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하동][하동 언니들의 자초지종] “누구의 엄마가 아닌 달목” - 평균나이 85세, 하동 큰언니들의 모임 <꽃보다 하동할매>

2022-08-31

 

 

“누구의 엄마가 아닌 달목”

- 평균나이 85세, 하동 큰언니들의 모임 <꽃보다 하동할매>

 

글 / 팀 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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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하동할매> 멤버 금연, 영숙, 달목, 봉이, 양례(좌로부터)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호된 여름이 끝나간다. 오늘은 가을바람만큼 반가운 얼굴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하동 큰언니들의 모임인 ‘꽃보다 하동할매’ 멤버들이다. 하동에서 나고 자라 하동을 거의 떠나 본 적이 없는 평균나이 85세인 양례, 영숙, 금연, 달목, 봉이가 그들이다. 꽃의 계절 4월에 첫 모임을 하고 오늘로 다섯 번째다. 

 

 

‘꽃보다 하동할매’ 모임을 이끄는 비성은 하동 최초이며 유일한 독립서점 ‘시소’의 주인장이다. 그녀 또한 다섯 할매들처럼 진짜 하동 토박이다. 장소와 시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맞장구와 탄식과 한숨, 짧은 농담들,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누구는 말을 하고 누군가는 섬진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누구는 앞에 있는 알사탕을 오물거리고 있었지만, 대화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집중해야 한다는, 소위 대화의 기술같은 것도 없었지만, 할매들은 분명 서로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해내야 했을 우리 엄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들 모두 하동읍에 사세요. 한 분 빼고 모두 일찍 혼자 되셨어요. 그 후 집안의 가장이 되어 혼자서 자식들을 다 키워 내셨죠. 이제 좀 편히 놀러도 다니시고 그러면 좋은데... 하동읍이 나이 많은 노인들이 지내시기엔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아요. 하동의 다른 곳은 밭일 등 소일거리가 많아 심심치 않고 동네 할머니들끼리도 관계가 돈독하죠. 그런데 읍에 사는 노인분들은 혼자 지내는 분들이 꽤 많아요. 연세 때문에 복지관을 다니시기도 힘들고요. 어쩌면 하동읍이 노인복지의 사각지대일 수 있어요.” (비성)

 

 

”우연한 기회에 이 할머니들을 만났는데요. 말씀들을 너무 재밌게 하시는 거예요. 제가 모르는 하동 이야기들도 많이 알고 계셨죠. 할머니들은 진짜 하동의 기억저장소예요. 뭐 하동 얘기도 중요했지만 사실 젊은이로서 우리 할머니들이 신나는 일들을 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들에게 바로 모임을 제안했죠. 아니나 다를까 다들 너무 좋아하셨어요.” (비성)

 

 

 

누구의 엄마가 아닌 달목은 가끔은 국화꽃이고 대개는 평화로워 

 

 

꽃분홍색 티셔츠를 똑같이 맞춰 입은 양례, 영숙, 금연, 달목, 봉이의 가슴에는 큰 이름표가 붙어 있다. 지난 모임 때 진행한 에니어그램 결과로 얻은 ‘행복’, ‘자비’, ‘평화’, ‘사랑’, '기쁨’이 오늘 할매들의 이름이다. 6월의 모임에서는 ‘대나무’, ‘매화’, ‘소나무’, ‘장미', ‘국화’였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도 잊은 채 누구의 엄마, 아내, 며느리로 불렸을 우리 할매들이 오늘은 행복과 기쁨이 넘치고 자비롭고 평화로우며 또 사랑스러운 이름을 가졌다. 살아가는 동안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 왠지 멋져 보였다. 그리고 한가지 이름만 갖고 사는 게 갑자기 너무 시시하고 불합리한 일처럼 느껴졌다. 

 

 

 

백 가지 모습의 섬진강을 기억해 

 

모임은 이렇게 진행된다. 할매들이 좋아하는 하동의 장소에 모여 그날 모임을 위해 선택된 그림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장소는 할매들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판이 되어주고 비성이 고심해서 준비한 책은 할매들이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가슴 속의 생각과 감정들을 끄집어 내 풀어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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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의 기억 속 하동이야기가 그림과 사진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늘 할매들에게 펼쳐진 판은 넓은 테라스가 있는 한 카페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섬진강과 하동 송림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테라스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며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머, 여긴 또 처음 와보네.” 

