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비존슨이라는 여성은 장보러 갈 때 매우 무거운 짐을 들고 간다. 손잡이가 튼튼해 보이는 크고 까만 장바구니 두 개다. 그 안에는 하얀 천 주머니들과 크고 작은 유리병들이 잔뜩 들어 있다. 비존슨씨가 장바구니를 차 트렁크에 싣고 달려가는 곳을 따라가 보자.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식료품 매장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매우 특이한 것이 많다. 식품이든 생활 용품이든 모든 상품들이 큰 통과 큰 바구니, 아니면 길쭉한 유리병에 잔뜩 담겨져 있다. 비닐봉지로 소포장된 것은 전혀 없다. 비존슨씨는 가지고 간 빈 병과 천 주머니에 필요한 만큼만 물품을 덜어 담아 계산대에 가지고 간다.
미국의 친환경 매장 계산대 (위 영상 캡쳐)
영상을 보면서 집안이 너무 깨끗하고 플라스틱 소품들이나 장식들이 없어서 혼자 사는 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과 요리를 같이 하고 얼마 뒤 2층에서 다 큰 사내 아이들 두 명이 뛰어내려 왔다. 세상에, 건장한 4인 가족이었는데 집안이 이렇게 휑하고 고기 반찬도 없이 소박하기 그지없는 밥상을 차려내고 있던 것이다. 우리 집도 다른 가정에 비하면 매우 소박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비존슨씨의 집을 보니 매우 부끄러워졌다.
가지고 간 빈병에 식품을 덜어 담아 사는 모습 (위 영상 캡쳐)
이재향 님이 알려 준 영상 속 장면이었다. 이재향 님은 남원에서 이런 모습을 실현하고자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기후위기 활동가다. 비존슨씨가 장을 보던 그런 커다란 매장에 견주면 한없이 작은 가게이지만 남원 시내 한복판에서 친환경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분이다. 이름하여 ‘비니루 없는 점빵’.
몇 년 전 남원 장날, 공설시장 골목에서 아주 작은 노점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물품들을 팔고 있는 노점이었다. 친환경 물품이라고 했다. 지금이야 생협 매장에도 나오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팔아 널리 알려졌지만 대나무 칫솔을 거기서 처음 봤다. 신기했다. 대나무로 칫솔을 만들다니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바로 샀다. 비닐랩 대신 반찬그릇이나 밥그릇을 덮을 수 있는 ‘실리콘 덮개’도 사고 비닐테이프가 아닌 종이테이프도 샀다. 실제 수세미 오이로 만든 자연 수세미도 있었지만 그건 나도 있어서 안 샀다. 하여튼 그날 나는 이렇게 좋은 친환경 상품들인데 너무 작은 노점에다가 호객 행위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환경운동가들이 장사를 하니 장사가 되겠는가 걱정을 한 가득하며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비니루없는점빵 모습
그런데 몇 년 지난 지금 남원 시내 완전 중심가에 작지만 번듯한 가게를 내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가게를 낸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런데 여기가 본점이 아니다. 지리산 아래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싱글벙글 점빵’이 본점이라고 한다. 지구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위기’라는 단어로 고정되어가자 산내면에 귀농한 다섯 명의 활동가들이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친환경 가게를 낸 것, 그것이 2019년이었다. 이들은 작은 가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살래장’과 남원, 전주 그리고 인근 지역의 큰 행사장에도 보따리 장사를 하러 다녔다.
다회용컵 세척장 견학
서울에 견학도 다녀오고 기후위기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내공을 많이 쌓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근사한 가게를 내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비니루 없는 점빵’에서는 친환경 물품만 파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단체를 찾아가서 기후위기 교육, 자원 순환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활동가
“기후위기에 대해 알고는 있는데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실천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분리배출 잘 하기, 에너지 절약, 재사용되는 품목 알려주기 같은 것이죠. 그렇게 교육을 한 덕분인지 지금 플라스틱 병뚜껑 모으기 캠페인에 학생들이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교육만이 아니다. 시민들과 함께 쓰레기 매립장 견학도 간다.
