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함양][우리 동네 청년들] “혼자만, 우리끼리만 잘사는 건 시시하니까요” - 지금은 육아 ‘활동’ 중, 김혜련

2022-08-01

 

 

“혼자만, 우리끼리만 잘사는 건 시시하니까요”

우리 동네 청년들 ③ : 지금은 육아 ‘활동’ 중, 김혜련

 

글 /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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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함양에 돌아와 사회복지사로, 지역활동가로 일해온 김혜련 씨.
 지금은 딸 아윤이와 거의 ‘한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사진제공_김혜련, 이하동일)

 

 

 

바람이 선선한 날이면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조금 멀리 산책을 나선다. 목적지는 상림이나 그리로 곧장 가는 일은 드물다. 지인들이 운영하는 빵집이며 그림책방에 들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눈에 띄는 나무나 꽃송이 앞에 멈춰 서서 아이와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느긋해진 마음 덕분일까. 조심스럽고 느린 발걸음이, 돌고 돌아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이제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하루 중 대부분을 이제 막 돌 지난 딸과 보낸다는 김혜련 씨는 지난 일 년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게 늘어가는” 삶을 체험해왔다. 다행히 그에겐 이런 현실이 힘들지만은 않다. 2년 전 <카페빈둥>을 거점 삼아 훨훨 날아다니던 때보다야 답답할지언정, 아이에게 집중하는 생활도 충분히 보람되고 재미있다는 것. 그는 이렇게 조급함 없이 지금 여기의 시간을 천천히 통과하는 중이다. 

 

 

 

 

2년 전, 올해의 인물로 ‘추앙’받은 사람  

 

 

 

“2020년 여름이었어요. 여행 다녀온 지 얼마 안 됐을 땐데 은진이 저한테 빈둥에서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가까운 누군가가 그런 제안을 툭 던져준다는 게 좋았고, 뭔가 해볼 수 있는 곳이 우리 지역에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고마웠어요.” 

 

 

2019년 가을에 결혼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혜련은, 그해 말 남편과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길을 나섰다. 집안사람들의 걱정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모두 떠안고 과감하게 벌인 일이었으나 둘의 여행은 코로나로 인해 3개월 만에 끝나고 만다. 함양에 돌아온 그가 ‘빈둥지기’로 일하며 지역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지역 주민이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나는 ‘문화로수다방’을 시작으로 ‘문화놀이장날 마켓팀’을 거쳐 손작업자들과 함께하는 ‘하루배움터’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 모든 일을 발로 뛰며 야무지게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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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배움터’ 프로그램을 위해 손작업자들과 만나 소통하는 김혜련. (왼쪽에서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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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빈둥에서 청소년들과 ‘띄엄띄엄마켓’을 준비하는 모습.

 

 

 

그해 말이던가. 일 년간 벌여온 활동에 근거하여 다양한 지역 의제를 정리해보는 자리가 온라인으로 마련되었을 때 일이다. 발표와 논의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소감을 나눌 즈음, 누군가 “올해는 혜련의 해”라고 하자 또 다른 누군가 “혜련의 재발견”이라고 말을 받았다. 그 순간 랜선으로 연결된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주인공에게 고마움과 격려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갑작스러운 스포트라이트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환하게 빛나던 그의 표정도. 

 

 

“저는 아이디어가 막 샘솟는 타입이 아니어선지 백지상태에서 뭔가 기획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일단 사업 형태가 잡히면 그 안에서는 신나게 잘 노는 거 같아요. 빈둥에서 일할 때도 주로 실무를 했는데 강사로 일할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이런 거 같이 해보자 제안하고, 수강생 모집하고, 또 청소년들과 같이 마켓 준비하고 하는 것들이 다 재밌었어요. 외향적이진 않지만 사람을 궁금해하고 좋아하는 성향이라서 여럿이 함께 뭔가를 뚝딱뚝딱 해내는 작업이 잘 맞더라고요.” 

 

 

 

 

“사람을 만나고, 돕고,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역 사업을 주도적으로 벌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그렇다고 김혜련이라는 사람이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함양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전주에서 대학을 다니다 졸업 후 귀향한 그는, 지역 내에서 시도되는 새로운 자리나 모임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들의 독서 모임을 만들어 한동안 리더로 활동한 적도 있다. 빈둥을 ‘카페’로 이용하는 청년들은 적지 않아도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활용하는 이는 드물었기에, 그런 점에서 토박이 이십 대인 혜련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함양에 돌아온 게 2016년이에요. 그때부터 빈둥에 자주 들락거리며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는데 주변 분들이 그런 저한테 관심을 보이시더라고요. 제가 뭐라도 하면 응원도 많이 해주셨고요. 아마도 저처럼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지역 일에 뛰어드는 청년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토박이라는 말도 빈둥에서 처음 들었어요. 여기 사람들끼리는 토박이란 단어를 안 쓰니까 좀 낯설었다고 해야 하나. 아, 내가 토박이구나, 속으로 그랬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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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같은 사회복지 전공자들과 함께.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혜련)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는 함양 관내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람을 돕는 일이 사회복지”라는, 중학교 때 친구가 어느 날 들려준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기에 주저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사회복지가 뭔지는 잘 몰라도 사람을 돕는 일이라니 왠지 멋지고 가치 있게 느껴졌달까. 대학에서 보낸 사 년은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본인의 전공과 직업에 더더욱 애착과 자긍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복지가 사람을 돕는 일인 건 맞지만 단순히 돈으로, 물질로만 돕는 건 아니거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관계를 살리는 거예요. 자기 자신, 가족, 친구, 이웃, 사회와의 관계가 전체적으로 살아날 때 삶이 풍성해지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복지사도 단지 필요한 걸 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만나는 이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개개인의 강점을 살려주고, 또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더라고요.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하는 저한테는 이런 게 좀 감동이었죠.” 

