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임현택 센터장 추석 명절도 지나고, 마을 들녘에는 추수도 한창이다.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는 지리산쌀롱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넷째 주 목요일에 지역사회 변화를 위한 사례들을 다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청소년공간, 기후위기 주제에 이어 오늘은 작은도서관을 다루며, 지역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계속 가져보려 한다. 오늘의 발제자 두 분도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상상력과 그로 인한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해주실 것 같다. 먼저 청주 초롱이네 도서관 관장님 모시고 사례발표 및 도서관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청주 초롱이네도서관 오혜자 관장 처음부터 지금까지, 1999년부터 계속 관장 같지 않은 관장일을 하고 있다. 올해가 24년 차이고, 도서관과 같이 나이를 먹고 있다. 시작할 때는 쌩쌩하고 젊었는데, 좀 있으면 고개를 넘을 판이다. 긴 시간 동안 잘 놀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놀았던 것을 들려드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과 우려가 들기도 했다. 그동안 고민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직접 실천해본 이야기들을 하겠다. 
▶ 초롱이네 도서관 소개 우리 도서관은 1999년 1월에 문을 열었다. 처음엔 아파트 10층의 거실에 책을 내어놓고 책 사랑방 같은 가정도서관으로 시작했다.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고 밖으로 다니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책 모임을 하고 있어서, 책은 돌려보고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 이름인 ‘초롱’을 따서 도서관 이름을 붙였다. 그 당시에는 아이 이름을 이용한 사례들이 많았다.(웃음) 그 이름과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도 신기하다. 거실을 내놓은 사랑방의 형태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시에 등록된 공공도서관 역할을 하기까지가 지나 보니 감회가 새롭다. 순간순간 과정들에서 결정을 해야 했다. 이것이 내가 원한 것인지, 방향에 맞는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계속 있었다. 공간과 활동을 위해 함께 보기위해 사진 자료를 가져왔다. 

▶ 책문화공동체를 만들다(1999-2006) 도서관을 여는 데는 지역에서 독서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힘이 뒷받침이 되었다. 책 모임 멤버 중 시를 쓰는 한 분이 책 사랑방을 연다고 했고, 그러면 나는 집 거실을 열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손바닥만 한 공간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개방하는 것을 작은 결심으로 시작했다. 원래 저희 지역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청주의 시립도서관의 역사를 얼마 전부터 찾아봤는데, 그 당시에는 시립도서관이 없던 시기였다. 지역자치단체의 도서관이 없었고, 충북교육청도서관이 산꼭대기에 하나 있었는데 주민들을 위해서 활용되기보다는 열람실 위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가거나 머물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그런 고민을 나만 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하고 있었고, 책 모임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책을 함께 읽자고 하기가 민망하다는 이야길 나눴다. 책값도 비싸고. 책을 돌려보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고 거실을 개방한 것이었다. 마치 장난처럼. 그렇게 1년 정도 운영하다 보니 소문이 조금 났다. 많은 사람이 아이 손을 잡고 방문해주셨다. 1,000권 정도의 책을 놓고 시작했는데, 금방 300권만 남고 다 빌려 가셨다. 나중에 오신 분들은 ‘빌려갈 책이 없다’하는 순간이 생겨났다. 그간 도서 구입비를 사비로 꾸준히 충당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해나가기 쉽지 않았다. 연말에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곳이 선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수요가 많은 관계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감당할 만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던 것이다. 특히, 그 공간을 제가 지키고 있어야 했다. 도서관은 공간이고, 공간은 열려있어야 하고, 열려있는 공간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문제가 생겼다.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을 수는 없었다. 물론 약속된 시간에만 열어도 되겠지만, 그 ‘약속된 시간’이라하면 그 시간에는 반드시 열어야 했다. 그리고 장서 역시 내가 원하는 책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책까지 잘 갖춰야 했다. 그래서 이런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어느 날 토요일에 집안에 결혼식이 있었다. 토요일에 도서관을 누가 봐줄까 하고 부탁하려는데, 아무에게도 부탁하기 어려워서 아빠와 아이만 보내놓고 저는 그 공간을 지켰다. 그런데 그날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문 닫는 5시까지(웃음)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아무도 안 왔다. 그러니 ‘내가 이러고 있는걸 누가 아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을 원하는가?’ ‘계속할 것인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할 건가?’ 이런 고민들을 했다. 노력의 과정에 스스로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그때 처음 했다. 그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나니 그 이후로는 쉬웠다. 걸음 보폭이 넓어지고 빨라졌다. 그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었다. 저는 이 시대의 여성이고 엄마고, ‘독서취약계층’이라는 양육자의 입장에서 아이를 데리고 무엇을 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부모의 많은 노력이 든다. 아이를 돌보는 것뿐 아니라 친구를 만들어주고, 어딘가를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그 시간에 같은 동네에 영유아, 그리고 양육자, 또 장애아동 등 소위 ‘독서취약계층’이 이곳을 찾아주었다. 그들 덕분에 단순한 아파트 거실에 불과했던 공간이 바뀌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 이렇게 끝내기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공유하면 부자가 되는 것 같은 맛을 좀 봤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이곳을 지속하는 데 힘이 된 것은 남편이다. 남편은 사회적 관계에 호기심이 있고 능한 사람이어서 오는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본인도 그걸 즐겼다. 토요일에 방문하시는 분들이나 아이들이나 엄마들이 모여있을 때도 즐겁게 잘 지내주었다. 남편의 어릴 적 꿈이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의 조금 다른 모습을 보고, 도서관이 개인의 책무나 사명이라기보다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일이 가족 안에서 아이와 아빠가 함께 공동으로 고민하고 매진할 수 있는 일이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가 찾아오는 분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을 필요한 공간으로,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인데, 지역사회가 그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그냥 바라만 보기에는 아쉬웠고, 그래서 몇 년 더 해보자고 생각했다. 가족과 합의가 잘 된 관계로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도쯤 인근에 지인이 운영하던 레스토랑 건물이 있었다. IMF 금융위기 직후여서 환율도 높고, 공간이 팔리지 않았다. 그 공간을 보고 어떻게든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전세금과 분할상환 대출로 마련하게 됐다. 요즘 말로 ‘영끌’해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무모했다. 그때의 생각은 경제관념이 없다 보니, 이자를 내는 것이 어디 가서 월세 내는 것과 같은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사를 안 다니니 좋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건물 3층으로 입주하고 1, 2층을 각 30평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엄청 이상하게 우리를 바라봤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에게는 이 일이 확고하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간을 열고 아이들도 오게 하고 책을 기증받았다. 사람들에게 집에 있는 책을 갖고 나오라고 했고, 공간이 변하니 책이 많이 생겼다. 작은도서관은 보통 공간에 1만 권 정도 장서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1만 2천 권 정도가 있다. 초기에는 기증받은 책을 다 꽂아도 공간이 남았다. 또 생각나는 게, 지금은 작은도서관으로 등록하면 도서관 프로그램을 제공해줘서 그것을 이용하면 되는데, 이 당시만 해도 모두 수기로 썼다. 99년부터 수기로 쓰기 시작한 대출 공책 60여권이 지금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손으로 쓴 글씨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이름과 얼굴도 기억나고 정감 있었다. 손글씨로 자신이 빌려 간 책은 잘 잊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 전후로 대학입시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 바로 ‘대입논술도입’이다. 독서 시장에 사교육 수준이 확 올라오는 때였다. 책을 읽어야 시험을 볼 수 있는 구조가 되다 보니 대형 사교육 업체들이 뜨기 시작했다. 그때 우려를 한 부분이 아이들이 공부수단으로써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나마도 우리 도서관에 아이들이 몰려든 이유는 책값이 비싸고 책을 보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드는 곳은 좀 더 개방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0대 중반이어서 혈기왕성한 나이었다. 대외적으로도 ‘생협 한살림’, 대안학교, 공동육아 등 시민들의 자발적, 주체적 활동의 싹이 트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도서관을 열었고, 도서관에서 행사를 만들면 대기인원이 있을 만큼 호황기였다. 다양한 작가를 초빙하기도 하고, 엄마들이 읽어주는 작은 극장 등 동네 문화를 만들어갔다. 어른들은 천연염색이나 목공 등을 하면서 마을의 공간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정말 꽃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문화적 결핍과 욕구가 많았고 동시에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지역사회의 공간이 부족했다는 것이기도 했다. 시민의식은 높아지는 반면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이 통합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교육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했던 활동이 어머니들에게 만족도가 높았다. 밤에 같이 모여서 시골 극장처럼 영화를 보기도 하고, 엄마들이 만든 그림자 극장을 열기도 하면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공간이 있다는 안도감과 든든함이 있었다. ‘가을동화잔치’는 2000년 정도부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들을 펼쳐서 한마당축제처럼 판을 벌리고 놀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도서축제도 없었고, 모여서 놀만한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시내의 한 공원을 본거지 삼아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을 빠지지 않고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축제를 열었다. 이런 경험이 다음 스텝으로 이어갈 토대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니 유지비도 필요하고 책도 계속 사야 했다. 그러니 자치단체나 국가의 지원은 없고 힘이 달리는 상황들이 생겼다. 운영 회의를 통해서 CMS 후원제도를 만들었고,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후원금을 내서 유지에 보태도록 하자고 했다. 어느 순간 후원액이 월 100만 원을 넘어가면서 숨통이 트였다. 내가 혼자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함께 의논할 힘이 생겼다. 
