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함양][들어가며] 살랑대고 꿈틀거리는 것을 찾아서

2023-03-22

 

 

살랑대고 꿈틀거리는 것을 찾아서 

프롤로그 : 다시 기록 활동을 시작하며 

 

글 / 자야

 

 

경칩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춘분입니다. 절기상으로는 입춘이 봄의 시작이지만, 제 몸과 마음은 춘분에 가까워져야 비로소 기지개를 펴고 일어서는 듯해요. 이때쯤이면 한겨울에는 들리지 않던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이 새벽부터 귀를 간질이지요. 창밖의 짙은 어둠은 얼마 못 가 묽어지며 푸른 빛을 띠고요. 앞으로도 한 달 정도는 날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지만, 이제 나무토막 몇 개만 넣으면 구들이 금세 데워지고 서서히 식어가는 게 확연히 느껴집니다. 산수유나 매화보다도 제게는 이런 것들이 봄을 알리는 진짜 신호에 가까워요. 언제 다시 꽃샘추위가 찾아온대도 이미 와버린 봄을 어쩌지는 못할 거라는 믿음이 단단해진다고 할까요.

 

 

 

지금, 기지개 펴고 일어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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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환대하는 상림의 나무들. 아직도 겨울의 시간 속에서 뭉그적거리는 이들에게 이제 어서 깨어나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다.

 

 

 

저는 겨우내 집을 굴 삼아 ‘반半동면’ 상태로 지내는 것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만, 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맙니다. 약하게 뛰던 심장 소리가 커지고 늘어진 다리에 힘이 붙으면서 갑자기 바깥이 궁금해지는 거예요. 나가봐야 뭐 뻔하지, 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굴 너머의 세상과 접촉하고 싶고 조금씩 섞이고 싶어지죠. 그러고 보면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이 계절에 활기를 띠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우주의 섭리까지는 몰라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지역에도 이런저런 소식들이 넘쳐나곤 하지요. 누구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뭘 새로 한다더라는 사사로운 정보부터 어떤 모임에서 무슨 사업을 벌인다는 공식적인 알림까지,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겨울에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야 겨우 안부 인사만 나누던 사람들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고 서로를 초대하기 시작하는 것도 꼭 이 무렵이에요. 저도 얼마 전에 몇 장의 초대장을 받았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마치 봄바람을 타고 둥실 떠오른 것처럼요. 

 

 

초대에 응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함양토종씨앗모임> 행사였어요. 여러 해에 걸쳐 동네 할머니들에게서 받은 씨앗과 회원들이 채종에 성공하여 갈무리해둔 씨앗을 나누는 자리였죠. 낯선 얼굴들이 꽤 많아서 처음엔 조금 데면데면했지만, 함께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다 보니 금세 친밀감이 생기더라고요. 코로나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토종씨앗’을 빛 삼아 여기까지 헤쳐온 <함양토종씨앗모임>의 은근한 저력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날 저도 몇 종류의 씨앗을 품고 왔는데요, 올해는 꼭 채종까지 책임져 몇 배로 돌려줄 생각입니다. 씨앗의 가치는 그럴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니까요.

 

 

 

사진2 (5).png <함양토종씨앗모임>이 마련한 ‘봄맞이 씨앗 나눔’ 자리에 모인 사람들.

 

 

 

저의 다음 발걸음이 향한 곳은 <빈둥>입니다. 빈둥 10주년을 축하하고 달라진 환경에서 빈둥의 쓰임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 공유하는 자리였어요. 오랜만에 이렇게나 많은 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앉으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더군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수런수런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정겹고 다정한 분위기요. 모두가 그에 취해 조금씩 들뜨고 상기된 모습을 무람없이 보여주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행사 제목이 “넘어가는 시간”인 데서 알 수 있듯, 빈둥은 이제 카페에서 공유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중이에요. 물론 전에도 보통 카페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죠. 거기엔 돈을 내고 차를 사 마시는 행위 ‘이상’의 것이 있었으니까요. 한마디로 빈둥은 지역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모여 뭔가를 도모할 수 있는 아지트였다 할까요. 학교와 학원 말고는 갈 데 없는 청소년들이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둥지이기도 했고요. 지금 함양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임 중 다수는 빈둥에서 첫걸음을 내디뎠거나, 혹은 빈둥을 도움닫기 삼아 힘차게 뛰어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빈둥이 ‘넘어온’ 과거뿐 아니라 ‘넘어가는’ 현재와 앞으로 ‘넘어야 할’ 미래까지도 응원할 수밖에요.

