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연대로 만들어가는 작은 유토피아 비건빵 굽는 청년활동가 김다솜 글 / 자야 
도하 비건베이커리 작업장에서 인터뷰 중인 김다솜 씨. 약 반세기 전, 지구인들은 보이저호를 쏘아 올리며 그 안에 ‘지구의 소리들’을 담았다. 화산과 천둥, 개구리와 새와 코끼리 소리에 더해 인간의 키스 소리까지 녹음된 레코드판을, 우주 어딘가에서 조우하게 될지도 모를 미지의 생명체에게 띄워 보낸 것이다. 가끔 이 신비로운 이야기가 생각날 때마다 만약 그 우주탐사선에 ‘지구의 냄새들’도 함께 실어 보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이를테면 찔레꽃 냄새와 길고양이의 오줌 냄새를. 햇살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의 땀 냄새와 차고 맑은 겨울날의 공기 냄새 같은 것들을. 아, 그리고 빵 굽는 냄새도! 30대 청년 김다솜은 우주인에게 소개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빵 굽는 냄새를 매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가 산이 많기로 유명한 함양에서도 꽤 깊숙한 마을에 정착한 부모님을 따라 들어와 <도하 비건베이커리>를 연 것은 2021년 초. 그로부터 30여 개월이 흐르는 사이 도하는 전국구 ‘비건빵집’으로 떠올랐고, 동료와 함께 만든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는 지역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그만큼 김다솜 이름 석 자를 알고 찾는 이가 많아졌지만, 그가 머물며 일하는 산골 빵집은 ‘다행히’ 사찰처럼 고즈넉한 분위기 그대로다. ‘정해진’ 길에서 내가 ‘선택’한 길로 오랫동안 ‘부산사람’으로 살아온 다솜 씨가 함양으로 오게 된 데는 5년 전에 먼저 이곳에 들어온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당시에는 “시골에서 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 뒤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갈림길에 서게 되자 가족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고. “부모님이 여기 오시고 나서 얼마 후 오빠도 들어왔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귀촌은 생각조차 안 했는데 언제부턴가 도시에서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맞나 싶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고민이 더 깊어졌죠. 그러다 가족이 있는 시골에 가서 나도 뭔가 새롭게 해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거예요.” 
함양에서도 깊은 골짝 마을에 자리잡은 다솜 씨 가족의 집. 그는 부모님을 따라 귀촌해 비건빵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다솜 씨는 공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스스로 원해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초중고 시절, 그리고 대학에 다닐 때도 “정해진 길만 따라” 걸었다는 그는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지금껏 그려온 궤적에 대해 회의와 성찰이란 걸 하게 된다. 주변 친구들이 거의 다 실험실에서 일하는 연구직을 선택할 때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간 이유다. “실험하고 연구하는 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건가? 물었을 때 아니라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이제부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졸업 후 요식업 분야를 알아봤죠. 제가 워낙에 맛있는 거 찾아다니며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웃음) 식재료와 플레이팅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쪽이 여러모로 저랑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요식업 관련 일을 두루 경험하는 과정에서 제빵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그는 함양에 들어오기 직전에 빵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귀촌을 결심하고 사직서를 냈는데 얼마 후 회사가 코로나로 인한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우연치고는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그는 본인의 손때 묻은 제빵 기기들과 함께 함양에 들어올 수 있었고, 이는 큰 고민 없이 빵집을 준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동안 만들어온 빵과는 거리가 먼 ‘비건빵’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환경문제와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비건을 지향하게 된 그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본인의 가치를 중심에 둔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비건’과 ‘로컬푸드’, 지속가능성을 위한 결심 “비건에 대한 관심은 귀촌 전부터 있었어요. 동물을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데 들어가는 곡물 사료의 양이 엄청나잖아요. 그로 인해 많은 숲이 사라지고 또 물 소비와 탄소 배출도 큰 문제고요. 저는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고 지구를 망가뜨리면서까지 동물을 먹어야 하나 회의가 들어서 채식을 지향하게 되었어요.” 
