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당신의 **’은 무엇입니까? 연말엔 내 맘대로 ② 내가 기억하는 2022년의 순간들 글 / 자야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그해에 의미 있던 일이나 기억하는 순간을 열 가지 남짓 골라 손글씨로 적어본다. 어둠 대신 빛이 조금씩 길어질 날들을 맞이하기 전에 한해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인 셈. 시간을 들여 목록을 작성한 다음 미리 쑤어놓은 뜨거운 팥죽 한 그릇을 떠먹으면서 다시 한 문장씩 천천히 곱씹다 보면, 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든, 그로 인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든 다 괜찮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예감과 함께 마음이 든든해진다.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장들로만 이루어진 책을 펴낸 작가 조르주 페렉은 “기억이란 함께 나누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사적인 기억조차도 그것이 누군가와 ‘공유’될 때 더는 사적이지만은 않을 것임을 나 역시 믿기에, 지난 일 년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 가운데 아직도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장면과 그 순간의 마음을 ‘올해의 **’으로 정리해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묻고 싶고 듣고 싶다. 2022년 ‘당신의 기억에 남은 **’ 들은 무엇인지를. 심장에 귀를 기울인 순간 (올해의 소리) 올 초에 며칠 간격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덜컥 겁이 나서 난생처음 심장 초음파 검사라는 걸 받기로 하고 병원에 갔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상의를 벗고 누워 있길 몇 분. 마침내 의사가 들어와 검사를 시작하자 어떤 소리가 귀를 울렸다. 나의 가장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질서정연한 율동 속에서 낮고 부드럽게 쿨렁대는 소리. 물속에서 뭔가 자맥질하는 것 같기도,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낯선 신호 같기도 한 그 소리만 이 세상에 남고 나머지는 전부 음소거가 되어버린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 엄마 배 속의 태아로 돌아갔다. 그 상태가 묘하게 편안하고 신비로워 검사 결과야 어떻든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불안해지는 모든 순간에 나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소리를 재생하려 한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으면 그때처럼 모로 누워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파동을 느껴본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심장은 “보채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으면서 다만 무심하고도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할 뿐.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즈음, 불안은 옅어져 있다. 다시 일어나 움직일 기운이 생긴다. 이토록 싱그러운 여름의 맛 (올해의 작물) 
함양토종씨앗모임에서 얻어다 심은 사과참외 열매. 시골에 산 지 14년째. 고백하자면 이제는 예전만큼 상추 싹 하나, 가지꽃 한 송이에 눈이 휘둥그레지지는 않는다. 고추 한 줌만 수확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해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텃밭 일이 일상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노동’이 되어서일까. 귀촌 초기 텃밭이 주던 설렘과 들뜸은 가라앉은 대신 차분한 기쁨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긴혹 새롭고 낯선 작물을 키울 때면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올봄에 <함양토종씨앗모임>을 통해 얻은 ‘사과참외’ 모종 세 포기를 심고 나서도 그랬다. 모종이 자라 덩굴손을 뻗고 노란 꽃을 피우다 마침내 열매를 맺고 자라나는 전 과정이 마냥 경이로웠다는 얘기. 특히 7월 초 어느 날 풀 무더기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민 초록 열매 두어 개를 발견한 순간엔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사과참외 열매는 초기엔 작은 조롱박 같은 모양이다가 점점 둥그스름해지면서 어른 주먹만큼 커진다. 연둣빛 표면에 살짝 노란 기가 돌면서 무게감이 느껴질 즈음 따서 먹는데, 껍질째 씹는 식감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과육으로 말하면 사과의 향긋함과 오이의 시원함, 참외의 은은한 달콤함을 모두 품은 ‘여름의 맛’이라 해도 좋을 듯. 올해 열 개 남짓 거두었으니 내년엔 그 이상을 기대해보련다. 그 시절 소녀와 나와 할머니 (올해의 뒷모습) 때는 50년대 말. 어느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교내에 있는 연못가로 몰려가고 있다. 주변 풍경은 황량하고 여학생들의 옷차림은 추워 보인다. 그러나 둘씩 짝을 지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뒷모습만은 명랑하고 다정하다. 