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남원][곧이곧대로 기록하기] 남원 시민들의 특별한 칠월칠석 “느티나무 고목에 제사를 지내다”

2023-09-05

 

 

남원 시민들의 특별한 칠월칠석

“느티나무 고목에 제사를 지내다” 

 

글 / 김양오
 

 

 

 

칠월칠석날 저녁 남원 시내 한복판에 난데없이 상여 행렬이 나타났다.

 

 

“쩔러어엉 쩔러어엉 쩔러어엉 쩔러어엉”

“에헤~ 에헤에~ 가네~ 가네~ 나는~ 가네~ 황천길로~ 나는 가네~” 

 

 

맑은 요령 소리와 구슬픈 망가 소리가 길거리에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버스와 승용차, 오토바이가 멈췄고 사람들은 상여 행렬에 눈길을 모았다. 그런데 상여가 없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만장을 앞세우고 특이한 나무 그림을 들고 천천히 걷고 있는데 상여는 없다. 그 뒤에 청색 홍색 끈을 잡고 사람들이 따라가고 있다. 상여는 아침에 나가는 법인데 칠석날 밤에 상여라니? 모두 의아한 눈으로, 그러나 오래 된 기억 저편에 있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반가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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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지에 나타난 상여 행렬

 

 

 

상여가 나간 곳은 선원사다. 남원 시내 한복판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신라 헌강왕 원년(87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천년이 넘은 역사를 간직한 절이다. 버스들이 오가는 도로 한쪽에 자그마한 절집 몇 채와 오래 돼 보이지 않는 탑 하나만 눈에 띄니 사람들은 선원사가 그렇게 대단한 절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꽃담장 사이에 서 있는 나무 몇 그루에는 누구라도 눈길을 보낸다. 봄이면 어김없이 길거리를 환하게 밝혀주는 커다란 벚나무 두 그루, 여름이면 무수히 많은 초록잎들로 거리를 싱그럽게 만드는 느티나무 두 그루. 그런데 느티나무들이 예사롭지 않다. 한 나무는 다른 느티나무처럼 하늘로 쭉 뻗어 가지를 드넓게 벌리고 멋있게 서 있는데 다른 한 그루는 거무죽죽한 몸뚱이를 비틀며 젊은 나무에 한쪽 기댄 채 죽어 있다. 몇 년 동안 잎을 틔우지 못하는 것을 보니 완전히 죽은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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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본 선원사 전경

 

 

 

아주 오랫동안 남원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긁어모으고 자료를 모아 남원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해 오신 분이 계시다. 수십 년 동안 모아온 자료들이 방에 한 가득하고 강연도 자주 하시는 분이다. 작년까지 공무원이었으나 시민들은 그를 향토사학자 김용근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 분이 어느 날 선원사에 새로 오신 주지 스님(운문)에게 선원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선원사는 불교의 사찰로서만 기능한 게 아니고 남원 백성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고 남원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고. 많은 이야기 가운데 죽은 지 5년이나 되었다는 느티나무의 사연은 특별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쳐들어온 왜군 5만 6천명은 남원성민 만 여 명을 학살하다시피 했고 성 밖에 있는 광한루, 만복사 그리고 선원사를 싹 다 태워버렸다.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이 ‘소실’된 것이 아니라 일부러 태운 것이다. 3박4일 동안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잿더미가 되어 버린 남원의 풍경을 상상해 보는 건 두렵고 힘든 일이다.  왜군이 떠나고 난 뒤 부모를 잃은 충격과 공포, 배고픔에 넋을 잃고 늘어져 있는 아이들을 살리려고 간신히 몸을 추스르신 한 분이 계셨다. 역시 자식들을 모두 잃었을 할머니 한 분. 그 할머니가 불타버린 선원사 마당에 솥을 걸고 죽을 끓여 고아들을 먹여 살리기 시작했다. 산에 가서 먹을 만한 풀과 나무껍질을 벗겨다가 죽을 끓였을 것이다. 요천에 들어가서 물고기와 다슬기, 재첩을 잡아 끓였을 것이다. 처음엔 할머니 혼자였지만 나중에는 살아남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했을 것이고 그 덕분에 남원은 잿더미에서 간신히 다시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선원사는 아주 일부분이나마 복원이 되었다. 어느 날 주지 스님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났다. 절마당에 돋아나고 있는 작은 느티나무가 당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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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분들의 무덤, 만인의총

 

 

 

