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해야 하나요? 영농후계자 키울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 텃밭수업 하는 ‘생태텃밭팀’을 만나다 글 / 자야 
올해 함양 관내 학교 두 곳에서는 생태텃밭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하사진제공_생태텃밭팀)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 같이 손을 잡고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생태텃밭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 부슬부슬 가는 비가 날리는 속에서 마치 개구리처럼 와락와락 목청을 높이던 아이들은 노래가 끝나자 앞다투어 텃밭으로 들어간다. 장맛비에 풀이 웃자라 숲을 이루었으나 뭐 이 정도쯤이야. 아이들은 오히려 보물찾기라도 하듯 풀을 헤치며 작물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게 재미있는 눈치다. “선생님, 방울토마토가 너무 많이 달려서 가지가 부러졌어요.” “오이가 색깔이 노래서 이상해요.” “고추 따서 먹어도 되죠?” 한 달에 두 번씩 그려지는 이 소란하고도 사랑스러운 풍경에 늘 함께하는 네 명의 어른이 있다. ‘생태텃밭팀’으로 활동하는 나비, 동고비, 바람, 초록이 그들이다. 이 네 사람은 두셋씩 짝을 지어 함양 관내 초등학교인 위림초와 병곡초에 수업을 나간다. 7월 말에 1학기 수업을 끝내고 한자리에 모여앉은 이들의, 텃밭처럼 폭신하고 아이들처럼 싱그러운 이야기를 들어본다. 시작은 ‘좋은 것’을 같이 누리고 싶은 마음 시골 초등학교에서 텃밭을 가꾸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록 2주에 한 번뿐일지라도 텃밭 활동이 정규수업으로 편성된 것은 올해가 처음으로, 이것이 가능하게 된 데는 함양교육지원청의 역할이 컸다. 바람 “함양이 올해 환경교육특구가 되면서 학교에 다양한 환경 관련 수업이 들어가게 됐거든요. 그 과정에서 담당 장학사님이 함양토종씨앗모임에도 연락을 주신 거예요. 생태텃밭 수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요. 고민이 좀 되긴 했는데, 장학사님이 성과를 내려 하기보다 그냥 아이들과 텃밭에서 재미있게 놀면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 싶었죠.” 
수업 시작 전, 밭을 일구기 위해 위림초에 모인 생태텃밭팀. (왼쪽부터 초록, 동고비, 나비, 바람) 위림초는 3, 5학년이 함께, 병곡초는 저학년 고학년이 따로 텃밭 수업을 받는다. 위림초엔 바람과 동고비와 초록이, 병곡초엔 바람과 나비가 나가는데 전부 함양토종씨앗모임 회원이다. 그렇다고 생태텃밭 수업이 모임의 공식적인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게 “낮에 시간이 되고 마음을 좀 더 낼 수 있는” 이들이 모여 따로 팀을 구성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분명 있다. 귀촌 후 텃밭이 주는 ‘좋은 것’들을 경험해 왔다는 것, 그 경험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 그러하기에 아이들과도 그 좋은 경험을, 의미 있는 변화를 함께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초록 “텃밭 한 지 4년 됐는데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크게 느낀 건 ‘공생’이에요. 텃밭에서 많은 생명이 살아가니까 ‘그래, 나도 먹고살고 니도 먹고살자’ 그렇게 된 거죠.(웃음) 관점이 바뀌니 익충과 해충을 나누고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는 게 과연 맞나 싶더라고요. 그건 인간이 오직 인간만을 생각하고 만든 기준이잖아요.” 나비 “처음 한두 해는 정말 모든 풀과 꽃이 너무 예쁘고 황홀한 거예요. 생태감수성이라는 게 뿜뿜 샘솟는 시기였죠. 몇 년 지나니까 약간 무뎌지긴 하더라고요. 전에는 호박꽃 하나만 봐도 좋아서 꺅 소릴 질렀는데 지금은 호박꽃 폈네 하면서 호박 몇 개 달렸나만 보게 되고.(웃음) 그래도 텃밭을 들여다보는 게 여전히 재밌어요. 또 텃밭이야말로 순환이 뭔지, 지속 가능하다는 게 뭔지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라는 생각도 변함없고요.” 동고비 “자연과의 일상적 접촉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소가 텃밭 아닐까요? 더군다나 내가 심고 돌보고 수확해서 먹는 것으로까지 이어지니까 자연과 내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죠. 우리가 텃밭에서 치유되고 기운을 얻는 이유는 그 때문인 것 같아요.” 

