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구원’할 결심 우리 동네 청년들 ⑤ : 가보지 않은 길 위의 여행자, 해수 글 / 자야 
함양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 중인 청년, 해수. 새벽 5시 반에 알람이 울린다. 발딱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어스름한 가운데 집을 나선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안의에 도착하면 7시. 거기서 대기 중인 ‘사장님’의 봉고를 타고 서하면 사과농장에 가기까지는 또 삼십 분이 걸린다. 그 무렵이면 이미 사위가 환하다. 가을 아침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코를 훌쩍이며 시작한 일은 한낮의 열기와 땀에 전 몸이 식어서 눅눅해질 때쯤에서야 끝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누우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다. 지난여름, 함양에서 2주간 진행되는 시골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이가 있다. 텃밭과 마루 달린 집에서 눈 뜨고 잠드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사람. 비록 단기 일자리이긴 하지만 자연 속에서 땀 흘리고 나면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는 생각에 흐뭇하다는 사람. 스물여섯에 삶의 전환을 모색하며 지도 없이 낯선 여행을 시작한 이 청년은, 본명에 애착이 없다며 스스로 지은 별칭 ‘해수’로 불리길 원했다. ‘번아웃’에서 비롯한 낯선 여행 바다 해에 나무 수. 함양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팀에서 주관한 프로그램 <안녕, 할매>에 참여하면서 해수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후에 생긴 ‘좋은’ 일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긴다. 달리 말하면 함양 오기 직전에는 좋다고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졸업하고 나서 올해 5월까지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해왔어요. 가장 최근에는 한국의 유튜버들을 중국에 진출시키는 일을 했고요. 인간관계나 과중한 업무에 치이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꾸역꾸역 버틴 거 같아요. 또 도시 생활 자체가 스트레스이기도 했어요. 몇 년을 집과 직장만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았으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결국 일을 그만뒀죠.” 흔히들 말하는 ‘번아웃’이었다. 좀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구겨진 마음은 쉬이 펴지지 않았다. 무기력과 우울감이 계속되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려 했지만 “입이 벌어질 정도”의 가격에 포기가 빨랐다. ‘시골체험’은 그가 상담 대신 선택한 것이다. 회색 도시를 떠나 초록빛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 가면 자신을 괴롭혀온 나쁜 경험과 기억 들이 조금은 희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시골체험 하러 왔다가 아예 눌러앉기로 작정하고 구한 집. 그가 오랫동안 꿈꾸어온, 텃밭과 마당이 있는 집이다. (사진제공_해수/ 이하동일) 청년과 시골체험을 검색창에 써넣고 열심히 구글링하던 어느 날. 그는 스마트폰에 올라온 <안녕, 할매> 홍보 글을 보고는 바로 신청서를 넣고 면접도 치른다. 그런데 막상 참여자로 선정되자 기쁘기는커녕 부담스럽기만 했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사람들과 부대껴야 한다는 게 두려웠던 탓이다. “제가 안 간다고 하니까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가서 별로라도 그 또한 경험 아니겠느냐고요. 그 말에 제 마음이 움직였어요. 맞아. 별로라도 경험으로 남겠지. 그런데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여기서 힐링을 제대로 한 거예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정도로요.” ‘상담’보다 시골 ‘체험’, 제대로 힐링한 시간 수많은 시골체험 프로그램 중 해수 씨가 특별히 <안녕, 할매>에 끌린 이유는 할머니들과 뭔가를 함께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일 나간 엄마 대신 외할머니 품 안에서 자라난 그로서는 ‘늙고 오래된’ 여성들에 대한 감정이 애틋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그에게 함양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외할머니의 부재와 그로 인해 가슴에 뚫린 구멍을 메워준 고마운 존재였다. “하루는 할머니들 스냅 촬영을 해드린 적이 있어요. ‘영한 컨셉’으로다가요.(웃음) 저희랑 할머니들이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촬영 후에는 한 할머니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다 같이 대청마루에 누워 쉬었어요. 누구는 자고 누구는 스마트폰하고 그렇게 각자 시간을 보냈죠. 저는 옆에 누운 할머니들끼리 두런두런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졸다 깨다 했는데, 그 순간이 그냥 너무 좋더라고요. 뭐랄까, 굉장히 뭉클하면서 치유 받는 느낌이었어요.” 
