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 산내마을소식지 고사리 이창림 편집장 오늘 말씀에 앞서 PPT에 적힌 ‘자유로운 삶’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무장애공간에서는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취지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한다. "공공기관 신축, 개축할 때 이동 약자에게 감수나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조례가 있는 자치단체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도 잘 챙겨보면 좋겠다. 산내면의 공간을 잘 돌아보고 모두가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공간인지 확인해보면 좋겠다. 관련된 내용을 산내의 집수리 봉사동아리 ‘두꺼비’에 제안해보기도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마음을 모으면 앞으로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주 삼달다방의 이상엽 선생님을 박수로 맞이하겠다. 
사진 |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의 발제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 
[첫 번째 손님. 제주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 누구나 자유로운 삶 
제주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 함께 온 사람들을 소개하고 싶다. 너무 사랑하고 애정하는 친구들이다. 한국의 장애인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이 사회에 변화를 추동하고, 현재도 내일 아침 지하철 출근 시위를 위해 삼각지역으로 나갈, 사랑하는 친구 이규식을 소개한다. 그 옆은 이규식 대표가 사회변화를 추동할 때 항상 그 옆을 지킨 활동지원사 김형준이다. (박수) 사회자분이 서두에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무장애공간은 사실 장애인만을 위한 공간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공간이다. 어느 공간이 무장애공간이 되면 모두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 공동체가 된다. 올해 우리 이규식 대표가 국회의사당 정문을 들이받아서 목에 금이 갔다. 3개월 정도 삼달다방에서 요양을 했다. 그때 김별아 소설가가 삼달다방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칼럼을 하나 썼다. 새로운 길을 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삼달다방을 표현하면서 ‘열린 공동체’라는 말을 해주셨다. 기회가 되면 공간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의 이 시간이 연대할 수 있는 계기이자 공간과 공간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오늘 이야기할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생각해 보면 이규식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지역사회에 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며 어떤 가치가 필요할지 고민할 때 나오는 단어가 바로 자유로운 삶이다. 이 단어와 삼달다방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누고자 한다. 
사진 |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의 발제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 
▶ 누구나 탈 수 있는 그네를 만드는 곳 저는 사람 좋아하고, 문화 관련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건설회사에서 20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고, 현재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기도 했고 올 한해 참 시끄러웠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사무총장이 제 아내다. 차별금지법을 만들어가는데 실질적으로 역할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건강한 세상과 삶을 위해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들이 담긴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공자님 말씀이 있다. “리인위미(里仁爲美)”라는 말인데, 이것처럼 마을공동체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가치와 생각들을 저는 담고 산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갔을 때 진정으로 나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앞서 삼달다방에 있는 그네 영상을 보겠다. 그네를 타는 휠체어 탄 장애인을 보며 ‘장애인이 그네를 타네?’ 정도를 생각하셨을지 모르겠다. 장애인이 그네를 타는 그림. 사실 이 친구는 태어나서 그네를 처음 탔다. 이 원초적 희열이 깃든 목소리가 들리셨는지 모르겠다. 그네를 탄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네를 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바로 할 수 있는 선택이지만, 장애인의 경우 아직까지는 같은 욕구가 생기더라도 그네를 탈 수 없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도 휠체어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장애인만 그네를 타도록 설정해두고 있다. 삼달다방은 장애인만 그네를 탈 수 있도록 제한하는 방식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탈 수 있는 그네를 만드는 곳이고 제가 지향하는 가치들이 담긴 공간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아이, 노인, 국적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자 했다. ▶ 삶과 꿈이 만나는 길을 찾는 사람 1991년부터 95년까지는 경기도 광주에서 도자기 공장을 했었다. 생존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할 수밖에 없었고, 종종 돈이 안 되는 기획을 하곤 했다. 인생 전반기는 제가 살고 싶은 삶보다는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삶이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사회와 공동체가 건강해지는 꿈을 꾸며 살았다. 그러면서 공공 성격의 기획을 했던 것이 여성장애인운동 초창기의 ‘빗장을 여는 사람들’ 활동이다. 정의당 배복주 의원 등이 당시 멤버였다. 여기에서 당시 간사였던 아내를 만나기도 했다. 또, 2013년 10월 17일 제주 강정으로 가는 배를 빌려서 책을 5만 권 정도 보내는 행사가 있었다.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14시간 거리의 뱃길을 만들고 선상문화제를 했다. 그 배가 세월호였다. 정확하게 6개월 뒤에 세월호가 가라앉았고, 두 달 정도 슬럼프에 빠졌다. 이후 광화문시위 전체 행사 기획을 했다. 이 과정들이 저에겐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민들과 만나는 시간은 이후 제주에서의 삶과도 연결이 되었다. 저는 돕는 사람을 돕는 기획들,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을 응원하는 활동들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소수자들을 지원하거나 여성 정신대 관련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또 전장연 활동 기획이나 가수 강허달림 콘서트 기획, 공간리모델링 작업도 지속적으로 해왔다. 앞서 말씀드린 김별아 소설가의 칼럼에서 저에 대한 표현 중에 ‘삶과 꿈이 만나는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처럼 살면서 꿈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제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저에게 던졌고, 그 대답이 삼달다방이었다. 삼달다방은 사람과 만나는 작업, 문화로 만나는 작업, 그리고 문화 속에서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진 | 삼달다방을 소개하고 있는 이상엽 대표
▶ 왜 제주인가 과거에는 이따금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삶의 희망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다 건강이 안 좋아지니 이렇게 살다가는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았다. 삼달다방은 하고 싶었던 일을 한번 실현해보자는 결심으로 시작하게 됐다. 제주 삼달리는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같았다. 전쟁 같은 20년간의 직장생활을 보내다가 제주 삼달리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을 받았다. 특히 원형적 제주의 느낌이 좋았다. 제주 시내의 사람들이 시골구석에서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냐고 약간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씀하실 때도 있다. 저는 그곳이 좋아서 간 사람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삼달리라는 마을이 준 희열이 30년간의 서울 생활보다 컸다. 그곳에서 사람을 잇는 일을 하고 싶었고, 살면서 한 번쯤은 꿈이나 상상을 현실로 실현해보고 싶었다. 삼달다방을 기획하면서 첫 번째 떠오른 질문은 ‘나는 다방을 왜 짓는가?’였는데, 삶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어떻게 쓰여질 공간인가’, ‘내가 가진 인적, 물적 자산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또 저만 혼자 행복해지는 삶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로 확장되어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들을 스케치하는 작업을 했다. 실제 도면을 그리지는 못하더라도 말과 그림으로 도면을 그리고, 소요 예산 편성이나 함께 해줄 사람들을 리스트업 했다. 그 당시에 저는 여성, 장애인 단체 쪽에서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야길 많이 듣던 사람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별로 상상해보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삼달다방을 시작하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관계의 상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 삼달다방을 통해서 보는 무장애공간의 의미 보통 무장애공간이라고 이야기하면 보통 화장실 턱을 없애거나 물리적 의미의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상상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근본적 가치는 ‘가치의 자유’다. 물리적 이유보다 지향점이 같은 곳으로 다다르지 않아서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공간을 만들 때도 가치와 지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는 콘텐츠와 이야기가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질적 의미에서의 배리어프리가 가능하고, 무장애공간이 가능하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것은 결국 가치와 따뜻한 연대와 시각, 열린 마음이지, 물리적인 공간만으로 대표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물리적 공간은 배리어프리에 있어 기본적인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치적으로 배리어프리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공간은 장애/비장애 여부, 국적, 성 정체성 등에서 차별이 있다면 결코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추구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삼달다방에도 최근 고민이 생겼다. 작년에 11년을 함께 지낸 반려견인 초코가 죽었다. 