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 산내마을소식지 <고사리> 이창림 편집장 저는 동네에서 산내의 자랑(웃음)이 되고 싶은 ‘고사리’라는 소식지를 만들고 있다. 계절별로 3년째 13번을 냈다. 산내 오기 전에는 도봉구에서 마을 월간신문을 5년 반 정도 만들었다. 사실 저도 기록이 지역의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궁금함이 있다. 오늘은 기록과 지역, 변화 이 키워드 세 가지를 합쳐서 고민하는 시간이다. 기록과 지역은 범주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이고, 그렇다면 변화는 무엇일까. 기록은 현재 또는 과거의 것인데 비해 변화는 현재와 미래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랬을 때 ‘과거와 현재에 방점이 있는 기록과 현재와 미래에 방점이 있는 변화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또 요즘은 아카이빙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기록했을 때 기록물이 추후에 얼마나 쓰일 수 있을지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된다. 또한, 변화의 역동성을 생각해보면 그것보다 속도가 좀 더 느린 기록에서는 어떤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첫 번째 손님. 월간 옥이네 박누리 편집장님] 지역의 눈으로 지역을 기록하는 일 
옥천 <월간옥이네> 박누리 편집장 <월간 옥이네>는 2017년 창간해서 올해로 64호를 발간했고, 자랑이라면 한 번도 쉬지 않고 월간지를 발간해오고 있다. 창간 당시에는 120페이지 정도, 요즘은 15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 사회적기업인 지역문화 활력소 고래실에서 만들고 있는데, 고래실의 의미는 ‘물이 깊어서 기름진 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농촌문화를 기름지게 해서 지역의 삶이 고래실논의 쌀처럼 맛있는 지역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다.
▶ 월간옥이네의 탄생 2010년에 기자를 시작하며 지역 청소년을 많이 만나게 됐는데, 청소년 10명 중 7~8명 정도가 스무 살이 되면 옥천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떠나고 싶은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동네에 엽떡(동대문엽기떡볶이), 스타벅스, CGV가 없어서'였다. 청소년들은 주류 미디어의 영향으로 스타벅스 가서 커피를 마셔야 내가 괜찮은 커피를 마시는 것 같고, 엽떡에서 신메뉴를 먹어야 동네 친구들과 비슷해지는 것 같고, 용산 아이맥스 같은 곳에서 영화를 봐야 영화를 제대로 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보통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할 때, ‘이미 농촌사회도 공동체성이 옅어져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냐, 결국은 지역민들을 묶어두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하시는데, 그 말은 공동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공동체라는 말이 왜곡되고 편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농촌, 공동체라고 할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궁금하다. 저는 옥천에 오기 전에 이 단어를 떠올리면 ‘6시 내고향’처럼 할머니들이 밥을 차려주시거나, 멧돼지가 도로로 내려와서 차량이 정체되는 그런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류 미디어가 보여주는 지역의 모습이 이렇기 때문이다. 지역 뉴스가 중앙 언론의 헤드라인에 나오는 것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정도가 아닌가. 세상을 보는 창이 그 모습인데 어떻게 지역을 왜곡 없이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들었다. 기존의 미디어는 서울의 눈으로 서울의 욕망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게 아니고, 지역의 문제와 이야기를 지역의 눈과 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잘 되면 서울 가야 한다.”였다. 구미에서 소위 '잘 나가는' 애들은 구미에서 놀지 않고 대구 가서 놀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가 이런 욕망을 조장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러니 저 역시 지역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역에 대한 시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애정하게 되는 것인데, 옥천에 와서 지역사회를 보다 보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지역 매체들이 이런 시각을 바로 잡기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옥천신문이 이미 이런 일을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잘하고 있는 반면에 채우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옥천신문은 비판적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누군가를 비판하고 행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계급화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지역 내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의 이야기, 중장년층, 중산층, 남성의 이야기가 많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옥천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도 하고, 지역 정치의 문제를 발굴하고 지적하는 등 변화를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문제의식이 <월간 옥이네>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실제로는 장터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쓰고, 지나가는 어린이를 붙잡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런 기록을 통해 '나'를 긍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월간옥이네의 키워드 월간옥이네에서는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자치, 자급, 생태, 공간, 공동체, 사람, 문화, 역사. 또 농촌 지역이다 보니 농업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한다. 그 외에는 청소년, 동물권, 오래된 나무나 빈집 등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기후위기나 지역 불균형 같은 문제도 꾸준히 관심 가지며 이야기하고 있다. '인구 5만도 안되는 동네에서 담을 이야기가 뭐가 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담을 이야기가 너무 많다. 매번 담고 싶은 이야기 혹은 담아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문제였지, 담을 이야기가 없어서 고민한 적은 없었다. 이런 관점으로 지역사회를 기록한다면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 옥이네의 자부심 : 가려진 존재들의 이야기 1. 할머니 이야기 장날에 만난 할머니 이야기도 듣는다. 인터뷰를 요청드리면 ‘내가 뭘 했다고 내 이야길 듣냐’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들어보면 너무너무 대단한 삶을 사셨다. ‘이분들이 있어서 내가 있을 수 있구나’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그분들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작은, 한 번뿐인 지면 인터뷰지만 그분들의 인터뷰를 듣고 사진을 찍어서 지면에 나가면 물성이 있는 존재, 책이라는 형태로 그분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점이 월간옥이네가 갖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웃음) 그 부분에서 가장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옥천 안남어머니학교는 지역 주민들이 2003년에 자발적으로 만든 문해학교다. 이 학교를 특집 주제로 담았었는데, 옥이네에서는 어머니들 한 분 한 분을 찍은 사진집을 만들기도 했고, 이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어떤 과정으로 지금까지 오게 됐는지 이야기했다. 어머님들을 만나다 보니 농촌의 1인 여성 노인 가구의 문제가 보였다. 보통 ‘1인가구’라고 하면 2030세대의 1인 청년 가구를 생각할 것 같은데, 농촌에서는 65세 이상의 여성 노인으로 구성된 1인가구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다. 이들 중 많은 분이 영양 불균형 상태이고, 코로나 이후로는 우울증이 많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이 높아지면서 옥천보건소에서 독거 노인 전수조사를 했더니 5명 중 1명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도 크지만, 지역 안에서는 읍과 면의 격차가 정말 크다는 것이 우울의 한 이유일 수 있겠다. 옥천군 경우에는 인구 5만 명 중 3만 명이 옥천읍에 살고 있다. 가장 작은 면은 1,400명 정도이다. 이런 면은 인구수가 적어서 투자나 예산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어떤 마을은 버스가 하루에 2대도 안 들어오고 당연히 복지관이나 슈퍼마켓도 없다. 집, 논, 밭밖에 없으니 그런 환경에 사는 어르신들은 계속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러한 현상이 굉장히 심각해졌고, 월간옥이네에도 바로 기사를 썼다.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가,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투자하지 않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2. 쌀값 이야기 최근에 농촌에서는 쌀값 이야기가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쌀값 이야기는 뉴스에 안 나오기 때문에 아는 분들이 많지 않다. '밥 한 공기 300원'을 보장해달라는 농민들의 목소리가 아주 오랫동안 있었다. 지금은 200원~220원 정도 한다고 한다. 농업을 잘 모르면 이 이야기는 잘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전라도 쪽에서는 쌀 수확을 하지 않고 논을 불을 지르거나 갈아엎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뉴스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희는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려고 한다. 쌀값 문제나 CPTPP 같은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농촌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는 도시에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꾸준히 담고 있다. 3. 여성 주민 이야기 농민 인터뷰할 때도 가능한 여성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데, 여성 농민들이 지역사회에서 계속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인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마을회관을 처음 가면 남자 방 여자 방이 나눠져 있고, 남자 방에선 할아버지가 누워서 TV를 보고 계시는데, 여자 방에선 70~80대 할머니들이 밥을 차리는 풍경에 대한 것이다. 70대 할머니가 50대 남성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풍경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저는 이런 부분에 대해 여성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능한 한 더 많이 들으려 한다. 4. 작은 학교 이야기 공동체 속의 작은 학교의 의미를 담으려 한다. 코로나 이후 지역학교의 의미가 많이 드러났다. 옥천군에서는 1980년에 대청댐이 만들어지고 2012년까지 17개의 학교가 폐교됐다. 이것이 악순환인 것이, 교육부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학교가 한 곳 없어지면 그 지역에 최소 100명의 인구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교육부에서는 ‘적정규모학교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학교들은 통폐합하는 것이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 아무튼, 저희는 작은 학교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코로나19가 지나면서 도시의 학교는 타격을 많이 입었다. 이때 휴교로 인한 학력저하 등을 이야기했는데, 옥천의 작은 학교들은 단 한 군데도 휴교하지 않았다.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휴교하지 않는다는 선택이 가능했다. 