남원시 쓰레기 매립장
“시민들이 쓰레기 매립장에 가면 많이 놀라십니다. 우선 쓰레기 양이 너무 많은 것에 놀라고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지저분한 환경에 놀라죠. 냄새도 심하고요. 매립장 1기가 이미 꽉 차서 그것의 2/3 크기의 2기 매립장이 사용 중이에요. 그런데 2030년까지 쓰려고 만든 2기 매립장이 사용 1년 만에 벌써 반 이상 찼대요. 그래서 지금 그 옆에 또다시 큰 매립장을 파고 있어요.”
이재향 대표가 말하는 동안 점빵 벽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니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눈앞에서는 싹 사라져 깨끗해 보이지만 어디선가 이렇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본다면 쓰레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언제나 백 마디 말보다 현장 교육 한번이 큰 효과가 있다.
올 해 ‘비니루 없는 점빵’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플라스틱 병뚜껑 모으기’이다. SNS에 홍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원 지역 모든 학교, 종교 단체, 기관에 공문을 보내 이 운동을 알렸고 덕분에 여러 학교와 교회, 단체에서 참여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한 학교에서 우편으로 병뚜껑을 한보따리 보냈어요. 깨끗하게 씻어서 보냈더라고요. 정말 감동했죠. 시내에 있는 용성중학교는 벌써 여러 차례 모아서 가져왔어요.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세척한 병뚜껑을 모아 편지와 함께 보내 온 학교
여러 곳에서 모아 온 병뚜껑을 분류해 놓은 모습
물병이나 음료수병은 크니까 잘 모아지고 재활용되지만 병뚜껑은 작아서 버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그 작은 병뚜껑들도 모으면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운동이다. 장비만 있으면 플라스틱 병뚜껑을 다른 물건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데 ‘비니루 없는 점빵’에는 바로 그 기계도 있다. 그 기계로 플라스틱 병뚜껑을 잘게 잘라 가방 걸이, 치약 짜개, 컵 받침대 같은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다양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구상 중이라고 한다. 점빵 안쪽에는 여러 학교와 단체에서 모아 보낸 플라스틱 병뚜껑 푸대가 많이 쌓여있다. 푸대 자루 속에서 ‘어서 나를 좋은 물건으로 부활시켜 주세요!’ 하는 소리 없는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모습
땅에 떨어져 있는 뚜껑 하나를 줍지 않으면 빗물을 타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 고래 뱃속에, 거북이 뱃속에, 갈매기 뱃속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 모으면 훌륭한 자원이 된다. ‘비니루 없는 점빵’의 이런 갸륵한 생각은 학교뿐 아니라 남원 시민 사회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서 성당과 교회, 노인복지관에서도 병뚜껑 모으는 통을 설치했다. 도통동 성당에서 병뚜껑을 모으고 있다는 한 신자는 “처음에 한 상자 차는데 두 달 이상 걸렸는데 그 뒤에는 2주 만에 반 이상 모였어요. 생태환경분과에서 열심히 홍보하니까 신자들에게 인식이 된 것 같아요.” 하고 말한다. 그런 작은 병뚜껑을 모아서 뭘 얼마나 재활용에 도움이 되겠냐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는데, 작은 병뚜껑을 통해서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더 갖게 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활동은 계속 해야 한다.