시골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할머니들과 보낸 한 때. 이 평범한 장면이 그의 마음에 가장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사진출처_고마워,할매 네이버블로그) 그때쯤 해수 씨의 마음은 이미 시골살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굳이 서울로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할까. 그에게 서울은 단지 나고 자란 곳일 뿐이며, 그 또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중국어 수요가 많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돌아보면 직장에서 ‘심신의 안정’을 누렸던 기억은 별로 없다. 오히려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 하나를 위해 삶의 다른 영역은 다 제쳐놓고 항상 숨 가쁘게 달려야 했다. “평일에는 일에 찌들어 있다가 주말이면 누워서 티브이 보는 게 전부였죠.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회사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다 보니까 되게 위축되어 있었고요. 머릿속으로는 늘 퇴사를 생각했어요. 친한 동료들하고는 언제 퇴사하세요? 서로 습관적으로 묻고.(웃음) 회사를 그만둔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숨어 있게만 되고 아무 의욕도 없고.”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 돌아오는 가장 흔한 조언은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지인들 대부분은 “다들 그렇게 산다”며 어정쩡한 위로의 말을 건넸고,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펼치면 하나같이 ‘긍정적인 생각’의 힘을 강조하는 문구로 가득했다. 그런 말과 글들이 영 틀리기만 한 건 아니겠으나 언제부턴가 해수 씨에게는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꼭 생각을 바꿔야 하지?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을 바꾸면 안 되나? 내면에서 치고 올라오는 질문을 궁구하는 속에서, 그는 과거에도 자신이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이제 막 열한 살이 된 그에게 인생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무렵 엄마가 중국 유학을 제안한 건 우연이었을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열한 살 소녀는 공항에서 울고불고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저 혼자 ‘쿨하게’ 손을 흔들며 비행기에 올랐다. “저는 공부에 흥미가 없는데 학교도 학원도 다 공부와 성적 위주로 돌아가니까 재미없고 지겨웠어요. 뭐 하나 틀리면 혼내고 벌주는 분위기라서 점점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 제가 중국에서 삼 년 머무는 동안 정말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한 거예요. 앞서 그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저는 생각을 바꾸기보다 환경을 바꾸는 걸 선택한 거 같아요. 고민도 별로 안 했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제가 다시 생기발랄해지고 열정적으로 변하는 걸 느꼈거든요. 서울에 돌아가면 이런 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하니까, 여기 남아서 내가 나를 구원하자 싶었죠.” “환경을 바꿔서 생기발랄한 나를 되찾았어요” 정해진 2주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안녕, 할매> 사업팀은 참가자 중 누구라도 2주를 더 머물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해서 진행하면 된다고 했다. 짧은 기간에 이십 대 본연의 싱그러운 표정과 명랑한 태도를 되찾은 해수 씨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다. 심지어 그는 이미 함양 이주를 결심하고 가족과도 상의를 끝낸 상태였다. 비대면 통화였는데도 그의 달라진 기운을 금세 알아챈 어머니는 “거기서 네가 행복하면 그만”이라며 딸의 결정을 응원해주었다. “추가로 2주 머물면서 ‘중국어 노래 부르기’ 하루 강좌를 개설해서 진행했어요. 나머지 시간엔 방과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느라 바빴고요. 서울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 수도 있었지만 저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어요. 엄마도 뭘 올라오냐고, 그냥 거기서 빨리 방 구하라고 하시고.(웃음)” 가장 시급했던 집 문제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팀의 도움과 지원으로 해결했으나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공인 중국어를 활용할 만한 곳은 아예 없었고, 그나마 눈에 띈 온라인 마케팅 관련 일은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다음 알음알음으로 들어온 것이 현재 하고 있는 사과농장 일이다. 
서하면 사과농장에서 일하는 모습. 
