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훈은 “사랑하며 살아요” 원지 '꿈나무어린이집'의 기억을 간직한 숙경과 기윤 글과 그림 / 효림 * 산과 물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입니다. 옛 어른들은 인심이 후한 동네가 명당이라 했다지요. ‘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을 소개합니다. 지난 2월을 끝으로 원지에 있는 ‘꿈나무어린이집’이 문을 닫았다. 산청의 마지막 민간 어린이집이었다. 지금은 중‧고등학생쯤 되었을 산청의 많은 청소년이 걸음마를 떼고, 숫자를 배우며 유년기를 보냈던 곳이다. 동쪽에서 뜨는 둥근 해가 보이고, 비가 오면 건너편 산허리에 허연 안개가 피어오르며, 온갖 새들이 찾아와 인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숙경_ 어린이집이 올해 문을 닫았지만 3년 전부터 위태위태했어요. 민간 어린이집은 국가에서 지원해주지 않거든요. 전적으로 보육료만으로 운영이 돼요. 그런데 3년 전부터 아이들의 숫자가 계속 줄어드는 거예요. 한 해에 10명씩 줄었어요. 작년에는 제 월급 없이 무상으로 운영했는데, 올해는 제 월급은 없다손 치더라도 운영비가 더 많이 들겠더라고요. 기윤_ 예전에는 줄 서서 대기해서 올 만큼 애들이 많았어요. 숙경_ 52-54명 정도였어요. 5-6개 반이 만들어 질만큼. 우리만 이렇게 줄어든 게 아니라 다른 국공립도 눈에 띄게 줄었어요. 예전에 원아를 100명씩 받던 곳도 지금은 20명밖에 안 돼요. 국공립은 숫자가 줄어도 운영비가 지원되잖아요. 근데 민간은 지원금이 아예 없으니까. 문 닫았을 때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했어요. 여기서 졸업을 안 한 상태로 다른 어린이집에 가면 또 적응해야 하잖아요. 엄마들은 어른이니까 견딜 수 있지만 아이들은 다르니까요. “동화책 읽어주는 할머니 원장님이 꿈이었는데, 그걸 못 이뤄서 아쉽긴 해요.” 숙경_ 저희는 엄마들하고도 관계가 끈끈했어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엄마들이 왔고요. 저는 애들한테 공부만 시키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이랑 매일 산책하고, 모래에서 놀고, 물장구치러 다녔죠. 비 오면 우산 쓰고 장화 신고, 눈 와도 나갔어요. 다 경험했어요, 자연을. 장난감이 부서지지 않는 이상 잘 바꿔주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크게 의미가 없거든요. 막대기나 돌멩이 몇 개만 주면 애들끼리 잘 놀아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자꾸 뭘 가르치려 하고 통제하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선생님들이. 기윤_ 그렇게 12년 정도 운영했어요. 그전에는 원지교회 안에 선교원이 있었어요. 시설이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교회 측에서도 운영이 쉽지 않다고 하고. 그럼 우리가 나가서 한번 해보자, 해서 이곳에 건물을 짓게 된 거죠. 저는 이제 이 건물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에요. 숙경_ 저는 별로 고민 안 해요.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쓰면 되죠. (웃음) 학교 졸업하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일만 했거든요. 한 번도 안 쉬고. 우리 아이들도 다 여기서 키웠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 동화책 읽어주는 할머니 원장님이 꿈이었는데, 그걸 못 이뤄서 아쉽긴 해요. 지금은 편안해요. 요즘에는 제가 뭘 하고 싶을까, 뭘 하면 행복할까, 그것만 생각해요. 2010년에 개원한 꿈나무어린이집은 오로지 ‘어린이집’을 위해 지어졌다. 최대한 자연과 가까워지고자 벽에는 흙을 바르고 앞마당 텃밭에는 먹거리 채소를 심었다. 손이나 발이 끼이기 쉬운 곳이나 모서리가 날카로운 곳은 완충 처리가 되어있고, 자그마한 싱크대, 변기, 세면대가 방마다 있다. 벽과 바닥에는 알록달록한 도형과 숫자를 세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순서대로 적혀있는 손 씻는 방법을 보고 따라 해 본다. 행복을 만드는 습관이 적힌 메모를 마음에 새겨보기도 한다. 공간 구석구석 작은 이들을 위한 흔적을 보며 이곳에서 걷고 뛰고 울고 웃었을 아이들을 떠올린다. 