그동안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작은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어쩌면 ‘너무 당위성만 갖고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취약했을 수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지역 내 작은 학교의 당위성을 새롭게 확인하게 됐다. 5. 지역사회를 지켜온 것들 마을의 보호수가 병에 걸려도 지자체에서는 별도의 치료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다. 월간옥이네에서는 과거 마을공동체에서는 오래된 나무가 단순한 나무 이상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역사를 보존하는 차원에서도 보호수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다뤘고, 수몰된 마을이나 현재 마을의 풍경,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역사회를 지켜온 사람들에게도 눈길을 보내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취재와 기사를 통해서 우리 동네가 좀 더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항상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요즘은 아닌 것 같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 내가 있는 동네를 취재와 기사를 통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고 싶어서 지면 안팎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 오프라인 활동 이야기 1. 공간 활용 ‘둠벙’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오프라인 활동으로 연결하기도 했는데, 여성 군민을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하고, 토종 씨앗을 주제로 직접 심어보며 텃밭을 꾸려본 이야기를 싣기도 하고, 퍼머컬쳐 교육도 해봤다. 이 공간에서 청소년 참여 활동도 이뤄진다.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청소년 자립카페가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해 '로망'을 갖고 있다. 동네 카페에서는 청소년을 잘 써주지 않기 때문에, 카페 휴무일에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메뉴도 청소년들이 직접 정하고 커피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수익은 청소년들이 나눠서 가져간다. 이 활동을 2020년부터 하고 있고, 2021년부터는 '사회적협동조합 꿈꾸는배낭'을 만들어 청소년 자립카페 활동과 청소년 지원 활동을 같이하고 있다. 이곳의 이사장 역시 옥천에서 나고 자란 여성 청년이다. ‘둠벙’은 5년 가까이 비어있던 식당을 임대해서 청소년들을 위한 만화카페로 만든 곳이다. 1989년 옥천신문 창간호에 ‘우리 동네 청소년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제가 2010년에 옥천신문에 입사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의 기사를 썼다. 저만 쓴 게 아니라, 제 선배, 후배들까지도 그 기사를 썼다. 그동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간을 만들었으니 청소년 친화 공간으로 바꿔보자' 해서 만화카페를 운영하게 됐고, 청소년 카페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게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냐면, 이 과정을 보신 주민들이 “민간단체에서도 이런 일을 하는데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냐”하시며 ‘옥천행복교육네트워크’라는 민간조직을 만들었고, 지역의 청소년 문제를 다뤄왔다. 또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공간이 옥천 전체로 퍼져나가야 하지 않겠냐' 해서 옥천군 청소년수련관, 교육도서관을 리모델링해서 청소년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청소년수련관은 둠벙의 청소년 자립카페를 보고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자립카페로 탈바꿈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동네 친구들 모임에 기본소득 활동을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받아들였다. 기본소득 실험에 쓸 예산은 2. 청소년 기본소득 2020년에는 청소년 기본소득을 주제로 실험해봤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동네 친구들 모임에 기본소득 활동을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받아들였다. 기본소득 시험에 쓸 예산은 서울시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아 실험을 진행했다. 전교생이 18명인 안내중학교라는 곳에서 전교생 18명에게 6주 동안 매주 20만 원씩 주고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처음 농촌에 왔을 때는 기본소득을 생각하면 ‘좋은 이야기지만 꿈같은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10년 동안 옥천에서 살면서 한국 사회의 방식으로는 농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농업과 농촌이 모두 망할 테고 소멸을 맞이할 텐데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하다가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눌 수 있다면 농촌의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성남의 기본소득 의제를 보고 농촌과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이라는 것을 지역에서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면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직접 옥천군 내에서 실험해본 것이다. 이때 농민이 아닌 청소년 대상으로 진행했던 것은, 우선 농민 중에는 적절한 대상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또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에게 20만 원은 지원의 성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성과는 청소년들이 굉장한 자존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용돈도 많지 않고,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노동착취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용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기본소득을 받으니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고 했다. 예전엔 친구와 만나면 핸드폰게임만 하는데, 기본소득을 받고 나서 좋아하는 선생님 혹은 작은 도서관 동생들에게 간식거리를 사주기도 하면서 ‘내가 되게 소중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18명 청소년 중에 15명 정도가 이런 이야길 했다. 2014년 서울의 학교밖 청소년 대상의 조사에서 20% 이상의 청소년이 일주일에 한 번 밥을 굶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누군가가 밥을 굶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옥천에도 그런 청소년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농촌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를 다루기 위해서 시작했고 그 방향도 맞지만, 청소년들에게도 지금 당장 기본소득의 개념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옥천의 군의회, 도의회에 제안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청소년 꿈키움바우처’라고 1년에 1번, 중학생에게는 7만 원, 고등학생에게는 10만 원을 주는 제도였다. 바우처라서 사용처도 제한이 있긴 하지만, 기본소득 실험이 없었다면 이런 정책이나 조례조차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했던 한 걸음은 아니지만 반걸음이라도 나아갔다고 생각했다. 3. 길고양이 특집 보도 길고양이 특집 보도를 했을 때의 이야기다. 길고양이 화보를 지면에 담기 위해 4일 정도 고양이를 따라다녔는데 그러다 길고양이의 밥 먹는 자리를 알게 됐고, 그 고양이들에게 밥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중 한 분은 '옆 동네에도 밥 주는 사람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분을 만나고 싶다'고 하시기에 당시 만났던 분들 중 몇 분을 모아 모임이 만들어지고, 그 모임을 계기로 ‘옥천마을고양이보호협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게 됐다. 그때 이야기했던 게 옥천에는 동물보호 조례가 없기 때문에 옥천군에서도 정부 공약이었던 길고양이 TNR사업(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중성화 수술 후 방사 사업)이나 급식소 지원 같은 길고양이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다. 우리가 직접 조례를 만들어서 제안해보자 해서 전국의 동물보호 조례안을 참고해서 초안을 군의회에 전달했고 동물보호조례가 만들어졌다. 이 변화는 저희가 보도를 했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희 보도를 시작으로 길고양이 밥 주는 분들을 만났고, 그분들이 모일 수 있었고, 그걸 통해서 조례까지 제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조례안 덕에 옥천에서는 길고양이 TNR사업을 하고 있다.
▶ 기록은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월간옥이네 독자분이 해주신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종업원이 불친절하면 불만을 가졌는데 월간옥이네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부터는 ‘저분이 오늘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다, 어딘가 아프거나 다치셔서 불쾌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어떤 공동체의 성원이고, 그 공동체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으로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또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그게 옥이네가 불러 온 지역의 큰 변화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웃음) 지역은 배울 것이 많은 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배울 것도, 얘기할 것도, 즐거운 일도 많지만 그만큼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해결하면서 내가 또 다시 성장하는 경험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 순간마다 고민이 많아지기도 한다. 최근엔 일에 치이면서 우리가 정말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내가 하는 일이 공동체를 정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 건지 고민할 때도 있는데, 이 역시 길게 놓고 보면 많이 변화해왔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얼레벌레 살았네~’ 싶겠지만 일주일, 한 달, 1년, 3년으로 놓고 보면 공동체와 함께 바꾸거나 다양하게 시도했던 일이 어떤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지리산쌀롱의 제목처럼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이미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제가 해왔던 일, 앞서서 옥천신문이 해왔고 이후에 월간옥이네가 하고 있는 일이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변화의 기반은 ‘기록’이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과 관계를 만들거나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사이에서 관계를 만들어주고, 독자들을 이해하게 하고, 또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문제를 고민하거나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에 기록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보자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다. 제가 좋아하는 헬렌 켈러의 말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오롯한 인간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겠다.”