▶ 마을도서관이 되다(2007-2017) 후원금 제도를 시행하면서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행정과 실무가 늘어났다. 조금씩 체계가 잡히고 운영의 투명성을 갖게 됐다. 그리고 마을의 독서취약계층, 즉, 가까이 있지만 그림책 한 권 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찾아가든 오게 하든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자 생각했다. 그 당시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기금이 있었다. 전국의 작은도서관, 학교도서관의 노후시설보수, 공간 기자재 수요 조사 등을 해서 내용에 맞게 지원하는 기금으로 76곳 정도 지원받았고, 저희는 공간을 보수해서 좀 더 도서관스럽게 쓸 수 있는 내용으로 지원받아 도서관을 새단장하면서 마을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책을 열심히 읽고 찾아가서 읽어주는 일을 시작했는데, ‘도서관은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책 모임을 했던 분들이 지역사회로 쏟아져 나왔다. 다문화어린이집에 도서관에 견학탐방을 하면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해줄 수 있다고 알리고, 동네에 장애 학교, 공부방,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에게 책 문화 활동가들이 나가서 책을 읽어주었다. 요즘은 이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 ‘열정페이’라는 것으로 해석되게 되었다. 이전에는 우리가 밥 먹고 남는 힘을 타인에게 쓰는 것에 대해 보상받는 것을 민망해하던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상을 먼저 이야기한다. 요즘은 공공기금에 공모할 때 사업에 따라 인력비용을 필요예산 범위에 포함하여 세우고 있다. 글을 깨치지 못했던 할머니는 이따금 유식한 이웃의 곰보 아저씨 불러다 놓고 집안 식구들 모조리 방에 들라 하여 소위 낭독회를 열곤 했다 책 읽는 소리는 낭랑했고 물흐르듯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그리하여 밤은 깊어만 갔다
박경리, <이야기꾼> 중에서
2008년에 나온 박경리 작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야기꾼’이라는 시에서 글을 깨치는 것과 책을 읽는 것,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야기는 귀로 전해지고 전승되어 왔던 것이기에 우리가 도서관에 책을 놓아두고, 책을 보여주고, 읽고, 빌리면서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 시를 통해서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대출하고 책만 보기만 하는 공간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공간을 활용한 본격적인 이야기 전도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구 중에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그리하여 밤은 깊어만 갔다.’는 구절이 눈에 확 떠올랐다. 우리가 작은 극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펼치면 아이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극장 안으로 빨려든다. 문화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보다 분위기가 주는 영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에 이런 추억을 주는 것에 매진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지역에 이런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있을 것이고, 박경리 작가의 어머니 같은, 글을 몰라도 이야기를 모두 외워버려서 이야기꾼이 되어버린 이야기들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 오래된 공간의 쓸모(2017~2022) 도서관을 연 지 20년이 지나면서 공간이 많이 낡았다. 그러면서 몇 차시로 나누어 한동안 운영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거기에서 나온 결론은 ‘추억을 덮을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였다. 카탈로그에 있는 ‘기울어져 가는 초롱이네 도서관을 바로 세워주세요’ 라는 그림은 세 살부터 도서관에 다녔던 5학년 아이가 그려줬다. 그렇게 공간을 고치고, 다시 공간을 번듯하게 세울 수 있었다. 현재는 1~3층 모두 공유도서관으로 쓰고 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것을 넘고자 하는 과정에서 다음으로 가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어려운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번엔 그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이곳을 설명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고비가 있을 때마다 경험해본 적 없고 예측할 수 없던 과제들이 주어지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다음으로 넘어가는 관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에는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보자고 해서 ‘해피아이네트워크’와 ‘문화다양성현장분투기’, ‘가을동화잔치의 역사’들을 작은 책으로 묶었다. 다음 과제로 활동의 기록과 사람들에 대한 기록,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공간을 도서관 한편에 조성했다. ‘동네기록관’이라는 이름으로 소모임이나 의미 있는 개인의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우리들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시 고쳐진 공간 역시도 지역주민들의 마음과 기금을 보태고 채워져서 완성해가는 부분이라 초롱이네도서관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것이 어려웠다. '찾아가는 책 읽어주기'와 '가을동화잔치' 파트로 나눠서 묶으니 조금 잘 전달할 수 있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이야기를 하니 조금 더 편안하게 드러났다. 각자가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지속적으로 이 공간을 잘 살려가고 싶다. 
20년 넘게 도서관을 이어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을까 생각이 든다. 또 관장님의 삶의 이야기도 많을 텐데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많이 줄여서 이야기하신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풍부한 이야기 전달해주신 오혜자 관장님께 박수를 부탁 드린다. 


두 번째 시간은 청주와 멀지 않은 지역인 대전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모든 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대전 호숫가마을도서관의 이야기를 박수로 청하겠다. 
대전 호숫가마을도서관 최선웅 관장 고향이 함양이다. 산내에는 저희 이모가 살았고, 함양 마천에는 외할머니가 계셨다. 여기에서 함양 억양을 들으니 반갑다. 앞서 발표해주신 오혜자 관장님은 마을도서관계의 선생님이다. 도서관 활동을 시작할 때 저도 오혜자 선생님 강의를 들었다. 작은도서관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저를 초대하셨다고 생각했다. 지역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에게는 ‘지역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그리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지역사회’다. 지역사회가 어디인지, 무엇인지 모르고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름의 지역사회의 정의를 내려봤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 있어야 한다. 변화는 곧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변화를 지향할 것인지 정해놓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상을 이루기만 하면 끝인가? 어떻게든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대통령도 보시지 않았나. 그러니 이상을 찾아갈 때 핵심가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룬 사례들을 지역사회, 변화, 핵심가치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려 한다.
▶ 지역사회, 변화, 가치 ‘당사자의 지역사회’와 ‘기관의 지역사회’는 다르다. 기관의 지역사회는 사람과 공간으로 나뉘는데, 이중 공간이라면 ‘기관이 속한 행정구역 또는 조례나 정관 따위로 정한 사업구역’을 말한다. 그리고 이 기관의 지역사회는 공간이면서 결국 사람이다. 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연락·접촉·왕래할 수 있는 사람이 기관의 지역사회의 실체이다. 또 하나는 ‘당사자의 지역사회’가 있는데, 이는 기관의 지역사회와는 조금 다르다. 당사자의 지역사회 역시 공간과 사람으로 나뉘는데, ‘지역사회가 변한다’고 했을 때, 결국 변화의 실체는 지역사회를 이루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산내’라는 공간은 당사자가 살고 있거나 주로 활동하는 곳, 생활권을 말한다. 그게 당사자의 지역사회다. 지역사회의 의미는 정의하는 연구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름의 정합성을 추구할 텐데, 저는 그것을 당사자의 지역사회와 기관의 지역사회로 나누고, 그중에서도 당사자의 지역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변화’는 이상을 이야기한다. 도서관 운영에서 어떤 변화를 이루고 싶은지는 곧 이상에 관한 이야기다. 나아가야 할 방향, 이루고 싶은 목표다. 우리는 약자도 살만 하고 약자와 더불어 사는 지역·마을·동네·사회. 또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정붙이고 살만한 지역·마을·동네·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아마 이런 사회는 못 보고 죽을 테지만 이렇게 지향하고 있다. 이루고 또 이뤄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한 핵심가치가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와의 공생성’이다. 어떤 사람이나 물질의 속성을 가치라고 한다. 결국, 나는 사람을 돕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속성 가운데 핵심가치를 꼽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하는 속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또 지역사회는 공생성을 띠고 있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 살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人間이라고 부르지 않나. 이 두 가지 가치를 지키며 변화를 만들고 싶다. 도서관은 기관이라고 했다. 그래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독서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돕는 기관’이 우리 호숫가마을도서관의 정체다. 이것들이 제가 들려드릴 사례의 바탕이 되는 생각이다. 
