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구례] [뭉치고 뭉개기] 만족할 줄 아는 당신이 바로 아나키스트 - 지역 장터에 부는 대안 경제의 바람, 두루다살림장

2023-05-30

 

 

만족할 줄 아는 당신이 바로 아나키스트

지역 장터에 부는 대안 경제의 바람

 

 

글 / 문홍현경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혁명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비 사회에서 만족은 급진적 태도다. (...) 감사는 만족을 찾기 위해 쇼핑하라고 등을 떠밀지 않는다. 감사는 상품이 아니라 선물로 다가오기에 경제 전체의 토대를 뒤엎는다. 감사는 땅에게도 사람에게도 좋은 치료약이다.”

<향모를 땋으며> 중에서

 

 

 

소만을 앞둔 토요일, 구례 느긋한쌀빵 앞마당에 눈을 반짝이게 하는 장이 펼쳐졌다.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두루다살림장’이다. 제 손으로 거둔 작물과 스스로 만든 공예품, 요리, 공유하고픈 물품과 재주 등이 자유롭게 장에 나온다. 누구든 돗자리를 펼쳐 앉아 장꾼이 될 수 있고,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올해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로부터 지원받는 구례의 함께활동은 ‘지역 생협 토대 만들기’이다. 두루다살림장은 바로 구례 생협의 밑바탕이자 주춧돌이 될 장이다. 지역민이 만든 지역 생협이 생기면 우리 지역에서 나온 먹거리를 멀리 보내지 않고 가까이 사는 지역민들이 먹을 수 있다. 에너지는 덜 쓰고 쓰레기는 줄일 수 있다는 거다. 

 

 

또 지역 직거래 장터에 나오면 내가 더 가진 것은 나누고, 내게 부족한 것은 얻을 수 있다. 받은 것에 감사하게 되고, 준 것에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서로 비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향모를 땋으며>에 나오는 북아메리카 토박이의 지혜처럼,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 조금씩 물들게 된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정말 혁명의 토대가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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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소만 즈음 열린 ‘두루다살림장’ 풍경

 

 

 

지갑 없이 지역 장터에 가면 벌어지는 일

 

 

 

이날 장엔 초록 잎을 살랑이는 모종들이 가득했다. 모종 만들 때를 놓친 소농은 눈알이 굴러간다. 

 

 

“집에 들깨 모종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그런데 은주 쌤은 이렇게 정성스럽게 키운 들깨 모종을 나눠 주겠다 한다. 

 

 

“어어... 은주 쌤 저 들깨 모종...”

“응, 많이 가져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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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다살림장에 농부들이 직접 만든 모종들이 모종모종 모여 있다.

 

 

 

바로 옆에서 모종을 파시던 한 분은 메리골드 모종을 그냥 나눠 주셨다. 장에 나온 손님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종을 나눠 가졌다. 나도 들깨와 메리골드 모종을 챙겼다. 들깨는 고추랑 같이 심으면 좋으니까 고추 두둑 사이사이 심고, 메리골드는 모든 작물과 잘 어울리니 밭 군데군데 심을 요량으로.

 

 

아,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그런 마음으로 모종들에 손댄 건 절대 아니다. 텃밭에 잘 옮겨 살려야지, 그래야 나도 살고 밭도 살고, 모종 주신 이에게도 보답하지 하는 마음으로 챙겼다. 다음에 무언가 보답할 거리가 생기면 나도 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절로 먹게 된다.

 

 

모종을 챙기다 보니 바로 옆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이번 함께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화영 샘과 은경 샘이 보인다. 화영 샘은 후무스 샌드위치를, 은경 샘은 떡볶이를 준비하고 있다. 집에서 갓 담가 온 무 생채도 팔고, 직접 만든 막걸리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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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다살림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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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가 사 준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

 

 

 

그 옆에선 윤서네 장이 섰다. 오늘도 윤서는 엄마 유현과 장꾼으로 참여했다. 윤서는 주로 작아진 옷, 나누고픈 장난감 등을 가지런히 펼쳐 두고 싸게 팔았다. 엄마와 밭에서 거둔 호박이나 가지 등을 팔기도 했는데, 오늘은 윤서의 퀴즈쇼를 펼친다고 한다. 또 가지, 댑싸리 등 모종도 팔고 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또래 친구들과 돗자리 위에서 노는 게 최고~! 엄마 주리를 따라 나온 은호 설아와 함께 ‘신나게 놀기’가 두루다살림장에 활기를 더한다. 

 

 

아이들이 엄마를 부른다.

 

 

“엄마, 나 과자 먹고 싶어.”

“또? 아까 사 먹었는데?”

“아니 다른 거 먹고 싶은데.”

“아까도 친구들이랑 많이 사 먹었으니까 오늘은 그만 먹자.”

이런 대화가 오가자, 옆에서 보고 있던 ‘이모’ 한 분이 말했다.