곳곳에 자연의 재료들로 만든 소품들이 남아있다. 매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갱신한다는 소식도, 그럼에도 속수무책인 정부 정책도, 취업·결혼·출산·육아 전 과정을 포기한 청년세대에 대한 비판도 가볍게 들리던 도시와 달리 지방의 인구는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이 낳기를 뒤로한 채 집을 짓는 철없는 필자도 자유롭지 못하다. 진주와 산청을 다니며 잠시 머물 곳을 찾다 이 공간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4월, 덜컥 들어오게 됐다. 1층 샘물반에 살기를 다섯 달, 원장님 부부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 이 문장이 이렇게 꼭 맞는 사람이 있을까. 기윤_ 전원주택에 있으면 풀을 만지고 키우는 걸 안 좋아해도 안 할 수는 없어요. 내가 뭔가를 일구지 않으면 거기에 풀이 나기 때문에 더 엉망이 돼요. 처음 1-2년 배추는 약을 안 쳤어요. 그때는 배추벌레 한 마리씩 일일이 손으로 잡기도 했어요. 숙경_ 우리는 약 치고 이런 거 안 하거든요. 처음엔 비닐도 안 덮었어요. 풀이랑 같이 자라면 풀 빼고 우리가 먹을 것만 뽑아서 먹으면 되지, 이랬어요. 산청읍에서 태권도장을 하는 기윤 씨는 도장에 출근하기 전까지 매일 아침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꾼다. 아파트에서 살다 온 필자는 ‘대단하다’,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게으른 몸을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땅 위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배우고 있다. 볕을 한가득 받으며 땀을 흘리는 것이 자연과 가까웠던 과거 인류의 모습이며,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려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지런한 기윤 씨의 미소에는 건강한 흙의 냄새가 녹아있다. 
텃밭에서는 가을배추가 쑥쑥 자랄 것이다. 기윤_ 제가 낚시를 좋아해요. 6-7년 전부터 낚시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어탕이 생각났어요. 그러면 낚시도 더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처음엔 교회 사람들이랑 주위 어르신들한테 나눠줬어요.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니까 조금씩 자신감도 생겼어요. 뭐가 부족한지 평가도 받고. 웬만큼 잘 끓이시는 분들한테 가서 조언도 들었어요. 유튜브도 보고. 어탕에는 제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어탕을 드시는 분들이 음식 그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기윤_ 제가 어린 나이에 태권도장을 차렸어요, 24살에. 태권도가 워낙 제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어탕은 지나가는 손님처럼 사그라들 줄 알았어요. 숙경_ 이 사람(기윤)은 머릿속에 딱 두 가지만 있어요. 태권도랑 어탕. 요즘에는 태권도 비율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아마 어탕으로 꽉 찰 거예요. (웃음) 기윤_ 마침내 붕어로 변하는 거지. (웃음)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목화장터의 인기 품목 중 하나가 바로 기윤 씨가 만드는 어탕이다. 직접 낚은 붕어로 새벽부터 푹 고아 만드는 어탕은 매번 갖고 가는 게 아니다. 붕어가 잡히지 않거나 수가 적은 날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맛볼 수 없는 어탕이기에 장터 밴드에 어탕을 갖고 가겠노라 올리는 날이면 냄비는 미리 줄을 선다. 추어탕 같은 비린 음식을 못 먹는 사람도 기윤 씨 어탕만은 맛있단다. 1인당 2인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 
어탕을 끓이는 기윤 씨의 뒷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숙경_ 물고기도 잡고 직접 끓이는 정성도 있지만 저는 한정판이라서 인기가 많다고 봐요. 잘 되는 가게는 그렇잖아요. (웃음) 이 사람이 손도 느리고,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요.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갓 해서 먹이고 싶은가 봐요. 갓 끓여서 최고 좋을 때 먹어야 한다고. 기윤_ 어탕의 유래가 산청이에요. 서울 쪽의 어탕이랑 이쪽이랑 맛이 달라요. 태어난 건 산청이지만 그 지역에 맞게끔 바뀐 거죠. 나중에 어린이집 1층에서 어탕을 팔고, 2층은 어탕의 유래를 알리는 박물관을 열까, 이런 상상도 해요. 숙경_ 저는 노년에 그러고 싶지 않아요. (웃음) 캠핑카 하나 사서 자연을 즐기면서 여행 다니면서 살 거예요. 요즘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그냥 풀어진 상태로 살아요. 지난 오십 년 열심히 살았잖아요. 앞으로는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어요. 물론 어린이집 할 때는 천직이라고 생각했지만요. 지금은 후회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했어요. 인터뷰를 시작한 이후로 일상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냥 흘러가는 말들도 ‘인터뷰’라는 틀을 씌우면 깊이가 달라진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 앞뒤에 숨은 맥락과 삶의 태도를 유추해 보는 것이다. 부부의 언어에는 어려운 말이 없다. 꾸미는 말도 없다. 그럼에도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주어와 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을 쓰고 싶다는 소설가의 말이 떠오른다. 주어와 술어만으로도 표현되는 삶은 얼마나 간결하고 단단한가, 부부를 보며 생각한다. |
원훈은 “사랑하며 살아요”
원지 '꿈나무어린이집'의 기억을 간직한 숙경과 기윤
글과 그림 / 효림
* 산과 물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입니다. 옛 어른들은 인심이 후한 동네가 명당이라 했다지요. ‘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을 소개합니다.
