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소소한 인터뷰_ 청년 농부 이건해 〔산청+그림+일기〕일곱 글과 그림 / 효림 봄부터 다니기 시작한 수영장에는 6개월째 나가는 중입니다. 이대로만 한다면 무엇 하나 꾸준히 하지 못하는 저에게도 자랑할 만한 것이 생기는 것이죠. 하나의 영법을 터득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발차기가 익숙해질라치면 팔꺾기가 기다리고 있죠. 연습은 지루하지만 조급하진 않습니다. 그럴 땐 잠시 포기하고 상급반 회원들의 여유로운 몸놀림을 관찰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개운해지거든요. 오후 세 시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해사한 청년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던 청년은 어느 날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시골 사는 거, 좋지 않아요? 공기도 좋고.” 그러고는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몇 개월간 지켜보니 참으로 꾸준히, 열심히, 즐기며 수영하더군요. 저는 우주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이 청년이 궁금했습니다. 말투로 보아 산청 사람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때 인터뷰를 청하자, 흔쾌히 대답합니다. “저는 내일도 좋아요. 모레도 좋고요.” 유례없는 가을장마에 다시 여름이 오는 건 아닐지 의구심이 고개를 들 즈음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수영 강습 날, 우리는 두 시간 일찍 만났습니다. 홀연히 나타난 청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언제, 어떻게 산청에 왔을까요? “2021년 3월에 트럭 타고 산청에 내려왔어요. 어릴 적 여름에 여기 자주 왔었어요. 산청이 외갓집이니까. 엄마 말로는 시골을 좋아했대요. 텃밭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농업고등학교에 가고. 농대 졸업하고 바로 내려온 거예요. 농고에도 부모님이 농사짓는 거 아닌 이상 농사지으러 오는 애는 거의 없어요. 농업계 공무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혜택이 있으니까 오죠. 지금 저랑 제일 친한 친구도 농사 안 짓고 다른 일 해요.” 산청에 내려온 지 2년 반. 이제는 농사가 익숙해졌을까요? “1년 반 정도는 엄청 바빴어요. 하우스 만들고, 대출 심사받고. 청년 농업인에 선정되려면 서류도 많이 내야 하잖아요. 면접도 보고 정신없이 보냈어요. 근데 시골이 계절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작년 이맘때 했던 일을 또 똑같이 하고. 봄이랑 겨울에 농사는 제일 한가해요. 저는 무화과 하니까 여름, 가을에는 하우스에 계속 붙어 있어야 해요. 물 줘야 하니까.” 일과가 정해져 있나요? “아침에 무화과 따고 낮에 수영장 가요. 무화과가 안 바쁘거든요. 그만큼 돈이 안 되죠. 돈이 되려면 크게 하고 가격도 높게 받아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하기 싫어서... 뭐가 착한 일인지, 뭐가 옳은 일인지 생각하다가, 제일 양심적인 일이 뭘까 하다가 농사겠구나,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무화과가 병해충에 강해요. 농약을 안 쳐도 되니까 제 양심에 그나마 맞는 것 같아서요. 대학교 때 시범적으로 키워보고, 내려와서 가지 뽑아서 돌려서 심었어요.” 
