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꽤나 진지해요, 그리고 유쾌하죠” 함양 서하에서 펼쳐지는 ‘청년들의 시골살이’ : <서하다움> 매니저 정은경 인터뷰 글 / 자야 
함양군 서하면 송계마을에 자리한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에서 일하는 정은경 매니저. (사진제공 정은경, 이하 동일)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땅이 흠뻑 젖어 있다. <삶.일.놀이 여름캠프> 참가자들은 계획했던 야외활동을 취소하고 가볍게 동네를 산책할 겸 가까운 체육공원까지 걸어갔다 오기로 한다. ‘줍깅’이란 명목 아래 쓰레기봉투를 준비했지만, 동네 반장님 말씀처럼 주워야 할 쓰레기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풀숲에서 기어 나온 달팽이며, 텃밭마다 무섭게 뻗어가는 불그죽죽한 고구마 줄기들이.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편에서 인사를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어주는 할머니들까지. 이 모든 것이 여느 시골 마을의 흔한 풍경이라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겠다. 논에 들어가 피 뽑고 텃밭에 주저앉아 풀 매는 일이, 나무 도마를 만들고 손바느질로 인형을 만드는 작업이 그런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3주 동안 한 공간에 머물며 삼시 세끼를 해 먹는 생활 자체가 그들에게는 가장 크고 새로운 도전이지 않을까. 이런 사소한 궁금증을 안고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이하 서하다움)> 매니저 정은경 씨를 만나, 함양군 서하면에서 이루어지는 청년들의 시골살이 프로젝트에 대해 묻고 듣는 시간을 가져본다. 시골살이, 지역을 탐색하고 삶을 발견하는 시간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다는 건 단지 주거지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삶의 태도랄지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전환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하다움은 그런 것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미리 지역살이를 체험할 수 있게 장을 열어주는 거죠. 짧게는 한 주, 길게는 삼 주 정도 여기 머물면서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고, 또 그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탐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있어요.” 서하면은 함양군 내에서도 ‘깊숙한’ 곳에 속한다. 공용버스로 읍에서 서하면 중심지인 송계마을까지 가려면 50분은 걸린다. 이런 시골 ‘구석’에 “도시와 농촌, 청년과 지역을 연결하는 플랫폼이자 마을 주민의 소통 거점 공간”인 서하다움이 들어선 지 2년째. 그 사이 서하다움에 딸린 ‘카페서하’는 동네 주민들이 면사무소나 보건소 오가는 길에 들르는 사랑방이 된 지 오래며, 주력 사업인 ‘한주 서하 살다(이하 한주살이)’와 ‘삶.일.놀이 캠프(이하 캠프)’ 또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어느새 동네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공간이 된 카페서하와 서하다움 건물. 같은 시골살이 프로젝트여도 한주살이와 캠프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주살이가 일주일간 잘 쉬면서 내면의 찌꺼기를 비우고 다시 충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3주 혹은 그 이상 진행되는 캠프는 지역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이후 삶의 비전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할까. “한주살이는 ‘그냥 와서 한번 살아보는’ 거예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하는 프로그램도 하루에 하나 정도로 느슨한 편이죠.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좀 버거워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세 차례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쉼을 엄청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앞으로 한주살이는 좀 더 여유 있게 가도 되겠다 싶어요.” 한주살이가 지역에서의 삶을 표면에서 살짝 경험하는 정도라면, 캠프는 좀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그 맛과 향을 음미하는 것에 가깝다. 그에 비추어 볼 때 3주는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기존의 삶에서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았거나 최소한 덜어내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만이 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하다움 스태프들은 그래서 늘 더 많은 것을 담고자 하고 또 주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이 반영되어서인지 캠프 일정표가 조금은 빡빡해 보인다. 써티원(31), 골라 먹지 말고 다 드세요 “캠프명이 ‘삶.일.놀이’잖아요. 포스터는 좀 재밌게 가보자 해서 한 스태프의 제안으로 3·1놀이캠프라고 했는데요, 나중에 일정표를 짜고 보니까 프로그램이 거의 31개나 되더라고요.(웃음) 1기 봄캠프는 처음이라 의욕이 넘쳐서 프로그램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여름캠프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적지는 않죠.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 달라요. 각자의 상황과 취향 등에 따라 프로그램별 선호도에도 차이가 있고요.” 
1기 봄캠프 참가자들이 마을 벽화를 그리는 모습. 
