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흙을 밟고 우주의 리듬에 춤출 수 있는 날을 꿈꾸는 - 정명희 생태해설사 글 / 팀 옥동 
정명희 생태해설사 함박꽃나무, 박달나무, 병꽃나무, 생강나무, 합다리나무, 산딸나무, 비목나무, 박쥐나무, 철쭉, 산철쭉, 물들메나무, 물푸레나무, 야광나무, 고광나무, 화살나무, 대팻집나무, 검팽나무, 누리장나무, 노린재나무, 까치 박달나무, 딱총나무, 굴피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당단풍나무, 작살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다름나무, 사람주나무, 호랑버들, 윤노리나무, 단풍취, 병풍 취, 수리취, 우산나물, 일월비비추, 신갈나무, 바위떡풀, 어리병풍, 괭이눈, 까치고들빼기, 지리고들빼기, 지리대사초, 지리터리풀, 흰여로, 산오이풀 지리산 자락을 돌며 정명희 생태해설사가 만나는 식물의 이름들이다. 하나하나 읽다 보면 마음도 몸도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듯 평온해진다. 처음엔 이름조차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금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친숙한 느낌이 드는 건 또 왜일까? 물어볼 사람도 없고, 도감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가던 식물 독학 10년 “이게 한국에서 제일 두꺼운 식물도감이거든요.” “굉장히 어렵게 오랜 시간을 혼자 공부한 거 같아요.” (사진 준비중) 너덜너덜해진 [원색 대한 식물도감] 표지 2006년, 2007년에 생태해설사 교육이 있었어요. 교육 후 2008년도에 교육생들이 자발적으로 ‘하동 생태해설사회’라는 단체를 만들었고요. 모니터링 활동이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식물, 조류, 갯벌 세 개의 모니터링 팀으로 나눴어요. 식물 팀장을 제가 맡게 되면서 식물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진짜 하나도 모르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하여튼 되게 어렵게 한 것 같아요. 식물도감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막 찾는 거죠. 그냥 그렇게 찾으면서 공부했어요. 요즘 같으면 인터넷 활용하겠지만 2008년도 그때는 그런 시절도 아니었잖아요. 전혀 도움받을 곳이 없었어요. 남들보다 굉장히 어렵게 오랜 시간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1년에 1번은 꼭 ‘지리산 구상나무’를 만나는 ‘지리산 시민 과학자’ “구상나무는 해발 1300 이상 높이의 산에 서식하는 한국에만 있는 특산종이에요.” “1년에 1번, 나 죽을 때까지 한다는 생각으로 지리산 구상나무를 만나고 있어요.” 한라산, 지리산 등 높은 산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구상나무는 보존 가치가 높은 나무예요. 근데 언제부턴가 지리산 구상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고 있어요. 흔히들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원인을 명확히 규정할 만한 연구 자료가 없기에 장기적인 조사가 필요한 거지요. 작년부터 지리산 구상나무에 대한 진짜 장기적인 모니터링 활동을 지리산 시민 과학자들이 국립공원 연구원과 연계해서 하고 있어요. 몇 세대에 걸쳐서 모니터링을 하는 외국 사례들도 있거든요. 지리산 시민 과학자는 그동안 지리산에 필요한 몇몇 활동을 같이 해왔어요. 지리산을 6구간으로 나눠서 팀별로 진행하고 있는데 저희 팀은 중산리에서 천왕봉 구간을 하고 있어요. 모니터링은 1년에 한 번 해요. 침엽수라서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열매 열린 거 보기 좋은 계절인 8월 말 9월 초 그때 산에 오르면서 모니터링을 해요. 그렇게 1년에 한 번씩 찾는 것도 좋고 ‘우리 죽을 때까지 한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처음 얘기 들었을 때부터 그 의미가 너무 좋더라고요. 얼마 전에 모니터링하고 왔는데 날씨까지 진짜 환상적이었어요. 작년에 모니터링 대상 나무 중에서 표준 대상 하나를 같은 팀원 키하고 똑같은 나무를 선정했어요. 이번에 그 옆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작년보다 한 30cm 이상 컸더라고요. 이제 그런 식으로 매년 우리와 함께 나무는 커가고, 그렇게 같이 가는 거죠. 