이 경험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칼럼으로 소개하기도 하면서 동물과의 연대도 고민하게 됐는데, 최근 강아지 한 마리가 찾아와 우리 공간에 새끼를 낳고, 새로운 고양이도 찾아왔다. 모두가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이야길 하면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 참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는 것 같다. 삼달다방은 모두 몸으로 직접 만드는 공간이었다. 첫 번째로 턱 없는 집을 상상했고, 모든 방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창문 높이도 휠체어에 맞게 설치되었다. 이런 공간은 비장애인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 역시강요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무장애공간에서는 비장애인도 편안하게 공간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런 가치들이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것은 화장실 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삼달다방에서는 ‘모두나 화장실’이라고 이름 짓고 불편함이 없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문화적 차별이 없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문화적으로 향유하고 즐기는 부분에서도 차별이 없어야 한다. 단순히 하드웨어뿐 아니라 문화콘텐츠적으로도 모두가 접근 가능한 형태의 배리어프리가 실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영화제를 기획하고 상영할 때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상영한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도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같이 일하고 같이 쉬는 공간을 지향한다. 쉼이 다시 우리 사회를 위해서 쓰여지길 기대한다. 들썩도 그런 공간이어서 연대하는 느낌이 든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일과 쉼의 공존 역시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사진 | 다양성을 존중하는 '모두나 화장실'에는 삼달다방의 가치가 담겨 있다. 
▶ 삼달다방 프로그램 1. 와상장애인의 제주여행 이상엽 : 와상장애인이 제주여행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 와상장애인은 비행기를 타기가 굉장히 어렵다. 누워서 이동하려면 6개 정도의 좌석을 비워야 하고, 그렇게 되면 비행기 삯만으로도 예산을 초과한다. 이런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그 당시 이 분은 제주여행이 꿈과 소원이라는 이야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없기에 배를 통해 제주로 오게 됐는데, 한 번은 이동수단 자체가 거의 없다는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 끝에 차량 펀딩을 통해서 리프트 차량으로 제주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지리산권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주 지역사회의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외교통수단은 거의 없다. 서울에는 약 40% 가까이 저상버스가 보급되어 있지만 지역사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시스템에 있어서는 장애인에게 한계가 많다. 예를 들어 구간과 구간이 연결되는 곳, 지자체 권역이 걸쳐져 있는 지역에서는 저상버스 운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와상장애인의 제주여행을 위해서는 리프트 차량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이를 위해 와상장애인 여행프로젝트를 통해 '노란 버스'를 만들었고, 현재 이 버스를 통해 많은 분들이 여행을 즐기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규식 대표도 자주 사용한다. 생각보다 이동이 삶에서 너무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해주시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갈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동권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이규식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한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다. 이규식:장애인은 이동을 위해서 택시를 타려면 장애인 콜택시(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이하 '장콜')를 부르는데, 아침에 택시를 부르면 언제 올지 모른다. 집에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5분도 안 되어서 택시가 올 때도 있고, 하루종일 걸려 올 때도 있다. 그런 부분이 어렵다. 이상엽 :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이라고 이야기하는 ‘장콜’은 정시성을 약속하기 어렵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른다. 삼달다방에서 장콜을 불렀을 때 4시간이 걸렸다. 실질적으로 40분 걸리는 거리를 가는데, 오전 9시에 부른 콜택시가 오후 1시에 왔다. 이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그래서 제주 장애인 콜택시 구조를 봤더니 성과급제로 되어있었다. 제주 인구 70만 명 중 50만 명이 제주 시내에 밀집해서 산다. 그러니 콜택시도 제주 시내에서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내 밖의 다른 지역은 가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된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이라면 장애인들이 어딜 가든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간이 일상적인 생활, 사람을 만나고 약속을 하는 일상을 즐길 수 없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기 위해 예약을 했는데 콜택시가 오지 않으면 장애인은 영화를 볼 수도 없다. 일상적 삶을 위해서 이동권은 매우 핵심적이고, 지역사회 상황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같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더라도 우리가 이용하는 이동수단들에 대해서는 사실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혜적 관점이 아니라 권리라는 시각에서 이동의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이규식 대표를 비롯한 분이 지하철 이동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차적인 목표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였다. 1999년 이후 휠체어리프트에서 장애인 추락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오이도역이나 발산역 같은 곳이 있다. 수동휠체어들이 전동휠체어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수동휠체어 중량 기준으로 만들어진 휠체어리프트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규식 대표와 같은 분들이 서울역 철로를 점거하면서 서울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냈다. 이후 서울에는 기본적인 수준의 이동권은 갖춰지긴 했지만, 아직도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장애인 이동권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다. 2. 이음동 만들기 이상엽 : 현재 대한민국 등록 장애인 인구가 260만 명 정도 된다. 그렇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 객실이 있는 호텔은 많지 않다. 어느 날 이규식 대표가 저에게 통장계좌를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500만원을 보내면서 장애인도 제주 한달살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 요청사항을 들었을 때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작업, 펀딩을 통해 십시일반 사람들을 잇는 작업을 했다. 현재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을 밑고 있는 박진, 정의당 의원 장혜영 이런 분들이 마음을 모으는 작업을 통해 건축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모금이 이뤄졌다. 또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해서 팔자에도 없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공간을 기획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장애인 당사자들의 욕구를 담아내는 일이었다. 장애인 여행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팀들을 초대해 욕구 조사를 했는데, 거기서 나온 의견이 취사시설, 목욕탕, 시선(하늘을 보는 창), 전등 같은 조건이었다. 여기에서 핵심은 당사자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이음동이다. 활동가와 장애인이 모두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첫 프로젝트는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 부부의 신혼여행이었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본적 욕구를 반영한, 장애인의 삶과 사랑을 담은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삼달다방은 공익활동가들의 쉼 공간을 지향한다. ‘짧은 여행, 긴 호흡’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진행하기도 했다.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만 해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분들은 대체적으로 지역사회를 잇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이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쉼을 통해 노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이런 활동을 했다. 3. 문화공간 만들기 이상엽 : 삼달다방은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다양한 인권 감수성에 기반한 환경, 장애 등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회, 북토크, 이야기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연다. 문화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공유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다락방을 중심으로 베이스캠프를 만들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캠프에는 다락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삼달다방은 모두를 환영한다는 가치를 담아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공간을 지향한다. 사실 이런 가치를 담은 것이 헌법 10조의 행복추구권이다. 누구나 행복할 자격과 권리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행복해지는데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가 배리어프리, 무장애공간이라는 의미의 뿌리가 된다. 저는 개인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행복하고 즐겁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세상과 사회가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고, 이후에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영상을 보면서 살아있는 이야기들 나누면 좋겠다. 
