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영에게_ 일곱 번째 편지 가을특집 ③ 명왕성 4주년 _ 효림X안군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난 편지에 소개했던 명왕성, 기억나? 며칠 전, 4주년 행사가 열렸어. 김한범 코디네이터가 함양에 사는 친구들과 공연한다길래 동네 청년과 안군과 놀러갔지. 무료한 마음을 달래고자 얼떨결에 결성한 밴드가 11월 공연 날짜를 잡으면서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어떻게 취재 할까 고민하는데, 이번엔 안군이 글을 쓸 테니 나보고는 실컷 즐기기나 하라는 거야. 나와는 사뭇 다른 안군의 편지를 즐겁게 읽어보렴! 안녕하세요. 저는 효림과 같이 사는 안군입니다. 이번 산청 청소년 자치공간 ‘명왕성’ 4주기 행사는 효림 대신 제가 씁니다. 청소년 자치공간 명왕성 4주기 행사는 지난 11월 5일 토요일 저녁에 산청읍에 있는 명왕성에서 열렸습니다. 저는 그 전날 젊은이와 늦게까지 있느라 만취했습니다. 토요일 느지막하게 일어나 대충 터덜터덜 집에서 나와 직장 동료이자 동네 이웃인 ‘햇살’이 준 양파를 텃밭에 심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토요일 제 계획은 일단 양파를 심고 난 뒤에 목욕탕에 갔다가 낮잠을 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이번에는 젊은이‘들’과 역시 토요일 밤에는 막걸리지, 하며 한잔할 희망찬 미래에 들떠 있었습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저랑 같이 사는 효림이었습니다. 효림은 술 좀 그만 먹고 자기랑 같이 명왕성 4주년 행사 취재를 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이므로 제 계획은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석한 젊은이도 왠지 효림 말을 더 잘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교에 질질 끌려가는 아이 마냥 명왕성 행사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아, 토요일 밤 시골 읍내에서 열리는 청소년 한마당에 다녀온다니요.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날을 위해 무려 일, 월, 화, 수, 목, 금 6일이나 기다렸는데. 명왕성은 산청읍내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2층에 있습니다. 멀끔하고 환하게 자기 가게만 딱 리모델링한 건물 옆 낡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거기가 명왕성입니다. 들어가자마자 뭔가 기운이 확 몰려왔습니다. ‘아, 여기 장난 아닌데.’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닙니까. 동물 된 직감으로 청소년들의 기운이 응집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기운에 쭈그리가 돼서 어깨를 확 움츠리고 자치공간 구석으로 갔습니다. 안 그래도 그 구석에는 저처럼 몇몇 어른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좁히고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밤 산청에 사는 중고생 또래의 재미있는 친구들은 죄다 몰려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사회도 보고 간단한 레크리에이션도 준비했습니다. 무슨 번호표를 나눠주고 상품 나눠 갖기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번호가 뽑혀도 일단 상품을 가져가려면 장기자랑을 해야 했는데 이거 누구 하나 빼지 않고 다들 열창했습니다. 우연히 왔다가 당첨된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설프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노래도 부르고 밴드공연도 했습니다. 마지막은 역시 펑크록! 노브레인 커버곡으로 마무리하더군요. 역시 하이스쿨 펑크록이야말로 최고의 공연입니다. 토요일 밤 애들은 이렇게 노는구나. 