수확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문한 무화과. 목화장터 밴드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처음엔 엄청 힘들었어요. 얼굴은 안 우는데 마음은 항상 울고 있었어요. 창밖의 방충망이 철창 같고(웃음). 근데 부모님이고 친구한테 죽는 소리할 수 없잖아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닌데. 그때 누군가 해준 말이 있는데, 다 지나간다고... 참 맞는 말이에요. 그때가 지나고 나니까 행복을 느껴봤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좀 무뎌졌는데, 그래도 행복 해봤던 사람이 행복할 줄 안다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혹시 인생 2회 차 인건 아닐까요? 대견스러운 마음을 넘어 대단해 보입니다. 귀촌을 고민하거나 귀촌 후에도 계속되는 청년의 걱정거리가 주거, 생계, 관계입니다. 특히 연고가 없는 곳에서의 시작은 더욱 두렵죠. 그래서 청년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곳을 찾거나 적극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기록이 귀촌을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농사짓는 20대 청년’이란 말에 지레짐작으로 당연히 ‘관계’가 필요하지 않느냐 묻자, 사뭇 진지하게 답합니다. “전혀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누가 있어야 된다거나 그런 거 없었어요. 말로 설명하긴 힘든데, 저는 신념이 있어서 내려온 거예요. 그런 걸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엄청 큰 계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여기 올 때 머리도 밀고 내려왔어요. 2년 정도 삭발하고 살았어요, 지금은 기르지만.” 흔한 말로, 운명, 같은 건가요? “네, 맞아요. 근데 이거 말로 설명하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웃음). 주거나 생계는, 할머니가 살던 빈집이 있었어요. 뒤에 논도 있어서 거기에 하우스를 지을 수 있었어요. 시골 내려올 때 집 짓는 것도 그렇지만 땅 구하는 것도 어렵잖아요. 운명이다, 생각했어요, 상황이 딱 맞았으니까. 저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여기 내려와서 두 명이나 알게 됐어요. 그래서 너무너무 행복했죠. 같이 안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고, 위로가 되고. 영혼이 통한다고 해야 하나...? 근데 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저는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있어요.” 수영으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무언가를 배울 때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합니다. 분명 같은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데도 건해 씨는 월등히 습득이 빠릅니다. 체력이 좋은 걸까요? 젊어서 그런 걸까요? 최근 배우기 시작한 플립 턴에 대해서 물어보니 해맑게 대답합니다. “딱 300번만 연습해 봐요.” 역시 배움에는 왕도가 없나 봅니다. 건해 씨가 생각하는 수영의 매력은 뭘까요? “올해 2월부터 수영을 시작했어요. 겨울이다 보니 남는 시간이 너무 많았어요. 마침 생일 선물로 친구가 수영복을 사줬어요. 수영할까, 친구한테 말하니 적극 추천하더라고요. 시간이 너무 남으니까 할 게 없어서 처음엔 2시간씩 있고 그랬어요. 하다 보니까 욕심도 생기고. 우리는 모두 처음에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수영 선수 할 것도 아닌데, 뭐 잘할 필요 있을까? 근데 그것도 멋진 생각이 아니에요. 수영장에 왔으면 수영을 잘해야 돼요. 수영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수영 때문이고, 운동장이 있는 이유는 운동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나약한 소리는 하면 안 돼요(웃음).” 수영장에 왔으면 수영을 잘해야 해요. 아주머니든 할머니든 수영장에선 수영만 잘하면 멋져 보이잖아요.
“온 김에 열심히 하자. 안 돼도 매일 왔어요, 무조건. 근데 올 때마다 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금씩 나아지니까. 수영장에선 아주머니든 할머니든 수영만 잘하면 멋져 보이잖아요(웃음). 지금도 수영할 때 힘들어요.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맨날 체하고, 감기 걸리고, 비염 달고 살고. 다른 사람들은 커피 마시면 힘 난다고 하잖아요. 저는 안마시거든요. 그걸 마시면 올라간 만큼 후폭풍이 있더라고요. 그만큼 내려가고. 나중엔 너무 폭이 커져요. 저는 그냥 비실비실 오래 가려고요.” 젊으니 당연히 체력이 좋을 거란 예상과는 다른 답입니다. 25m 두세 바퀴만 돌아도 헉헉대며 손사래를 치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수영장에서 건해 씨는 말이 많지 않습니다. 그저, 수영할 뿐이지요. 언제부터인가 그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고는 나도 열심히 해야지, 다짐하게 되죠. 수영 외에 요즘 건해 씨에게 중요한 건 뭘까요? 키워드 3가지를 물었습니다. “일단 어리다, 미숙하다. 또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니에요. 마지막은... 말할 수가 없어요(웃음). 아는 게 없네요, 좋은 사람도 아니고(웃음).” ‘어리다, 미숙하다’는 ‘성숙하다’가 전제이므로 할 수 있는 말일까요? ‘착하지 않다’는 건 ‘착한’ 게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겠죠? 건해 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이 있는 걸까요? “요즘 철학책을 읽고 있어요.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번 생에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빨리 익는 열매라고 해도 결국 시간이 필요하죠. 뭔가 깨달음을 얻고 싶어요. 지금도 어떤 깨달음은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낮은 단계에 있어요. 더 높은 깨달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겠죠. 그 깨달음을 누군가 얘기해도 저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야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알게 되는 거죠.” 점점 대화가 깊어집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처음 만날 때 보통 몇 가지 단어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서울에서 왔으며’, ‘결혼했고’, ‘집을 지었다’ 등등의 키워드로요. 그러나 이것이 저를 다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함부로 말하지 않죠. 어느새 ‘청년 농부’의 그림자가 걷히고 ‘이건해’라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살면서 즐거움이 있을 텐데 그런 건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부작용이 더 많고. 정신적인 깨달음은 부작용이 적은 것 같아요. 저는 농사가 정답인 줄 알고 살아왔어요. 근데 아닌 거예요.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정답이라고 온전히 믿고 갔던 거잖아요. 그랬더니 다른 길이 보이더라고요. 농사는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도 농사 좋아요, 자연스럽잖아요.” 