사진 |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감상하고 있는 참여자들의 뒷모습 이창림 : (영상을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말씀이 “앞으로도 멈추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았다. 세계적인 트렌드는 소수자, 차별받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사회에서 이런 차별적인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건 너무한 것 같다. 자본의 논리로는 '돈이 되면' 실행하는 것인데,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건 '돈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권리의 영역에서 우리가 정치에 요구하고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시민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돈이 들더라도 동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기본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현재 문제는 이런 개선을 장애인 당사자들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만 주장해서는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 영상을 여러 번 보셨고, 영상 속에 등장하기도 하신 이규식 대표님 말씀을 듣고 싶다. 이규식 : 저는 아침부터 싸우기 시작한다. 제가 삼각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환승을 하는데 주변 출구에서 어르신들이 미리미리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엘리베이터 타려고 나보다 빨리 간다. 저도 고집이 좀 세서 어르신들 뛰어가면 비켜주지 않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이 참 난감하다. 이렇게 탈 때 어르신들이 욕을 한다. 왜 우리끼리 자리다툼을 하고, 싸워야하는지 모르겠다. 이상엽 : 서울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길 때, 그러니까 전장연에서 2001년에 싸움을 세게 했을 때, 가장 많은 욕을 하던 분이 노인들이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집구석에 쳐박혀 있지, 왜 나와서 불편하게 하는지”라는 말을 쌍욕으로 했다. 그런데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그것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이었다. 이규식 대표의 말은 이렇게 엘리베이터를 함께 이용할 것인데, 왜 장애인만 시위를 처절하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서울에는 대부분 역사별로 1개 정도의 엘리베이터만 설치되어 있다. 지하철 역의 출입구마다 엘리베이터 하나씩 만들어지면 임산부, 노인, 장애인 누구나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엘리베이터 1개를 두고 노인과 장애인이 경쟁하도록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규식 : 서로 배려하면 좋겠다. 제가 외국에 나갔을 때 나이 든 분들과 장애인이 서로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봤다. 그걸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저렇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상엽 : 장애인에게 이상적인 환경으로 받아들여지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도 구조적으로 배리어프리에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배리어프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인적 요소들이다. 우리 사회가 개선되어야 할 지점도 바로 인적 서비스와 사람들의 인식 부분이다. 물리적 부분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서 같이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관계와 태도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 인식의 전환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좋겠다. 사실 매일 아침 지하철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작년 말에 법이 개정되긴 했다. 그것은 버스가 노후되어 교체해야 할 경우에는 저상버스로 교체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싸움을 통해 얻은 진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아직 시외로 나갈 수 있는 교통수단인 고속버스는 이용할 수 없다. 이 과정이 시범사업으로 운영되다가 이번 정부 들어서 관련 사업이 모두 중단되고 있다는 상황을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다. 현재는 그것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다. 이규식 : 이번 국회가 장애인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가 않아서 흐지부지 넘어가면 내년에도 또 불나게 싸워야 할 것 같다. (웃음) 내년까지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을 모아주시면 좋겠다. 이상엽 : 이런 절실함 속에서 지금까지 장애인 인권이 개선되고 변화되어온 것 같다.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여부는 이런 것들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권과 제주에서, 또 서울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이웃들을 찾고 불편을 개선하는 과정을, 절실함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감 있게 함께 풀어가면 좋겠다. 예를 들어 1층의 경사로를 설치하는 작업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역사회가 공동체와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을 우리가 같이 해나가면 좋겠다. 이창림 : 우리는 사실 장애인 인권운동에 빚지고 있다. 제가 서울에서 아이를 키울 때, 유아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려면 당연히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그런데 제 학창시절에는 지하철 어떤 구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실 이 장애인 운동에 육아를 하는 비장애인이 빚을 지고 있는 것인데, 그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이야기를 듣고 질문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다. 
사진 | 왼쪽부터 이상엽 대표, 서울장애인차별연대의 이규식 대표, 진행을 맡은 이창림 편집장 
많은 공감이 됐다. 아이가 어릴 때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유아차를 앞뒤로 들고 탄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서울 지하철역에 리프트와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대한민국이 점점 좋아지고 있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저것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처절한 투쟁이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왜 그걸 관심 있게 보지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다. 이상엽 :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 이후에 이준석이 전장연에게 '좌표'를 찍었다. 영상 속에서는 시민들이 활동가들에게 욕하는 장면이 많지만, 현장에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실감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한 예로 전장연 후원자가 한 300여 명 정도 늘었다. 또, 같은 시기에 벌금을 내는 데 보태라고 2억 원 정도를 후원해주셨다. 한 사람이 많은 금액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만 원, 이만 원이 모여서 2억 원이 된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진보되었고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큰 흐름과 방향으로 봤을 때 우리 사회에 문제 있는 시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부분을 크게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고를 더 확장시키면 좋겠다.