집 주변 산과 가까운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든 비건빵. 그가 완전한 비건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선이나 치즈 정도는 가끔 먹는다. 육고기는 최대한 안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기 곤란한” 자리에서는 죄책감에 얽매이지 않고 먹는 편이다. 다만 채식을 하면 단백질이 부족해진다, 건강이 안 좋아진다 등 세간에 나도는 ‘편견’에 대해서만은 꼿꼿하게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솔직히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게 몸에 안 좋을까요, 아니면 풀을 많이 먹는 게 안 좋을까요? 극단적 채식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요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영양 부족보다 과잉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우선 일주일에 이삼일, 아니면 하루 세끼 중 한 끼만이라도 채식으로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싶어요.” 채식 지향의 가치관을 지니게 되면서 다솜 씨는 단지 내 밥상에 변화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인의 일과 사업을 통해 채식의 가치를 실현하길 원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 것. 도하 빵에 우유와 버터와 달걀 같은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 가까운 곳에서 자라거나 생산되는 재료만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봄이면 일 년 동안 사용할 쑥을 산에서 채취해 삶아 말리는 게 일이다. (사진 제공_김다솜) 쑥이 들어가는 빵을 위해 그는 봄이면 집 근처 산에 올라 일 년 동안 사용할 쑥을 뜯는다. 바질처럼 내 손으로 키우는 게 가능한 재료는 텃밭에 직접 씨앗을 뿌려 거둔다. 그리고 양파와 옥수수 등의 재료는 함양과 인근 지역에서 농부들이 생산한 것을 구입한다. 이는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고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나,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상품이 생산되기까지의 탄소 발생량을 줄이고 더 건강한 빵을 소비자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위안을 받고 자부심을 느낀다. “비건식이라고 다 건강에 좋은 건 아니에요. 요즘은 동물성의 맛과 향을 흉내 낸 비건 식품도 정말 많거든요.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첨가제며 설탕과 기름 같은 걸 정말 많이 써야 한다는 거죠. 오죽하면 ‘비건정크’라는 말이 다 있겠어요?(웃음) 저는 그런 빵을 만들고 싶진 않기에 되도록 자연이 주는 재료를 사용하려 해요. 그러다 보니 사시사철 주말에는 재료 준비하는 게 일이에요. 쑥 캐서 삶고 말리고 얼려야지, 팥도 일일이 쑤어서 앙금 만들어야지. 양파도 다 말린 다음 구워서 쓰거든요. 재료를 사서 쓰는 것과는 노동강도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지만 그만큼 맛도 비교 불가예요. 사람과 지구 건강에도 더 좋을 테고요.” “귀촌 우울에서 벗어나려면 친구가 필요했죠” 도하를 처음 열고 나서 일 년 정도는 너무 바빠서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차차 자리를 잡고 나자 단단히 맞물려 있던 마음이 느슨해지면서 뭔지 모를 공허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일은 많아도 일상은 심심함과 권태로움에서 헤어날 줄 몰랐고, 무엇보다 마주보고 앉아 차 마시며 수다 떨 친구 하나 없다는 게 힘들었다. 스스로 ‘귀촌 우울’이라 명명한 이런 상태를 극복하고자 한때는 틈만 나면 부산을 찾아갔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러나 이미 삶의 방향과 중심이 달라진 그와 도시 친구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가로놓여 “공감의 깊이가 전 같지 않았”다. 잠깐의 만남에서 얻는 즐거움에 비해 시간과 에너지와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데다,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는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제가 원한 건 진짜 단순한 거였거든요?