들도 다 배치되어 있었다. 도시락을 모두 전달하고 우리는 정태춘 박은옥 밴드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특식을 별도의 공간에 잘 차려놓았다. 아직 그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우린 우렁이 각시처럼 탁자에 준비해 온 음식만 가지런히 차려놓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뒤 문을 닫고 살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와 밥먹는 곳으로 갔다. 주최 측에서는 연잎밥 안 먹는 사람들을 위해 김밥100줄도 준비해 놔서 밥은 넉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뒤 밥을 나눠주는 곳이 소란스러워졌다. 밥이 다 떨어져 가는데 줄은 길고 “산에 갔다 늦게 오는 단체가 있으니 30개만 빼놔주세요.”,  “생태 탐방 간 사람들 것 30개 빼놓으셔야 합니다.” 이런 저런 요구들이 자꾸 들어오는 것이다. 드디어 바닥이 나고 말았다. 아, 어쩌란 말이냐?

 

 

 

귀정사6.jpg

일반 참가자들의 저녁 식사

 

귀정사6-1.jpg

정태춘 박은옥 밴드를 위한 우렁이 밥상

 

 

 

주최 측 활동가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밥은 5시- 6시까지만 주려고 했고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은 밥을 당연히 먹고 오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6시가 훨씬 넘었지만 사람들은 줄을 섰다. 이 산골짝에 식당도 없으니 멀리서 온 사람들이 배를 쫄쫄 굶고 밤 9시까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9시가 아니다. 공연 끝나고 시내까지 나가려면 최소 10시는 될 것이고 그 시간에는 남원 시내에 문 연 밥집이 거의 없다. 술집밖에. 주최 측이 준비한 간식거리도 다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표는 450장만 팔았다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공짜로? 아니다. 후원금은 계속 입금할 수 있으니 후원금 내고 온 사람들이다. 막을 수가 없는 노릇. 

 

 

잠깐 고민하다가 내 입에서 “김밥 100줄이라도 더 배달시키죠?”라는 말이 나왔다. 그걸 누가하겠는가? 남원 시내에 사는 우리가 해결해야지. 내가 김밥 집 몇 곳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저녁 식사가 다 끝나가는 토요일 저녁 7시에 김밥 100줄이 가능한 집은 없었다. 재료가 거의 다 떨어졌다는 대답들. 인구가 매우 적은 도시라 저녁 장사도 일찍 끝난다.

 

 

“안 되겠다. 우리가 직접 가자!”

 

연잎밥 도시락 배달하고 사람들 태워 오느라 40분 거리 산길을 이미 두 번이나 왕복한 후배를 다그쳤다. 

 

“네?”

“직접 가서 김밥 사오자고!”

 

벌써 어둠이 내려앉은 산길을 달렸다. 배고파 울부짖는 저 중생들을 빨리 구해야 한다! 가자! 돈키호테! 그 순간 왜 갑자기 돈키호테가 생각났을까? 자동차는 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는 말 로시난테, 후배 손에 들려있는 담배는 돈키호테의 긴 창이라 상상하며 속으로 웃으며 외쳤다. 

 

“달려! 로시난테!” 

 

시내로 가는 동안 나는 계속 김밥집을 검색해서 전화를 해댔다. 한집이 아니라 두 집에서 나눠서 사자는 발칙한 생각을 내뱉은 쓸만한 돈키호테 덕분에

 

“30분 안에 김밥 50개 포장되나요?”

 

 

결국 두 집을 잡을 수 있었다. 두 집에서 김밥 100줄을 확보하고 로시난테를 채찍질하여 과속과 추월까지 감행하며 귀정사까지 달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어달리기 바통 전달하듯이 주최 측에 김밥을 전달했다. 우리 임무 끝! 상황을 살펴보니 첫 번째 공연이 이미 끝나 있었다. 아, 내가 추천한 우리 남원의 진정한 노래꾼 ‘지리산 노래패’의 공연을 못 본 것이다.  

 

 

김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중에 들으니 그러고도 밥을 못 먹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도대체 몇 명이나 온 걸까? 700명이 왔단다. 세상에. 한 300명 생각했는데 500명도 아니고 700명이나 왔다니. 그 좁은 산골짝 공연에 전국에서 700명이나 모여든 것. 그 힘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사실 남원 사람들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고 있다는 소문에 오고 싶어도 다들 꾹 참고 많이 안 왔다. 귀정사 골짜기가 매우 좁은 곳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관객이 많았다니.

 

 

어쨌거나 그렇게 우리는 할 일을 다 끝내고 순천에서 온 노래패와 정태춘 박은옥 밴드의 공연에 몰입했다.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정치 구호가 쓰인 팻말, 현수막 하나 없고 무대에 올라간 사람들도 세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 정태춘 님이 딱 한마디 했다. “저들은 OO합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활동하던 사람들이 오롯이 쉬러 왔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중하며 조용히 공연만 즐기는 모습,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우냐? 주최 측에서는 일회용품도 안 쓰고 손님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귀정사 음악회였다. 

 

 

 

귀정사7.jpg

남원 지리산 노래패 공연

 

귀정사7-2.jpg

순천 노래패 공연

 

귀정사7-3.jpg

정태춘 박은옥 밴드의 공연

 

 

 

만행산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북한강에서’는 대학 축제 때 듣던 그 노래가 아닌 듯 감미롭고 아름다웠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장소가 그래서 그런 건지.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찬물에 얼굴을…”

 

 

그 날 연잎밥을 먹은 사람들은 찬사에 찬사를 거듭했다.

정태춘 박은옥, 두 분도 연잎밥도 연잎밥이지만 김치 맛에 반해 연잎밥과 김치를 주문할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이다. 음식을 해 준 사람들이나 먹은 사람들이나 그 정성과 맛에 감동하고, 맛있게 먹어주심에 감사하는 정겨운 대화가 이어졌다.  

 

 

 

귀정사8.jpg

연잎밥과 김밥을 함께 나누며 좋은 공연도 함께 나눈 사람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김지하 시인의 시, 우리 큰 딸이 어릴 적 공동육아 어린이집(인천 희망세상)에서 밥 먹을 때 불렀던 노래다. 어쩌다 혼밥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세상, 다시 ‘함께 먹는 밥’이 일상이 되면 예전처럼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헌데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이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 체제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귀정사에서 쉬었다 가시는 분들이 투쟁 현장이 아닌 그냥 ‘일터’로 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와야만 가능한 일이다.

 

 

행사를 끝내고 풀벌레가 또록또록 노래를 불러주는 산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하늘에는 둥근달이 화려한 달무리를 뿜어내며 우리 앞길을 찬란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귀정사9.jpg

달빛 아래 뒷풀이

 

 

귀정사9-1.jpg

산길을 비춰주던 달과 달무리

 

 

 

글 쓴 사람. 김양오

아이 셋을 다 키운 중년 아줌마. 젊었을 적 글쓰기와 아동문학을 배워 평생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쉰 살부터 역사동화를 쓰기 시작해 책 세 권을 냈다. 아름답게 흐르는 요천이 너무 좋아 남원으로 이사해 15년째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서 가슴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