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 남원여성농악단, 63년만에 서울 무대에 서다!" 2023년 곧이곧대로 기록하기 ② 글 / 김양오 남산 국악당 무대 천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왔다. 흑백 영상 속에서 젊은 여성들이 장고와 북을 메고 팔랑팔랑 가볍게 뛰어다녔다. 어떤 분은 꽹과리를 쳤고 앳돼 보이는 여자아이들은 소고춤을 추며 따라다녔다. 서울 장충 체육관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풍물을 치며 뛰어다니는 여인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 탄신 기념’ 전국 농악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남원 여성농악단의 실제 공연 모습이다. 
1960년 공연 영상이 끝나자 원로 국악인들이 무대에 나오고 있다. 짧은 영상이 멈추자 사회자(진옥섭, 전 한국 문화재 재단 이사장)가 분홍색의 고운 농악복을 입은 구부정한 노인들 네 분을 모시고 나왔다. “이분들이 저 영상 속의 인물들이십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 남원 여성농악단 단원들이십니다!” 30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남산 국악당의 지붕을 들썩였다. 박수 소리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노인들은 천천히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사회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드디어 꽹과리를 잡고 장고채를 메고 소고를 잡은 네 노인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연희대 팔산대 단원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여성농악단의 맥을 잇고 있는 청춘들이다. 
3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사이로 연희단 팔산대가 풍물을 치며 입장하고 있다. 꽹과리를 치는 장봉녀 할머니(93세)는 풍물패들을 진두지휘하며 진을 짜나갔다. 아흔이 넘었어도 상쇠영감(풍물패의 수장을 영감이라고 했다)으로서 카리스마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리허설 때에는 그 카리스마가 더욱 빛났었다. 장고를 메고 찌뚱찌뚱 따라다니던 배분순 할머니(80세)가 더 이상 힘들겠는지 장고를 받침대에 올려놓고 서서 쳤다. 옛날에 다친 고관절이 늘 문제다. 그 옛날 장고를 메고 춤을 추면 넋을 놓고 따라다니던 남자들이 줄을 섰다. 그 중에 한 명은 부여 백마강에 몸을 던졌고 한 명은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그 어여쁘고 잘 나가던 젊은 시절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63년만의 서울 무대에서 신명나게 공연을 하고 있는 원로들 3월까지만 해도 서울 공연은 절대 못 간다고 뻗었던 박복례(79세)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익은 장맛같은 소고춤을 추기 시작했다. 머리에 12발 상모를 쓰고 출렁출렁 화려한 상모춤을 추던 꽃다운 복례는 이제 없지만 온몸에 들어있던 춤사위는 팔과 어깨와 등판과 다리에서 천천히 스며 나왔다. 고혈압, 당뇨, 관절 하나 성한 데가 없지만 웅숭깊은 소고춤은 젊을 때보다 더 아름답다. 다른 분들에 비해 아직 청춘인 노영숙(70세) 선생님(이 분만큼은 할머니라고 부를 수 없다.)은 우리나라 여자 최초로 자반뒤집기를 하시던 분이다. 몸을 땅바닥에 반쯤 누워 구르듯이 돌아치는 모양이 고등어자반 뒤집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기술이다. 일본 오사카까지 다니며 날렸던 솜씨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듯 소고를 들고 뱅글뱅글 돌았으나 결국 자반뒤집기는 성공하지 못하셨다. 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나이다. 