저희 집은 장애인이 묵어갈 수 있는 숙소라서 가끔 장애인 손님들이 오시는데, 이때마다 분개하게 된다. 대부분 KTX를 타고 남원역에서 내려서 장콜을 불러서 저희 집으로 오신다. 한번은 오후 4시에 장콜을 예약했는데, 저녁 9시에 도착했다. 현재 남원시에는 장콜이 6대가 운영되고 있다. 주말에는 2대만 예약 가능하다. 만약 산내에 있는 제가 이 택시를 부르면 오후 2시 이전에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장콜 기사들은 4시에 퇴근하기 때문이다. 4시 이후에는 이용할 수 없다. 그러니 장애인은 오후 4시 이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더불어 남원에는 시내, 시외를 통틀어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다. 산내면 인구 2,000명 중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1,500명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버스 문제는 장기적으로라도 해결이 되어야 하고, 그런 부분이 개선되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을에도 이웃 주민들이 돌아가며 장애인 활동 보조를 하는 좋은 사례들이 있다. 아직까지 저에게는 산내는 천국이지만 경제적, 신체적 능력이 사라지는 시기를 준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상엽 : 장애인 이동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보통 '소수'라는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그러나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 인구가 6% 정도 되고,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노인이 13% 정도 된다. 게다가 일시적 장애나 유아차를 끄는 사람들을 합하면 전국 인구의 20% 이상이 된다. 교통약자의 범주를 그렇게 보았을 때 이들을 결코 소수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나 보건복지부 등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소수자의 문제’라고 칭하는데, 이렇게 말해야 예산 자원을 분배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삼달다방에서는 아까 말씀드렸듯 당사자 욕구 중심의 공간을 배치하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예를 들어 바비큐를 구워주지 않고 스스로 구울 수 있게 한다. 장애인이 스스로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시설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상 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만들거나 실천해나갈 때 지역사회에서 누구든 같이 살 수 있는 사회와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원에도 저상버스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 함께 요구해보면 어떨까? 이것이 장애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인과 임산부, 나아가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좋겠다. 비장애인이 컵에 달린 손잡이나 자동문을 바라볼 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라고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편하게 이용한다. 장애인에게 불편하지 않은 시설은 누구에게나 좋다. 다름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내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삶의 조건들을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장애인 사회의 의식수준이 더 발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기엔 한국사회는 이미 너무 많이 발전되어 있다. 그러면 장애인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런 태도로는 종국에는 함께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지역사회에서는 그런 인식과 가치를 전환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삶의 공간을 하나씩 변화시켜나가고, 제도를 변화시킨다면 자유로운 삶이 가능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이규식 대표는 출근 시간에 지하철 시위를 하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왕십리에서 출발해서 삼각지까지 간다. 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활동지원 서비스를 하는 김형진은 아침잠이 굉장히 많은데도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제가 보기에는 이규식이 투사가 아니라 김형진이 투사인 것 같다. (웃음)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활동지원 서비스다.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해 다음 달이면 10년이 되는 김형진 활동지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 김형진 : 이규식 대표님 활동지원 10년 차 김형진이라고 한다. 활동지원이라는 것이 장애인들에게 있어 기본적인 권리와 서비스다. 주변에서 이런 일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봉사 활동 하나보다’, ‘좋은 일 한다’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직업이고, 장애인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일이다. 한 예로 제가 만약에 좀 늦거나 하면 이규식 대표님은 갑자기 물을 안 마시기 시작한다. 그래서 왜 물을 안 마시냐고 하면 “네가 없잖아”라고 말씀하신다. 저를 포함해서 비장애인들은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을 고민을 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안고 산다. 어느 책에서 본 문구를 인용하면, 장애인은 기본적으로 마이너스의 삶을 살다가 활동지원 제도를 통해 비장애인과 동등한 제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활동지원 서비스가 무척 중요한 제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진 | 김형진 활동지원사가 마이크를 들고 한 마디 하고 있다. 
활동 지원을 10년 정도 했다고 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는지, 이 부분이 제도적으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김형진 : 둘이 성격이 반대다. MBTI도 반대다. 반대가 더 잘 맞는다고 하지 않나. (웃음) 이규식 : (잘 맞지 않는다면) 돈도 적게 주는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나. 이상엽 : 추가설명을 조금 더 드리면, 이규식 대표 같은 경우에는 한 달에 720시간을 지원받을 수 있어서 (장애정도에 따라 월 47시간에서 최대 720시간까지 정부로부터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일상적 삶을 유지하는 데 거의 지장이 없다. 활동지원 서비스의 예산 구조를 보면 보건복지부 예산, 광역 지자체 예산, 기초자치단체 예산 이렇게 세 가지 형태로 되어있다. 사실 여기에서 서울과 지방의 지역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남원시는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월 180시간이라고 하셨는데, 굉장히 부족하다. 사실 이런 것들은 광역자치단체에서 결정되게끔 해야 한다.
2010년쯤에 서울 창신동 낙산 쪽에 살았다. 그때 가까운 곳에 노들야학이 있어서 유아차를 끌고 노들야학에 가곤 했다. 저는 대표님을 여러 번 뵀다. 네팔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자가격리를 해야 할 상황이 되어서 삼달다방에서 지냈는데 오늘 지리산쌀롱에 오신다고 해서 너무 반가웠다. 저도 매달 노들야학에 소액 후원하고 있는데, 여기 와 있으면서 동네에서 제가 얻은 양파, 감자들을 보내드리기도 했다. 노들야학에서 저녁 식사 한 끼를 위한 투쟁도 하지 않았나. 지리산에서 나는 것들이 많이 있으니 노들야학에 좋은 농산물을 보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상엽 : 노들야학은 제가 리모델링을 진행한 곳이다. 현재는 식당도 있고 활동가 100여 명이 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그런 선한 연대의 마음은 전국에서 모이기도 한다. 오늘 지리산쌀롱도 ‘지리산이음’에서 진행되지만, 앞서 본 영상에서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여성이 계신 단체 이름도 ‘이음’이다. 그만큼 좋은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때만큼 삶의 희망을 느끼는 순간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같이 연대하고 손잡고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 입각해서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함께 하는 마음도 거기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규식 : 제가 어릴 때 이곳을 와보고 처음이다. (이규식 대표는 함양 휴천면에서 산 경험이 있다.) 옛날 기억보다 많이 변했다. 옛날엔 산골짜기에 길도 없었다. 지금 보니 길도 좋아져서 기분이 새롭다. 많은 사람들 보니 좋았다. 감사하다. 이창림 : 저녁 메뉴를 고를 때 '나도 식당에 들어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뭐가 맛있을까?'를 기준으로 모두가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동네, 사회가 되면 좋겠다. 올해 준비한 쌀롱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기록 | 이승현 편집 | 자유, 누리 |
11/24 “무장애공간”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2022년 11월 24일 목요일 14:00
@남원시 산내면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
발제 | 제주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
게스트 |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규식 대표
진행 | 남원 산내마을소식지 고사리 이창림 편집장
기획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남원 산내마을소식지 고사리 이창림 편집장
오늘 말씀에 앞서 PPT에 적힌 ‘자유로운 삶’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무장애공간에서는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취지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한다. "공공기관 신축, 개축할 때 이동 약자에게 감수나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조례가 있는 자치단체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도 잘 챙겨보면 좋겠다. 산내면의 공간을 잘 돌아보고 모두가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공간인지 확인해보면 좋겠다. 관련된 내용을 산내의 집수리 봉사동아리 ‘두꺼비’에 제안해보기도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마음을 모으면 앞으로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주 삼달다방의 이상엽 선생님을 박수로 맞이하겠다.
