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함양][지금여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나무들의 죽음 -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무 이야기 ①

2023-07-25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나무들의 죽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무 이야기 ① 

 

글 /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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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오래된 나무가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사진은 상림 연못가 이팝나무.) 

 

 

 

나무는 키가 컸다.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아야 시선이 겨우 우듬지 끝에 닿았다. 둥치도 굵어서 보통 성인의 팔로는 다 품기 어려울 정도였다. 잎은 또 얼마나 넓고 두터운지, 적어도 함양읍 내에서는 그 나무들 아래보다 더 넉넉하게 그늘진 거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해마다 막무가내식 가지치기를 당하면서도 봄이면 다시 으라차차 일어서던 기개, 한여름 뜨거운 태양 빛과 땅 사이에 녹색 베일을 드리워주던 너그러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추락하여 무수한 발아래 으스러지던 속절없는 운명까지, 그 나무의 모든 것이 얼마나 놀랍고 눈부셨던가. 

 

 

그걸 기억하는 이들이, 정확히 말하면 더는 그 나무들을 볼 수 없기에 오직 ‘기억만’ 할 수 있는 이들이 만난 건 7월 초의 일이다. 함양군 버스터미널에서 돌북교에 이르는, 길이가 꽤 되는 거리의 튤립나무들이 일제히 베어진 지 거의 두 달만이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흘려보내기엔 찜찜했다 할까. 뭔 일인가 싶어 군에 전화도 걸어보고 소심하게 따지기도 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기에 누군가를 만나야 했다. 나무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질문도 던지며 서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뭐라도 찾아야 했다. 이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무 이야기(일명 꼬꼬나무)> 모임이 생겨난 이유다.

 

 

 

나무와 ‘관계’했던 기억을 떠올리기    

 

 

꼬꼬나무 첫 모임은 역시나 함양군이 ‘지중화사업’을 명목으로 튤립나무들을 다 베어낸 것에 대한 성토와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공중에 매달린 전선을 땅속에 묻고 전신주를 철거하는 지중화사업이 제아무리 중요한들, 그처럼 크고 굵은 수십 그루의 나무를 전부 베어내야 했을까.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도시 미관’과 ‘안전’을 내세우는 지중화사업이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이로움을 선사하는 나무를 없앰으로써만 가능하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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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이 지중화사업을 이유로 오래된 튤립나무들을 싹 베어낸 읍내 풍경. 하늘과 땅 사이, 나무가 단 한 그루도 없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나무와 ‘관계’해본 각자의 경험이나 특별한 기억을 나누었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느끼고 깨닫기까지는 관계 맺음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칠 수밖에 없으므로.

 

 

 

꼬무1호 

“나는 시골에서 자랐어. 동네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지. 어릴 때 친구들과 매일 그 나무 아래 모여 놀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 그 옆에 개울이 흐르고 있어서 물놀이 하다가 나오면 늘 그 나무 아래 앉거나 누워서 쉬었어. 나무, 하면 지금도 그 느티나무가 가장 먼저 떠올라.”

 

 

꼬무2호 

“서울 상암동으로 직장을 다닌 적이 있어. 주변에 크고 멋있는 나무가 많았는데 특히 잎 모양이 아주 독특한 나무들이 가을에 단풍이 들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 나중에 이름을 찾아보니 ‘대왕참나무’더라고. 하루는 출퇴근길에 자주 보는 여덟 그루의 대왕참나무 중 하나를 내 나무로 정했어. 그러고는 지나가는 길에 인사하고 가끔은 만져보기도 한 거야. 그러면 왠지 기분이 좋아졌지. 피곤한 내 일상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고 말이야.” 

 

 

 

꼬무3호와 4호는 먼 옛날의 추억이 아닌 지금 여기 함양에서 만나는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학교 담장 너머 뒷골목을 밝혀주던 함양여중 목련나무에 얼마나 많은 봄날들이 설레었는지, 상림에 많은 나무가 있지만 왜 유독 개서어나무가 눈에 띄고 마음에 들어왔는지를.