상쇠 장봉녀 할머니의 지휘에 따라 진을 짜고 있는 여성 농악단원들 원로들이 풍물을 치고 춤을 추는 동안 관중들은 위로 올려 손뼉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주 자주 함성과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국악당의 공기는 공연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길놀이를 어느 정도 한 뒤 상쇠가 꽹과리를 멈췄다. “이보시오, 농부님들!” “예이~” “우리 서울까지 왔으니 농부가나 불러 봅시다!” “예이~” 농악의 핵심은 바로 농부가다. 상쇠가 선창을 했다. 아흔 셋 할머니의 목소리라고 믿기지 않게 깊고 큰 목소리에 관중들은 또 한번 탄성을 질렀다. 장고잽이, 소고잽이 할머니가 차례로 농부가를 이어 받았다. 세 분 다 어릴 적 풍물 배우기 전에 남원의 유명한 명창들에게 판소리를 배운 터라 소리가 제대로다. 특히 상쇠 장봉녀 할머니는 소싯적에 명창 소리도 들었던 분이다. 그렇게 30분 가까이 원로들의 공연이 끝나고 연희단 팔산대의 공연이 이어졌다. 어린 남자 아이가 머리에 작은 상모를 쓰고 소고를 든 채 어른들을 따라 촐랑촐랑 뛰어다닌다. 아직 동작이 제대로 되지는 않지만 다 따라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곱 살이다. 징을 치는 여자 분의 손자란다. 팔산대 단원 두 명의 배가 보통이 아니다. 배가 정말 남산만한 한 여성이 꽹과리를 치고 노래를 한다. 배가 더 큰 단원은 북을 메고 서서 친다. 한명은 1주일 뒤가 예정일이고 한 명은 9개월이란다. 무대에서 뛰다가 애기가 나올 수도 있는 상태인 것이다. 둘 다 셋째 아이다. 출산율이 절벽으로 향하고 있는 시대에 둘 다 셋째라니! 뱃속에 있는 아이는 국악의 신명으로 태교를 했으니 당연히 어릴 때부터 소고를 잡고 뛰어다닐 것이다. 일곱 살 아이처럼. 
만삭의 단원들부터 일곱 살, 10대부터 60대까지 단원들로 구성된 연희단 팔산대의 리허설 모습 이런 저런 공연이 2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마무리할 즈음. 사회자 진옥섭 님이 장고 치시는 배분순 할머니와 꽹과리 치시는 장봉녀 할머니를 무대에 모셨다. 한 분은 마침 화장실에 가셨다. 두 분이 가요, 특히 트로트를 잘 하는 것을 알고 한 곡씩 청한 것이다. 하라면 못할 게 없는 분들이며 서울에 왔다고 기죽을 분들이 아니다. 북을 뜨르륵 긁으며 간드러지게 노래를 불렀다. 관중들을 자지러졌다. 팔산대가 준비한 나머지 공연도 다 끝나고 커튼콜까지 하니 2시간 30분이 지났다. 2시간 30분이 지났어도 객석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분장실에서 대기하는 할머니들도 지치지 않았다. 드디어 커튼 콜! 단원들이 모두 인사하고 마지막에 원로들을 모셨다. 객석에서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화려한 조명 아래 분홍색 비단 조끼를 입은 할머니들이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았다. 
공연이 끝난 뒤 조명을 받고 서 있는 원로 국악인들 
공연자들이 모두 모여 찍은 단체사진 공연 전날 저녁 남원시장을 지낸 최진영 코리아 헤럴드 대표님이 원로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해 주셨다. “지화자! 좋다~!”하며 건배를 한 뒤 프랑스 에펠탑 앞에서 공연하면 정말 멋질 거라며 꼭 가자고 했다. 5시간 넘게 차를 타고 서울에 오느라 고관절, 무릎, 허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는데 프랑스라니. 그러나 아무도 못가겠다는 말을 안 하시고 즐겁게 웃어 제끼셨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집에 와서 다들 “아이고 비행기 오래 못 타. 다리 아파 못 가!” 마음은 1960년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2023년을 살고 있는 몸뚱아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시장 시절 남원 농악을 살린 최진영 코리아헤럴드 대표가 원로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1980년대까지 우리 국악은 거의 사라질 지경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국악을 지킨 것은 기생들의 조합이며 학교였던 ‘권번’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권번을 이은 ‘국악원’이 그 역할을 해냈다. 이분들은 바로 그 남원국악원을 만들고 지켜낸 분들이다. 돈을 내서 국악원 건물을 짓는데 기여한 사람들은 국악원 건립비에 다 씌여 있는데 공연을 열심히 다니며 돈을 벌어 운영비를 충당했던 이분들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 근현대 축제인 춘향제 때도 아무런 댓가를 안 받고 공연을 다 하신 분들이다. 즉, 이분들 덕분에 남원 국악이, 최초 국악 축제였던 춘향제가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남원역사연구회 김양오 회원이 KBS전주 방송 뉴스에 출연해 남원여성농악단 원로 단원들의 역사와 의미를 알리고 있다. |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 남원여성농악단, 63년만에 서울 무대에 서다!"
2023년 곧이곧대로 기록하기 ②
글 / 김양오
남산 국악당 무대 천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왔다.
