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여름나기 〔산청+그림+일기〕여섯 글과 그림 / 효림 * 태양의 기세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더위는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질 즈음 저는 창밖을 노려봅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우선 마음의 준비를 해보는 것이지요. 오이와 호박, 가지와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하면 마트에서 파는 컵빙수에 우유를 넣으며 여름을 맞이합니다. 와그작와그작 얼음을 씹으면서요. 복날에는 냉동실의 아이스팩을 꺼내서 얇은 수건에 돌돌 말아 두건처럼 목에 두릅니다. 팔팔 끓는 삼계탕에 몸의 앞쪽은 뜨거워도 등에는 서늘한 기운이 싸악 내려오거든요. 뜨끈한 닭죽을 먹고 난 후에는 찬물로 샤워하고 책을 하나 고릅니다. 최대한 무겁고 어두운 내용으로요. 왼쪽에는 고양이 꼬리 팔랑팔랑, 오른쪽에는 뎅겅뎅겅 썰어놓은 수박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비극을 보고 있자면, 이것만큼 무사태평한 날도 없으니까요. 이번 기록은 아파트살이를 청산하고 마당 있는 집에서 맞이한 첫 번째 여름 일기입니다. 오이호박가지토마토 오이오이호박가지 호박호박호박가지가지오이 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토토토토토토토...
같이 사는 친구가 봄에 모종을 사서 심을 때 쳐다보지도 않았다. 텃밭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키우는 건 당신이 해라, 대신 집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 장담하던 터였다. 오이 하나, 호박 하나, 가지 두 개만 하더라도 귀여웠다. 오이무침과 호박볶음, 가지구이를 했다. 오이 다섯 개를 들고 왔을 땐 소박이를 담갔다. ‘애’호박이 맞을 정도인가 싶은 호박 세 개는 새우가루를 살살 넣어 부침개를 해 먹었다. 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는 어찌나 맛있던지! 나는 네 가지 채소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법을 궁리했다. 어느새 밥상은 오이와 호박, 가지와 토마토로 채워졌다. 짝꿍이 말했다, “또 오이 반찬이야?” 내가 말했다, “이제 호박은 그만 가지고 들어올래?” 
토마토와 오이에 올리브오일, 소름, 후추만 뿌려도 훌륭한 샐러드가 된다. 여름휴가는 우리 집에서 이사한 날로부터 일주일 후, 서울에서 엄마와 오빠가 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간디고 졸업생과 그의 친구들, 선생님들, 짝꿍의 가족들과 친척들, 친척의 친구들... 다시 또 졸업생, 재학생, 동네 친구들... 손님 방문은 끊이질 않았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오지 않는다지만 머문 흔적으로 보아 손님이나 천사나 매한가지인 듯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던데 난 자리에 허할 새도 없이 사람들이기 바빴다. 어깨에 긴장이 풀리고 손님맞이가 손에 익을 때쯤 산청에 살다 홍성으로 갔던 숙곰‧승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여름에 살구(올해 태어난 아기 태명) 데리고 산청에 2박 3일로 휴가 가고 싶은데... 괜찮아?” 운명이다. 손님을 맞이할 운명인 것이다. 운명은 내가 정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따르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시절부터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자기네 집처럼 뒹굴거렸다. 더 머물고 싶다며 몸을 배배 꼬았다. 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침 데크 공사를 마친 다음 날이었다. 숙곰‧승민을 아는 동네 친구들까지 모여 왁자지껄 실컷 놀았다. 술과 함께 차를 마시면 숙취에 좋다기에 새벽에는 차도 내려 마셨다. 아, 새로 지은 마당 있는 집에서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웃음이 끊이지 않는 운명이란 참... 1박2일 도시여행 우당탕탕 손님을 치르고 8월이 찾아왔다. 당분간 사람 얼굴 비슷한 건 쳐다보기도 싫었다. 거울도 안 봤다.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을 만큼 뒹굴기를 일주일, 짝꿍이 말했다. “부산 갈래?” 몇 년 전부터 우리는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지방 소도시들은 각자의 매력이 있다. 지역에서 자생한 중소기업이 만들어 낸 풍경은 생소하고, 오래된 건물들에서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육지와 바다 사이 조선소와 제철소는 거대한 실루엣을 그린다. 특히 부산은 이국적인 데가 있다. 