매년 같이 서서 사진을 찍는 지리산 구상나무와 정명희 님 구상나무가 왜 중요하냐면 구상나무가 사실 분비나무랑 거의 비슷해요. 분비나무는 전 세계에 있는 곳이 많은데 구상나무는 한국 특산종이거든요. 특산종은 식물에 있어서 되게 중요해요.중산리에서 올라가자면 법계사 아래쪽에는 없어요. 높은 산에만 있어서 한라산 지리산에서 만났고. 소백산 이남까지 있고 그 이북부터는 분비나무가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구역이 딱 정해져 있어요. 관찰하는 게 중요한 거죠.탐방로 변 구상나무 생육상태를 관찰 조사해요. 나무의 키(수고), 발생 위치, 수목 형태, 잎 상태, 수간 상태, 뿌리 노출, 결실유무, 주변 수목, 하층식생, 장애요인, 탐방로와 거리, 특이사항 등을 기록하죠. 두 개의 길목에서, 춤 테라피 & 식물 공부의 완성 제가 원래는 심리상담의 측면에서 춤 테라피 이런 걸 하고 싶어 했어요. 50살 되면서 새롭게 공부해보려고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했었죠. 근데 생각보다 교육과정이 길었어요. 돈도 많이 들고요. 그래도 그것까진 괜찮은데 실습 기간이 너무 길더라고요. 실습 과정이 진짜 전문가의 과정인 거죠. 공부까지는 어쨌든 되겠다 싶었는데 실습까지 그렇게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여건이 너무 좀 어려웠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5~6년 전 만났던 전문가라는 사람의 얘기가 떠오른 거죠. 저보고 식물에 대한 실력이 상급이라고 했어요. 제 실력 정도의 대학교수도 거의 없다며 그 분야를 전공으로 한번 나가보라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난 거예요. 완전 새로운 것을 공부하려고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춤 테라피보다 내가 그동안에 식물 공부를 좀 했으니까 전공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사실 그동안에 너무 두서없이 했으니까요. 기초 없이 혼자서 진짜 마구 공부한 거잖아요. 뭔가 체계도 너무 없는 것 같고 그냥 식물 이름 좀 많이 아는 거 외에는 별로 없는 거 같고요. 해서 나의 식물 공부를 조금 완성 완결하자. 진짜 좀 제대로 된 공부를 좀 해서 어떤 완성을 이루자 그런 측면으로 정리하면서 제 나이 52에 대학원에 갔어요. 멸종위기종 ‘대흥란’ 논문으로, 거제도 노자산 골프장 건설 저지에 동참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사실은 한 학기 휴학했어요. 오로지 조사만 하기 위해서요.” “제가 목적했던 바가 있었기에, 노자산을 좀 지켜내자 하는 것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죠.” 대학원 딱 들어갔을 때, [거제도 노자산 골프장 건설 예정지] 이런 기사를 본 거예요. 기사를 보고 또 노자산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고 해서 ‘나도 뭔가 기여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노자산을 연구 대상지로 삼았어요. 노자산은 멸종위기종인 대흥난이 나오는 곳이었거든요. 멸종위기종이 나오면 개발은 무조건 못해요. 그런데 개발업자들이 대흥난은 없다고 환경영향평가서를 계속 내오는 거예요. 대흥난이 존재하지 않아야 1등급이 해제되어 개발할 수 있으니까 개발업자들이 대흥란을 뺀 환경평가서를 계속 올리고 있었던 거죠. 현장 조사를 나왔을 때 멸종위기종이 있다는 것이 눈으로 확인돼야 하는데 계절에 따라 없을 때가 있잖아요. 대흥난이 있을 때 현장 조사 나오지 않는 이상 증명할 길이 없어요. 그럴 때 그걸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문가의 논문 같은 게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제가 우리 교수에게 논문을 쓰게 도와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우리 교수가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가서 현장을 보고 결정하자.” 하셔서 함께 현장 방문한 후 논문을 쓰고 발표하게 됐어요. 제가 거제도 노자산에 33번을 조사하러 갔어요. 진짜 한 달에 몇 번씩 가기도 했고요. 그게 제가 목적했던 바가 있었기에, 어쨌든 골프장 예정지인 것에서 노자산을 좀 지켜내자 하는 것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죠.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사실은 한 학기 휴학했어요. 오로지 조사만 하기 위해서요. 내가 그렇게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조사하러 다녔어요. 통영 거제 환경 연합 사무국장님이 노자산 지키기에 굉장히 열심히 하셨죠. 