흑백 영상 속에서 젊은 여성들이 장고와 북을 메고 팔랑팔랑 가볍게 뛰어다녔다. 어떤 분은 꽹과리를 쳤고 앳돼 보이는 여자아이들은 소고춤을 추며 따라다녔다. 서울 장충 체육관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풍물을 치며 뛰어다니는 여인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 탄신 기념’ 전국 농악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남원 여성농악단의 실제 공연 모습이다.
1960년 공연 영상이 끝나자 원로 국악인들이 무대에 나오고 있다.
짧은 영상이 멈추자 사회자(진옥섭, 전 한국 문화재 재단 이사장)가 분홍색의 고운 농악복을 입은 구부정한 노인들 네 분을 모시고 나왔다.
“이분들이 저 영상 속의 인물들이십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 남원 여성농악단 단원들이십니다!”
30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남산 국악당의 지붕을 들썩였다. 박수 소리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노인들은 천천히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사회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드디어 꽹과리를 잡고 장고채를 메고 소고를 잡은 네 노인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연희대 팔산대 단원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여성농악단의 맥을 잇고 있는 청춘들이다.
3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사이로 연희단 팔산대가 풍물을 치며 입장하고 있다.
꽹과리를 치는 장봉녀 할머니(93세)는 풍물패들을 진두지휘하며 진을 짜나갔다. 아흔이 넘었어도 상쇠영감(풍물패의 수장을 영감이라고 했다)으로서 카리스마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리허설 때에는 그 카리스마가 더욱 빛났었다.
장고를 메고 찌뚱찌뚱 따라다니던 배분순 할머니(80세)가 더 이상 힘들겠는지 장고를 받침대에 올려놓고 서서 쳤다. 옛날에 다친 고관절이 늘 문제다. 그 옛날 장고를 메고 춤을 추면 넋을 놓고 따라다니던 남자들이 줄을 섰다. 그 중에 한 명은 부여 백마강에 몸을 던졌고 한 명은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그 어여쁘고 잘 나가던 젊은 시절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63년만의 서울 무대에서 신명나게 공연을 하고 있는 원로들
3월까지만 해도 서울 공연은 절대 못 간다고 뻗었던 박복례(79세)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익은 장맛같은 소고춤을 추기 시작했다. 머리에 12발 상모를 쓰고 출렁출렁 화려한 상모춤을 추던 꽃다운 복례는 이제 없지만 온몸에 들어있던 춤사위는 팔과 어깨와 등판과 다리에서 천천히 스며 나왔다. 고혈압, 당뇨, 관절 하나 성한 데가 없지만 웅숭깊은 소고춤은 젊을 때보다 더 아름답다.
다른 분들에 비해 아직 청춘인 노영숙(70세) 선생님(이 분만큼은 할머니라고 부를 수 없다.)은 우리나라 여자 최초로 자반뒤집기를 하시던 분이다. 몸을 땅바닥에 반쯤 누워 구르듯이 돌아치는 모양이 고등어자반 뒤집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기술이다. 일본 오사카까지 다니며 날렸던 솜씨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듯 소고를 들고 뱅글뱅글 돌았으나 결국 자반뒤집기는 성공하지 못하셨다. 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나이다.
상쇠 장봉녀 할머니의 지휘에 따라 진을 짜고 있는 여성 농악단원들
원로들이 풍물을 치고 춤을 추는 동안 관중들은 위로 올려 손뼉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주 자주 함성과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국악당의 공기는 공연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길놀이를 어느 정도 한 뒤 상쇠가 꽹과리를 멈췄다.
“이보시오, 농부님들!”
“예이~”
“우리 서울까지 왔으니 농부가나 불러 봅시다!”
“예이~”
농악의 핵심은 바로 농부가다.
상쇠가 선창을 했다. 아흔 셋 할머니의 목소리라고 믿기지 않게 깊고 큰 목소리에 관중들은 또 한번 탄성을 질렀다. 장고잽이, 소고잽이 할머니가 차례로 농부가를 이어 받았다. 세 분 다 어릴 적 풍물 배우기 전에 남원의 유명한 명창들에게 판소리를 배운 터라 소리가 제대로다. 특히 상쇠 장봉녀 할머니는 소싯적에 명창 소리도 들었던 분이다.