해 질 녘 실루엣은 도시의 추한 면을 적당히 감춘다. 해변에 우뚝 선 최첨단의 빌딩과 한국전쟁 이후 머물렀다던 언덕배기 빼곡한 집들을 보고, 바다 위를 가르는 미래도시에 있을 법한 다리를 건너 옛 공장 건물을 개조한 세련된 카페에 들어서면 이리저리 엉킨 시간 위를 걷는 것 같다. 우리는 당분간 여름마다 이 도시를 방문할 예정이다. 갑자기 없어지는 차선과 깜빡이를 켜는 순간 절대 양보하지 않는 차들,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조차 이국적 매력으로 보이니까. 동네 주민이 열고, 다 같이 즐기는 영화축제 
제2회 함께평화영화제 포스터 영화관과 수영장, 헬스장을 겸하고 있는 ‘남부문화체육센터’는 산청군민 복지 생활의 중심에 있는 시설이다. 원주민과 귀촌인, 너나 할 것 없이 만족도가 높다. 동네의 영화관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민간에서 주도하는 축제인 ‘함께평화영화제’는 ‘지역문화생태계다양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부한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영화제가 8월 14일 기림의 날 열렸다. 모름지기 영화제에는 특별히 주력하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상영하는 영화가 총 세 편뿐이라도 말이다. 올해는 ‘수라’였다. 1-2주 지나면 막을 내리는 여타 다른 독립영화와는 달리 수라는 날이 갈수록 탄력이 붙고 있었다. 개봉일은 6월 21일이었는데 영화제 한 달 전인 7월 중순에 감독과의 대화를 위해 연락을 시도해도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망신살 뻗친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이었다. 여차저차 모신 황윤 감독은 대번에 열정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루어진 1시간 남짓의 대화에서는 관객의 열기 또한 감독 못지않음이 전달되는 자리였다. 두 번의 큰 행사를 무사히 치렀지만 해결해야 할 일도 남아있다. 영화관 측은 영화제를 ‘지역축제’로 바라보기보다는 ‘대관행사’의 한 종류로 취급하는 듯했다. 여전히 영화 선정이나 행사 진행에 협조적이지 않다. 영화제 기획도 개선이 필요하다. 선정 팀과 현장 팀으로 나눠 일을 분산하고 세분화해야 할 단계에 왔음이 보인다. 수영과 드로잉 더위를 피해 여름 반짝 1-2달만 다니던 수영장에 봄부터 나가기 시작했다. 장기간의 집짓기와 무리한 이사, 계속되는 손님방문으로 일상의 균형이 무너진 터였다. 다시 시작된 허리통증은 몸도 무너졌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별것 아닌 일로도 쉽게 화가 났다. 체력이 성격이다, 라디오에서 배철수 아저씨의 말을 듣고 오후 세 시 반에 덜컥 등록해 버렸다. ‘지덕체’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월수금 강습이지만 별일 없으면 다른 요일에도 같은 시간에 나가 수영을 했다. 아니, 그냥 물 위에 떠 있었다. 누군가 몇 바퀴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돌면서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 낸다. 접영하는 사람의 물소리는 타일에 부딪혀 더욱 크게 울려 퍼진다. 초등수영 온 아이들은 아기오리들처럼 강사를 졸졸 따라다닌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도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언제나 평화롭다. 수영 하다 보면 드로잉과 비슷한 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물 안에서는 걷기조차 쉽지 않은데, 물 밖과 저항 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 안의 모든 움직임은 저항과의 싸움이므로 영법은 저항을 줄이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물을 무서워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손과 발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많아진다. 군더더기를 줄이려는 노력이 곧 수영의 핵심이다. 드로잉도 마찬가지. 처음엔 생김새를 관찰하며 쫓아가느라 자잘한 선이 많다. 여러 번 그리다 보면 대상의 뼈대가 보인다.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 선을 하나만 그어도 힘이 느껴진다. 군더더기는 없어지고 핵심만 남는다. 며칠 전 25m 레인을 스무 바퀴 돌았다. 네 바퀴 돌 때까지는 숨이 차지만 어느 순간부터 팔과 다리가 저절로 돌아간다. 