 

 

 

꼬무4호

“함양에 와서 ‘여기는 나무가 좋은 곳이구나’ 그런 생각은 늘 했었어. 함양초등학교 옆 느티나무나 서하면의 오래된 은행나무를 보면 정말 특별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또 백전초에서 자라는 벚나무나 서하초의 능수벚나무처럼, 알고 보면 작은학교에도 멋진 나무들이 많더라고. 그런데 정작 학교와 그 주변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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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루 느티나무’라 불리는 함양의 대표적인 보호수. 많은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워하진 않아, 그리고 아무 신경도 안 쓰지           

 

 

나무 없는 동네와 학교와 거리는 생각하기 어렵다. 특별히 나무를 사랑하는 이가 아니어도 그런 곳에서 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동네와 거리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나무가 홀대받고 학대당하는 광경을 심심찮게 본다. 흔히들 문제가 있다고는 느끼지만 한 번도 공론화해본 적은 없는, 그래서 모두의 외면 아래 반복되고 있는 안타까운 사례들을. 

 

 

 

꼬무3호

“나무를 몸통만 빼고 뎅강 잘라버리는 가지치기가 제일 마음에 걸려. 동문네거리에서 사방으로 연결되는 거리의 이팝나무, 은행나무 들이 전부 그렇게 잘리고 있잖아. 지금은 사라진 튤립나무도 그랬고. 또 무슨 날만 되면 나무에 연등 걸고 전등 달아 불 밝히고 하는 것 좀 그만하면 좋겠어. 그런 걸 볼 때마다 너무 화가 나.”

 

 

꼬무2호  

“도토리 얻겠다고 나무를 발로 차고 찍고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렇게 해서 상처 난 나무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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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강한 가지치기’를 당하는 읍내 나무들.

 

 

 

꼬무1호는 이 모든 것을 떠나서 함양에 가로수 자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나마 존재하는 가로수 중에는 일정한 높이에서 충분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별로 없다는 것도. 하긴 그렇게 폭력적으로 가지치기를 해대는데 가로수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성장하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무를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보호수’에 울타리를 쳐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행정지침이 과연 옳은 것이냐며, 꼬무4호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꼬무4호 

“그렇게 펜스 쳐놓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다가가는 것, 만지고 껴안는 것을 막으면 과연 나무가 좋아할까? 나무를 위해서 한다지만 그게 정말 나무를 위한 걸까?” 

 

 

 

 

‘그런’ 일을 당해 마땅한 ‘나무’는 없다     

   

 

꼬꼬나무 첫 모임에서 지역의 나무를 보호해야 할 지자체가 오히려 주민들의 무관심과 무신경을 방패 삼아 나무를 훼손하고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 이들은, 두 번째 모임에서는 나무 학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강전정(강한 가지치기. 목치기, 두절(topping)이라고도 한다)’을 주제로 이야기의 ‘꼬리’를 이어가기로 했다. 

 

 

꼬무4호가 찾아내어 공유한 자료 「올바른 가지치기를 위한 작은 안내서(이홍우, 김레베카 공저)」에 따르면, 전국의 숱한 나무들이 가지치기 당하는 현장은 “생태 홀로코스트”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나무들에게 “지옥”일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이유가 “나무를 살아 있는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과 가로수의 생육환경을 도외시하는 “토건중심적 도시개발정책”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강전정은 왜 나무를 죽이는 행위일까. 이와 관련해 ‘안내서’는 <국제수목관리학회(ISA)>의 규정을 근거로 강전정이 나무에 어떤 해를 입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첫째, 수관(가지와 잎이 무성한 부분)의 4분의 1 이상을 제거하면 에너지 생산 능력이 훼손돼 나무는 굶주림 상태에 빠진다. 둘째, 큰 가지 절단으로 인한 상처는 병해충의 통로가 되어 나무를 고사시킬 위험이 크다. 셋째, 가지치기의 목적은 나무를 축소하는 것이나 강전정은 오히려 가늘고 긴 가지를 빠르게 생성시켜 나무를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이미 죽은 가지를 베어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강전정에 적합한 나무는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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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읍내 가로수인 이팝나무(위)와 은행나무(아래). 