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그러면서 귀촌 생활의 소소한 고충이라든지 의미를 나눌 친구가 필요했던 건데 여기엔 그럴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러다 한 여자 청년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한 말이 뭐냐 하면, 귀촌 2년 만에 청년과 말해보는 게 처음이라고.(웃음)” 그 무렵에 다솜 씨가 우연한 계기로 주간함양 최학수 기자를 만난 건,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계기가 된다. 교류하고 소통할 또래 친구가 절실했던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함양 지역의 청년들을 잇는 <이소>를 만든 것이다. 이를 개인의 누리소통망과 지역 밴드 등에 알리자 거짓말처럼 여기저기서 청년들이 손을 들고 나타나 이소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들이 서로 알아가며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글쓰기, 영화, 독서, 와인 등 다양한 동아리도 생겨났다. 지난 일 년 사이 회원이 “상상 이상으로” 늘어난 이소는 이제 ‘청년북토크’를 열고 ‘함양 굿즈’를 만드는 등 이런저런 지원사업을 벌이며 활동의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 회원들. 앞줄 맨 오른쪽 모자 쓴 이가 다솜 씨다. (사진제공_김다솜) “이소는 가입서 한 장만 쓰면 되니까 회원이 빨리 는 것도 있어요. 그래도 60명이 넘는 전체 회원 중 모임에 나오는 분들이 3분의 2 정도는 돼요. 동아리 활동은 알아서들 잘해 나가고 있고요, 저와 학수가 전체 모임을 준비해서 달마다 한 번씩 꾸준히 하고 있어요.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보다는 맛있는 거 먹고 돌아가며 근황 얘기하고 새로 온 사람들 소개하는, 약간 교회 스타일로 하고 있죠.(웃음) 그것만 해도 너무 재밌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이소는 처음부터 ‘느슨한 조직’을 표방하고 문턱을 낮추었기에 함양 청년이라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에 일할 사람이 없어 늘 공동대표인 두 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도맡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회원이 늘고 활동이 많아지고 그만큼 주목받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사업량도 늘어가는데, 이 모든 걸 두 명이 감당하자니 상당히 버겁다는 얘기다. “그래서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일을 해보자는 데 뜻을 같이하는 청년 다섯이 모여 협동조합을 준비 중이에요. 올해 안에 만드는 걸 목표로 움직이고 있어요.” 소멸에 저항하는 우정과 연대의 힘 생태환경 파괴로 녹색 행성인 지구엔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고, 군 단위 지역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말하자면 지역에 사는 이들은 이중의 소멸 위험과 부담을 안고 사는 셈이라 할까. 다솜 씨는 이 같은 현실이 청년 세대에게는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뭔가를 기대하거나 꿈꿀 수조차 없다고 느껴진다면 왜 안 그렇겠는가. 그가 사람과 지구에 좀 더 ‘이로운’ 빵을 만들려 하고 점처럼 흩어진 청년들을 ‘잇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가혹한 현실에 저항하며 소멸을 늦추기 위한 그만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도 그렇지만 지방소멸은 정말 어떻게든 막고 싶죠. 이곳이 사라지면 이곳에 사는 우리의 삶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이 문제를 과연 개인이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이 지역을 좀 더 활성화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소도 그래서 만든 건데 마땅히 모일 공간도 없고 어려움이 많아요. 군청에서도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기만 할 뿐 정작 지역의 안 쓰는 공간 좀 달라고 하면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말로만 청년을 떠들 게 아니라 진짜 우리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면 좋겠어요.” 