그렇게 완성된 제 논문이 증거 자료로 역할을 했어요. 그러면서 노자산의 1등급 영역도 더 넓어졌죠.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으니까 그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알면 알수록 점점 조금 더 자연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커져 여러 가지 생태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는 만큼 어쨌든 조금은 더 지켜내고 싶은 마음, 점점 더 그런 거는 강해지는 것 같아요. 몰랐던 식물이나 새나 곤충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니까 정말 우리와 같이 함께 사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요. 너무나 무분별한 개발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런 현장들을 보면 어쨌든 ‘내 힘닿는 대로 지켜내고 싶다.’ 하는 마음이 조금씩 더 커져요.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도 하고 있고, 송림공원에서 숲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체험을 통해 숲을 이해하는 놀이 위주로 하거든요. 그냥 설명보다는 숲 놀이를 통한 숲과의 만남으로 숲과 자연을 만나고 이해하고 친숙해지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 좀 있어요. 그냥 말로 듣고 알아가는 것과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느끼는 건 달라요. 
6살,7살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중 
생태계 균형의 중요함을 알려주는 놀이 ‘지팡이를 잡아라.’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자연을 닮아가는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은 처음에 저는 우리 집 밭을 숲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밭에 앉아있으면 숲에 앉아있는 느낌이 나는 그런 공간으로요. 그래서 큰 나무 배치도 그렇고, 제가 추구하는 게 다양성이니만큼 다양한 묘목들을 많이 심었어요.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서로 어울려 자라길 바라면서요. 사실은 저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이런 게 끊임없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예외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고 싶어요. 스콧 니어링의 죽음이 저는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분이 자기 생일날 아침에 단식을 시작하면서 18일 만에 죽잖아요. 내 손으로 먹는 것조차 해결하지 못할 때 그렇게 죽음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거 보면서 ‘꼭 그래야지, 나도.’ 생각했죠. 나이 들어가면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제가 느낄 때가 오겠죠. 그러면 준비된 죽음을 하고 싶어요. 봄도 좋고요. 가을이 더 좋네요. 10월의 따사로운 가을 햇볕 속에 마당에 평상을 펴놓고, 두껍게 깔아놓은 요 위에 누워서 햇살을 받으면서 숨을 거둬야겠다. 그렇게 그려놓고 있어요. 아름답죠? 스콧 니어링의 “4시간 노동, 4시간 학습, 4시간 친교의 시간” 그 말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한때, ‘그래, 그렇게 살아봐야지.’ 했던 적도 있었고요. 또 조지훈 선생의 “때로는 종일 일을 하고 책을 못 읽는 날도 있지만, 또 때로는 종일 책만 읽고 일을 못 하는 날도 있지만” 하는 문장에 확 꽂힌 적도 있었어요. 어쨌든 그런 자연을 닮아가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연모는 계속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조금씩 그런 거 마음속에 담고 있죠? 그러니까 그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지향하는 거요. 작은 단위라도 씨앗 받아 함께 나누기, 좋지 아니한가? “씨앗을 이어가는 일을 함께하고 싶었어요.” “자기가 키운 작물의 씨앗 몇 개라도 받아보고 서로 나누면 좋잖아요.” 작년, 올해 몇몇 사람들과 수세미, 대산가지, 오이, 토마토 등 씨앗과 모종 나눔을 했었어요. 특별한 건 아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요. 