별거 아닌 얘기를 마치 엄청난 비밀을 주고받듯 속닥이며 쿡쿡 웃어대는 소리가, 마치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서하면 봉전마을에 사시는 한 할머니의 옛 사진. 세상 모든 할머니가 한때는 십 대 소녀였음을 생각하면 왠지 뭉클해진다. 서하면 주민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사진첩에서 이 낡은 흑백사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왜인지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할머니들이 한때는 다 저와 같은 십 대 소녀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서였을까. 그 후 동네나 시장이나 터미널 같은 장소에서 할머니의 뒷모습을 마주하면 그 굽고 휜 등과 허리 위로 그 사진이 겹쳐진다. 그때마다 하염없이 뭉클해지는 건 내가 이제 소녀보다 할머니 쪽에 가깝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 그루 느티나무 앞에서 (올해의 나무) 어느 날 읍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들머리에 자리한 느티나무가 댕강 잘려 반 토막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도 놀래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처음엔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 마을주민들과 사전 논의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 분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리 알고 반대를 했던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하는 무력감과 자책감이 커졌다. 한동안은 나무를 보는 것이 힘들어 일부러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이 다 공범처럼 느껴져 웬만하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 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깊어갈 무렵. 하루는 일을 보러 서하면 반정마을에 갔다가 마을회관 근처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를 보았다. 드넓게 뻗은 가지와 무성한 잎, 그 아래 웅숭깊은 그늘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뎠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나무는 ‘군 보호수’로 지정된 1972년 당시에 이미 수령 520년이었다는 내용이 표지석에 쓰여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경외감이 드는 그 나무 곁에 가만히 서 있자니 우리 동네 잘린 나무가 생각나면서 불현듯 눈물이 났다. 몇 달 전에 받은 충격이 아직 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그때 알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잘린 나무를 외면하기를 그만두었다. 며칠 뒤 아침 산책길에 나무를 찾아가서 살펴보니 몸통에 작고 뾰족한 새 가지와 잎들이 소복하게 돋아나 있었다. 지금 나무는 그마저도 비어내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내려앉은 겨울을 묵묵히 견디는 중이다. 나무에게 이 겨울이 너무 혹독하지 않으면 좋겠다. 머리 위를 봐, 후투티가 있어 (올해의 새) 
동네 산책 중 이웃 마을에서 만난 후투티. 시월 초 어느 날의 일. 동네 산책을 나선 길에 옆 마을까지 가서 한 바퀴 돌고 나오다 후투티를 만났다. 삼사 미터 앞에서 뭔가 휙 지나갈 때부터 머리에 삐죽 솟은 댕기가 눈에 띄더라니, 사뿐히 전깃줄에 걸터앉은 녀석은 정말로 후투티였다. 원래는 여름 철새이나 온난화의 영향으로 텃새처럼 변화한 까닭에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사시사철 발견된다지만, 그렇다고 후투티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나만 해도 몇 년 전 상림에서 본 게 처음이고 이번이 두 번째니 살면서 또 몇 번이나 마주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지금은 하루아침에 어떤 생물 종이 사라진대도 이상하지 않은 수상한 시절인 만큼, 우연히 마주친 흔치 않은 새 한 마리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몇 해 전 여름, 우리 동네 앞 수로에서 물총새를 발견한 이후 그 길을 걸을 때면 고개가 늘 아래쪽 물가로 향한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이제 나는 옆 마을에 접어드는 순간 고개를 살짝 들어 허공을 살피는 게 버릇이 되었다. 당장 내 눈에 띄진 않더라도 언젠가 다시 후투티를 일별할 날을 기대하면서. 아니,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저 이 마을 어디엔가 둥지를 틀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현재가 내가 기억했던 미래라면 (올해의 문장)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29쪽/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 표제작/ 김연수)