강전정은 자연스러운 수형을 영구히 망가뜨리고 나무를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든다.

 

 

 

꼬무2호 

“실제로 함양 읍내 가로수들을 보면 옆으로 무성하진 않은데 위로만 가지들이 빼곡하잖아. 웃자란 가지에 잎들이 달리면 사자 꼬리 모양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말이야.” 

 

 

꼬무3호

“본래의 수형이 망가지는 거지. 한 번이라도 강전정을 하고 나면 본래의 형태를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니, 나무 입장에서는 정말 서글플 거 같아. 그리고 나무가 구조적으로 안정되려면 수관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60퍼센트는 되어야 한다는데, 동문사거리 은행나무들은 완전 거꾸로잖아? 그러니 다들 면봉 같다고 하지.”

 

 

꼬무1호 

“그러니까 지금의 가로수는 사실 가로수가 아닌 거야. 읍내를 걷다 보면 그늘이 거의 없잖아. 그늘이 있어야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가게들도 구경하고 할 텐데 그럴 여유가 없어. 그냥 빨리 그늘 있는 데로 가고만 싶다니까.”

 

 

 

사정이 이러한데도 함양군을 포함해 많은 지자체가 강전정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경제성과 편의주의가 있다. 싹둑 잘라버리면 그만인 강전정은 약전정에 비해 신경이 덜 쓰이고 노동 강도가 약한데도 품셈은 더 높게 책정된다는 것. 그러니 용역을 받는 업체 쪽에서는 굳이 어렵게 일하고 돈은 덜 받는 약전정을 선택할 이유가 없어진다. 

 

 

꼬무4호 

“함양도 그렇지만 지자체 중에는 가로수 식재와 관리에 관한 조례가 없는 데가 태반이야. 조례가 있어도 법적 구속력이 없으니 잘 지켜지지 않는 거고. 그래도 이번에 튤립나무 잘린 걸 보면 다들 ‘헐’ 하더라고. 그걸 잘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이지.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조례제정이든 뭐든 운동 차원에서 뭐라도 하는 게 필요하다 싶어.”

 

 

 

 

우리의 이야기들이 한 데 모여 꿈틀거린다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함께 무엇을 해보면 좋을까’로 넘어간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지역 내 가로수 실태조사, 가로수에 대한 주민 인식을 알아보는 설문조사, 조례제정과 그를 위한 간담회, 지역신문 기고, 가로수 가지치기를 주제로 한 강연회와 포럼, 그리고 나무에 관한 시 쓰기와 낭독극 공연까지. (꼬꼬나무는 먼저 설문조사를 해보자고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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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나무 모임에서 두서없이 이야기된 이후 실천계획들.

 

 

“당신에게 나무는 무엇입니까?” 첫 모임에서 던져진 이 질문에 각자 써 내려간 낱말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누군가에게 나무는 ‘휴식’이고 ‘마음’이다. 어떤 이에게는 ‘세월’이기도,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이들의 답변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제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뜰, 혹은 가슴, 아니면 기억 속 어디에라도 심어둔 나무 이야기를 하나씩 끄집어내기를, 나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보고 선언해주기를 기대한다. 설문조사든 조례제정이든 연극 공연이든, 그 무엇을 하든 가장 밑바탕에는 그 이야기가 살아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이야기들이 덩어리져 꿈틀거릴 때, 어쩌면 해마다 무수한 나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비극이 멈춰질지도 모르니.

 

 

 

 

 

글 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