토종 농사에 관심을 좀 가지고 나눈 거죠. 각자 자기가 재배해서 키웠던 거 씨 받아서 나누기도 하고 모종 키운 거 나누기도 하고요. 씨앗을 이어가는 일을 함께하고 싶었어요. 씨앗은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이자 자산이고, 다국적 종자 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는 길이기도 하잖아요. 대부분 모종 사서 심는데 조금씩만 더 신경 쓰면서 자기가 키운 작물 씨앗 몇 개라도 받아보고 또 서로 나누면 좋잖아요. “이렇게 하니 잘 되더라.” “그렇게 한번 심어보자.” 하면서 정보도 공유하고 공동으로 같이 고민하면서 하나씩 해가면 될 것 같아요. 씨앗 나눔, 참 괜찮은 것 같지 않나요? 안 하는 건 쉬운 일 아닌가? 샴푸 안 쓰기, 하루 두 끼 샴푸 안 쓰고 비누로 머리 감는 건 20대부터 했어요. 우리 집 근처에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이 있어서 회원가입을 한 뒤 ‘무엇을 실천할까?’ 생각하다가 샴푸를 안 쓰기로 했죠. 그때부터 쭉 샴푸는 안 쓰고 비누로만 머리를 감아왔어요. 마지막에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 물로 헹궜어요. 그러다가, 작년에는 지인이 천연샴푸를 만들어 팔아서 그걸 쓰기도 했고요. 올해 1월 1일부터 얼마간 단식을 했었는데, 단식할 때는 머리 감지 말라고 해서 안 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냥 안 해도 되겠네 싶어서 그 뒤로 비누도 안 하고 물로만 하고 있어요. 물로만 머리를 감으니까 너무나 편안해요. 생활이 더 간소화된 것 같아요. 비누는 얼굴 씻을 때만 사용하고 있어요. 샴푸, 비누를 쓰면서 머리를 감는 게 어려운 일이지, 그냥 안 쓰는 건 쉬운 일 아닌가요? 뭔가를 더 하는 게 어려운 일이지, 그냥 안 하는 건 쉬운 일 아닌가요? 저는 안 하고 안 쓰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발상의 전환 같은 거죠. 다른 측면을 보려 하는 그런. 그리고 작년 7월부터 하루 두 끼를 시작했어요. 되게 편안해요. 저는 약간 배고픈 상태를 좀 즐기거든요. 살짝 배가 고프면 되게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 진짜 개운해지는 느낌 그런 게 있어서 좋아요. 특히 저녁을 안 먹는 건 되게 좋아요. 노동을 많이 하지 않는데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을 이유가 없거든요. 흙을 만지는 일은 가장 근원적인 노동, 나를 낮추면서 땅과 만나는 시간 “본업은 농부라고 늘 얘기하고 싶어요.” 마음은 항상 소농 작업자를 지향하고 있어요. 처음 왔을 때는 꽤 열심히 콩 농사도 짓고 온 식구들 모여서 메주도 만들어 나누고 했거든요. 지금은 텃밭 정도 해요. 직업을 누가 물어봤을 때 ‘저는 농부’라고 소개하는 게 제일 좋아요. 마음만은 늘 농부라고 얘기해요. 지금은 생태해설사 일이 조금 많아지긴 했는데 농사는 지어야죠. 흙을 만지는 일은 가장 근원적인 노동이고 나를 낮추면서 땅과 만나는 시간이거든요. 맨발로 흙을 밟고 우주의 리듬에 춤출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지내요. 숲해설가, 산림치유지도사, 유아숲지도사, 방과 후 교사, 농부, 녹색당 당원, 제로 웨이스트, 미니멀 라이프 등 정명희 님이 하는 일들이 다양하고 많다. 명칭과 형태는 다 다른데도 정명희 님의 그 여러 가지 일들은 모두 하나를 향하는 듯싶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 녹색의 응원을 보낸다. |
맨발로 흙을 밟고 우주의 리듬에 춤출 수 있는 날을 꿈꾸는
- 정명희 생태해설사
글 / 팀 옥동
정명희 생태해설사
함박꽃나무, 박달나무, 병꽃나무, 생강나무, 합다리나무, 산딸나무, 비목나무, 박쥐나무, 철쭉, 산철쭉, 물들메나무, 물푸레나무, 야광나무, 고광나무, 화살나무, 대팻집나무, 검팽나무, 누리장나무, 노린재나무, 까치 박달나무, 딱총나무, 굴피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당단풍나무, 작살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다름나무, 사람주나무, 호랑버들, 윤노리나무, 단풍취, 병풍 취, 수리취, 우산나물, 일월비비추, 신갈나무, 바위떡풀, 어리병풍, 괭이눈, 까치고들빼기, 지리고들빼기, 지리대사초, 지리터리풀, 흰여로, 산오이풀
지리산 자락을 돌며 정명희 생태해설사가 만나는 식물의 이름들이다. 하나하나 읽다 보면 마음도 몸도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듯 평온해진다. 처음엔 이름조차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금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친숙한 느낌이 드는 건 또 왜일까?