▶ 호숫가마을도서관 이야기 도서관을 새롭게 지을 때,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을 어떻게 지을지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설계도를 그렸다. 자주성이 핵심가치라고 했지 않나. 그러나 아이들만으로 도서관을 뚝딱 지을 수는 없다. 어쨌든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회의록을 만들고 내용을 채웠다. 동네 어린이대표와 어른대표가 만나서 설계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시작할 때 책정한 예산이 0원이었다. 그렇다고 어디서 내가 돈을 끌어올 생각은 없었다. 동네 안에서 아이들과 이웃들과 만들자는 원칙이 있었다. 내가 만들었던 핵심가치가 있기 때문에 고집을 부렸다. 동네에서 폐목재를 주워서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작업해서 10평 정도 되는 공간을 만들었다. 6개월 동안 고쳐서 도서관 개관 준비가 되었고, 개관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대표가 환영사를 준비했다. 동네 경로당 어르신이 축사를 해주셨다. 시골 마을에 도서관이 생기는 것은 잔치이다. 도서관을 이렇게 세우고 7~8년 정도를 잘 썼다. 그런데 데크에 발이 빠지기 시작하고 차양도 깨졌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앞선 발표에서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우리도 같았다. 도서관 이용자 이웃들을 모아서 도서관이 망가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처음에 세울 때는 돈이 없었지만, 이번엔 이왕 고치는 거 제대로 고치자고 했다. 우리 도서관에는 그동안 화장실도 없었다. 그렇게 자재비만 책정해서 400만 원 정도 생각했다. 동네 이웃들과 모인 자리에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몇 가지 예시를 들었다. 예산을 모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자고 해서, 학교 아이들과 선생님이 후원 포스터를 붙이고, 공연을 기획했다. 아이들은 공연을 하고 엄마들이 매대를 차렸다. 그렇게 벼룩시장 이후에 동네에서 번 돈을 계산해보니 20만 원이 좀 넘었다. 우리는 400만 원이 필요한데. (웃음) 그래서 시내 플리마켓에 진출하자고 했다. 무엇을 팔지 의논하고 구워 먹을거리를 장 봐서 팔기도 했다. 그렇게 5만 원 투자해서 3만 원을 벌었다. 약간 낙담해있으니 함께 한 아이가 ‘우리가 돈만 벌자고 이 일을 하진 않았다’며 위로해주기도 했다. 3~4년 정도 전의 이야기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모금을 하고 화장실을 다시 만들었다. 첫 이용자가 고쳐진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숨죽이고 기다렸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이게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웃음) 총 계산 해보니 820만 원 정도 모금할 수 있었고, 680만 원 정도 지출했다. 이 예산보고발표만 수십 번 한 것 같다. (웃음) 공사에 1년이 걸렸다. 이 과정이 경제적이거나 합리적이진 않지만, 도서관 공사도 하나의 도서관 사업이다. 이런 일은 지향가치에 있어 하나의 점일 뿐이다. 이렇게 점을 찍는 데도 우리가 정한 핵심가치 하에 했다.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의 공생성. 저자와의 대화도 진행했는데, 이것으로 지향해야 할 이상도 정해져 있다. 저자와의 대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변화하는 우리 마을. 이것이 변화이자 이상이었다. 여기에서 지켜야 할 핵심가치도 같았다. 저자와의 대화를 위해서 아이들이 직접 장소를 섭외하고, 모금하고, 현수막을 만들고, 차를 준비하고, 기록하고, 감사 인사도 드려야 했다. 책을 고르거나 누구를 만날지도 아이들이 정한다. 공간을 대여하는 것에서부터 꾸미기까지 아이들이 직접 한다. 이것을 내가 하면 일이 되지만 당사자가 하면 삶이 된다. 제가 하면 허물어진다. 당사자의 삶이 될 기회, 지역사회가 공생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 일을 쪼개서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나눠줬다. 박연철 저자와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학교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프로그램 전액을 지원해주시겠다고 했는데, 저는 “돈 지원해주시지 말고 교장 선생님을 주세요.”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이 이 동네에 처음 발령 오셔서 동네 아이들과 동네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오셔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시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께 정식으로 부탁드린 것도 섭외팀의 아이와 제가 섭외하는 시뮬레이션 연습을 함께 한 뒤에 그 아이가 직접 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께서 미리 읽을 책을 보고 연습해오셨다. 사실 학교에서 돈만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가정통신문으로 사업을 홍보하고 공간도 빌려주시기로 했지만, 아이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고 거절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잘 이해해주셨다. 저자와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작가님 맞이를 어떻게 할지를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가, 한 아이가 대전역 앞에서 작가님 책을 들고 서 있자고 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덕분에 작가님이 우리를 단번에 알아보셨다. 사실 운영비 지원도 거절한 터라 작가님께 드릴 사례비도 필요했는데, 아이들과 동네 언니, 오빠, 아줌마, 아저씨, 슈퍼마켓 사장님에게 돈을 모아서 50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그것을 동전까지 통째로 작가님께 전달 드렸다. 그렇게 강의가 끝나고 한참 뒤에 작가님 소식이 궁금해서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더니, 전국으로 강의한 곳 중에 두 곳이 기억이 남는데 그중 한 곳이 저희라고 하시면서 영광이었다는 말씀을 들었다. 또 진형민 작가를 모시고 저자와의 대화를 했을 때는 아이들이 직접 손편지를 썼다. 총 3장의 손편지를 썼는데, 작가님이 각각 개인별로 답장을 써주셨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님과 손편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다. 아마 그 아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헌터걸>을 쓰신 전미연 작가님과의 행사 준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들이 자꾸 섭외요청을 하니 이게 도서관이라는 주체가 있는 일인가 긴가민가하셔서 공문을 요청하셨다. (웃음) 그래서 공문 양식을 뽑아놓고, 아이들과 공문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한 줄 한 줄을 채워서 보내기도 했다. 

▶ 자전거 여행 준비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도서관의 사업은 진행의 순서를 구분하자면, 책을 읽기 위해 판을 벌리기도 하고, 판을 벌리기 위해 책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자전거 여행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자전거 여행을 가기 위해서 아이들이 두 달을 준비했다. 여행을 하면서 타이어에 펑크가 났는데, 아이들이 환호를 질렀다. 왜 질렀을까? 집에 갈 수 있어서? 아니었다. 배운 것을 써먹을 때가 와서였다. 아이들은 그 배운 것을 적용해보는 희열을 알고 있었다. 자전거준비팀에는 세 가지가 없었다. 첫 번째로 자전거와 장비가 없었고, 두 번째로는 지식, 경험, 정보가 없었고, 마지막으로 그렇다고 해서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도서관에서는 자전거와 장비를 어떻게 구하면 좋을까. 공공지원을 받아서 주면 좋은 걸까? 아이들이 직접 구하고 지역사회가 그것을 돕는 것이 좋을까? 저는 후자가 옳다고 판단한다. 자전거와 장비가 없다면 이것을 구실로 동네를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니 이웃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격려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우리에게 ‘없음’은 지역변화를 위한 강점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만약 제가 자전거도 구해주고 모든 것을 다 알려준다면, 지역사회 이웃들이 어설픈 자기 재주를 내밀 기회를 잃게 된다. 저는 여행을 갈 때 제가 인솔해서 가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그러면 내 여행이 되고 내 사업이 된다. 저는 도서관의 사업이 아이의 삶이 되길 원한다. 그러려면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해야 한다. 아이들이 지도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다. 필요하니까 아이들이 공부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 먹을지, 어디를 가고, 무엇을 준비할지 결정했다. 그렇게 떠나기 전날에 가족들 앞에서 여행계획을 프레젠테이션했다. 자전거가 고장 났을 때 환호를 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거는 여름이면 분명 펑크가 날 것이고, 그러면 준비를 해야 한다. 마침 동네에서 자전거 잘 타는 분을 섭외해서 배울 수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께서 자전거 여행 소식을 아시고, 자전거에 관한 강의를 청강하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묻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청강할 때 빈손으로 오지 않으셨다. 아이들은 스스로 여행을 준비했고, 우리에게는 당사자의 생활권에서 아이들을 주로 만나는 이웃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여행을 다녀와서 감사장을 10장을 썼다. 도움 주신 분들이 10명이었다. 행사에 오신 당사자의 부모님은 제외했다. 도서관 사업이지만 아이들의 여행이고 삶이었기에 아이들이 직접 감사를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사업의 성공을 판단할 때 판단하는 척도가 있다. 사업이 도서관의 모습에 가까웠는지, 지역의 일이나 아이들의 삶에 가까웠는가이다. 그것은 그 일을 한 주체가 누구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사장의 장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지역사회의 이웃이 감사장을 10장 받았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사실 이 자전거 여행을 이끈 어른 실무자가 한 명 있었다. 학창시절에 히말라야 종주와 자전거 여행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돕는 사람이 돕는 사람의 포지션으로 있으면 도움받는 사람은 도움받는 사람으로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장비를 쓰지 않고, 자전거를 다루는 법을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자전거를 한 번도 고쳐주지 않았고, 자전거를 빌려주지도 않았다. 그 분은 감사장을 받지 못했고, 저도 받지 못했다. 저와 그분이 감사장을 받지 않고, 이웃주민들이 10장의 감사장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전거 여행 사례를 이야기했는데, 그밖에 동네방송, 영화제 등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이것들은 가능하다면 질문시간에 받도록 하겠다. 