위의 단편소설이 올해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좋았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내 공책에는 저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깊은 깨달음을 주는 문장들이 가득 필사되어 있기도 하다. 다만 나는 이 구절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한 줌의 빛을 품고 있음을 느꼈다. 일반적인 시간관념을 거스르는 이 문장 안에 절망과 무기력은 기댈 곳이 없다. 그 대신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순한 비결이 드러나 있다. 기억은 과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이제껏 그러지 못함으로써 이미 상실해버린 미래를 다시 사는 길은 그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34~35쪽)”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얼마 전에는 함양읍에서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북쪽 어느 도시에 도착한 다음, 거기서 십여 년 만에 만난 친구 차를 타고 그가 사는 섬으로 들어갔다. 집 떠나는 날 아침에 급격히 추워진 덕분에 삼 일 내내 차갑고 고요한 ‘진짜’ 겨울 숲길과 바닷가를 거닐 수 있던 건 큰 행운이었다. 섬 옆 또 다른 섬으로 나들이 간 어느 오후. 칼날 같은 바람을 피해 삼면이 바위로 둘러싸이고 머리 위 사십오 도 각도로 햇살이 비추는 아늑한 곳을 찾아들었을 때, 친구는 맛있게 담배를 피워물며 말했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그냥 다 주고만 싶더라.” 가닥가닥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검게 펼쳐진 뻘밭과 그 너머 바다로 향하는 그 순간, 나는 해 아래 젖은 흙과 물보다 더 반짝이는 뭔가를 가슴에 주워 담았다. 그날 내가 경험한 것이야말로 과거에 내가 기억한 미래 그대로임을 이제는 알겠다. 내일과 모레, 그 이후의 ‘평범한’ 날들을 위해 지금 내가 어떤 이야기, 어떤 장면을 기억해야 하는지도. 
평범한 미래를 바라기 힘든 세상이 되었으나 그래서 더더욱 평범한 미래를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한 해를 마감한다. 일 년간 글을 읽어주신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
올해 ‘당신의 **’은 무엇입니까?
연말엔 내 맘대로 ② 내가 기억하는 2022년의 순간들
글 / 자야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그해에 의미 있던 일이나 기억하는 순간을 열 가지 남짓 골라 손글씨로 적어본다. 어둠 대신 빛이 조금씩 길어질 날들을 맞이하기 전에 한해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인 셈. 시간을 들여 목록을 작성한 다음 미리 쑤어놓은 뜨거운 팥죽 한 그릇을 떠먹으면서 다시 한 문장씩 천천히 곱씹다 보면, 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든, 그로 인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든 다 괜찮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예감과 함께 마음이 든든해진다.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장들로만 이루어진 책을 펴낸 작가 조르주 페렉은 “기억이란 함께 나누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사적인 기억조차도 그것이 누군가와 ‘공유’될 때 더는 사적이지만은 않을 것임을 나 역시 믿기에, 지난 일 년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 가운데 아직도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장면과 그 순간의 마음을 ‘올해의 **’으로 정리해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묻고 싶고 듣고 싶다. 2022년 ‘당신의 기억에 남은 **’ 들은 무엇인지를.
심장에 귀를 기울인 순간 (올해의 소리)
올 초에 며칠 간격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덜컥 겁이 나서 난생처음 심장 초음파 검사라는 걸 받기로 하고 병원에 갔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상의를 벗고 누워 있길 몇 분. 마침내 의사가 들어와 검사를 시작하자 어떤 소리가 귀를 울렸다. 나의 가장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질서정연한 율동 속에서 낮고 부드럽게 쿨렁대는 소리. 물속에서 뭔가 자맥질하는 것 같기도,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낯선 신호 같기도 한 그 소리만 이 세상에 남고 나머지는 전부 음소거가 되어버린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 엄마 배 속의 태아로 돌아갔다. 그 상태가 묘하게 편안하고 신비로워 검사 결과야 어떻든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불안해지는 모든 순간에 나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소리를 재생하려 한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으면 그때처럼 모로 누워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파동을 느껴본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심장은 “보채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으면서 다만 무심하고도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할 뿐.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즈음, 불안은 옅어져 있다. 다시 일어나 움직일 기운이 생긴다.
