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산청+그림+일기] 여름 특집. 하동+여행+일기

2023-07-31

 

 

하동+여행+일기

〔산청+그림+일기〕여름 특집

 

글과 그림 / 효림

 

 

* 옆 동네 활동가들은 무슨 일을 할까, 어디에서 모일까, 어떤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까, 궁금하던 찰나,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커뮤니티 탐방’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마실 다녀오듯 함양, 산청, 구례, 하동, 남원 모두 가보고 싶었지만, 저는 딱 한 곳만 갈 수 있었어요. 이번 기록은 하동에 다녀온 여행 일기입니다.

 

 

7월 19일 수요일 

 

 

 

08:00 

 

10시까지 하동 차시배지에서 모인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지도 앱을 켜서 보니 집에서 1시간 20분이 걸린다. 운전 실력에 비해 길찾기 능력이 탁월하게 떨어지는 나는 내비게이션을 켜도 툭하면 이상한 길로 접어든다. 두 시간은 걸릴 것 같다.

 

 

 

10:00

 

역시나 또 길을 잃었다. 터널 두 개를 통과하고 나서야 옆길로 빠져 다시 되돌아와 겨우 화개장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 차는 주차하고 쭈이를 만나 차시배지로 갔다. 탐방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아는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이도 있다.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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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곳의 다실로 나눠가기로 했다. 나는 ‘관아수제차’에 갔다. 차를 마시며 차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인데, 이걸 ‘다담’이라고 한다. 차를 내리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사람을 ‘팽주’라고 부른단다. 차에 대한 애정에 앞서 팽주가 갖춰야 할 소양은 어쩌면 보따리에서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찻잔에 차가 비면 팽주는 차를 채우는데, 이때 재미난 이야기도 또로록 같이 채워진다. 정갈하게 차려진 찻상 아래에는 분명 이야기를 잔뜩 가둬놓은 보따리가 있음에 틀림없다. 술과 차를 번갈아 같이 마시면 다음 날 아침까지 취하지도 않고 가뿐하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12:00

 

‘찻잎마술’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와 다식을 먹은 뒤라 그리 배고프지는 않지만, 다른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

 

 

 

13:30 

 

하동, 하면 역시 최참판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다르다. 관광지의 마지막은 언제나 기념품 샵이지만 우리는 관광지는 건너뛰고 기념품 샵에만 갔다. ‘빅페리컴즈’는 하와이에서 막 서핑하다 잠깐 들어간 동네 잡화점 느낌이다. 하동에서 훌쩍 공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하동의 20대 청년들 ‘다른파도’가 만든 가게라고, 오늘의 여행가이드이자 하동기록활동가 양지영 씨가 귀띔한다. 과자, 간식거리, 음료, 술, 차, 엽서, 마그넷 등 아기자기한 것들이 눈을 홀리지만 더 궁금해지는 건 ‘다른파도’다. 이름 한번 잘 지었구나, 확실히 하동에 다른 파도가 몰려오고 있는 것 같다.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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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면으로 넘어간다. 하동 활동가들의 아지트라 불리는 ‘마을공방 두니’. 악양생활문화센터 앞에 자리한 몇 개의 알록달록한 컨테이너에 카페, 식물공방, 책방, 수예공방이 모여 있다. 양지영 씨가 출근하는 곳도 바로 여기. 예전에 학교였던 곳답게 아름드리 큰 단풍나무가 공방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이들은 쉴 때도, 일할 때도, 아이디어를 나눌 때도, 잠깐 눈을 붙일 때도, 아무 일도 없을 때도 이곳에 앉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 나무가 하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전날 온 비로 부쩍 습도가 올라간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무 아래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15:00

 

다음 목적지를 향해 양지영 씨의 차를 타고 이동한다. 산청에 잠깐 살았던 양지영 씨는 몇 년 전 여행협동조합 ‘놀루와’에 취직하면서 하동에 자리 잡았다. 산청에서도 어떻게 하면 지역에서 재밌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엿보았는데, 이곳에서 훨훨 날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차 뒷좌석에 앉아 그동안의 활동과 기획을 얼핏 들으며 산청이 인재를 놓쳤구나, 후회하면서도 잠이 몰려온다. 이런 귀한 얘기를 듣는 순간에 겨우 잠 하나 이겨내지 못하다니... 자책해보지만... 꿀잠잤다.