오혜자 관장님은 ‘예전에는 자원활동을 하는 것이 수용되었는데, 요즘은 열정페이라고 치부되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반면 최선웅 관장님은 그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도서관 활동을 하시면서 활동비를 어떻게 마련하시는지 궁금하다. 너무나 열정 있게 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보이기도 한다. 두 번째 감상은 시골에 살다 보니 빈 공간이 많다. 그런 공간을 마을에서 활용하면 좋을 텐데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오늘 소개한 도서관 두 곳 모두 공공도서관은 아니다. 사립도서관들은 직접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고, 지자체에서 제공한 공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저희는 월세로 운영되고 월세는 12만 원이다. 마을회관 1층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공과금과 공간비는 없었지만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요건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았다. 지금이 자유롭고 편안하다. 
사립도서관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감당할만 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당할 만큼 일하고 있고 그것을 넘어서면 힘들어서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최선웅 관장님이 이야기하셨듯 (말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지역사회의 자주성과 공생성을 기초로 하고 있고, 그것이 다른 형태로 바뀌어 나가는 것도 사회적 환경도 선택이고 여건인 것 같다. 우리는 그런 여건을 타고 가는 것이고, 동시에 그런 여건을 뚫고 나가는 주체들의 의지도 있다. 전국에 등록된 작은도서관이 7천여 개인데, 절반은 허수라고 한다. 저는 이 사실이 누가 하라고 해서 한 것도 아니고, 자주적으로 그들이 선택해서 등록까지 마치며 그런 사회적 현상을 보이는 것이라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약 3천 개의 작은도서관들이 큰 흐름을 유도하면서 끌고 나가는 형국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주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이 작은도서관의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지, 전국 곳곳에 그런 자발적인 움직임,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 활동의 모습도 많다. 이것이 실제로 보상과 급여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또 활동으로 보면,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이냐 보다는 저는 시류를 따라가는 편이다. 도서관은 공간을 지키는 인력이 필요한데 우리의 경우에 시간표를 짜서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근무해보다가 이후에 숫자가 줄고 여건이 따르지 않았다. 그 대신 파이가 커지며 지역사회에서 작은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많이 생겼다. 그러면서 사회적 일자리 지원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작은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는 도움을 5년 정도 받고 있다. 어르신도 좋아하시고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들과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모두에게 좋아하는 공간이 되는 것도 저희가 시작했던 때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렇게 협력하고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주요한 활동사업은 저희도 나름 공모사업을 신청해서 활동할 수 있는 최소의 비용을 받아서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는, 공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무를 지키고 있다. 
저는 작은도서관에 대해 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발제자는 아니지만 이런 시각에서 질문에 대해 코멘트를 드리고 싶다. 특히 수도권에서 자발적으로 사립도서관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전반적으로 다운되어 있다. 자원봉사가 모두 끊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원봉사 활동을 하지 않는다. 수도권은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고, 코로나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예전에 1세대 활동가는 사회적 미션을 가지고 수행했는데, 지금은 그런 열정만 요구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그런 전환점에 있는 것 같다. 작은도서관은 사립뿐 아니라 공립 쪽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작은도서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제이고, 그것이 드러난 게 도서관 시행령에도 사립 작은도서관 파트를 빼버린 상황이다. 이런 것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제가 볼 때는 사립 작은도서관을 기준 없이 양산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는 어렵다. 운영 측면도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운영도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지자체에서 이런 공간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있어야 한다. 공간만 지원하지 말고 지자체에 인건비를 지원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전주시 같은 경우 인건비가 지원되는 30곳 정도의 공립 작은도서관을 운영한다.
전주에서 작은도서관을 하고 있는데, 저도 처음부터 지원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발표자 사례처럼 하나하나 주민과 당사자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잘 되거나 잘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하는 게 맞다. 전주에는 공립 작은도서관들이 35곳이고, 사립은 150곳 정도 있다. 저희도 처음 시작할 때 지원을 받고 쉽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공립 작은도서관들이 돈이 나오는 만큼만 일을 한다. 시골의 면 단위마다 공립도서관이 있는데, 순창 경우에도 1명이 혼자 운영하는 구조다. 이렇게 주민과 교류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하지 않는 도서관이 굉장히 많다. 다행히 저희는 1,200세대 정도 되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지만, 동대표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큰 공공도서관의 85%가 공부하는 도서관이다. 또 한 가지로 오늘 발표했던 두 도서관이 잘 되는 것은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안되는 곳은 공무원스럽게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원받는 도서관에는 강사비 명목으로 소정 활동비가 지원되는데 활동가들끼리 서로 강사를 하려고 하는 사례가 생겼다. 그러니 강의횟수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결국, 스스로 활동가를 만들고 자체예산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에 자리매김하고 소통의 공간이 된다. 궁금한 것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3년 정도가 지나면 되면 힘든 부분이 생긴다. 사람 간에 갈등이 그것인데, 그 부분에 있어서 두 발표자님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하다. 
3년 주기 정도로 고비가 오는 것 같다. 초기에 마음먹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방식이 있고, 이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히며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또 도서관 운영 역할에 따른 갈등도 있다. 저희는 비용이 없는데도 관습적으로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잘하려는 마음이 활동을 즐기지 못하게 하고, 다른 곳과 비교하는 마음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즐거움으로 참여하는 것을 짚어줘야 한다. 함께하는 데에 누군가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지 않다. 보조를 맞추고 같이 하는 데는 빨리 가거나 잘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후원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금액에 따른 대우가 달라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만큼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잘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작은 공간에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저희도 비슷한 원칙이 있다.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만큼만 한다. 저희는 내고 싶을 때 내고, 돕고 싶은 만큼 돕는다. 다툼도 있고 문제도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더 좋은 일로 그 일을 희석하려고 한다. 맑은 물에 떨어진 잉크를 핀셋으로 짚어내려 노력하지 않고, 더 맑은 물을 많이 붓는 것이다. 갈등은 안고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초롱이네도서관은 시작 전에 독서모임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책이 오래되었을 때 책의 위생적인 문제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다. 
요즘 책들은 대부분 후처리가 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책벌레는 요즘 많이 생기지 않는다. 너무 낡은 책이 아니면 신간 위주로 놓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 도서관은 책을 많이 놓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어서 보지 않는 책은 정리하고 순환하는 쪽으로 유지하려 한다. 또 어르신들이 책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져주셔서 책을 털고 닦는 일도 해주신다. 또 기계적으로는 책 소독기라는 것도 있다. 공공도서관에는 책 소독기가 있다. 코로나 이후에 도입한 작은도서관도 있다. 도서관의 시작과 관련된 답변으로는 저희도 독서모임을 통해 작은 공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지역적 모의를 하면서 시작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시작한 관계들이 있어서 오래 버티면서 같이할 수 있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대전 호숫가마을도서관도 시작점을 공유해주시면 좋겠다. 
‘기적의 도서관’이 붐이 일면서 우리 도서관도 생겼는데, 마을 사람 전체가 운영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가 2년 정도 휴관 된 차에 제가 마을도서관을 이어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저는 사회사업(사회복지)을 전공했고,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었다. 호숫가마을 도서관을 알게되어 이력서와 사업계획서를 써서 도서관을 처음 만든 마을분들에게 셀프 면접을 봤다. 

‘작은도서관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까?’라는 질문에서 ‘저희가 뭐라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대전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희 스스로가 지역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우리가 작은도서관을 통해 변화했다. 그렇게 되면 '작은도서관은 지역을 변화시키더라'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도서관이 생기는 것만으로 지역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도서관을 도구 삼아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도서관사업을 누가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가 그 도서관을 설명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함께 운영하는지, 도서관 실무자가 알아서 다 하는지, 누군가가 예산으로 독서문화복지를 이루는지가 지역사회의 변화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다. 