생태텃밭팀은 자신들이 그랬듯 아이들도 텃밭을 통해 생태감수성을 키우고 자연과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양성이 살아 있는 ‘텃밭 놀이터’를 꿈꾸다 공생의 장, 순환의 이치를 경험할 수 있는 배움터, 나와 작물이 서로 돌봄과 치유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곳. 텃밭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이렇게 언어로 정리할 수 있기까지 그들에게는 시간이, 그리고 그 시간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텃밭을 만나는 것은 고작 2주에 한 번, 그것도 40분(병곡초)에서 1시간 30분(위림초) 남짓에 불과하다. 더욱이 내가 내 텃밭을 가꾸는 것과 학교에 들어가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 수업을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기도 하다. 하물며 그냥 텃밭도 아닌 앞에 ‘생태’가 붙었으니 제법 고민이 되지 않았을까? 바람 “우리가 생태텃밭 활동의 초점으로 잡은 것은 다양성, 놀이터, 주체성, 이 세 가지였어요. 아이들이 주변에서 보는 텃밭은 사실 굉장히 획일적이잖아요. 모양은 네모반듯하고 위에 비닐이 씌워져 있고 약을 쳐서 벌레를 잡고… 그런데 우리는 동그랗고 세모난 모양에, 비닐 대신 다른 멀칭재를 쓰고, 약을 안 쳐서 다양한 생물과 공존하는 이런 텃밭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초록 “작물도 보통은 한 이랑에 한 작물을 쭉 심는 식인데 우리는 상보 관계에 있는 작물들을 좀 마구잡이로(웃음) 섞어 심고 중간에는 꽃도 심고 했어요. 그렇게 하면 밭이 훨씬 아름답고 풍성해 보이더라고요. 작물 관찰할 때 아이들도 더 재밌어하고.” 바람 “둘째는 텃밭이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교실 안에서 보내잖아요. 그러니 텃밭 수업만큼은 야외에 나와서 흙도 만지고 바람도 느끼고 또 노래도 부르고 가끔은 모둠별로 게임도 하면서 즐겁게 놀기를 바란 거예요. 단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요.” 동고비 “우리가 농업 전문가도 아니고 아이들을 영농후계자로 키울 건 아니니까.(웃음) 물론 땀 흘려서 풀 뽑고 작물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그것과 놀이처럼 텃밭을 대하는 것이 상반된다고 보진 않아요.” 

다양한 놀이와 활동이 어우러지는 텃밭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다양성’과 ‘놀이터’ 다음에 제시된 세 번째 열쇳말은 바로 아이들의 ‘주체성’이다. 제아무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활동일지라도 그것이 자발성과 주체성에 근거하지 않으면 소용없음을 이들은 모르지 않는다. 어른의 지시와 요구로 실천을 끌어내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안에서 아이들이 참된 즐거움을 느끼기는 어렵다는 것도. 그런데 아이들의 주체성을 살린다는 게 과연 무엇이고 그걸 이루는 방안은 또 무엇인지 알아가는 게 참 어렵다고, 네 사람은 한목소리로 고백한다. 제한된 수업 안에서 주체성을 살린다는 것 나비 “나는 이 수업을 하면서 내가 텃밭에서 생태감수성을 느끼고 키웠듯이 애들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 그 점에서는 어느 정도 만족해요. 아이들이 꽃이나 열매에 감탄하고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적도 많았고요. 그런데 수업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하다 보니 아쉬움은 있죠. 정말 스스로 뭔가 느끼고 행동하려면 시간도 기회도 충분해야 하잖아요. 병곡초는 특히 시간이 짧아서 얘들아 안녕 인사하고 나면 끝나는 거 같았다니까요.(웃음)” 바람 “뭐든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긴 했어요. 텃밭 디자인하는 거나 심을 작물 결정하는 것도 다 아이들 손에 맡겼고요. 그런데 이런다고 아이들의 주체성이 살아나는 걸까, 아이들이 생명을 돌보는 일의 소중함과 기쁨을 정말로 느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두 아이의 주 양육자인 바람은 지난 몇 년간 텃밭에 갈 때마다 첫째를 데리고 다녔다. 어릴 때부터 익숙해서인지 이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텃밭으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집에 들어와 가지와 오이가 얼마만큼 더 컸는지, 호박이 어떤 모양으로 자라는지를 엄마에게 재잘댄다. 스스로 작물을 소중히 다루며 또 자기가 돌본 것이 밥상에 올라오면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에서 바람은 이 아이가 텃밭과 ‘주체적으로’ 관계 맺고 있음을 느낀다. 그에 비추어 볼 때면 ‘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고. 
