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산청+그림+일기] 하나. 시작은 산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2023-03-29

 

 

시작은 산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청+그림+일기〕하나

 

글과 그림 / 효림

 

 

 

몇 년 전, 산청 원지에서 묵곡으로 넘어가는 데크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마음만 굳게 먹으면 얼마든지 길게 걸을 수 있게 되었지요. 신안초등학교에서 진주방향으로 가다보면 ‘토현교’라는 다리가 나옵니다. 다리를 건너 강변을 따라 1km정도 걸으면 잠수교가 보입니다. 이번에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낙엽이 쌓인 포슬포슬한 길을 걷습니다. 그 끝에서 데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살짝 몸이 더워지고 걷기가 익숙해졌다면 이제 당당하게 데크를 밟습니다. 이 산책의 재미는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엄혜산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특히 코끝이 시린 초겨울이나 막 새순이 돋아나는 초봄, 해가 질 무렵에 아름답습니다. 데크가 절벽 중턱에 설치된 덕에 실핏줄처럼 미세한 잔가지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해가 뉘엿뉘엿 산 뒤로 넘어가면 역광을 받은 나무들은 그림자 덕에 더욱 선명합니다. 투명한 풍경에 감탄하는 사이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나도 모르게 허벅지가 탄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이지요.

 

 

데크의 끝은 다시 비포장도로로 이어집니다.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종종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이 있으니까요. 힘을 내어 조금만 더 걸으면 묵곡생태공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공원은 서울이나 중소도시의 여느 공원 못지않게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도시였다면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겠지요.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이곳은 고즈넉합니다. 여기서 잠시 쉬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걷고 싶습니다. 

 

 

공원 맞은편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합니다. 2차선 옆에 인도가 있습니다. 쌩쌩 달리는 차 소리에 조금 시끄럽지만 괜찮습니다. 남강이 한강만큼 크지는 않으니까요. 강변을 따라 걷는 길에 고라니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하루에 고라니 7마리를 본 적도 있습니다. 물론 백로 3마리, 쥐 1마리, 딱따구리 1마리, 자라 9마리, 흑염소 4마리, 오리 수십 마리를 본 다음이었지요.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단성중고교를 거쳐 단성교를 건너면 다시 원지가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해는 이미 다 지고 사위는 어두워졌습니다. 휘황찬란한 간판과 네온사인 덕에 흡사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자를 맞이하는 대도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트에서 저녁 해 먹을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10km 이상 걸었던 터라 다리가 조금 무겁게 느껴질 겁니다. 위 코스가 조금 지루하다면 속도를 높여도 좋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러닝코스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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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코스를 소개하고자 이 글을 쓴 건 아닙니다. 제가 산책예찬론자나 산책장려활동가는 더더욱 아니고요. 어느 철학자처럼 정해진 시간에 맞춰 걷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 저 코스보다는 짧지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습니다. 하루 한 시간 내외로 강변을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하는 저는 굳게 마음을 먹을 필요도 없이 집을 나섰지요. 그런데 그 날은 위 코스로 걷기 싫어졌습니다. 괜히 다른 길로 걷고 싶어졌어요.

 

 

원지에서 묵곡으로 넘어가는 데크가 만들어지기 전, 그곳은 대나무밭이었습니다. 데크를 설치하면서 수많은 대나무들이 뎅겅뎅겅 잘려나갔지요. 공중에 붕 떠 있는 데크가 만들어지자 밑으로 자그마한 오솔길이 나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공사현장을 위해 만든 길이겠지요. 어쩌면 대나무 때문에 그동안 제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그 길이 저를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데크에서 본 것과 다르게 길은 불편했습니다. 울퉁불퉁 바위도 많았고요. 넘어지지 않으려 바닥을 보고 걸었습니다. 위로는 위압적인 데크가 있고 그림자 때문에 약간 어두웠습니다. 아무렇게나 잘린 나무둥치와 군데군데 버려진 쓰레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 후회했습니다. 길은 점점 더 불편해지고 곧 끊길 것만 같았어요. 그러면 다시 돌아 가야하는데 이미 꽤 멀리 걸어왔으니까요.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 때, 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나그네의 겉옷을 벗길 만큼 기분 좋은 햇살이 쏟아졌습니다. 나뭇가지에선 연둣빛이 보일락말락 고개를 내밀락말락 숨바꼭질했고요. 저는 할머니에게 심부름 간 것도 잊고, 꽃밭에 정신이 팔린 빨간모자마냥 흥분했습니다(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니 다행히 늑대는 없었습니다). 신비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산청군을 대표하는 9경도 아니고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경치도 아닙니다. 재야의 도인만이 아는 비경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늑하고 안온했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꽤 오랫동안 기분이 좋았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이하 센터)는 그동안 지리산권에 살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했습니다. 저도 그 중 한명이고요. 이렇게 기록하면서도 여전히 ‘활동’, ‘지원’, ‘프로젝트’ 등의 단어가 실감되지 않고 맴돌긴 하지만요. 올해는 ‘공동의제’와 ‘개인의제’로 나누어 지원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죠. 제가 이해한 센터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각 모임에 지원을 하되, 그 모임들이 공동으로 참여할만한 의제를 활동가들이 스스로 만들어보라!(한번 읽어서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으니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3월 9일 산청지역에서 활동하는 소모임 대표들이 명왕성에 모였습니다. 센터가 주최한 설명회였죠. 주최 측은 각자 관심이 있는 혹은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를 생각해보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설명을 듣고도 잘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눈만 꿈뻑인 사람이 저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나만 모르는 것만 아니면 된다는 이상한 안도감으로 집에 돌아와 책1)을 펼쳤을 때, “비공식적이며 열린 결말의 협력은 차이를 경험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리처드 세넷’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가 한 이 말은,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쉽지 않은 문장입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 천천히 이 문장을 꼼꼼하게 노려봅시다. 서로 다른 기술 또는 흥미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접촉은 무질서할 때 풍성해지고 규제될 때 빈약해지는데 이것을 ‘비공식’이라 설명합니다. ‘열린 결말’은 어느 일방에 의해 미리 정해지지 않고 소통의 맥락을 따라야 함을 의미합니다. 한쪽을 희생해 한쪽만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쌍방 모두가 교환을 통해 이득을 얻는다고 가정하는 것을 ‘협력’이라 부릅니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당신에 대해 미리 판단하지 않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경청하겠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용하겠다.’로 이해했습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요. 너무 오래 봐 와서 이미 다 안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냥 저 사람이 싫을 수도 있어요. 공동의제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선 며칠 후에 있을 토론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려 합니다. ‘비공식적’, ‘열린 결말’, ‘협력’은 여전히 쉽지 않은 단어지만, ‘차이를 경험’하는 것은 즉흥적인 산책길에서 만난 놀라움과 반가움 사이 그 어디쯤일 것 같거든요. 그러니 우리, 산뜻하게 만납시다. 같이 걸어봅시다.

 
 
 
 1)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 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현암사, 2016.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