수영한다는 인식은 사라지고 물과 하나된 느낌만 남았다. 일렁이는 빛은 바닥 타일에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몸을 쓰는 감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몸에 새긴 기억이야말로 진짜 내 것이기 때문이다. 촌스럽게 살아가기 우리는 멀끔한 마트의 상품보다 직접 키운 텃밭의 작물이 맛있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산다는 건 풀과의 전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풀 옆에는 벌레가 있고, 벌레 옆에는 새가 울며, 거미는 어디에나 집을 짓는다. 할 일은 끝이 없지만 그 일을 해도 알아주는 이 없다. 그러나 직접 할 수 없는 일은 부탁할 수 있는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고, 나는 음식을 대접하며 삶을 나눈다. ‘태도나 취향이 세련되지 못하고 시골 사람 같다’는 표현인 ‘촌스럽다’는 그동안 부정적인 단어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청년세대의 귀촌 현상을 보고 있자면, 도시의 삶의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낀다. 10대 시절 내내 대학을 위해 공부만 하다 20대 대기업에 들어가 회사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30대 겨우 빚을 내어 공중에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까? 위 과정을 겪어 온 30-40대가 귀촌을 시도하는 사이, 윗세대를 보고 미리 알아챈 20대 청년들이 과감하게 시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누군가는 더욱 빠르게 연결될 거라며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노래하고, 누군가는 한계에 다다른 환경문제로 암울한 미래를 경고한다. 거대 담론 앞에 개인은 보잘것없으니, 생각을 멈추고 SNS의 귀여운 고양이 영상이나 보고 싶어진다. 키오스크가 손님을 맞이하고, 인공지능이 손발을 대신하며. 알고리즘이 생각조차 지배하는 시대라지만 우리가 가진 몸 이상을 상상하는 것은 허상이며 착각이다. 그럴수록 눈과 귀를 열고 손과 발을 쓰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촌스럽다’는 어쩌면 ‘인간답다’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
시골에서 여름나기
〔산청+그림+일기〕여섯
글과 그림 / 효림
* 태양의 기세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더위는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질 즈음 저는 창밖을 노려봅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우선 마음의 준비를 해보는 것이지요. 오이와 호박, 가지와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하면 마트에서 파는 컵빙수에 우유를 넣으며 여름을 맞이합니다. 와그작와그작 얼음을 씹으면서요. 복날에는 냉동실의 아이스팩을 꺼내서 얇은 수건에 돌돌 말아 두건처럼 목에 두릅니다. 팔팔 끓는 삼계탕에 몸의 앞쪽은 뜨거워도 등에는 서늘한 기운이 싸악 내려오거든요. 뜨끈한 닭죽을 먹고 난 후에는 찬물로 샤워하고 책을 하나 고릅니다. 최대한 무겁고 어두운 내용으로요. 왼쪽에는 고양이 꼬리 팔랑팔랑, 오른쪽에는 뎅겅뎅겅 썰어놓은 수박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비극을 보고 있자면, 이것만큼 무사태평한 날도 없으니까요. 이번 기록은 아파트살이를 청산하고 마당 있는 집에서 맞이한 첫 번째 여름 일기입니다.
같이 사는 친구가 봄에 모종을 사서 심을 때 쳐다보지도 않았다. 텃밭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키우는 건 당신이 해라, 대신 집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 장담하던 터였다. 오이 하나, 호박 하나, 가지 두 개만 하더라도 귀여웠다. 오이무침과 호박볶음, 가지구이를 했다. 오이 다섯 개를 들고 왔을 땐 소박이를 담갔다. ‘애’호박이 맞을 정도인가 싶은 호박 세 개는 새우가루를 살살 넣어 부침개를 해 먹었다. 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는 어찌나 맛있던지! 나는 네 가지 채소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법을 궁리했다. 어느새 밥상은 오이와 호박, 가지와 토마토로 채워졌다. 짝꿍이 말했다, “또 오이 반찬이야?” 내가 말했다, “이제 호박은 그만 가지고 들어올래?”
