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산청+그림+일기] 넷. 아름답고 말랑한 것을 찾아서 - 덕산 '말랑장'

2023-05-30

 

 

아름답고 말랑한 것을 찾아서

〔산청+그림+일기〕넷

 

글과 그림 / 효림

 

 

 

“내 눈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것은 지우도록 되어있다.”
_라울 뒤피

 

 

한때 아름다운 것에 숨 막혔던 적이 있습니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은 한통속인데, 부조리한 현실에 추하게 절규하거나 징그러운 민낯을 드러내면 이내 청소하듯 해치워버리는 도시의 삶에서 특히 그랬죠. 누군가의 고통이 아무렇지 않게 쓱 지워지는 건 언젠가 나도 ‘제거’당할 수도 있다는 말일 테니까요.

 

 

시골에 내려와 가장 먼저 제 눈을 사로잡은 건 (도시의 기준으로) 도처에 널려있는 ‘추한’ 것들이었습니다. 야생에 가까울수록 더욱 뚜렷했죠. 한여름 온 산을 뒤덮은 칡넝쿨은 초록 괴물들이 우-우-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듯 했고, 한데 엉켜있는 나무들은 귀신이 산발한 것 같았습니다. 벌레들은 죽음을 앞둔 생명체를 어찌 알고 꼬이는지, 달빛도 불빛도 없는 거대한 밤은 저 하나쯤은 꿀꺽 삼켜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습니다. 그럴 듯 해야만 겨우 주목하는 도시의 삶을 자연은 비웃고 있는 듯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 기쁨과 즐거움, 가벼움과 산뜻함(제가 자주 쓰는 말이죠, 아끼는 단어입니다)이 ‘노력’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 부러 마음을 쓰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는 사람들, 각자의 위치에서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름답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삶의 의지이자 생명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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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 커다란 산이 성큼 다가오고 사람보다 자연의 기운이 거세지는 길목에 마을이 있습니다. 산과 산 사이에는 강이 흐르고 그 주변에 야트막한 건물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죠. 어쩌면 도시 사람들이 꿈에 그리던 ‘지리산 마을’이 이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덕산’입니다. 

 

 

1년 중 가장 찬란한 날, 이곳에서 어여쁜 장이 열립니다. 바로 ‘말랑장’이죠.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목화장터가 수더분하고 우직한 산골 ‘청년’이라면, 말랑장은 화창한 날 한껏 멋 부리고 나온 ‘새색시’의 느낌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해서 발길이 머물게 되지요. 2018년부터 비정기적이지만 꾸준히 열렸다는 말랑장이 지난 5월 20일, 덕산고등학교 옆 바이네임에서 열렸습니다. 말로만 듣던 장에 저도 처음 가보았지요.

 

 

입구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원피스를 보고 있자면 왜 ‘말랑’장인지 바로 알게 됩니다. 새색시에게 뺏긴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드라운 에그타르트 냄새가 솔솔 풍깁니다. 그 옆 화덕에서는 장작이 지글지글 타고 있고요. 곧 탐스러운 피자 냄새까지 더해 풍성함을 더하겠죠. 

 

 

2층에 전시된 지역민과 어린이·청소년들의 그림에 한층 눈이 즐거워지고, 달고 맛있는 음식에 입이 즐거워지면 처음 본 사이라도 어느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갓 딴 죽순의 껍질을 벗겨내는 것도, 정원에 핀 꽃과 산들거리는 허브 향에 감탄하는 것도, 말을 좋아하는 아이의 말 그림을 구경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럽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때문인지 종알대는 아이들 덕분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장의 분위기는 흥겨움을 더합니다.

 

 

흥겨움에 음악이 빠질 리 없죠. 진주에서 온 듀오의 통기타 연주와 삼형제의 현악 3중주에 귀까지 즐거워지면 분위기는 최고조에 다다릅니다. 기록과 더불어 사진사 역할을 맡은 저는 장날을 찍는다는 구실로 카메라 너머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을 실컷 구경했습니다. 뉘엿뉘엿 그림자가 길어지고 오후의 공기도 부드러워지면 오늘의 장터가 파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뿌듯하고 벅찬 마음에 쉽게 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제가 장터를 주최한 것도, 판매자로 참여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삶은 나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 지었다.”
_라울 뒤피

 

 

 

지난 기록을 끝내고 저는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도시의 익명성과 자유로움이 그리웠습니다. 코로나 이후 우후죽순 열리는 좋은 전시를 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요. 데이비드 호크니와 영국 팝아트 전은 기대한 것만큼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라울 뒤피의 전시에서 실망한 마음이 온전히 채워졌습니다. 

 

 

프랑스 파리를 총천연색과 우아한 드로잉으로 표현한 라울 뒤피의 그림은 다분히 장식적입니다. 그의 그림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위 말처럼 ‘추한’ 것이라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아름다운 것만 표현한 그를 저는 애써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삶이 미소 짓지 않아도 삶에 미소 지은 그의 ‘노력’이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색을 쓰지 않으면서도 한데 섞은 색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고심했을까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특유의 드로잉을 이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연습했을까요.

 

 

마찬가지로 장터에서도 누군가의 환한 웃음 뒤에 다른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있었습니다. 주최하고 진행한 사람들은 이틀 전 세차게 내린 비를 보고 마음을 졸였겠지요. 판매자로 온 사람들은 초여름 날씨에 땀을 흘리며 바삐 움직였습니다. 구매자와 판매자 할 것 없이 장터에 온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을 돌보았고, 무사히 장터가 끝난 후에는 남은 음식을 다 같이 나눠 먹었습니다. 산청의 첫 번째 ‘함께 활동’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큰 파도가 덮치지 않아도,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별로 없으며, 원하는 것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갈 때 져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렌즈로 들여다보듯 한발 떨어지니, 달리 보입니다. 그동안 제가 지쳐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말랑한 마음으로 다시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처럼, 장터를 즐기는 미소처럼 말이지요.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8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