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영에게_ 여섯 번째 편지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편지네. 봄을 지나 여름을 넘어 가을로 가고 있구나. 비가 많이 왔다던 서울 소식도, 휴가차 부산에 왔다 갔다던 얘기도 들었어. 이 편지가 너에게 가 닿을 때는 또 계절이 성큼 바뀌어 있겠지? 보내는 이가 설렘과 흥분을 온전히 싣는다 하더라도 한소끔 식힌 열기를 차분히 받아보는 것이 편지의 운명이란 생각이 들어. 2년 전, 산청에는 영화관이 생겼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진주로 나가 영화를 보던 이곳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공간이 생긴 거지. 특히 마지막 시간 영화를 보고 상영관 바로 앞 강변을 걷는 게 이곳 영화감상의 백미야. 스크린으로 보았던 장면들이 산과 강이 하나가 된 깜깜한 풍경 사이로 다시 펼쳐지거든. 혼자 여운을 즐기기에도 좋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도 좋고. 지방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를 보면 항상 부러웠었어. 산청의 이름을 달고 새로운 영화제가 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찰나, ‘함께평화’에서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 한때는 영화제 여기저기 가기도 하고, 영화사에서도 일했었잖아.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재밌을 것 같아 함께평화에 먼저 연락했어. 준비에 참여해 뭐라도 하고 싶다고. 
그림001. 첫 번째 모임에서 같이 볼 영화를 고르고 있다 상영작 선정, 포스터 작업, 온/오프라인 홍보, 소녀상 리본 달기 행사 등 모든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때, 영화제 일주일을 앞두고 갑자기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졌어. 준비 멤버와 예매했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막판 걱정에 박차를 가했지. 마침 전국 택배사 휴가까지 겹치면서 전시하기로 했던 사진도 도착하지 못했어. 그래도 영화가 좋으니 분명 사람들이 많이 올 거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틀림없이 좋아할 거다, 서로를 다독이며 개막을 맞았어. 첫 상영작은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야. 개막작은 영화제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기에 고심했던 부분이야. 재일 동포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무거운 제목과는 달리 단정하고 담백했어. 식민시대와 전쟁의 역사에서 파생되었지만 정작 우리가 돌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조명하고 있었어. 민감한 소재지만 더 많은 사람과 같이 보고 싶어 선정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 준비팀 입장에서는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지. 첫 영화가 끝나고 두 번째 영화가 상영되기 전, 로비는 전에 없이 북적였어. 지역 행사에서 자주 보았던 이들부터 주말농장 왔다가 포스터를 보고 온 부부, 옆 상영관이 매진돼 발걸음을 돌리다 온 사람, 한 달 전 태어나 영화관에 처음 온 아기(비록 영화는 못 봤지만), 휴가차 산청에 왔다가 그냥 들른 사람, 영화 보러 왔다가 ‘함께평화’에 가입한 사람들까지. 다음 영화 <코다>를 보러 들어가기 아쉬울 만큼 시끌벅적 들뜬 분위기였어. 
그림002. 다 같이 모이면 재밌는 건 더 재밌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코다>는 잘 만든 대중영화야. ‘장애’와 ‘음악’이라는 두 줄기를 엮은 이 영화는 너도나도 앞집 순이와 옆집 철이까지도 재밌게 볼만한 작품이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고 하잖아.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여럿이 같은 감동을 느끼고 싶어 이 영화를 선정했는데, 상영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이 답을 말해주더라. 세 번째 영화 <우리들>과 네 번째 <동주>는 영화제 둘째 날에 상영했어. 차분한 영화 덕분인지 한층 여유로운 영화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관객 중 한 명이 옥수수 한 통을 삶아와 다 같이 나누어 먹었어. 준비팀과 관람객 너나없이 옥수수를 먹는 풍경이 어찌나 귀엽고 생경하던지! 이런 게 시골 영화제의 묘미가 아닐까? 
그림003. 함께 먹으면 맛있는 건 더 맛있다 해가 지면 집 나갔던 고양이도 돌아오는 산청은 밤 10시면 한산해져. 대부분의 가게들도 문을 닫고. <동주>의 먹먹한 감상 때문일까, 월요일을 앞둔 휴일 밤의 아쉬움 때문일까. 뒤풀이와 평가회를 잠시 뒤로 미루고 우리는 헤어졌어. 며칠 후, 더욱 돈독해진 믿음 위에 큰 행사를 마친 홀가분한 마음이 더해져 반갑게 다시 만났지. 그러나 평가회에서의 의견은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았어. 영화 선정과 행사의 진행 방식, 홍보 방식 등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마구마구 쏟아냈지. 그래도 평가회 내내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해냈다’라는 성취감 때문일 거야. ‘더 잘하고 싶다’는 바람은 결국 ‘더 잘하고 말겠다’는 다짐 아닐까? 누군가 말했어, 함께평화 영화제는 산청에 일어난 ‘작은 지원 큰 변화’라고. 
