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2일. 형제봉 아래 매화꽃 피는 골짜기 작은 마을. 매계마을에서 시끌벅적 신나는 일이 벌어졌다. 체력이 없어야지만 참가가 가능하다는 무언가 이상한 ‘체력 없는 체육대회’. 면민 체육대회에 끼고 싶어도 낄 수 없었던 모든 청년을 위한 체육대회.
이 일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도시에 사는 청년들만큼이나 일에 찌든 나를 포함한 하동의 몇몇 청년들이 업무 미팅을 끝내고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일로만 만나지 말고 좀 놀아보자’
‘생산성 없고 의미 없고 가치도 없는 날이 하루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청년들 모아서 체육대회나 한 번 할까?’
그 이후 1년이 걸렸지만 결국 해내고 만 우리들의 꿈같은 하루. 이 글은 이상하리만치 설레고 신나기만 했던 ‘제1회 체력 없는 체육대회’ 현장 기록이다.
6월 12일
제1회 체력 없는 체육대회 당일
• 9:00 참가자 등록
학교 다닐 때 운동회 전날 밤이면 이번엔 청군일까 백군일까 가슴 두근두근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어젯밤엔 블랙팀일까 핑크팀일까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했다. 모두 그랬을까. 참가 등록을 하러 속속 도착하는 얼굴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어쩐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마냥 신나는 얼굴들이다. 늘 일로만 만나 같이 놀아본 적 없는 어색하고도 친숙한 사람들.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인사를 나눈다.
팀별로 티셔츠를 나누어 입고, 배에 이름표도 커다랗게 달아본다. 마치 아육대(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TV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돌이 된 기분이다. 마을주민들과 어르신들도 어쩐지 들뜬 얼굴로 블랙팀이 되어, 핑크팀이 되어 각자의 부스로 흩어진다. 남의 마을에서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우리를 더 시끌벅적 환영해 주는 멋진 마을, 멋진 사람들이다.
• 10:00 개회식과 체조
오늘의 날씨는 아침부터 매우 맑음. 한껏 달구어진 매계마을 주차장 아스팔트 위로 비장한 표정의 참가자들이 도열했다. 이어진 선수대표 권경민 양의 선서.
하나. 상대팀이 반칙을 해도 절대 따라 하지 않는다.
하나. 이긴 팀에 큰 박수를 보낸다.
하나. 진 팀을 놀리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키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모두 엄숙히 선서했으니 지켜야 할 것이다. 다음은 체조 순서. 체력 없는 체육대회에 체조가 왜 필요할까 싶지만 ‘짜라빠빠 댄스’를 떼로 추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고집 부려 추진했다. 그런고로 나와 양파, 진이지니가 시범조가 되었다. 이장님 앞에서 미리 호흡을 맞춰 연습을 해봤건만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신났으니 됐다. (짜라빠빠는 1985년에 발매된 유서 깊은 노래로 우스꽝스러운 동작이 일품이니, 모두 함께 신나고 싶으면 도전하시길!)
• 10:30 팀 친해지기
이제 팀별로 부스로 흩어져 팀 구호를 만들고, 역할을 분배하고, 참가 종목을 정했다. 티셔츠의 색깔 때문인지 핑크팀은 활력이 넘쳐 보였고 블랙팀은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체력 없는 체육대회 아니었던가! 대회 취지에 더 잘 맞는 팀은 어쩐지 블랙팀 같다는 점이 우습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팀장, 질서 담당, 분쟁조정관리위원, 응원 단장 등 10개가 넘는 완장을 나누어 가졌다. 모두가 주인공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각자의 역할이자 책임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오늘 하루 재밌게 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참가종목을 정하다 보니 어쩐지 심각하게 이기고 싶다. 나는 기획자의 직업적 사명을 걸고 용감하게 타자 빨리 치기 종목에 도전했다.
• 11:00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동네 골목길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안 해본 사람 있을까 싶다. 하지만 체력 없는 체육대회의 그것은 특별했다. 곳곳에 놓인 간식을 술래 몰래 획득하여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야 하는 미션이 추가되었다. 음료수와 수박, 마을 주민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호미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술래가 보지 않을 때 품에 안고 돌아가는 수박을 뺏고 상대 팀을 밀고 당기고.. 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대혼란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펼쳐졌다. 양팀 모두 열정적인 플레이로 시원한 수박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빼앗았던 음료수를 나누어주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되었다.