강아지와 함께. 이외에도 고양이 네 마리랑 같이 산다. 대식구다.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야 돼요. 남이 뭐라 하든, 그게 정답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한테는 정답이에요. 저는 참 감사한 삶이에요. 엄마 아빠가 공부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농사짓는다니까 농고도 알아봐주고. 누군가 저한테 물어보면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요. 뭘 하든지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자꾸 훈수 두니까(웃음). 주먹으로 얼굴을 맞으면 아프니까 맞으면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해도 사실 맞아봐야 아는 거잖아요. 진짜 아픈지는 맞아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련을 겪거나 아프면 항상 깨달음이 있잖아요. 근데 깨달음 얻자고 계속 아프기만 해야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아요. 몸이 너무 힘들어요(웃음).” 수영을 시작한 이후 바뀐 것이 있습니다. 허리에 힘을 주고 바른 자세로 걸으려 하죠. 이왕이면 음식은 직접 만들어 먹고, 좋은 사람을 곁에 두려 합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청년과의 두 시간 남짓 대화에 기분은 상쾌하고 짐짓 마음은 가뿐합니다. 강습 시간이 되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고 찰랑거리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그를 바라봅니다.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는 철학자1)가 떠오릅니다. 강습 후, 건해 씨는 스승에게 배운 깨달음을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그 글을 여기에 적습니다. 치열하게 살고, 고통받고, 우울에 빠지고 그렇게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까지 겪으면 단단해지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다만 한계가 있다. 인간이기에 계속 몰아붙이면 결국 고장 나고 망가진다. 그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시련을 겪어 단단해진다는 건 오히려 딱딱해져 유연하지 못하고 부서지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럴 때 시선을 돌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봐야 한다.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줄 때, 내가 가진 것을 내어줄 때 비로소 깨달음이 온다.
1)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p.16,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자음과 모음, 2012. |
다시 돌아온 소소한 인터뷰_ 청년 농부 이건해
〔산청+그림+일기〕일곱
글과 그림 / 효림
봄부터 다니기 시작한 수영장에는 6개월째 나가는 중입니다. 이대로만 한다면 무엇 하나 꾸준히 하지 못하는 저에게도 자랑할 만한 것이 생기는 것이죠. 하나의 영법을 터득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발차기가 익숙해질라치면 팔꺾기가 기다리고 있죠. 연습은 지루하지만 조급하진 않습니다. 그럴 땐 잠시 포기하고 상급반 회원들의 여유로운 몸놀림을 관찰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개운해지거든요.
오후 세 시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해사한 청년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던 청년은 어느 날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시골 사는 거, 좋지 않아요? 공기도 좋고.” 그러고는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몇 개월간 지켜보니 참으로 꾸준히, 열심히, 즐기며 수영하더군요. 저는 우주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이 청년이 궁금했습니다. 말투로 보아 산청 사람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때 인터뷰를 청하자, 흔쾌히 대답합니다. “저는 내일도 좋아요. 모레도 좋고요.”
유례없는 가을장마에 다시 여름이 오는 건 아닐지 의구심이 고개를 들 즈음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수영 강습 날, 우리는 두 시간 일찍 만났습니다. 홀연히 나타난 청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언제, 어떻게 산청에 왔을까요?
“2021년 3월에 트럭 타고 산청에 내려왔어요. 어릴 적 여름에 여기 자주 왔었어요. 산청이 외갓집이니까. 엄마 말로는 시골을 좋아했대요. 텃밭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농업고등학교에 가고. 농대 졸업하고 바로 내려온 거예요. 농고에도 부모님이 농사짓는 거 아닌 이상 농사지으러 오는 애는 거의 없어요. 농업계 공무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혜택이 있으니까 오죠. 지금 저랑 제일 친한 친구도 농사 안 짓고 다른 일 해요.”
