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지리산활동가대회와 n개의 시선 / 산청+그림+일기] 셋. 유기농 같은 사람들

2023-05-15

 

 

유기농 같은 사람들

〔산청+그림+일기〕 셋

 

글과 그림 / 효림

 

 

 

보슬보슬 가느다란 봄비가 내리는 아침이었습니다. 전날 방문한 4명의 손님이 하나둘씩 깨고 곧 있을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내 분주해졌습니다. 손님이 방문한 목적도 사실 이 결혼식이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고양이와 더 얌전한 부부가 사는 집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지요. 작은아씨들마냥 요리조리 꾸미고 새새거리며 웃고 떠드는 모양새가 고양이도 싫진 않았나 봅니다. 4명의 아씨들 사이를 맴돌다 금세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진주에서 열린 결혼식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을 축하하러 전국 각지에서 온 아이들이었지요.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딛었다며 명함을 주는 친구도,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 온 친구도, 강원도에서 내려와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졸업생 및 재학생들만을 따로 모아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좋은날을 축하했지요. 다 같이 기꺼운 마음으로요.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자 우리는 바로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빗방울은 더 굵어졌습니다. 그러나 차 안의 공기는 산뜻했습니다. 어쩌면 홀가분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죠. 제 옆에서 운전대를 잡고 빗속을 달리는 사람이 방금 결혼식 사회를 보았거든요. 덩달아 저도 조금 긴장했었나 봅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들썩’에 도착하자 때마침 쭈이가 우산을 들고 나왔습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초록들이 더욱 짙은 자태를 뽐내는 가운데 들썩 앞마당에서는 몇몇의 무리들이 둥실둥실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같이 몸을 움직여서인지 이미 친해진 듯 했습니다. 산청의 아기, 그 이름도 찬란한 ‘서로’는 엄마도 아빠도 아닌 동네 이모의 품에 안겨 저와 제 짝꿍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짝꿍과 제 품에까지 자리를 잡았지요. 사람들은 점심 식사 후 곳곳에서 짧은 소모임을 가지고 있었고요.

 

 

 


 

 

 

‘2023 지리산 활동가대회’가 지난 4월 29일 남원 산내마을 ‘들썩’에서 열렸습니다. 100명의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행사인 만큼 센터도 긴장감과 부담감이 없진 않았겠지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세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그 노력에 보답하듯 분위기는 온화하고 화목했습니다.

 

 

다른 지역의 배분사업과 선정된 과정이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그건 오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지역에서 고민하는 키워드를 미리 투표하고, 공통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지요. 기후위기, 지역개발, 문화, 청년, 어린이·청소년, 활동가의 재충전, 공간 등의 키워드 중 저는 ‘청년’을 골랐었습니다. 그러나 막판에 마음을 바꿔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미 공간을 운영하고 있거나, 막 공간을 만들었거나, 공간 만들기를 시도했다 그만두었다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직 공간은 없지만 공간을 꿈꾸는 사람도 있었지요. 공간은 다양했습니다. 예전엔 카페였지만 올해부터 공유공간으로 틀을 바꾼 곳, 다섯 명이 막 개업한 책방, 식물 공방, 식물 공방 옆 카페 등등. 생각의 모양도 다양했습니다. 현재 운영하는 이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습니다. 공유공간 운영자는 이용객이 어떻게 하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을지 방식에 대해 고민했고요. 게스트하우스와 명상공간을 운영해보았다는 이는 자신의 실패담을 가감 없이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깊은 고민 없이 ‘막연히’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한 저에게 누군가 말했습니다. ‘공간’이 생기면 현재 풀리지 않는 것들이 일시에 해결될 것 같지만 중요한 건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오히려 공간이 생기면 그에 따르는 고민이 훨씬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끼리 얘기할 것이 아니라 지금 모여 있는 이곳, 들썩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먼저 들어 봐야하지 않겠냐고. 지리산권의 다양한 공간을 투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해보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생각의 서랍을 막 뒤적이기 시작할 때쯤 토론은 끝났습니다. 열 명이 넘는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심도 있게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짧은 시간이었지요. 항상 생각에 불이 늦게 붙는 저는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이 다 같이 모여 소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흥분된 마음이 가시지 않은 채 여러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축하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멀리서 찾아온 졸업생들, 당장의 앞가림을 넘어서 지구와 이웃을 위해 고민하는 이들, 그런 이들을 어떻게든 지원하겠다고 단체를 만들고 건물을 지어 축제를 여는 사람들. 이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더없이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만나면 갓 딴 오이를 씹을 때처럼 아삭, 소리가 들리지요. 어느새 제 주변엔 이런 유기농 같은 사람들이 그득그득해졌습니다.

 

 

동시에 이것이 제 삶에서 지속가능한지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먹거리와 입을 거리를 넘어서 사람도 진리도 신도 고르는 시대에 ‘원칙도 없이 허욕과 허영에 기대어 아슬아슬한 연극을 하며’1) 살고 싶어집니다.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여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매일 느끼는 곳에서는 때로 무력함이 경건함을 뛰어넘습니다. 우월함과 이기심을 한껏 느끼고 도시의 허영의 그림자 뒤에 숨고 싶은 것이지요. 지역에서 갈팡질팡하는 이가 저 뿐일까요?

 

 

입체주의 화가 피카소를 흠모하던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 화가입니다. 피카소뿐 아니라 여러 선배들의 다양한 작품을 연구하며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한 그림을 여럿 남겼지요. 위에는 호크니의 그림을 참고하여 들썩을 다시 제 스타일로 그렸습니다. 그를 흠모하는 마음으로요. 서울에서는 현재 데이비드 호크니와 영국 팝아트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현대첨단기술의 정점에 있다는 건축물2) 전시관에서 20세기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한 팝아트가 전시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 글을 끝마치면 갈팡질팡한 마음을 다잡으러 짧은 도시여행을 다녀와야겠습니다. 또 모르지요, 이번 여행이 다음 기록에 어떤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을지요.

 

 

 

1) 《밤이 선생이다》 중 〈시대의 비천함〉 구절. 황현산, 난다, 2013.

2)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일명 DDP.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흔히 생각하는 ‘사각’ 형태에서 벗어나 벽들과 바닥, 천정이 뒤섞이며 유기적인 구조를 이룬다.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