 

 

그가 사회복지라는 학문과 실천에 대해 자기 나름의 관점을 정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 집단이 있다. ‘사회복지정보원’이라고, 『복지요결』의 저자인 한덕연 선생의 철학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전국 각지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고 활동도 함께하는 일종의 네트워크다. 이곳을 통해 이론 공부는 물론 다양한 현장 실습도 경험했다는 혜련은, 무엇보다 앞서 길을 간 선배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던 게 가장 큰 배움이었다고 고백한다. 

 

 

 

 

‘함양 지킴이’로 사는 게 오히려 좋아   

 

 

그가 졸업 후 ‘굳이’ 함양에 와서 직장을 구한 것도 사회복지정보원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결정했을 때다. 네트워크의 일원인 어느 선생님의 제안으로 사회복지 전공자 휴학생들이 전국 곳곳의 사회복지 현장을 찾아다니는 ‘복지순례’가 시작되었고, 혜련은 그에 기꺼이 동참했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한창 고민이 많을 때였는데 마침 경북 지역에서 만난 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본인은 직장을 선택할 때 남들이 피하지만 사람은 꼭 필요한 곳, 나의 성장이 곧 기관의 성장이 되는 곳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그 말이 인상 깊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게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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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정보원을 통해 만난 휴학생들과 함께한 ‘복지순례’ 길 위에서. 

 

 

 

그러고 나서 얼마 후. 함양 내 어느 고등학교에서 일명 ‘노예제’라 불리는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곧 기사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당시 혜련은 사건 자체의 폭력성에도 놀랐지만 본인이 교육받고 성장해온 지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에 더더욱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한다.

 

 

“화도 나고 안타까웠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함양에 대한 걱정이랄까 전에 없던 관심 같은 것이 생겨나더라고요. 비록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해도 거기 가서 선한 의지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 작은 바람을 일으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 뭐 그런 마음이었다 할까요?”

 

 

아동과 청소년의 삶을 꾸준한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줄 사회복지사가 필요하지만 정작 지원자는 많지 않은 곳. 사회복지와 관련해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실천하면서 나와 기관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 지역으로 치면 함양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혜련은 생각했다. 그러나 함양 관내에는 관련 기관이 많지 않았고, 빈자리가 있을지는 더더욱 의문이었다. 

 

여기에 과연 내 열정과 의지를 실현할 곳이 있을까 싶어 조금씩 초조해지던 어느 날, 그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낸 구인 공고를 발견하고는 그 순간 귓속을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남들은 웃을지 몰라도 혜련에게는 그 일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졌다나?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계속 함양에 남아 있는 친구들 보면 ‘니가 함양지킴이냐’고 놀렸었는데, 어느 날 보니 제가 딱 그 상황인 거예요.(웃음) 그런데 저는 함양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군 단위 아동지원센터는 대부분 조건이 열악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배우고 깨우친 사회복지의 정신이나 가치를 실현하기에는 오히려 적합하다고도 할 수 있어요. 또 여기 와서 좋은 이웃들을 많이 만났잖아요. 빈둥에서 뭔가를 같이 공작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힘을 얻었다면, 지금은 육아모임 선배들이 저의 ‘비빌 언덕’이죠. 같이 얘기 나누고 글도 쓰면서 정말 큰 도움과 위안을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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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모임’이 있는 날의 풍경. 엄마들이 모임을 하는 사이, 아이들 역시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서로 연결됨을 믿기에, 오늘도 천천히           

 

 

그러고 보면 김혜련에게 사회복지사와 지역활동가의 거리는 멀지 않은 듯하다. 그에게는 둘 다 본질상 관계를 살리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직업이다. 그들의 일은 결과가 즉각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점, 눈에 띄는 성과에 매달리기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작은 열매나마 기대할 수 있다는 점, 진지하게 접근하되 그 안에서 즐겁고 기쁘게 놀 줄 알아야 지속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한 비슷하다. 한마디로 쉽진 않지만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고, 해볼 만하며, 하면 할수록 의미와 재미가 살아나는 일이라 할까. 

 

 

“전부터 나 혼자, 혹은 우리끼리만 잘사는 건 시시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삶은 왠지 재미없을 거 같은 거예요. 아이 키우는 일도 그렇겠죠. 내 아이만 잘 큰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엔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 제가 직장에 들어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든 프리랜서 활동가로 일하든, 가능하면 더 많은 이들이 잘사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읍내에서 오래도록 자전거포를 운영해온 할아버지를 만나면 그분이 마을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자전거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상상을 한다. 또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네팔 이주민 여성을 보는 날엔, 그분을 모시고 주민들과 함께 네팔어를 배우거나 그 나라 고유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노래를 부르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각자가 분리된 채 자기만의 삶의 무게로 휘청거릴지 몰라도, 혜련의 내면에서는 이렇게 다 연결되어 서로 나누고 도우며 즐거이 살아가는 것이다. 

 

 

육아로 일선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지금, 그에게 활동에 대한 조급함이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차피 다 연결되어 있음을, 지금은 나와 타자 사이의 끈이 느슨할지언정 때가 되면 다시 팽팽히 당겨지면서 만나게 되리란 것을 믿고 있기에. 아이를 키우는 일 또한 결국은 새로운 누군가와 이어지며 같이 성장하는 과정임을 아는 혜련은 오늘도 가벼운 마음으로 딸과 함께 집을 나선다. 여느 때처럼 돌고 돌아 어딘가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단정하고 또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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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이 어울려 여럿이 함께 걷는 길. 김혜련은 조급함 없이 지금 여기의 시간을 천천히 통과하는 중이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