그림001. 명왕성 4주년 행사의 밴드 공연 현장 산청에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아이들의 자치 공간을 4년 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구멍과 틈과 숨과 무대를 만들어보고자 말입니다. 어느 공공기관이 토요일 밤까지 모든 걸 아이들에게 맡겨 놓고 문을 활짝 열어놓겠습니까. 어느 기관이든 시설물 유지와 통제에 심혈을 기울이지 누가 어떻게 쓸지에 대한 관심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아이들만의 자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1769년 스위스 취리히 외곽에서 스물세 살의 페스탈로치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작은 학교를 열었습니다. 공장에 팔리기 위해 국가에 팔리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터전을 꿈꿨습니다. 1780년 운영이 어려워지자 페스탈로치는 자기 집까지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번째 실험인 노이호프 빈민노동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호머 레인(?~1925)도 절도나 강도질을 일삼던 비행청소년들을 모아 더 리틀 커먼웰즈 감화원을 세웠습니다. 자유와 자치를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여러 교육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공간도 안타깝지만, 세간의 오해 속에 문을 닫고 호머 레인 역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산청에 있는 명왕성도 언제까지 오픈 기념을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40주년 행사를 하고 또 거기에 이제는 호호 할아버지와 호호 할머니가 된 제 짝꿍이 같이 지팡이를 짚고 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당장 내년에 문을 닫을 수도 있겠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아이들이 자치를 이루는 터전을 꿈꿨던 페스탈로치와 호머 레인의 꿈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여기 산청에도 청소년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주는 힘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호머 레인을 따랐던 교육자의 손자의 지인의 제자가 지금 명왕성의 후원자이자 이 코너를 맡은 효림의 반쪽 아니겠습니까. 물론 명왕성이 학교는 아닙니다만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내가 숨 쉴 수 있고 내 무대가 되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학교라고 봅니다. 늦은 밤 산청에서 돌아오는 길, 괜히 신나는 마음에 또 마트에 들려 막걸리를 샀습니다. 금요일 밤과 다르게 젊은이들과 대취하고 지금은 어른된 자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효림 대신 글을 썼습니다. 뭐 결혼생활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우리도 꿈을 꿔봅시다.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누군가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토요일 밤 아이들은 명왕성에 모여 한껏 상기된 얼굴로 즐겁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호머 레인을 동경했던 교육자는 영국의 대안학교 서머힐의 설립자 A.S 니일입니다. A.S 니일이 쓴 『서머힐』은 미국 교육대학에서 필독서로 읽히며 한국의 대안교육운동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금 서머힐은 그의 손자가 운영 중입니다. |
희영에게_ 일곱 번째 편지
가을특집 ③ 명왕성 4주년 _ 효림X안군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난 편지에 소개했던 명왕성, 기억나? 며칠 전, 4주년 행사가 열렸어. 김한범 코디네이터가 함양에 사는 친구들과 공연한다길래 동네 청년과 안군과 놀러갔지. 무료한 마음을 달래고자 얼떨결에 결성한 밴드가 11월 공연 날짜를 잡으면서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어떻게 취재 할까 고민하는데, 이번엔 안군이 글을 쓸 테니 나보고는 실컷 즐기기나 하라는 거야. 나와는 사뭇 다른 안군의 편지를 즐겁게 읽어보렴!
안녕하세요. 저는 효림과 같이 사는 안군입니다. 이번 산청 청소년 자치공간 ‘명왕성’ 4주기 행사는 효림 대신 제가 씁니다. 청소년 자치공간 명왕성 4주기 행사는 지난 11월 5일 토요일 저녁에 산청읍에 있는 명왕성에서 열렸습니다. 저는 그 전날 젊은이와 늦게까지 있느라 만취했습니다. 토요일 느지막하게 일어나 대충 터덜터덜 집에서 나와 직장 동료이자 동네 이웃인 ‘햇살’이 준 양파를 텃밭에 심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토요일 제 계획은 일단 양파를 심고 난 뒤에 목욕탕에 갔다가 낮잠을 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이번에는 젊은이‘들’과 역시 토요일 밤에는 막걸리지, 하며 한잔할 희망찬 미래에 들떠 있었습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저랑 같이 사는 효림이었습니다. 효림은 술 좀 그만 먹고 자기랑 같이 명왕성 4주년 행사 취재를 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이므로 제 계획은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석한 젊은이도 왠지 효림 말을 더 잘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교에 질질 끌려가는 아이 마냥 명왕성 행사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아, 토요일 밤 시골 읍내에서 열리는 청소년 한마당에 다녀온다니요.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날을 위해 무려 일, 월, 화, 수, 목, 금 6일이나 기다렸는데.
