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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변화기록원[하동][하동 언니들의 자초지종] 아이들과 있을 때 많이 웃고 행복한 민주 이야기 - 샛길로 빠져서 오히려 좋은 날들, 민주

2022-12-02

 

 

아이들과 있을 때 많이 웃고 행복한 민주 이야기

샛길로 빠져서 오히려 좋은 날들, 민주

 

글 / 팀 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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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서 민주가 활짝 웃고 있다.

 

 

“민주라고 합니다. 올해 2월 하동으로 왔어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주로 했고요. 지금도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고 그때 가장 많이 웃고 행복합니다.” 

 

 

민주는 자신이 언제 행복할 수 있는지 정확하고 씩씩하게 말했다. “행복”이란 말이 요즘에는 다소 진부하고 식상한 말이 돼 버렸지만, 언제 한 번이라도 내가 누구인지, 언제 행복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질문해 본 적이 있었던가.

 

 

 

샛길로 들어섰기에 만날 수 있었던 것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민주는 스파르타식으로 운영되는 기숙학교에 다녔다. 하루 4시간만 자며 죽어라 공부해 서울에 있는 목표 했던 대학에 갔다. 

 

 

“원하는 대학에 갔으니 처음엔 정말 좋았죠.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이었어요. 그곳에선 내가 진짜 궁금해 하는,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없었어요. 많이 방황했죠. 국제 자원 활동 같은 대외 활동, 아르바이트 등 을 하며 밖으로 돌았죠. 그러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너무 멋진 거예요. 사회학을 전공한 언니였는데 사회학이 세상을 좀 다른 방식으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공부더라고요. 원래 전공은 소비자학인데 사회학을 복수전공했죠.” 

 

 

졸업 후 친구들은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힘든 과정을 거쳐 대부분 원하는 곳에 취직했다. 예상이 가능한 넓은 길이었다. 민주는 또 샛길로 들어섰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홍대 근처에 있는 작은 요가원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보게 됐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요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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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민주와 친구가 함께 고친 집은 해가 잘 든다.

 

 

“도대체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 거예요. 주위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하는데 저는 그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죠. 그때 많이 우울했어요. 우연히 찾은 요가원을 정말 열심히 다녔죠. 그러다 요가 선생님의 소개로 송석교육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인문학을 공부했어요. 요가를 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진짜 내 삶을 살고 싶었죠. 그 삶이 나한테도 이롭고 또 남도 이롭게 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때 문득 배운 것을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 교육 쪽으로 자연스럽게 일하게 되었어요. 송석교육문화재단에서 3년 동안 청소년프로그램을 담당했어요.” 

 

 

민주는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쩌다 요가를 만나 원하는 공부도 했고 취업도 하고 자신이 뭘 하면 행복한 사람인지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마음의 움직임을 세심히 관찰하고 질문을 놓지 않으면서 조금은 다른 길로 들어섰더니 좁지만 단단한 길을 만났다고 했다. 

 

 

 

 

낯설고 틈이 있는 곳으로 

 

 

민주는 대구에서 나서 20년을 살았고 서울에서 10년을 살다가 올해 2월 하동으로 왔다. 두 개의 큰 도시를 거쳐 시골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한 민주의 마음이 궁금했다.

 

 

“서울에 있으면서 집단적인 빽빽함이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도 많고 상점도 많고 물건도 너무 많고요. 모 든 것이 너무 빼곡하고 틈이 없는 거예요. 특히 지하철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일렬로 서서 걸어가고 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이 다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제가 예민한 편이라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견딜 수 없이 우울했어요. 빽빽한 곳을 벗어나 틈이 있는 곳으로 가자, 그곳에서 틈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서울을 떠났어요.” 

 

 

하동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청년 커뮤니티도 거의 없다. 이것이 민주가 하동을 선택한 이유이다. 익숙했던 삶의 터전을 떠나보는 경험을 온전히 하고 싶었다. 

 

 

“산청에 친한 친구가 있기도 했지만 그곳에 가지 않았죠. 이건 제 개인적인 성격이기도 한데요. 너무 친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많이 의존하게 될 것 같아서예요. 그 사람을 통해서 연결되는 그 커뮤니티 속에서만 안주하게 될 것 같았죠. 그러다 보면 비슷한 색깔의 사람들만 주로 만나게 되고 지역에서 나고 자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진짜 삶이 궁금하지도 않게 되겠죠.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틈이 있는 하동에 와서 좋았지만, 도시에서 끊임없이 했던 고민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생태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시골에서는 더 완성된 형태가 될 줄 알았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쓰레기 분리배출조차 쉽지 않은 환경관리 시스템, 대중교통 이용의 한계, 규모의 경제가 농사에서도 적용되는 방식을 보면서 도시 사람으로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혹은 욕망 했던 시골살이에 대한 프레임이 깨졌다. 