제가 두 도서관에 가보진 못했지만, 아마 마을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이런 곳이 있어서 참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리산도 어떤 공간이나 사업이 됐건 이런 가치관을 가지는 모임이 많아지면 지역에서 함께 변화를 꿈꾸는 사이좋은 마을로, 또 마을에서 사는 게 너무 좋은 지역주민이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멀리서 참석하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기록 | 이승현 편집 | 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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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 “작은도서관”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2022년 9월 22일 목요일 14:00
@남원시 산내면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
발제 | 청주 초롱이네도서관 오혜자 관장
발제 | 대전 호숫가마을도서관 최선웅 관장
진행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임현택 센터장
기획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임현택 센터장
추석 명절도 지나고, 마을 들녘에는 추수도 한창이다.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는 지리산쌀롱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넷째 주 목요일에 지역사회 변화를 위한 사례들을 다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청소년공간, 기후위기 주제에 이어 오늘은 작은도서관을 다루며, 지역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계속 가져보려 한다. 오늘의 발제자 두 분도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상상력과 그로 인한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해주실 것 같다. 먼저 청주 초롱이네 도서관 관장님 모시고 사례발표 및 도서관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청주 초롱이네도서관 오혜자 관장
처음부터 지금까지, 1999년부터 계속 관장 같지 않은 관장일을 하고 있다. 올해가 24년 차이고, 도서관과 같이 나이를 먹고 있다. 시작할 때는 쌩쌩하고 젊었는데, 좀 있으면 고개를 넘을 판이다. 긴 시간 동안 잘 놀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놀았던 것을 들려드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과 우려가 들기도 했다. 그동안 고민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직접 실천해본 이야기들을 하겠다.
▶ 초롱이네 도서관 소개
우리 도서관은 1999년 1월에 문을 열었다. 처음엔 아파트 10층의 거실에 책을 내어놓고 책 사랑방 같은 가정도서관으로 시작했다.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고 밖으로 다니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책 모임을 하고 있어서, 책은 돌려보고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 이름인 ‘초롱’을 따서 도서관 이름을 붙였다. 그 당시에는 아이 이름을 이용한 사례들이 많았다.(웃음) 그 이름과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도 신기하다.
거실을 내놓은 사랑방의 형태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시에 등록된 공공도서관 역할을 하기까지가 지나 보니 감회가 새롭다. 순간순간 과정들에서 결정을 해야 했다. 이것이 내가 원한 것인지, 방향에 맞는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계속 있었다. 공간과 활동을 위해 함께 보기위해 사진 자료를 가져왔다.
▶ 책문화공동체를 만들다(1999-2006)
도서관을 여는 데는 지역에서 독서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힘이 뒷받침이 되었다. 책 모임 멤버 중 시를 쓰는 한 분이 책 사랑방을 연다고 했고, 그러면 나는 집 거실을 열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손바닥만 한 공간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개방하는 것을 작은 결심으로 시작했다.
원래 저희 지역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청주의 시립도서관의 역사를 얼마 전부터 찾아봤는데, 그 당시에는 시립도서관이 없던 시기였다. 지역자치단체의 도서관이 없었고, 충북교육청도서관이 산꼭대기에 하나 있었는데 주민들을 위해서 활용되기보다는 열람실 위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가거나 머물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그런 고민을 나만 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하고 있었고, 책 모임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책을 함께 읽자고 하기가 민망하다는 이야길 나눴다. 책값도 비싸고. 책을 돌려보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고 거실을 개방한 것이었다. 마치 장난처럼.
그렇게 1년 정도 운영하다 보니 소문이 조금 났다. 많은 사람이 아이 손을 잡고 방문해주셨다. 1,000권 정도의 책을 놓고 시작했는데, 금방 300권만 남고 다 빌려 가셨다. 나중에 오신 분들은 ‘빌려갈 책이 없다’하는 순간이 생겨났다. 그간 도서 구입비를 사비로 꾸준히 충당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해나가기 쉽지 않았다. 연말에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곳이 선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수요가 많은 관계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감당할 만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던 것이다.
특히, 그 공간을 제가 지키고 있어야 했다. 도서관은 공간이고, 공간은 열려있어야 하고, 열려있는 공간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문제가 생겼다.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을 수는 없었다. 물론 약속된 시간에만 열어도 되겠지만, 그 ‘약속된 시간’이라하면 그 시간에는 반드시 열어야 했다. 그리고 장서 역시 내가 원하는 책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책까지 잘 갖춰야 했다. 그래서 이런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어느 날 토요일에 집안에 결혼식이 있었다. 토요일에 도서관을 누가 봐줄까 하고 부탁하려는데, 아무에게도 부탁하기 어려워서 아빠와 아이만 보내놓고 저는 그 공간을 지켰다. 그런데 그날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문 닫는 5시까지(웃음)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아무도 안 왔다. 그러니 ‘내가 이러고 있는걸 누가 아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을 원하는가?’ ‘계속할 것인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할 건가?’ 이런 고민들을 했다. 노력의 과정에 스스로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그때 처음 했다.
그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나니 그 이후로는 쉬웠다. 걸음 보폭이 넓어지고 빨라졌다. 그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었다. 저는 이 시대의 여성이고 엄마고, ‘독서취약계층’이라는 양육자의 입장에서 아이를 데리고 무엇을 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부모의 많은 노력이 든다. 아이를 돌보는 것뿐 아니라 친구를 만들어주고, 어딘가를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그 시간에 같은 동네에 영유아, 그리고 양육자, 또 장애아동 등 소위 ‘독서취약계층’이 이곳을 찾아주었다. 그들 덕분에 단순한 아파트 거실에 불과했던 공간이 바뀌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 이렇게 끝내기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공유하면 부자가 되는 것 같은 맛을 좀 봤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이곳을 지속하는 데 힘이 된 것은 남편이다. 남편은 사회적 관계에 호기심이 있고 능한 사람이어서 오는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본인도 그걸 즐겼다. 토요일에 방문하시는 분들이나 아이들이나 엄마들이 모여있을 때도 즐겁게 잘 지내주었다. 남편의 어릴 적 꿈이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의 조금 다른 모습을 보고, 도서관이 개인의 책무나 사명이라기보다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일이 가족 안에서 아이와 아빠가 함께 공동으로 고민하고 매진할 수 있는 일이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가 찾아오는 분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을 필요한 공간으로,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인데, 지역사회가 그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그냥 바라만 보기에는 아쉬웠고, 그래서 몇 년 더 해보자고 생각했다. 가족과 합의가 잘 된 관계로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도쯤 인근에 지인이 운영하던 레스토랑 건물이 있었다. IMF 금융위기 직후여서 환율도 높고, 공간이 팔리지 않았다. 그 공간을 보고 어떻게든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전세금과 분할상환 대출로 마련하게 됐다. 요즘 말로 ‘영끌’해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무모했다. 그때의 생각은 경제관념이 없다 보니, 이자를 내는 것이 어디 가서 월세 내는 것과 같은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사를 안 다니니 좋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건물 3층으로 입주하고 1, 2층을 각 30평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엄청 이상하게 우리를 바라봤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에게는 이 일이 확고하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간을 열고 아이들도 오게 하고 책을 기증받았다. 사람들에게 집에 있는 책을 갖고 나오라고 했고, 공간이 변하니 책이 많이 생겼다. 작은도서관은 보통 공간에 1만 권 정도 장서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1만 2천 권 정도가 있다. 초기에는 기증받은 책을 다 꽂아도 공간이 남았다.
또 생각나는 게, 지금은 작은도서관으로 등록하면 도서관 프로그램을 제공해줘서 그것을 이용하면 되는데, 이 당시만 해도 모두 수기로 썼다. 99년부터 수기로 쓰기 시작한 대출 공책 60여권이 지금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손으로 쓴 글씨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이름과 얼굴도 기억나고 정감 있었다. 손글씨로 자신이 빌려 간 책은 잘 잊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 전후로 대학입시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 바로 ‘대입논술도입’이다. 독서 시장에 사교육 수준이 확 올라오는 때였다. 책을 읽어야 시험을 볼 수 있는 구조가 되다 보니 대형 사교육 업체들이 뜨기 시작했다. 그때 우려를 한 부분이 아이들이 공부수단으로써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나마도 우리 도서관에 아이들이 몰려든 이유는 책값이 비싸고 책을 보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드는 곳은 좀 더 개방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0대 중반이어서 혈기왕성한 나이었다. 대외적으로도 ‘생협 한살림’, 대안학교, 공동육아 등 시민들의 자발적, 주체적 활동의 싹이 트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도서관을 열었고, 도서관에서 행사를 만들면 대기인원이 있을 만큼 호황기였다. 다양한 작가를 초빙하기도 하고, 엄마들이 읽어주는 작은 극장 등 동네 문화를 만들어갔다. 어른들은 천연염색이나 목공 등을 하면서 마을의 공간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정말 꽃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문화적 결핍과 욕구가 많았고 동시에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지역사회의 공간이 부족했다는 것이기도 했다.