사진 |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의 발제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
[첫 번째 손님. 제주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
누구나 자유로운 삶
제주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
함께 온 사람들을 소개하고 싶다. 너무 사랑하고 애정하는 친구들이다. 한국의 장애인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이 사회에 변화를 추동하고, 현재도 내일 아침 지하철 출근 시위를 위해 삼각지역으로 나갈, 사랑하는 친구 이규식을 소개한다. 그 옆은 이규식 대표가 사회변화를 추동할 때 항상 그 옆을 지킨 활동지원사 김형준이다. (박수)
사회자분이 서두에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무장애공간은 사실 장애인만을 위한 공간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공간이다. 어느 공간이 무장애공간이 되면 모두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 공동체가 된다.
올해 우리 이규식 대표가 국회의사당 정문을 들이받아서 목에 금이 갔다. 3개월 정도 삼달다방에서 요양을 했다. 그때 김별아 소설가가 삼달다방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칼럼을 하나 썼다. 새로운 길을 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삼달다방을 표현하면서 ‘열린 공동체’라는 말을 해주셨다. 기회가 되면 공간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의 이 시간이 연대할 수 있는 계기이자 공간과 공간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오늘 이야기할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생각해 보면 이규식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지역사회에 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며 어떤 가치가 필요할지 고민할 때 나오는 단어가 바로 자유로운 삶이다. 이 단어와 삼달다방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누고자 한다.
사진 | 삼달다방 이상엽 대표의 발제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
▶ 누구나 탈 수 있는 그네를 만드는 곳
저는 사람 좋아하고, 문화 관련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건설회사에서 20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고, 현재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기도 했고 올 한해 참 시끄러웠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사무총장이 제 아내다. 차별금지법을 만들어가는데 실질적으로 역할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건강한 세상과 삶을 위해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들이 담긴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공자님 말씀이 있다. “리인위미(里仁爲美)”라는 말인데, 이것처럼 마을공동체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가치와 생각들을 저는 담고 산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갔을 때 진정으로 나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앞서 삼달다방에 있는 그네 영상을 보겠다. 그네를 타는 휠체어 탄 장애인을 보며 ‘장애인이 그네를 타네?’ 정도를 생각하셨을지 모르겠다. 장애인이 그네를 타는 그림. 사실 이 친구는 태어나서 그네를 처음 탔다. 이 원초적 희열이 깃든 목소리가 들리셨는지 모르겠다. 그네를 탄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네를 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바로 할 수 있는 선택이지만, 장애인의 경우 아직까지는 같은 욕구가 생기더라도 그네를 탈 수 없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도 휠체어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장애인만 그네를 타도록 설정해두고 있다. 삼달다방은 장애인만 그네를 탈 수 있도록 제한하는 방식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탈 수 있는 그네를 만드는 곳이고 제가 지향하는 가치들이 담긴 공간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아이, 노인, 국적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자 했다.
▶ 삶과 꿈이 만나는 길을 찾는 사람
1991년부터 95년까지는 경기도 광주에서 도자기 공장을 했었다. 생존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할 수밖에 없었고, 종종 돈이 안 되는 기획을 하곤 했다. 인생 전반기는 제가 살고 싶은 삶보다는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삶이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사회와 공동체가 건강해지는 꿈을 꾸며 살았다. 그러면서 공공 성격의 기획을 했던 것이 여성장애인운동 초창기의 ‘빗장을 여는 사람들’ 활동이다. 정의당 배복주 의원 등이 당시 멤버였다. 여기에서 당시 간사였던 아내를 만나기도 했다.
또, 2013년 10월 17일 제주 강정으로 가는 배를 빌려서 책을 5만 권 정도 보내는 행사가 있었다.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14시간 거리의 뱃길을 만들고 선상문화제를 했다. 그 배가 세월호였다. 정확하게 6개월 뒤에 세월호가 가라앉았고, 두 달 정도 슬럼프에 빠졌다. 이후 광화문시위 전체 행사 기획을 했다. 이 과정들이 저에겐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민들과 만나는 시간은 이후 제주에서의 삶과도 연결이 되었다.
저는 돕는 사람을 돕는 기획들,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을 응원하는 활동들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소수자들을 지원하거나 여성 정신대 관련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또 전장연 활동 기획이나 가수 강허달림 콘서트 기획, 공간리모델링 작업도 지속적으로 해왔다.
앞서 말씀드린 김별아 소설가의 칼럼에서 저에 대한 표현 중에 ‘삶과 꿈이 만나는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처럼 살면서 꿈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제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저에게 던졌고, 그 대답이 삼달다방이었다. 삼달다방은 사람과 만나는 작업, 문화로 만나는 작업, 그리고 문화 속에서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진 | 삼달다방을 소개하고 있는 이상엽 대표
▶ 왜 제주인가
과거에는 이따금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삶의 희망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다 건강이 안 좋아지니 이렇게 살다가는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았다. 삼달다방은 하고 싶었던 일을 한번 실현해보자는 결심으로 시작하게 됐다.
제주 삼달리는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같았다. 전쟁 같은 20년간의 직장생활을 보내다가 제주 삼달리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을 받았다. 특히 원형적 제주의 느낌이 좋았다. 제주 시내의 사람들이 시골구석에서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냐고 약간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씀하실 때도 있다. 저는 그곳이 좋아서 간 사람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삼달리라는 마을이 준 희열이 30년간의 서울 생활보다 컸다. 그곳에서 사람을 잇는 일을 하고 싶었고, 살면서 한 번쯤은 꿈이나 상상을 현실로 실현해보고 싶었다.