명왕성은 산청읍내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2층에 있습니다. 멀끔하고 환하게 자기 가게만 딱 리모델링한 건물 옆 낡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거기가 명왕성입니다. 들어가자마자 뭔가 기운이 확 몰려왔습니다. ‘아, 여기 장난 아닌데.’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닙니까. 동물 된 직감으로 청소년들의 기운이 응집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기운에 쭈그리가 돼서 어깨를 확 움츠리고 자치공간 구석으로 갔습니다. 안 그래도 그 구석에는 저처럼 몇몇 어른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좁히고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밤 산청에 사는 중고생 또래의 재미있는 친구들은 죄다 몰려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사회도 보고 간단한 레크리에이션도 준비했습니다. 무슨 번호표를 나눠주고 상품 나눠 갖기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번호가 뽑혀도 일단 상품을 가져가려면 장기자랑을 해야 했는데 이거 누구 하나 빼지 않고 다들 열창했습니다. 우연히 왔다가 당첨된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설프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노래도 부르고 밴드공연도 했습니다. 마지막은 역시 펑크록! 노브레인 커버곡으로 마무리하더군요. 역시 하이스쿨 펑크록이야말로 최고의 공연입니다. 토요일 밤 애들은 이렇게 노는구나.
그림001. 명왕성 4주년 행사의 밴드 공연 현장
산청에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아이들의 자치 공간을 4년 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구멍과 틈과 숨과 무대를 만들어보고자 말입니다. 어느 공공기관이 토요일 밤까지 모든 걸 아이들에게 맡겨 놓고 문을 활짝 열어놓겠습니까. 어느 기관이든 시설물 유지와 통제에 심혈을 기울이지 누가 어떻게 쓸지에 대한 관심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아이들만의 자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1769년 스위스 취리히 외곽에서 스물세 살의 페스탈로치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작은 학교를 열었습니다. 공장에 팔리기 위해 국가에 팔리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터전을 꿈꿨습니다. 1780년 운영이 어려워지자 페스탈로치는 자기 집까지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번째 실험인 노이호프 빈민노동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호머 레인(?~1925)도 절도나 강도질을 일삼던 비행청소년들을 모아 더 리틀 커먼웰즈 감화원을 세웠습니다. 자유와 자치를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여러 교육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공간도 안타깝지만, 세간의 오해 속에 문을 닫고 호머 레인 역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산청에 있는 명왕성도 언제까지 오픈 기념을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40주년 행사를 하고 또 거기에 이제는 호호 할아버지와 호호 할머니가 된 제 짝꿍이 같이 지팡이를 짚고 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당장 내년에 문을 닫을 수도 있겠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아이들이 자치를 이루는 터전을 꿈꿨던 페스탈로치와 호머 레인의 꿈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여기 산청에도 청소년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주는 힘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호머 레인을 따랐던 교육자의 손자의 지인의 제자가 지금 명왕성의 후원자이자 이 코너를 맡은 효림의 반쪽 아니겠습니까.
물론 명왕성이 학교는 아닙니다만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내가 숨 쉴 수 있고 내 무대가 되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학교라고 봅니다. 늦은 밤 산청에서 돌아오는 길, 괜히 신나는 마음에 또 마트에 들려 막걸리를 샀습니다. 금요일 밤과 다르게 젊은이들과 대취하고 지금은 어른된 자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효림 대신 글을 썼습니다. 뭐 결혼생활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우리도 꿈을 꿔봅시다.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누군가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토요일 밤 아이들은 명왕성에 모여 한껏 상기된 얼굴로 즐겁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호머 레인을 동경했던 교육자는 영국의 대안학교 서머힐의 설립자 A.S 니일입니다. A.S 니일이 쓴 『서머힐』은 미국 교육대학에서 필독서로 읽히며 한국의 대안교육운동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금 서머힐은 그의 손자가 운영 중입니다.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오늘의 일일작가. 안군)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