물어볼 사람도 없고,
도감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가던 식물 독학 10년
“이게 한국에서 제일 두꺼운 식물도감이거든요.”
“굉장히 어렵게 오랜 시간을 혼자 공부한 거 같아요.”
(사진 준비중)
너덜너덜해진 [원색 대한 식물도감] 표지
2006년, 2007년에 생태해설사 교육이 있었어요. 교육 후 2008년도에 교육생들이 자발적으로 ‘하동 생태해설사회’라는 단체를 만들었고요. 모니터링 활동이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식물, 조류, 갯벌 세 개의 모니터링 팀으로 나눴어요. 식물 팀장을 제가 맡게 되면서 식물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진짜 하나도 모르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하여튼 되게 어렵게 한 것 같아요. 식물도감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막 찾는 거죠. 그냥 그렇게 찾으면서 공부했어요. 요즘 같으면 인터넷 활용하겠지만 2008년도 그때는 그런 시절도 아니었잖아요. 전혀 도움받을 곳이 없었어요. 남들보다 굉장히 어렵게 오랜 시간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1년에 1번은 꼭
‘지리산 구상나무’를 만나는 ‘지리산 시민 과학자’
“구상나무는 해발 1300 이상 높이의 산에 서식하는 한국에만 있는 특산종이에요.”
“1년에 1번, 나 죽을 때까지 한다는 생각으로 지리산 구상나무를 만나고 있어요.”
한라산, 지리산 등 높은 산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구상나무는 보존 가치가 높은 나무예요. 근데 언제부턴가 지리산 구상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고 있어요. 흔히들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원인을 명확히 규정할 만한 연구 자료가 없기에 장기적인 조사가 필요한 거지요. 작년부터 지리산 구상나무에 대한 진짜 장기적인 모니터링 활동을 지리산 시민 과학자들이 국립공원 연구원과 연계해서 하고 있어요. 몇 세대에 걸쳐서 모니터링을 하는 외국 사례들도 있거든요. 지리산 시민 과학자는 그동안 지리산에 필요한 몇몇 활동을 같이 해왔어요.
지리산을 6구간으로 나눠서 팀별로 진행하고 있는데 저희 팀은 중산리에서 천왕봉 구간을 하고 있어요. 모니터링은 1년에 한 번 해요. 침엽수라서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열매 열린 거 보기 좋은 계절인 8월 말 9월 초 그때 산에 오르면서 모니터링을 해요. 그렇게 1년에 한 번씩 찾는 것도 좋고 ‘우리 죽을 때까지 한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처음 얘기 들었을 때부터 그 의미가 너무 좋더라고요.
얼마 전에 모니터링하고 왔는데 날씨까지 진짜 환상적이었어요. 작년에 모니터링 대상 나무 중에서 표준 대상 하나를 같은 팀원 키하고 똑같은 나무를 선정했어요. 이번에 그 옆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작년보다 한 30cm 이상 컸더라고요. 이제 그런 식으로 매년 우리와 함께 나무는 커가고, 그렇게 같이 가는 거죠.
