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 “가을엔 음악을 듣겠어요.” - 가을특집 ① 곡 짓는 청년 영인과 준휘

2022-10-18

 

 

“가을엔 음악을 듣겠어요.”

가을특집① 곡 짓는 청년 영인과 준휘

 

글과 그림 / 효림

 

 

산과 물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입니다. 
옛 어른들은 인심이 후한 동네가 명당이라 했다지요. ‘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을 소개합니다. 

 

 

 

올해 초, 꿈나무어린이집은 새로운 식구를 맞았다. 이른 봄에는 집이 멀어 통학하기 어려운 단성고 학생이 들어왔다. 꽃피는 계절에는 인터뷰어가 몇 달간 머물겠다며 눌러앉았다. 갓 제대한 청년 둘은 막 매미가 울기 시작했을 때 찾아왔다. 뜨거운 열기가 한풀 꺾였을 때는 원장님의 조카가 산청이 직장이라며 들어왔다. 우리는 어린이집에 따로 또 같이 산다. 어느새 서늘한 바람에 코끝이 상쾌하다. 20대 청년 둘은 산청의 삶이 익숙해졌을까? 영인과 준휘에게 물었다. 어떻게 산청에 오게 되었을까.

 

 

 

영인_ 저는 어디든 상관없었어요. 군대에서 음악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준휘한테 얘기를 했어요, 같이 하자고. 어디에서 시작할까 상의했는데, 준휘가 도시는 싫다고, 시골에서 하고 싶다고 했어요. 몇 군데 알아봤었죠, 아버지한테도 여쭤보고. 그중에 산청도 있었어요. 저희 둘 다 산청에서 학교에 다녔으니까요.

 

 

 

영인과 준휘는 간디고를 나왔다.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치던 영인은 고등학교 때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치는 준휘는 그런 영인이가 멋있어 보였다. 내친김에 둘은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를 영입해 밴드를 만들었다. 각자가 만든 곡으로 연주까지, 졸업 작품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한 넷은 세상에서 가장 쿨한 록커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졸업하던 해, 전 세계에 전염병이 돌았다.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는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러 서울로 갔다. 침체한 공연계를 보고 실의에 빠진 영인과 준휘는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군대에 갔다. 그곳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리라. 기타를 치며 키보드를 연주하고 싶다는 원초적 욕구가.

 

 

 

영인_ 외부적인 활동이나 교류보다는 저희에게 집중해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굳이 도시에 나갈 이유가 있을까.

 

준휘_ 서울 같은 도시는 많이 복잡하잖아요. 산청에 오는 것도 처음엔 고민했어요. 여기 오면 어쩔 수 없이 관계가 생기잖아요. 그런 것들에서 아예 벗어나는 게 목표였거든요. 졸업하고 서울에서 사는 친구들의 경험을 들었을 때, 오롯이 집중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했어요. 오롯이 집중해서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핑계할 거리가 생겨 시간을 뺏기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어렵더라고요. 대안으로 찾은 게 산청이고, 또 이 집이 된 거고.

 

영인_ 아쉬운 건 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여기 살았으니 완전히 모르는 곳이 아니잖아요. 지금 하는 알바도 그렇고, 계속 관계가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오로지 음악으로 몰두하고자 하는 마음과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가 비단 두 청년뿐이겠는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가 비단 창작자뿐이겠는가. 그러나 가장 흔들리기 쉬운 존재가 스무 살 언저리에 있는 이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펼친 기량도 결국 부모의 그늘 아래였다는 걸 막 느낄 시기이니. 맨땅에 맨손, 이제야 비로소 시작하는 이들의 3개월은 어땠을까.

 

 

 

준휘_ 나 여기 왜 왔지? (웃음) 골방에 숨어 있다 밥은 맨날 얻어먹고. 영인이도 알바하느라 바쁘고. 돈은 안 쓰는 것 같은 데 없고. 이 생활이 끝나고 나서 또 뭐할까 상상하고. 사실 마음이 복잡해요. 잘 지내고 잘 놀다 가지 뭐,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제 마음을 포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포장한 제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또 안 좋고.

 

영인_ 7, 8월은 (음악을) 열심히 했어요. 어느 정도 하면 윤곽이 나오겠지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계속할수록 시간이 부족하고 안 채워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열심히 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평생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지금은 알바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저는 일이 저한테 많은 시간을 가져갈지도, 제가 압박감을 느낄 줄도 몰랐어요. 돈이 부족하기도 하고. 

