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진 이야기 _ 무뎌짐이 무서운거죠 사회자 상진이 소개되었다. 상진의 행사 진행은 섬진강처럼 늘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말도 안 되던 것들이 말이 되는 세상이 왔어요. 아까 단비가 얘기했듯이 위도 27도에서 발생한 저기압으로 인해 태풍이 와도 그게 그렇게 놀랍지 않잖아요.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가 바닷물로 꽉 차도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가 또 몇 년 뒤에는 아무렇지 않을 거예요. 어떤 기후 변화에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고 점점 무뎌져 가고 있는 건 아닐까….그 무뎌짐이 무서운 거죠.” 상진과 눈이 마주치면 호명되어 자유 발언자가 된다. 편안함을 주는 섬진강을 뒤로 하고 관음의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나를 평가하게(?) 될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 눈을 내리 까는 낮은 침묵이 흐른다. 훈련은 언제나 이토록 빡세다. 애라 이야기 _ 더이상 태양과 바람의 신비함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애라는 농부다. 그것도 하동에서 귀하디귀한 소농이다. 농부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강한 애라는 기후 변화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다. 
애라가 첫 번째 자유 발언자로 나서서 이야기하고 있다. “제가 농부잖아요. 지리산에 살면서 이런 소중한 자연 환경을 이용해서 나물이나 뭐 이런 것들을 말리고 할 때 굉장히 행복한 마음이 들었어요. 태양과 바람이 만들어 내는 어떤 신비함이 있거든요. 맛이나 영양성분의 변화 그런 것들이요. 그런데 이제 이런 자연을 이용하기 힘들게 됐다는 걸 느껴요. 작년에 참깨 농사가 비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건조기에는 넣지는 않았는데…. 올해는 날씨가 작년보다 더 안 좋아서 결국 건조기에 참깨를 넣어 말렸어요. 너무 속상했죠. 그런 과정에서 내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죠.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제 고민을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모임을 준비해주신 분들께 감사해요.” 창수 이야기 _ 배롱나무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봐요 남원에서 하동으로 달려와 준 창수는 형제봉생태조사단이다. 남원은 산악열차 시범사업 추진 문제로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남원에서 온 귀한 손님이라 남원 상황을 전해 듣고 싶었으나 창수는 나무 얘기가 더 하고 싶었다. 
창수가 나무의 행복을 빗대서 인간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까 동영상을 보고 나니 행복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졌어요. 제가 나무를 참 좋아해서 나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걸 좋아합니다. 나무 얘기를 해봅시다. 요즘 배롱나무 많이들 심잖아요. 꽃이 정말 많이 피는 나무죠. 물론 씨앗도 많이 맺고요. 그런데 배롱나무에서 떨어진 수많은 씨앗이 움을 터서 자생하는 경우는 많이 없어요. 결론적으로 그건 중국이 원산지인 배롱나무가 우리나라의 토양과 잘 맞지 않다는 얘기예요. 전 우리나라에 온 배롱나무는 행복하지 않을거로 생각해요. 행복해야 마음 놓고 자손을 번성시킬 수 있거든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어요. 내가 잘살고 있고 자식들도 별문제 없이 잘 살아갈 것 같고…그러면 기분 좋음이 느껴지잖아요. 그런 느낌이 행복이 아닐까요. 생태학적으로 말하면 행복에는 생존과 번식의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거죠.” 남준 이야기 _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하동 악양에 사는 시인 남준은 며칠 전에 쓴 시를 낭독했다. ‘사라진 순서’라는 제목의 시는 기후위기로 인해 생몰이 뒤죽박죽된 지구 생태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짧은 시 한 편으로 시인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어떤 한 사물이 128면체라고 하면 시인은 바닥에 깔린 바로 그 한 면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동에 시인이 있어 다행이다. “며칠 전에 그레타 툰베리 관련 책을 읽다가 도대체 어른들은 왜 이따위로 살까 싶어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차마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집 마당에 나갔죠.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내가 밤 하늘을 올려다 본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겠구나 뭐 그런 생각도 하면서…. 시 한편을 썼어요.” 정수 이야기 _ ‘사람이 제일 나빠’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마음이 덜컥해요 하동에서 감 농사를 짓는 정수는 아이 셋의 아빠다. 최근 몇년 간의 심각한 기후 변화는 농사를 짓는 농부 정수를, 아빠 정수를 울고 싶게 만든다. 