 

“다 보인다, 다 보여.” 

 

“송림 모래사장이 우리 어릴 땐 아주 넓었어.”

 

“섬진강이 장마 땐 사람도 돼지도 막 떠내려왔어. 집도 떠내려온 적이 있었다니까. 그렇게 물이 많았어.” 

 

“재첩도 참 많았지. 아주 다글다글했어.”  

 

“섬진강이 저 위 데미샘에서 내려와. 거기서 시작되는 거야.”

 

“원래 민물 바닷물 만나는 곳에 재첩이 사는데 재첩도 많이 없고 요새는 바닷물이 위로 올라가 이제 화개서도 재첩이 잡힌대. 위에 하도 댐을 많이 만들어나서 민물 내려올 게 없어. 그러니 바닷물이 올라가지. 그래도 섬진강은 아직은 깨끗해. 얼마 전에 낙동강을 가봤는데 시꺼매, 뭐가 둥둥 떠다니고.”

 

 

섬진강 하나를 보고도 우리 할매들 입에서 말이 쏟아져 흘러넘쳤다. 지금 보이는 섬진강이 다인 우리와 할매들의 섬진강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할매들은 분명 세월 따라 변한 섬진강의 다른 모습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 백 개쯤.

 

 

 

 

설거지가 싫었고, 지금도 싫고

 

 

할매들의 말이 섬진강에서 낙동강까지 흘러가는 바람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비성이 서둘러 그림책을 꺼냈다. 이번 모임을 위한 그림책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집안일’이다. 책 속에는 할매들처럼 섬진강에서 나고 자란 시인 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다정한 그림들이 가득했다. 할매들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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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이 그림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성 : 책을 좀 보면서 얘기해봐요. 어떤 그림이 좋은지,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편하게 얘기들을 나누세요. 

 

”우리 클 때랑 똑같아, 다 우리들 추억이네. 하하”

 

“요거 꼬맹이가 아이를 업었네. 나도 동생 선희 업고 다니느라 고생 많이 했어. 놀러도 못 가고... 너무 놀고 싶어 선희를 내려놓고 고무줄뛰기도 하고 놀다 보면 동생이 없는 거야. 한달음에 집에 뛰어가 보면 또 집에 와있어. 그러면 또 얼마나 엄마한테 혼났는지.”

 

“논에서 일하는 그림 보니 농사지을 때 생각나네. 일꾼 한 명 부르면 일꾼이 자기 식구들 너댓은 달고 와. 오면 밥 먹을 수 있으니까. 배 굶게해서 보낼 수 있나. 그래 밥도 엄청 해댔어”

 

“애기 업고 일하는 사진을 보니 시어머니 생각나. 우리 시어머니 우리 큰딸 업고 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허리에 부스 럼도 많이 났어. 어제가 우리 어머니 제사여서 ’어머니 감사해요.’라고 했네요.” 

 

 

 

비성 : 할머니들이 어린 시절에 전담했던 집안일은 뭐였나요?

 

“난 설거지, 지금도 설거지가 너무 싫어”

 

“엄마 아파서 나는 모든 집안일을 내가 다 했어. 봄 되면 친구들 나물 캐러 산에 가는데 나는 한 번도 못 갔어. 그땐 그게 그렇게 해보고 싶었어.” 

 

“소 풀 먹이러 많이 갔지.” 

 

“엄마가 아파 내가 맨날 물 길어 날랐어요.” 

 

“동생 업어주는 것. 진짜 힘들었어. 동생 때문에 놀지도 못했어.” 

 

 

 

비성 :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칠십 만 되면 다시 연애하고 싶어”

“삼십 대로 돌아가고 싶어. 다른 남자하고 아기자기 살고 싶어”

“난 싫어. 난 지금이 젤 좋아. 자유롭고... 옛날보다 지금이 좋아”

“사십 대가 좋을 것 같아. 좋은 남자 만나서, 나만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살고 싶어” 

“나도 칠십 살만 되면 좋겠어. 여행도 많이 다니고...”