이토록 싱그러운 여름의 맛 (올해의 작물)
함양토종씨앗모임에서 얻어다 심은 사과참외 열매.
시골에 산 지 14년째. 고백하자면 이제는 예전만큼 상추 싹 하나, 가지꽃 한 송이에 눈이 휘둥그레지지는 않는다. 고추 한 줌만 수확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해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텃밭 일이 일상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노동’이 되어서일까. 귀촌 초기 텃밭이 주던 설렘과 들뜸은 가라앉은 대신 차분한 기쁨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긴혹 새롭고 낯선 작물을 키울 때면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올봄에 <함양토종씨앗모임>을 통해 얻은 ‘사과참외’ 모종 세 포기를 심고 나서도 그랬다. 모종이 자라 덩굴손을 뻗고 노란 꽃을 피우다 마침내 열매를 맺고 자라나는 전 과정이 마냥 경이로웠다는 얘기. 특히 7월 초 어느 날 풀 무더기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민 초록 열매 두어 개를 발견한 순간엔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사과참외 열매는 초기엔 작은 조롱박 같은 모양이다가 점점 둥그스름해지면서 어른 주먹만큼 커진다. 연둣빛 표면에 살짝 노란 기가 돌면서 무게감이 느껴질 즈음 따서 먹는데, 껍질째 씹는 식감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과육으로 말하면 사과의 향긋함과 오이의 시원함, 참외의 은은한 달콤함을 모두 품은 ‘여름의 맛’이라 해도 좋을 듯. 올해 열 개 남짓 거두었으니 내년엔 그 이상을 기대해보련다.
그 시절 소녀와 나와 할머니 (올해의 뒷모습)
때는 50년대 말. 어느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교내에 있는 연못가로 몰려가고 있다. 주변 풍경은 황량하고 여학생들의 옷차림은 추워 보인다. 그러나 둘씩 짝을 지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뒷모습만은 명랑하고 다정하다. 별거 아닌 얘기를 마치 엄청난 비밀을 주고받듯 속닥이며 쿡쿡 웃어대는 소리가, 마치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서하면 봉전마을에 사시는 한 할머니의 옛 사진. 세상 모든 할머니가 한때는 십 대 소녀였음을 생각하면 왠지 뭉클해진다.
서하면 주민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사진첩에서 이 낡은 흑백사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왜인지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할머니들이 한때는 다 저와 같은 십 대 소녀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서였을까. 그 후 동네나 시장이나 터미널 같은 장소에서 할머니의 뒷모습을 마주하면 그 굽고 휜 등과 허리 위로 그 사진이 겹쳐진다. 그때마다 하염없이 뭉클해지는 건 내가 이제 소녀보다 할머니 쪽에 가깝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 그루 느티나무 앞에서 (올해의 나무)
어느 날 읍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들머리에 자리한 느티나무가 댕강 잘려 반 토막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도 놀래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처음엔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 마을주민들과 사전 논의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 분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리 알고 반대를 했던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하는 무력감과 자책감이 커졌다. 한동안은 나무를 보는 것이 힘들어 일부러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이 다 공범처럼 느껴져 웬만하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 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깊어갈 무렵. 하루는 일을 보러 서하면 반정마을에 갔다가 마을회관 근처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를 보았다. 드넓게 뻗은 가지와 무성한 잎, 그 아래 웅숭깊은 그늘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뎠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나무는 ‘군 보호수’로 지정된 1972년 당시에 이미 수령 520년이었다는 내용이 표지석에 쓰여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경외감이 드는 그 나무 곁에 가만히 서 있자니 우리 동네 잘린 나무가 생각나면서 불현듯 눈물이 났다. 몇 달 전에 받은 충격이 아직 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그때 알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잘린 나무를 외면하기를 그만두었다. 며칠 뒤 아침 산책길에 나무를 찾아가서 살펴보니 몸통에 작고 뾰족한 새 가지와 잎들이 소복하게 돋아나 있었다. 지금 나무는 그마저도 비어내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내려앉은 겨울을 묵묵히 견디는 중이다. 나무에게 이 겨울이 너무 혹독하지 않으면 좋겠다.