산청에 내려온 지 2년 반. 이제는 농사가 익숙해졌을까요?
“1년 반 정도는 엄청 바빴어요. 하우스 만들고, 대출 심사받고. 청년 농업인에 선정되려면 서류도 많이 내야 하잖아요. 면접도 보고 정신없이 보냈어요. 근데 시골이 계절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작년 이맘때 했던 일을 또 똑같이 하고. 봄이랑 겨울에 농사는 제일 한가해요. 저는 무화과 하니까 여름, 가을에는 하우스에 계속 붙어 있어야 해요. 물 줘야 하니까.”
일과가 정해져 있나요?
“아침에 무화과 따고 낮에 수영장 가요. 무화과가 안 바쁘거든요. 그만큼 돈이 안 되죠. 돈이 되려면 크게 하고 가격도 높게 받아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하기 싫어서... 뭐가 착한 일인지, 뭐가 옳은 일인지 생각하다가, 제일 양심적인 일이 뭘까 하다가 농사겠구나,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무화과가 병해충에 강해요. 농약을 안 쳐도 되니까 제 양심에 그나마 맞는 것 같아서요. 대학교 때 시범적으로 키워보고, 내려와서 가지 뽑아서 돌려서 심었어요.”
수확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문한 무화과. 목화장터 밴드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처음엔 엄청 힘들었어요. 얼굴은 안 우는데 마음은 항상 울고 있었어요. 창밖의 방충망이 철창 같고(웃음). 근데 부모님이고 친구한테 죽는 소리할 수 없잖아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닌데. 그때 누군가 해준 말이 있는데, 다 지나간다고... 참 맞는 말이에요. 그때가 지나고 나니까 행복을 느껴봤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좀 무뎌졌는데, 그래도 행복 해봤던 사람이 행복할 줄 안다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혹시 인생 2회 차 인건 아닐까요? 대견스러운 마음을 넘어 대단해 보입니다. 귀촌을 고민하거나 귀촌 후에도 계속되는 청년의 걱정거리가 주거, 생계, 관계입니다. 특히 연고가 없는 곳에서의 시작은 더욱 두렵죠. 그래서 청년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곳을 찾거나 적극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기록이 귀촌을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농사짓는 20대 청년’이란 말에 지레짐작으로 당연히 ‘관계’가 필요하지 않느냐 묻자, 사뭇 진지하게 답합니다.
“전혀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누가 있어야 된다거나 그런 거 없었어요. 말로 설명하긴 힘든데, 저는 신념이 있어서 내려온 거예요. 그런 걸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엄청 큰 계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여기 올 때 머리도 밀고 내려왔어요. 2년 정도 삭발하고 살았어요, 지금은 기르지만.”
흔한 말로, 운명, 같은 건가요?
“네, 맞아요. 근데 이거 말로 설명하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웃음). 주거나 생계는, 할머니가 살던 빈집이 있었어요. 뒤에 논도 있어서 거기에 하우스를 지을 수 있었어요. 시골 내려올 때 집 짓는 것도 그렇지만 땅 구하는 것도 어렵잖아요. 운명이다, 생각했어요, 상황이 딱 맞았으니까. 저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여기 내려와서 두 명이나 알게 됐어요. 그래서 너무너무 행복했죠. 같이 안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고, 위로가 되고. 영혼이 통한다고 해야 하나...? 근데 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저는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있어요.”
수영으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무언가를 배울 때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합니다. 분명 같은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데도 건해 씨는 월등히 습득이 빠릅니다. 체력이 좋은 걸까요? 젊어서 그런 걸까요? 최근 배우기 시작한 플립 턴에 대해서 물어보니 해맑게 대답합니다. “딱 300번만 연습해 봐요.” 역시 배움에는 왕도가 없나 봅니다. 건해 씨가 생각하는 수영의 매력은 뭘까요?
“올해 2월부터 수영을 시작했어요. 겨울이다 보니 남는 시간이 너무 많았어요. 마침 생일 선물로 친구가 수영복을 사줬어요. 수영할까, 친구한테 말하니 적극 추천하더라고요. 시간이 너무 남으니까 할 게 없어서 처음엔 2시간씩 있고 그랬어요. 하다 보니까 욕심도 생기고. 우리는 모두 처음에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수영 선수 할 것도 아닌데, 뭐 잘할 필요 있을까? 근데 그것도 멋진 생각이 아니에요. 수영장에 왔으면 수영을 잘해야 돼요. 수영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수영 때문이고, 운동장이 있는 이유는 운동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나약한 소리는 하면 안 돼요(웃음).”