아이들이 다양한 농기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바람이 안내하고 있다. 초록 “짧은 시간 안에 커리큘럼대로 하고 진도도 뽑으려면 교사들이 미리 해놔야 하는 게 있어요. 수업시간에도 마냥 기다려주기 어려운 게 사실이고요. 우린 안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요즘 체험학습들이 대개 그렇잖아요. 시작과 마무리는 어른들이 다하고 아이들은 아주 일부분만 하는.” 동고비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아이들이 텃밭을, 우리를 꼭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면 뭔가 또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수업도 정해진 시간에 만나서 정해진 것을 하는 프로그램처럼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바람 “그래서 나는 텃밭 활동이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한계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산과 들과 학교와 마을을 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되면 더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씨앗을 심을 때는 씨앗을 보존해온 할머니들을 찾아가 얘기를 듣는다든지, 대나무 지주 세울 때는 직접 산에 가서 대나무도 관찰하고 가능하면 톱질도 해보는 식으로.” 정형화된 수업이 갖는 한계와 시간이 부족한 것 외에, 교사들과의 소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한 것도 생태텃밭팀이 꼽는 문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텃밭 운영 방식에서 자잘한 불만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수업을 ‘외부인’들이 진행하다 보니 담임교사로서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헛갈릴 것도 같다. 나비 “이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면 그때는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만나서 우리가 생각하는 생태텃밭 수업은 무엇이고, 그래서 우리는 뭘 할 거고, 교사분들은 어떤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걸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의견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야죠. 그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텃밭에서, 지역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기분 아쉬움과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 4개월을 돌아보는 이 네 사람의 얼굴에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번지고 눈빛이 다정해진다. 아이들 별칭을 하나하나 꼽으며 저마다 그 아이에 관해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를 늘어놓느라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그동안 정이 듬뿍 든 것일까.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는 그냥 다 예쁘기만 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텃밭을 매개로 맺은 관계이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1학기 마지막 수업시간에 활용한 질문 카드. 지난 4개월 동안 아이들과 서로 알아가고 관계를 맺은 것 자체가 큰 소득이라고, 생태텃밭팀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초록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텃밭 활동을 점점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게 보이니까 아이들이 더 예쁘고 대견해 보이더라고요. 또 아이들 각자의 개성이랄까 성격이 차차 드러나는 것도 좋았고요.” 나비 “나는 뭐든 의미와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일단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텃밭 활동은 말할 필요가 없죠. 직접 땀 흘리며 풀을 매고 뭔가를 관찰하고 먹을 때의 감각이 몸에 남으면 나중에 그걸 다시 찾게 되잖아요. 아이들과 그런 경험을 함께했다는 게 좋고 앞으로도 쭉 이어지면 좋겠어요.” 동고비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친밀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아이들이 언젠가부터 스스럼없이 말을 붙이고 여자애들은 괜히 와서 슬쩍 팔이나 손을 만지기도 하고.(웃음)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학교 샘들과는 좀 다른, 더 만만한 어른으로 봐주는 게 고마웠죠.” 바람 “거리에서 학교 아이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 이 아이들과 내가 이웃이 되었구나 싶더라고요. 텃밭 수업을 통해 같은 지역의 어른과 아이들이 이렇게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장마가 끝나고 태풍이 지나가자 이제 하늘은 점점 푸르러지고 높아만 간다. 한낮엔 매미들이, 초저녁부터는 귀뚜라미가 제 몸을 악기 삼아 연주하는 이 여름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은 무얼 하며 지낼까. 어디서 뭘 하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래도 아이들이 가끔은 텃밭에서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면 좋겠다고, 네 사람은 생각한다. 수업 전에 함께 부른 노래의 한 소절을, 텃밭에서 먹어본 토마토와 고추와 상추의 맛을 기억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미 다 잊었대도 상관은 없다. 머지않아 2학기가 시작되어 텃밭에 다시 발을 딛는 순간, 아이들은 틀림없이 그 모든 것을 선명하게 떠올릴 테니까. |
“일만 해야 하나요? 영농후계자 키울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 텃밭수업 하는 ‘생태텃밭팀’을 만나다
글 / 자야
올해 함양 관내 학교 두 곳에서는 생태텃밭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하사진제공_생태텃밭팀)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 같이 손을 잡고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생태텃밭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 부슬부슬 가는 비가 날리는 속에서 마치 개구리처럼 와락와락 목청을 높이던 아이들은 노래가 끝나자 앞다투어 텃밭으로 들어간다. 장맛비에 풀이 웃자라 숲을 이루었으나 뭐 이 정도쯤이야. 아이들은 오히려 보물찾기라도 하듯 풀을 헤치며 작물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게 재미있는 눈치다.