앞으로 ‘비니루 없는 점빵’은 오토바이 대신 ‘짐자전거’로 배달하는 활동도 구상 중이다. 승용차와 오토바이로 물건이나 음식을 배달하는 것이 고착화된 사회에 또 다른 작은 겨자씨를 뿌리려는 것이다. 일회용 그릇에 비닐랩으로 포장한 짜장면을, 석유를 넣어 달리는 오토바이에 싣고 배달하는 사회에서 과연 느려터진 짐자전거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발아할 수 있을까? 그것이 현실이 되어 오토바이 대신 짐자전거가 달리는 남원 거리를 상상해본다.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 진다. 느린 것을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 사는 비존슨 씨나 나나 별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한 가정의 주부다. 그러나 비존슨씨는 하루에 단 한 장의 비닐봉지도 쓰지 않았고 단 하나의 플라스틱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크게 다르다. 나는 벌써 오늘도 막걸리 병(남편이 어제 마신 것)부터 시작해서 반려견 배변봉투까지 여러 개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렸다. 그런데 비존슨씨가 처음부터 저렇게 쓰레기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몇 년 전까지 미국은 분리배출을 거의 안 하고 쓰레기를 막 버리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친환경 매장과 비존슨씨 같은 사람이 생겼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여전히 기후 악당 국가다. 다만 시민들이 노력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리라. 친환경 매장의 존재 여부, 쓰레기를 덜 생산하고 덜 버려도 되는 사회 구조가 쓰레기 배출량을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남원의 ‘비니루 없는 점빵’이 매우 중요하다. 인구가 8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 지자체장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비니루 없는 점빵이 열심히 활동해서 다른 나라처럼 모범 사례를 만든다면 지자체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함께 하지 않을까? 지금은 나를 비롯해 쓰레기 없는 생활을 꿈꾸는 남원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매장이다. 앞으로 많은 시민들이 조합원에 가입하고 쓰레기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고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깨끗한 자연이 더 이상 쓰레기 매립장이 되지 않길 간절히 소망한다.
기후 놀이 교육
사진 제공 | 비니루없는점빵
글 쓴 사람. 김양오
아이 셋을 다 키운 중년 아줌마. 젊었을 적 글쓰기와 아동문학을 배워 평생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쉰 살부터 역사동화를 쓰기 시작해 책 세 권을 냈다. 아름답게 흐르는 요천이 너무 좋아 남원으로 이사해 15년째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서 가슴이 쓰리다.
길가에 뒹구는 플라스틱 병뚜껑 하나만큼 지구가 병든다
쓰레기 없는 사회를 꿈꾸는 ‘비니루 없는 점빵’
글 / 김양오
장 보러 갈 때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빈손으로 가볍게? 장바구니 하나 달랑?
미국에 사는 비존슨이라는 여성은 장보러 갈 때 매우 무거운 짐을 들고 간다. 손잡이가 튼튼해 보이는 크고 까만 장바구니 두 개다. 그 안에는 하얀 천 주머니들과 크고 작은 유리병들이 잔뜩 들어 있다. 비존슨씨가 장바구니를 차 트렁크에 싣고 달려가는 곳을 따라가 보자.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식료품 매장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매우 특이한 것이 많다. 식품이든 생활 용품이든 모든 상품들이 큰 통과 큰 바구니, 아니면 길쭉한 유리병에 잔뜩 담겨져 있다. 비닐봉지로 소포장된 것은 전혀 없다. 비존슨씨는 가지고 간 빈 병과 천 주머니에 필요한 만큼만 물품을 덜어 담아 계산대에 가지고 간다.
미국의 친환경 매장 계산대 (위 영상 캡쳐)
영상을 보면서 집안이 너무 깨끗하고 플라스틱 소품들이나 장식들이 없어서 혼자 사는 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과 요리를 같이 하고 얼마 뒤 2층에서 다 큰 사내 아이들 두 명이 뛰어내려 왔다. 세상에, 건장한 4인 가족이었는데 집안이 이렇게 휑하고 고기 반찬도 없이 소박하기 그지없는 밥상을 차려내고 있던 것이다. 우리 집도 다른 가정에 비하면 매우 소박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비존슨씨의 집을 보니 매우 부끄러워졌다.
가지고 간 빈병에 식품을 덜어 담아 사는 모습 (위 영상 캡쳐)
이재향 님이 알려 준 영상 속 장면이었다. 이재향 님은 남원에서 이런 모습을 실현하고자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기후위기 활동가다. 비존슨씨가 장을 보던 그런 커다란 매장에 견주면 한없이 작은 가게이지만 남원 시내 한복판에서 친환경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분이다. 이름하여 ‘비니루 없는 점빵’.