서울 마르쉐 장터에서. “뭐라도 당장 시작하고 싶어서 바로 하겠다 했어요. 몸 쓰는 일이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 해본 일이라서 끌리더라고요. 제가 살아갈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았고요.” 9월부터 농장에 출근한 해수 씨는 지난 두 달 동안 오전 7시 40분에서 오후 5시까지 그날그날 필요한, 이를테면 사과를 따고 잎을 따고 가지를 쳐내고 포장하는 일들을 해왔다. 가끔은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쉐 장터에 동행하여 현장에서 사과를 팔기도 했다. 고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자연 속에서 노동하며 땀 흘리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또 서울 장터에서 단골들이 몰려와 사과를 구매하는 것을 보면서는 “이게 보통사과가 아니구나 싶어” 자랑스러움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고. “농장 일은 시월이면 마무리되고요, 그 이후에 특별한 계획 같은 건 없어요. 제가 원래 계획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해보고 싶은 건 많죠. 제가 베이스기타를 치니까 기회가 되면 밴드도 하고 싶고, 중국어를 매개로 주민들을 만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더 솔직히 얘기하면, 지금은 그냥 이곳의 생활을 최대한 즐기자는 생각뿐이에요.” 시골, 이제는 체험이 아닌 삶이기에 가끔은 도시에서 익숙했던 불안과 두려움이 머리와 가슴을 파고들 때가 있다. 간혹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돌멩이가 되어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며 겹겹의 속을 헤집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무게중심을 두려 한다. 그리고 이제껏 잘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중요한 갈림길에서마다 좋은 선택을 해온 자기 자신을 믿어보기로 한다. 체험은 진즉 끝났고, 이제 시골은 그에게 삶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그는 체험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시골살이의 접면과 이면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될지도, 어쩌면 그 속에서 뭔가에 부딪히거나 넘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잃을 것이 없다”고 말할 만큼, 해수 씨는 당찬 사람이다. 바라기는 낱낱의 순간들이 휘발되지 않고 그이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기를. 그것들이 발효되기까지의 시간을 부디 잘 견디기를. 그래서 더 향기롭고 풍성하게 ‘여기’의 삶을 꽃피워가는 그의 모습을, 가능하면 오래오래 보고 싶다. 
뿌리 깊고 품 너른 저 은행나무처럼, 해수 씨는 자신의 삶도 이곳에서 단단하고 풍성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
내가 나를 ‘구원’할 결심
우리 동네 청년들 ⑤ : 가보지 않은 길 위의 여행자, 해수
글 / 자야
함양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 중인 청년, 해수.
새벽 5시 반에 알람이 울린다. 발딱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어스름한 가운데 집을 나선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안의에 도착하면 7시. 거기서 대기 중인 ‘사장님’의 봉고를 타고 서하면 사과농장에 가기까지는 또 삼십 분이 걸린다. 그 무렵이면 이미 사위가 환하다. 가을 아침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코를 훌쩍이며 시작한 일은 한낮의 열기와 땀에 전 몸이 식어서 눅눅해질 때쯤에서야 끝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누우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다.
지난여름, 함양에서 2주간 진행되는 시골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이가 있다. 텃밭과 마루 달린 집에서 눈 뜨고 잠드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사람. 비록 단기 일자리이긴 하지만 자연 속에서 땀 흘리고 나면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는 생각에 흐뭇하다는 사람. 스물여섯에 삶의 전환을 모색하며 지도 없이 낯선 여행을 시작한 이 청년은, 본명에 애착이 없다며 스스로 지은 별칭 ‘해수’로 불리길 원했다.
‘번아웃’에서 비롯한 낯선 여행
바다 해에 나무 수. 함양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팀에서 주관한 프로그램 <안녕, 할매>에 참여하면서 해수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후에 생긴 ‘좋은’ 일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긴다. 달리 말하면 함양 오기 직전에는 좋다고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졸업하고 나서 올해 5월까지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해왔어요. 가장 최근에는 한국의 유튜버들을 중국에 진출시키는 일을 했고요. 인간관계나 과중한 업무에 치이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꾸역꾸역 버틴 거 같아요. 또 도시 생활 자체가 스트레스이기도 했어요. 몇 년을 집과 직장만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았으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결국 일을 그만뒀죠.”