“선생님, 방울토마토가 너무 많이 달려서 가지가 부러졌어요.”
“오이가 색깔이 노래서 이상해요.”
“고추 따서 먹어도 되죠?”
한 달에 두 번씩 그려지는 이 소란하고도 사랑스러운 풍경에 늘 함께하는 네 명의 어른이 있다. ‘생태텃밭팀’으로 활동하는 나비, 동고비, 바람, 초록이 그들이다. 이 네 사람은 두셋씩 짝을 지어 함양 관내 초등학교인 위림초와 병곡초에 수업을 나간다. 7월 말에 1학기 수업을 끝내고 한자리에 모여앉은 이들의, 텃밭처럼 폭신하고 아이들처럼 싱그러운 이야기를 들어본다.
시작은 ‘좋은 것’을 같이 누리고 싶은 마음
시골 초등학교에서 텃밭을 가꾸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록 2주에 한 번뿐일지라도 텃밭 활동이 정규수업으로 편성된 것은 올해가 처음으로, 이것이 가능하게 된 데는 함양교육지원청의 역할이 컸다.
바람
“함양이 올해 환경교육특구가 되면서 학교에 다양한 환경 관련 수업이 들어가게 됐거든요. 그 과정에서 담당 장학사님이 함양토종씨앗모임에도 연락을 주신 거예요. 생태텃밭 수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요. 고민이 좀 되긴 했는데, 장학사님이 성과를 내려 하기보다 그냥 아이들과 텃밭에서 재미있게 놀면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 싶었죠.”
수업 시작 전, 밭을 일구기 위해 위림초에 모인 생태텃밭팀. (왼쪽부터 초록, 동고비, 나비, 바람)
위림초는 3, 5학년이 함께, 병곡초는 저학년 고학년이 따로 텃밭 수업을 받는다. 위림초엔 바람과 동고비와 초록이, 병곡초엔 바람과 나비가 나가는데 전부 함양토종씨앗모임 회원이다. 그렇다고 생태텃밭 수업이 모임의 공식적인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게 “낮에 시간이 되고 마음을 좀 더 낼 수 있는” 이들이 모여 따로 팀을 구성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분명 있다. 귀촌 후 텃밭이 주는 ‘좋은 것’들을 경험해 왔다는 것, 그 경험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 그러하기에 아이들과도 그 좋은 경험을, 의미 있는 변화를 함께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초록
“텃밭 한 지 4년 됐는데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크게 느낀 건 ‘공생’이에요. 텃밭에서 많은 생명이 살아가니까 ‘그래, 나도 먹고살고 니도 먹고살자’ 그렇게 된 거죠.(웃음) 관점이 바뀌니 익충과 해충을 나누고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는 게 과연 맞나 싶더라고요. 그건 인간이 오직 인간만을 생각하고 만든 기준이잖아요.”
나비
“처음 한두 해는 정말 모든 풀과 꽃이 너무 예쁘고 황홀한 거예요. 생태감수성이라는 게 뿜뿜 샘솟는 시기였죠. 몇 년 지나니까 약간 무뎌지긴 하더라고요. 전에는 호박꽃 하나만 봐도 좋아서 꺅 소릴 질렀는데 지금은 호박꽃 폈네 하면서 호박 몇 개 달렸나만 보게 되고.(웃음) 그래도 텃밭을 들여다보는 게 여전히 재밌어요. 또 텃밭이야말로 순환이 뭔지, 지속 가능하다는 게 뭔지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라는 생각도 변함없고요.”
동고비
“자연과의 일상적 접촉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소가 텃밭 아닐까요? 더군다나 내가 심고 돌보고 수확해서 먹는 것으로까지 이어지니까 자연과 내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죠. 우리가 텃밭에서 치유되고 기운을 얻는 이유는 그 때문인 것 같아요.”