그림004. <함께평화 영화제>의 백미 소감 나누기 오늘따라 네가 더 보고 싶네. 가을밤, 너랑 영화 보고 산책하면 참 좋겠구나. 다음 편지 쓰기 전에 서울에 올라갈게. 그때까지 잘 지내렴. |
희영에게_ 여섯 번째 편지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편지네. 봄을 지나 여름을 넘어 가을로 가고 있구나. 비가 많이 왔다던 서울 소식도, 휴가차 부산에 왔다 갔다던 얘기도 들었어. 이 편지가 너에게 가 닿을 때는 또 계절이 성큼 바뀌어 있겠지? 보내는 이가 설렘과 흥분을 온전히 싣는다 하더라도 한소끔 식힌 열기를 차분히 받아보는 것이 편지의 운명이란 생각이 들어.
2년 전, 산청에는 영화관이 생겼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진주로 나가 영화를 보던 이곳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공간이 생긴 거지. 특히 마지막 시간 영화를 보고 상영관 바로 앞 강변을 걷는 게 이곳 영화감상의 백미야. 스크린으로 보았던 장면들이 산과 강이 하나가 된 깜깜한 풍경 사이로 다시 펼쳐지거든. 혼자 여운을 즐기기에도 좋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도 좋고.
지방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를 보면 항상 부러웠었어. 산청의 이름을 달고 새로운 영화제가 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찰나, ‘함께평화’에서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 한때는 영화제 여기저기 가기도 하고, 영화사에서도 일했었잖아.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재밌을 것 같아 함께평화에 먼저 연락했어. 준비에 참여해 뭐라도 하고 싶다고.
그림001. 첫 번째 모임에서 같이 볼 영화를 고르고 있다
상영작 선정, 포스터 작업, 온/오프라인 홍보, 소녀상 리본 달기 행사 등 모든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때, 영화제 일주일을 앞두고 갑자기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졌어. 준비 멤버와 예매했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막판 걱정에 박차를 가했지. 마침 전국 택배사 휴가까지 겹치면서 전시하기로 했던 사진도 도착하지 못했어. 그래도 영화가 좋으니 분명 사람들이 많이 올 거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틀림없이 좋아할 거다, 서로를 다독이며 개막을 맞았어.
첫 상영작은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야. 개막작은 영화제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기에 고심했던 부분이야. 재일 동포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무거운 제목과는 달리 단정하고 담백했어. 식민시대와 전쟁의 역사에서 파생되었지만 정작 우리가 돌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조명하고 있었어. 민감한 소재지만 더 많은 사람과 같이 보고 싶어 선정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 준비팀 입장에서는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지.
첫 영화가 끝나고 두 번째 영화가 상영되기 전, 로비는 전에 없이 북적였어. 지역 행사에서 자주 보았던 이들부터 주말농장 왔다가 포스터를 보고 온 부부, 옆 상영관이 매진돼 발걸음을 돌리다 온 사람, 한 달 전 태어나 영화관에 처음 온 아기(비록 영화는 못 봤지만), 휴가차 산청에 왔다가 그냥 들른 사람, 영화 보러 왔다가 ‘함께평화’에 가입한 사람들까지. 다음 영화 <코다>를 보러 들어가기 아쉬울 만큼 시끌벅적 들뜬 분위기였어.
그림002. 다 같이 모이면 재밌는 건 더 재밌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코다>는 잘 만든 대중영화야. ‘장애’와 ‘음악’이라는 두 줄기를 엮은 이 영화는 너도나도 앞집 순이와 옆집 철이까지도 재밌게 볼만한 작품이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고 하잖아.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여럿이 같은 감동을 느끼고 싶어 이 영화를 선정했는데, 상영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이 답을 말해주더라. 세 번째 영화 <우리들>과 네 번째 <동주>는 영화제 둘째 날에 상영했어. 차분한 영화 덕분인지 한층 여유로운 영화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관객 중 한 명이 옥수수 한 통을 삶아와 다 같이 나누어 먹었어. 준비팀과 관람객 너나없이 옥수수를 먹는 풍경이 어찌나 귀엽고 생경하던지! 이런 게 시골 영화제의 묘미가 아닐까?
그림003. 함께 먹으면 맛있는 건 더 맛있다
해가 지면 집 나갔던 고양이도 돌아오는 산청은 밤 10시면 한산해져. 대부분의 가게들도 문을 닫고. <동주>의 먹먹한 감상 때문일까, 월요일을 앞둔 휴일 밤의 아쉬움 때문일까. 뒤풀이와 평가회를 잠시 뒤로 미루고 우리는 헤어졌어. 며칠 후, 더욱 돈독해진 믿음 위에 큰 행사를 마친 홀가분한 마음이 더해져 반갑게 다시 만났지. 그러나 평가회에서의 의견은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았어.
영화 선정과 행사의 진행 방식, 홍보 방식 등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마구마구 쏟아냈지. 그래도 평가회 내내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해냈다’라는 성취감 때문일 거야. ‘더 잘하고 싶다’는 바람은 결국 ‘더 잘하고 말겠다’는 다짐 아닐까? 누군가 말했어, 함께평화 영화제는 산청에 일어난 ‘작은 지원 큰 변화’라고.
그림004. <함께평화 영화제>의 백미 소감 나누기
오늘따라 네가 더 보고 싶네. 가을밤, 너랑 영화 보고 산책하면 참 좋겠구나. 다음 편지 쓰기 전에 서울에 올라갈게. 그때까지 잘 지내렴.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