몇 년 전 남원 장날, 공설시장 골목에서 아주 작은 노점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물품들을 팔고 있는 노점이었다. 친환경 물품이라고 했다. 지금이야 생협 매장에도 나오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팔아 널리 알려졌지만 대나무 칫솔을 거기서 처음 봤다. 신기했다. 대나무로 칫솔을 만들다니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바로 샀다. 비닐랩 대신 반찬그릇이나 밥그릇을 덮을 수 있는 ‘실리콘 덮개’도 사고 비닐테이프가 아닌 종이테이프도 샀다. 실제 수세미 오이로 만든 자연 수세미도 있었지만 그건 나도 있어서 안 샀다. 하여튼 그날 나는 이렇게 좋은 친환경 상품들인데 너무 작은 노점에다가 호객 행위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환경운동가들이 장사를 하니 장사가 되겠는가 걱정을 한 가득하며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비니루없는점빵 모습
그런데 몇 년 지난 지금 남원 시내 완전 중심가에 작지만 번듯한 가게를 내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가게를 낸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런데 여기가 본점이 아니다. 지리산 아래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싱글벙글 점빵’이 본점이라고 한다. 지구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위기’라는 단어로 고정되어가자 산내면에 귀농한 다섯 명의 활동가들이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친환경 가게를 낸 것, 그것이 2019년이었다. 이들은 작은 가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살래장’과 남원, 전주 그리고 인근 지역의 큰 행사장에도 보따리 장사를 하러 다녔다.
다회용컵 세척장 견학
서울에 견학도 다녀오고 기후위기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내공을 많이 쌓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근사한 가게를 내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비니루 없는 점빵’에서는 친환경 물품만 파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단체를 찾아가서 기후위기 교육, 자원 순환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활동가
“기후위기에 대해 알고는 있는데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실천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분리배출 잘 하기, 에너지 절약, 재사용되는 품목 알려주기 같은 것이죠. 그렇게 교육을 한 덕분인지 지금 플라스틱 병뚜껑 모으기 캠페인에 학생들이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교육만이 아니다. 시민들과 함께 쓰레기 매립장 견학도 간다.
남원시 쓰레기 매립장
“시민들이 쓰레기 매립장에 가면 많이 놀라십니다. 우선 쓰레기 양이 너무 많은 것에 놀라고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지저분한 환경에 놀라죠. 냄새도 심하고요. 매립장 1기가 이미 꽉 차서 그것의 2/3 크기의 2기 매립장이 사용 중이에요. 그런데 2030년까지 쓰려고 만든 2기 매립장이 사용 1년 만에 벌써 반 이상 찼대요. 그래서 지금 그 옆에 또다시 큰 매립장을 파고 있어요.”
이재향 대표가 말하는 동안 점빵 벽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니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눈앞에서는 싹 사라져 깨끗해 보이지만 어디선가 이렇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본다면 쓰레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언제나 백 마디 말보다 현장 교육 한번이 큰 효과가 있다.