삼달다방을 기획하면서 첫 번째 떠오른 질문은 ‘나는 다방을 왜 짓는가?’였는데, 삶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어떻게 쓰여질 공간인가’, ‘내가 가진 인적, 물적 자산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또 저만 혼자 행복해지는 삶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로 확장되어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들을 스케치하는 작업을 했다. 실제 도면을 그리지는 못하더라도 말과 그림으로 도면을 그리고, 소요 예산 편성이나 함께 해줄 사람들을 리스트업 했다.
그 당시에 저는 여성, 장애인 단체 쪽에서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야길 많이 듣던 사람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별로 상상해보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삼달다방을 시작하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관계의 상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 삼달다방을 통해서 보는 무장애공간의 의미
보통 무장애공간이라고 이야기하면 보통 화장실 턱을 없애거나 물리적 의미의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상상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근본적 가치는 ‘가치의 자유’다.
물리적 이유보다 지향점이 같은 곳으로 다다르지 않아서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공간을 만들 때도 가치와 지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는 콘텐츠와 이야기가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질적 의미에서의 배리어프리가 가능하고, 무장애공간이 가능하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것은 결국 가치와 따뜻한 연대와 시각, 열린 마음이지, 물리적인 공간만으로 대표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물리적 공간은 배리어프리에 있어 기본적인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치적으로 배리어프리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공간은 장애/비장애 여부, 국적, 성 정체성 등에서 차별이 있다면 결코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추구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삼달다방에도 최근 고민이 생겼다. 작년에 11년을 함께 지낸 반려견인 초코가 죽었다. 이 경험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칼럼으로 소개하기도 하면서 동물과의 연대도 고민하게 됐는데, 최근 강아지 한 마리가 찾아와 우리 공간에 새끼를 낳고, 새로운 고양이도 찾아왔다. 모두가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이야길 하면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 참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는 것 같다.
삼달다방은 모두 몸으로 직접 만드는 공간이었다. 첫 번째로 턱 없는 집을 상상했고, 모든 방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창문 높이도 휠체어에 맞게 설치되었다. 이런 공간은 비장애인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 역시강요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무장애공간에서는 비장애인도 편안하게 공간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런 가치들이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것은 화장실 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삼달다방에서는 ‘모두나 화장실’이라고 이름 짓고 불편함이 없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문화적 차별이 없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문화적으로 향유하고 즐기는 부분에서도 차별이 없어야 한다. 단순히 하드웨어뿐 아니라 문화콘텐츠적으로도 모두가 접근 가능한 형태의 배리어프리가 실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영화제를 기획하고 상영할 때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상영한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도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같이 일하고 같이 쉬는 공간을 지향한다. 쉼이 다시 우리 사회를 위해서 쓰여지길 기대한다. 들썩도 그런 공간이어서 연대하는 느낌이 든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일과 쉼의 공존 역시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사진 | 다양성을 존중하는 '모두나 화장실'에는 삼달다방의 가치가 담겨 있다.
▶ 삼달다방 프로그램
1. 와상장애인의 제주여행
이상엽 : 와상장애인이 제주여행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 와상장애인은 비행기를 타기가 굉장히 어렵다. 누워서 이동하려면 6개 정도의 좌석을 비워야 하고, 그렇게 되면 비행기 삯만으로도 예산을 초과한다. 이런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그 당시 이 분은 제주여행이 꿈과 소원이라는 이야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없기에 배를 통해 제주로 오게 됐는데, 한 번은 이동수단 자체가 거의 없다는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 끝에 차량 펀딩을 통해서 리프트 차량으로 제주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지리산권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주 지역사회의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외교통수단은 거의 없다. 서울에는 약 40% 가까이 저상버스가 보급되어 있지만 지역사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시스템에 있어서는 장애인에게 한계가 많다. 예를 들어 구간과 구간이 연결되는 곳, 지자체 권역이 걸쳐져 있는 지역에서는 저상버스 운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와상장애인의 제주여행을 위해서는 리프트 차량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이를 위해 와상장애인 여행프로젝트를 통해 '노란 버스'를 만들었고, 현재 이 버스를 통해 많은 분들이 여행을 즐기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규식 대표도 자주 사용한다. 생각보다 이동이 삶에서 너무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해주시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갈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동권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이규식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한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다.
이규식:장애인은 이동을 위해서 택시를 타려면 장애인 콜택시(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이하 '장콜')를 부르는데, 아침에 택시를 부르면 언제 올지 모른다. 집에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5분도 안 되어서 택시가 올 때도 있고, 하루종일 걸려 올 때도 있다. 그런 부분이 어렵다.
이상엽 :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이라고 이야기하는 ‘장콜’은 정시성을 약속하기 어렵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른다. 삼달다방에서 장콜을 불렀을 때 4시간이 걸렸다. 실질적으로 40분 걸리는 거리를 가는데, 오전 9시에 부른 콜택시가 오후 1시에 왔다. 이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그래서 제주 장애인 콜택시 구조를 봤더니 성과급제로 되어있었다. 제주 인구 70만 명 중 50만 명이 제주 시내에 밀집해서 산다. 그러니 콜택시도 제주 시내에서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내 밖의 다른 지역은 가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된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이라면 장애인들이 어딜 가든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간이 일상적인 생활, 사람을 만나고 약속을 하는 일상을 즐길 수 없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기 위해 예약을 했는데 콜택시가 오지 않으면 장애인은 영화를 볼 수도 없다.
일상적 삶을 위해서 이동권은 매우 핵심적이고, 지역사회 상황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같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더라도 우리가 이용하는 이동수단들에 대해서는 사실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혜적 관점이 아니라 권리라는 시각에서 이동의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이규식 대표를 비롯한 분이 지하철 이동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차적인 목표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였다. 1999년 이후 휠체어리프트에서 장애인 추락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오이도역이나 발산역 같은 곳이 있다. 수동휠체어들이 전동휠체어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수동휠체어 중량 기준으로 만들어진 휠체어리프트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규식 대표와 같은 분들이 서울역 철로를 점거하면서 서울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냈다. 이후 서울에는 기본적인 수준의 이동권은 갖춰지긴 했지만, 아직도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장애인 이동권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다.
2. 이음동 만들기
이상엽 : 현재 대한민국 등록 장애인 인구가 260만 명 정도 된다. 그렇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 객실이 있는 호텔은 많지 않다. 어느 날 이규식 대표가 저에게 통장계좌를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500만원을 보내면서 장애인도 제주 한달살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 요청사항을 들었을 때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작업, 펀딩을 통해 십시일반 사람들을 잇는 작업을 했다.