• 11:30 OX퀴즈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도 모두 함께 동네잔치와 같이 즐기는 날이었으면 하고 또 체력이 없어도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 필요했기에 OX퀴즈도 진행되었다. 하동에 관한 문제들이 출제되었는데, 얕은 하동 지식수준의 몇몇 청년들이 매계마을 전 이장님과 현 이장님의 행보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믿어 의심치 않던 강훈채 전 매계마을 이장님 옆에 꼭 붙어 다니다가 세 번째 문제 만에 탈락을 맛보았다. 본인을 쫓아다니는 청년들을 보고 일부러 틀린 답을 고르셨단다. 얄미운 메롱을 선보이시곤 어깨를 들썩이시며 자리로 돌아가셨다. 이상윤 현 이장님의 팔로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섯 번째 문제에서 역시 같은 수법(?)에 당해 대거 탈락했다. 그래도 결국 최종 우승자는 마을 주민이 아닌 청년 참가자였는데, 답을 모르지만 남을 따라가지 않고 혼자 소신을 지키며 어쩌다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골탕먹이고 신나신 현이장님과 전이장님
• 12:00 잭살할매밥상
맛있기로 소문났지만 아무나 먹을 수는 없다는 매계마을 잭살할매밥상이 특별히 점심으로 준비되었다. 마을부녀회에서 마을에서 난 식재료로 정성껏 준비해 주신 것인데 우리 할머니들께서 내어주시던 밥상, 거기에 담긴 따뜻한 마음까지 꼭 닮아있어 늘 정겨운 맛이다. 마을 저온 창고에 아껴두셨던 맥주도 꺼내주셔서 얼큰-하고 시원한 점심을 맛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맛있는 점심을 나누어 먹으니, 오늘만큼은 우리도 매계마을 주민이 된 기분이 들었다.
• 13:00 인물퀴즈
이른 여름 오후 작열하는 뜨거운 해를 피해서, 진정성 있게 체력이 없이! 체육대회를 즐기기 위해서 오후 게임은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요즘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인물 퀴즈가 진행되었는데 아기공룡 둘리의 또치부터 최불암 아저씨까지. 아는데 이름은 쉽게 튀어나오지 않는 인물들의 사진들이 펼쳐지며 박진감이 넘쳤다. 우리 블랙팀도 정예 멤버로 구성했으나 유튜브를 일주일에 40시간 시청한다는 핑크팀 에이스의 기세에 눌려 참패당하고 말았다.
• 14:00 타자 빨리 치기
IT 개발, 기획, 도예, 농/축산업, 자영업, 목공 등 하동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청년들은 컴퓨터와 함께 자라온 디지털네이티브 세대다. 어릴 때는 커서 뭘 해 먹고 살지 몰라 한컴타자연습을 하며 미래를 대비했다! 그래서 야심 차게 준비한 타자 빨리 치기. ‘긴 글 연습’을 릴레이로 치고, 평균타수와 시간을 곱해 평균을 내 우승팀을 정하기로 했다. 3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자 빨리 치기 도전해 보신 분 계신가. 생각보다 짜릿하다. 진행자도 여태껏 타자치는 것을 중계해 보신 건 처음이라 했다. 이상하리만큼 모두가 집중하며 지켜봤다. 마치 E-sports 게임을 중계하는 것 같았는데, 이게 조용한 시골 마을 사랑방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이라는 게 더 우스웠다. 핑크팀의 독수리타법 선수와 블랙팀 기획노동자의 활약으로 블랙팀이 승리했다.
• 14:30 좀비 게임
눈이 먼 좀비들이 인간을 사냥하는 잔혹한(?) 게임이다. 안대를 끼고 도망 다니는 상대 팀을 잡으면 게임은 종료. 각종 몸 개그와 조롱이 난무하며 배꼽을 잡았던 게임이다. 이 게임 이후 체력 없는 체육대회라고 하지 않았냐며 체력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냐며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재밌으면 그만 아닌가.
• 16:00 이삭줍기 게임
메인게임들 이외에도 한시도 신나는 기분을 멈추지 못하도록 딱지치기, 물통세우기, 제기차기, 허벅지 씨름, 공기놀이, 신발 양궁 등의 미니게임을 곳곳에 배치되었다. 이 게임으로 소박한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 승패를 뒤집을 수도 있는 기회다. 마을 주민들도 추억을 되살려 제기차기, 공기놀이, 딱지치기로 커피 내기를 하시며 한껏 즐기시는 모습이 보였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도 쓸데없지만 많이 웃는 신나는 하루가 된 것 같다.