머리 위를 봐, 후투티가 있어 (올해의 새)
동네 산책 중 이웃 마을에서 만난 후투티.
시월 초 어느 날의 일. 동네 산책을 나선 길에 옆 마을까지 가서 한 바퀴 돌고 나오다 후투티를 만났다. 삼사 미터 앞에서 뭔가 휙 지나갈 때부터 머리에 삐죽 솟은 댕기가 눈에 띄더라니, 사뿐히 전깃줄에 걸터앉은 녀석은 정말로 후투티였다. 원래는 여름 철새이나 온난화의 영향으로 텃새처럼 변화한 까닭에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사시사철 발견된다지만, 그렇다고 후투티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나만 해도 몇 년 전 상림에서 본 게 처음이고 이번이 두 번째니 살면서 또 몇 번이나 마주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지금은 하루아침에 어떤 생물 종이 사라진대도 이상하지 않은 수상한 시절인 만큼, 우연히 마주친 흔치 않은 새 한 마리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몇 해 전 여름, 우리 동네 앞 수로에서 물총새를 발견한 이후 그 길을 걸을 때면 고개가 늘 아래쪽 물가로 향한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이제 나는 옆 마을에 접어드는 순간 고개를 살짝 들어 허공을 살피는 게 버릇이 되었다. 당장 내 눈에 띄진 않더라도 언젠가 다시 후투티를 일별할 날을 기대하면서. 아니,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저 이 마을 어디엔가 둥지를 틀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현재가 내가 기억했던 미래라면 (올해의 문장)
위의 단편소설이 올해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좋았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내 공책에는 저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깊은 깨달음을 주는 문장들이 가득 필사되어 있기도 하다. 다만 나는 이 구절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한 줌의 빛을 품고 있음을 느꼈다. 일반적인 시간관념을 거스르는 이 문장 안에 절망과 무기력은 기댈 곳이 없다. 그 대신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순한 비결이 드러나 있다. 기억은 과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이제껏 그러지 못함으로써 이미 상실해버린 미래를 다시 사는 길은 그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34~35쪽)”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얼마 전에는 함양읍에서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북쪽 어느 도시에 도착한 다음, 거기서 십여 년 만에 만난 친구 차를 타고 그가 사는 섬으로 들어갔다. 집 떠나는 날 아침에 급격히 추워진 덕분에 삼 일 내내 차갑고 고요한 ‘진짜’ 겨울 숲길과 바닷가를 거닐 수 있던 건 큰 행운이었다. 섬 옆 또 다른 섬으로 나들이 간 어느 오후. 칼날 같은 바람을 피해 삼면이 바위로 둘러싸이고 머리 위 사십오 도 각도로 햇살이 비추는 아늑한 곳을 찾아들었을 때, 친구는 맛있게 담배를 피워물며 말했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그냥 다 주고만 싶더라.” 가닥가닥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검게 펼쳐진 뻘밭과 그 너머 바다로 향하는 그 순간, 나는 해 아래 젖은 흙과 물보다 더 반짝이는 뭔가를 가슴에 주워 담았다.
그날 내가 경험한 것이야말로 과거에 내가 기억한 미래 그대로임을 이제는 알겠다. 내일과 모레, 그 이후의 ‘평범한’ 날들을 위해 지금 내가 어떤 이야기, 어떤 장면을 기억해야 하는지도.
평범한 미래를 바라기 힘든 세상이 되었으나 그래서 더더욱 평범한 미래를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한 해를 마감한다. 일 년간 글을 읽어주신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