 

 

 

 

작은 사랑과 용기에서 큰 일렁임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록 활동을 맡게 된 저는, 이렇듯 지역 곳곳에서 공동의 선을 위해 꿈틀거리고 살랑대는 사람들, 모임들, 움직임들을 담고자 합니다. 서로서로 초대하고 응답하며 섞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를 통해 더 많은 생각을 나누고 행위를 함께하며 의미 있는 뭔가를 일궈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는 글을 남기고 싶달까요.

 

 

지지난 주에는 제가 함양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인 목련을 보러 갔어요. 봄이면 가장 먼저 함양여중 옆 좁은 골목길에 환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바로 그 나무요. 지금쯤 솜털이 보송보송한 꽃망울들로 덮여 있을 거라 기대하고 갔는데, 놀랍게도 나무는 일명 ‘목치기’로 댕강 잘려있더군요. 함양에 가로수로 심어진 이팝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튤립나무가 해마다 똑같은 수모를 당하는 것처럼요. 불과 며칠 사이에 황폐해진 풍경 아래서, 저는 분노와 슬픔으로 씩씩대며 한참을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증거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듬성듬성해진 가지에나마 꽃망울들이 소담하게 맺혔더라고요. 잘려서 뭉툭해진 곳에는 작고 뾰족한 가지들이 솟아나고 있고요. 봄은 높낮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온전하든 상처를 입었든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임한다는 걸 그때 또 한 번 알았습니다. 생명은 쉽게 꺾이지 않으며, 스스로 그 힘을 지켜간다면 겉모습이야 어떠하든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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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여중 교정 안 목련 나무. 쳐다보기 민망할 만큼 무참하게 잘렸어도 나무는 부지런히 새 가지를 뻗어 꽃망울을 맺는 중이다. 

 

 

 

비관과 좌절과는 거리가 먼 그 나무를 보며 저는 생각했어요. 주변 환경이 어떠하든 공동체의 생명력을 지켜가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거기서 작은 변화는 시작될 거라고, 그 마음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사랑과 용기일 거라고요. 부디 올해는 우리 지역의 더 많은 이들이 각자 안에 사랑과 용기를 품을 수 있기를, 그 작은 사랑과 용기 들이 연결되어 더 큰 살랑댐과 꿈틀거림과 일렁임을 창조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제가 신나게 기록할 수 있는 근사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생겨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잘린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송이를 기억하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사방이 온통 연둣빛 바다가 되어 찰랑거리겠지요. 갈아놓은 밭에선 어린아이의 손마디 같은 싹들이 쑥쑥 올라오고요. 또 하늘은 먼 곳으로 날아가거나 이곳으로 돌아오는 새들의 날갯짓으로 더 신비로워질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소쩍새가 깊은 밤 어둠을 가르며 올해 첫소리를 들려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어디선가는 계속해서 흉흉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할 거예요. 지리산권의 산과 들과 물은 안전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 안의 어떤 존재든 마냥 평화로울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봄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내려앉는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 또한 적어도 ‘그만큼’은 더 환하고 맑아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잘린 목련을, 그 나무가 안간힘을 다해 피워내는 꽃송이와 가지를 잊지 않으려고요. 참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그 풍경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함께 힘내서 잘살아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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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간 목련 나무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꽃송이들.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이 나무를 기억하며 올해 기록을 시작해보려 한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