우리가 현재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기록일 것이다. 물성이 있는 잡지나 책이 아니더라도 블로그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아카이빙을 할 수 있다. 그런 것들부터 시작한다면 그 기록을 통해 옆 사람,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이런 연결이 계속된다면 지역사회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 
'지역의 눈으로 지역을 기록한다'는 관점으로부터 월간옥이네가 어떻게 지역을 기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제안받은 여성 노인이 “내가 뭘 했다고 인터뷰를 하냐”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이 같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기록을 만들고 계신 게 아닌가 생각했다. 또, 안남어머니학교 취재 때에도 문해학교를 취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발견한 여성 노인의 문제를 발견하고 지역사회의 의제로 만드는 것, 그런 면에서 월간옥이네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매체를 만들어가며 지역의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옥천은 ‘함께 만드는 기록’을 화두로 활동하는 곳이 여러 군데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 매체를 발간하는 것뿐만 아니라 둠벙 공간을 여는 등의 지면 밖의 노력이 더해져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결국, 매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체에 담기는 기록, 글, 사진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손님. 빨간집 기록활동가 배은희님] 기록하고 책 만드는 빨간집 
부산 빨간집 배은희 대표 기록하고 책 만드는 빨간집이다. ‘출판사’라고 하지 않고 ‘책을 만든다’라고 한 것의 의미를 먼저 설명드리고 싶다. 출판의 형태가 갈수록 달라지고 있고, 팬데믹이 사라지면서 출판사 매출이 3분의 1로 떨어졌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세대에게 책을 만들어서 먹고 살기가 어려운 시대다. 우리가 발행한 기록물들은 활동 기록을 전달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누구나 책을 만드는 세상이다. 실제로 책을 만들어 보면 그 프로세스들이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제 경우엔 '활동의 기록을 어떻게 공유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서 책을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다. 저희는 주로 기록이라는 표현보다 ‘기억을 수집하는 활동’이라고 이야기한다. 요즘은 기록의 시대다. 이제 누구나 기록을 이야기한다. 최근에 많이 쓰는 말이 ‘아카이빙’이다. 그러나 기록한다는 것과 아카이빙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아카이브라고 하면 영구적으로 보존할만한 가치 있는 기록을 모아서 유실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기록을 남길지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작업이 아카이빙이라고 볼 수 있다. 10년, 20년 후에도 이것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 최근 카카오 서비스가 먹통이 되었던 일처럼 클라우드에 보관한 데이터도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기록'은 살아남은 기록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오래 남길 수 있는 기록방식은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 빨간집의 활동 빨간집은 구술기록 수집사업 등 주로 지역의 기록을 지자체에서 용역을 받는 형태로 수행한다. 지역을 기록해서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정한다기보다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실체를 가진 책으로 나오면 지자체 입장에서는 성과가 되다 보니 이런 형태의 사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저 역시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완전하게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예산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들을 최대한 기록으로 남기는 데 애쓰고 있다. 1. 기록문화운동 마을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저희 경험을 공유하는 교육 사업을 하고 가끔씩 출판을 하고 있다. 저희끼리는 '기록문화운동'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지역을 변화시키는 데 기록이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가'와 연결되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저희의 경험들이 저희만의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기록을 하면서 이야기를 전파하고 함께하는 자리를 만드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마을을 중심으로 구술기록을 수집하고 있다. 사실 주변의 이야기들이 제대로 기록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단순한 사실과 수치의 기록 이외에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는 없었다. 지역을 기록하는 일에서는 주민들의 구술에서 얻을 수 있는 역사 이야기가 많다. 2. 개인 기록과 출판 우리가 기획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다가 함께 활동하는 젠더 분야 활동가의 주도로 ‘기록하는 여자들’이라는 자체 사업을 진행했다. 하다 보면 ‘이게 기록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이라기보다는 에세이 형태의 개인적 글로 남기 때문이다. 우리는 첫 번째 주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 일어났던 본인의 경험들, 두 번째 주제로 ‘딸들의 역사’를 잡았다. 수다 형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트라우마를 처음 발화하는 계기가 되어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 경험들이 하나의 큰 주제로 엮이면서 개인의 경험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여성의 삶과 생각에 대한 기록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 <기록하는 여자들> 시리즈의 두 권이다. 또 기록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라는 번역서이다. 영국에서는 커뮤니티 아카이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진행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 보니 그걸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는 없었는데, 일본에 같은 개념을 다룬 책이 있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라는 평생학습기관이 시민들과 함께 3·11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사건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주로 재난으로 인해 사라진 자료를 복원하는 형태로 기록을 했다면, 이 작업은 재난 이후의 부흥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개념들이 재미있는 게, 전문가의 기록 뿐 아니라 시민들, 아마추어가 하는 기록에는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다. 핸드폰으로도, 블랙박스로도 누구나 기록을 할 수 있다고 안내하며 여러 방식을 제안하고 돕는 프로세스를 책에 담았다. 3. 로컬리티 기록화-연구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의 의뢰로 부산 촛불집회 사료를 수닙하고 있다. 촛불 집회하면 떠오르는 장소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서울 광화문이다. 하지만 '지역에도 촛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동네 촛불까지 세분화해서 이뤄진 과정을 설명하고 정리했다. 부산 화명동에는 지금까지도 세월호 관련된 촛불집회를 하고 있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외부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 큰 범위의 기록사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단기간에 끝낼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사라지고 있고,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 기록화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명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면 100명에게 모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관용적인 어구에서 말하는 그 ‘시민’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미선이·효순이 사건 당시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집회까지 이어지도록 논의를 한 중고등학생들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사건의 발화점이 된 시민의 실체를 만났을 때의 뿌듯함이 있었다. 정치에 관심없던 일반인, 대학생이 촛불집회 참여 이후로 진보정당 활동을 하게 되거나 민중가요 작곡가가 된 이야기를 보면서 각자의 처지와 역할에 따라서 촛불집회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후에 그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4. 공동체와의 협업 저는 기록관리를 전공했다. 잡지를 만드는 예술단체에서 일하다 편집진이 교체되는 시기에 ‘마을미디어활동가양성과정’에서 마을기록에 대한 강연을 듣고,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관련 학과를 찾아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다. 하지만 주로 디지털 기록의 보존, 분류방식을 이야기하는 커리큘럼이다 보니 기록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많지 않았고, 이에 대해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지금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화명동의 맨발동무도서관은 사라지는 재개발지역 등의 지역기록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같이 협업하며 공부하거나 견학하는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5. 올해의 활동-공동체 아카이브, 협력 올해는 시민들이 직접 ‘도시기록자’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기록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도시를 기록하는 마을’을 주제로 예비가록자가 기존의 지역기록자들을 인터뷰하는 작업을 했다. 참가자들 후기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더라도 그들을 인터뷰하니 내가 모르던 그 사람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됐다’는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시민이 시민을 기록할 때 생기는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잇다’, ‘이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활동가 한 분이 해주신 말이 인상 깊어서 전하고 싶다. ‘연결이 아니라 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기록이 모일 수 있고, 대화의 계기를 만드는 과정이 기록을 공유하는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감동적이었다. 성과지표는 기록물이 모인 개수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그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관계를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한 성과인 것 같다. 
▶ 아카이브의 정치에 대해 “아카이브는 권력이 시작되는 곳이다. (중략) 아카이브의 통제 없이, 그렇지 않다면 기억의 통제 없이는 정치권력도 없다.”는 자크 데리다의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카이브는 국가가 통제하는 아카이브를 지칭한다. 공공기록의 핵심은 기록을 무한정 보존할 수 없으니 남길 것은 남기고, 없앨 것은 없애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의 존폐를 결정하는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남아있는 기록이 정말 올바른 평가에 의해 남겨진 것인지에 대한 의심. 그런 의미에서 이 국가가 통제하는 아카이브의 빈틈을 보충할 수 있는 게 시민의 기록 활동이 아닌가, 시민의 아카이브가 그 평가를 뒤집을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됐다.
▶ 청사포 해녀 이야기 청사포 해녀들의 이야기를 모은 적도 있다. 부산 사람들조차 부산에 해녀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때다. 보통 육지 해녀라고 해도 제주 출신인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은 부산 토박이셨다. 첫 인터뷰를 할 때, 사진 찍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으셔서 특히 공을 들여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해녀들은 매일 아침 바다의 상황을 보고 오늘 물질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당시에 저희 집이 멀어서 그 결정을 확인하지 못하고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그냥 청사포로 출발했다. 도착해서 '오늘 물질하지 않는다' 하시면 해녀들이 마을회관에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틈을 타 이야기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이야기하시는 것이, 해녀 생활에 대한 자부심에 대한 것이었다. 이 나이에 내가 쓸 돈을 내가 번다는 자부심. 이야기를 더 나누다보니 진솔한 이이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사를 할 때 “해녀가 귀걸이도 하네?”라는 손님의 말에 맞서 싸우기도 했고, 아무데서나 옷 갈아입는다며 손가락질 받았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셨다. 해녀들은 찬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나와 몸을 얼른 따뜻하게 하려고 옷을 밖에서 갈아입는데, 거기에서 나온 오해와 무시다. 자부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던 해녀 할머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천한 직업을 왜 기록하려고 하냐'는 이야기를 하셨다. 5월쯤부터 인터뷰를 시작해서 11월에 책이 나왔다. 결과물로 책이 나와 전시도 하고 초청해서 공연도 했다. 그러고 나니 처음에 표정이 안 좋았던 할머니가 손녀 보는 표정으로 저를 맞아주셨다. 그러니까, 아카이브의 정치를 말하며 말씀드린 것처럼 학술적으로는 국가의 기록들만 믿을 수는 없다거나 민간기록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지만 이분들에겐 아마 그런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천하다고 느꼈던 직업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기록으로 다뤄지고 책으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기록의 과정은 치유의 과정을 닮았다. <기록하는 여자들>의 사례에서도 글쓰기를 통해 트라우마가 해소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인터뷰라는 것 자체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인터뷰를 통해 가족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터뷰이들은 삶에서 중요한 지점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자신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과정들이 있었고, 이런 것이 기록의 순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 부산 안창마을 이야기 부산의 안창마을이라고, 언론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 지역의 기록을 맡은 경험도 있다. 과거에 정말 갈곳이 없거나 사업 망해서 들어오는 분들이 많았다. 옛날에는 입구도 잘 보이지 않는 숲길을 지나 올라가면 있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기록을 맡게 되면서 '내가 이들의 가난을 괜히 들추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주목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한 예시로 이곳은 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 교통편이 굉장히 중요한데, 어느 날 이 마을에 시내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 주민 사이에서 그 버스가 언제부터 들어왔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분은 1988년이다, 어떤 분은 1989년이다, 하시면서 의견이 갈렸다. 정확한 정보 기록을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1988년이 맞았다. 사실 이 버스 운행 시기 하나가 이들에게 참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안창마을에는 무허가 집들이 많고 도심에서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집값이 싸고, 못 사는 동네라는 시선 때문에 이 동네 주민들에게는 열등감이 있었는데, 버스가 다님으로써 그들도 내가 사는 곳이 ‘부산 시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버스가 다니게 된 사건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이런 내용을 조사하고 기록해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옮길 뿐이다. 우리가 지역을 변화시킨다기보다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을 찾아내려고 하고 돕는다. 기록은 왜 필요할까,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이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에 대해 더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같은 상황에서도 인간이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사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희가 정리하기에 기록하는 일은 역사의 빈틈을 채워 문화자산을 남기는 일, 마을의 권력을 평등하게 나누는 일, 지역 집단의 문화 다양성을 실현하는 일, 세대 간의 소통을 이루는 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위로하는 일, 인간이 살아온 방식을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기록을 경험하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다. 