“뭐 마실래? 이모가 사 줄게 가자.”

 

 

그러자 윤서가 말했다.

 

 

“오늘 장 참여해서 받은 쿠폰 있는데, 그거로 사 먹자.”

“그래, 가자.”

 

 

그리하여 아이들과 이모가 느긋한쌀빵에 들어가려 하자 옆에 있던 윤슬 엄마 라윤이 자기가 사 줘야겠다며 주머니를 뒤지다가 던진 한마디.

 

 

“어맛, 장에 오면서 지갑을 안 가지고 왔네. 하하.”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이렇게 무언가가 계속 오고 가는 이 장터는, 진심 자본주의의 적인가. 몇 분 뒤, 흐뭇한 표정으로 가게에서 나온 은호가 말했다.

 

 

“엄마 이거 윤서 형아가 사 줬어.”

“아, 그랬어? 아이고 고마워, 윤서야.”

 

 

그러자 더 흐뭇한 표정을 한 윤서가 말했다.

 

 

“아, 저 장꾼 쿠폰 받은 거로 샀어요.”

“은호야 형아랑 나눠 먹어야지.”

“아니에요, 나는 안 먹어도 돼요. 은호 너 먹어.”

 

 

자본주의가 덜덜 떠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계삼 선생님이 쓴 <고르게 가난한 사회>가 떠올랐다. 정말 다들 없이 살자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는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누군가는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느라 꿈꿀 여유조차 없는 이런 불공평한 자본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걸 말하는 책이다. 만족, 한계, 나눔, 보답, 감사를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곳이야말로 대안 경제의 텃밭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장터는 배움터 : 오래 입고, 고쳐 쓰고, 나눠 먹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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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닝을 아십니꽈?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술이야~” 주리의 ‘다닝 교실’

 

 

토지면에 사는 주리는 바느질 도구를 가지고 나와 구멍 난 양말, 찢어진 옷을 수선하는 지혜로운 삶의 기술 ‘다닝’을 가르쳐 줬다. 구멍이 큰 양말은 바느질이 쉽지 않던데, 다닝으로 소생시켜 보고픈 마음에 나도 다닝교실에 앉아 바늘을 들었다.

 

 

주리의 실과 바늘을 사용해 다닝을 배우는 대신, 나는 주리가 가져온 구멍 난 양말들을 잘 다닝해 보기로 했다. 상부상조.

 

 

옆에서 지켜보던 한 분이 말을 건다.

 

 

“니트도 이렇게 꿰매서 수선할 수 있을까요? 제 니트에 밀랍이 묻어서 구멍이 났어요. 아까워요.”

“아, 밀랍이 묻었으면 천을 놓고 다림질하면 되던데요?”

“아우, 내가 별짓 다 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러셨구나, 그래요, 다음에 가져와서 같이 해 봐요.”

“나도 집에 안 신는 양말 한 상자나 있는데, 다음에 장에 가져와야겠다. 이게 이름이 뭐라고요?”

“이게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수선 기술이래요. 다닝이라고, 구멍 난 옷들을 이렇게 꿰매니까 원래 옷보다 더 예뻐져요.”

“와, 주리 실력 많이 늘었다. 너무 예뻐. 나는 이거 하다가 지쳐서 코바늘로 떠서 천을 만들고 그걸 덧댔어요.”

“맞아요, 그런 방법도 있어요. 동네 어르신한테 우리 전통 수선 방법 여쭤봤더니 천을 하나 덧대서 꿰매시더라고요. 정말 순식간에 휘리릭, 엄청나게 빨리 하셨어요. 모양은 다닝이 더 예쁜데, 실용성은 어머니 기술이 최고.”

“옛날엔 가정 시간에 이걸 배웠대요.”

“다닝을?”

“네, 학교에서 가르쳐줬대요.”

“요즘엔 왜 그런 거 안 가르쳐주지?”

“이런 생활기술도 학교에서 배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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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비포 앤 애프터. 이날 다닝 교실에서 배운 기술로 소생시킨 양말. 손가락만 한 구멍이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양말을 기우면서 도란도란 이야기장이 펼쳐졌다. 생활기술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아이들 학교 이야기, 취미 이야기, 농사 이야기 옹기종기 이야기 뭉치가 만들어진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지역의 터전 이야기도 하고, 결국 지리산골프장에 대한 얘기도 하게 됐다.

 

 

“어우, 참, 대체 그런 걸 왜 짓겠다는 거야?”

“아니, 요새 골프장으로 지역경제 활성화한다는 말을 누가 믿어? 자기네들만 좋지.”

“거 지리산 자락 다 파헤치고 무슨 짓거리인지 몰라.”

“굵은 나무도 다 팽개쳐져 있고, 숲이 다 망가져서 정말 슬펐어요. 진짜 제발 안 하면 좋겠어요.”