정수는 요즘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많다. “‘사람이 제일 나빠’ 제 아이들이 자주 이런 말을 해요.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의 마음 속에 인간 혐오에 대한 어두운 싹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선 안 되는 건대. 저는 어른이라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해 나름의 필터링이 가능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아니잖아요. 이게 사회적 명제로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요즘 조금 힘들고 모든 게 어려워요.” 마리 이야기 _ 너무 죄책감을 갖지는 말아요 이런 모임이라면 마리가 빠질 리 없다. 마리도 정수처럼 아이 셋을 키워낸 엄마고 한 살배기 손주가 있는 할머니다. “‘사람이 제일 나빠’라는 말은 사실 맞잖아요. 지구 생명체 중에서 자연을 망치는 건 인간밖에 없어요. 인간이 제일 나쁘죠. 그러니까 벌써부터 어린아이들이 진리를 아는 거예요. 정수씨는 걱정이 많겠지만 저는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요. 어른이 된 제 아이들을 보면 어린 시절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제가 성당 주일학교 선생을 하면서 제 아이들에게 환경 교육을 좀 철저히 했는데 이젠 그 꼬맹이가 어른이 돼서 제게 잔소리해요. 쓰레기 좀 그만 만들라고요. 사실 지구의 현재 상태를 되돌리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죠. 그래도 현 상황에 잘 적응하면서 우리보다 더 험한 세상에 살게 될 아이들 교육을 조금 더 신경 쓰는 것, 그게 죄책감을 갖는 것보다 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이르 이야기 _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너무 기뻐요 90년도에 태어난 이르는 모두의 환호성과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다. 이르는 최근 하동 악양에 비전화공방(삶에서 전기를 적게 쓰는 방식을 연구하는 작업소)을 차렸다. 날마다 조금씩 바뀌게 될 이르의 공간과 그곳에서의 그의 궁리들이 궁금하다. 
이르는 최근 하동 악양에 비전화공방을 차렸다. “모든 것이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오던 시절이었죠. 학교를 휴학하고 서울로 가서 비전화 기술을 배웠어요. 그 기술을 배움으로써 제가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없던 희망이란 것도 생겼고 그와 함께 어떤 동력같은 게 생겼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하동까지 왔고요. 얼마 전에 악양에 있는 작은 공간을 임대해서 뚝딱뚝딱 뭘 고치고 만들고 있어요.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뭐 할 거냐고 자꾸 물어보시는데 자세히 설명을 하면 너무 말이 길어지니까 그냥 목공방 한다고 해요. 거시적인 관점의 환경운동도 정말 중요하지만 제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삶 속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나의 삶이 먼저 바뀌고 내 주변 사람들이 바뀌면서 사회도 조금씩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믿어보려는 거죠. 정말이지 이렇게 길게 자세히 이야기 할 기회가 생겨서 너무너무 기뻐요.” 춘선 이야기 _ 섬진강이 얼어서 썰매도 탔어요 춘선은 하동 토박이다. 토박이들의 섬진강 얘기는 언제 들어도 신기하고 재밌다. 그 옛날 섬진강은 겨울에 강이 얼어 썰매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렇게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제가 하동 토박이예요. 섬진강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저 어릴 때는 겨울이 되면 섬진강이 얼었어요. 어른들이 빠져 죽는다고 아이들에게 썰매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죠. 그런게 생각나네요. 지금은 섬진강이 얼지 않네요. 날이 너무 덥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릴 때 하동은 3대 다우(多雨)지역이었거든요. 저기 보이는 다리 위까지 물이 찼어요. 우리가 앉아 있는 곳도 다 범람이 되고…그 정도로 비가 많이 왔어요. 다 추억이네요.” 하동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르의 희망과 하동에서 나고 자란 춘선의 기억 속 옛 섬진강 이야기를 끝으로 자유발언 시간이 끝났다.(생각해보니 엄밀히 말해 ‘자유’발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인 듯한 너의 이야기를 하고 들으며 그렇게 우리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졌지만, 넓은 잎으로 간간히 내리는 비를 막아주었던 플라타너스를 떠나 송림을 걸었다. 