• 16:30 물 옮기기, 단체줄넘기
오후가 되자 블랙팀과 핑크팀에는 일을 마치고 뒤늦게 참가한 용병들이 대거 투입되며 활기가 넘쳤다. 모두 아스팔트의 열기에 얼굴이 벌겋게 익어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머리 위의 물그릇의 물을 흘리지 않고 마지막 주자에게 전달하는 물 옮기기 게임과 단체줄넘기가 진행되었다. 각각 블랙팀이, 핑크팀이 승리하며 모든 게임을 마쳤다.
결국 최종 우승은 핑크팀에게로 돌아갔다. 진 블랙팀이 손수 상장을 써주며 모든 순서를 마쳤다. 승패는 사실 상관없는 것 아닌가 했었는데 실제 상장의 내용은 뒤끝으로 얼룩져 있었다.
청년들이 같이 어울려서 놀거리가 없어서 또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구실이 없어서 만든 하루였다. 의미 없고 싶은 단 하루였지만 그 어떤 날보다 의미 있었던 하루였다. 늘 다른 존재 같았던 청년들이 마을 속으로 조금 더 스며들었고, 우리는 이제 일 이야기 말고도 함께 나눌 이야기가 생겼다.
마을주민들도, 참여한 청년들도 내년에 또 하자! 했다. 이 일을 주관했던 다른파도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밌자고 시작한 일이 커져서 일처럼 되었으니 힘들 법도 했겠지. 그런데 다른파도 친구들아, 내년에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 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 사실 글보다 영상이 더 재미있으니 생생한 그날의 기록을 아래의 링크에서 보시길 바란다.
링크: https://youtu.be/1KXDV0m8sG8
* 이 행사는 하동의 자랑스러운 청년기업 ‘다른파도’ 친구들이 99% 주관하고 일했으며 ‘이런협동조합’이 1% 정도 협력해서 추진했음을 밝힌다.
* 6월 기록 소재를 고민하던 나에게 ‘그것을 쓰라!’ 해주신 함양의 자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 너무 신난 나머지 너무 길게 쓴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
글쓴 사람. 지읒이응
네 살 된 바둑이라는 강아지를 같이 키우고 있는 양지영과 정진이가 함께, 번갈아 씁니다. 때때로 루미큐브를 목숨을 걸고 합니다. 각자 어쩌다 흘러들어온 하동에서 이제는 함께 어떻게 잘 살아볼까 궁리하며 지냅니다.
의미 없는 의미를 찾아서
제1회 체력 없는 체육대회 참가기
글 / 양지영
2023년 6월 12일. 형제봉 아래 매화꽃 피는 골짜기 작은 마을. 매계마을에서 시끌벅적 신나는 일이 벌어졌다. 체력이 없어야지만 참가가 가능하다는 무언가 이상한 ‘체력 없는 체육대회’. 면민 체육대회에 끼고 싶어도 낄 수 없었던 모든 청년을 위한 체육대회.
이 일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도시에 사는 청년들만큼이나 일에 찌든 나를 포함한 하동의 몇몇 청년들이 업무 미팅을 끝내고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일로만 만나지 말고 좀 놀아보자’
‘생산성 없고 의미 없고 가치도 없는 날이 하루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청년들 모아서 체육대회나 한 번 할까?’
그 이후 1년이 걸렸지만 결국 해내고 만 우리들의 꿈같은 하루. 이 글은 이상하리만치 설레고 신나기만 했던 ‘제1회 체력 없는 체육대회’ 현장 기록이다.
6월 12일
제1회 체력 없는 체육대회 당일
• 9:00 참가자 등록
학교 다닐 때 운동회 전날 밤이면 이번엔 청군일까 백군일까 가슴 두근두근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어젯밤엔 블랙팀일까 핑크팀일까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했다. 모두 그랬을까. 참가 등록을 하러 속속 도착하는 얼굴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어쩐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마냥 신나는 얼굴들이다. 늘 일로만 만나 같이 놀아본 적 없는 어색하고도 친숙한 사람들.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인사를 나눈다.
팀별로 티셔츠를 나누어 입고, 배에 이름표도 커다랗게 달아본다. 마치 아육대(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TV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돌이 된 기분이다. 마을주민들과 어르신들도 어쩐지 들뜬 얼굴로 블랙팀이 되어, 핑크팀이 되어 각자의 부스로 흩어진다. 남의 마을에서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우리를 더 시끌벅적 환영해 주는 멋진 마을, 멋진 사람들이다.
• 10:00 개회식과 체조
오늘의 날씨는 아침부터 매우 맑음. 한껏 달구어진 매계마을 주차장 아스팔트 위로 비장한 표정의 참가자들이 도열했다. 이어진 선수대표 권경민 양의 선서.
