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희영에게] 내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

2022-12-13

 

 

희영에게_ 아홉 번째 편지

내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2년, 마지막 편지야. 너는 겨울을 어찌 맞이하고 있을까? 나는 올해 유난히 많은 친구를 사귀었어.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그 친구의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탄다고 자랑하며, 놀이터에서 캔 음료 달랑 하나 들고도 몇 시간이고 근황을 전할 수 있는 사이. 인적이 드문 깜깜한 곳, 쏟아지는 별 아래서 치킨 한 조각씩 나눠먹을 수 있는 동네 친구. 

 

내가 전에 살던 집으로 이사 온 우정, 우정의 아이들 지은과 동녘, 지은 친구 로이, 로이 엄마 은영, 함께평화영화제에서 연을 맺은 햇살, 햇살의 딸 정인. 알고 보니 우정과 정인은 예전 직장 동료였고, 홍성으로 이사 갔던 내 친구 숙곰은 또 정인과 룸메이트였다네? 이러다가 줄줄이 꿴 호랑이마냥 동네 사람 모두가 친구 되겠네, 하하호호 얘기하던 차에...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1박 2일 부여로 놀러 가기로 합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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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다른 동네에 놀러 가서 콧바람을 쐬니 절로 신이 난다.

 

 

 

우리는 논산에 잠깐 들러 점심을 먹고 부여 가림성에 갔어. 보이는 풍경 죄다 산인 산청과 달리 부여는 조금만 높은 구릉에서도 시내가 한눈에 보여. 앞서거니 뒤서서니 걷고 뛰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지은과 동녘, 로이 덕분일까, 오르막길에 상쾌한 공기를 마셔서 그런 걸까. 어느새 마음이 산뜻해졌어. 두 갈래로 뻗은 나무줄기도, 어르신들을 위한 운동기구도 아이들에겐 놀이기구로 보이나 봐. 무조건 신나게 놀고 싶은 아이들 따라 우리도 더 신나게 놀기로 했지.

 

저녁 장을 보러 시내로 나가자 번쩍번쩍한 가게 하나가 우리를 부르는 듯 했어. 바로 인생네컷! 복작한 도시의 기운에 들뜬 우리는 인형 탈과 모자, 안경에 요술봉까지 한껏 꾸미고 오늘을 기념했지. 도대체 산청에는 왜 인생네컷이 없는 거야? 시골 사람도 얼마든지 현대문명을 즐길 수 있는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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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8명이 인생네컷을 제대로 찍으려면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부부싸움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대개 돈이나 권력이나 섹스나 자녀 양육 같은 것 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한다. 사실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만으론 사람이 너무 모자라!”_ 책 《나라 없는 사람》 중에서

 

 

 

이제는 핵가족이라는 말도 무색한 1·2인 가족 시대라고 해. 귀농·귀촌한 사람이 많은 시골에서도 혼자나 둘이 사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여. 대기업들은 앞 다퉈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위한 물건을 내놓으며 세분화된 소비가 우리를 풍요롭게 해줄 거라 얘기하지. 이곳 사람의 욕망도 도시와 다르지 않아 더 편리하고 번듯한 방식에 귀를 쫑긋해. 미리 보일러가 켜진 따뜻한 집에 들어가 매달 정기요금을 납부하는 영상 사이트에 접속한 뒤 이미 다 손질된 밀키트 음식을 데워 먹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 

 

 

나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에 일렁일 때면 습관처럼 진주로 나갔어. 마트가 제시하는 물건들 사이를 휘저으며 그것이 내 욕망인 양 마구마구 사들이곤 했지. 며칠이 지나면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가, 자책하고. ‘원하는 것을 원하라.’ 원하는 것을 소비하는 것도, 원하는 일을 하는 것도, 원하는 삶을 사는 것도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허상일지 몰라. 원하는 것을 가지는 삶을 성공이라 설정하고 달려가게 만드는 거지.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게 있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걸까? 인간은 어쩌다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나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트랙에서 벗어나려고 해. 그렇다면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을까? ‘타인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인류사의 90퍼센트에서 지극히 정상이었다’는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의 말에 의하면...

 

 

 

 

젊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폐를 끼치거나 방해가 되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유쾌하게 살아가는 노하우를 몸에 익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풍관1)은 그런 노하우를 습득하는 교육기관이기도 합니다. ‘유사 친족 공동체’에 속해 있어 얼마나 안전한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알아가길 바랍니다. _ 책 《어른 없는 사회》 중에서

 

 

* 개풍관1)은 우치다 타츠루가 2011년 고베시에 연 학숙. 1층은 합기도 수련과 철학 강의 등 다양한 배움 공간이고, 2층은 사적 공간이다. 개풍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뜻한다. 

 

 

 

1박2일 다 같이 어울리다 보니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 보였어. 우정이 여행을 주도하자 나는 같이 갈 사람을 물색했어. 정인은 능숙하게 스케줄을 조절했고, 햇살은 직접 키운 배추로 뜨뜻한 국을 대접했지. 처음 만났는데도 은영은 편안하고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우리는 여행 내내 웃고, 뛰고, 떠들었어. 비슷한 면을 알게 되면 눈을 크게 뜨고, 다른 면을 발견할 때면 서로에게 경청했지.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뭘 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 친구를 사귀는 마음처럼 나는 아직도 이들이 궁금해. 이들의 친구도 궁금하고. (왜냐하면 내 친구가 될 테니까)

 

 

누군가가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 얼마나 많이 버는지, 얼마나 비싼 곳에 사는지’를 묻는다면, 앞으로 나는 ‘얼마나 재밌게 사는지’를 보여줄 거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며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찾아볼 거야. 그러려면 둘보다는 셋, 넷보다는 다섯, 아니 이왕이면 여럿이 더 즐겁지 않을까? 

 

 

너를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단다, 내년에는 너와도 만남의 연이 닿길!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