생태텃밭팀은 자신들이 그랬듯 아이들도 텃밭을 통해 생태감수성을 키우고 자연과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양성이 살아 있는 ‘텃밭 놀이터’를 꿈꾸다
공생의 장, 순환의 이치를 경험할 수 있는 배움터, 나와 작물이 서로 돌봄과 치유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곳. 텃밭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이렇게 언어로 정리할 수 있기까지 그들에게는 시간이, 그리고 그 시간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텃밭을 만나는 것은 고작 2주에 한 번, 그것도 40분(병곡초)에서 1시간 30분(위림초) 남짓에 불과하다. 더욱이 내가 내 텃밭을 가꾸는 것과 학교에 들어가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 수업을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기도 하다. 하물며 그냥 텃밭도 아닌 앞에 ‘생태’가 붙었으니 제법 고민이 되지 않았을까?
바람
“우리가 생태텃밭 활동의 초점으로 잡은 것은 다양성, 놀이터, 주체성, 이 세 가지였어요. 아이들이 주변에서 보는 텃밭은 사실 굉장히 획일적이잖아요. 모양은 네모반듯하고 위에 비닐이 씌워져 있고 약을 쳐서 벌레를 잡고… 그런데 우리는 동그랗고 세모난 모양에, 비닐 대신 다른 멀칭재를 쓰고, 약을 안 쳐서 다양한 생물과 공존하는 이런 텃밭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초록
“작물도 보통은 한 이랑에 한 작물을 쭉 심는 식인데 우리는 상보 관계에 있는 작물들을 좀 마구잡이로(웃음) 섞어 심고 중간에는 꽃도 심고 했어요. 그렇게 하면 밭이 훨씬 아름답고 풍성해 보이더라고요. 작물 관찰할 때 아이들도 더 재밌어하고.”
바람
“둘째는 텃밭이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교실 안에서 보내잖아요. 그러니 텃밭 수업만큼은 야외에 나와서 흙도 만지고 바람도 느끼고 또 노래도 부르고 가끔은 모둠별로 게임도 하면서 즐겁게 놀기를 바란 거예요. 단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요.”
동고비
“우리가 농업 전문가도 아니고 아이들을 영농후계자로 키울 건 아니니까.(웃음) 물론 땀 흘려서 풀 뽑고 작물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그것과 놀이처럼 텃밭을 대하는 것이 상반된다고 보진 않아요.”
다양한 놀이와 활동이 어우러지는 텃밭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다양성’과 ‘놀이터’ 다음에 제시된 세 번째 열쇳말은 바로 아이들의 ‘주체성’이다. 제아무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활동일지라도 그것이 자발성과 주체성에 근거하지 않으면 소용없음을 이들은 모르지 않는다. 어른의 지시와 요구로 실천을 끌어내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안에서 아이들이 참된 즐거움을 느끼기는 어렵다는 것도. 그런데 아이들의 주체성을 살린다는 게 과연 무엇이고 그걸 이루는 방안은 또 무엇인지 알아가는 게 참 어렵다고, 네 사람은 한목소리로 고백한다.
제한된 수업 안에서 주체성을 살린다는 것
나비
“나는 이 수업을 하면서 내가 텃밭에서 생태감수성을 느끼고 키웠듯이 애들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 그 점에서는 어느 정도 만족해요. 아이들이 꽃이나 열매에 감탄하고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적도 많았고요. 그런데 수업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하다 보니 아쉬움은 있죠. 정말 스스로 뭔가 느끼고 행동하려면 시간도 기회도 충분해야 하잖아요. 병곡초는 특히 시간이 짧아서 얘들아 안녕 인사하고 나면 끝나는 거 같았다니까요.(웃음)”
바람
“뭐든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긴 했어요. 텃밭 디자인하는 거나 심을 작물 결정하는 것도 다 아이들 손에 맡겼고요. 그런데 이런다고 아이들의 주체성이 살아나는 걸까, 아이들이 생명을 돌보는 일의 소중함과 기쁨을 정말로 느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두 아이의 주 양육자인 바람은 지난 몇 년간 텃밭에 갈 때마다 첫째를 데리고 다녔다. 어릴 때부터 익숙해서인지 이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텃밭으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집에 들어와 가지와 오이가 얼마만큼 더 컸는지, 호박이 어떤 모양으로 자라는지를 엄마에게 재잘댄다. 스스로 작물을 소중히 다루며 또 자기가 돌본 것이 밥상에 올라오면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에서 바람은 이 아이가 텃밭과 ‘주체적으로’ 관계 맺고 있음을 느낀다. 그에 비추어 볼 때면 ‘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고.