시민의식은 높아지는 반면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이 통합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교육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했던 활동이 어머니들에게 만족도가 높았다. 밤에 같이 모여서 시골 극장처럼 영화를 보기도 하고, 엄마들이 만든 그림자 극장을 열기도 하면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공간이 있다는 안도감과 든든함이 있었다.
‘가을동화잔치’는 2000년 정도부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들을 펼쳐서 한마당축제처럼 판을 벌리고 놀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도서축제도 없었고, 모여서 놀만한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시내의 한 공원을 본거지 삼아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을 빠지지 않고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축제를 열었다.
이런 경험이 다음 스텝으로 이어갈 토대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니 유지비도 필요하고 책도 계속 사야 했다. 그러니 자치단체나 국가의 지원은 없고 힘이 달리는 상황들이 생겼다. 운영 회의를 통해서 CMS 후원제도를 만들었고,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후원금을 내서 유지에 보태도록 하자고 했다. 어느 순간 후원액이 월 100만 원을 넘어가면서 숨통이 트였다. 내가 혼자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함께 의논할 힘이 생겼다.
▶ 마을도서관이 되다(2007-2017)
후원금 제도를 시행하면서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행정과 실무가 늘어났다. 조금씩 체계가 잡히고 운영의 투명성을 갖게 됐다. 그리고 마을의 독서취약계층, 즉, 가까이 있지만 그림책 한 권 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찾아가든 오게 하든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자 생각했다.
그 당시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기금이 있었다. 전국의 작은도서관, 학교도서관의 노후시설보수, 공간 기자재 수요 조사 등을 해서 내용에 맞게 지원하는 기금으로 76곳 정도 지원받았고, 저희는 공간을 보수해서 좀 더 도서관스럽게 쓸 수 있는 내용으로 지원받아 도서관을 새단장하면서 마을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책을 열심히 읽고 찾아가서 읽어주는 일을 시작했는데, ‘도서관은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책 모임을 했던 분들이 지역사회로 쏟아져 나왔다. 다문화어린이집에 도서관에 견학탐방을 하면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해줄 수 있다고 알리고, 동네에 장애 학교, 공부방,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에게 책 문화 활동가들이 나가서 책을 읽어주었다. 요즘은 이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 ‘열정페이’라는 것으로 해석되게 되었다. 이전에는 우리가 밥 먹고 남는 힘을 타인에게 쓰는 것에 대해 보상받는 것을 민망해하던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상을 먼저 이야기한다. 요즘은 공공기금에 공모할 때 사업에 따라 인력비용을 필요예산 범위에 포함하여 세우고 있다.
2008년에 나온 박경리 작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야기꾼’이라는 시에서 글을 깨치는 것과 책을 읽는 것,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야기는 귀로 전해지고 전승되어 왔던 것이기에 우리가 도서관에 책을 놓아두고, 책을 보여주고, 읽고, 빌리면서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 시를 통해서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대출하고 책만 보기만 하는 공간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공간을 활용한 본격적인 이야기 전도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구 중에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그리하여 밤은 깊어만 갔다.’는 구절이 눈에 확 떠올랐다. 우리가 작은 극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펼치면 아이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극장 안으로 빨려든다. 문화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보다 분위기가 주는 영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에 이런 추억을 주는 것에 매진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지역에 이런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있을 것이고, 박경리 작가의 어머니 같은, 글을 몰라도 이야기를 모두 외워버려서 이야기꾼이 되어버린 이야기들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 오래된 공간의 쓸모(2017~2022)
도서관을 연 지 20년이 지나면서 공간이 많이 낡았다. 그러면서 몇 차시로 나누어 한동안 운영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거기에서 나온 결론은 ‘추억을 덮을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였다. 카탈로그에 있는 ‘기울어져 가는 초롱이네 도서관을 바로 세워주세요’ 라는 그림은 세 살부터 도서관에 다녔던 5학년 아이가 그려줬다. 그렇게 공간을 고치고, 다시 공간을 번듯하게 세울 수 있었다. 현재는 1~3층 모두 공유도서관으로 쓰고 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것을 넘고자 하는 과정에서 다음으로 가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어려운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번엔 그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이곳을 설명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고비가 있을 때마다 경험해본 적 없고 예측할 수 없던 과제들이 주어지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다음으로 넘어가는 관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에는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보자고 해서 ‘해피아이네트워크’와 ‘문화다양성현장분투기’, ‘가을동화잔치의 역사’들을 작은 책으로 묶었다. 다음 과제로 활동의 기록과 사람들에 대한 기록,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공간을 도서관 한편에 조성했다. ‘동네기록관’이라는 이름으로 소모임이나 의미 있는 개인의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우리들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시 고쳐진 공간 역시도 지역주민들의 마음과 기금을 보태고 채워져서 완성해가는 부분이라 초롱이네도서관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것이 어려웠다. '찾아가는 책 읽어주기'와 '가을동화잔치' 파트로 나눠서 묶으니 조금 잘 전달할 수 있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이야기를 하니 조금 더 편안하게 드러났다. 각자가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지속적으로 이 공간을 잘 살려가고 싶다.
20년 넘게 도서관을 이어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을까 생각이 든다. 또 관장님의 삶의 이야기도 많을 텐데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많이 줄여서 이야기하신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풍부한 이야기 전달해주신 오혜자 관장님께 박수를 부탁 드린다.
두 번째 시간은 청주와 멀지 않은 지역인 대전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모든 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대전 호숫가마을도서관의 이야기를 박수로 청하겠다.
대전 호숫가마을도서관 최선웅 관장
고향이 함양이다. 산내에는 저희 이모가 살았고, 함양 마천에는 외할머니가 계셨다. 여기에서 함양 억양을 들으니 반갑다. 앞서 발표해주신 오혜자 관장님은 마을도서관계의 선생님이다. 도서관 활동을 시작할 때 저도 오혜자 선생님 강의를 들었다.
작은도서관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저를 초대하셨다고 생각했다. 지역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에게는 ‘지역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그리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지역사회’다. 지역사회가 어디인지, 무엇인지 모르고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름의 지역사회의 정의를 내려봤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 있어야 한다. 변화는 곧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변화를 지향할 것인지 정해놓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상을 이루기만 하면 끝인가? 어떻게든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대통령도 보시지 않았나. 그러니 이상을 찾아갈 때 핵심가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룬 사례들을 지역사회, 변화, 핵심가치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려 한다.
▶ 지역사회, 변화, 가치
‘당사자의 지역사회’와 ‘기관의 지역사회’는 다르다.
기관의 지역사회는 사람과 공간으로 나뉘는데, 이중 공간이라면 ‘기관이 속한 행정구역 또는 조례나 정관 따위로 정한 사업구역’을 말한다. 그리고 이 기관의 지역사회는 공간이면서 결국 사람이다. 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연락·접촉·왕래할 수 있는 사람이 기관의 지역사회의 실체이다.
또 하나는 ‘당사자의 지역사회’가 있는데, 이는 기관의 지역사회와는 조금 다르다. 당사자의 지역사회 역시 공간과 사람으로 나뉘는데, ‘지역사회가 변한다’고 했을 때, 결국 변화의 실체는 지역사회를 이루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산내’라는 공간은 당사자가 살고 있거나 주로 활동하는 곳, 생활권을 말한다. 그게 당사자의 지역사회다.
지역사회의 의미는 정의하는 연구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름의 정합성을 추구할 텐데, 저는 그것을 당사자의 지역사회와 기관의 지역사회로 나누고, 그중에서도 당사자의 지역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변화’는 이상을 이야기한다. 도서관 운영에서 어떤 변화를 이루고 싶은지는 곧 이상에 관한 이야기다. 나아가야 할 방향, 이루고 싶은 목표다. 우리는 약자도 살만 하고 약자와 더불어 사는 지역·마을·동네·사회. 또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정붙이고 살만한 지역·마을·동네·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아마 이런 사회는 못 보고 죽을 테지만 이렇게 지향하고 있다. 이루고 또 이뤄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한 핵심가치가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와의 공생성’이다. 어떤 사람이나 물질의 속성을 가치라고 한다. 결국, 나는 사람을 돕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속성 가운데 핵심가치를 꼽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하는 속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또 지역사회는 공생성을 띠고 있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 살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人間이라고 부르지 않나. 이 두 가지 가치를 지키며 변화를 만들고 싶다.
도서관은 기관이라고 했다. 그래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독서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돕는 기관’이 우리 호숫가마을도서관의 정체다. 이것들이 제가 들려드릴 사례의 바탕이 되는 생각이다.