2기 여름캠프 참가자들이 사과 과수원 일을 돕고 나서 찍은 기념사진. 삶, 일, 놀이는 캠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열쇳말인 동시에 내용을 규정하는 주제어이기도 하다. 함께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치회의, 공동체밥상, 자기를 이해하고 타인을 알아가는 다양한 워크숍이 ‘삶’에 해당한다면, ‘일’과 관련해서는 지역 농가 돕기와 로컬사람책, 자기의 일을 상상하고 전망해보는 내일상상워크숍 등이 있다. 또 책과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 활동과 지역 탐사를 위한 각종 야외활동은 ‘놀이’에 속한다. 하지만 삶과 일이, 일과 놀이가, 또 놀이와 삶이 분리될 수 없듯이, 하나하나의 개별 프로그램 또한 서로 연결되고 이어지며 결국 통합될 수밖에 없다고 정은경 매니저는 말한다. 이는 도시에서 사는 게 힘들었던 이유가 연결되고 통합되어야 할 것들이 깨지고 부서져 단절되었기 때문 아니겠냐는, 또 다른 질문으로도 읽힌다. “도시의 경쟁 구도와 빠른 속도에 지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여행을 가거나 가벼운 시골살이 체험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우리 캠프는 그것보다는 확실히 진지한 면이 있어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할까요. 그런 속에서 지역도 살아볼 만하고 도시에서와는 다르지만 괜찮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렇다고 무겁거나 심각하진 않아요. 뭘 하든 유쾌하자는 주의니까. 다만 그냥 놀고 쉬다 가는 프로그램은 아니기에 참가자들도 조금은 진지한 마음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그래서 뭐라도 하나 발견하고 조금이라도 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3주 사이에 일어나는 ‘작거나 큰’ 변화들 여행도 자주 하다 보면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떤 이들과 가고 거기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것처럼, 시골살이 체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제아무리 풍경 좋은 곳에서 주최 측이 준비해놓은 훌륭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들, 함께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껄끄럽다든지 ‘합’이 잘 맞지 않으면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누리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3주간 예닐곱 명의 참가자들이 한 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캠프는 신경 쓸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캠프 홍보 문구 중 하나가 ‘느슨한 공동체’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전혀 느슨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아주 밀착돼 있죠.(웃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프로그램도 함께하니까 종일 붙어 있는 셈이에요. 그래서 힘들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는 장점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원래 밥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진다고 하잖아요. 또 캠프 첫날 생활 규칙을 정하고 참가자들끼리 정기적으로 자치회의도 해서 그런지 서로 배려하면서 잘 지내더라고요. 캠프 중간과 마치고 나서 회고하는 시간에 공동생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서하다움의 시골살이 프로젝트는 모두 공동체 생활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사진은 ‘한주살이’ 참가자들이 숙소에서 함께 활동하는 모습.) 첫 주가 캠프 주최 측과 참가자 개개인이, 그리고 참여한 이들끼리 서로 알아가며 가까워지는 시간이라면, 둘째 주에는 익숙해진 관계 속에서 다 같이 한 발 더 내딛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다 마지막 셋째 주에 이르면 마치 ‘한 식구’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이는 프로그램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주어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더 깊이 생각하고, 의미를 탐색하는 데도 더 열의를 보인다. 봄캠프 때 이런 변화의 흐름을 읽어낸 주최 측은 여름캠프에는 3주 하고도 ‘+1’을 덧붙여 기간을 늘렸다. “봄캠프 참가자들이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이제 좀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나버려 아쉽다고요. 그래서 3주 과정을 통해 발견한 ‘자기만의 주제’를 직접 실현해보고픈 사람들을 위해 한 주를 추가한 거예요. 그에 맞추어 여름캠프 때는 ‘지역에서 산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탐구하는 ‘내일상상워크숍’을 강화했죠.” 3주 후 +1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서하다움 공유하우스에 한 주 더 머물면서 내일상상워크숍을 통해 도출해낸 작업을 펼칠 기회가 주어진다. 말이 +1이지 본인이 원하면 2 또는 3이 더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봄캠프 참가자 중에는 여름캠프에 결합해 단기스태프로 일한 사람이 둘이나 된다. 서로 방향이 맞고 뜻이 통하면 조금 멀리 보고 길게 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자기의 일을 상상하고 전망해보는 ‘내일상상워크숍’의 장면들. 총 5회의 워크숍을 통해 자기만의 주제를 발견한 참가자는 캠프가 끝난 후 한 주 더 머물면서 작업할 기회를 얻는다. 단 한 사람, 한순간으로라도 서하가 기억된다면 “시골살이 프로젝트라고 해서 지금 당장 여기로 오게 하는 게 목적은 아니에요. 