“온 김에 열심히 하자. 안 돼도 매일 왔어요, 무조건. 근데 올 때마다 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금씩 나아지니까. 수영장에선 아주머니든 할머니든 수영만 잘하면 멋져 보이잖아요(웃음). 지금도 수영할 때 힘들어요.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맨날 체하고, 감기 걸리고, 비염 달고 살고. 다른 사람들은 커피 마시면 힘 난다고 하잖아요. 저는 안마시거든요. 그걸 마시면 올라간 만큼 후폭풍이 있더라고요. 그만큼 내려가고. 나중엔 너무 폭이 커져요. 저는 그냥 비실비실 오래 가려고요.”
젊으니 당연히 체력이 좋을 거란 예상과는 다른 답입니다. 25m 두세 바퀴만 돌아도 헉헉대며 손사래를 치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수영장에서 건해 씨는 말이 많지 않습니다. 그저, 수영할 뿐이지요. 언제부터인가 그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고는 나도 열심히 해야지, 다짐하게 되죠. 수영 외에 요즘 건해 씨에게 중요한 건 뭘까요? 키워드 3가지를 물었습니다.
“일단 어리다, 미숙하다. 또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니에요. 마지막은... 말할 수가 없어요(웃음). 아는 게 없네요, 좋은 사람도 아니고(웃음).”
‘어리다, 미숙하다’는 ‘성숙하다’가 전제이므로 할 수 있는 말일까요? ‘착하지 않다’는 건 ‘착한’ 게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겠죠? 건해 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이 있는 걸까요?
“요즘 철학책을 읽고 있어요.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번 생에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빨리 익는 열매라고 해도 결국 시간이 필요하죠. 뭔가 깨달음을 얻고 싶어요. 지금도 어떤 깨달음은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낮은 단계에 있어요. 더 높은 깨달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겠죠. 그 깨달음을 누군가 얘기해도 저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야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알게 되는 거죠.”
점점 대화가 깊어집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처음 만날 때 보통 몇 가지 단어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서울에서 왔으며’, ‘결혼했고’, ‘집을 지었다’ 등등의 키워드로요. 그러나 이것이 저를 다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함부로 말하지 않죠. 어느새 ‘청년 농부’의 그림자가 걷히고 ‘이건해’라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살면서 즐거움이 있을 텐데 그런 건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부작용이 더 많고. 정신적인 깨달음은 부작용이 적은 것 같아요. 저는 농사가 정답인 줄 알고 살아왔어요. 근데 아닌 거예요.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정답이라고 온전히 믿고 갔던 거잖아요. 그랬더니 다른 길이 보이더라고요. 농사는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도 농사 좋아요, 자연스럽잖아요.”
강아지와 함께. 이외에도 고양이 네 마리랑 같이 산다. 대식구다.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야 돼요. 남이 뭐라 하든, 그게 정답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한테는 정답이에요. 저는 참 감사한 삶이에요. 엄마 아빠가 공부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농사짓는다니까 농고도 알아봐주고. 누군가 저한테 물어보면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요. 뭘 하든지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자꾸 훈수 두니까(웃음). 주먹으로 얼굴을 맞으면 아프니까 맞으면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해도 사실 맞아봐야 아는 거잖아요. 진짜 아픈지는 맞아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련을 겪거나 아프면 항상 깨달음이 있잖아요. 근데 깨달음 얻자고 계속 아프기만 해야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아요. 몸이 너무 힘들어요(웃음).”
수영을 시작한 이후 바뀐 것이 있습니다. 허리에 힘을 주고 바른 자세로 걸으려 하죠. 이왕이면 음식은 직접 만들어 먹고, 좋은 사람을 곁에 두려 합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청년과의 두 시간 남짓 대화에 기분은 상쾌하고 짐짓 마음은 가뿐합니다. 강습 시간이 되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고 찰랑거리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그를 바라봅니다.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는 철학자1)가 떠오릅니다. 강습 후, 건해 씨는 스승에게 배운 깨달음을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그 글을 여기에 적습니다.
1)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p.16,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자음과 모음, 2012.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