월간옥이네의 박누리 편집장님 이야기와 빨간집 기록활동가 배은희님의 이야기가 두 가지 이야기가 참 균형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이야기가 매달 매체를 발간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역동감이 느껴졌다면, 빨간집 이야기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록을 둘러싼 세 가지 주체가 있을 것이다. 인터뷰이, 인터뷰어, 독자. 그렇기에 지역이 변한다는 건 이 세 주체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 변화의 사례들을 두 분이 잘 들려주신 것 같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물성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책은 평균적인 발행 초판 부수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들이는 품에 비해 이런 물성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진다. 공간 운영도 그렇다. 물성의 힘에 대해 두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해주시면 용기가 날 것 같다. 또 기록하는 사람으로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나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하시면서 이야기 나누기를 회피하는 사람으로부터 이야길 끌어내는 팁을 알려주시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편집할 때 내가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지, 내가 이야기를 너무 과장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아닐지, 맥락에 맞지 않는 일을 지어내는 것은 아닐지 늘 고민이 된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좋은 질문이다. 물성이 가지는 힘. 저는 종이 잡지를 만들고 있지만 만들 때마다 ‘이게 뭘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만드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년 전에도 신문은 곧 사라진다고 이야기했었고, 예전에 옥천신문에서 일할 때도 그 생각을 했다. 월간옥이네를 처음 만들 때는 종이 잡지의 물성에 대한 것보다는 지역에서의 활동과 변화의 가치에 주안점을 두었다. 반대로 월간옥이네를 매호 만들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잡지를 받는 순간에 느끼는 감동들이 있다. 그것이 종이책, 종이 잡지를 현재까지 존재하게 만든 힘이 아닌가, 그리고 그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배은희 대표님의 이야길 들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우리가 현장에서 느낀 감정과 닮아 있을까 싶어 놀랐다. '기록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지역매체 기자는 카운슬러랑 역할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빨간집 사례에서 기록에 의한 치유를 이야기하셔서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종이책이 소수만 보는 매체이기 때문에 때문에 곧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의 파동, 그 감정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내 사진이 실린 것만으로도 책을 갖고 싶어진다. 제대로 기록한 책이면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잡지계의 조상인 <뿌리 깊은 나무>가 그렇지 않은가. (웃음) 출판업계의 사람들은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길 정설로 받아들인다. 앞으로 발행 부수는 적어져도 다양한 책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다양한 기록이 생겨나고 있고, 그 책들은 그것 자체로 귀중하다. 또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경우에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주셨는데,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준비된 멘트처럼 술술 나오기도 한다. 몇 가지 일상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사람이 인터뷰 대상으로 적절한지 어떤지를 판단할 수 있다. 주로 유명인을 인터뷰하는 지승호 작가의 이야길 들었는데, 인터뷰하기 위해 인터뷰이에 대한 조사를 한 달간 하고 질문을 400개나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는 분들은 사전자료가 없다. 질문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도 그분이 나왔을 만한 신문기사나 정보를 충분히 조사한다면 질문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세 번째 질문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한 사례를 들고 싶다. 인터뷰 대상은 어떤 '위안부' 할머니다. 할머니 표현 중에 ‘군인들이 나비처럼 몰려오는 것 같았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떼로 몰려오는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그걸 잘못 해석한 한 교수가 ‘이 분은 남자를 좋아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인터뷰어와 편집담당자가 얼마나 준비되어있느냐가 문제다. 준비되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본인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저희는 해석을 많이 하지않고, 그분이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 가장 중요한 기억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되도록 인터뷰이가 사용한 어투와 단어로 기록한다. 사실 인터뷰는 음성파일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해석은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도에 맞게끔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어느 정도의 준비 상태에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조금 덧붙이자면, 인터뷰를 하러 가게 되면, 제 경험상 “내 얘기 뭐라고 들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속내를 비추거나 타인이 나를 흉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그래서 일부러 수더분하게 이야길 한다. 그런 게 시골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좋게 다가가는 것 같다. 또 사전정보가 없을 때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관찰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인터뷰이의 집을 가면 텃밭에 고추 심어진 것을 보고 “올해 고추 농사는 어떠셨어요?” 하면서 다가가는 식이다. 저는 또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잘 건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보면 30분은 금방 간다. 그리고 내가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더 배워서 당신의 이야길 듣는 게 아니라는 신호를 주는 게 중요하다. 
올해 읽었던 책 중에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이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는 ‘구술을 어떻게 듣고 기록할 것인가’라는 부제가 있는데, 책에서 기획을 왜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묻고 들을 것인지, 반대로 묻지 않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협업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오늘 참여자 분들과 같이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발견이 기록의 의미인 것 같고, 재발견이 거듭될수록 지역은 기존 질서와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기록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고, 한편으로는 반대로 '기록되지 않을 권리'도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맥락으로 '기록될 수 있는 권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해왔고, 또 '기록되지 않을 권력' 또한 강하게 작용되어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록이나 활동에 관한 연구나 실행에 관한 기록을 해야 할 때 너무 주관적인 결과물이 나올까봐 걱정이 된다. 오늘 사례를 들어보니 일반 시민이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객관성을 갖출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을지 궁금하다. 
제 생각에 기록이라는 것은 절대 객관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계가 기록할 수는 없다. 또 개인이 하는 기록은 결국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객관적이냐는 판단을 하는 것도 결국 나다. 가장 주관적인 것이 가장 객관적인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다. 
‘연결을 넘어선 연관’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인터뷰를 통해 사적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저도 감동받고 그분도 치유를 경험하는 순간을 종종 겪는다. 그러나 연결되는 시간이 무척 짧다는 생각이 든다. 늘 인터뷰를 끝내고 나면 약간의 공허함이 남고, 내가 저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알까 하는 질문이 찝찝함으로 남는다. 프로젝트가 다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그분들 생각이 난다. 그런 면에서 월간옥이네는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빨간집의 경우는 시스템이 좀 다르고 주로 의뢰 형식의 프로젝트가 많은데,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의 관계 유지가 궁금하다. 
말씀드린 ‘연관-연결’에 대해서는 공동체 안에서의 기록 활동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겠다고 설명드린 부분이었다. 사실 저도 용역이 몇 개월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기에 처음엔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기간이 길다고 해서 기록을 더 잘 할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다른 기록자들의 고민도 똑같았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보면 개개인의 등장인물들의 스토리가 모두 있을 텐데, 그 사람의 기나긴 일생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한정된 범위 내에서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저는 항상 인터뷰가 끝나면 인터뷰이에게 검수를 받는다. 청사포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에도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죄책감이 있어서 명절에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 고민을 하다 이제는 사업 마지막에 결과집을 전해 드리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그렇게 관계의 절차를 만들어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저희가 사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기록물 발행 부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웹으로 볼 수 있게끔 자료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것 이외에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인 책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너무 공감하는 이야기다. 기록하면서 내가 너무 단면만 보는 것은 아닌지, 짧게 취재해서 이게 다인 것처럼 알리는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한다. 이건 1년을 해도 10년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이 단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로 기록한다. 단면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의 기록을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는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기록하는 사람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로 바꿔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시간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조금 얻은 것 같다. 오늘 두 분의 소감을 듣고 마무리하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기록을 하면 된다. 민간의 기록이 공공의 기록과 다른 결과 의미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기록이 다 다른 결과 의미를 가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은 일기와는 달리 사회적인 글쓰기인데, 이 기록이 더 의미를 가지려면 기록의 대상과 실력을 떠나서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나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이것으로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기록하는 이유일 수 있겠다. 그렇게 하다 보면 무언가가 이뤄져 있으리라 믿는다. 