도시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면 지역에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고 무엇이 가능한가를 고민하고 파악하게 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도시로 돌아가 전과 똑같이 생활하더라도 가끔은 이곳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아, 그때 그런 걸 했었지, 그런 좋은 순간이 있었지, 거기 가면 나를 알고 환대해주는 이들이 있지. 그렇게 기억하다가 힘들 때 훌쩍 찾아올 수 있는, 서하가 그런 곳이 되면 좋겠어요.” 서울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산청을 거쳐 함양에 정착한 정은경 매니저는 자신의 귀촌 경험에 비추어 결국 선택의 기준은 ‘사람’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귀촌지를 찾을 때 처음엔 산세며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오다가 점차 그것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선이 옮겨지는 것처럼, 서른 가지 이상의 콘텐츠가 나무랄 데 없다 해도 정작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어떤 한 사람일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러하기에 그는 서하다움이 벌이는 사업에 늘 웃으며 협조해주는 서하면 관계자들이, 낯선 도시 청년들이 와서 지낼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송계마을 주민들이 고맙다.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손을 내밀면 두말없이 달려와주는 ‘로컬강사’들이 고맙고, 논이든 밭이든 과수원이든 다 활짝 열어 체험하게 해주는 농부들도 고맙다. 더욱이 그들 중 누군가가 캠프에 참가한 어떤 이에게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은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요즘 ‘비빌 언덕’이라는 말을 많이들 쓰잖아요. 시골살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 그게 가장 좋은 거 아닐까요?” 여름캠프가 끝나갈 즈음 들은 소식으로는 참가자 6인 모두가 +1을 선택했다 한다. 그러므로 한동안 서하다움 숙소와 그 주변은 왁자지껄할 것이다. 그들이 거기서 천연수세미를 만들든, 인터넷을 활용해 지역 농산물 판매대행을 하든, 아니면 그저 살 땅을 보러 다니든, 그 모든 작업은 또한 고스란히 서하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다가올 가을과 겨울, 그 위에 또 어떤 이들이 새로운 숨결과 입김과 발자국을 더할지 벌써 기대가 된다. 그 흔적들의 총합으로 탄생한 무늬는 분명 무질서하고 어지러울 테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울 것이기에. 
지역과 청년이 만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서하다움은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청년들과 함께 그 그림을 조금씩 완성해 가는 중이다. **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접속하시면 사업 내용과 일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 홈페이지 https://31nori.com/home ->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eohadaum |
“우린 꽤나 진지해요, 그리고 유쾌하죠”
함양 서하에서 펼쳐지는 ‘청년들의 시골살이’ : <서하다움> 매니저 정은경 인터뷰
글 / 자야
함양군 서하면 송계마을에 자리한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에서 일하는 정은경 매니저. (사진제공 정은경, 이하 동일)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땅이 흠뻑 젖어 있다. <삶.일.놀이 여름캠프> 참가자들은 계획했던 야외활동을 취소하고 가볍게 동네를 산책할 겸 가까운 체육공원까지 걸어갔다 오기로 한다. ‘줍깅’이란 명목 아래 쓰레기봉투를 준비했지만, 동네 반장님 말씀처럼 주워야 할 쓰레기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풀숲에서 기어 나온 달팽이며, 텃밭마다 무섭게 뻗어가는 불그죽죽한 고구마 줄기들이.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편에서 인사를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어주는 할머니들까지.
이 모든 것이 여느 시골 마을의 흔한 풍경이라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겠다. 논에 들어가 피 뽑고 텃밭에 주저앉아 풀 매는 일이, 나무 도마를 만들고 손바느질로 인형을 만드는 작업이 그런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3주 동안 한 공간에 머물며 삼시 세끼를 해 먹는 생활 자체가 그들에게는 가장 크고 새로운 도전이지 않을까. 이런 사소한 궁금증을 안고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이하 서하다움)> 매니저 정은경 씨를 만나, 함양군 서하면에서 이루어지는 청년들의 시골살이 프로젝트에 대해 묻고 듣는 시간을 가져본다.
시골살이, 지역을 탐색하고 삶을 발견하는 시간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다는 건 단지 주거지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삶의 태도랄지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전환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하다움은 그런 것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미리 지역살이를 체험할 수 있게 장을 열어주는 거죠. 짧게는 한 주, 길게는 삼 주 정도 여기 머물면서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고, 또 그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탐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있어요.”