하나. 상대팀이 반칙을 해도 절대 따라 하지 않는다.
하나. 이긴 팀에 큰 박수를 보낸다.
하나. 진 팀을 놀리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키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모두 엄숙히 선서했으니 지켜야 할 것이다. 다음은 체조 순서. 체력 없는 체육대회에 체조가 왜 필요할까 싶지만 ‘짜라빠빠 댄스’를 떼로 추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고집 부려 추진했다. 그런고로 나와 양파, 진이지니가 시범조가 되었다. 이장님 앞에서 미리 호흡을 맞춰 연습을 해봤건만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신났으니 됐다. (짜라빠빠는 1985년에 발매된 유서 깊은 노래로 우스꽝스러운 동작이 일품이니, 모두 함께 신나고 싶으면 도전하시길!)
• 10:30 팀 친해지기
이제 팀별로 부스로 흩어져 팀 구호를 만들고, 역할을 분배하고, 참가 종목을 정했다. 티셔츠의 색깔 때문인지 핑크팀은 활력이 넘쳐 보였고 블랙팀은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체력 없는 체육대회 아니었던가! 대회 취지에 더 잘 맞는 팀은 어쩐지 블랙팀 같다는 점이 우습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팀장, 질서 담당, 분쟁조정관리위원, 응원 단장 등 10개가 넘는 완장을 나누어 가졌다. 모두가 주인공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각자의 역할이자 책임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오늘 하루 재밌게 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참가종목을 정하다 보니 어쩐지 심각하게 이기고 싶다. 나는 기획자의 직업적 사명을 걸고 용감하게 타자 빨리 치기 종목에 도전했다.
• 11:00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동네 골목길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안 해본 사람 있을까 싶다. 하지만 체력 없는 체육대회의 그것은 특별했다. 곳곳에 놓인 간식을 술래 몰래 획득하여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야 하는 미션이 추가되었다. 음료수와 수박, 마을 주민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호미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술래가 보지 않을 때 품에 안고 돌아가는 수박을 뺏고 상대 팀을 밀고 당기고.. 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대혼란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펼쳐졌다. 양팀 모두 열정적인 플레이로 시원한 수박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빼앗았던 음료수를 나누어주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되었다.
• 11:30 OX퀴즈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도 모두 함께 동네잔치와 같이 즐기는 날이었으면 하고 또 체력이 없어도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 필요했기에 OX퀴즈도 진행되었다. 하동에 관한 문제들이 출제되었는데, 얕은 하동 지식수준의 몇몇 청년들이 매계마을 전 이장님과 현 이장님의 행보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믿어 의심치 않던 강훈채 전 매계마을 이장님 옆에 꼭 붙어 다니다가 세 번째 문제 만에 탈락을 맛보았다. 본인을 쫓아다니는 청년들을 보고 일부러 틀린 답을 고르셨단다. 얄미운 메롱을 선보이시곤 어깨를 들썩이시며 자리로 돌아가셨다. 이상윤 현 이장님의 팔로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섯 번째 문제에서 역시 같은 수법(?)에 당해 대거 탈락했다. 그래도 결국 최종 우승자는 마을 주민이 아닌 청년 참가자였는데, 답을 모르지만 남을 따라가지 않고 혼자 소신을 지키며 어쩌다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골탕먹이고 신나신 현이장님과 전이장님
• 12:00 잭살할매밥상
맛있기로 소문났지만 아무나 먹을 수는 없다는 매계마을 잭살할매밥상이 특별히 점심으로 준비되었다. 마을부녀회에서 마을에서 난 식재료로 정성껏 준비해 주신 것인데 우리 할머니들께서 내어주시던 밥상, 거기에 담긴 따뜻한 마음까지 꼭 닮아있어 늘 정겨운 맛이다. 마을 저온 창고에 아껴두셨던 맥주도 꺼내주셔서 얼큰-하고 시원한 점심을 맛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맛있는 점심을 나누어 먹으니, 오늘만큼은 우리도 매계마을 주민이 된 기분이 들었다.
• 13:00 인물퀴즈
이른 여름 오후 작열하는 뜨거운 해를 피해서, 진정성 있게 체력이 없이! 체육대회를 즐기기 위해서 오후 게임은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요즘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인물 퀴즈가 진행되었는데 아기공룡 둘리의 또치부터 최불암 아저씨까지. 아는데 이름은 쉽게 튀어나오지 않는 인물들의 사진들이 펼쳐지며 박진감이 넘쳤다. 우리 블랙팀도 정예 멤버로 구성했으나 유튜브를 일주일에 40시간 시청한다는 핑크팀 에이스의 기세에 눌려 참패당하고 말았다.