사회자님이 ‘어떻게 하면 기록하는 사람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멘트를 해주셨는데, 기록이 지역을 바꿨다기보다 기록을 통해 저라는 사람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이 경험은 제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인데, 이런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록 | 이승현 편집 | 자유, 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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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2022년 10월 27일 목요일 14:00
@남원시 산내면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
발제 | 옥천 월간옥이네 박누리 편집장
발제 | 부산 빨간집 배은희 대표
진행 | 남원 산내마을소식지 고사리 이창림 편집장
기획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남원 산내마을소식지 <고사리> 이창림 편집장
저는 동네에서 산내의 자랑(웃음)이 되고 싶은 ‘고사리’라는 소식지를 만들고 있다. 계절별로 3년째 13번을 냈다. 산내 오기 전에는 도봉구에서 마을 월간신문을 5년 반 정도 만들었다.
사실 저도 기록이 지역의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궁금함이 있다. 오늘은 기록과 지역, 변화 이 키워드 세 가지를 합쳐서 고민하는 시간이다.
기록과 지역은 범주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이고, 그렇다면 변화는 무엇일까. 기록은 현재 또는 과거의 것인데 비해 변화는 현재와 미래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랬을 때 ‘과거와 현재에 방점이 있는 기록과 현재와 미래에 방점이 있는 변화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또 요즘은 아카이빙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기록했을 때 기록물이 추후에 얼마나 쓰일 수 있을지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된다. 또한, 변화의 역동성을 생각해보면 그것보다 속도가 좀 더 느린 기록에서는 어떤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첫 번째 손님. 월간 옥이네 박누리 편집장님]
지역의 눈으로 지역을 기록하는 일
옥천 <월간옥이네> 박누리 편집장
<월간 옥이네>는 2017년 창간해서 올해로 64호를 발간했고, 자랑이라면 한 번도 쉬지 않고 월간지를 발간해오고 있다. 창간 당시에는 120페이지 정도, 요즘은 15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 사회적기업인 지역문화 활력소 고래실에서 만들고 있는데, 고래실의 의미는 ‘물이 깊어서 기름진 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농촌문화를 기름지게 해서 지역의 삶이 고래실논의 쌀처럼 맛있는 지역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다.
▶ 월간옥이네의 탄생
2010년에 기자를 시작하며 지역 청소년을 많이 만나게 됐는데, 청소년 10명 중 7~8명 정도가 스무 살이 되면 옥천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떠나고 싶은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동네에 엽떡(동대문엽기떡볶이), 스타벅스, CGV가 없어서'였다. 청소년들은 주류 미디어의 영향으로 스타벅스 가서 커피를 마셔야 내가 괜찮은 커피를 마시는 것 같고, 엽떡에서 신메뉴를 먹어야 동네 친구들과 비슷해지는 것 같고, 용산 아이맥스 같은 곳에서 영화를 봐야 영화를 제대로 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보통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할 때, ‘이미 농촌사회도 공동체성이 옅어져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냐, 결국은 지역민들을 묶어두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하시는데, 그 말은 공동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공동체라는 말이 왜곡되고 편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농촌, 공동체라고 할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궁금하다. 저는 옥천에 오기 전에 이 단어를 떠올리면 ‘6시 내고향’처럼 할머니들이 밥을 차려주시거나, 멧돼지가 도로로 내려와서 차량이 정체되는 그런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류 미디어가 보여주는 지역의 모습이 이렇기 때문이다. 지역 뉴스가 중앙 언론의 헤드라인에 나오는 것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정도가 아닌가. 세상을 보는 창이 그 모습인데 어떻게 지역을 왜곡 없이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들었다. 기존의 미디어는 서울의 눈으로 서울의 욕망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게 아니고, 지역의 문제와 이야기를 지역의 눈과 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잘 되면 서울 가야 한다.”였다. 구미에서 소위 '잘 나가는' 애들은 구미에서 놀지 않고 대구 가서 놀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가 이런 욕망을 조장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러니 저 역시 지역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역에 대한 시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애정하게 되는 것인데, 옥천에 와서 지역사회를 보다 보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지역 매체들이 이런 시각을 바로 잡기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옥천신문이 이미 이런 일을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잘하고 있는 반면에 채우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옥천신문은 비판적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누군가를 비판하고 행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계급화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지역 내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의 이야기, 중장년층, 중산층, 남성의 이야기가 많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옥천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도 하고, 지역 정치의 문제를 발굴하고 지적하는 등 변화를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문제의식이 <월간 옥이네>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실제로는 장터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쓰고, 지나가는 어린이를 붙잡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런 기록을 통해 '나'를 긍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월간옥이네의 키워드
월간옥이네에서는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자치, 자급, 생태, 공간, 공동체, 사람, 문화, 역사. 또 농촌 지역이다 보니 농업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한다. 그 외에는 청소년, 동물권, 오래된 나무나 빈집 등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기후위기나 지역 불균형 같은 문제도 꾸준히 관심 가지며 이야기하고 있다.
'인구 5만도 안되는 동네에서 담을 이야기가 뭐가 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담을 이야기가 너무 많다. 매번 담고 싶은 이야기 혹은 담아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문제였지, 담을 이야기가 없어서 고민한 적은 없었다. 이런 관점으로 지역사회를 기록한다면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 옥이네의 자부심 : 가려진 존재들의 이야기
1. 할머니 이야기
장날에 만난 할머니 이야기도 듣는다. 인터뷰를 요청드리면 ‘내가 뭘 했다고 내 이야길 듣냐’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들어보면 너무너무 대단한 삶을 사셨다. ‘이분들이 있어서 내가 있을 수 있구나’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그분들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작은, 한 번뿐인 지면 인터뷰지만 그분들의 인터뷰를 듣고 사진을 찍어서 지면에 나가면 물성이 있는 존재, 책이라는 형태로 그분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점이 월간옥이네가 갖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웃음) 그 부분에서 가장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옥천 안남어머니학교는 지역 주민들이 2003년에 자발적으로 만든 문해학교다. 이 학교를 특집 주제로 담았었는데, 옥이네에서는 어머니들 한 분 한 분을 찍은 사진집을 만들기도 했고, 이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어떤 과정으로 지금까지 오게 됐는지 이야기했다. 어머님들을 만나다 보니 농촌의 1인 여성 노인 가구의 문제가 보였다. 보통 ‘1인가구’라고 하면 2030세대의 1인 청년 가구를 생각할 것 같은데, 농촌에서는 65세 이상의 여성 노인으로 구성된 1인가구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다. 이들 중 많은 분이 영양 불균형 상태이고, 코로나 이후로는 우울증이 많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이 높아지면서 옥천보건소에서 독거 노인 전수조사를 했더니 5명 중 1명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도 크지만, 지역 안에서는 읍과 면의 격차가 정말 크다는 것이 우울의 한 이유일 수 있겠다. 옥천군 경우에는 인구 5만 명 중 3만 명이 옥천읍에 살고 있다. 가장 작은 면은 1,400명 정도이다. 이런 면은 인구수가 적어서 투자나 예산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어떤 마을은 버스가 하루에 2대도 안 들어오고 당연히 복지관이나 슈퍼마켓도 없다. 집, 논, 밭밖에 없으니 그런 환경에 사는 어르신들은 계속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러한 현상이 굉장히 심각해졌고, 월간옥이네에도 바로 기사를 썼다.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가,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투자하지 않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2. 쌀값 이야기
최근에 농촌에서는 쌀값 이야기가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쌀값 이야기는 뉴스에 안 나오기 때문에 아는 분들이 많지 않다. '밥 한 공기 300원'을 보장해달라는 농민들의 목소리가 아주 오랫동안 있었다. 지금은 200원~220원 정도 한다고 한다. 농업을 잘 모르면 이 이야기는 잘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전라도 쪽에서는 쌀 수확을 하지 않고 논을 불을 지르거나 갈아엎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뉴스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희는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려고 한다. 쌀값 문제나 CPTPP 같은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농촌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는 도시에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꾸준히 담고 있다.
3. 여성 주민 이야기
농민 인터뷰할 때도 가능한 여성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데, 여성 농민들이 지역사회에서 계속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인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마을회관을 처음 가면 남자 방 여자 방이 나눠져 있고, 남자 방에선 할아버지가 누워서 TV를 보고 계시는데, 여자 방에선 70~80대 할머니들이 밥을 차리는 풍경에 대한 것이다. 70대 할머니가 50대 남성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풍경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저는 이런 부분에 대해 여성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능한 한 더 많이 들으려 한다.
4. 작은 학교 이야기
공동체 속의 작은 학교의 의미를 담으려 한다. 코로나 이후 지역학교의 의미가 많이 드러났다. 옥천군에서는 1980년에 대청댐이 만들어지고 2012년까지 17개의 학교가 폐교됐다. 이것이 악순환인 것이, 교육부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학교가 한 곳 없어지면 그 지역에 최소 100명의 인구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교육부에서는 ‘적정규모학교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학교들은 통폐합하는 것이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
아무튼, 저희는 작은 학교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코로나19가 지나면서 도시의 학교는 타격을 많이 입었다. 이때 휴교로 인한 학력저하 등을 이야기했는데, 옥천의 작은 학교들은 단 한 군데도 휴교하지 않았다.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휴교하지 않는다는 선택이 가능했다. 그동안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작은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어쩌면 ‘너무 당위성만 갖고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취약했을 수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지역 내 작은 학교의 당위성을 새롭게 확인하게 됐다.
