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꼭대기부터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돌돌 말린 느티나무 낙엽이 밟을 적마다 과자 씹는 소리를 내는 상강. 멋진 나뭇잎 한 장 못걸치는 계절이 오는 게 아쉬운 나무들은 때늦지 않게 마지막 치장을 합니다. 저는 여기, 나무만큼이나 화려한 장터에 다녀왔어요.
두루다살림장에서 북코스프레가 열렸습니다. 책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이 활기차게 장터 안을 채웁니다. 반가운 얼굴도 낯설게 보이고, 낯선 얼굴도 익숙해 보이는 분장의 재미! 그래서였을까요. 처음 본 사람에게 당최 말을 못 거는 저도, 노랑나비 세희쌤에게 덜컥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재밌던 표정이었어요. 세희가 어묵 먹는 그림이에요. 어묵은 노란색이었나... 농부쌤도 기쁜 표정이에요. 손에 호미였던가... 들고요."
세희쌤은 그림으로 말하기를 좋아했어요. 인터뷰 오디오는 고요해도, 종이 위는 형형색색 소란스럽습니다. 장터날 사람들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색의 신발을 신었는지... 기억 속의 색깔을 하나하나 꺼내느라 손은 아주 분주하고요.
북코스프레는 봉서리의 논둑길을 행진하며 마무리했습니다. 흥겨운 장구 소리에 맞춰, 자전거로 혹은 두 발로 뛰면서 행진하던 책 속의 인물들. 노을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는데 다행히 바람은 차지 않았어요. 적당히 노란 하늘빛과 논둑을 뛰놀던 노랑나비. 매서운 겨울 바람도 단풍은 기다려주는 법이니까요.
만든 사람. 칩코
아침에 토마토를 먹고 토마토와 하나가 된 사람. 내가 내뱉은 숨을 지리산이 들이키는 바람에 지리산과도 하나가 됐다. 하나라고 저절로 조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요가 할 때 팔다리가 따로 노는 것처럼 아직은 지리산과 따로 놀 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