흔히들 말하는 ‘번아웃’이었다. 좀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구겨진 마음은 쉬이 펴지지 않았다. 무기력과 우울감이 계속되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려 했지만 “입이 벌어질 정도”의 가격에 포기가 빨랐다. ‘시골체험’은 그가 상담 대신 선택한 것이다. 회색 도시를 떠나 초록빛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 가면 자신을 괴롭혀온 나쁜 경험과 기억 들이 조금은 희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시골체험 하러 왔다가 아예 눌러앉기로 작정하고 구한 집. 그가 오랫동안 꿈꾸어온, 텃밭과 마당이 있는 집이다.
(사진제공_해수/ 이하동일)
청년과 시골체험을 검색창에 써넣고 열심히 구글링하던 어느 날. 그는 스마트폰에 올라온 <안녕, 할매> 홍보 글을 보고는 바로 신청서를 넣고 면접도 치른다. 그런데 막상 참여자로 선정되자 기쁘기는커녕 부담스럽기만 했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사람들과 부대껴야 한다는 게 두려웠던 탓이다.
“제가 안 간다고 하니까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가서 별로라도 그 또한 경험 아니겠느냐고요. 그 말에 제 마음이 움직였어요. 맞아. 별로라도 경험으로 남겠지. 그런데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여기서 힐링을 제대로 한 거예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정도로요.”
‘상담’보다 시골 ‘체험’, 제대로 힐링한 시간
수많은 시골체험 프로그램 중 해수 씨가 특별히 <안녕, 할매>에 끌린 이유는 할머니들과 뭔가를 함께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일 나간 엄마 대신 외할머니 품 안에서 자라난 그로서는 ‘늙고 오래된’ 여성들에 대한 감정이 애틋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그에게 함양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외할머니의 부재와 그로 인해 가슴에 뚫린 구멍을 메워준 고마운 존재였다.
“하루는 할머니들 스냅 촬영을 해드린 적이 있어요. ‘영한 컨셉’으로다가요.(웃음) 저희랑 할머니들이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촬영 후에는 한 할머니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다 같이 대청마루에 누워 쉬었어요. 누구는 자고 누구는 스마트폰하고 그렇게 각자 시간을 보냈죠. 저는 옆에 누운 할머니들끼리 두런두런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졸다 깨다 했는데, 그 순간이 그냥 너무 좋더라고요. 뭐랄까, 굉장히 뭉클하면서 치유 받는 느낌이었어요.”
시골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할머니들과 보낸 한 때. 이 평범한 장면이 그의 마음에 가장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사진출처_고마워,할매 네이버블로그)
그때쯤 해수 씨의 마음은 이미 시골살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굳이 서울로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할까. 그에게 서울은 단지 나고 자란 곳일 뿐이며, 그 또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중국어 수요가 많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돌아보면 직장에서 ‘심신의 안정’을 누렸던 기억은 별로 없다. 오히려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 하나를 위해 삶의 다른 영역은 다 제쳐놓고 항상 숨 가쁘게 달려야 했다.
“평일에는 일에 찌들어 있다가 주말이면 누워서 티브이 보는 게 전부였죠.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회사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다 보니까 되게 위축되어 있었고요. 머릿속으로는 늘 퇴사를 생각했어요. 친한 동료들하고는 언제 퇴사하세요? 서로 습관적으로 묻고.(웃음) 회사를 그만둔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숨어 있게만 되고 아무 의욕도 없고.”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 돌아오는 가장 흔한 조언은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지인들 대부분은 “다들 그렇게 산다”며 어정쩡한 위로의 말을 건넸고,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펼치면 하나같이 ‘긍정적인 생각’의 힘을 강조하는 문구로 가득했다. 그런 말과 글들이 영 틀리기만 한 건 아니겠으나 언제부턴가 해수 씨에게는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꼭 생각을 바꿔야 하지?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을 바꾸면 안 되나?
내면에서 치고 올라오는 질문을 궁구하는 속에서, 그는 과거에도 자신이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이제 막 열한 살이 된 그에게 인생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무렵 엄마가 중국 유학을 제안한 건 우연이었을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열한 살 소녀는 공항에서 울고불고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저 혼자 ‘쿨하게’ 손을 흔들며 비행기에 올랐다.