서하면은 함양군 내에서도 ‘깊숙한’ 곳에 속한다. 공용버스로 읍에서 서하면 중심지인 송계마을까지 가려면 50분은 걸린다. 이런 시골 ‘구석’에 “도시와 농촌, 청년과 지역을 연결하는 플랫폼이자 마을 주민의 소통 거점 공간”인 서하다움이 들어선 지 2년째. 그 사이 서하다움에 딸린 ‘카페서하’는 동네 주민들이 면사무소나 보건소 오가는 길에 들르는 사랑방이 된 지 오래며, 주력 사업인 ‘한주 서하 살다(이하 한주살이)’와 ‘삶.일.놀이 캠프(이하 캠프)’ 또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어느새 동네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공간이 된 카페서하와 서하다움 건물.
같은 시골살이 프로젝트여도 한주살이와 캠프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주살이가 일주일간 잘 쉬면서 내면의 찌꺼기를 비우고 다시 충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3주 혹은 그 이상 진행되는 캠프는 지역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이후 삶의 비전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할까.
“한주살이는 ‘그냥 와서 한번 살아보는’ 거예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하는 프로그램도 하루에 하나 정도로 느슨한 편이죠.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좀 버거워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세 차례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쉼을 엄청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앞으로 한주살이는 좀 더 여유 있게 가도 되겠다 싶어요.”
한주살이가 지역에서의 삶을 표면에서 살짝 경험하는 정도라면, 캠프는 좀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그 맛과 향을 음미하는 것에 가깝다. 그에 비추어 볼 때 3주는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기존의 삶에서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았거나 최소한 덜어내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만이 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하다움 스태프들은 그래서 늘 더 많은 것을 담고자 하고 또 주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이 반영되어서인지 캠프 일정표가 조금은 빡빡해 보인다.
써티원(31), 골라 먹지 말고 다 드세요
“캠프명이 ‘삶.일.놀이’잖아요. 포스터는 좀 재밌게 가보자 해서 한 스태프의 제안으로 3·1놀이캠프라고 했는데요, 나중에 일정표를 짜고 보니까 프로그램이 거의 31개나 되더라고요.(웃음) 1기 봄캠프는 처음이라 의욕이 넘쳐서 프로그램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여름캠프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적지는 않죠.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 달라요. 각자의 상황과 취향 등에 따라 프로그램별 선호도에도 차이가 있고요.”
1기 봄캠프 참가자들이 마을 벽화를 그리는 모습.
2기 여름캠프 참가자들이 사과 과수원 일을 돕고 나서 찍은 기념사진.
삶, 일, 놀이는 캠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열쇳말인 동시에 내용을 규정하는 주제어이기도 하다. 함께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치회의, 공동체밥상, 자기를 이해하고 타인을 알아가는 다양한 워크숍이 ‘삶’에 해당한다면, ‘일’과 관련해서는 지역 농가 돕기와 로컬사람책, 자기의 일을 상상하고 전망해보는 내일상상워크숍 등이 있다. 또 책과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 활동과 지역 탐사를 위한 각종 야외활동은 ‘놀이’에 속한다.
하지만 삶과 일이, 일과 놀이가, 또 놀이와 삶이 분리될 수 없듯이, 하나하나의 개별 프로그램 또한 서로 연결되고 이어지며 결국 통합될 수밖에 없다고 정은경 매니저는 말한다. 이는 도시에서 사는 게 힘들었던 이유가 연결되고 통합되어야 할 것들이 깨지고 부서져 단절되었기 때문 아니겠냐는, 또 다른 질문으로도 읽힌다.
“도시의 경쟁 구도와 빠른 속도에 지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여행을 가거나 가벼운 시골살이 체험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우리 캠프는 그것보다는 확실히 진지한 면이 있어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할까요. 그런 속에서 지역도 살아볼 만하고 도시에서와는 다르지만 괜찮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렇다고 무겁거나 심각하진 않아요. 뭘 하든 유쾌하자는 주의니까. 다만 그냥 놀고 쉬다 가는 프로그램은 아니기에 참가자들도 조금은 진지한 마음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그래서 뭐라도 하나 발견하고 조금이라도 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3주 사이에 일어나는 ‘작거나 큰’ 변화들
여행도 자주 하다 보면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떤 이들과 가고 거기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것처럼, 시골살이 체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제아무리 풍경 좋은 곳에서 주최 측이 준비해놓은 훌륭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들, 함께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껄끄럽다든지 ‘합’이 잘 맞지 않으면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누리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3주간 예닐곱 명의 참가자들이 한 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캠프는 신경 쓸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캠프 홍보 문구 중 하나가 ‘느슨한 공동체’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전혀 느슨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아주 밀착돼 있죠.(웃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프로그램도 함께하니까 종일 붙어 있는 셈이에요. 그래서 힘들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는 장점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원래 밥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진다고 하잖아요. 또 캠프 첫날 생활 규칙을 정하고 참가자들끼리 정기적으로 자치회의도 해서 그런지 서로 배려하면서 잘 지내더라고요. 캠프 중간과 마치고 나서 회고하는 시간에 공동생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서하다움의 시골살이 프로젝트는 모두 공동체 생활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사진은 ‘한주살이’ 참가자들이 숙소에서 함께 활동하는 모습.)