그렇게 30분 가까이 원로들의 공연이 끝나고 연희단 팔산대의 공연이 이어졌다.
어린 남자 아이가 머리에 작은 상모를 쓰고 소고를 든 채 어른들을 따라 촐랑촐랑 뛰어다닌다. 아직 동작이 제대로 되지는 않지만 다 따라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곱 살이다. 징을 치는 여자 분의 손자란다.
팔산대 단원 두 명의 배가 보통이 아니다. 배가 정말 남산만한 한 여성이 꽹과리를 치고 노래를 한다. 배가 더 큰 단원은 북을 메고 서서 친다. 한명은 1주일 뒤가 예정일이고 한 명은 9개월이란다. 무대에서 뛰다가 애기가 나올 수도 있는 상태인 것이다. 둘 다 셋째 아이다. 출산율이 절벽으로 향하고 있는 시대에 둘 다 셋째라니! 뱃속에 있는 아이는 국악의 신명으로 태교를 했으니 당연히 어릴 때부터 소고를 잡고 뛰어다닐 것이다. 일곱 살 아이처럼.
만삭의 단원들부터 일곱 살, 10대부터 60대까지 단원들로 구성된 연희단 팔산대의 리허설 모습
이런 저런 공연이 2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마무리할 즈음. 사회자 진옥섭 님이 장고 치시는 배분순 할머니와 꽹과리 치시는 장봉녀 할머니를 무대에 모셨다. 한 분은 마침 화장실에 가셨다. 두 분이 가요, 특히 트로트를 잘 하는 것을 알고 한 곡씩 청한 것이다. 하라면 못할 게 없는 분들이며 서울에 왔다고 기죽을 분들이 아니다. 북을 뜨르륵 긁으며 간드러지게 노래를 불렀다. 관중들을 자지러졌다.
팔산대가 준비한 나머지 공연도 다 끝나고 커튼콜까지 하니 2시간 30분이 지났다. 2시간 30분이 지났어도 객석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분장실에서 대기하는 할머니들도 지치지 않았다. 드디어 커튼 콜! 단원들이 모두 인사하고 마지막에 원로들을 모셨다. 객석에서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화려한 조명 아래 분홍색 비단 조끼를 입은 할머니들이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았다.
공연이 끝난 뒤 조명을 받고 서 있는 원로 국악인들
공연자들이 모두 모여 찍은 단체사진
공연 전날 저녁 남원시장을 지낸 최진영 코리아 헤럴드 대표님이 원로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해 주셨다. “지화자! 좋다~!”하며 건배를 한 뒤 프랑스 에펠탑 앞에서 공연하면 정말 멋질 거라며 꼭 가자고 했다. 5시간 넘게 차를 타고 서울에 오느라 고관절, 무릎, 허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는데 프랑스라니. 그러나 아무도 못가겠다는 말을 안 하시고 즐겁게 웃어 제끼셨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집에 와서 다들 “아이고 비행기 오래 못 타. 다리 아파 못 가!” 마음은 1960년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2023년을 살고 있는 몸뚱아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시장 시절 남원 농악을 살린 최진영 코리아헤럴드 대표가 원로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1980년대까지 우리 국악은 거의 사라질 지경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국악을 지킨 것은 기생들의 조합이며 학교였던 ‘권번’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권번을 이은 ‘국악원’이 그 역할을 해냈다. 이분들은 바로 그 남원국악원을 만들고 지켜낸 분들이다. 돈을 내서 국악원 건물을 짓는데 기여한 사람들은 국악원 건립비에 다 씌여 있는데 공연을 열심히 다니며 돈을 벌어 운영비를 충당했던 이분들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 근현대 축제인 춘향제 때도 아무런 댓가를 안 받고 공연을 다 하신 분들이다.
즉, 이분들 덕분에 남원 국악이, 최초 국악 축제였던 춘향제가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남원역사연구회 김양오 회원이 KBS전주 방송 뉴스에 출연해 남원여성농악단 원로 단원들의 역사와 의미를 알리고 있다.
글 쓴 사람. 김양오
아이 셋을 다 키운 중년 아줌마. 젊었을 적 글쓰기와 아동문학을 배워 평생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러다 쉰 살부터 역사동화를 쓰기 시작해 책 세 권을 냈다. 아름답게 흐르는 요천이 너무 좋아 남원으로 이사해 15년째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서 가슴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