토마토와 오이에 올리브오일, 소름, 후추만 뿌려도 훌륭한 샐러드가 된다.
여름휴가는 우리 집에서
이사한 날로부터 일주일 후, 서울에서 엄마와 오빠가 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간디고 졸업생과 그의 친구들, 선생님들, 짝꿍의 가족들과 친척들, 친척의 친구들... 다시 또 졸업생, 재학생, 동네 친구들... 손님 방문은 끊이질 않았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오지 않는다지만 머문 흔적으로 보아 손님이나 천사나 매한가지인 듯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던데 난 자리에 허할 새도 없이 사람들이기 바빴다. 어깨에 긴장이 풀리고 손님맞이가 손에 익을 때쯤 산청에 살다 홍성으로 갔던 숙곰‧승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여름에 살구(올해 태어난 아기 태명) 데리고 산청에 2박 3일로 휴가 가고 싶은데... 괜찮아?”
운명이다. 손님을 맞이할 운명인 것이다. 운명은 내가 정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따르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시절부터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자기네 집처럼 뒹굴거렸다. 더 머물고 싶다며 몸을 배배 꼬았다. 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침 데크 공사를 마친 다음 날이었다. 숙곰‧승민을 아는 동네 친구들까지 모여 왁자지껄 실컷 놀았다. 술과 함께 차를 마시면 숙취에 좋다기에 새벽에는 차도 내려 마셨다. 아, 새로 지은 마당 있는 집에서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웃음이 끊이지 않는 운명이란 참...
1박2일 도시여행
우당탕탕 손님을 치르고 8월이 찾아왔다. 당분간 사람 얼굴 비슷한 건 쳐다보기도 싫었다. 거울도 안 봤다.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을 만큼 뒹굴기를 일주일, 짝꿍이 말했다. “부산 갈래?” 몇 년 전부터 우리는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지방 소도시들은 각자의 매력이 있다. 지역에서 자생한 중소기업이 만들어 낸 풍경은 생소하고, 오래된 건물들에서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육지와 바다 사이 조선소와 제철소는 거대한 실루엣을 그린다. 특히 부산은 이국적인 데가 있다.
해 질 녘 실루엣은 도시의 추한 면을 적당히 감춘다.
해변에 우뚝 선 최첨단의 빌딩과 한국전쟁 이후 머물렀다던 언덕배기 빼곡한 집들을 보고, 바다 위를 가르는 미래도시에 있을 법한 다리를 건너 옛 공장 건물을 개조한 세련된 카페에 들어서면 이리저리 엉킨 시간 위를 걷는 것 같다. 우리는 당분간 여름마다 이 도시를 방문할 예정이다. 갑자기 없어지는 차선과 깜빡이를 켜는 순간 절대 양보하지 않는 차들,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조차 이국적 매력으로 보이니까.
동네 주민이 열고, 다 같이 즐기는 영화축제
제2회 함께평화영화제 포스터
영화관과 수영장, 헬스장을 겸하고 있는 ‘남부문화체육센터’는 산청군민 복지 생활의 중심에 있는 시설이다. 원주민과 귀촌인, 너나 할 것 없이 만족도가 높다. 동네의 영화관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민간에서 주도하는 축제인 ‘함께평화영화제’는 ‘지역문화생태계다양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부한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영화제가 8월 14일 기림의 날 열렸다.
모름지기 영화제에는 특별히 주력하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상영하는 영화가 총 세 편뿐이라도 말이다. 올해는 ‘수라’였다. 1-2주 지나면 막을 내리는 여타 다른 독립영화와는 달리 수라는 날이 갈수록 탄력이 붙고 있었다. 개봉일은 6월 21일이었는데 영화제 한 달 전인 7월 중순에 감독과의 대화를 위해 연락을 시도해도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망신살 뻗친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이었다.