첫 주가 캠프 주최 측과 참가자 개개인이, 그리고 참여한 이들끼리 서로 알아가며 가까워지는 시간이라면, 둘째 주에는 익숙해진 관계 속에서 다 같이 한 발 더 내딛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다 마지막 셋째 주에 이르면 마치 ‘한 식구’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이는 프로그램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주어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더 깊이 생각하고, 의미를 탐색하는 데도 더 열의를 보인다. 봄캠프 때 이런 변화의 흐름을 읽어낸 주최 측은 여름캠프에는 3주 하고도 ‘+1’을 덧붙여 기간을 늘렸다.
“봄캠프 참가자들이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이제 좀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나버려 아쉽다고요. 그래서 3주 과정을 통해 발견한 ‘자기만의 주제’를 직접 실현해보고픈 사람들을 위해 한 주를 추가한 거예요. 그에 맞추어 여름캠프 때는 ‘지역에서 산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탐구하는 ‘내일상상워크숍’을 강화했죠.”
3주 후 +1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서하다움 공유하우스에 한 주 더 머물면서 내일상상워크숍을 통해 도출해낸 작업을 펼칠 기회가 주어진다. 말이 +1이지 본인이 원하면 2 또는 3이 더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봄캠프 참가자 중에는 여름캠프에 결합해 단기스태프로 일한 사람이 둘이나 된다. 서로 방향이 맞고 뜻이 통하면 조금 멀리 보고 길게 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자기의 일을 상상하고 전망해보는 ‘내일상상워크숍’의 장면들.
총 5회의 워크숍을 통해 자기만의 주제를 발견한 참가자는 캠프가 끝난 후 한 주 더 머물면서 작업할 기회를 얻는다.
단 한 사람, 한순간으로라도 서하가 기억된다면
“시골살이 프로젝트라고 해서 지금 당장 여기로 오게 하는 게 목적은 아니에요. 도시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면 지역에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고 무엇이 가능한가를 고민하고 파악하게 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도시로 돌아가 전과 똑같이 생활하더라도 가끔은 이곳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아, 그때 그런 걸 했었지, 그런 좋은 순간이 있었지, 거기 가면 나를 알고 환대해주는 이들이 있지. 그렇게 기억하다가 힘들 때 훌쩍 찾아올 수 있는, 서하가 그런 곳이 되면 좋겠어요.”
서울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산청을 거쳐 함양에 정착한 정은경 매니저는 자신의 귀촌 경험에 비추어 결국 선택의 기준은 ‘사람’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귀촌지를 찾을 때 처음엔 산세며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오다가 점차 그것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선이 옮겨지는 것처럼, 서른 가지 이상의 콘텐츠가 나무랄 데 없다 해도 정작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어떤 한 사람일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러하기에 그는 서하다움이 벌이는 사업에 늘 웃으며 협조해주는 서하면 관계자들이, 낯선 도시 청년들이 와서 지낼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송계마을 주민들이 고맙다.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손을 내밀면 두말없이 달려와주는 ‘로컬강사’들이 고맙고, 논이든 밭이든 과수원이든 다 활짝 열어 체험하게 해주는 농부들도 고맙다. 더욱이 그들 중 누군가가 캠프에 참가한 어떤 이에게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은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요즘 ‘비빌 언덕’이라는 말을 많이들 쓰잖아요. 시골살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 그게 가장 좋은 거 아닐까요?”
여름캠프가 끝나갈 즈음 들은 소식으로는 참가자 6인 모두가 +1을 선택했다 한다. 그러므로 한동안 서하다움 숙소와 그 주변은 왁자지껄할 것이다. 그들이 거기서 천연수세미를 만들든, 인터넷을 활용해 지역 농산물 판매대행을 하든, 아니면 그저 살 땅을 보러 다니든, 그 모든 작업은 또한 고스란히 서하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다가올 가을과 겨울, 그 위에 또 어떤 이들이 새로운 숨결과 입김과 발자국을 더할지 벌써 기대가 된다. 그 흔적들의 총합으로 탄생한 무늬는 분명 무질서하고 어지러울 테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울 것이기에.
지역과 청년이 만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서하다움은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청년들과 함께 그 그림을 조금씩 완성해 가는 중이다.
**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접속하시면
사업 내용과 일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 홈페이지 https://31nori.com/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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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