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영에게_ 다섯 번째 편지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름의 한가운데, 잘 지내고 있니? 이번 편지는 오랜만이지? 오늘 보니 성미가 급한 잎들은 하나둘씩 노란빛을 띠기 시작하더라. 우리가 한창 더위에 지쳐있을 때 나무는 벌써 가을을 준비하나 봐. 나는 조금 늘어진 노래를 틀고 선선한 바람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어. 햇살이 한풀 꺾인 어느 오후, 지난번 소개했던 (목공에 관심이 많은) 재영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어. 내가 올해 기록 활동을 하듯 재영은 ‘자립기술 워크숍’을 진행하거든. 이번 워크숍은 ‘규준틀 작업’이야. 시골에는 곳곳에 비닐하우스나 창고가 많아. 농작물을 키우거나 농기구를 보관하는 것 외에도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건물이지. 건물로서의 제 기능을 하려면 비뚤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아야 해. 그 기초 작업의 첫 번째 단계가 바로 ‘규준틀 작업’이야. 
규준틀 작업에 필요한 준비물 위 준비물과 함께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피타고라스의 정리(a²+b²=c²)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야. 구조물의 네 귀퉁이를 직각으로 만드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거든. 크기를 정하면 (우리는 가로 3m, 세로 4m로 설정) 꼭짓점 하나를 기준으로 잡아. 직각인 꼭짓점에서 각각 3m와 4m의 선을 만들어 끝을 이으면 꼭짓점 맞은편이 바로 5m의 대각선이 되지. 그 지점을 실로 표시해. 
3²+4²=5² 직각삼각형의 빗변이 5m가 무사히 나오면 네 귀퉁이를 돌아가며 시도해. 가로와 세로가 3m와 4m가 되고, 대각선이 5m이며 꼭짓점이 직각이 나올 때까지. 이론상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변치 않는 공식이지만 실상에서는 오차가 발생해. 직각삼각형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오차의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어.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실을 조금씩 움직이며 길이와 직각을 계속 확인하는 거지. 최소 3인 이상 필요한 이 작업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 어디서 오차가 발생했는지를 추측하며 각자의 지혜를 모으거든. 그러나 일정 수 이상 모여도 힘들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어.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은 피타고라스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고, 팽팽한 사각형 실을 만져보지 않겠다는 건 어린이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거든. 
다 같이 모이면 어려운 것도 재미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평면의 공식이기 때문에 높이의 가능성을 두지 않아.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3차원이므로 높이도 고려해야 하지. 규준틀 작업의 두 번째는 수평 맞추기야. 수평계도 있고, 레이저 수평자도 있다지만 100m씩 되는 하우스 같은 구조물의 수평을 맞추기엔 쉽지 않다고 해. 그렇다면 어떻게 수평을 맞출 수 있을까? 바로 ‘물’이야. 준비물은 공기 방울 없이 물로 가득 채운 호스야. 아까와 마찬가지로 네 귀퉁이를 정해. 우리는 기준점의 높이를 160m로 설정했어. 호스의 양쪽 끝은 막히지 않아야 해. 한쪽 끝의 물이 찰랑한 지점을 160m에 맞추고 반대쪽 끝을 조금씩 움직이면 물이 오르락내리락하다 제 위치를 찾아. 그곳은 저절로 160m가 돼. 그렇게 네 꼭짓점을 돌며 160m를 표시하여 연결하면 수평이 되는 거지. 
기준점은 가만히 있고 호스의 반대쪽에서 수평을 맞추는 게 포인트다 너른 초원에서 꼼지락거리는 젊은이들이 신선해 보였을까. 우리 뒤로 펼쳐진 눈부신 노을이 아름다워 그랬을까. 산책 나온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어. 더위도 잊은 채 서로 힘을 합쳐 몸을 움직이니 우리도 경쾌한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 누가 알았을까, 고대의 철학자가 발견한 공식 하나로도 이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는 걸. |
희영에게_ 다섯 번째 편지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름의 한가운데, 잘 지내고 있니? 이번 편지는 오랜만이지? 오늘 보니 성미가 급한 잎들은 하나둘씩 노란빛을 띠기 시작하더라. 우리가 한창 더위에 지쳐있을 때 나무는 벌써 가을을 준비하나 봐. 나는 조금 늘어진 노래를 틀고 선선한 바람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어.