걷다가 중간쯤에 생태해설사 명희의 가이드로 ‘지팡이를 잡아라’라는 게임을 했다. 명희의 설명에 의하면 ‘지팡이를 잡아라’는 생태계의 모든 것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어떤 한 부분이 파괴되면 다른 모든 것들도 영향을 받아 온전치 못함을 알려주는 게임이라고 한다. 게임의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오랜만에 몸을 쓰는 놀이에 다들 너무 신났다. 필자는 이 게임을 통해 옆 사람을 돌보지 않고 혼자만 살려고 버둥대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판명이 났다. 생태계 전체 시스템을 통해 보자면 전문적인 용어로 ‘호모 사피엔스’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생태계 균형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지팡이를 잡아라’ 게임에 다들 신이 났다. 모든 일정이 끝나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다음 모임 날짜가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이런 모임이 하동에서 지속되길 바란다. 시작은 대체로 어렵다. 그러나 망설임과 두려움의 마음을 대차게 구겨서 어깨 뒤로 던져버린 후 한 걸음을 걷는다면 분명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무엇’을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또 이렇게 엮였다. |
산악열차, 기후위기 그리고 플라타너스 아래 모인 우리들
글 / 팀 옥동
하동 송림 플라타너스 아래에 모인 모인 사람들 (사진제공 지한, 이하 동일)
“이번엔 몇 명이나 올까?”
“많이 오면 좋겠지만 그런 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이런 대화는 이번 행사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이런저런 환경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 항상 있었던 대화다. “많이 오면 좋겠지만"은 진심 100%고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도 물론 진심이지만, 그 말속에는 아마 언어가 담지 못한 여러 속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행사를 알리는 웹자보
‘9월 24일 기후정의행동’에 앞서 하동에서도 작은 행사를 마련했다. 같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는 것! 일주일 전의 꽉 찬 한가위 보름달이 서서히 이지러져 반달이 되는 9월 17일, 하동 송림에서 가장 큰 플라타너스 아래에 모이기로 했다. ‘산악열차, 기후위기 그리고 우리들’이란 다소 무거운 타이틀을 단 모임이 ‘플라터너스 아래에 모이자’라는 말로 조금은 부드럽고 가벼워 질 수 있길 기대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나무 아래 모였다. 올거라 기대했던 사람들이 오지 않았을 때 내심 서운한 작은 마음을 붙잡고 있기엔 많지 않지만 시간과 마음을 내어 준 사람들의 큰 마음들이 너무 귀하다. 행사 전에 간식으로 준비한 꼬마 김밥과 과일을 함께 나눠 먹었다.
단비 이야기 _
얼굴 보며 같이 얘기 나눠 보고 싶었어요
이번 행사의 기획자는 단비다. 지역에서 많은 행사를 치러낸 단비도 이번 행사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장소 특성상 영상을 보기 위한 빔 프로젝터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행사 당일이 되니 오히려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고.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지 않았으니 갑자기 비가 많이 온다면 안전한 곳으로 바로 몸만 뛰면 될 일이었다. 단비는 얼마 전 우리를 떨게 한 태풍 힌남노 이야기로 본격적인 행사를 시작했다.
”제가 며칠 전에 라디오를 들었거든요. 힌남노 태풍 얘기였어요. 태풍은 원래 위도 25도 아래인 적도 부근에서 만들어진 열대 저기압인데 이번 힌남노는 위도 27도에서 발생했대요. 열대 저기압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말해주는 게 적도만 뜨거운 게 아니라 지구가 전반적으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얘기죠.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잖아요. 우린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그래서 생각했죠. 지역에 같이 사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얼굴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보자고요.”