현재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을 밑고 있는 박진, 정의당 의원 장혜영 이런 분들이 마음을 모으는 작업을 통해 건축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모금이 이뤄졌다. 또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해서 팔자에도 없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공간을 기획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장애인 당사자들의 욕구를 담아내는 일이었다. 장애인 여행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팀들을 초대해 욕구 조사를 했는데, 거기서 나온 의견이 취사시설, 목욕탕, 시선(하늘을 보는 창), 전등 같은 조건이었다. 여기에서 핵심은 당사자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이음동이다. 활동가와 장애인이 모두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첫 프로젝트는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 부부의 신혼여행이었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본적 욕구를 반영한, 장애인의 삶과 사랑을 담은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삼달다방은 공익활동가들의 쉼 공간을 지향한다. ‘짧은 여행, 긴 호흡’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진행하기도 했다.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만 해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분들은 대체적으로 지역사회를 잇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이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쉼을 통해 노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이런 활동을 했다.
3. 문화공간 만들기
이상엽 : 삼달다방은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다양한 인권 감수성에 기반한 환경, 장애 등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회, 북토크, 이야기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연다. 문화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공유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다락방을 중심으로 베이스캠프를 만들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캠프에는 다락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삼달다방은 모두를 환영한다는 가치를 담아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공간을 지향한다. 사실 이런 가치를 담은 것이 헌법 10조의 행복추구권이다. 누구나 행복할 자격과 권리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행복해지는데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가 배리어프리, 무장애공간이라는 의미의 뿌리가 된다.
저는 개인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행복하고 즐겁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세상과 사회가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고, 이후에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영상을 보면서 살아있는 이야기들 나누면 좋겠다.
사진 |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감상하고 있는 참여자들의 뒷모습
이창림 : (영상을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말씀이 “앞으로도 멈추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았다. 세계적인 트렌드는 소수자, 차별받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사회에서 이런 차별적인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건 너무한 것 같다. 자본의 논리로는 '돈이 되면' 실행하는 것인데,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건 '돈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권리의 영역에서 우리가 정치에 요구하고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시민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돈이 들더라도 동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기본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현재 문제는 이런 개선을 장애인 당사자들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만 주장해서는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 영상을 여러 번 보셨고, 영상 속에 등장하기도 하신 이규식 대표님 말씀을 듣고 싶다.
이규식 : 저는 아침부터 싸우기 시작한다. 제가 삼각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환승을 하는데 주변 출구에서 어르신들이 미리미리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엘리베이터 타려고 나보다 빨리 간다. 저도 고집이 좀 세서 어르신들 뛰어가면 비켜주지 않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이 참 난감하다. 이렇게 탈 때 어르신들이 욕을 한다. 왜 우리끼리 자리다툼을 하고, 싸워야하는지 모르겠다.
이상엽 : 서울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길 때, 그러니까 전장연에서 2001년에 싸움을 세게 했을 때, 가장 많은 욕을 하던 분이 노인들이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집구석에 쳐박혀 있지, 왜 나와서 불편하게 하는지”라는 말을 쌍욕으로 했다. 그런데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그것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이었다. 이규식 대표의 말은 이렇게 엘리베이터를 함께 이용할 것인데, 왜 장애인만 시위를 처절하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서울에는 대부분 역사별로 1개 정도의 엘리베이터만 설치되어 있다. 지하철 역의 출입구마다 엘리베이터 하나씩 만들어지면 임산부, 노인, 장애인 누구나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엘리베이터 1개를 두고 노인과 장애인이 경쟁하도록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규식 : 서로 배려하면 좋겠다. 제가 외국에 나갔을 때 나이 든 분들과 장애인이 서로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봤다. 그걸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저렇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상엽 : 장애인에게 이상적인 환경으로 받아들여지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도 구조적으로 배리어프리에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배리어프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인적 요소들이다. 우리 사회가 개선되어야 할 지점도 바로 인적 서비스와 사람들의 인식 부분이다. 물리적 부분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서 같이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관계와 태도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 인식의 전환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좋겠다. 사실 매일 아침 지하철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작년 말에 법이 개정되긴 했다. 그것은 버스가 노후되어 교체해야 할 경우에는 저상버스로 교체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싸움을 통해 얻은 진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아직 시외로 나갈 수 있는 교통수단인 고속버스는 이용할 수 없다. 이 과정이 시범사업으로 운영되다가 이번 정부 들어서 관련 사업이 모두 중단되고 있다는 상황을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다. 현재는 그것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다.
이규식 : 이번 국회가 장애인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가 않아서 흐지부지 넘어가면 내년에도 또 불나게 싸워야 할 것 같다. (웃음) 내년까지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을 모아주시면 좋겠다.
이상엽 : 이런 절실함 속에서 지금까지 장애인 인권이 개선되고 변화되어온 것 같다.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여부는 이런 것들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권과 제주에서, 또 서울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이웃들을 찾고 불편을 개선하는 과정을, 절실함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감 있게 함께 풀어가면 좋겠다. 예를 들어 1층의 경사로를 설치하는 작업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역사회가 공동체와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을 우리가 같이 해나가면 좋겠다.
이창림 : 우리는 사실 장애인 인권운동에 빚지고 있다. 제가 서울에서 아이를 키울 때, 유아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려면 당연히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그런데 제 학창시절에는 지하철 어떤 구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실 이 장애인 운동에 육아를 하는 비장애인이 빚을 지고 있는 것인데, 그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이야기를 듣고 질문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다.
사진 | 왼쪽부터 이상엽 대표, 서울장애인차별연대의 이규식 대표, 진행을 맡은 이창림 편집장
많은 공감이 됐다. 아이가 어릴 때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유아차를 앞뒤로 들고 탄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서울 지하철역에 리프트와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대한민국이 점점 좋아지고 있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저것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처절한 투쟁이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왜 그걸 관심 있게 보지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다.
이상엽 :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 이후에 이준석이 전장연에게 '좌표'를 찍었다. 영상 속에서는 시민들이 활동가들에게 욕하는 장면이 많지만, 현장에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실감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한 예로 전장연 후원자가 한 300여 명 정도 늘었다. 또, 같은 시기에 벌금을 내는 데 보태라고 2억 원 정도를 후원해주셨다. 한 사람이 많은 금액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만 원, 이만 원이 모여서 2억 원이 된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진보되었고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큰 흐름과 방향으로 봤을 때 우리 사회에 문제 있는 시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부분을 크게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고를 더 확장시키면 좋겠다.