소멸 위험에 처한 미래의 삶을 지켜가기 위해, 그는 청년활동가로서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간다. 빵집 운영하랴 청년활동가로 일하랴 ‘워라밸’은 먼 나라에서나 떠도는 소문처럼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다솜 씨는 이런 삶이 버겁지도 싫지도 않다. 가치 중심의 빵을 만들고 뜻 맞는 이들과 뭔가를 해나가는 일은 둘 다 보람되고 즐겁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면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게 불 보듯 훤하나 그 또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맘껏 펼쳐볼 수 있으리라 상상하며 설레하는 쪽에 가깝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어서, 곁에 친구들이 있어서 그렇다. 상황과 조건이 어떠하든 그를 돌파하려는 한 청년의 마음은, 그리고 그가 벗들과 만들어가는 우정과 연대의 작은 유토피아는 이토록 단단하다. |
우정과 연대로 만들어가는 작은 유토피아
비건빵 굽는 청년활동가 김다솜
글 / 자야
약 반세기 전, 지구인들은 보이저호를 쏘아 올리며 그 안에 ‘지구의 소리들’을 담았다. 화산과 천둥, 개구리와 새와 코끼리 소리에 더해 인간의 키스 소리까지 녹음된 레코드판을, 우주 어딘가에서 조우하게 될지도 모를 미지의 생명체에게 띄워 보낸 것이다. 가끔 이 신비로운 이야기가 생각날 때마다 만약 그 우주탐사선에 ‘지구의 냄새들’도 함께 실어 보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이를테면 찔레꽃 냄새와 길고양이의 오줌 냄새를. 햇살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의 땀 냄새와 차고 맑은 겨울날의 공기 냄새 같은 것들을. 아, 그리고 빵 굽는 냄새도!
30대 청년 김다솜은 우주인에게 소개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빵 굽는 냄새를 매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가 산이 많기로 유명한 함양에서도 꽤 깊숙한 마을에 정착한 부모님을 따라 들어와 <도하 비건베이커리>를 연 것은 2021년 초. 그로부터 30여 개월이 흐르는 사이 도하는 전국구 ‘비건빵집’으로 떠올랐고, 동료와 함께 만든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는 지역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그만큼 김다솜 이름 석 자를 알고 찾는 이가 많아졌지만, 그가 머물며 일하는 산골 빵집은 ‘다행히’ 사찰처럼 고즈넉한 분위기 그대로다.
‘정해진’ 길에서 내가 ‘선택’한 길로
오랫동안 ‘부산사람’으로 살아온 다솜 씨가 함양으로 오게 된 데는 5년 전에 먼저 이곳에 들어온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당시에는 “시골에서 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 뒤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갈림길에 서게 되자 가족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고.
“부모님이 여기 오시고 나서 얼마 후 오빠도 들어왔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귀촌은 생각조차 안 했는데 언제부턴가 도시에서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맞나 싶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고민이 더 깊어졌죠. 그러다 가족이 있는 시골에 가서 나도 뭔가 새롭게 해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거예요.”
함양에서도 깊은 골짝 마을에 자리잡은 다솜 씨 가족의 집. 그는 부모님을 따라 귀촌해 비건빵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다솜 씨는 공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스스로 원해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초중고 시절, 그리고 대학에 다닐 때도 “정해진 길만 따라” 걸었다는 그는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지금껏 그려온 궤적에 대해 회의와 성찰이란 걸 하게 된다. 주변 친구들이 거의 다 실험실에서 일하는 연구직을 선택할 때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간 이유다.
“실험하고 연구하는 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건가? 물었을 때 아니라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이제부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졸업 후 요식업 분야를 알아봤죠. 제가 워낙에 맛있는 거 찾아다니며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웃음) 식재료와 플레이팅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쪽이 여러모로 저랑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요식업 관련 일을 두루 경험하는 과정에서 제빵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그는 함양에 들어오기 직전에 빵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귀촌을 결심하고 사직서를 냈는데 얼마 후 회사가 코로나로 인한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우연치고는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그는 본인의 손때 묻은 제빵 기기들과 함께 함양에 들어올 수 있었고, 이는 큰 고민 없이 빵집을 준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동안 만들어온 빵과는 거리가 먼 ‘비건빵’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환경문제와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비건을 지향하게 된 그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본인의 가치를 중심에 둔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비건’과 ‘로컬푸드’, 지속가능성을 위한 결심
“비건에 대한 관심은 귀촌 전부터 있었어요. 동물을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데 들어가는 곡물 사료의 양이 엄청나잖아요. 그로 인해 많은 숲이 사라지고 또 물 소비와 탄소 배출도 큰 문제고요. 저는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고 지구를 망가뜨리면서까지 동물을 먹어야 하나 회의가 들어서 채식을 지향하게 되었어요.”