지한 이야기 _
민주시민이 되는 훈련을 우리 한번 해봐요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지한은 이런 작은 모임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훈련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가령 3분 자유발언 등 적당한 규칙을 정해 이야기하면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하동군에서 언급한 ‘지리산 산악열차 공론화’ 대응 문제를 이런 훈련을 통해 연습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모인 송림은 ‘그리스 아고라’라 할 수 있겠다. 지한의 생각은 가끔 엉뚱하지만, 늘 그렇듯 서서히 이해된다.
”모임을 준비한 첫 번째 이유는 ‘9월 24일 기후위기행동’을 지역에서 미리 한번 해보자는 거였죠. 또 그것과 더불어 하동군에서 ‘지리산 산악열차 공론화’를 한다고 했는데 우리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공론화에 대한 대응을 이런 모임을 통해 천천히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함께 모여 이야기하면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나와 함께하는 이웃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갈 수 있겠다 싶었죠. 이런 것들이 산악열차 공론화 준비의 시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주는 못 해도 분기별이라도 정기적으로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스티브 이야기 _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늘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질문, “행복이란 뭘까?”
오늘 같이 보려고 준비한 영상은 스티브 커츠(Steve Cutts)의 해피니스(Happiness)다. ‘행복’을 쫓는 신자유주의 시대 현대인의 잔혹한 현실을 묘사한 4분 정도 길이의 짧은 동영상이다. 프로젝트 빔이 없어 각자의 스마트폰을 이용했다. “데이터가 없다. 같이 보자”, “전체화면 보기는 어떻게 하나?”, “소리를 좀 줄여라.” 라는 말들이 오갔다.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현대인의 일상을 의도적으로 재현했다고 해도 되었을 재밌는 상황이다.
섬진강가에 앉아 스마트폰을 통해 동영상을 보고 있다.
Happiness / Steve Cutts
상진 이야기 _
무뎌짐이 무서운거죠
사회자 상진이 소개되었다. 상진의 행사 진행은 섬진강처럼 늘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말도 안 되던 것들이 말이 되는 세상이 왔어요. 아까 단비가 얘기했듯이 위도 27도에서 발생한 저기압으로 인해 태풍이 와도 그게 그렇게 놀랍지 않잖아요.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가 바닷물로 꽉 차도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가 또 몇 년 뒤에는 아무렇지 않을 거예요. 어떤 기후 변화에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고 점점 무뎌져 가고 있는 건 아닐까….그 무뎌짐이 무서운 거죠.”
상진과 눈이 마주치면 호명되어 자유 발언자가 된다. 편안함을 주는 섬진강을 뒤로 하고 관음의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나를 평가하게(?) 될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 눈을 내리 까는 낮은 침묵이 흐른다. 훈련은 언제나 이토록 빡세다.
애라 이야기 _
더이상 태양과 바람의 신비함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애라는 농부다. 그것도 하동에서 귀하디귀한 소농이다. 농부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강한 애라는 기후 변화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다.
애라가 첫 번째 자유 발언자로 나서서 이야기하고 있다.
“제가 농부잖아요. 지리산에 살면서 이런 소중한 자연 환경을 이용해서 나물이나 뭐 이런 것들을 말리고 할 때 굉장히 행복한 마음이 들었어요. 태양과 바람이 만들어 내는 어떤 신비함이 있거든요. 맛이나 영양성분의 변화 그런 것들이요. 그런데 이제 이런 자연을 이용하기 힘들게 됐다는 걸 느껴요. 작년에 참깨 농사가 비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건조기에는 넣지는 않았는데…. 올해는 날씨가 작년보다 더 안 좋아서 결국 건조기에 참깨를 넣어 말렸어요. 너무 속상했죠. 그런 과정에서 내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죠.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제 고민을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모임을 준비해주신 분들께 감사해요.”