▶ 호숫가마을도서관 이야기
도서관을 새롭게 지을 때,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을 어떻게 지을지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설계도를 그렸다. 자주성이 핵심가치라고 했지 않나. 그러나 아이들만으로 도서관을 뚝딱 지을 수는 없다. 어쨌든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회의록을 만들고 내용을 채웠다. 동네 어린이대표와 어른대표가 만나서 설계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시작할 때 책정한 예산이 0원이었다. 그렇다고 어디서 내가 돈을 끌어올 생각은 없었다. 동네 안에서 아이들과 이웃들과 만들자는 원칙이 있었다. 내가 만들었던 핵심가치가 있기 때문에 고집을 부렸다. 동네에서 폐목재를 주워서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작업해서 10평 정도 되는 공간을 만들었다. 6개월 동안 고쳐서 도서관 개관 준비가 되었고, 개관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대표가 환영사를 준비했다. 동네 경로당 어르신이 축사를 해주셨다. 시골 마을에 도서관이 생기는 것은 잔치이다.
도서관을 이렇게 세우고 7~8년 정도를 잘 썼다. 그런데 데크에 발이 빠지기 시작하고 차양도 깨졌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앞선 발표에서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우리도 같았다. 도서관 이용자 이웃들을 모아서 도서관이 망가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처음에 세울 때는 돈이 없었지만, 이번엔 이왕 고치는 거 제대로 고치자고 했다. 우리 도서관에는 그동안 화장실도 없었다.
그렇게 자재비만 책정해서 400만 원 정도 생각했다. 동네 이웃들과 모인 자리에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몇 가지 예시를 들었다. 예산을 모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자고 해서, 학교 아이들과 선생님이 후원 포스터를 붙이고, 공연을 기획했다. 아이들은 공연을 하고 엄마들이 매대를 차렸다. 그렇게 벼룩시장 이후에 동네에서 번 돈을 계산해보니 20만 원이 좀 넘었다. 우리는 400만 원이 필요한데. (웃음) 그래서 시내 플리마켓에 진출하자고 했다. 무엇을 팔지 의논하고 구워 먹을거리를 장 봐서 팔기도 했다. 그렇게 5만 원 투자해서 3만 원을 벌었다. 약간 낙담해있으니 함께 한 아이가 ‘우리가 돈만 벌자고 이 일을 하진 않았다’며 위로해주기도 했다. 3~4년 정도 전의 이야기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모금을 하고 화장실을 다시 만들었다. 첫 이용자가 고쳐진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숨죽이고 기다렸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이게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웃음) 총 계산 해보니 820만 원 정도 모금할 수 있었고, 680만 원 정도 지출했다. 이 예산보고발표만 수십 번 한 것 같다. (웃음)
공사에 1년이 걸렸다. 이 과정이 경제적이거나 합리적이진 않지만, 도서관 공사도 하나의 도서관 사업이다. 이런 일은 지향가치에 있어 하나의 점일 뿐이다. 이렇게 점을 찍는 데도 우리가 정한 핵심가치 하에 했다.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의 공생성.
저자와의 대화도 진행했는데, 이것으로 지향해야 할 이상도 정해져 있다. 저자와의 대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변화하는 우리 마을. 이것이 변화이자 이상이었다. 여기에서 지켜야 할 핵심가치도 같았다. 저자와의 대화를 위해서 아이들이 직접 장소를 섭외하고, 모금하고, 현수막을 만들고, 차를 준비하고, 기록하고, 감사 인사도 드려야 했다. 책을 고르거나 누구를 만날지도 아이들이 정한다. 공간을 대여하는 것에서부터 꾸미기까지 아이들이 직접 한다. 이것을 내가 하면 일이 되지만 당사자가 하면 삶이 된다. 제가 하면 허물어진다. 당사자의 삶이 될 기회, 지역사회가 공생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 일을 쪼개서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나눠줬다.
박연철 저자와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학교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프로그램 전액을 지원해주시겠다고 했는데, 저는 “돈 지원해주시지 말고 교장 선생님을 주세요.”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이 이 동네에 처음 발령 오셔서 동네 아이들과 동네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오셔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시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께 정식으로 부탁드린 것도 섭외팀의 아이와 제가 섭외하는 시뮬레이션 연습을 함께 한 뒤에 그 아이가 직접 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께서 미리 읽을 책을 보고 연습해오셨다. 사실 학교에서 돈만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가정통신문으로 사업을 홍보하고 공간도 빌려주시기로 했지만, 아이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고 거절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잘 이해해주셨다.
저자와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작가님 맞이를 어떻게 할지를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가, 한 아이가 대전역 앞에서 작가님 책을 들고 서 있자고 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덕분에 작가님이 우리를 단번에 알아보셨다.
사실 운영비 지원도 거절한 터라 작가님께 드릴 사례비도 필요했는데, 아이들과 동네 언니, 오빠, 아줌마, 아저씨, 슈퍼마켓 사장님에게 돈을 모아서 50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그것을 동전까지 통째로 작가님께 전달 드렸다. 그렇게 강의가 끝나고 한참 뒤에 작가님 소식이 궁금해서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더니, 전국으로 강의한 곳 중에 두 곳이 기억이 남는데 그중 한 곳이 저희라고 하시면서 영광이었다는 말씀을 들었다.
또 진형민 작가를 모시고 저자와의 대화를 했을 때는 아이들이 직접 손편지를 썼다. 총 3장의 손편지를 썼는데, 작가님이 각각 개인별로 답장을 써주셨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님과 손편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다. 아마 그 아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헌터걸>을 쓰신 전미연 작가님과의 행사 준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들이 자꾸 섭외요청을 하니 이게 도서관이라는 주체가 있는 일인가 긴가민가하셔서 공문을 요청하셨다. (웃음) 그래서 공문 양식을 뽑아놓고, 아이들과 공문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한 줄 한 줄을 채워서 보내기도 했다.
▶ 자전거 여행 준비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도서관의 사업은 진행의 순서를 구분하자면, 책을 읽기 위해 판을 벌리기도 하고, 판을 벌리기 위해 책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자전거 여행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자전거 여행을 가기 위해서 아이들이 두 달을 준비했다. 여행을 하면서 타이어에 펑크가 났는데, 아이들이 환호를 질렀다. 왜 질렀을까? 집에 갈 수 있어서? 아니었다. 배운 것을 써먹을 때가 와서였다. 아이들은 그 배운 것을 적용해보는 희열을 알고 있었다.
자전거준비팀에는 세 가지가 없었다. 첫 번째로 자전거와 장비가 없었고, 두 번째로는 지식, 경험, 정보가 없었고, 마지막으로 그렇다고 해서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도서관에서는 자전거와 장비를 어떻게 구하면 좋을까. 공공지원을 받아서 주면 좋은 걸까? 아이들이 직접 구하고 지역사회가 그것을 돕는 것이 좋을까? 저는 후자가 옳다고 판단한다. 자전거와 장비가 없다면 이것을 구실로 동네를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니 이웃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격려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우리에게 ‘없음’은 지역변화를 위한 강점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만약 제가 자전거도 구해주고 모든 것을 다 알려준다면, 지역사회 이웃들이 어설픈 자기 재주를 내밀 기회를 잃게 된다.
저는 여행을 갈 때 제가 인솔해서 가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그러면 내 여행이 되고 내 사업이 된다. 저는 도서관의 사업이 아이의 삶이 되길 원한다. 그러려면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해야 한다. 아이들이 지도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다. 필요하니까 아이들이 공부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 먹을지, 어디를 가고, 무엇을 준비할지 결정했다. 그렇게 떠나기 전날에 가족들 앞에서 여행계획을 프레젠테이션했다.
자전거가 고장 났을 때 환호를 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거는 여름이면 분명 펑크가 날 것이고, 그러면 준비를 해야 한다. 마침 동네에서 자전거 잘 타는 분을 섭외해서 배울 수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께서 자전거 여행 소식을 아시고, 자전거에 관한 강의를 청강하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묻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청강할 때 빈손으로 오지 않으셨다.
아이들은 스스로 여행을 준비했고, 우리에게는 당사자의 생활권에서 아이들을 주로 만나는 이웃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여행을 다녀와서 감사장을 10장을 썼다. 도움 주신 분들이 10명이었다. 행사에 오신 당사자의 부모님은 제외했다. 도서관 사업이지만 아이들의 여행이고 삶이었기에 아이들이 직접 감사를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사업의 성공을 판단할 때 판단하는 척도가 있다. 사업이 도서관의 모습에 가까웠는지, 지역의 일이나 아이들의 삶에 가까웠는가이다. 그것은 그 일을 한 주체가 누구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사장의 장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지역사회의 이웃이 감사장을 10장 받았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사실 이 자전거 여행을 이끈 어른 실무자가 한 명 있었다. 학창시절에 히말라야 종주와 자전거 여행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돕는 사람이 돕는 사람의 포지션으로 있으면 도움받는 사람은 도움받는 사람으로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장비를 쓰지 않고, 자전거를 다루는 법을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자전거를 한 번도 고쳐주지 않았고, 자전거를 빌려주지도 않았다. 그 분은 감사장을 받지 못했고, 저도 받지 못했다. 저와 그분이 감사장을 받지 않고, 이웃주민들이 10장의 감사장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전거 여행 사례를 이야기했는데, 그밖에 동네방송, 영화제 등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이것들은 가능하다면 질문시간에 받도록 하겠다.