매년 같이 서서 사진을 찍는 지리산 구상나무와 정명희 님
구상나무가 왜 중요하냐면 구상나무가 사실 분비나무랑 거의 비슷해요. 분비나무는 전 세계에 있는 곳이 많은데 구상나무는 한국 특산종이거든요. 특산종은 식물에 있어서 되게 중요해요.중산리에서 올라가자면 법계사 아래쪽에는 없어요. 높은 산에만 있어서 한라산 지리산에서 만났고. 소백산 이남까지 있고 그 이북부터는 분비나무가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구역이 딱 정해져 있어요. 관찰하는 게 중요한 거죠.탐방로 변 구상나무 생육상태를 관찰 조사해요. 나무의 키(수고), 발생 위치, 수목 형태, 잎 상태, 수간 상태, 뿌리 노출, 결실유무, 주변 수목, 하층식생, 장애요인, 탐방로와 거리, 특이사항 등을 기록하죠.
두 개의 길목에서,
춤 테라피 & 식물 공부의 완성
제가 원래는 심리상담의 측면에서 춤 테라피 이런 걸 하고 싶어 했어요. 50살 되면서 새롭게 공부해보려고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했었죠. 근데 생각보다 교육과정이 길었어요. 돈도 많이 들고요. 그래도 그것까진 괜찮은데 실습 기간이 너무 길더라고요. 실습 과정이 진짜 전문가의 과정인 거죠. 공부까지는 어쨌든 되겠다 싶었는데 실습까지 그렇게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여건이 너무 좀 어려웠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5~6년 전 만났던 전문가라는 사람의 얘기가 떠오른 거죠. 저보고 식물에 대한 실력이 상급이라고 했어요. 제 실력 정도의 대학교수도 거의 없다며 그 분야를 전공으로 한번 나가보라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난 거예요.
완전 새로운 것을 공부하려고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춤 테라피보다 내가 그동안에 식물 공부를 좀 했으니까 전공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사실 그동안에 너무 두서없이 했으니까요. 기초 없이 혼자서 진짜 마구 공부한 거잖아요. 뭔가 체계도 너무 없는 것 같고 그냥 식물 이름 좀 많이 아는 거 외에는 별로 없는 거 같고요. 해서 나의 식물 공부를 조금 완성 완결하자. 진짜 좀 제대로 된 공부를 좀 해서 어떤 완성을 이루자 그런 측면으로 정리하면서 제 나이 52에 대학원에 갔어요.
멸종위기종 ‘대흥란’ 논문으로,
거제도 노자산 골프장 건설 저지에 동참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사실은 한 학기 휴학했어요. 오로지 조사만 하기 위해서요.”
“제가 목적했던 바가 있었기에, 노자산을 좀 지켜내자 하는 것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죠.”
대학원 딱 들어갔을 때, [거제도 노자산 골프장 건설 예정지] 이런 기사를 본 거예요. 기사를 보고 또 노자산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고 해서 ‘나도 뭔가 기여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노자산을 연구 대상지로 삼았어요.
노자산은 멸종위기종인 대흥난이 나오는 곳이었거든요. 멸종위기종이 나오면 개발은 무조건 못해요. 그런데 개발업자들이 대흥난은 없다고 환경영향평가서를 계속 내오는 거예요. 대흥난이 존재하지 않아야 1등급이 해제되어 개발할 수 있으니까 개발업자들이 대흥란을 뺀 환경평가서를 계속 올리고 있었던 거죠.
현장 조사를 나왔을 때 멸종위기종이 있다는 것이 눈으로 확인돼야 하는데 계절에 따라 없을 때가 있잖아요. 대흥난이 있을 때 현장 조사 나오지 않는 이상 증명할 길이 없어요. 그럴 때 그걸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문가의 논문 같은 게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제가 우리 교수에게 논문을 쓰게 도와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우리 교수가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가서 현장을 보고 결정하자.” 하셔서 함께 현장 방문한 후 논문을 쓰고 발표하게 됐어요.