창수 이야기 _
배롱나무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봐요
남원에서 하동으로 달려와 준 창수는 형제봉생태조사단이다. 남원은 산악열차 시범사업 추진 문제로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남원에서 온 귀한 손님이라 남원 상황을 전해 듣고 싶었으나 창수는 나무 얘기가 더 하고 싶었다.
창수가 나무의 행복을 빗대서 인간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까 동영상을 보고 나니 행복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졌어요. 제가 나무를 참 좋아해서 나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걸 좋아합니다. 나무 얘기를 해봅시다. 요즘 배롱나무 많이들 심잖아요. 꽃이 정말 많이 피는 나무죠. 물론 씨앗도 많이 맺고요. 그런데 배롱나무에서 떨어진 수많은 씨앗이 움을 터서 자생하는 경우는 많이 없어요. 결론적으로 그건 중국이 원산지인 배롱나무가 우리나라의 토양과 잘 맞지 않다는 얘기예요. 전 우리나라에 온 배롱나무는 행복하지 않을거로 생각해요. 행복해야 마음 놓고 자손을 번성시킬 수 있거든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어요. 내가 잘살고 있고 자식들도 별문제 없이 잘 살아갈 것 같고…그러면 기분 좋음이 느껴지잖아요. 그런 느낌이 행복이 아닐까요. 생태학적으로 말하면 행복에는 생존과 번식의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거죠.”
남준 이야기 _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하동 악양에 사는 시인 남준은 며칠 전에 쓴 시를 낭독했다. ‘사라진 순서’라는 제목의 시는 기후위기로 인해 생몰이 뒤죽박죽된 지구 생태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짧은 시 한 편으로 시인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어떤 한 사물이 128면체라고 하면 시인은 바닥에 깔린 바로 그 한 면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동에 시인이 있어 다행이다.
“며칠 전에 그레타 툰베리 관련 책을 읽다가 도대체 어른들은 왜 이따위로 살까 싶어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차마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집 마당에 나갔죠.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내가 밤 하늘을 올려다 본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겠구나 뭐 그런 생각도 하면서…. 시 한편을 썼어요.”
정수 이야기 _
‘사람이 제일 나빠’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마음이 덜컥해요
하동에서 감 농사를 짓는 정수는 아이 셋의 아빠다. 최근 몇년 간의 심각한 기후 변화는 농사를 짓는 농부 정수를, 아빠 정수를 울고 싶게 만든다.
정수는 요즘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많다.
“‘사람이 제일 나빠’ 제 아이들이 자주 이런 말을 해요.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의 마음 속에 인간 혐오에 대한 어두운 싹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선 안 되는 건대. 저는 어른이라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해 나름의 필터링이 가능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아니잖아요. 이게 사회적 명제로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요즘 조금 힘들고 모든 게 어려워요.”
마리 이야기 _
너무 죄책감을 갖지는 말아요
이런 모임이라면 마리가 빠질 리 없다. 마리도 정수처럼 아이 셋을 키워낸 엄마고 한 살배기 손주가 있는 할머니다.
“‘사람이 제일 나빠’라는 말은 사실 맞잖아요. 지구 생명체 중에서 자연을 망치는 건 인간밖에 없어요. 인간이 제일 나쁘죠. 그러니까 벌써부터 어린아이들이 진리를 아는 거예요. 정수씨는 걱정이 많겠지만 저는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요. 어른이 된 제 아이들을 보면 어린 시절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제가 성당 주일학교 선생을 하면서 제 아이들에게 환경 교육을 좀 철저히 했는데 이젠 그 꼬맹이가 어른이 돼서 제게 잔소리해요. 쓰레기 좀 그만 만들라고요. 사실 지구의 현재 상태를 되돌리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죠. 그래도 현 상황에 잘 적응하면서 우리보다 더 험한 세상에 살게 될 아이들 교육을 조금 더 신경 쓰는 것, 그게 죄책감을 갖는 것보다 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이르 이야기 _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너무 기뻐요
90년도에 태어난 이르는 모두의 환호성과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다. 이르는 최근 하동 악양에 비전화공방(삶에서 전기를 적게 쓰는 방식을 연구하는 작업소)을 차렸다. 날마다 조금씩 바뀌게 될 이르의 공간과 그곳에서의 그의 궁리들이 궁금하다.