 

 

모이면, 뭉치면, 막을 수 있다. 눈 감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내면 막을 수 있다. 지역 장터가 생기면 좋은 점 가운데 또 하나가 더해졌다. 지역 터전 지킴이 늘리기~!

 

 

 

 

지속 가능한 자급자족 삶을 향하여

 

 

 

잠시 한가한 틈을 타 화영 샘에게 두루다살림장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지속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셀러(장꾼)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소비자들이 정말 장터로 인식해서 여기서 장을 보러 많이 오시면 좋겠어요. 우리 지역에서 어느 정도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어요. 현재는 지원이 없으면 운영이 안 되는 구조여서 여러 사람이 마음을 내야 운영될 수 있어요. 누구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계속 보완하고, 수정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화영 샘은 두루다살림장을 알리려고 다달이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 왔다. 북포스터 공모전을 열어 장에 전시하기도 하고,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옷을 입고 오는 북코스프레도 열었다. 덕분에 지역 장터에서 책 읽는 문화를 퍼뜨리는 데도 도움이 됐다. 또 참가자들에겐 장터와 ‘느긋한쌀빵’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나눠 주셔서 참여를 북돋웠다. 절기마다 장을 홍보하는 웹자보를 만들어 장터 단톡방에 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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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살이X두루다살림장 ‘소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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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북포스터 전시회 

 

 

 

여러모로 애써 온 화영 샘의 바람대로 더 많은 이가 장에 참여하고, 규모가 좀 더 커져서 정말 우리 지역민들이 자급자족 직거래 장터의 주인공들이 되면 좋겠다. 거대 상업 자본의 배를 불리는 소비에서 벗어나도록 두루다살림장이 마중물이 되면 좋겠다.

 

 

구례 함께활동을 함께 운영하는 은경 샘에겐 올해 계획을 들어 봤다.

 

 

“일단 지역 생협 사례들을 중심으로 공부하려고 해요. 성공 사례 들어보기. 우리가 가게를 이런 규모에서 가능한지도 파악해 봐야 하고요, 또 진주텃밭 같은 곳에 견학도 가려고요. 알맹상점 같은 제로웨이스트숍도 접목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요. 또 올해는 생산자네트워크를 만들어 보고, 마지막에 설문조사를 통해 수요를 파악해 볼 생각이에요.

설문조사 과정까지 마치면 지역 생협 조합원을 얼마나 모을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게 올해 활동 목표 그러니까 올해는 가능성을 좀 보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잠깐만요, 떡볶이 좀 뒤집어 놓고 올게요.”

 

 

화영 샘과 은경 샘은 장꾼으로든 소비자로든 더 많은 사람이 모여 두루다살림장을 지속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나 역시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우리 지역의 진짜 직거래장터가 생기기를 바란다.

 

 

장 한편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던 채연과 애숙 샘의 이야기를 살짝 엿들었다. 채연은 화영 샘의 딸이고 두루다살림장의 포스터를 만들며 화영 샘 활동을 든든하게 도왔다. 애숙 샘이 채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장은, 친근하면서도 소박하다고 할까. 이웃들이 생산한 여러 가지 농산물이라든지 가공품이라든지 예를 들면 물김치 이런 것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분들로부터 살 수 있어서 좋아요. 두루다살림장에 와서 이웃 같은 사람들도 만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알던 사람도 만나고. 그런 점이 좋아요.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게 아니고 소소한 활동, 배움 이런 게 함께 이뤄져서 참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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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노는 장

 

 

그러는 사이 윤슬과 선재가 아빠 차에서 내려 신나게 뛰어온다. 아는 아이들이 오니 어른들이 또 반갑게 맞아 준다. 아이들은 한쪽에 세워 놓은 인디언텐트에 들어가 자기들만의 세계를 펼쳐 논다. 

 

 

이번엔 동근과 반려견 봄이가 함께 왔다. 봄이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쏙 집어넣고 동근 뒤에 숨어 있다. 사람들이 많아서 겁났나 보다. 우리 딸아이도 어릴 때 낯선 사람들 보면 내 뒤에 숨어 있었는데, 봄이를 보니 왠지 친근하다. 먼저 말 걸지 말고 좀 멀리서 기다려야지. 

 

 

성격도 다 다르고, 생김새도 다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종도 다른 이들이 모여 펼치는 장. 뽐낼 일도 없고 치장할 일도 없다. 제 색깔대로 와서 쉬다가, 먹다가, 놀다가, 팔다가 안녕 다음에 또 만나 하고 가면 된다. 싸고, 크고, 윤기 나는 것만 찾기보다 얼굴 아는 생산자들의 수고에 고마워하며 제대로 값을 내면 된다. 함께 사는 동식물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런 마음들이 사그라지지 않게 지역 장터는 계속 열려야 한다. 고르게 풍요로운 사회를 향해.

 

 

 

 

 

글 쓴 사람. 문홍현경

명랑해지고 싶은 기후활동가, <벗자편지> 함께지은이, 독립출판 니은기역 이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