 

 

“저 같은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시골에 가면 자연스럽게 생태적인 삶을 살게 될 거야' 라고 기대를 하는 거죠. 또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시골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그 지역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이 도시보다는 조금 더 희망적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각자가 가진 경험과 기술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먹거리를 생각해 보면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그만 텃밭을 가지고 있어요. 작물을 직접 키우고 남는 것은 또 이웃과 나눠 먹잖아요. 도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죠.” 

 

 

 

 

민주는 아이들과 함께 

 

 

하동에 오자마자 민주는 청소년방과후 아카데미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은 생각보다 벅찼다. 시골의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과 비슷한 듯 했지만, 또 아주 달랐다.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도시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조금씩 조금씩 깨부숴버렸다. 

 

 

“도시든 시골이든, 요즘 아이들은 많이 외로운 것 같아요. 사랑이 다소 부족해 보이죠.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특히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더 그랬어요. 그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곤 하는데 처음엔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죠.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이 친구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차분히 앉아서 무엇을 배우는 것보다는 선생님이랑 막 재밌게 노는 시간이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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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청소년방과후 아카데미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는 민주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 민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큰 눈이 더 빛난다. 아이들이 같은 또래를 만나기 힘든 시골의 틈이 이때는 많이 아쉽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서울은 크고 아이들도 많지만, 홍대든 강남이든 생활방식이 다 비슷비슷하죠. 아이들의 삶도 그렇고요. 반면 지역은, 하동만 해도 큰 도시와는 달리 면마다 특색들이 있잖아요. 진교의 아이들과 악양의 아이들은 좀 다를 것 같아요. 각각의 이야기를 품은 아이들이 아주 가끔이라도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민주는 인터뷰 직후 기관에서의 일을 그만뒀다. 그만의 방식으로 공부방을 시작해 보고자 궁리 중인데 아이들의 호기심 버튼을 살짝 눌러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손발을 적극적으로 움직여 무엇을 만들어 내고, 읽고 쓰는 기술을 배우는 시간도 꼭 넣고 연극 같은 것도 아이들과 함께해보면 좋을 것 같다. 민주가 웃는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이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가 보다.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꼭 갖고 싶어요. 먹는 것은 아이들이 다 좋아하잖아요. 요리를 통해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거죠. 그 안에 사실 수학이나 과학, 예술이 다 들어있거든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연극 같은 것도 좋겠죠?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내가 가끔 싫어질 때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놀다 보면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요.” 

 

 

 

요가는 어른들과 함께 

 

 

하동에서 내려와 집을 구할 때 딱히 다른 대안이 없어 얼떨결에 다소 큰 집을 구했다. 오래 비어있었던 터 라 손 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찬 바람이 여전한 이른 봄에 시작한 집수리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따뜻한 기운이 도는, 반짝반짝하는 빛나는 집이 되었다. 그 집에는 볕이 잘 들고 네모 반듯한 큰 방이 있는데 작고 아담한 요가원을 차리기에 맞춤인 듯 싶었다. 그 방에서 3명 혹은 4명이 매일 모여 요가를 한다. 그렇게 민주는 요가 선생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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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민주의 요가원 이름은 햇살요가원이다.

 

 

“요가원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전에 요가를 지도해 본 적도 없었고요. 한 두 분만 오셔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월요일과 화요일만 회원 모집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주말 빼고 매일 밤 이분들과 함께 요가를 하고 있어요. 경전에 기반한 요가를 지도하고 있어 아사나(동작)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이 오세요. 대부분 자영업을 하고 계시고요. 육체노동으로 또는 감정노동으로 힘들었을 하루를 요가로 고요히 마무리하고자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십니다. 모두 정말 존경해요.” 

 

 

괜찮은 아이디어다 싶어 아이들을 위한 요가를 시작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에이, 아이들은 그냥 신나게 놀아야죠.” 민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민주가 하동에 머문 지 8개월이 조금 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집을 구해 고쳤고 직장에도 좀 다녔고 생각지도 못했던 요가원을 시작했다. 앞으로도 하동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민주다. 샛길로 빠진 민주가 신나 보인다. 지켜보는 사람도 더불어 즐겁다. 

 
 

 

 

 

글쓴 사람. 팀 옥동

간소하고 간결한 삶을 지향하는 하동의 옥이. 호기심을 잃지 않고 늙고 싶은 하동의 동이. 

두 사람이 천천히 걷고 때론 달리며 자주 멈춰서서 발견하는 하동의 작고 깊은 이야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