제가 거제도 노자산에 33번을 조사하러 갔어요. 진짜 한 달에 몇 번씩 가기도 했고요. 그게 제가 목적했던 바가 있었기에, 어쨌든 골프장 예정지인 것에서 노자산을 좀 지켜내자 하는 것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죠.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사실은 한 학기 휴학했어요. 오로지 조사만 하기 위해서요. 내가 그렇게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조사하러 다녔어요. 통영 거제 환경 연합 사무국장님이 노자산 지키기에 굉장히 열심히 하셨죠. 그렇게 완성된 제 논문이 증거 자료로 역할을 했어요. 그러면서 노자산의 1등급 영역도 더 넓어졌죠.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으니까 그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알면 알수록 점점 조금 더
자연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커져
여러 가지 생태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는 만큼 어쨌든 조금은 더 지켜내고 싶은 마음, 점점 더 그런 거는 강해지는 것 같아요.
몰랐던 식물이나 새나 곤충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니까 정말 우리와 같이 함께 사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요. 너무나 무분별한 개발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런 현장들을 보면 어쨌든 ‘내 힘닿는 대로 지켜내고 싶다.’ 하는 마음이 조금씩 더 커져요.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도 하고 있고, 송림공원에서 숲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체험을 통해 숲을 이해하는 놀이 위주로 하거든요. 그냥 설명보다는 숲 놀이를 통한 숲과의 만남으로 숲과 자연을 만나고 이해하고 친숙해지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 좀 있어요. 그냥 말로 듣고 알아가는 것과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느끼는 건 달라요.
6살,7살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중
생태계 균형의 중요함을 알려주는 놀이 ‘지팡이를 잡아라.’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자연을 닮아가는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은
처음에 저는 우리 집 밭을 숲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밭에 앉아있으면 숲에 앉아있는 느낌이 나는 그런 공간으로요. 그래서 큰 나무 배치도 그렇고, 제가 추구하는 게 다양성이니만큼 다양한 묘목들을 많이 심었어요.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서로 어울려 자라길 바라면서요.
사실은 저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이런 게 끊임없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예외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고 싶어요.
스콧 니어링의 죽음이 저는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분이 자기 생일날 아침에 단식을 시작하면서 18일 만에 죽잖아요. 내 손으로 먹는 것조차 해결하지 못할 때 그렇게 죽음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거 보면서 ‘꼭 그래야지, 나도.’ 생각했죠. 나이 들어가면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제가 느낄 때가 오겠죠. 그러면 준비된 죽음을 하고 싶어요. 봄도 좋고요. 가을이 더 좋네요. 10월의 따사로운 가을 햇볕 속에 마당에 평상을 펴놓고, 두껍게 깔아놓은 요 위에 누워서 햇살을 받으면서 숨을 거둬야겠다. 그렇게 그려놓고 있어요. 아름답죠?
스콧 니어링의 “4시간 노동, 4시간 학습, 4시간 친교의 시간” 그 말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한때, ‘그래, 그렇게 살아봐야지.’ 했던 적도 있었고요. 또 조지훈 선생의 “때로는 종일 일을 하고 책을 못 읽는 날도 있지만, 또 때로는 종일 책만 읽고 일을 못 하는 날도 있지만” 하는 문장에 확 꽂힌 적도 있었어요. 어쨌든 그런 자연을 닮아가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연모는 계속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조금씩 그런 거 마음속에 담고 있죠? 그러니까 그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지향하는 거요.
작은 단위라도 씨앗 받아 함께 나누기,
좋지 아니한가?
“씨앗을 이어가는 일을 함께하고 싶었어요.”
“자기가 키운 작물의 씨앗 몇 개라도 받아보고 서로 나누면 좋잖아요.”
작년, 올해 몇몇 사람들과 수세미, 대산가지, 오이, 토마토 등 씨앗과 모종 나눔을 했었어요. 특별한 건 아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요. 토종 농사에 관심을 좀 가지고 나눈 거죠. 각자 자기가 재배해서 키웠던 거 씨 받아서 나누기도 하고 모종 키운 거 나누기도 하고요. 씨앗을 이어가는 일을 함께하고 싶었어요. 씨앗은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이자 자산이고, 다국적 종자 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는 길이기도 하잖아요.