집 주변 산과 가까운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든 비건빵.
그가 완전한 비건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선이나 치즈 정도는 가끔 먹는다. 육고기는 최대한 안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기 곤란한” 자리에서는 죄책감에 얽매이지 않고 먹는 편이다. 다만 채식을 하면 단백질이 부족해진다, 건강이 안 좋아진다 등 세간에 나도는 ‘편견’에 대해서만은 꼿꼿하게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솔직히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게 몸에 안 좋을까요, 아니면 풀을 많이 먹는 게 안 좋을까요? 극단적 채식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요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영양 부족보다 과잉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우선 일주일에 이삼일, 아니면 하루 세끼 중 한 끼만이라도 채식으로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싶어요.”
채식 지향의 가치관을 지니게 되면서 다솜 씨는 단지 내 밥상에 변화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인의 일과 사업을 통해 채식의 가치를 실현하길 원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 것. 도하 빵에 우유와 버터와 달걀 같은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 가까운 곳에서 자라거나 생산되는 재료만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봄이면 일 년 동안 사용할 쑥을 산에서 채취해 삶아 말리는 게 일이다. (사진 제공_김다솜)
쑥이 들어가는 빵을 위해 그는 봄이면 집 근처 산에 올라 일 년 동안 사용할 쑥을 뜯는다. 바질처럼 내 손으로 키우는 게 가능한 재료는 텃밭에 직접 씨앗을 뿌려 거둔다. 그리고 양파와 옥수수 등의 재료는 함양과 인근 지역에서 농부들이 생산한 것을 구입한다. 이는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고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나,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상품이 생산되기까지의 탄소 발생량을 줄이고 더 건강한 빵을 소비자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위안을 받고 자부심을 느낀다.
“비건식이라고 다 건강에 좋은 건 아니에요. 요즘은 동물성의 맛과 향을 흉내 낸 비건 식품도 정말 많거든요.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첨가제며 설탕과 기름 같은 걸 정말 많이 써야 한다는 거죠. 오죽하면 ‘비건정크’라는 말이 다 있겠어요?(웃음) 저는 그런 빵을 만들고 싶진 않기에 되도록 자연이 주는 재료를 사용하려 해요. 그러다 보니 사시사철 주말에는 재료 준비하는 게 일이에요. 쑥 캐서 삶고 말리고 얼려야지, 팥도 일일이 쑤어서 앙금 만들어야지. 양파도 다 말린 다음 구워서 쓰거든요. 재료를 사서 쓰는 것과는 노동강도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지만 그만큼 맛도 비교 불가예요. 사람과 지구 건강에도 더 좋을 테고요.”
“귀촌 우울에서 벗어나려면 친구가 필요했죠”
도하를 처음 열고 나서 일 년 정도는 너무 바빠서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차차 자리를 잡고 나자 단단히 맞물려 있던 마음이 느슨해지면서 뭔지 모를 공허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일은 많아도 일상은 심심함과 권태로움에서 헤어날 줄 몰랐고, 무엇보다 마주보고 앉아 차 마시며 수다 떨 친구 하나 없다는 게 힘들었다.