• 14:00 타자 빨리 치기
IT 개발, 기획, 도예, 농/축산업, 자영업, 목공 등 하동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청년들은 컴퓨터와 함께 자라온 디지털네이티브 세대다. 어릴 때는 커서 뭘 해 먹고 살지 몰라 한컴타자연습을 하며 미래를 대비했다! 그래서 야심 차게 준비한 타자 빨리 치기. ‘긴 글 연습’을 릴레이로 치고, 평균타수와 시간을 곱해 평균을 내 우승팀을 정하기로 했다. 3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자 빨리 치기 도전해 보신 분 계신가. 생각보다 짜릿하다. 진행자도 여태껏 타자치는 것을 중계해 보신 건 처음이라 했다. 이상하리만큼 모두가 집중하며 지켜봤다. 마치 E-sports 게임을 중계하는 것 같았는데, 이게 조용한 시골 마을 사랑방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이라는 게 더 우스웠다. 핑크팀의 독수리타법 선수와 블랙팀 기획노동자의 활약으로 블랙팀이 승리했다.
• 14:30 좀비 게임
눈이 먼 좀비들이 인간을 사냥하는 잔혹한(?) 게임이다. 안대를 끼고 도망 다니는 상대 팀을 잡으면 게임은 종료. 각종 몸 개그와 조롱이 난무하며 배꼽을 잡았던 게임이다. 이 게임 이후 체력 없는 체육대회라고 하지 않았냐며 체력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냐며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재밌으면 그만 아닌가.
• 16:00 이삭줍기 게임
메인게임들 이외에도 한시도 신나는 기분을 멈추지 못하도록 딱지치기, 물통세우기, 제기차기, 허벅지 씨름, 공기놀이, 신발 양궁 등의 미니게임을 곳곳에 배치되었다. 이 게임으로 소박한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 승패를 뒤집을 수도 있는 기회다. 마을 주민들도 추억을 되살려 제기차기, 공기놀이, 딱지치기로 커피 내기를 하시며 한껏 즐기시는 모습이 보였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도 쓸데없지만 많이 웃는 신나는 하루가 된 것 같다.
• 16:30 물 옮기기, 단체줄넘기
오후가 되자 블랙팀과 핑크팀에는 일을 마치고 뒤늦게 참가한 용병들이 대거 투입되며 활기가 넘쳤다. 모두 아스팔트의 열기에 얼굴이 벌겋게 익어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머리 위의 물그릇의 물을 흘리지 않고 마지막 주자에게 전달하는 물 옮기기 게임과 단체줄넘기가 진행되었다. 각각 블랙팀이, 핑크팀이 승리하며 모든 게임을 마쳤다.
결국 최종 우승은 핑크팀에게로 돌아갔다. 진 블랙팀이 손수 상장을 써주며 모든 순서를 마쳤다. 승패는 사실 상관없는 것 아닌가 했었는데 실제 상장의 내용은 뒤끝으로 얼룩져 있었다.
청년들이 같이 어울려서 놀거리가 없어서 또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구실이 없어서 만든 하루였다. 의미 없고 싶은 단 하루였지만 그 어떤 날보다 의미 있었던 하루였다. 늘 다른 존재 같았던 청년들이 마을 속으로 조금 더 스며들었고, 우리는 이제 일 이야기 말고도 함께 나눌 이야기가 생겼다.
마을주민들도, 참여한 청년들도 내년에 또 하자! 했다. 이 일을 주관했던 다른파도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밌자고 시작한 일이 커져서 일처럼 되었으니 힘들 법도 했겠지. 그런데 다른파도 친구들아, 내년에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 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 사실 글보다 영상이 더 재미있으니 생생한 그날의 기록을 아래의 링크에서 보시길 바란다.
링크: https://youtu.be/1KXDV0m8sG8
* 이 행사는 하동의 자랑스러운 청년기업 ‘다른파도’ 친구들이 99% 주관하고 일했으며 ‘이런협동조합’이 1% 정도 협력해서 추진했음을 밝힌다.
* 6월 기록 소재를 고민하던 나에게 ‘그것을 쓰라!’ 해주신 함양의 자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 너무 신난 나머지 너무 길게 쓴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
글쓴 사람. 지읒이응
네 살 된 바둑이라는 강아지를 같이 키우고 있는 양지영과 정진이가 함께, 번갈아 씁니다. 때때로 루미큐브를 목숨을 걸고 합니다. 각자 어쩌다 흘러들어온 하동에서 이제는 함께 어떻게 잘 살아볼까 궁리하며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