대부분 모종 사서 심는데 조금씩만 더 신경 쓰면서 자기가 키운 작물 씨앗 몇 개라도 받아보고 또 서로 나누면 좋잖아요. “이렇게 하니 잘 되더라.” “그렇게 한번 심어보자.” 하면서 정보도 공유하고 공동으로 같이 고민하면서 하나씩 해가면 될 것 같아요. 씨앗 나눔, 참 괜찮은 것 같지 않나요?
안 하는 건 쉬운 일 아닌가?
샴푸 안 쓰기, 하루 두 끼
샴푸 안 쓰고 비누로 머리 감는 건 20대부터 했어요. 우리 집 근처에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이 있어서 회원가입을 한 뒤 ‘무엇을 실천할까?’ 생각하다가 샴푸를 안 쓰기로 했죠. 그때부터 쭉 샴푸는 안 쓰고 비누로만 머리를 감아왔어요. 마지막에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 물로 헹궜어요. 그러다가, 작년에는 지인이 천연샴푸를 만들어 팔아서 그걸 쓰기도 했고요.
올해 1월 1일부터 얼마간 단식을 했었는데, 단식할 때는 머리 감지 말라고 해서 안 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냥 안 해도 되겠네 싶어서 그 뒤로 비누도 안 하고 물로만 하고 있어요. 물로만 머리를 감으니까 너무나 편안해요. 생활이 더 간소화된 것 같아요. 비누는 얼굴 씻을 때만 사용하고 있어요.
샴푸, 비누를 쓰면서 머리를 감는 게 어려운 일이지, 그냥 안 쓰는 건 쉬운 일 아닌가요?
뭔가를 더 하는 게 어려운 일이지, 그냥 안 하는 건 쉬운 일 아닌가요?
저는 안 하고 안 쓰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발상의 전환 같은 거죠. 다른 측면을 보려 하는 그런.
그리고 작년 7월부터 하루 두 끼를 시작했어요. 되게 편안해요. 저는 약간 배고픈 상태를 좀 즐기거든요. 살짝 배가 고프면 되게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 진짜 개운해지는 느낌 그런 게 있어서 좋아요. 특히 저녁을 안 먹는 건 되게 좋아요. 노동을 많이 하지 않는데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을 이유가 없거든요.
흙을 만지는 일은 가장 근원적인 노동,
나를 낮추면서 땅과 만나는 시간
“본업은 농부라고 늘 얘기하고 싶어요.”
마음은 항상 소농 작업자를 지향하고 있어요. 처음 왔을 때는 꽤 열심히 콩 농사도 짓고 온 식구들 모여서 메주도 만들어 나누고 했거든요. 지금은 텃밭 정도 해요. 직업을 누가 물어봤을 때 ‘저는 농부’라고 소개하는 게 제일 좋아요. 마음만은 늘 농부라고 얘기해요. 지금은 생태해설사 일이 조금 많아지긴 했는데 농사는 지어야죠.
흙을 만지는 일은 가장 근원적인 노동이고 나를 낮추면서 땅과 만나는 시간이거든요. 맨발로 흙을 밟고 우주의 리듬에 춤출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지내요.
숲해설가, 산림치유지도사, 유아숲지도사, 방과 후 교사, 농부, 녹색당 당원, 제로 웨이스트, 미니멀 라이프 등 정명희 님이 하는 일들이 다양하고 많다. 명칭과 형태는 다 다른데도 정명희 님의 그 여러 가지 일들은 모두 하나를 향하는 듯싶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 녹색의 응원을 보낸다.
글쓴 사람. 팀 옥동
간소하고 간결한 삶을 지향하는 하동의 옥이. 호기심을 잃지 않고 늙고 싶은 하동의 동이.
두 사람이 천천히 걷고 때론 달리며 자주 멈춰서서 발견하는 하동의 작고 깊은 이야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