 

 

 

비성 :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들처럼 한마디씩 해주세요.

 

비성은 텔레비전 모양의 종이 프레임을 준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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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목이 발표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일단 미워요. 밉지만 이해 가는 부분이 있어. 성질 괴팍한데 인정은 많아. 약자를 잘 도우려고 했는데 내가 그걸 닮은 것 같아.”

 

“엄마 아빠 너무 미워요. 지금도 미워요. 공부 못한 게 너무나 한이 돼. 재산도 있었으면 왜 나를 안 가르켜줬을까? 너무너무 공부가 하고 싶었어요.”

 

“젊은 사람들아, 행복하게 건강하게 활발하게 살아요!”

 

 

 

 

우리 다시 만나

 

 

모임이 끝나고 할매들 사이에 끼어 점심을 먹었다. 김밥을 오물거리며 못다한 질문들을 이어갔다. 

 

 

팀 옥동 : 처음에 이렇게 모임을 시작할 때 어떤 생각으로 같이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나이도 많고 어디도 가기 뭐해서 적적하게 있는데 이런 모임 있다니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지.”  

 

“젊은이(비성)가 이런 모임 만들어 줘서 너무 감사해요.” 

 

“모이는 날만 너무 기다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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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동 섬호정에서 ’꽃보다 하동할매’ 멤버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하)1951년 섬호정의 모습. 가운데가 젊은시절의 영숙

 

 

 

팀 옥동: 모임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마음속에 있는 말, 내가 못 했던 말을 시원하게 하니까 좋지.”

 

“뒷방 늙은이처럼 지냈는데 이렇게 모이니 너무 감사하고 그렇지.”

 

“복지관도 나이가 너무 많으니까 쑥스러워 안가게 돼.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얘기도 하고 좋은 곳도 같이 다니니까 너무 좋아.” 

 

“나는 말을 잘 못했어. 남 앞에서 말하는게 겁이 났는데 이젠 말도 좀 잘하게 됐어. 시켜서 억지로 했는데 조금씩 느는 것도 같고. 말 잘하게 된게 좋아. 편안한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더 그런가봐.” 

 

 

 

팀 옥동 : 어머니들 편히 식사하시라고 마지막 질문 하나만 할게요.
 ‘내가 이건 참 잘했어, 훌륭해, 고마워’라고 나를 칭찬해주는 말 한마디씩 해주세요.

 

 

“자식들 공부 많이 시켜준 거 그거 칭찬해주고 싶어요. 내가 못배운게 한이 됐는데 그래도 자식들은 다 4년제 대학을 보냈어요.” 

 

“사십 다섯에 혼자 됐어요. 자식이 다섯 명인데 다 잘 키운거 그거 내가 자랑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얘들도 지금 다 행복하게 살고 나 고생한거 다 알아주고 하니까 고맙지.” 

 

“서른 아홉에 혼자 됐거든. 나도 애들이 다섯이고 혼자서 맨바닥에서부터 키웠지. 다들 별 문제없이 잘 컸어. 다행이야.”  

 

 

 

점심을 다 먹고 자리를 정리할 때 즈음 금연은 이 모임이 연말쯤 끝난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몇 번이나 진짜냐고 물어봤다. 계속하는 줄 알았는데 많이 아쉽다고 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양례가 무심히 ‘우리 다섯이 그냥 모이면 되지’라고 말했다. 할매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금연은 ‘그러면 되겠네'라며 해맑게 웃었다.

자료들을 정리하던 비성도 말을 보탰다. “왜 다섯이예요? 여섯이죠. 저는요?”(웃음)

 
 

 

 

글쓴 사람. 팀 옥동

간소하고 간결한 삶을 지향하는 하동의 옥이. 호기심을 잃지 않고 늙고 싶은 하동의 동이. 

두 사람이 천천히 걷고 때론 달리며 자주 멈춰서서 발견하는 하동의 작고 깊은 이야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