5. 지역사회를 지켜온 것들
마을의 보호수가 병에 걸려도 지자체에서는 별도의 치료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다. 월간옥이네에서는 과거 마을공동체에서는 오래된 나무가 단순한 나무 이상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역사를 보존하는 차원에서도 보호수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다뤘고, 수몰된 마을이나 현재 마을의 풍경,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역사회를 지켜온 사람들에게도 눈길을 보내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취재와 기사를 통해서 우리 동네가 좀 더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항상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요즘은 아닌 것 같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 내가 있는 동네를 취재와 기사를 통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고 싶어서 지면 안팎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 오프라인 활동 이야기
1. 공간 활용
‘둠벙’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오프라인 활동으로 연결하기도 했는데, 여성 군민을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하고, 토종 씨앗을 주제로 직접 심어보며 텃밭을 꾸려본 이야기를 싣기도 하고, 퍼머컬쳐 교육도 해봤다.
이 공간에서 청소년 참여 활동도 이뤄진다.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청소년 자립카페가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해 '로망'을 갖고 있다. 동네 카페에서는 청소년을 잘 써주지 않기 때문에, 카페 휴무일에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메뉴도 청소년들이 직접 정하고 커피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수익은 청소년들이 나눠서 가져간다. 이 활동을 2020년부터 하고 있고, 2021년부터는 '사회적협동조합 꿈꾸는배낭'을 만들어 청소년 자립카페 활동과 청소년 지원 활동을 같이하고 있다. 이곳의 이사장 역시 옥천에서 나고 자란 여성 청년이다.
‘둠벙’은 5년 가까이 비어있던 식당을 임대해서 청소년들을 위한 만화카페로 만든 곳이다. 1989년 옥천신문 창간호에 ‘우리 동네 청소년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제가 2010년에 옥천신문에 입사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의 기사를 썼다. 저만 쓴 게 아니라, 제 선배, 후배들까지도 그 기사를 썼다. 그동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간을 만들었으니 청소년 친화 공간으로 바꿔보자' 해서 만화카페를 운영하게 됐고, 청소년 카페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게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냐면, 이 과정을 보신 주민들이 “민간단체에서도 이런 일을 하는데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냐”하시며 ‘옥천행복교육네트워크’라는 민간조직을 만들었고, 지역의 청소년 문제를 다뤄왔다. 또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공간이 옥천 전체로 퍼져나가야 하지 않겠냐' 해서 옥천군 청소년수련관, 교육도서관을 리모델링해서 청소년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청소년수련관은 둠벙의 청소년 자립카페를 보고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자립카페로 탈바꿈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동네 친구들 모임에 기본소득 활동을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받아들였다. 기본소득 실험에 쓸 예산은
2. 청소년 기본소득
2020년에는 청소년 기본소득을 주제로 실험해봤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동네 친구들 모임에 기본소득 활동을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받아들였다. 기본소득 시험에 쓸 예산은 서울시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아 실험을 진행했다. 전교생이 18명인 안내중학교라는 곳에서 전교생 18명에게 6주 동안 매주 20만 원씩 주고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처음 농촌에 왔을 때는 기본소득을 생각하면 ‘좋은 이야기지만 꿈같은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10년 동안 옥천에서 살면서 한국 사회의 방식으로는 농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농업과 농촌이 모두 망할 테고 소멸을 맞이할 텐데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하다가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눌 수 있다면 농촌의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성남의 기본소득 의제를 보고 농촌과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이라는 것을 지역에서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면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직접 옥천군 내에서 실험해본 것이다. 이때 농민이 아닌 청소년 대상으로 진행했던 것은, 우선 농민 중에는 적절한 대상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또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에게 20만 원은 지원의 성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성과는 청소년들이 굉장한 자존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용돈도 많지 않고,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노동착취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용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기본소득을 받으니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고 했다. 예전엔 친구와 만나면 핸드폰게임만 하는데, 기본소득을 받고 나서 좋아하는 선생님 혹은 작은 도서관 동생들에게 간식거리를 사주기도 하면서 ‘내가 되게 소중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18명 청소년 중에 15명 정도가 이런 이야길 했다. 2014년 서울의 학교밖 청소년 대상의 조사에서 20% 이상의 청소년이 일주일에 한 번 밥을 굶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누군가가 밥을 굶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옥천에도 그런 청소년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농촌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를 다루기 위해서 시작했고 그 방향도 맞지만, 청소년들에게도 지금 당장 기본소득의 개념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옥천의 군의회, 도의회에 제안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청소년 꿈키움바우처’라고 1년에 1번, 중학생에게는 7만 원, 고등학생에게는 10만 원을 주는 제도였다. 바우처라서 사용처도 제한이 있긴 하지만, 기본소득 실험이 없었다면 이런 정책이나 조례조차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했던 한 걸음은 아니지만 반걸음이라도 나아갔다고 생각했다.
3. 길고양이 특집 보도
길고양이 특집 보도를 했을 때의 이야기다. 길고양이 화보를 지면에 담기 위해 4일 정도 고양이를 따라다녔는데 그러다 길고양이의 밥 먹는 자리를 알게 됐고, 그 고양이들에게 밥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중 한 분은 '옆 동네에도 밥 주는 사람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분을 만나고 싶다'고 하시기에 당시 만났던 분들 중 몇 분을 모아 모임이 만들어지고, 그 모임을 계기로 ‘옥천마을고양이보호협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게 됐다. 그때 이야기했던 게 옥천에는 동물보호 조례가 없기 때문에 옥천군에서도 정부 공약이었던 길고양이 TNR사업(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중성화 수술 후 방사 사업)이나 급식소 지원 같은 길고양이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다. 우리가 직접 조례를 만들어서 제안해보자 해서 전국의 동물보호 조례안을 참고해서 초안을 군의회에 전달했고 동물보호조례가 만들어졌다.
이 변화는 저희가 보도를 했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희 보도를 시작으로 길고양이 밥 주는 분들을 만났고, 그분들이 모일 수 있었고, 그걸 통해서 조례까지 제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조례안 덕에 옥천에서는 길고양이 TNR사업을 하고 있다.
▶ 기록은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월간옥이네 독자분이 해주신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종업원이 불친절하면 불만을 가졌는데 월간옥이네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부터는 ‘저분이 오늘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다, 어딘가 아프거나 다치셔서 불쾌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어떤 공동체의 성원이고, 그 공동체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으로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또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그게 옥이네가 불러 온 지역의 큰 변화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웃음)
지역은 배울 것이 많은 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배울 것도, 얘기할 것도, 즐거운 일도 많지만 그만큼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해결하면서 내가 또 다시 성장하는 경험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 순간마다 고민이 많아지기도 한다.
최근엔 일에 치이면서 우리가 정말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내가 하는 일이 공동체를 정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 건지 고민할 때도 있는데, 이 역시 길게 놓고 보면 많이 변화해왔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얼레벌레 살았네~’ 싶겠지만 일주일, 한 달, 1년, 3년으로 놓고 보면 공동체와 함께 바꾸거나 다양하게 시도했던 일이 어떤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지리산쌀롱의 제목처럼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이미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제가 해왔던 일, 앞서서 옥천신문이 해왔고 이후에 월간옥이네가 하고 있는 일이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변화의 기반은 ‘기록’이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과 관계를 만들거나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사이에서 관계를 만들어주고, 독자들을 이해하게 하고, 또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문제를 고민하거나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에 기록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보자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다.
제가 좋아하는 헬렌 켈러의 말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가 현재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기록일 것이다. 물성이 있는 잡지나 책이 아니더라도 블로그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아카이빙을 할 수 있다. 그런 것들부터 시작한다면 그 기록을 통해 옆 사람,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이런 연결이 계속된다면 지역사회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
'지역의 눈으로 지역을 기록한다'는 관점으로부터 월간옥이네가 어떻게 지역을 기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제안받은 여성 노인이 “내가 뭘 했다고 인터뷰를 하냐”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이 같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기록을 만들고 계신 게 아닌가 생각했다. 또, 안남어머니학교 취재 때에도 문해학교를 취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발견한 여성 노인의 문제를 발견하고 지역사회의 의제로 만드는 것, 그런 면에서 월간옥이네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매체를 만들어가며 지역의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옥천은 ‘함께 만드는 기록’을 화두로 활동하는 곳이 여러 군데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 매체를 발간하는 것뿐만 아니라 둠벙 공간을 여는 등의 지면 밖의 노력이 더해져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결국, 매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체에 담기는 기록, 글, 사진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손님. 빨간집 기록활동가 배은희님]
기록하고 책 만드는 빨간집
부산 빨간집 배은희 대표
기록하고 책 만드는 빨간집이다. ‘출판사’라고 하지 않고 ‘책을 만든다’라고 한 것의 의미를 먼저 설명드리고 싶다. 출판의 형태가 갈수록 달라지고 있고, 팬데믹이 사라지면서 출판사 매출이 3분의 1로 떨어졌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세대에게 책을 만들어서 먹고 살기가 어려운 시대다. 우리가 발행한 기록물들은 활동 기록을 전달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누구나 책을 만드는 세상이다. 실제로 책을 만들어 보면 그 프로세스들이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제 경우엔 '활동의 기록을 어떻게 공유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서 책을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다.