햇살이 한풀 꺾인 어느 오후, 지난번 소개했던 (목공에 관심이 많은) 재영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어. 내가 올해 기록 활동을 하듯 재영은 ‘자립기술 워크숍’을 진행하거든. 이번 워크숍은 ‘규준틀 작업’이야. 시골에는 곳곳에 비닐하우스나 창고가 많아. 농작물을 키우거나 농기구를 보관하는 것 외에도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건물이지. 건물로서의 제 기능을 하려면 비뚤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아야 해. 그 기초 작업의 첫 번째 단계가 바로 ‘규준틀 작업’이야.
규준틀 작업에 필요한 준비물
위 준비물과 함께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피타고라스의 정리(a²+b²=c²)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야. 구조물의 네 귀퉁이를 직각으로 만드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거든. 크기를 정하면 (우리는 가로 3m, 세로 4m로 설정) 꼭짓점 하나를 기준으로 잡아. 직각인 꼭짓점에서 각각 3m와 4m의 선을 만들어 끝을 이으면 꼭짓점 맞은편이 바로 5m의 대각선이 되지. 그 지점을 실로 표시해.
3²+4²=5²
직각삼각형의 빗변이 5m가 무사히 나오면 네 귀퉁이를 돌아가며 시도해. 가로와 세로가 3m와 4m가 되고, 대각선이 5m이며 꼭짓점이 직각이 나올 때까지. 이론상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변치 않는 공식이지만 실상에서는 오차가 발생해. 직각삼각형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오차의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어.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실을 조금씩 움직이며 길이와 직각을 계속 확인하는 거지. 최소 3인 이상 필요한 이 작업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 어디서 오차가 발생했는지를 추측하며 각자의 지혜를 모으거든. 그러나 일정 수 이상 모여도 힘들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어.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은 피타고라스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고, 팽팽한 사각형 실을 만져보지 않겠다는 건 어린이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거든.
다 같이 모이면 어려운 것도 재미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평면의 공식이기 때문에 높이의 가능성을 두지 않아.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3차원이므로 높이도 고려해야 하지. 규준틀 작업의 두 번째는 수평 맞추기야. 수평계도 있고, 레이저 수평자도 있다지만 100m씩 되는 하우스 같은 구조물의 수평을 맞추기엔 쉽지 않다고 해. 그렇다면 어떻게 수평을 맞출 수 있을까? 바로 ‘물’이야.
준비물은 공기 방울 없이 물로 가득 채운 호스야. 아까와 마찬가지로 네 귀퉁이를 정해. 우리는 기준점의 높이를 160m로 설정했어. 호스의 양쪽 끝은 막히지 않아야 해. 한쪽 끝의 물이 찰랑한 지점을 160m에 맞추고 반대쪽 끝을 조금씩 움직이면 물이 오르락내리락하다 제 위치를 찾아. 그곳은 저절로 160m가 돼. 그렇게 네 꼭짓점을 돌며 160m를 표시하여 연결하면 수평이 되는 거지.
기준점은 가만히 있고 호스의 반대쪽에서 수평을 맞추는 게 포인트다
너른 초원에서 꼼지락거리는 젊은이들이 신선해 보였을까. 우리 뒤로 펼쳐진 눈부신 노을이 아름다워 그랬을까. 산책 나온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어. 더위도 잊은 채 서로 힘을 합쳐 몸을 움직이니 우리도 경쾌한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 누가 알았을까, 고대의 철학자가 발견한 공식 하나로도 이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는 걸.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