 

 

 

“제가 좋아했던 사람들만큼은 하고 싶어요. 이 정도만 됐지, 아직은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_준휘

“천천히 보고 있어요. 앨범이 잘 되든 안 되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_영인

 

 

 

영인_ 저는 스무 살 때부터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곡도 그때 여러 개 쓰고. 녹음은 안 했지만 나름의 구상은 마쳤어요. 그런데 준휘랑 같이 만드는 거잖아요. 이 친구가 생각하는 그림이 있고, 저도 있고, 서로 융화시켜야 하는데 지금 초기 단계인 것 같아요. 

 

준휘_ 곡은 이미 많아요. 근데 다 재료만 있어요. 이제 요리를 하면 되는 거죠. (웃음) 각자의 곡은 뚝딱뚝딱 신나게 만들기는 하는데, 하나의 곡을 둘이서 완성한 건 아직 없어요.

 

영인_ 여기 오기 전에 주제를 정하자고 했어요. 그 주제에 맞는 곡을 각각 반 절씩 해보자. 그런데 진행하다 보니 애초에 우리가 얘기하는 게 달랐나 싶기도 해요. 준휘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담자고 하는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건지, 곡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건지 헷갈려요.

 

준휘_ 영인이도 저도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그냥 컴퓨터로 찍어서 하긴 싫거든요. 곡을 만들었다고 해도 녹음이랑 믹싱, 마스터링도 해야 해요.

 

영인_ 그 길을 생각하면 좀 답답하긴 해요. 그 과정에 꽤 많은 비용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지금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근데 돈을 벌면서 음악을 같이 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느껴요.

 

 

 

제법 묵직한 고민이다. 흔히들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이들은 구체적으로 고민을 세분화하고 있다. 곡이 어찌어찌 만들어졌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단순히 앨범에 나열할 수는 없다. 잘 짜인 이야기처럼 앨범도 기승전결이 필요하다. 레시피가 정해져 있어도 요리사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로 달라지지 않는가. 탄탄한 구성이 만들어져도 본인의 곡을 잘 구현해줄 연주자가 필요하다. 얘기를 듣다 보니 복잡하다. 화제를 돌려 며칠 전 성황리에 마친 한방약초축제에서 공연했던 소감을 물었다.

 

 

 

준휘_ 주말 이틀 공연했어요. 첫날 페퍼톤스의 ‘Ready, Get set, Go!’를 했어요. ‘정적을 삼키고 열광하는 함성’이란 가사가 있는데, 저희가 봐도 아무도 함성은 안 지르고, 노래와 축제가 전혀 맞지 않는 거예요. 노래하면서 깨달은 거죠. (웃음) 그래서 이튿날 바로 자작곡 불렀어요. 어차피 똑같이 별 반응 없다면 우리 걸 하자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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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산청의 지역축제에서 첫 공연을 마쳤다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방에서 만들고 연주하던 곡을 세상에 내보일 때, 생각했던 것과 반응이 다른 것도 새내기가 겪어야 할 과정이다. 좌절하거나 절망하진 않는다. 본인들이 ‘Ready, Get set, Go!’의 스프린터가 아닌 마라토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산청이 둘의 음악에 영향을 주는지 물었다. 

 

 

 

준휘_ 제 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에요. 친구의 이야기와 제가 겪은 이야기 그 두 개를 하나의 일처럼 써요. 그래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쓴다고 생각해요. 항상 제 이야기와 누군가의 이야기를 합쳐서 하니까. 학교도 여기서 다녔고, 많은 사람을 이곳에서 새롭게 만났으니까 크게 보면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영인_ 저는 어릴 때부터 여기서 살았잖아요. 가사에 산청이 있느냐,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모든 곡을 제 방에서 만들었거든요. 이런 것도 영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이맘때쯤이면 산청 어디에서나 보이는 것이 있다. 동그랗게 달뜬 감이다. 나무가 바삭한 옷들을 하나둘 떨구자 여름 내내 잎새에 가려 크는 줄 몰랐던 감이 빛나는 자태를 드러낸다. 발걸음을 늦추고 귀 기울이면 토실토실한 감이 말을 건다. 가을의 햇살을 실컷 즐기라고. 산청의 넉넉한 햇살이 두 청년의 앞날을 훤히 비췄으면 좋겠다. 곡이 알차게 살이 오르는 날, 언젠가 산청에도 울려 퍼지길.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