저희는 주로 기록이라는 표현보다 ‘기억을 수집하는 활동’이라고 이야기한다. 요즘은 기록의 시대다. 이제 누구나 기록을 이야기한다. 최근에 많이 쓰는 말이 ‘아카이빙’이다. 그러나 기록한다는 것과 아카이빙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아카이브라고 하면 영구적으로 보존할만한 가치 있는 기록을 모아서 유실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기록을 남길지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작업이 아카이빙이라고 볼 수 있다. 10년, 20년 후에도 이것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 최근 카카오 서비스가 먹통이 되었던 일처럼 클라우드에 보관한 데이터도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기록'은 살아남은 기록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오래 남길 수 있는 기록방식은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 빨간집의 활동
빨간집은 구술기록 수집사업 등 주로 지역의 기록을 지자체에서 용역을 받는 형태로 수행한다. 지역을 기록해서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정한다기보다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실체를 가진 책으로 나오면 지자체 입장에서는 성과가 되다 보니 이런 형태의 사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저 역시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완전하게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예산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들을 최대한 기록으로 남기는 데 애쓰고 있다.
1. 기록문화운동
마을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저희 경험을 공유하는 교육 사업을 하고 가끔씩 출판을 하고 있다. 저희끼리는 '기록문화운동'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지역을 변화시키는 데 기록이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가'와 연결되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저희의 경험들이 저희만의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기록을 하면서 이야기를 전파하고 함께하는 자리를 만드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마을을 중심으로 구술기록을 수집하고 있다. 사실 주변의 이야기들이 제대로 기록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단순한 사실과 수치의 기록 이외에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는 없었다. 지역을 기록하는 일에서는 주민들의 구술에서 얻을 수 있는 역사 이야기가 많다.
2. 개인 기록과 출판
우리가 기획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다가 함께 활동하는 젠더 분야 활동가의 주도로 ‘기록하는 여자들’이라는 자체 사업을 진행했다. 하다 보면 ‘이게 기록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이라기보다는 에세이 형태의 개인적 글로 남기 때문이다. 우리는 첫 번째 주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 일어났던 본인의 경험들, 두 번째 주제로 ‘딸들의 역사’를 잡았다. 수다 형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트라우마를 처음 발화하는 계기가 되어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 경험들이 하나의 큰 주제로 엮이면서 개인의 경험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여성의 삶과 생각에 대한 기록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 <기록하는 여자들> 시리즈의 두 권이다.
또 기록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라는 번역서이다. 영국에서는 커뮤니티 아카이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진행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 보니 그걸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는 없었는데, 일본에 같은 개념을 다룬 책이 있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라는 평생학습기관이 시민들과 함께 3·11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사건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주로 재난으로 인해 사라진 자료를 복원하는 형태로 기록을 했다면, 이 작업은 재난 이후의 부흥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개념들이 재미있는 게, 전문가의 기록 뿐 아니라 시민들, 아마추어가 하는 기록에는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다. 핸드폰으로도, 블랙박스로도 누구나 기록을 할 수 있다고 안내하며 여러 방식을 제안하고 돕는 프로세스를 책에 담았다.
3. 로컬리티 기록화-연구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의 의뢰로 부산 촛불집회 사료를 수닙하고 있다. 촛불 집회하면 떠오르는 장소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서울 광화문이다. 하지만 '지역에도 촛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동네 촛불까지 세분화해서 이뤄진 과정을 설명하고 정리했다.
부산 화명동에는 지금까지도 세월호 관련된 촛불집회를 하고 있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외부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 큰 범위의 기록사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단기간에 끝낼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사라지고 있고,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 기록화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명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면 100명에게 모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관용적인 어구에서 말하는 그 ‘시민’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미선이·효순이 사건 당시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집회까지 이어지도록 논의를 한 중고등학생들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사건의 발화점이 된 시민의 실체를 만났을 때의 뿌듯함이 있었다. 정치에 관심없던 일반인, 대학생이 촛불집회 참여 이후로 진보정당 활동을 하게 되거나 민중가요 작곡가가 된 이야기를 보면서 각자의 처지와 역할에 따라서 촛불집회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후에 그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4. 공동체와의 협업
저는 기록관리를 전공했다. 잡지를 만드는 예술단체에서 일하다 편집진이 교체되는 시기에 ‘마을미디어활동가양성과정’에서 마을기록에 대한 강연을 듣고,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관련 학과를 찾아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다. 하지만 주로 디지털 기록의 보존, 분류방식을 이야기하는 커리큘럼이다 보니 기록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많지 않았고, 이에 대해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지금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화명동의 맨발동무도서관은 사라지는 재개발지역 등의 지역기록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같이 협업하며 공부하거나 견학하는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5. 올해의 활동-공동체 아카이브, 협력
올해는 시민들이 직접 ‘도시기록자’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기록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도시를 기록하는 마을’을 주제로 예비가록자가 기존의 지역기록자들을 인터뷰하는 작업을 했다. 참가자들 후기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더라도 그들을 인터뷰하니 내가 모르던 그 사람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됐다’는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시민이 시민을 기록할 때 생기는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잇다’, ‘이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활동가 한 분이 해주신 말이 인상 깊어서 전하고 싶다. ‘연결이 아니라 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기록이 모일 수 있고, 대화의 계기를 만드는 과정이 기록을 공유하는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감동적이었다. 성과지표는 기록물이 모인 개수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그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관계를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한 성과인 것 같다.
▶ 아카이브의 정치에 대해
“아카이브는 권력이 시작되는 곳이다. (중략) 아카이브의 통제 없이, 그렇지 않다면 기억의 통제 없이는 정치권력도 없다.”는 자크 데리다의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카이브는 국가가 통제하는 아카이브를 지칭한다. 공공기록의 핵심은 기록을 무한정 보존할 수 없으니 남길 것은 남기고, 없앨 것은 없애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의 존폐를 결정하는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남아있는 기록이 정말 올바른 평가에 의해 남겨진 것인지에 대한 의심. 그런 의미에서 이 국가가 통제하는 아카이브의 빈틈을 보충할 수 있는 게 시민의 기록 활동이 아닌가, 시민의 아카이브가 그 평가를 뒤집을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됐다.
▶ 청사포 해녀 이야기
청사포 해녀들의 이야기를 모은 적도 있다. 부산 사람들조차 부산에 해녀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때다. 보통 육지 해녀라고 해도 제주 출신인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은 부산 토박이셨다. 첫 인터뷰를 할 때, 사진 찍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으셔서 특히 공을 들여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해녀들은 매일 아침 바다의 상황을 보고 오늘 물질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당시에 저희 집이 멀어서 그 결정을 확인하지 못하고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그냥 청사포로 출발했다. 도착해서 '오늘 물질하지 않는다' 하시면 해녀들이 마을회관에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틈을 타 이야기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이야기하시는 것이, 해녀 생활에 대한 자부심에 대한 것이었다. 이 나이에 내가 쓸 돈을 내가 번다는 자부심. 이야기를 더 나누다보니 진솔한 이이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사를 할 때 “해녀가 귀걸이도 하네?”라는 손님의 말에 맞서 싸우기도 했고, 아무데서나 옷 갈아입는다며 손가락질 받았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셨다. 해녀들은 찬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나와 몸을 얼른 따뜻하게 하려고 옷을 밖에서 갈아입는데, 거기에서 나온 오해와 무시다.
자부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던 해녀 할머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천한 직업을 왜 기록하려고 하냐'는 이야기를 하셨다. 5월쯤부터 인터뷰를 시작해서 11월에 책이 나왔다. 결과물로 책이 나와 전시도 하고 초청해서 공연도 했다. 그러고 나니 처음에 표정이 안 좋았던 할머니가 손녀 보는 표정으로 저를 맞아주셨다.