스스로 ‘귀촌 우울’이라 명명한 이런 상태를 극복하고자 한때는 틈만 나면 부산을 찾아갔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러나 이미 삶의 방향과 중심이 달라진 그와 도시 친구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가로놓여 “공감의 깊이가 전 같지 않았”다. 잠깐의 만남에서 얻는 즐거움에 비해 시간과 에너지와 돈이 너무 많이 드는 데다,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는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제가 원한 건 진짜 단순한 거였거든요?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그러면서 귀촌 생활의 소소한 고충이라든지 의미를 나눌 친구가 필요했던 건데 여기엔 그럴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러다 한 여자 청년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한 말이 뭐냐 하면, 귀촌 2년 만에 청년과 말해보는 게 처음이라고.(웃음)”
그 무렵에 다솜 씨가 우연한 계기로 주간함양 최학수 기자를 만난 건,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계기가 된다. 교류하고 소통할 또래 친구가 절실했던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함양 지역의 청년들을 잇는 <이소>를 만든 것이다. 이를 개인의 누리소통망과 지역 밴드 등에 알리자 거짓말처럼 여기저기서 청년들이 손을 들고 나타나 이소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들이 서로 알아가며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글쓰기, 영화, 독서, 와인 등 다양한 동아리도 생겨났다. 지난 일 년 사이 회원이 “상상 이상으로” 늘어난 이소는 이제 ‘청년북토크’를 열고 ‘함양 굿즈’를 만드는 등 이런저런 지원사업을 벌이며 활동의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 회원들. 앞줄 맨 오른쪽 모자 쓴 이가 다솜 씨다. (사진제공_김다솜)
“이소는 가입서 한 장만 쓰면 되니까 회원이 빨리 는 것도 있어요. 그래도 60명이 넘는 전체 회원 중 모임에 나오는 분들이 3분의 2 정도는 돼요. 동아리 활동은 알아서들 잘해 나가고 있고요, 저와 학수가 전체 모임을 준비해서 달마다 한 번씩 꾸준히 하고 있어요.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보다는 맛있는 거 먹고 돌아가며 근황 얘기하고 새로 온 사람들 소개하는, 약간 교회 스타일로 하고 있죠.(웃음) 그것만 해도 너무 재밌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이소는 처음부터 ‘느슨한 조직’을 표방하고 문턱을 낮추었기에 함양 청년이라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에 일할 사람이 없어 늘 공동대표인 두 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도맡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회원이 늘고 활동이 많아지고 그만큼 주목받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사업량도 늘어가는데, 이 모든 걸 두 명이 감당하자니 상당히 버겁다는 얘기다.
“그래서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일을 해보자는 데 뜻을 같이하는 청년 다섯이 모여 협동조합을 준비 중이에요. 올해 안에 만드는 걸 목표로 움직이고 있어요.”
소멸에 저항하는 우정과 연대의 힘
생태환경 파괴로 녹색 행성인 지구엔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고, 군 단위 지역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말하자면 지역에 사는 이들은 이중의 소멸 위험과 부담을 안고 사는 셈이라 할까. 다솜 씨는 이 같은 현실이 청년 세대에게는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뭔가를 기대하거나 꿈꿀 수조차 없다고 느껴진다면 왜 안 그렇겠는가. 그가 사람과 지구에 좀 더 ‘이로운’ 빵을 만들려 하고 점처럼 흩어진 청년들을 ‘잇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가혹한 현실에 저항하며 소멸을 늦추기 위한 그만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도 그렇지만 지방소멸은 정말 어떻게든 막고 싶죠. 이곳이 사라지면 이곳에 사는 우리의 삶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이 문제를 과연 개인이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이 지역을 좀 더 활성화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소도 그래서 만든 건데 마땅히 모일 공간도 없고 어려움이 많아요. 군청에서도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기만 할 뿐 정작 지역의 안 쓰는 공간 좀 달라고 하면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말로만 청년을 떠들 게 아니라 진짜 우리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면 좋겠어요.”
소멸 위험에 처한 미래의 삶을 지켜가기 위해, 그는 청년활동가로서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간다.
빵집 운영하랴 청년활동가로 일하랴 ‘워라밸’은 먼 나라에서나 떠도는 소문처럼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다솜 씨는 이런 삶이 버겁지도 싫지도 않다. 가치 중심의 빵을 만들고 뜻 맞는 이들과 뭔가를 해나가는 일은 둘 다 보람되고 즐겁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면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게 불 보듯 훤하나 그 또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맘껏 펼쳐볼 수 있으리라 상상하며 설레하는 쪽에 가깝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어서, 곁에 친구들이 있어서 그렇다. 상황과 조건이 어떠하든 그를 돌파하려는 한 청년의 마음은, 그리고 그가 벗들과 만들어가는 우정과 연대의 작은 유토피아는 이토록 단단하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