지난 2월을 끝으로 원지에 있는 ‘꿈나무어린이집’이 문을 닫았다. 산청의 마지막 민간 어린이집이었다. 지금은 중‧고등학생쯤 되었을 산청의 많은 청소년이 걸음마를 떼고, 숫자를 배우며 유년기를 보냈던 곳이다. 동쪽에서 뜨는 둥근 해가 보이고, 비가 오면 건너편 산허리에 허연 안개가 피어오르며, 온갖 새들이 찾아와 인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숙경_ 어린이집이 올해 문을 닫았지만 3년 전부터 위태위태했어요. 민간 어린이집은 국가에서 지원해주지 않거든요. 전적으로 보육료만으로 운영이 돼요. 그런데 3년 전부터 아이들의 숫자가 계속 줄어드는 거예요. 한 해에 10명씩 줄었어요. 작년에는 제 월급 없이 무상으로 운영했는데, 올해는 제 월급은 없다손 치더라도 운영비가 더 많이 들겠더라고요.
기윤_ 예전에는 줄 서서 대기해서 올 만큼 애들이 많았어요.
숙경_ 52-54명 정도였어요. 5-6개 반이 만들어 질만큼. 우리만 이렇게 줄어든 게 아니라 다른 국공립도 눈에 띄게 줄었어요. 예전에 원아를 100명씩 받던 곳도 지금은 20명밖에 안 돼요. 국공립은 숫자가 줄어도 운영비가 지원되잖아요. 근데 민간은 지원금이 아예 없으니까. 문 닫았을 때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했어요. 여기서 졸업을 안 한 상태로 다른 어린이집에 가면 또 적응해야 하잖아요. 엄마들은 어른이니까 견딜 수 있지만 아이들은 다르니까요.
“동화책 읽어주는 할머니 원장님이 꿈이었는데, 그걸 못 이뤄서 아쉽긴 해요.”
숙경_ 저희는 엄마들하고도 관계가 끈끈했어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엄마들이 왔고요. 저는 애들한테 공부만 시키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이랑 매일 산책하고, 모래에서 놀고, 물장구치러 다녔죠. 비 오면 우산 쓰고 장화 신고, 눈 와도 나갔어요. 다 경험했어요, 자연을. 장난감이 부서지지 않는 이상 잘 바꿔주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크게 의미가 없거든요. 막대기나 돌멩이 몇 개만 주면 애들끼리 잘 놀아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자꾸 뭘 가르치려 하고 통제하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선생님들이.
기윤_ 그렇게 12년 정도 운영했어요. 그전에는 원지교회 안에 선교원이 있었어요. 시설이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교회 측에서도 운영이 쉽지 않다고 하고. 그럼 우리가 나가서 한번 해보자, 해서 이곳에 건물을 짓게 된 거죠. 저는 이제 이 건물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에요.
숙경_ 저는 별로 고민 안 해요.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쓰면 되죠. (웃음) 학교 졸업하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일만 했거든요. 한 번도 안 쉬고. 우리 아이들도 다 여기서 키웠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 동화책 읽어주는 할머니 원장님이 꿈이었는데, 그걸 못 이뤄서 아쉽긴 해요. 지금은 편안해요. 요즘에는 제가 뭘 하고 싶을까, 뭘 하면 행복할까, 그것만 생각해요.
2010년에 개원한 꿈나무어린이집은 오로지 ‘어린이집’을 위해 지어졌다. 최대한 자연과 가까워지고자 벽에는 흙을 바르고 앞마당 텃밭에는 먹거리 채소를 심었다. 손이나 발이 끼이기 쉬운 곳이나 모서리가 날카로운 곳은 완충 처리가 되어있고, 자그마한 싱크대, 변기, 세면대가 방마다 있다. 벽과 바닥에는 알록달록한 도형과 숫자를 세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순서대로 적혀있는 손 씻는 방법을 보고 따라 해 본다. 행복을 만드는 습관이 적힌 메모를 마음에 새겨보기도 한다. 공간 구석구석 작은 이들을 위한 흔적을 보며 이곳에서 걷고 뛰고 울고 웃었을 아이들을 떠올린다.
곳곳에 자연의 재료들로 만든 소품들이 남아있다.