오혜자 관장님은 ‘예전에는 자원활동을 하는 것이 수용되었는데, 요즘은 열정페이라고 치부되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반면 최선웅 관장님은 그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도서관 활동을 하시면서 활동비를 어떻게 마련하시는지 궁금하다. 너무나 열정 있게 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보이기도 한다. 두 번째 감상은 시골에 살다 보니 빈 공간이 많다. 그런 공간을 마을에서 활용하면 좋을 텐데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오늘 소개한 도서관 두 곳 모두 공공도서관은 아니다. 사립도서관들은 직접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고, 지자체에서 제공한 공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저희는 월세로 운영되고 월세는 12만 원이다. 마을회관 1층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공과금과 공간비는 없었지만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요건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았다. 지금이 자유롭고 편안하다.
사립도서관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감당할만 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당할 만큼 일하고 있고 그것을 넘어서면 힘들어서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최선웅 관장님이 이야기하셨듯 (말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지역사회의 자주성과 공생성을 기초로 하고 있고, 그것이 다른 형태로 바뀌어 나가는 것도 사회적 환경도 선택이고 여건인 것 같다. 우리는 그런 여건을 타고 가는 것이고, 동시에 그런 여건을 뚫고 나가는 주체들의 의지도 있다.
전국에 등록된 작은도서관이 7천여 개인데, 절반은 허수라고 한다. 저는 이 사실이 누가 하라고 해서 한 것도 아니고, 자주적으로 그들이 선택해서 등록까지 마치며 그런 사회적 현상을 보이는 것이라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약 3천 개의 작은도서관들이 큰 흐름을 유도하면서 끌고 나가는 형국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주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이 작은도서관의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지, 전국 곳곳에 그런 자발적인 움직임,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 활동의 모습도 많다. 이것이 실제로 보상과 급여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또 활동으로 보면,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이냐 보다는 저는 시류를 따라가는 편이다. 도서관은 공간을 지키는 인력이 필요한데 우리의 경우에 시간표를 짜서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근무해보다가 이후에 숫자가 줄고 여건이 따르지 않았다. 그 대신 파이가 커지며 지역사회에서 작은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많이 생겼다. 그러면서 사회적 일자리 지원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작은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는 도움을 5년 정도 받고 있다. 어르신도 좋아하시고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들과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모두에게 좋아하는 공간이 되는 것도 저희가 시작했던 때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렇게 협력하고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주요한 활동사업은 저희도 나름 공모사업을 신청해서 활동할 수 있는 최소의 비용을 받아서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는, 공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무를 지키고 있다.
저는 작은도서관에 대해 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발제자는 아니지만 이런 시각에서 질문에 대해 코멘트를 드리고 싶다. 특히 수도권에서 자발적으로 사립도서관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전반적으로 다운되어 있다. 자원봉사가 모두 끊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원봉사 활동을 하지 않는다. 수도권은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고, 코로나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예전에 1세대 활동가는 사회적 미션을 가지고 수행했는데, 지금은 그런 열정만 요구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그런 전환점에 있는 것 같다.
작은도서관은 사립뿐 아니라 공립 쪽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작은도서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제이고, 그것이 드러난 게 도서관 시행령에도 사립 작은도서관 파트를 빼버린 상황이다. 이런 것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제가 볼 때는 사립 작은도서관을 기준 없이 양산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는 어렵다. 운영 측면도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운영도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지자체에서 이런 공간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있어야 한다. 공간만 지원하지 말고 지자체에 인건비를 지원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전주시 같은 경우 인건비가 지원되는 30곳 정도의 공립 작은도서관을 운영한다.
전주에서 작은도서관을 하고 있는데, 저도 처음부터 지원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발표자 사례처럼 하나하나 주민과 당사자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잘 되거나 잘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하는 게 맞다.
전주에는 공립 작은도서관들이 35곳이고, 사립은 150곳 정도 있다. 저희도 처음 시작할 때 지원을 받고 쉽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공립 작은도서관들이 돈이 나오는 만큼만 일을 한다. 시골의 면 단위마다 공립도서관이 있는데, 순창 경우에도 1명이 혼자 운영하는 구조다. 이렇게 주민과 교류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하지 않는 도서관이 굉장히 많다. 다행히 저희는 1,200세대 정도 되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지만, 동대표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큰 공공도서관의 85%가 공부하는 도서관이다.
또 한 가지로 오늘 발표했던 두 도서관이 잘 되는 것은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안되는 곳은 공무원스럽게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원받는 도서관에는 강사비 명목으로 소정 활동비가 지원되는데 활동가들끼리 서로 강사를 하려고 하는 사례가 생겼다. 그러니 강의횟수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결국, 스스로 활동가를 만들고 자체예산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에 자리매김하고 소통의 공간이 된다.
궁금한 것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3년 정도가 지나면 되면 힘든 부분이 생긴다. 사람 간에 갈등이 그것인데, 그 부분에 있어서 두 발표자님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하다.
3년 주기 정도로 고비가 오는 것 같다. 초기에 마음먹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방식이 있고, 이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히며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또 도서관 운영 역할에 따른 갈등도 있다. 저희는 비용이 없는데도 관습적으로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잘하려는 마음이 활동을 즐기지 못하게 하고, 다른 곳과 비교하는 마음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즐거움으로 참여하는 것을 짚어줘야 한다. 함께하는 데에 누군가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지 않다. 보조를 맞추고 같이 하는 데는 빨리 가거나 잘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후원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금액에 따른 대우가 달라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만큼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잘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작은 공간에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저희도 비슷한 원칙이 있다.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만큼만 한다. 저희는 내고 싶을 때 내고, 돕고 싶은 만큼 돕는다. 다툼도 있고 문제도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더 좋은 일로 그 일을 희석하려고 한다. 맑은 물에 떨어진 잉크를 핀셋으로 짚어내려 노력하지 않고, 더 맑은 물을 많이 붓는 것이다. 갈등은 안고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초롱이네도서관은 시작 전에 독서모임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책이 오래되었을 때 책의 위생적인 문제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다.
요즘 책들은 대부분 후처리가 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책벌레는 요즘 많이 생기지 않는다. 너무 낡은 책이 아니면 신간 위주로 놓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 도서관은 책을 많이 놓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어서 보지 않는 책은 정리하고 순환하는 쪽으로 유지하려 한다. 또 어르신들이 책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져주셔서 책을 털고 닦는 일도 해주신다. 또 기계적으로는 책 소독기라는 것도 있다. 공공도서관에는 책 소독기가 있다. 코로나 이후에 도입한 작은도서관도 있다.
도서관의 시작과 관련된 답변으로는 저희도 독서모임을 통해 작은 공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지역적 모의를 하면서 시작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시작한 관계들이 있어서 오래 버티면서 같이할 수 있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대전 호숫가마을도서관도 시작점을 공유해주시면 좋겠다.
‘기적의 도서관’이 붐이 일면서 우리 도서관도 생겼는데, 마을 사람 전체가 운영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가 2년 정도 휴관 된 차에 제가 마을도서관을 이어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저는 사회사업(사회복지)을 전공했고,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었다. 호숫가마을 도서관을 알게되어 이력서와 사업계획서를 써서 도서관을 처음 만든 마을분들에게 셀프 면접을 봤다.
‘작은도서관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까?’라는 질문에서 ‘저희가 뭐라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대전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희 스스로가 지역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우리가 작은도서관을 통해 변화했다. 그렇게 되면 '작은도서관은 지역을 변화시키더라'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도서관이 생기는 것만으로 지역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도서관을 도구 삼아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도서관사업을 누가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가 그 도서관을 설명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함께 운영하는지, 도서관 실무자가 알아서 다 하는지, 누군가가 예산으로 독서문화복지를 이루는지가 지역사회의 변화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다.
제가 두 도서관에 가보진 못했지만, 아마 마을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이런 곳이 있어서 참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리산도 어떤 공간이나 사업이 됐건 이런 가치관을 가지는 모임이 많아지면 지역에서 함께 변화를 꿈꾸는 사이좋은 마을로, 또 마을에서 사는 게 너무 좋은 지역주민이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멀리서 참석하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기록 | 이승현
편집 | 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