아이들이 다양한 농기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바람이 안내하고 있다.
초록
“짧은 시간 안에 커리큘럼대로 하고 진도도 뽑으려면 교사들이 미리 해놔야 하는 게 있어요. 수업시간에도 마냥 기다려주기 어려운 게 사실이고요. 우린 안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요즘 체험학습들이 대개 그렇잖아요. 시작과 마무리는 어른들이 다하고 아이들은 아주 일부분만 하는.”
동고비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아이들이 텃밭을, 우리를 꼭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면 뭔가 또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수업도 정해진 시간에 만나서 정해진 것을 하는 프로그램처럼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바람
“그래서 나는 텃밭 활동이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한계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산과 들과 학교와 마을을 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되면 더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씨앗을 심을 때는 씨앗을 보존해온 할머니들을 찾아가 얘기를 듣는다든지, 대나무 지주 세울 때는 직접 산에 가서 대나무도 관찰하고 가능하면 톱질도 해보는 식으로.”
정형화된 수업이 갖는 한계와 시간이 부족한 것 외에, 교사들과의 소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한 것도 생태텃밭팀이 꼽는 문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텃밭 운영 방식에서 자잘한 불만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수업을 ‘외부인’들이 진행하다 보니 담임교사로서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헛갈릴 것도 같다.
나비
“이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면 그때는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만나서 우리가 생각하는 생태텃밭 수업은 무엇이고, 그래서 우리는 뭘 할 거고, 교사분들은 어떤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걸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의견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야죠. 그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텃밭에서, 지역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기분
아쉬움과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 4개월을 돌아보는 이 네 사람의 얼굴에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번지고 눈빛이 다정해진다. 아이들 별칭을 하나하나 꼽으며 저마다 그 아이에 관해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를 늘어놓느라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그동안 정이 듬뿍 든 것일까.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는 그냥 다 예쁘기만 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텃밭을 매개로 맺은 관계이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1학기 마지막 수업시간에 활용한 질문 카드.
지난 4개월 동안 아이들과 서로 알아가고 관계를 맺은 것 자체가 큰 소득이라고, 생태텃밭팀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초록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텃밭 활동을 점점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게 보이니까 아이들이 더 예쁘고 대견해 보이더라고요. 또 아이들 각자의 개성이랄까 성격이 차차 드러나는 것도 좋았고요.”
나비
“나는 뭐든 의미와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일단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텃밭 활동은 말할 필요가 없죠. 직접 땀 흘리며 풀을 매고 뭔가를 관찰하고 먹을 때의 감각이 몸에 남으면 나중에 그걸 다시 찾게 되잖아요. 아이들과 그런 경험을 함께했다는 게 좋고 앞으로도 쭉 이어지면 좋겠어요.”
동고비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친밀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아이들이 언젠가부터 스스럼없이 말을 붙이고 여자애들은 괜히 와서 슬쩍 팔이나 손을 만지기도 하고.(웃음)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학교 샘들과는 좀 다른, 더 만만한 어른으로 봐주는 게 고마웠죠.”
바람
“거리에서 학교 아이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 이 아이들과 내가 이웃이 되었구나 싶더라고요. 텃밭 수업을 통해 같은 지역의 어른과 아이들이 이렇게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장마가 끝나고 태풍이 지나가자 이제 하늘은 점점 푸르러지고 높아만 간다. 한낮엔 매미들이, 초저녁부터는 귀뚜라미가 제 몸을 악기 삼아 연주하는 이 여름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은 무얼 하며 지낼까. 어디서 뭘 하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래도 아이들이 가끔은 텃밭에서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면 좋겠다고, 네 사람은 생각한다. 수업 전에 함께 부른 노래의 한 소절을, 텃밭에서 먹어본 토마토와 고추와 상추의 맛을 기억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미 다 잊었대도 상관은 없다. 머지않아 2학기가 시작되어 텃밭에 다시 발을 딛는 순간, 아이들은 틀림없이 그 모든 것을 선명하게 떠올릴 테니까.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