저희 집은 장애인이 묵어갈 수 있는 숙소라서 가끔 장애인 손님들이 오시는데, 이때마다 분개하게 된다. 대부분 KTX를 타고 남원역에서 내려서 장콜을 불러서 저희 집으로 오신다. 한번은 오후 4시에 장콜을 예약했는데, 저녁 9시에 도착했다. 현재 남원시에는 장콜이 6대가 운영되고 있다. 주말에는 2대만 예약 가능하다. 만약 산내에 있는 제가 이 택시를 부르면 오후 2시 이전에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장콜 기사들은 4시에 퇴근하기 때문이다. 4시 이후에는 이용할 수 없다. 그러니 장애인은 오후 4시 이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더불어 남원에는 시내, 시외를 통틀어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다. 산내면 인구 2,000명 중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1,500명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버스 문제는 장기적으로라도 해결이 되어야 하고, 그런 부분이 개선되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을에도 이웃 주민들이 돌아가며 장애인 활동 보조를 하는 좋은 사례들이 있다. 아직까지 저에게는 산내는 천국이지만 경제적, 신체적 능력이 사라지는 시기를 준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상엽 : 장애인 이동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보통 '소수'라는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그러나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 인구가 6% 정도 되고,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노인이 13% 정도 된다. 게다가 일시적 장애나 유아차를 끄는 사람들을 합하면 전국 인구의 20% 이상이 된다. 교통약자의 범주를 그렇게 보았을 때 이들을 결코 소수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나 보건복지부 등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소수자의 문제’라고 칭하는데, 이렇게 말해야 예산 자원을 분배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삼달다방에서는 아까 말씀드렸듯 당사자 욕구 중심의 공간을 배치하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예를 들어 바비큐를 구워주지 않고 스스로 구울 수 있게 한다. 장애인이 스스로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시설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상 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만들거나 실천해나갈 때 지역사회에서 누구든 같이 살 수 있는 사회와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원에도 저상버스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 함께 요구해보면 어떨까? 이것이 장애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인과 임산부, 나아가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좋겠다. 비장애인이 컵에 달린 손잡이나 자동문을 바라볼 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라고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편하게 이용한다. 장애인에게 불편하지 않은 시설은 누구에게나 좋다.
다름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내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삶의 조건들을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장애인 사회의 의식수준이 더 발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기엔 한국사회는 이미 너무 많이 발전되어 있다. 그러면 장애인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런 태도로는 종국에는 함께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지역사회에서는 그런 인식과 가치를 전환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삶의 공간을 하나씩 변화시켜나가고, 제도를 변화시킨다면 자유로운 삶이 가능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이규식 대표는 출근 시간에 지하철 시위를 하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왕십리에서 출발해서 삼각지까지 간다. 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활동지원 서비스를 하는 김형진은 아침잠이 굉장히 많은데도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제가 보기에는 이규식이 투사가 아니라 김형진이 투사인 것 같다. (웃음)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활동지원 서비스다.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해 다음 달이면 10년이 되는 김형진 활동지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
김형진 : 이규식 대표님 활동지원 10년 차 김형진이라고 한다. 활동지원이라는 것이 장애인들에게 있어 기본적인 권리와 서비스다. 주변에서 이런 일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봉사 활동 하나보다’, ‘좋은 일 한다’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직업이고, 장애인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일이다. 한 예로 제가 만약에 좀 늦거나 하면 이규식 대표님은 갑자기 물을 안 마시기 시작한다. 그래서 왜 물을 안 마시냐고 하면 “네가 없잖아”라고 말씀하신다. 저를 포함해서 비장애인들은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을 고민을 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안고 산다. 어느 책에서 본 문구를 인용하면, 장애인은 기본적으로 마이너스의 삶을 살다가 활동지원 제도를 통해 비장애인과 동등한 제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활동지원 서비스가 무척 중요한 제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진 | 김형진 활동지원사가 마이크를 들고 한 마디 하고 있다.
활동 지원을 10년 정도 했다고 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는지, 이 부분이 제도적으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김형진 : 둘이 성격이 반대다. MBTI도 반대다. 반대가 더 잘 맞는다고 하지 않나. (웃음)
이규식 : (잘 맞지 않는다면) 돈도 적게 주는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나.
이상엽 : 추가설명을 조금 더 드리면, 이규식 대표 같은 경우에는 한 달에 720시간을 지원받을 수 있어서 (장애정도에 따라 월 47시간에서 최대 720시간까지 정부로부터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일상적 삶을 유지하는 데 거의 지장이 없다. 활동지원 서비스의 예산 구조를 보면 보건복지부 예산, 광역 지자체 예산, 기초자치단체 예산 이렇게 세 가지 형태로 되어있다. 사실 여기에서 서울과 지방의 지역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남원시는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월 180시간이라고 하셨는데, 굉장히 부족하다. 사실 이런 것들은 광역자치단체에서 결정되게끔 해야 한다.
2010년쯤에 서울 창신동 낙산 쪽에 살았다. 그때 가까운 곳에 노들야학이 있어서 유아차를 끌고 노들야학에 가곤 했다. 저는 대표님을 여러 번 뵀다. 네팔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자가격리를 해야 할 상황이 되어서 삼달다방에서 지냈는데 오늘 지리산쌀롱에 오신다고 해서 너무 반가웠다. 저도 매달 노들야학에 소액 후원하고 있는데, 여기 와 있으면서 동네에서 제가 얻은 양파, 감자들을 보내드리기도 했다. 노들야학에서 저녁 식사 한 끼를 위한 투쟁도 하지 않았나. 지리산에서 나는 것들이 많이 있으니 노들야학에 좋은 농산물을 보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상엽 : 노들야학은 제가 리모델링을 진행한 곳이다. 현재는 식당도 있고 활동가 100여 명이 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그런 선한 연대의 마음은 전국에서 모이기도 한다. 오늘 지리산쌀롱도 ‘지리산이음’에서 진행되지만, 앞서 본 영상에서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여성이 계신 단체 이름도 ‘이음’이다. 그만큼 좋은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때만큼 삶의 희망을 느끼는 순간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같이 연대하고 손잡고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 입각해서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함께 하는 마음도 거기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규식 : 제가 어릴 때 이곳을 와보고 처음이다. (이규식 대표는 함양 휴천면에서 산 경험이 있다.) 옛날 기억보다 많이 변했다. 옛날엔 산골짜기에 길도 없었다. 지금 보니 길도 좋아져서 기분이 새롭다. 많은 사람들 보니 좋았다. 감사하다.
이창림 : 저녁 메뉴를 고를 때 '나도 식당에 들어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뭐가 맛있을까?'를 기준으로 모두가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동네, 사회가 되면 좋겠다. 올해 준비한 쌀롱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기록 | 이승현
편집 | 자유, 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