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산청+그림+일기] 둘. 어떤 문장

2023-04-25

 

 

어떤 문장

〔산청+그림+일기〕둘

 

글과 그림 / 효림

 

 

 

산청그림‘일기’라고는 하지만 제가 매일같이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글쓰기로 밥벌이하지도 않고요. 때문에 달마다 찾아오는 기록에 앞서 준비과정이 필요합니다. 책장 앞에서 그날 팍 꽂히는 책을 하나 집어 드는 것이지요. 문장이 자연스럽게 몸 안에 흐르길 바라면서요. 앞으로 쓰게 될 글을 염두하고 책을 고르진 않아요. 오히려 다른 영역의 것에 눈독을 들이는 편이지요. 무관한 것들이 사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때 얼마나 기쁘던가요. 아니, 세상에 어디 무관한 것이 있던가요.

 

 

가끔은 오랫동안 책장 앞에서 서성이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이미 명성이 자자한 고전은 한번 빠지면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일상에 균열을 일으켜 글쓰기고 뭐고 부질없어 보일 수 있으니까요. 창의적인 구조와 근사한 문장에 쉬이 좌절하게 되는 책도 피해야 합니다. 그런 책은 여우가 신포도를 대하듯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그럴 때마다 꺼내드는 책이 있습니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와 《사소한 부탁》입니다. 명성은 이미 자자하고, 구조와 문장을 넘어서는 ‘무언가’는 감히 뭐라 표현하기도 어렵지만, 탁월하게 ‘잘’ 쓰는 것 앞에 놓여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책 몇몇 문장에 밑줄을 그을 때마다 이것을 언젠가는 꼭 인용해야지, 욕심을 부린 날이 있습니다. 얄팍한 경험으로는 차마 빚어낼 수 없는 깊이가 길가 아무데에나 놓인 돌멩이마냥 턱턱 눈에 채일 때, 차마 흉내 내지 못하면 그대로 가져다 쓰기라도 해보자는 수작이었습니다. 빼어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다고 자랑하고픈 심산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고요. 더 나아가 ‘문장’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눈앞에 펼쳐진 현실과 하나가 될 때의 환희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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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기록에서 며칠 후 ‘토론회’가 열릴 것이라 예고했지요. 이번 기록은 바로 그 토론회입니다. <2023년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산청 배분사업 워크숍>이 3월 27일 명왕성에서 열렸습니다. 공간산아의 두 주인 산딸과 반송, 이층미술관의 송연, 면생리대 만드는 달맞이 미정, 함께평화의 햇살과 푸른, 민들레의 현하, 어린이도서연구회 해영, 명왕성의 한범, 농민회의 종혁, 목화장터의 재영, 기록활동가 효림과 진행자 은진, 센터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각자 소개와 개별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워크숍의 물꼬를 텄지요.

 

 

그다음으로는 각자가 생각해온 ‘키워드’를 적었습니다.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키워드를요. 거칠게 추려보면 지역 자원 재발견, 자립과 먹거리, 어린이·청소년 친화, 지역 장터의 활성화, 활동과 사람의 연결, 등 입니다. 여기서 투표를 통해 ‘지역 장터의 활성화’가 최종 함께활동으로 정해졌습니다. 개별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장터를 중심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고민하자는 결론이었지요. 그러나 지역 자원을 재발견하고, 먹거리에 대해 고민하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존중하고, 활동가들을 연결하는 것은 뒤로 하자는 게 아닙니다. 기존 장터(목화장터와 말랑장)를 중심으로 나머지를 자연스럽게 끼워 넣거나 충분히 재배치할 수 있어 보였거든요. 

 

 

각자가 꿈꾸는 산청의 모습을 너도나도 앞다퉈 얘기하는 현장은 생각보다 더 화기애애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셀러가 되는 장터, 어린이·청소년 공연팀 지원, 어린이책 함께 읽기 부스, 찾아가는 장터, 팝업 놀이터, 한여름밤의 문화시장, 야외 영화 상영, 사생대회, 기술전수 부스, 장터 분과 만들기 등등 1년 안에 다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요. 각자의 꿈이 서로의 꿈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너의 꿈이 내 것이 되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디어는 물결처럼 퍼졌습니다.

 

 

산청이 어린이 중심의 마을이 되어 매년 어린이날마다 읍내 도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전 세계 어린이들이 산청을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건 너무 먼 얘기라며 웃음으로 무마되긴 했지만요. 그때, 황현산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상주의자의 말이 현실을 버티게 하는 힘이며, 그들이 곧 미래의 현실주의자다’ 같은 글이었습니다. 밑줄 친 문장이 눈앞의 현실과 하나가 되는 풍경에 이번 기록은 쉽게 쓰겠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른 건 말할 것도 없었지요.

 

 

위 문장이 책 몇 페이지 어디쯤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50페이지 내외였고, 왼쪽 아래 문단에서 시작해 오른쪽 페이지 위로 이어지는 문장이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도 기억납니다. 새해를 넘긴지 얼마 안 된 추운 날이었고, ‘너무 꿈만 꾼다’고 평생 핀잔만 듣던 지난날  내 생각이 옳은 것 같은데 제대로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끙끙 앓던 마음에 확신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그 문장을 곱씹고 또 곱씹었었지요.

 

 

며칠 후, 가벼운 마음으로 《밤이 선생이다》와 《사소한 부탁》을 펼쳤습니다. 밑줄 친 부분부터 찾았지요. 두 책 모두 50페이지 안팎으로 위 뉘앙스를 가진 문장은 없었습니다. 문득 ‘체 게바라’가 생각났습니다. 위 글에 체 게바라가 인용되었는지, 글을 읽고 제가 체 게바라를 떠올렸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민주주의’, ‘전쟁’, ‘승리’, ‘역사’, ‘시대’ 등이 들어간 소제목을 골라 읽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일주일동안 두 책을 꼼꼼하게 정독한 결과 위 문장 같은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에 와 닿지 않던 글이 새롭게 읽히면서 밑줄만 늘어났지요. 도대체 그 문장은 어디로 간 걸까요? 하지만 저는 쉽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여기, 새로운 문장을 들고 왔거든요.

 

 

 

우리는 늘 실패한다. 우리가 배웠던 것, 세상의 큰 목소리들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들과 우리의 사소한 경험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엇나갈 때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들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저 큰 목소리들 앞에서는 항상 ‘당신의 사정’이다. (ⵈ중략) 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있는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_ 책 《밤이 선생이다》 중에서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