 

 

 

15:30

 

햇살요가원에 도착했다. 비몽사몽인 사이 커다란 눈망울과 활짝 웃는 입꼬리 위로 볼록 솟은 두 볼에서 밝은 기운이 솟아나는 ‘먼지’가 반갑게 맞이한다. 서울에서 1년 전에 온 먼지는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은 지역 활동, 요가강사, 어린이‧청소년 관련 활동이라 야무지게 소개했다. 이제까지 나를 누군가에게 제대로 소개한 적이 있었던가. 자기소개하기를 주저하며 언제나 얼버무리던 나에게 먼지의 태도는 작은 충격이다. 본인을 잘 표현한다는 건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일 테니. 요가를 하면 그렇게 될까 싶어 우선 먼지를 따라 요가를 해본다.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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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의 또 다른 자랑, 송림에 도착했다. 섬진강 변을 따라 펼쳐진 소나무 숲이다. 이곳은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꼭 오는 곳이다. 그러나 숲 해설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숲을 같이 걷고 천천히 바라보자 새로운 것이 보인다. 점찍기 여행은 쇼핑하듯 관광지를 구경하고 다시 차에 올라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이동하기만을 반복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나 보다. 오히려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하동을, 지역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들으니 자세히 알게 된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 중 정말로 잘 아는 건 얼마나 될까? 

 

 

 

18:00

 

저녁 식사를 하러 하동읍으로 향하는 길, 몇 년 전부터 지역 청년들과 같이 일한 양지영 씨에게 물어보았다. 친구로 알게 된 사람과 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당연히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땐 과감히 일에 대한 욕심을 줄인다고. 왜냐하면 ‘사람’으로 먼저 만났으니까. 산청의 청년들과 뭐라도 해보고 싶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와해되는 선례를 들은 적이 있어 주저하는 나에게 양지영 씨가 현명하게 답한다. 시장 ‘민들레점빵’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19:30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친구 소개로 알게 된 ‘나마스떼’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경주에서 민박하다가 작년에 하동으로 거처를 옮긴 ‘수진’과 ‘JJ’는 시골집을 고쳐 한옥 민박을 운영 중이다.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식당 건물의 상량판이다. 이름하여 ‘대충건설’. 삐뚤빼뚤하지만 과하지 않은, 적당한 태도가 맘에 든다, 아니 사실은 멋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친한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가 떠오른다. 그도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JJ를 얼핏 보면 대충 일본사람 같다. 

 

 

 

20:00

 

나마스떼는 여전히 편안하고 아늑하다. 이 집에서 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내부의 나무 마감재와 전기 배선, 콘센트와 마당의 데크, 화장실의 타일과 거즈로 만든 수건,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담은 모두 다른 모양의 도자기 그릇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 손으로 하는 능력자들인데 정작 이들의 표정은 느슨하다. 코로나 이전엔 1년의 반을 네팔과 인도에서 NGO 활동을 했단다. 나머지 반은 민박집을 하고.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내 취향, 나를 위한 소비, 내가 원하는 삶, 자아실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당연한 나에게 이들의 방식은 일견 대단해 보이지만 궁금하기도 하다. 타인을 위해 사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 적은 없었을까. 수진이 답하길, “한국에 있다 보면 저도 어느새 ‘나’만 생각하게 돼요. 밖에 나가야 비로소 그게 보여요. 오지에서 일은 많죠. 처리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요. 근데 그제야 제 삶에 균형이 딱 맞춰진다는 걸 느껴요.”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단순하고 명확해진다는 걸까. 뭔가 엄청난 걸 들은 것 같은데, 긴 일정에 눈꺼풀이 무겁다.

 

 

 

 

 

7월 20일 목요일

 

 

 

08:00

 

며칠 전부터 적량면사무소 근처에 카페를 열었다는 수진과 JJ가 아침 준비를 한다. 삶은 달걀과 텃밭 샐러드, 뜨끈한 빵에 직접 만든 블루베리 잼과 바질페스토를 보니 군침이 돈다. 산청 청년들과 뭔가 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말을 던지자마자 JJ가 눈을 반짝인다.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요. 딱 3명이 적당해요. 대신 세세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를 나눠야죠. 모든 건 다 대화에서 나와요. 누군가 애를 쓰는데 누군가는 덜 쓰는 것에 마음이 상하지 않으려면 서로 온도가 비슷한 게 좋아요.” 아침을 먹고 카페로 넘어간다.

 

 

 

9:30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제로웨이스트’ 코너를 바라본다. 이곳은 일회용 컵이 없다. 텀블러에 담아가야 한다. 텀블러가 없다면 한쪽에 마련된 SNS를 통해 전국에서 공수한 텀블러 중에서 골라 담아간다. 사용한 텀블러는 다시 카페에 가져와야 한다. 덕분에 설거지거리가 많지만, 수진과 JJ는 이 실험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주 고객은 동네 어르신들과 면사무소 직원인데 이들도 이 실험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10:30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행의 끝은 언제나 ‘나’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그것을 업으로 삼고자 한다. 여전히 세련된 도시 생활에 자극받고 활력을 느낀다. 그런데 어쩌다 산청에 흘러 들어와 8년째 살고 있다. 집도 지어 버렸다. 지역에서의 삶과 공동체에 관심 가진 적은 없지만 이미 그들에게 격하게 환대받았다. 지금까지 잘살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두 발은 산청 땅을 밟고 있고, 손닿는 곳에 친구들이 있다. 앞서 산청에 내려온 이들은 어느새 동네 어르신이 되어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청년 세대의 영원한 난제, 두 선택지 중 아직은 어느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선 중얼거려 본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