올 해 ‘비니루 없는 점빵’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플라스틱 병뚜껑 모으기’이다. SNS에 홍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원 지역 모든 학교, 종교 단체, 기관에 공문을 보내 이 운동을 알렸고 덕분에 여러 학교와 교회, 단체에서 참여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한 학교에서 우편으로 병뚜껑을 한보따리 보냈어요. 깨끗하게 씻어서 보냈더라고요. 정말 감동했죠. 시내에 있는 용성중학교는 벌써 여러 차례 모아서 가져왔어요.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세척한 병뚜껑을 모아 편지와 함께 보내 온 학교
여러 곳에서 모아 온 병뚜껑을 분류해 놓은 모습
물병이나 음료수병은 크니까 잘 모아지고 재활용되지만 병뚜껑은 작아서 버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그 작은 병뚜껑들도 모으면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운동이다. 장비만 있으면 플라스틱 병뚜껑을 다른 물건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데 ‘비니루 없는 점빵’에는 바로 그 기계도 있다. 그 기계로 플라스틱 병뚜껑을 잘게 잘라 가방 걸이, 치약 짜개, 컵 받침대 같은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다양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구상 중이라고 한다. 점빵 안쪽에는 여러 학교와 단체에서 모아 보낸 플라스틱 병뚜껑 푸대가 많이 쌓여있다. 푸대 자루 속에서 ‘어서 나를 좋은 물건으로 부활시켜 주세요!’ 하는 소리 없는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모습
땅에 떨어져 있는 뚜껑 하나를 줍지 않으면 빗물을 타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 고래 뱃속에, 거북이 뱃속에, 갈매기 뱃속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 모으면 훌륭한 자원이 된다. ‘비니루 없는 점빵’의 이런 갸륵한 생각은 학교뿐 아니라 남원 시민 사회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서 성당과 교회, 노인복지관에서도 병뚜껑 모으는 통을 설치했다. 도통동 성당에서 병뚜껑을 모으고 있다는 한 신자는 “처음에 한 상자 차는데 두 달 이상 걸렸는데 그 뒤에는 2주 만에 반 이상 모였어요. 생태환경분과에서 열심히 홍보하니까 신자들에게 인식이 된 것 같아요.” 하고 말한다. 그런 작은 병뚜껑을 모아서 뭘 얼마나 재활용에 도움이 되겠냐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는데, 작은 병뚜껑을 통해서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더 갖게 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활동은 계속 해야 한다.
앞으로 ‘비니루 없는 점빵’은 오토바이 대신 ‘짐자전거’로 배달하는 활동도 구상 중이다. 승용차와 오토바이로 물건이나 음식을 배달하는 것이 고착화된 사회에 또 다른 작은 겨자씨를 뿌리려는 것이다. 일회용 그릇에 비닐랩으로 포장한 짜장면을, 석유를 넣어 달리는 오토바이에 싣고 배달하는 사회에서 과연 느려터진 짐자전거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발아할 수 있을까? 그것이 현실이 되어 오토바이 대신 짐자전거가 달리는 남원 거리를 상상해본다.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 진다. 느린 것을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 사는 비존슨 씨나 나나 별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한 가정의 주부다. 그러나 비존슨씨는 하루에 단 한 장의 비닐봉지도 쓰지 않았고 단 하나의 플라스틱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크게 다르다. 나는 벌써 오늘도 막걸리 병(남편이 어제 마신 것)부터 시작해서 반려견 배변봉투까지 여러 개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렸다. 그런데 비존슨씨가 처음부터 저렇게 쓰레기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몇 년 전까지 미국은 분리배출을 거의 안 하고 쓰레기를 막 버리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친환경 매장과 비존슨씨 같은 사람이 생겼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여전히 기후 악당 국가다. 다만 시민들이 노력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리라. 친환경 매장의 존재 여부, 쓰레기를 덜 생산하고 덜 버려도 되는 사회 구조가 쓰레기 배출량을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남원의 ‘비니루 없는 점빵’이 매우 중요하다. 인구가 8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 지자체장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비니루 없는 점빵이 열심히 활동해서 다른 나라처럼 모범 사례를 만든다면 지자체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함께 하지 않을까? 지금은 나를 비롯해 쓰레기 없는 생활을 꿈꾸는 남원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매장이다. 앞으로 많은 시민들이 조합원에 가입하고 쓰레기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고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깨끗한 자연이 더 이상 쓰레기 매립장이 되지 않길 간절히 소망한다.
기후 놀이 교육
사진 제공 | 비니루없는점빵
글 쓴 사람. 김양오
아이 셋을 다 키운 중년 아줌마. 젊었을 적 글쓰기와 아동문학을 배워 평생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쉰 살부터 역사동화를 쓰기 시작해 책 세 권을 냈다. 아름답게 흐르는 요천이 너무 좋아 남원으로 이사해 15년째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서 가슴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