이르는 최근 하동 악양에 비전화공방을 차렸다.
“모든 것이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오던 시절이었죠. 학교를 휴학하고 서울로 가서 비전화 기술을 배웠어요. 그 기술을 배움으로써 제가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없던 희망이란 것도 생겼고 그와 함께 어떤 동력같은 게 생겼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하동까지 왔고요. 얼마 전에 악양에 있는 작은 공간을 임대해서 뚝딱뚝딱 뭘 고치고 만들고 있어요.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뭐 할 거냐고 자꾸 물어보시는데 자세히 설명을 하면 너무 말이 길어지니까 그냥 목공방 한다고 해요. 거시적인 관점의 환경운동도 정말 중요하지만 제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삶 속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나의 삶이 먼저 바뀌고 내 주변 사람들이 바뀌면서 사회도 조금씩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믿어보려는 거죠. 정말이지 이렇게 길게 자세히 이야기 할 기회가 생겨서 너무너무 기뻐요.”
춘선 이야기 _
섬진강이 얼어서 썰매도 탔어요
춘선은 하동 토박이다. 토박이들의 섬진강 얘기는 언제 들어도 신기하고 재밌다. 그 옛날 섬진강은 겨울에 강이 얼어 썰매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렇게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제가 하동 토박이예요. 섬진강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저 어릴 때는 겨울이 되면 섬진강이 얼었어요. 어른들이 빠져 죽는다고 아이들에게 썰매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죠. 그런게 생각나네요. 지금은 섬진강이 얼지 않네요. 날이 너무 덥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릴 때 하동은 3대 다우(多雨)지역이었거든요. 저기 보이는 다리 위까지 물이 찼어요. 우리가 앉아 있는 곳도 다 범람이 되고…그 정도로 비가 많이 왔어요. 다 추억이네요.”
하동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르의 희망과 하동에서 나고 자란 춘선의 기억 속 옛 섬진강 이야기를 끝으로 자유발언 시간이 끝났다.(생각해보니 엄밀히 말해 ‘자유’발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인 듯한 너의 이야기를 하고 들으며 그렇게 우리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졌지만, 넓은 잎으로 간간히 내리는 비를 막아주었던 플라타너스를 떠나 송림을 걸었다. 걷다가 중간쯤에 생태해설사 명희의 가이드로 ‘지팡이를 잡아라’라는 게임을 했다. 명희의 설명에 의하면 ‘지팡이를 잡아라’는 생태계의 모든 것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어떤 한 부분이 파괴되면 다른 모든 것들도 영향을 받아 온전치 못함을 알려주는 게임이라고 한다. 게임의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오랜만에 몸을 쓰는 놀이에 다들 너무 신났다. 필자는 이 게임을 통해 옆 사람을 돌보지 않고 혼자만 살려고 버둥대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판명이 났다. 생태계 전체 시스템을 통해 보자면 전문적인 용어로 ‘호모 사피엔스’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생태계 균형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지팡이를 잡아라’ 게임에 다들 신이 났다.
모든 일정이 끝나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다음 모임 날짜가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이런 모임이 하동에서 지속되길 바란다. 시작은 대체로 어렵다. 그러나 망설임과 두려움의 마음을 대차게 구겨서 어깨 뒤로 던져버린 후 한 걸음을 걷는다면 분명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무엇’을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또 이렇게 엮였다.
글쓴 사람. 팀 옥동
간소하고 간결한 삶을 지향하는 하동의 옥이. 호기심을 잃지 않고 늙고 싶은 하동의 동이.
두 사람이 천천히 걷고 때론 달리며 자주 멈춰서서 발견하는 하동의 작고 깊은 이야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