그러니까, 아카이브의 정치를 말하며 말씀드린 것처럼 학술적으로는 국가의 기록들만 믿을 수는 없다거나 민간기록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지만 이분들에겐 아마 그런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천하다고 느꼈던 직업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기록으로 다뤄지고 책으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기록의 과정은 치유의 과정을 닮았다. <기록하는 여자들>의 사례에서도 글쓰기를 통해 트라우마가 해소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인터뷰라는 것 자체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인터뷰를 통해 가족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터뷰이들은 삶에서 중요한 지점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자신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과정들이 있었고, 이런 것이 기록의 순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 부산 안창마을 이야기
부산의 안창마을이라고, 언론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 지역의 기록을 맡은 경험도 있다. 과거에 정말 갈곳이 없거나 사업 망해서 들어오는 분들이 많았다. 옛날에는 입구도 잘 보이지 않는 숲길을 지나 올라가면 있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기록을 맡게 되면서 '내가 이들의 가난을 괜히 들추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주목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한 예시로 이곳은 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 교통편이 굉장히 중요한데, 어느 날 이 마을에 시내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 주민 사이에서 그 버스가 언제부터 들어왔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분은 1988년이다, 어떤 분은 1989년이다, 하시면서 의견이 갈렸다. 정확한 정보 기록을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1988년이 맞았다. 사실 이 버스 운행 시기 하나가 이들에게 참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안창마을에는 무허가 집들이 많고 도심에서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집값이 싸고, 못 사는 동네라는 시선 때문에 이 동네 주민들에게는 열등감이 있었는데, 버스가 다님으로써 그들도 내가 사는 곳이 ‘부산 시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버스가 다니게 된 사건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이런 내용을 조사하고 기록해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옮길 뿐이다. 우리가 지역을 변화시킨다기보다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을 찾아내려고 하고 돕는다. 기록은 왜 필요할까,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이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에 대해 더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같은 상황에서도 인간이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사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희가 정리하기에 기록하는 일은 역사의 빈틈을 채워 문화자산을 남기는 일, 마을의 권력을 평등하게 나누는 일, 지역 집단의 문화 다양성을 실현하는 일, 세대 간의 소통을 이루는 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위로하는 일, 인간이 살아온 방식을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기록을 경험하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다.
월간옥이네의 박누리 편집장님 이야기와 빨간집 기록활동가 배은희님의 이야기가 두 가지 이야기가 참 균형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이야기가 매달 매체를 발간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역동감이 느껴졌다면, 빨간집 이야기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록을 둘러싼 세 가지 주체가 있을 것이다. 인터뷰이, 인터뷰어, 독자. 그렇기에 지역이 변한다는 건 이 세 주체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 변화의 사례들을 두 분이 잘 들려주신 것 같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물성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책은 평균적인 발행 초판 부수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들이는 품에 비해 이런 물성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진다. 공간 운영도 그렇다. 물성의 힘에 대해 두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해주시면 용기가 날 것 같다. 또 기록하는 사람으로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나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하시면서 이야기 나누기를 회피하는 사람으로부터 이야길 끌어내는 팁을 알려주시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편집할 때 내가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지, 내가 이야기를 너무 과장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아닐지, 맥락에 맞지 않는 일을 지어내는 것은 아닐지 늘 고민이 된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좋은 질문이다. 물성이 가지는 힘. 저는 종이 잡지를 만들고 있지만 만들 때마다 ‘이게 뭘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만드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년 전에도 신문은 곧 사라진다고 이야기했었고, 예전에 옥천신문에서 일할 때도 그 생각을 했다. 월간옥이네를 처음 만들 때는 종이 잡지의 물성에 대한 것보다는 지역에서의 활동과 변화의 가치에 주안점을 두었다. 반대로 월간옥이네를 매호 만들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잡지를 받는 순간에 느끼는 감동들이 있다. 그것이 종이책, 종이 잡지를 현재까지 존재하게 만든 힘이 아닌가, 그리고 그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배은희 대표님의 이야길 들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우리가 현장에서 느낀 감정과 닮아 있을까 싶어 놀랐다. '기록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지역매체 기자는 카운슬러랑 역할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빨간집 사례에서 기록에 의한 치유를 이야기하셔서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종이책이 소수만 보는 매체이기 때문에 때문에 곧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의 파동, 그 감정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내 사진이 실린 것만으로도 책을 갖고 싶어진다. 제대로 기록한 책이면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잡지계의 조상인 <뿌리 깊은 나무>가 그렇지 않은가. (웃음) 출판업계의 사람들은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길 정설로 받아들인다. 앞으로 발행 부수는 적어져도 다양한 책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다양한 기록이 생겨나고 있고, 그 책들은 그것 자체로 귀중하다.
또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경우에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주셨는데,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준비된 멘트처럼 술술 나오기도 한다. 몇 가지 일상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사람이 인터뷰 대상으로 적절한지 어떤지를 판단할 수 있다. 주로 유명인을 인터뷰하는 지승호 작가의 이야길 들었는데, 인터뷰하기 위해 인터뷰이에 대한 조사를 한 달간 하고 질문을 400개나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는 분들은 사전자료가 없다. 질문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도 그분이 나왔을 만한 신문기사나 정보를 충분히 조사한다면 질문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세 번째 질문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한 사례를 들고 싶다. 인터뷰 대상은 어떤 '위안부' 할머니다. 할머니 표현 중에 ‘군인들이 나비처럼 몰려오는 것 같았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떼로 몰려오는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그걸 잘못 해석한 한 교수가 ‘이 분은 남자를 좋아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인터뷰어와 편집담당자가 얼마나 준비되어있느냐가 문제다. 준비되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본인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저희는 해석을 많이 하지않고, 그분이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 가장 중요한 기억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되도록 인터뷰이가 사용한 어투와 단어로 기록한다.
사실 인터뷰는 음성파일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해석은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도에 맞게끔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어느 정도의 준비 상태에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조금 덧붙이자면, 인터뷰를 하러 가게 되면, 제 경험상 “내 얘기 뭐라고 들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속내를 비추거나 타인이 나를 흉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그래서 일부러 수더분하게 이야길 한다. 그런 게 시골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좋게 다가가는 것 같다. 또 사전정보가 없을 때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관찰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인터뷰이의 집을 가면 텃밭에 고추 심어진 것을 보고 “올해 고추 농사는 어떠셨어요?” 하면서 다가가는 식이다. 저는 또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잘 건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보면 30분은 금방 간다. 그리고 내가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더 배워서 당신의 이야길 듣는 게 아니라는 신호를 주는 게 중요하다.
올해 읽었던 책 중에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이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는 ‘구술을 어떻게 듣고 기록할 것인가’라는 부제가 있는데, 책에서 기획을 왜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묻고 들을 것인지, 반대로 묻지 않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협업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오늘 참여자 분들과 같이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발견이 기록의 의미인 것 같고, 재발견이 거듭될수록 지역은 기존 질서와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기록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고, 한편으로는 반대로 '기록되지 않을 권리'도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맥락으로 '기록될 수 있는 권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해왔고, 또 '기록되지 않을 권력' 또한 강하게 작용되어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록이나 활동에 관한 연구나 실행에 관한 기록을 해야 할 때 너무 주관적인 결과물이 나올까봐 걱정이 된다. 오늘 사례를 들어보니 일반 시민이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객관성을 갖출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을지 궁금하다.
제 생각에 기록이라는 것은 절대 객관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계가 기록할 수는 없다. 또 개인이 하는 기록은 결국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객관적이냐는 판단을 하는 것도 결국 나다. 가장 주관적인 것이 가장 객관적인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다.
‘연결을 넘어선 연관’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인터뷰를 통해 사적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저도 감동받고 그분도 치유를 경험하는 순간을 종종 겪는다. 그러나 연결되는 시간이 무척 짧다는 생각이 든다. 늘 인터뷰를 끝내고 나면 약간의 공허함이 남고, 내가 저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알까 하는 질문이 찝찝함으로 남는다. 프로젝트가 다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그분들 생각이 난다. 그런 면에서 월간옥이네는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빨간집의 경우는 시스템이 좀 다르고 주로 의뢰 형식의 프로젝트가 많은데,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의 관계 유지가 궁금하다.
말씀드린 ‘연관-연결’에 대해서는 공동체 안에서의 기록 활동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겠다고 설명드린 부분이었다. 사실 저도 용역이 몇 개월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기에 처음엔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기간이 길다고 해서 기록을 더 잘 할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다른 기록자들의 고민도 똑같았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보면 개개인의 등장인물들의 스토리가 모두 있을 텐데, 그 사람의 기나긴 일생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한정된 범위 내에서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저는 항상 인터뷰가 끝나면 인터뷰이에게 검수를 받는다. 청사포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에도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죄책감이 있어서 명절에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 고민을 하다 이제는 사업 마지막에 결과집을 전해 드리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그렇게 관계의 절차를 만들어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저희가 사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기록물 발행 부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웹으로 볼 수 있게끔 자료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것 이외에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인 책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너무 공감하는 이야기다. 기록하면서 내가 너무 단면만 보는 것은 아닌지, 짧게 취재해서 이게 다인 것처럼 알리는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한다. 이건 1년을 해도 10년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이 단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로 기록한다. 단면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의 기록을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는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기록하는 사람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로 바꿔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시간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조금 얻은 것 같다. 오늘 두 분의 소감을 듣고 마무리하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기록을 하면 된다. 민간의 기록이 공공의 기록과 다른 결과 의미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기록이 다 다른 결과 의미를 가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은 일기와는 달리 사회적인 글쓰기인데, 이 기록이 더 의미를 가지려면 기록의 대상과 실력을 떠나서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나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이것으로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기록하는 이유일 수 있겠다. 그렇게 하다 보면 무언가가 이뤄져 있으리라 믿는다.
사회자님이 ‘어떻게 하면 기록하는 사람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멘트를 해주셨는데, 기록이 지역을 바꿨다기보다 기록을 통해 저라는 사람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이 경험은 제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인데, 이런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록 | 이승현
편집 | 자유, 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