“저는 공부에 흥미가 없는데 학교도 학원도 다 공부와 성적 위주로 돌아가니까 재미없고 지겨웠어요. 뭐 하나 틀리면 혼내고 벌주는 분위기라서 점점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 제가 중국에서 삼 년 머무는 동안 정말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한 거예요. 앞서 그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저는 생각을 바꾸기보다 환경을 바꾸는 걸 선택한 거 같아요. 고민도 별로 안 했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제가 다시 생기발랄해지고 열정적으로 변하는 걸 느꼈거든요. 서울에 돌아가면 이런 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하니까, 여기 남아서 내가 나를 구원하자 싶었죠.”
“환경을 바꿔서 생기발랄한 나를 되찾았어요”
정해진 2주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안녕, 할매> 사업팀은 참가자 중 누구라도 2주를 더 머물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해서 진행하면 된다고 했다. 짧은 기간에 이십 대 본연의 싱그러운 표정과 명랑한 태도를 되찾은 해수 씨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다. 심지어 그는 이미 함양 이주를 결심하고 가족과도 상의를 끝낸 상태였다. 비대면 통화였는데도 그의 달라진 기운을 금세 알아챈 어머니는 “거기서 네가 행복하면 그만”이라며 딸의 결정을 응원해주었다.
“추가로 2주 머물면서 ‘중국어 노래 부르기’ 하루 강좌를 개설해서 진행했어요. 나머지 시간엔 방과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느라 바빴고요. 서울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 수도 있었지만 저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어요. 엄마도 뭘 올라오냐고, 그냥 거기서 빨리 방 구하라고 하시고.(웃음)”
가장 시급했던 집 문제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팀의 도움과 지원으로 해결했으나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공인 중국어를 활용할 만한 곳은 아예 없었고, 그나마 눈에 띈 온라인 마케팅 관련 일은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다음 알음알음으로 들어온 것이 현재 하고 있는 사과농장 일이다.
서하면 사과농장에서 일하는 모습.
서울 마르쉐 장터에서.
“뭐라도 당장 시작하고 싶어서 바로 하겠다 했어요. 몸 쓰는 일이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 해본 일이라서 끌리더라고요. 제가 살아갈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았고요.”
9월부터 농장에 출근한 해수 씨는 지난 두 달 동안 오전 7시 40분에서 오후 5시까지 그날그날 필요한, 이를테면 사과를 따고 잎을 따고 가지를 쳐내고 포장하는 일들을 해왔다. 가끔은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쉐 장터에 동행하여 현장에서 사과를 팔기도 했다. 고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자연 속에서 노동하며 땀 흘리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또 서울 장터에서 단골들이 몰려와 사과를 구매하는 것을 보면서는 “이게 보통사과가 아니구나 싶어” 자랑스러움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고.
“농장 일은 시월이면 마무리되고요, 그 이후에 특별한 계획 같은 건 없어요. 제가 원래 계획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해보고 싶은 건 많죠. 제가 베이스기타를 치니까 기회가 되면 밴드도 하고 싶고, 중국어를 매개로 주민들을 만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더 솔직히 얘기하면, 지금은 그냥 이곳의 생활을 최대한 즐기자는 생각뿐이에요.”
시골, 이제는 체험이 아닌 삶이기에
가끔은 도시에서 익숙했던 불안과 두려움이 머리와 가슴을 파고들 때가 있다. 간혹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돌멩이가 되어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며 겹겹의 속을 헤집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무게중심을 두려 한다. 그리고 이제껏 잘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중요한 갈림길에서마다 좋은 선택을 해온 자기 자신을 믿어보기로 한다.
체험은 진즉 끝났고, 이제 시골은 그에게 삶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그는 체험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시골살이의 접면과 이면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될지도, 어쩌면 그 속에서 뭔가에 부딪히거나 넘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잃을 것이 없다”고 말할 만큼, 해수 씨는 당찬 사람이다. 바라기는 낱낱의 순간들이 휘발되지 않고 그이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기를. 그것들이 발효되기까지의 시간을 부디 잘 견디기를. 그래서 더 향기롭고 풍성하게 ‘여기’의 삶을 꽃피워가는 그의 모습을, 가능하면 오래오래 보고 싶다.
뿌리 깊고 품 너른 저 은행나무처럼, 해수 씨는 자신의 삶도 이곳에서 단단하고 풍성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