매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갱신한다는 소식도, 그럼에도 속수무책인 정부 정책도, 취업·결혼·출산·육아 전 과정을 포기한 청년세대에 대한 비판도 가볍게 들리던 도시와 달리 지방의 인구는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이 낳기를 뒤로한 채 집을 짓는 철없는 필자도 자유롭지 못하다. 진주와 산청을 다니며 잠시 머물 곳을 찾다 이 공간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4월, 덜컥 들어오게 됐다. 1층 샘물반에 살기를 다섯 달, 원장님 부부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 이 문장이 이렇게 꼭 맞는 사람이 있을까.
기윤_ 전원주택에 있으면 풀을 만지고 키우는 걸 안 좋아해도 안 할 수는 없어요. 내가 뭔가를 일구지 않으면 거기에 풀이 나기 때문에 더 엉망이 돼요. 처음 1-2년 배추는 약을 안 쳤어요. 그때는 배추벌레 한 마리씩 일일이 손으로 잡기도 했어요.
숙경_ 우리는 약 치고 이런 거 안 하거든요. 처음엔 비닐도 안 덮었어요. 풀이랑 같이 자라면 풀 빼고 우리가 먹을 것만 뽑아서 먹으면 되지, 이랬어요.
산청읍에서 태권도장을 하는 기윤 씨는 도장에 출근하기 전까지 매일 아침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꾼다. 아파트에서 살다 온 필자는 ‘대단하다’,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게으른 몸을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땅 위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배우고 있다. 볕을 한가득 받으며 땀을 흘리는 것이 자연과 가까웠던 과거 인류의 모습이며,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려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지런한 기윤 씨의 미소에는 건강한 흙의 냄새가 녹아있다.
텃밭에서는 가을배추가 쑥쑥 자랄 것이다.
기윤_ 제가 낚시를 좋아해요. 6-7년 전부터 낚시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어탕이 생각났어요. 그러면 낚시도 더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처음엔 교회 사람들이랑 주위 어르신들한테 나눠줬어요.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니까 조금씩 자신감도 생겼어요. 뭐가 부족한지 평가도 받고. 웬만큼 잘 끓이시는 분들한테 가서 조언도 들었어요. 유튜브도 보고. 어탕에는 제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어탕을 드시는 분들이 음식 그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기윤_ 제가 어린 나이에 태권도장을 차렸어요, 24살에. 태권도가 워낙 제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어탕은 지나가는 손님처럼 사그라들 줄 알았어요.
숙경_ 이 사람(기윤)은 머릿속에 딱 두 가지만 있어요. 태권도랑 어탕. 요즘에는 태권도 비율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아마 어탕으로 꽉 찰 거예요. (웃음)
기윤_ 마침내 붕어로 변하는 거지. (웃음)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목화장터의 인기 품목 중 하나가 바로 기윤 씨가 만드는 어탕이다. 직접 낚은 붕어로 새벽부터 푹 고아 만드는 어탕은 매번 갖고 가는 게 아니다. 붕어가 잡히지 않거나 수가 적은 날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맛볼 수 없는 어탕이기에 장터 밴드에 어탕을 갖고 가겠노라 올리는 날이면 냄비는 미리 줄을 선다. 추어탕 같은 비린 음식을 못 먹는 사람도 기윤 씨 어탕만은 맛있단다. 1인당 2인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
어탕을 끓이는 기윤 씨의 뒷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숙경_ 물고기도 잡고 직접 끓이는 정성도 있지만 저는 한정판이라서 인기가 많다고 봐요. 잘 되는 가게는 그렇잖아요. (웃음) 이 사람이 손도 느리고,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요.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갓 해서 먹이고 싶은가 봐요. 갓 끓여서 최고 좋을 때 먹어야 한다고.
기윤_ 어탕의 유래가 산청이에요. 서울 쪽의 어탕이랑 이쪽이랑 맛이 달라요. 태어난 건 산청이지만 그 지역에 맞게끔 바뀐 거죠. 나중에 어린이집 1층에서 어탕을 팔고, 2층은 어탕의 유래를 알리는 박물관을 열까, 이런 상상도 해요.
숙경_ 저는 노년에 그러고 싶지 않아요. (웃음) 캠핑카 하나 사서 자연을 즐기면서 여행 다니면서 살 거예요. 요즘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그냥 풀어진 상태로 살아요. 지난 오십 년 열심히 살았잖아요. 앞으로는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어요. 물론 어린이집 할 때는 천직이라고 생각했지만요. 지금은 후회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했어요.
인터뷰를 시작한 이후로 일상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냥 흘러가는 말들도 ‘인터뷰’라는 틀을 씌우면 깊이가 달라진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 앞뒤에 숨은 맥락과 삶의 태도를 유추해 보는 것이다. 부부의 언어에는 어려운 말이 없다. 꾸미는 말도 없다. 그럼에도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주어와 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을 쓰고 싶다는 소설가의 말이 떠오른다. 주어와 술어만으로도 표현되는 삶은 얼마나 간결하고 단단한가, 부부를 보며 생각한다.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