여차저차 모신 황윤 감독은 대번에 열정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루어진 1시간 남짓의 대화에서는 관객의 열기 또한 감독 못지않음이 전달되는 자리였다. 두 번의 큰 행사를 무사히 치렀지만 해결해야 할 일도 남아있다. 영화관 측은 영화제를 ‘지역축제’로 바라보기보다는 ‘대관행사’의 한 종류로 취급하는 듯했다. 여전히 영화 선정이나 행사 진행에 협조적이지 않다. 영화제 기획도 개선이 필요하다. 선정 팀과 현장 팀으로 나눠 일을 분산하고 세분화해야 할 단계에 왔음이 보인다.
수영과 드로잉
더위를 피해 여름 반짝 1-2달만 다니던 수영장에 봄부터 나가기 시작했다. 장기간의 집짓기와 무리한 이사, 계속되는 손님방문으로 일상의 균형이 무너진 터였다. 다시 시작된 허리통증은 몸도 무너졌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별것 아닌 일로도 쉽게 화가 났다. 체력이 성격이다, 라디오에서 배철수 아저씨의 말을 듣고 오후 세 시 반에 덜컥 등록해 버렸다. ‘지덕체’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월수금 강습이지만 별일 없으면 다른 요일에도 같은 시간에 나가 수영을 했다. 아니, 그냥 물 위에 떠 있었다. 누군가 몇 바퀴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돌면서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 낸다. 접영하는 사람의 물소리는 타일에 부딪혀 더욱 크게 울려 퍼진다. 초등수영 온 아이들은 아기오리들처럼 강사를 졸졸 따라다닌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도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언제나 평화롭다.
수영 하다 보면 드로잉과 비슷한 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물 안에서는 걷기조차 쉽지 않은데, 물 밖과 저항 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 안의 모든 움직임은 저항과의 싸움이므로 영법은 저항을 줄이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물을 무서워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손과 발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많아진다. 군더더기를 줄이려는 노력이 곧 수영의 핵심이다. 드로잉도 마찬가지. 처음엔 생김새를 관찰하며 쫓아가느라 자잘한 선이 많다. 여러 번 그리다 보면 대상의 뼈대가 보인다.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 선을 하나만 그어도 힘이 느껴진다. 군더더기는 없어지고 핵심만 남는다.
며칠 전 25m 레인을 스무 바퀴 돌았다. 네 바퀴 돌 때까지는 숨이 차지만 어느 순간부터 팔과 다리가 저절로 돌아간다. 수영한다는 인식은 사라지고 물과 하나된 느낌만 남았다. 일렁이는 빛은 바닥 타일에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몸을 쓰는 감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몸에 새긴 기억이야말로 진짜 내 것이기 때문이다.
촌스럽게 살아가기
우리는 멀끔한 마트의 상품보다 직접 키운 텃밭의 작물이 맛있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산다는 건 풀과의 전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풀 옆에는 벌레가 있고, 벌레 옆에는 새가 울며, 거미는 어디에나 집을 짓는다. 할 일은 끝이 없지만 그 일을 해도 알아주는 이 없다. 그러나 직접 할 수 없는 일은 부탁할 수 있는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고, 나는 음식을 대접하며 삶을 나눈다.
‘태도나 취향이 세련되지 못하고 시골 사람 같다’는 표현인 ‘촌스럽다’는 그동안 부정적인 단어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청년세대의 귀촌 현상을 보고 있자면, 도시의 삶의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낀다. 10대 시절 내내 대학을 위해 공부만 하다 20대 대기업에 들어가 회사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30대 겨우 빚을 내어 공중에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까? 위 과정을 겪어 온 30-40대가 귀촌을 시도하는 사이, 윗세대를 보고 미리 알아챈 20대 청년들이 과감하게 시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누군가는 더욱 빠르게 연결될 거라며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노래하고, 누군가는 한계에 다다른 환경문제로 암울한 미래를 경고한다. 거대 담론 앞에 개인은 보잘것없으니, 생각을 멈추고 SNS의 귀여운 고양이 영상이나 보고 싶어진다. 키오스크가 손님을 맞이하고, 인공지능이 손발을 대신하며. 알고리즘이 생각조차 지배하는 시대라지만 우리가 가진 몸 이상을 상상하는 것은 허상이며 착각이다. 그럴수록 눈과 귀를 열고 손과 발을 쓰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촌스럽다’는 어쩌면 ‘인간답다’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