입에서 입으로 오랫동안 전해진 이야기는 희미해졌고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김용근 선생님 덕분에 사람들은 늙고 병든 나무를 할머니 나무라 불렀고 그 앞에 서 있는 젊은 나무는 손자나무라고 불렀다. 그런 나무가 5년 전에 완전히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 쪽 가지를 손자나무에게 기댄 채 말이다. 그 모습은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숙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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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나무에 기댄 채 죽은 할머니 나무

 

 

 

옛날부터 전라도 지방에서는 고목이 죽으면 새끼줄로 옆에 있는 나무와 묶어 줬다고 한다. 죽은 나무에 살던 영혼을 옆에 있는 나무에 옮겨주는 의식이다. 김용근 선생님이 나무의 영을 옮겨주는 제사를 지내자고 시민들에게 제안을 하셨다. 이 제안을 받은 운문스님과 몇몇 시민들은 사라진 민속문화를 되살리는 의미도 있지만 기후 위기 시대 나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함께 하자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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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사 방에서 ‘영이제’를 논의하고 있는 시민들

 

 

 

준비 기간은 딱 한 달 반.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거창한 제사와 문화행사가 꾸려지고 200여명이 참가하는 큰 축제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조직도 없고 예산도 없이 말이다. 정말 돈 한 푼 없이 몇 사람이 해낸 행사다. 50여명의 출연진과 스탭들은 모두 재능기부를 했고 오히려 문구류를 담았던 통에 성금이 30여만 원이나 모였다. 종이에 소원을 써서 느티나무 줄에 묶어 주는 행사를 하니 할머니들이 천 원 짜리를 한 장 두 장 넣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민들은 한사코 퍼런 돈 누런 돈까지 넣어 30여만 원이나 모이게 되었다. 이 돈은 100인분이 넘는 짜장면을 직접 만들어 제공한 선원사 신도들에게 전달했다. 선원사는 오래 전부터 ‘짜장면 나눔’으로 유명한 절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짜장면을 준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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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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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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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가와 글씨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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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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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물, 흙, 바람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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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대신에 나무 그림을 들고 행진한다.

 

 

 

일찍 와서 짜장면 먹고 참여한 사람이 100명, 행사 시간에 맞춰 온 사람도 100여명. 거의 2백여 명이 선원사 잔디 마당을 그득히 채웠다. 공식적인 홍보는 딱 5일밖에 안 했는데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모이게 하고 움직이게 했을까? 김용근 선생님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선원사 중심의 남원 공동체 문화가 되살아난 것이라고 보았다. 정유재란 때 죽은 영혼들의 위령제를 드린 것도 선원사(요천변에 큰 괘불을 걸고 괘불제를 지냄)였고, 남원의 독립운동 자금이 거쳐 간 것도 선원사였다. 올 3.1절에 전국 뉴스에도 보도되었던 선원사 명부전 탱화에 숨어있는 태극기가 그 정신을 말해주는 듯하다. 항일문화운동이었던 춘향제를 탄생시킨 사람들도 선원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절 한가운데에 도로를 깔아버려 그런 정신과 전통을 무참히 없애버리려 했다. 그 이후 선원사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작은 절로 위축됐었는데 이번 ‘영이제’를 계기로 시민들이 선원사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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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사 명부전 불화에 그려져 있는 태극기. 1917년에 그려졌으나 2022년 운문스님이 처음 발견했다.

 

 

 

‘영이제’를 준비한 시민들 십여 명이 ‘옥야백리 물방울 공동체’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옥야백리’는 기름진 땅 옥토가 백리에 이르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남원을 이르는 말이다. 옥야백리에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큰 물결 ‘요천’을 만들었듯이 남원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남원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자는 뜻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 그 아름다운 밤에 시공간을 초월한 좋은 기운들이 모여 남원의 ‘오래 된 미래’가 다시 시작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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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날에는 늘 비가 온다고 했다. 헌데 이번 칠석날 남원 하늘에는 하얀 구름 사이로 별들이 반짝였다. 견우별 직녀별 그리고 느티나무 할매별이 남원의 평화와 번영을 빌고 있는 듯했다.   

 

 

 

 

 

사진 제공 | 옥야백리 물방울공동체

 

 

글 쓴 사람. 김양오

아이 셋을 다 키운 중년 아줌마. 젊었을 적 글쓰기와 아동문학을 배워 평생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쉰 살부터 역사동화를 쓰기 시작해 책 세 권을 냈다. 아름답게 흐르는 요천이 너무 좋아 남원으로 이사해 15년째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서 가슴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